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일을 오랫동안 해 오신 능행 스님이 근자에 《이 순간》이란 책을 내셨습니다. 이 책에서 능행 스님은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오는 과
정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죽음이 시작되면 먼저 몸속에 있는 땅의 성질이 무너진답니다. 근육에 모여 있던 힘이 흩어지고 피부의 탄력이 사라지고 손을 쥘 힘이 없어진답니다. 다음엔 물의 성질이 무너진답니다. 몸속의 물이 흩어지면서 땀구멍에 끈적끈적한 땀이 송송 맺히는데 그래서 임종 직전에 사람들은 갈증과 짓눌림을 느낀답니다. 그다음에는 몸의 뜨거운 기운인 불의 기운이 흩어지게 된답니다. 몸이 아래쪽에서 머리로 식어 올라오거나 머리 부분에서 발 쪽으로 식어 내려간답니다. 마지막에는 바람의 기운이 무너지게 되는데 동공이 풀리면서 호흡의 횟수가 줄어들고 혈압과 맥박이 떨어지며 밖으로 나간 숨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할 때 호흡이 멎게 된답니다. 사람의 몸도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흙의 기운, 물의 기운, 불의 기운, 바람의 기운이 모여서 생명이 되고 그게 흩어져서 생명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이 기운들이 곧 우리 생명의 근원인 것입니다. 숲에서 이는 바람은 내 폐의 바깥이고, 강물을 따라 흐르는 물은 내 핏줄 속을 흐르는 수액인 것입니다. 지구의 온도가 내 체온의 일부이며, 흙에서 나는 것들이 내 피부의 안쪽을 이루는 살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생명을 유지하게 해 주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줍니다. 자연은 단순히 사고파는 상품이나 재화가 아니라 생명의 요소들입니다.
수경 스님은 “인류가 이룬 모든 재화를 다 합쳐도 공기가 단 3분간 우리에게 주는 혜택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공기와 햇볕을 어떻게 사고팝니까?” 하고 질문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바람과 물을 어떻게 돈으로만 환산할 수가 있습니까? 자연은 우리 마음대로 파헤치고 뜯어고치고 사업의 수단으로 대상화시킬 수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이 인간의 일부가 아닙니다.
이 정부의 잘못된 정치에 맞서 저항의 글쓰기, 저항의 예술운동을 하겠다는 작가 예술인들과 함께 ‘4대강 살리기’란 이름의 공사가 진행되는 강에 갔다가 나는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한 마리 거대한 짐승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생명에 칼을 들이대 껍질을 벗기고 살점을 중장비의 삽날로 찍어 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탐욕에 눈이 먼 야만의 짐승들이 몰려와 한 생명의 몸을 마구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한 마리
거대한 짐승을 보았다
꿈틀거릴 때마다 솟구쳐 오르는 황토빛 선혈을
으르렁거리며 퍼 나르는 야수들의 발소리
중장비의 거대한 삽날로 살아 있는 살을 마구 파헤치며
뜯어먹고 있는 야만의 식욕을 보았다
먹잇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살기 어린 눈길로
강은 살벌하였다
강의 신음소리는 야차(夜叉)들의 포효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졸시 〈강〉 중에서
강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젖줄입니다. 그 강의 젖을 받아먹으며 우리는 자랐습니다. 낮은 물가에 피라미, 모래무지, 송사리가 살아서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 물가에 처음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울에는 조금 더 몸이 굵은 고기가 자갈과 모래 사이에 알을 낳았고, 세찬 물이 퉁기는 물소리 아름다운 곳에 꾸꾸리가 제 동무들과 몰려다니며 놀았고, 개여울을 사이에 두고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오가며 지냈습니다. 강에서 문화가 시작되었고 역사가 흘러왔습니다. 인류의 문명도 강가에서 시작되었고 강줄기를 따라 유구하게 흘러왔습니다. 우리도 강의 숨결로 호흡하며 맑은 정신을 지닐 수 있었고 부드러운 심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강은 우리에게 시를 가르쳐 주었고 시인의 영감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한강 물줄기 흘러가는 걸 보고 자라서 신경림 선생은 〈남한강〉이란 장시와 〈목계장터〉 같은 빼어난 시를 쓸 수 있었을 겁니다.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 강가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어떻게 시인이 되었겠습니까? 안도현의 시심도 낙동강의 마음이 없었으면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영산강은 나해철 곽재구 같은 시인을 길러냈고 금강이 있어서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강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영혼, 우리의 상상력은 얼마나 삭막하고 피폐해지겠습니까?
희고 고운 모래톱에 남생이가 알을 낳아 놓고
누가 볼까 숨죽이는 동안
수줍은 수달은 고개를 돌린 채 물속을 들여다보았고
흰목물떼새가 갈대 잎을 물어다 둥지를 짓는 날
낮은 구름이 내려와 가만히 그늘을 만들어 주는 걸
강물도 보고 우리도 보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유장하게 살아가리라 믿었다
―졸시 〈강〉 중에서
강은 우리만 살아온 삶의 터전이 아닙니다. 수많은 물고기와 새와 자라와 남생이와 수달과 꽃과 풀과 온갖 생명들이 깃들어 살아온 곳입니다. 얕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물고기들이 있고 모래톱이 있어야 알을 낳는 것들이 있습니다. 풀숲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새와 강 언덕이 있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강을 6미터씩 파 놓으면 물고기들은 알을 낳을 데가 없어집니다. 모래를 다 파내다 버리면 자라도 남생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들이 사라지고 쫓겨난 곳에서는 우리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
강은 그냥 강이 아닙니다. 생명의 물줄기입니다. 생명의 물줄기 곳곳에 열여섯 개의 보를 설치하여 물의 흐름을 끊어놓은 뒤에 시멘트로 깁스를 해 버리면 그것은 강이 아니라 수로에 불과할 뿐입니다. 물의 생명을 끊어버리고 자본의 배를 띄우는 것이 강을 살리는 일이라고 우기는 것은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건 살육입니다. 학살입니다. 오직 개발 이익만을 나누기 위한 탐욕의 삽질입니다. 무지의 폭력입니다. 수경 스님 말씀대로 “목전의 이익을 위해 민족의 미래를 수장시키는 일”입니다. 강이 죽어 가면 우리도 살 수 없습니다. 강이 고통받으면 우리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는 나와 더불어 뿌리가 같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몸[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同胞]이라고 했습니다. 동학에서도 인오동포(人吾同胞)이며 물오동포(物吾同胞)라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내가 한 형제요, 자연만물과 나도 한 몸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강물의 신음소리 비명 섞인 물줄기를 마시며
우리의 육신도 피폐해질 것이며
과일들도 강 안개에 덮여 우울해진 채 결실로 갈 것이다
그 눅눅해진 목숨들을 씹으며
우리의 안쪽도 자주 습기 차 있을 것이다
물고기와 새와 자라와 쑥부쟁이가 사라진 강을 바라보며
우리의 영혼 또한 삭막하게 늙어 갈 것이다
초췌해진 사원의 추녀를 고치기 위해
몇 배 더 많은 땀 흘려야 하고
녹슬어가는 종소리를 되돌리기 위해
더 깊은 참회의 기도를 바쳐야 하는 날도 올 것이다
핏줄이 막히고 물길이 끊어진 강의 거친 숨결이
강마을 전체를 분노로 덮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시 강을 강으로 되돌리기 위해
수없이 절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졸시 〈강〉 중에서
강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나면 언젠가는 다시 강을 본래의 강으로 되돌리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재화, 더 많은 인력을 쏟아 부어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이자강(Isar River)은 보를 걷어내고 8km를 재자연화하는 데 준비 기간 10년, 공사 기간 10년 합해서 2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634km에 걸친 그 엄청난 구간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넉 달만에 끝마쳤으며 22조 원을 쏟아붓는 대공사를 2년 만에 끝낸다고 합니다. 이렇게 밤도 낮도 없는 속도전으로 끝내려는 공사는 얼마나 준비 없는 공사이며, 얼마나 무리한 밀어붙이기 공사입니까? 따라서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오는 부실 공사이겠습니까?
해서는 안 되는 공사이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시멘트와 보와 갑문을 다 걷어내고 재자연화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겠습니까? 지금 쏟아붓는 국민의 혈세의 몇 배, 몇십 배의 예산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수천 수만 년 쌓였던 모래톱을 단기간에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요? 하회마을의 모래사장과 영월 청령포의 굽이치는 모래밭과 단종 임금의 애환이 깃든 역사의 흔적이 트럭으로 모래를 쏟아붓는다고 금방 복원이 되는 것일까요? 쓸려 내려간 역사와 문화는 어떻게 다시 되찾을 수가 있을까요?
라인강(Rhein River)의 지류인 스위스의 투어강(Thur River)도 30년에 걸쳐 직선형 수로를 걷어내고 굽이도는 자연 하천으로 바꾸는 ‘투어강 살리기’ 사업을 하면서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고, 울산의 태화강도 보를 걷어내면서 강의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 걸 알면서 이명박 정부는 왜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며 국민을 속이는 걸까요? 왜 거짓투성이 홍보물을 만들어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알리는 일을 힘으로 막는 것일까요?
왜 거짓홍보를 정부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합법이고 진실을 알리기 위한 일은 불법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일까요? 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일, 강을 진정으로 살리고자 하는 일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폄하하는 것일까요? 최병성 목사는 정말로 위험한 일은 ‘찬성을 위한 찬성’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이익만을 위한 찬성이 더 문제입니다. 눈앞의 개발 이익을 위해 이렇게 산천을 망가뜨리는 일은 악업을 쌓는 일입니다. 그 죄과가 후대에까지 미치는 엄청난 악업을 쌓는 일입니다. 독일에서는 강을 수로로 만든 것이 오히려 홍수를 조장하며 지하수 고갈을 유발한다고 교과서에 수록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중국의 사상가 왕양명은 〈수오훈(水五訓)〉에서 물이 주는 다섯 가지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첫째, 물은 항상 자기가 나아갈 길을 찾아 멈추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물길입니다. 막는 것이 있으면 에돌아서라도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이 물입니다. 흐르지 않으면 거기서부터는 물이 아닙니다. 물의 생명은 멈추고 썩기 시작합니다.
둘째, 물은 스스로 움직여 다른 것을 움직입니다. 물은 언제나 살아 움직이며 생명을 키우고 그 곁에 온갖 생령들을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그래야 물입니다.
셋째, 물은 장애를 만나면 그 세력을 몇 배로 합니다. 그래서 물의 힘을 인위적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의 힘을 이기려 하는 것은 자연의 힘을 인간의 힘으로 이기려 하는 짓처럼 어리석은 짓입니다. 반드시 자연의 힘에 의해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넷째, 물은 스스로 맑으려 하고 다른 것의 더러움을 씻어줍니다. 맑고 더러움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아니 더러운 것도 맑게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째, 물은 넓은 바다를 채우고, 때론 비가 되고 구름이 되고 얼음이 되기도 하지만 그 성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본래 자기의 본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자성(無自性)입니다. 우리도 물이 주는 이런 가르침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에서 배워야 합니다. 물처럼 살려고 해야 합니다. 물처럼 맑아지려고 해야 하고, 스스로 움직이면서 다른 것들을 살리는 힘이 되어 살려고 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까지 맑게 만들어 함께 가려고 해야 하고 자기 본성을 잃지 않으며 살려 해야 합니다.
《노자》에서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습니다. 물은 천지의 온갖 생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는 일이 없으니 이것이 최상의 선이요, 도(道)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물은 낮고 더러운 곳에 스스로 위치를 정하고 있습니다. 그 낮고 더러운 곳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이므로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세상에서는 이익을 가지고 다투고 경쟁합니다. 그 경쟁이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로 무장한 채 극단화되어 있는 것이 지금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그 경쟁에서 강자의 자리에 앉아 이익을 서로 나누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이 주류가 되어 이 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남과 다투고 경쟁하여 이로움을 주고받는 것은 선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물에서 배운 사람, 물같이 사는 사람은 《노자》에서 말하는 것처럼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합니다.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물의 속성인 것처럼 그들도 남을 이롭게 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장일순 선생은 그게 “물은 주(主)와 객(客)이 따로 없기 때문, 아상(我相)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관자(管子)》 〈수지(水地)〉 편에서는 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물이라는 것은 땅의 피(血)요, 기(氣)다. 그것은 우리의 몸에 근육과 혈맥이 있어 모든 것을 소통시키고 흐르게 해 주는 것과도 같다. (……) 대저 물은 부드럽고 유약하여 깨끗하기 때문에, 인간의 더러움을 씻어주기를 좋아하니, 인자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깊은 물을 쳐다보면 검푸르지만 손바닥에 떠서 보면 무색투명하다.
이것이 물의 청순하고 정미로운 성질이다. 물을 됫박에 잴 때 위를 고르는 막대기를 쓰지 않아도, 그것은 됫박에 차면 스스로 멈춘다. 이것이 물의 바른 미덕이다. 물은 차이가 있을 때는 흐르지 않는 법이 없다. 그러나 평균에 이르게 되면 스스로 멈춘다. 이것이 물의 의로움이다. 사람은 한결같이 위로 가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물은 자기 홀로 항상 밑으로 간다. 이것이 물의 겸양의 미덕이다. 낮춤이라는 것이야말로 도가 깃드는 곳이요, 왕자의 그릇이다. 물은 진정코 항상 낮은 곳으로 모이는 것이다.
수평이야말로 모든 형량의 으뜸이다. 물의 무색이야말로 모든 색깔의 바탕이다. 물의 담박함이야말로 모든 맛의 중용이다. 그러므로 물이야말로 만물의 기준이며, 모든 생명을 살리는 담박한 체액이며, 모든 시비와 득실의 바탕이다. 그러하므로 물은 채우지 아니함이 없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물은 하늘과 땅에 가득 차며, 만물 어느 것에도 깃들지 아니함이 없고, 쇳덩이 돌바위에도 생하지 아니함이 없고, 모든 생명을 활성화시키지 아니함이 없다.
―《관자(管子)》, 〈수지(水地)〉 편(김용옥 역) 중에서
물을 얼마나 경배하고 중시했는가를 아주 잘 보여 주는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에 대한 고대 동양인의 우주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물을 신처럼 성스럽게 받들고 그 앞에 머리를 숙였던 것입니다.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생명의 피요 기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생명이 거기서 나고, 그 물을 통해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에서 어질고, 청순하고, 바르고, 의로운 삶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처럼 겸손해져야 하고 중용의 덕이 있어야 하며, 거기에 도가 있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물처럼 차면 스스로 멈출 줄 알아야 하고, 위로 가기보다 밑으로 가는 삶의 자세를 물에서 배우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물에서 배우려 하지 않고 물에서조차 이익만을 취하려 하는 이들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 속물화되었습니다. 속물의, 속물에 의한, 속물을 위한 정치를 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탐욕의, 탐욕에 의한, 탐욕을 위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멀쩡한 강을 수로로 만들어 배를 띄우겠다는 발상도 개발 이익으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개발업자의 이익과 재벌의 이익을 채워주는 토건정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16개의 보에 가두어 놓는 많은 물이 아니라 맑은 물이 필요합니다. 물은 보에 갇히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썩어가는 물이 아니라 깨끗한 물이 필요합니다. 배를 띄울 수로가 아니라 생명의 강이 필요합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처럼 “물이라는 것이야말로 만물의 어미”입니다. 만물의 어머니를 죽이는 것은 패륜입니다. 강을 죽이는 것은 악업을 짓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멈추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멈추어야 한다고 문수 스님은 몸에 불을 지르셨습니다. 몸을 태워 소신공양을 해서라도 생명에 대한 살육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외치시는 겁니다. 이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부처님께 바치기로 언약한 생애를 강을 위해,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얼마나 절박하면 소신의 길을 택하셨겠습니까? 탐욕에 눈이 먼 속물들의 행태가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막막하였으면 이런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어리석고 어리석은 무리들은 이렇게 부르짖어도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스님의 죽음을 외면하거나 모른 척할 겁니다. 가능하면 감추려고 하고 보도가 되지 않게 하려는 장난만 하려 들 겁니다. 위정자 누구도 진심으로 스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반성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청정한 스님 한 분이 이렇게 죽음으로 항거해도 눈부신 샹들리에 등불 아래 재벌과 권력의 화려한 건배는 이 밤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도종환 / 시인
[격월간《유심》2010년 7/8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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