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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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를 급속한 산업화로 치닫게 만든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산업화는 기계화와 대량생산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그것이 야기한 대기오염과 지구의 온난화는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을 파괴하고 생태계의 질서를 흔들어 놓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세계는 나라마다 환경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삶의 조건으로서의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자연재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앓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아일랜드의 화산 폭발로 유럽 전체가 항공대란을 겪고 있는 것이나, 멕시코 만에서의 원유유출로 대서양 연안의 아메리카 대륙을 완전히 오염시킴으로써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나, 중국 남부와 인도에 내린 폭우로 수만 명의 인명피해와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나, 아이티와 중국 서남부 스촨성에 일어난 지진이 그 지역 전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재난으로 인한 환경파괴는 하나밖에 없는 지구가 인류의 생존의 영원한 터전이 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것은 인류가 만든 산업문명이 인간에 의한 자연의 정복과 착취의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 인류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산업문명이 발달하기 이전 농경사회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먹이사슬을 형성하여 공존공생의 순환체계를 형성하고 생존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이용하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인간에게 풍요와 안락을 약속하는 산업사회에서는 인류가 생산을 대량화하기 위해 기계문명을 발달시킴으로써 자연의 순환체계를 무너뜨리고 간접화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량으로 소비하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낸다. 그런 점에서 삶의 양식이 서로 다른 동서양에서 자연에 대한 개념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서양에서 자연은 신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 준 공동의 재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생명과 편리를 위해 자연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산업사회는 자연에 노동을 가미하여 인간을 위한 재화를 만들어 내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에 동양의 전통적인 농경사회는 인간이 대지를 개간하여 식량을 얻어내는 사회라는 점에서는 서양의 산업사회와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농사가 자연의 토양이나 절기에 순응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측면이 있다.
동양의 전통적인 농경사회는 따라서 기후와 절기와 지질을 고려하여 자연의 섭리를 따름으로써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여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회이다. 그런 점에서 서양의 산업사회는 자연을 이겨 냄으로써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재화를 최대한 만들어 내는 사회라면, 동양의 농경사회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길을 따름으로써 최대한 수확을 얻는 사회이다. 서양의 산업사회는 자연을 정복하고 인간의 욕망을 만들어 내는 도시 중심으로 발달한 반면에, 동양의 농경사회는 자연에 순응하며 소박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농촌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서양의 성당이나 교회가 문명의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광장에 자리잡고 있는 반면에 동양의 불교 사찰이 자연의 깊은 산골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 상통한다. 도시 중심의 서양의 기술문명은 자연을 파괴하며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도구들을 생산하여 자연을 존중하는 동양의 농경문화를 힘으로 정복함으로써 19세기 제국주의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든다.
동양과 서양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서양문학이 인간존재와 인간 상호관계의 구명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에 동양문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을 예찬하고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의 꿈을 노래한다. 소설이 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19세기 서양문학은 삶의 괴로움과 고통을 그리고 있는 반면에 시가가 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19세기 동양문학은 자연 속에 사는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노래한다. 자연과 인간이 구분된 서양문학은 인간존재와 삶에 대해 깊은 탐구에 도달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반면에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고자 한 동양문학은 자연 속에 사는 삶의 즐거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동화되는 조화를 노래한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교통통신의 혁명이 일어난 21세기에는 동서양의 구분이 없어지고 농경사회마저 산업사회로 흡수된다.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없어지고 인간의 욕망의 구조가 도시와 농촌 사이에 유사해져 가고 있다. 보다 많은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삶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 버린 오늘의 산업사회에서 왜소해지고 소외된 개인이 제기하는 자기 존재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나, 타인과의 소통과 자아실현의 길을 찾아 헤매며 개인의 사회적 성취에 관한 욕망의 추구는 소설의 주제가 된다. 집단을 형성해 살고 있는 개인은 그 집단으로부터 끊임없이 역사적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고 문학은 그 상처와 고통을 찾아내고 기록한다. 전 세계의 도시화는 필연적으로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만들어 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인류는 환경을 끝없이 파괴한다. 그것은 자연이란 신이 인간에게 생명과 편리를 위해 마련해 준 것이라는 관념에서 비롯된다.
2
환경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문학비평에서 사용한 19세기 프랑스 비평가 이폴리트 텐느는 그것이 인간의 영구적 원초적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 밖의 자연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 라틴민족과 게르만민족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지역의 차이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 라틴민족은 아름다운 풍광에 둘러싸여 명랑하고 안온한 해안지방에 살기 때문에 항해와 산업에 종사하고 변론술에 능한 반면에, 게르만민족은 춥고 습기 많은 울창한 숲 속에 살아 강렬한 감각을 소유하고 호전적이며 과격한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환경은 인간의 외적인 조건으로서 인간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인자가 된다. 인간이 자연에 속하고,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러한 관념은 환경이 개인을 만든다는 결정론과 연결된다. 반면에 자연을 개척의 대상으로 삼고 인간의 생존과 편리를 위해 신으로부터 받은 유산이라는 개념은 환경을 부의 축적이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생각하게 만든다. 전자의 경우는 인간보다 환경이 먼저라는 생각이라면 후자의 경우 인간이 환경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산업사회는 바로 후자의 관점에서 자연이나 환경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 소설에서 환경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에 발표된 이문구의 농촌소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농촌소설을 쓴 이무영이나 박영준의 소설에서도 농촌의 현실이 주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난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소박한 농민의 심성을 제시하는 데서 멀리 가지 못하고 있다. 이문구는 한국 사회에 산업화의 거센 물결이 밀려오는 과정에서 농촌이 겪어야 했던 변화를 통해 환경이 파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문구가 환경의 파괴를 소설의 주제로 삼았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것을 소설의 주제로 삼았다면 이문구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 이문구의 소설은 테제소설에 머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소설이란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볼 수 있는 개인의 상처와 고통을 통해서 인간의 보편적 삶의 감추어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문구의 소설은 농촌에 사는 주인공이 산업화의 물결이 밀려오는 농촌의 변화 속에서 고통받고 저항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통적인 농촌생활이 자연 속의 존재 자체에 자족하는 무위의 삶이었던 데 반하여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이 시골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이문구의 주인공의 농촌생활은 소유의 거대한 욕망에 시달리는 빈곤의식의 삶이다. 그들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다'는 전통적인 농촌생활의 자족적인 즐거움을 누릴 때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부의 축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감으로 고통을 받고 괴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농토가 개간되고 공장이 들어서고 새로운 주택단지가 만들어지는 현실 덕택에 자신의 땅의 값어치가 상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떨칠 수 없고 갑작스런 땅값의 상승이 그들의 부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농촌에서 쫓아 냄으로써 그들의 정착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하지 않을까 시름에 잠기게 한다. 실제로 이러한 농촌의 환경 파괴는 그 많은 농민들로 하여금 도시의 변두리로 쫓겨 가서 떠돌이의 삶을 살게 만든다. 개발독재시대의 이러한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문구뿐만 아니다. 산과 밭을 무자비하게 굴삭기로 파헤치고 트럭터로 밀어붙이는 개발독재를 동시대의 작가 최인호는 '미개인'으로 표현했고, 윤흥길은 도시 변두리의 주민들을 허허벌판으로 몰아내며 겉으로만 단장을 하고 삶의 터전이 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대단지 주택을 '낙원'으로 표현한 당국의 거짓에 대하여 그 정체를 밝힘으로써 떠돌이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문구의 소설이 이들의 소설과 다른 점은 군사독재로부터 억압을 받고 산업사회로부터 소외된 그의 주인공들이 그런 가운데서도 살아남는 지혜를 스스로 터득한 인물들이라는 데 있다. 그의 지혜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은 억압과 소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대항하는 대신에 유머와 해학으로 그 정체를 희화시키는 가운데 자신의 내면에 쌓인 한을 밖으로 내보내는 데 있는 것이다. 이문구는 자신이 사는 농촌이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도 소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삶을 살고, 욕망의 허상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삶을 꿈꾼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속에 사는 그의 눈에는 도시적 삶의 욕망이나 부를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이 어리석은 인간의 희극적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토지나 자연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부의 축적의 수단으로 삼는 산업사회가 공해를 유발하고 생태계를 파괴하여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을 희화한다. 그는 그런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을 익살과 해학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분노와 고발의 문학이 가지고 있는 목적성을 벗어나 감동과 설득에 이르게 만든다.
이러한 이문구 소설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제도 사이의 갈등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개인이 입고 있는 역사적 상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소설 본래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인물이 없는 소설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소설이란 인간중심적인 이야기다. 환경이 인간의 삶의 조건이라면 인물의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환경에 대한 탄구를 통해 인간의 이해에 도달하는 장르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생물의 관계를 의미하는 생태계란 그 자체만으로 소설의 주제가 될 수 없다. 가능한 것이 있다면 인물의 삶의 조건이나 인물의 자연관 혹은 우주관의 표현으로서의 환경이 있을 뿐이다.
흔히 아프리카 대륙의 사막화는 19세기 서양 식민지 정책에 의해 사탕수수나 커피의 재배가 원시 밀림들을 벌목한 데서 유래한다고 말해진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고 개발하여 재화를 얻고자 함으로써 생태계의 순환구조와 조화를 무너뜨린 결과 사막화라는 재앙을 불러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 소설의 주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상처 입은 개인이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환경의 파괴에 대항하여 싸우는 삶의 과정을 보여 주어야 한다. 주어진 환경과 싸우는 인물이 없는 소설이란 가능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인물을 떠나서 환경 자체만을 다루는 소설이란 가능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소설에서 환경은 인물에 현실의 구체성을 부여하는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 자체가 소설의 주제가 될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3
소설에서와는 달리 시에 있어서 환경은 좋은 주제가 된다. 시는 인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한 장르이다. 인물은 시에 있어서 주제도 될 수 있고 비유의 대상도 될 수 있다. 자연이나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환경이 모두 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시가 이야기를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지나 상징이나 비유는 대상에 대한 시인의 감각과 인식을 언어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시의 주제가 되는 환경이란 다양한 내포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때로는 자연을 의미하고 때로는 생태계를 가리키고 때로는 생명 자체를 표현한다. 여기에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가치 있는 것들이라는 생명 중심주의가 깔려 있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환경이나 자연을 노래할 때 시적 화자와의 일체감을 전제로 하게 된다. 그런 시 가운데 정현종의 「숲에서」를 읽으면 시인이 나무와 하나 되는 꿈을 읽을 수 있다.
만물 중에 제일 잘생긴/ 나무야/ 내 뇌수도 심장도 인제/ 초록이다/ 거기 큰핏줄과 실핏줄들은/ 새 소리의 샘이며/ 날개의 보금자리!/ (지저귀는 실핏줄이여/ 날으는 큰핏줄이여)
―「숲에서」, 제1연
시인은 식물인 나무와 동물인 새를 자신과 똑같은 생명체로 인식하고자 한다. 나무에도 '뇌수'도 있고 '심장'도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나무에서 '큰핏줄'과 '실핏줄'을 찾아내고 거기에서 새 소리가 솟아나는 샘과 날개의 보금자리를 발견한다. 그 순간 나무는 새가 되고 새는 시인이 된다. 그것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생명중심주의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생명사상을 드러낸다.
내 필생의 꿈은/ 저 새들 중 암놈과 잠을 자/ 위는 새요 아래는 사람인/ 半人半鳥 하나 낳는 일!/ 새여, 내 부적이여/ 나무여, 내 부적이여
―「숲에서」, 제2연
시인은 새와 하나 되어 반인반조를 하나 낳는 꿈을 말하고 숲 속에서는 나무나 새가 모두 시인과 같은 생명체임을 강조한다. 그것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 생명체임을 말하는 것으로 생명 중심의 생태주의를 표현한다. 그것은 모든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생명체 간의 조화와 순환구조를 무너뜨리고 있는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시인이 생명의 환희를 꿈꾸며 노래하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그것과 하나 되고자 하는 꿈을 노래하는 정현종의 시는 생명 중심주의에 속한다.
세상의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지?/ 그걸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 허구한 날 봐도 나날이 좋아/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그런 사람 땅에 뿌리내려 마지않게 하고/ 몸에 온몸에 수액 오르게 하고/ 하늘로 높은 데로 오르게 하고/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 하늘에도 땅에도 우리들 가슴에도/ 들리지 나무들아 날이면 날마다/ 첫사랑 두근두근 팽창하는 기운을!
―「세상의 나무들」 전문
말없이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그것의 보이지 않는 운동을 읽어 내는 시인은 땅으로 뿌리내리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나무의 모습에서 온몸으로 움직이는 생명의 힘과 아름다움을 보여 주며 관능적인 생명의 리듬을 느끼고 자연의 순환원리를 파악한다.
시인은 자신이 생명의 리듬을 깨뜨리고 자연의 순환 체계를 무너뜨리는 산업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 깨달음과 인식으로 환경운동이나 생태주의운동에 나선다면 그는 운동가에 지나지 않을 뿐 시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몸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연이나 환경, 나아가서는 생태계가 생명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시인은 생명의 아름다움, 생명의 힘, 생명의 순환 원리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소중한 가치임을 일깨우는 근원적인 생태주의자이다. 거기에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명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4
소설에서 환경 자체가 주제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시에서도 생태계 자체가 주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되는 것은 생태계 전체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존재이다. 시적 화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가 없는 것처럼 생태계에서 자신의 삶과 연결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때 생태계는 시적 주제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연에 의존하지 않은 인간의 생존은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중심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는 존재이다. 산과 바다, 구름과 바람, 나무와 풀, 식물과 동물, 꽃과 나비 등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적 화자의 존재와 인식의 범위 안에서 의미 있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시인의 존재를 포함하여 삶을 형성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삶을 형성하는 것에는 휴대전화, 텔레비전, DVD, 자동차, 컴퓨터 등 문명의 산물들도 포함된다. 이 문명의 산물들의 도전을 받은 시인은 그것들이 시인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삶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시인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개념을 흩으러 놓는 데서 고통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산업사회 이전의 자연관, 농경사회의 자연관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향수를 갖는다. 문제는 한 번 산업화된 사회는 다시 농경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시인은 농경사회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로 요약할 수 있는 생태계와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삶의 질서를 회복하고 새로운 자연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을 꿈꾼다. 그것은 사물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가 주종관계가 아니라 대등관계가 되는 시인의 꿈이다. 그러나 대등관계는 곧 사물의 자율적 존재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시인의 눈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성질을 띤다. 시인의 시선에 파악된 사물들은 시인에게 정서적 감각적 반응을 일으키는 이미지로서 나타날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학은 환경이나 생태계의 문제만을 주제로 다룰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문학은 모든 생명의 본질을 구명하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들을 회복시키고 그것들의 관계가 보여 주는 질서를 구축하는 근원적인 장르이다. 문학은 작가나 시인, 등장인물이나 시적 화자와 같은 사람이 다른 생명체와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 환경과 생태계, 나아가서는 자연에 대한 감각과 의식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언어의 복합체이다. 따라서 인간중심적인 환경의 문제나 생명중심적인 생태계 문제나 모두 문학의 근원적인 문제로 제시하고 그것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들을 해결하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가치 있는 문학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면서 그 문제를 의식하게 하고 제기하게 하는 문학이다. 그 점에서는 시와 소설에 차이가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시 속에 나타난 환경과 생태
■ 김치수
문학평론가․이화여대 명예교수
[월간문학 2010년 9월호(제49회 한국문학 심포지엄 주제발표 자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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