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맑은 눈은
성종화 시집 / 문학사계 刊
문학을 외면하고 시심詩心을 잃은 채 살아오기를 50년이다. 50년이면 짧지 않은 한 사람의 생애가 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보다 더 짧은 생애를 마감하면서도 훌륭한 시를 남기고 간 시인들이 이 땅에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살아오던 내가 어느 날 다시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나 자신조차도 전혀 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시를 쓴다는 이야기가 황당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 동안에 나는 세속에 젖어버린 시정인市井人이 되어 있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와 부딪치게 된 시의 세상은 너무나 변하여 있었다. 흡사 비문명사회에서 문명사회로 돌아와 모든 것이 낯설고 달라 보이는 바로 그것이었다.
시가 널려 있는 난전亂廛 구경을 하면서 느낀 바는 주지적이고 상징시로서 관념의 포장이 단단히 되어 있는 작품들뿐이라는 점이었다. 하나같이 난해하였다. 수요가 없는 시장에 양산된 상품만이 점포마다 지천으로 가득가득 쌓여 있는 그런 시장이었다. 처음부터 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는 시장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시의 세상 구경을 하면서 나는 외로운 나의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하여야 했다. 절필할 당시의 10대 후반 순수시를 바탕으로 한 사고와 눈으로 오늘의 현대시를 감내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며.나에게는 가혹한 주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나에게 지난 50년의 기간은 나의 시력詩歷으로 말하자면 휴면기간이 아니고 시작詩作의 진공상태에 해당되는 기간이라고 하겼다.
나는 아무도 거들떠 보아주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절필할 시점의 시심으로 다시 돌아가 시를 쓰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이런 나의 시를 지금의 시의 시장에서 과거 회귀라고 이단시하고 무시해도 참고 묵묵히 써 나가기로 마음 작정을 하였다.
이러한 내 시를 옛정을 거절 못하여 서문과 발문을 써주신 허유, 김종원 형, 그리고 바쁘신 중에도 시평을 기꺼이 해 주신 김봉군 교수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 성종화, 책머리글 <자서自序> 중에서
모더니즘과 전통 지향의 시풍이 대세였다. 20세기 중엽 한국 시의 경향 말이다. 그 시대 끝자락에서 성종화 시인은 전국에 문명文名을 날린 문학 소년이었다. 20세기 후반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체를 해체하며 대중주의 문화를 이끌었다. 산업화된 도시 문명 이후 디지털 문화가 빚은 시대적 징표였고, 21세기 초반 지금의 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권 안에 있다. 이미지즘과 주지주의시, 사회시, 도시시, 해체시가 '머리' 와 '의지' 를 자극하고 개인주의적 상상력의 쇄말주의가 시의 영토를 지배하여 왔다. 생태주의 시가 자연성 회복을 절규의 어조로 말하지만, 사회주의 시의 '웅변떼' 처럼,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으로 인해 시대 한계성에 부닥쳐 있다. 우리 시단에서 자연 서정의 가뭄 현상은 심각하다.
― 김봉군(문학평론가·카톨릭대학교 명예교수), 평설 <디지털 시대에 만나는 서정의 고향> 중에서
- 차 례 -
시가 곧 그 인간임을_허유
자서自序
1. 봄이 오는 산
춘신春信
조춘旱春
산수유 꽃
백목련白木蓮
진달래꽃
오고 가는 봄
들 찔레꽃
봄이 오는 산
감나무
초여름의 풍경
나그네
고향의 소녀
노전암 가는 길
천성산 가는 길
해변의 여인
초가을
이 가을에 내가 고향에 가서
만추晩秋
송추送秋
가을밤
고향의 겨울 강
2. 월아산 가는 길
모옥芽屋
유유悠悠
담소潭沼
무료無聊
한일閑日
월아산 가는 길
귀로
망매亡妹
한식 일에
성모省墓
고향 가는 길
운봉산을 오르며
유명幽明
재실齋室의 밤
밤을 치면서
강나루를 지나가며
비상飛翔
가람伽藍
출가
세월
흔적
댓잎 치는 할아버지
3. 나목의 독백
모래톱에서
사상事象
댓잎 소묘
나목의 독백獨白
세모歲暮(1)
세모歲暮(2)
비오는 날
산(1)
산(2)
산 버섯
겨울 산(1)
겨울 산(2)
서편제
새벽
나는 한 그루 참나무
부지不知
잃어버린 풍경
침술원鍼術院에서
4. 목월이 가고
이 새벽에
아침 새
시를 쓰는 아침
그런 시를 쓸 수 없을까
아름다움이란
말 말 말
노랑머리
목월木月이 가고
둥지
고라니(1)
고라니(2)
눈물 젖은 눈으로
시집살이
대춘待春
오수午睡
소녀
사모思慕
발걸음
오두막
섬진강을 지나며
여운餘韻
수영만에서
광안리
그때 고향을
첫 발령지의 추억
홍도야 우지마라
가을밭에 서서
평설 | 디지털 시대에 만나는 서정의 고향_김봉군
발문 | 습작 반세기 만의 귀향_김종원
책 뒤에 |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_성종화
[2010.5.31 초판발행. 150페이지. 정가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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