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때가 이르니
최은하 시집 / 밝은 내일 刊
하늘 아래서 생명을 점지 받은 것들은 모두가 나름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봐도 무방할 줄로 안다. 그러면 여기 시간이란 것은 누가 무엇 때문에 설정해 놓고 또 그 규격에 갇혀 지내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그 시간이라는 화두를 놓고 나대로 헤아려 문제와 해답을 탐구해 오고 있다. 그러나 여태껏 시원한 답안은 명확치가 않다. 다만 사람의 시간은 약정된 제 역량을 알아차려 최선을 다하려고 한 가설(?)이지 않을까 싶을 따름이다.
꼭 10년 전에 시전집을 출간하고 나 스스로 약정한 것이 있었다. 열심을 다하여 3년마다 소출을 거둬 내어 보자고 한 것이었는데 이번까지는 이행한 셈이니 다행이라고 자답한다. 무슨 3년이라는 기간도 그렇고 또한 얼마만큼의 알곡다운 작품일까도 상당히 문제가 되는 걸 표백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한 켠으로 그 같은 전제랄까, 표상을 걸지 않고 그냥 지내오는 일상이었다면 오늘날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가상해볼 때, 후- 한숨이 나올 것임에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래서 나로선 감히 다행이란 말을 떠올려 보는 마당이다. 약정의 10년래 그런대로 이행된 것을 두루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 다음 차례는 솔직히 두렵다고 자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언제나 심기일전이란 좋은 말도 있긴 하지만.
드디어 우리에겐 언제일지라도 때(약정의 시한)는 오고 갈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맞춰, 아니 따라서 제 몫의 역량이 분명히 측정되겠지.
거기 시의 감동도 오직 시로 남을 것임을 새삼 짚어지고 익혀진다. 오직 그 진실을 위해 곁눈 팔지 않고 감격 안에서 여생하려 한다. 무슨 사조라거나 시 운동 따위는 그런대로 건너다보면서.
이번 시집 제 5부의 영중(英中) 번역시는 그 동안 모아두었던 것을 정리한 것이다. 여기 타자를 맡아준 장손녀 송화(松花)가 대견하기만 하다.
― 최은하, <머리말> 중에서
- 차 례 -
머리말
제1부 물방울 속 빛나는 소릿결
드디어 때가 이르니
그럼자 지우기
물방울 속 빛나는 소릿결
바람과 술래
도시의 솟대
강물이 이르는 말
제 각기(各己) 떠나는 자리
꽃은 은유법으로
남국의 하늘 가장자리
우리는 지금 귀한 손님
겨울 담쟁이덩굴
달빛은 강물에 내리비추고
눈부신 날개 휘저어
사는 날까지는 안녕
석순(石筍)이 자라는 시간을
제2부 노을이 짙을 때면
길 가 풀꽃 한 송이
늦가을 저녁 무렵
봄비 그치고
연꽃밭에서
노을이 짙을 때면
덕유산 구상나무
가을밤 강가에서
꽃피는 달밤
오늘도 강가에 앉아
단풍
이 봄날에
눈을 맞으며 누군가를 부르며
입동 지나 핀 장미
바람결에 풀꽃 한 떨기
지는 꽃 옆에서
제3부 그리움의 집을 짓고
석양을 마주하며
발길 닿는 곳이면
길을 내어 가야지
상여길
풀꽃반지
그리움
남산에 올라
요 근래(近來)
그리움의 집을 짓고
눈 내리는 마을
솔발길 솔바람으로
대전역 안개
장독대 가장자리 맨드라미로 피어올라
밤이 깊어갈수록
이제 무지개다리 놓으소서
제4부 꽃과 바람소리
별과 함께 살고지고
하얀 길
꽃향기로 마주하려
고향마을 장승 앞에서
폭설 속에서
꽃과 바람소리
하늘로 머리 향함은
되살린 거문고 가락
고향 뒷산머리 오르며
저 하늘엔 영광, 이 땅위엔 평화
우리 두만리(斗滿里)
별(2)
손가락 끝에서
가을산 계곡에서
고향마을 다박솔
제5부 번역시(飜譯詩)
[영역시(英譯詩)]
To a Stuffed Owl
새
The creation wind
태초의 바람
The creation wind
In this Autumn
이 가을엔
Flame
불꽃
Before the candlelight
촛불 앞에서
The Beginning and the End
시종(始終)
My Empty House
내 번 집
I Will Go into the Woods
숲으로 가리
Mother on a Rainy Day
비 오는 날의 어머니
[중역시(申譯詩)
미루나무 바람소리
구름바다 위에서
雨天的母親
비 오는 날의 어머니
到森林去
숲으로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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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초판발행. 153페이지. 정가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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