[이창규]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시나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를 좋아하면 애창곡이 되고, 시를 좋아하면 그것이 애송시다. 애송시 한 수만 있어도 가슴에 황금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십 수만 암송
할 수 있으면 글을 잘 지을 수 있다고 하고, 오십 수 정도 낭송할 수 있다면 웅변가도 될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의 꽃이 문학이요, 문학의 꽃이 시라고 하는 것은 그 시 한 수에서 삶과 여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애송하는 좋은 시는 유년에서 어른까지 정서가 이동이 된 때문이다.
인생은 시처럼 살고 그림처럼 사색하며, 음악처럼 활동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시를 비롯한 예술은 때때로 감동과 느낌을 인간에게 던져주는 것에서 여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시간에 쫓기는 현대 문화인의 지친 삶 속에서라도 시 한 수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자. 서정시를 통해서 인간의 삶이 실꾸리에서 풀려나듯 다정히 풀어 주고 맺혔던 한도 치유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정시가 감정에 의존해 있고, 시 또한 감동 자체인 글이라는 점이 카타르시스catharsis 효과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지음 · 류시화 역
춤춰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이라도 상처받아 보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이 시는 시라기보다 오히려 치유의 글이다.
시인 워즈워스는 '늙어진 후에도 하늘의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뛰지 않으면 죽은 거나 같다'고 했듯, 시 한 수 읽는 여유만이라도 찾아 차분한 여유를 만들었으면 한다.
이러한 시 속에는 즐거움, 괴로움, 아우성 등 희로애락이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양을 주고 쾌락을 주며 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보고 있지 않은 데에서 춤추고, 상처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으며, 혼자 노래하고, 돈이 없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한다.
그래서 문학의 정점은 사랑이지만, 인생의 참모습이고, 승화된 인간의 이상이며, 상징이며 또한 인간의 보배로운 창조이며, 영원한 기록이라 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문학은 삶의 총체적 기록이라 하였는지 모른다.
진달래 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걱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걱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삶의 실꾸리를 잘 풀리게 하는 서정시는 쉬워서 그냥 읽으면 이해되고, 낭송하면 더욱 감정이 가라앉아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가끔이라도 자기를 돌아보면서 삶이 잘 풀려지게 시 한 수쯤 가까이 해 보자. 서정시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체험시켜 주고, 튼튼하며 풍요한 마음씨를 갖게 하여 강한사람이 되게 해 준다.
지금은 기호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한 시대 전만 하더라도 청소년들이 제일 좋아했던 시가 위에 전문을 제시한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라면, 어른들이 좋아했던 시는 <서시序詩>였다. 한 시대가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있음을 본다. 이것은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좋은 정서가 그대로 디음 세대로 이동된 것이다.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시는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각오를 총체적으로 담은 내용인데, 운명에 대한 확고하면서도 신념에 찬 결의를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철저하게 양심 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내부적 번민과 의지를 보여 준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갖가지 그늘과 어둠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사리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세속적 삶에 타협하게 한다. 이 작품의 서두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선언이다. 그것은 순수한 열정과 결백한 신념에서 나온 것에서 첫 연으로도 애송되고 남음이 있는 시이다.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명작 시는 계속 애송되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어릴 때에도 좋아했던 시나 명작품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좋은 정서 이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 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3장 6구로 된 이 시조는 이조 중종 때 명기 황진이 시인의 작품으로 애타는 기다림과 이에 대한 사랑 고백은 시적 형상화는 물론 정과 사랑과 어리광을 무한히 펼쳐 놓겠다는 좋은시라고 찬양하고 있다.
특히 한국 수필의 거목이신 금아 피천득은 셰익스피어의 시 <소네트> 수천 편을 가져와도 황진이의 이 시조 한 편에 견줄 수 없다는 글을 읽었다.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인가, 영국인들이 인도를 다 주어도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시를 바꾸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결코 손에 가진 것이 많가야만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 애송시 한 수 만 담았어도, 아름다운 사랑과 꿈과 희망을 창조하여 얼마든지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참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 이창규
수필가. 경남아동문학회장
[《수향수필》제38집(2010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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