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 시적 소재에 대한 인식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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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01월22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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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소재에 대한 인식의 오류

[조세용]

1. 문제의 제기

시인은 우리들 생활 주변에  산재(散在)해 있는 수많은 시적 소재들 가운데 특정한 소재를 선택해서 그 속에 시인의 무한한 상상력과 사상을 용해(溶解)시켜
▲ 조세용 시인
잘 정제되고 조탁(彫琢)된 시어(詩語)를 통해 비로소 그 제재(題材)를 주제로 발전시킨다. 이처럼 시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적 소재가 시인의 착각이나 식견 부족으로 인식의 오류를 범했다면, 그 작품은 과거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었던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때까지 우리나라 시문학사(詩文學史)에서 그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던 아래의 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에 대한 깊은 천착(穿鑿)과 시 창작에 있어서의 올바른 지표를 설정하고자 한다.
 
1) 강낭콩꽃 빛깔의 문제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아리땁던 그 蛾眉/높게 흔들리우며 / 그 石榴 속 같은 입술 / 죽음을 입마추었네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 흐르는 강물은 / 길이길이 푸르리니 / 그대의 꽃다운 혼 / 어이 아니 붉으랴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빛 꽃보다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위의 시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1924년 8월 22일에 출간된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시집 『조선(朝鮮)의 마음』에 수록된 <논개(論介)>라는 제목의 시다.

임진왜란 당시 촉석루(矗石樓)에서 만취한 왜장 케다니(毛谷村六助)를 껴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한 진주(晉州) 기생 논개의 불타는 애국적 정열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남강의 물결에 비교법과 대조법을 써서 논개의 애국적 충성심을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마음’으로 형상화하여 노래하였다. 이 시에서 필자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강낭콩꽃’이라는 시적 소재가 과연 ‘푸른 색’이냐 하는 것이다.

2) 두견이(杜鵑-)와 소쩍새(=접동새)의 동일시 문제

고려 가요가 탄생할 무렵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시가문학이나 현대시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극적 정서를 내포하고 있는 시적 소재로서의 ‘두견이’와 ‘소쩍새(=접동새)’는  아래 2. 몸말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조류학상으로나 보나 그 생김새나 전래 민담으로 보나 전혀 다른 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두 새는 오늘날까지 같은 새의 다른 명칭의 새로 동일시되어 혼동의 오류를 범하여 왔으니, 그 예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고려 가요(歌謠)의 예
                           
   
   

위 작품은 고려 18대왕 의종(毅宗, 1146-1170) 때 정서(鄭敍)가 유배지 동래(東萊)에서 임금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향가(鄕歌)계 여요(麗謠)인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 <정과정(鄭瓜亭)> 전문이다. 이 작품에 출현하는 시적 자아인 ‘접동새(=소쩍새)’가  중국 촉(蜀)나라 왕이었던 두우(杜宇)가 그의 신하 별령(鼈靈=令, =별랭(鼈冷)에게 선위(禪位)하고 나서 이내 후회하고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산(西山)에서 비참하게 죽은 두우의 화신인 ‘두견이’( 2. 몸말 참조)와 동일시되어 혼동의 오류를 범했다. 

이 같은 사실의 방증적 자료는 고려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그의 문집인 『익재난고(益齋亂藁)』 소악부(小樂府)에 위의 <정과정>을 아래와 같이 칠언절구의 한시로 한역(漢譯)해서 수록할 때,  ‘소쩍새’와 같은 새인 ‘접동새’를 ‘두견이’의 별칭인 ‘자규(子規)’로 한역한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憶君無日不霑衣(님을 그리워하여 옷이 젖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
    政似春山蜀子規(봄날에 산속에 사는 촉나라의 자규와 비슷하구나)
    爲是爲非人莫問(사람들이여, 옳고 그름을 묻지 마오)
    只應殘月曉星知(다만 지는 달과 새벽별은 알겠지)

  
이처럼 ‘두견이’를 ‘접동새(=소쩍새)’로 잘못 인식한 오류의 사실은 조선조에까지 이어져 내려왔으니, 중종(中宗) 22년(1527)에 출간된 예산본(叡山本) 『훈몽자회(訓蒙字會)』상권 9에 ‘鵑 졉새 견 俗呼 杜- 又呼寒火虫’이라고 기록된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나) 고시조의 예



                               

 다) 현대시의 예

  <작품 1>
  눈물 아롱아롱/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삼만리/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 다시 오진 못하는 巴蜀 삼만리 // 신이나 삼아 줄걸, 슬픈 사연의 /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메투리 /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는 새 / 차마 아니 솟는 가락눈이 감겨서 /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 그대 하늘끝 호올로 가신 님아.

*육날메(미)투리는 신 중에서는 으뜸인 미투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신발이었느니라. 귀촉도는 항용 우리들이 두견이라고도 하고 소쩍새라고도 하고 접동새라고도 하고 子規라고도 하는 새가 귀촉도.....귀촉도.....그런 발음으로써 우는 것이라고 地下에 돌아간 우리들의 祖上의 때부터 들어온 데서 생긴 말씀이니라.

  <작품 2>
  우리들의 봄은 / 온몸에 피 흘려 꽃피워도/캄캄한 밤 캄캄하게 / 소쩍새 소리로 애터지게 / 왼 산을 헤매며 / 핏빛 진달래로 피었다 / 핏빛으로 지는구나 // 아, 봄아 봄은 쉽게도 왔건만 / 봄맞이 임맞이 나갈 사람들의 마음은 / 이리 추워 문 열 수가 없구나 / 사람들의 봄은 / 올해에도 홀로 지는 꽃처럼 쓸쓸하고 / 흙바람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구나

위의 <작품 1>은 1930년대 생명파(生命派)의 거봉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귀촉도(歸蜀道)>의 전문이다. 치수(治水)의 공을 세운 별령(鼈靈=令, =별랭(鼈冷)에게 선위(禪位)했다가 이내 후회하고 복위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촉왕(蜀王) 두우(杜宇)의 화신인 ‘두견이( 2. 몸말 참조)’의 ‘피를 토하면서 우짖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시의 말미 각주(脚註)에서  미당은 ‘귀촉도(=자규, 두견이)’와  ‘소쩍새(=접동새)’를 동일시한 혼동의 오류를 범하였다.
 
<작품 2>은 1980년대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의 ‘고통스런 삶의 절박한 심정’을 주제로 한 <쉬운 봄>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도 위에서와 같이 슬픈 전설의 새인 ‘두견이’를 역시 ‘소쩍새(=접동새)’와 동일시하면서  혼동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2.  몸말

위에서 제기한 문제 중 1)의 ‘강낭콩꽃’의 빛깔은 과연 푸른 색일까? 
1590년 명(明)나라의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본초학 연구서인『본초강목(本草綱目)』권 24, 12쪽에 ‘큰 잎에 가는 꽃이 피는데 그 꽃의 빛깔은 홍색과 백색의 두 종류이다(大葉細花 花有紅白二色)’라 기록되어 있고, 또한 199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권 1, 392쪽에 ‘잎겨드랑이에서 꽃송이가 나와서 백색, 자색, 홍색 등의 꽃이 달리는데..........’라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 보아, 강낭콩의 줄기나 잎은 푸른 초록색이지만, 강낭콩꽃의 색깔은 푸른 초록색이 아니고, 백색, 자색, 홍색의 세 가지 색깔인 것이다. 따라서,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이라는 싯구는 시적 소재에 대한 작자의 착각이나 무지에서 온 커다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위에서 제기한 문제 중 2)의 ‘두견이’와 ‘소쩍새(=접동새)’를 동일시한 혼동의 오류는 왜 발생했을까? 

‘두견이’와 ‘소쩍새(=접동새)’는 조류학상으로나 보나, 전래 민담상으로 보나, 또 그 생김새로 보나, 우는 소리로 보나, 전혀 다른 새다. ‘두견이’는 두견이과(科) 새로 생김새가 유선형의 예쁘장한 뻐꾸기와 비슷하나, 몸집이 뻐꾸기보다 조금 작다. 5월경 동남아시아 쪽에서 날아와 9월경에 다시 남하한다. 또한 이 새는 노출되지 않은 채 산중턱이나 우거진 숲속에서 사는 비교적 보기 드문 여름 철새다(중국의 새 백과사전인『금경주(禽經注)』에는 ‘밤부터 새벽까지 운다(夜啼達旦)’라고 야행성(夜行性)의 새로 기록되어 있고, 『본초강목』에는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애절하게 운다(晝夜不止 其聲哀切)’라고 주행성(晝行性)과 야행성을 겸한 새로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이우신이 지은 『우리 새 소리 백 가지(현암사, 2007)』에는 ‘날 때도 울고 밤이나 낮이나 운다’라고 역시 주행성과 야행성을 겸한 새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조류학자 윤무부 경희대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이 새는 4월말-5월초인 번식기에만 간혹 밤에 울기도 하지만, 주로 낮에 우는 주행성 여름 철새‘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컷은 ‘홀딱 자빠졌다’, 또는 ‘쪽박 바꿔쥬우’, 혹은 ‘키윳 쿄쿄쿄’하고 울고, 그 후에 ‘삐 삐 삐애’하고 예리한 소리로 울며, 암컷은 그냥 ‘삐 삐 삐이’하고 운다. 또한 이 새는 직접 자기 둥지를 틀지 않고, 휘파람새, 굴뚝새, 산솔새 등의 둥우리에 1개의 알을 낳아 포란(抱卵)과 육추(育雛)를 위탁시키는 이른바 얌체 새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정신문화연구원, 1991)』권 7, 392쪽 참조,『한국의 조류(원병오, 교학사, 2005)』227쪽 참조).
                           
이 ‘두견이’에 관한 중국의 전래 민담(民譚)을 중국 촉(蜀)나라 사서(史書)『성도기(成都記)』에 기록된 원문과 번역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두우(杜宇)는 두왕(杜王)이라고도 부르며 하늘에서 내려왔다. 또한 망제(望帝)라고도 하는데 농사일을 무척 좋아하였다. 당시 형주(荊州) 사람 별령(鼈靈)이 죽어 그 시신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  문산(汶山)에 이르러 다시 살아나 망제를 만나게 되었다. 망제는 그를 재상으로 삼고 개명(開明)이라 불렀다. 그때 마침 무산(巫山)에 강물이 막혀 사람들은 홍수의 고통을 당하였다. 이에 개명은 물을 소통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 망제는 이로 해서 그에게 임금 자리를 선양(禪讓)하였다. 그리고 망제는 죽어 그 혼이 새가 되었는데 이를 두견(杜鵑), 또는 자규(子規)라 부른다.

(杜宇亦曰杜王 自天而降稱望帝 好稼穡 時荊人鼈靈死 其尸泝江而上 至汶山下復生見望帝 望帝因而爲相 號開明會巫山江壅 人遭洪水 開明爲鑿通流大功 望帝因以其位禪之 望帝死其魂化爲鳥 名曰杜鵑 亦曰子規)

한편, 송(宋)나라 초엽에 출간된 지지(地誌)『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의 기록을 보충적으로 살펴보면, ‘뒤에 복위하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서 두견이가 되었다(後欲復位不得 死化爲鵑)’라고 기록되어 있고, 진(晉)나라 상거(常璩)가 지은 사서『화양국지(華陽國志)』권 3, 「촉지(蜀志)」에는 ‘재상인 개명(開明=별령(鼈靈=令, 冷)이 옥첩산(玉疊山)을 무너뜨려 수해를 제거하였다. 망제는 마침내 정사(政事)를 그에게 위임하고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선위(禪位)한 것처럼 그에게 선위하고 서산(西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는데 때마침 2월이라 자견(子鵑=두견(杜鵑)이 슬피 우는 고로, 촉나라 사람들이 자견의 우는 소리를 슬퍼하였다(相開明 決玉疊山以除水害 帝遂委以政事 法堯舜禪授之義 遂禪位于開明帝 升西山隱 時適二月子鵑鳥鳴 故蜀人悲子鵑鳥鳴也)’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망제가 별령(鼈靈=令, 冷)에게 선위할 때 심사숙고하지 않고 경솔하게 양위(讓位)하였다가는 이내 후회하고 복위 운동을 벌이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산에서 죽은 것 같다.

또한, 중국의 『조여사료(鳥與史料)』,『본초강목』등 여러 문헌 속에 나오는 ‘두견이’의 별칭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자규(子規), 자견(子鵑), 제결(鶗鴂=稊鴂, 鵜鴂), 두우(杜宇), 두견(杜鵑), 두왕(杜王), 두주(杜主), 두혼(杜魂), 두백(杜魄), 촉혼(蜀魂), 촉혼조(蜀魂鳥), 촉백(蜀魄), 촉조(蜀鳥), 원조(怨鳥), 원금(寃禽), 망제(望帝), 망제혼(望帝魂), 불여귀(不如歸), 사귀(思歸), 최귀(催歸), 전견(田鵑), 사표(謝豹), 양작(陽雀) 선객(仙客), 주연(周燕), 시조(時鳥)’ 등 약 30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의 명칭으로는 ‘두견(杜鵑)’에 접미가 ‘-이’가 첨가된 파생어 ‘두견이(杜鵑-)’, ‘새’가 합성된 합성어 ‘두견새’, 순수 고유어 ‘주걱새’, ‘임금새’, 우리나라에서 조어(造語)한 한자어 ‘귀촉도(歸蜀道=途)’(이는 중국 문헌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조선조 말기에 생성된 잡가(雜歌)나 개화기 시조에 최초로 보인다.)가 있다.

한편, ‘소쩍새(=접동새)’는 조류학상 올빼미과 새로 생김새가 험상궂게 생긴 부엉이나 올빼미와 유사하게 생겼으며, 올삐과 새 가운데 가장 작다. 이 새는 온대 지역과 열대 지역에 서 번식하며, 북부 번식 집단은 겨울에 열대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역에 낮은 산, 산림, 공원의 나무구멍에 둥지를 틀고 드물게 살고 있는 텃새와 4월경에는 동남아 지역에서 날아와 9월경에 남하하는 여름 철새로 구분된다. 이 새는 ‘밤에는 날면서 활동하고, 낮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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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사는(夜飛晝伏)(『본초강목』권 49, 1482 참조)’ 야행성 새로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우는데 수컷은 ‘솟쩍 솟쩍’, 혹은 ‘솟쩍다 솟쩍다’하고 울고, 암컷은 ‘과과’, 또는 ‘괏괏’하고 운다. 이 새는 5-6월경에 나무구멍 속에 4-5개의 알을 낳으며, 포란은 암컷이 전담한다(『한국문화 대백과사전(정신문화연구원, 1991)』권 12, 787쪽 참조, 『한국의 조류(원병오, 교학사, 2005)』232 참조, 『우리 새 소리 백 가지(이우신, 현암사, 2007)』23쪽 참조, 윤무부 교수 증언 참조).

‘소쩍새’는 남한 지역에서 즐겨 부르는 명칭으로  다음과 같은 전래 민담이 있다.
                                
옛날 옛적에 며느리를 몹시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있었는데, 며느리를 굶겨 죽이려고 아주 작은 솥에다 밥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며느리가 먹을 밥을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결국 며느리는 굶주려 죽었고, 죽은 며느리의 넋은 새가 되어 ‘솥이 적다 솥이 적다’하고 시어머니를 원망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이후 남한에서는 ‘솟쩍다 솟쩍다’하고 울면 그 해에 풍년이 들고 ‘솟쩍 솟쩍’하고 울면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이우신,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새 백 가지』(현암사, 1999) 참조).
                                
이 새는 ‘어미 새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고 성장하다가 다 자라면 어미 새의 눈알을 쪼아먹고 날아가 버리는(주진(周鎭)의 『조여사료(鳥與史料)』 187쪽 참조)‘ 불효조요, 또한 ‘다른 새의 새끼를 잡아 먹어 불행을 가져다 주는 치효(鴟鴞)(『시경(詩經)』빈풍(豳風) 참조)’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화조(禍鳥), 괴조(怪鳥), 악조(惡鳥’의 뜻인 ‘괴복(怪鵩), 휴류(鵂鶹)’로 불려 왔으며, 그 밖에 ‘치휴(鴟鵂), 괴치(怪鴟), 노면(老免), 구각(鉤鵅), 기기(鵋鶀), 각치(角鴟)(『본초강목』권 49, 1482 참조)’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언체(禽言體) 한시에서는 ‘솥 작다’의 한자 훈차어(訓借語) ‘정소(鼎小)(정민(鄭玟), <한시 속의 두견이와 소쩍새>『한국한시연구』62-71쪽 참조)’로 썼고, 국문 명칭으로 의성어 ‘솟젹다 솟젹다, 솟젹다, 젹다’ 등으로 불렸다.

이 ‘소쩍새’와 같은 뜻의 낱말로 ‘접동새’가 있다. 이 ‘접동새’는 북한 지역에서 즐겨 쓰는 표준어로 방언에서 ‘접둥이’ 또는 ‘접이’라고도 한다. 이 ‘접동새’는 ‘소쩍새’와는 다른 다음과 같은 독자적인 전래 민담이 있다.

옛날 옛적에 어느 부인이 아들 아홉에 고명딸 하나를 낳고 죽었다. 그런데 후처로 들어온 여자가 이 고명딸을 몹시 미워하였다. 딸이 장성해서 시집 갈 무렵 혼수를 다 장만해 놓은 채 딸이 갑자기 죽었다. 아홉 오라버니들이 슬퍼하면서 여동생의 혼수를 마당에다 태우고 있는데 계모가 나타나서 태우지 못하게 방해하였다. 이에 화가 난 아홉 오라버니들이 그 계모를 불속에 던져 태워 죽였다. 죽은 계모는 까마귀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렸고, 죽은 누이동생은 접동새가 되어 밤만 되면 아홉 오라버니들을 찾아와 울었다고 한다. 이 새가 밤에만 나타나서 우는 것은 낮에 나타나면 계모의 화신인 까마귀한테 물려 죽을까 겁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권 19, 684쪽 참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두견이’와 ‘소쩍새(=접동새)’는 조류학상으로 보나, 전래 민담상으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전혀  다른 새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두견이’와 ‘소쩍새(=접동새)’는 전혀 다른 새임에도 불구하고 고려가요 <정과정>을 비롯해서 조선조의 시조,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이 두 새를 동일시한 혼동의 오류를 범했으며, 심지어는 조선조 초기 한자자전인 『훈몽자회』에서의 ‘鵑 졉새 견 俗呼 杜-’이라 한 풀이말과 현용 남한의 국어사전이나 북한의 국어사전에서조차 이 두 새를 동일시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 두 새를 동일시한 혼동의 오류 현상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에 필자는 그 원인을 다음의 세 가지로 집약해 보고자 한다.

첫째, 촉왕(蜀王) 두우(杜宇)가 별령에게 왕위를 선양하고 나서 다시 복위를 꾀하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산(西山)에 숨어 살다가 죽은 두우의 화신 ‘두견이’의 상징적 정서인 한(恨), 비애, 비운(悲運) 등의 정서와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살다가 죽은 ‘소쩍새’의 한, 비애, 비운 등의 정서나, 계모에게 구박을 받고 살다가 결혼도 못하고 죽은 ‘접동새의 한, 비애, 비운 등의 정서가 일맥상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두견이’는 조류학상으로 보나, 전래 민담상으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우는 소리로 보나,  ‘소쩍새(=접동새)’와는 전혀 다른 새임에도 불구하고, <정과정>의 작자 정서는 ‘접동새’를 ‘두견이’와 같은 새로 오인하고 제재화(題材化)했으며, 또한 익재 이제현은 이 같은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증명이라도 하듯 <정과정>을 칠언절구의 한시로 한역할 때, <정과정> 작품에 출현하는 ‘접동새(=소쩍새)’를 두견이의 별칭인 ‘자규(子規)’로 오역(誤譯)함으로써 그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두견이‘와’ ‘접동새(=소쩍새)’가 같은 새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오류의 시원(始源)이 되는 우리나라 시가(詩歌) 작품은 고려 중기 때 출현한  <정과정>이라 추정된다.

셋째, 또한 조선조 중종 22년(1572)에 출간된  예산본『훈몽자회』상권 9에서 ‘鵑 졉새 俗呼 杜-’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어 조선조에서도 ‘두견이’와 ‘접동새(=소쩍새)’가 같은 새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오류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한 실정이다.

3. 맺음말

이상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시가(詩歌)에 등장하는 제재화된 시적 소재들이 의외로 진실과 다르다는 사실을 규명해 보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첫째,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논개(論介)>에서의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의 싯구에서의 시적 소재 ‘강낭콩꽃’의 빛깔은 녹색 계통의 ‘푸른 색’이 아니고, ‘백색, 자색, 홍색’의 3가지 색임을 알 수 있었다.

둘째, 고려 때 향가계 여요 <정과정>에서의 ‘접동새’는 ‘소쩍새’와 같은 뜻의 다른 명칭이며, 치수(治水)의 공으로 별령(鼈靈=令, 별랭(鼈冷)에게 선위(禪位)하고 나서 다시 복위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촉왕(蜀王) 두우(杜宇)의 화신인 ‘한(恨), 비애, 비운(悲運)’의 새인 ‘두견이’와는 조류학상으로 보나, 전래 민담상으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우는 소리로 보나, 전혀 다른 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과정>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의 여러 문학 작품에서 ‘두견이’와 ‘소쩍새(=접동새)’를 동일시한 혼동의 오류를 범하게 된 원인은 다음의 세 가지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1) 고려 중기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로 널리 사람의 입에 회자되어 오고 있는  <정과정>의 작자인 정서(鄭敍)는 ‘접동새(=소쩍새)’를 ‘두견이’와 같은 새로 잘못 인식하고 <정과정>에서 제재화하였다고 생각되며, 또한 고려말 익재 이제현이 이 <정과정>을 한역(漢譯)
할 때,  ‘접동새’를 ‘두견이’의 별칭인 ‘자규(子規)’로 잘못 한역하였다.
                                       
2) 조선조 중종(中宗) 22년(1527)에 출간된 한자자전 예산본『훈몽자회(訓蒙字會)』상권 9에 ‘鵑 졉새 견 俗呼 杜- ’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3) 복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은 촉왕의 넋인 ‘두견이’의  비극적 정서와 시어머니 구박(또는, 계모의 구박) 때문에 죽은 ‘소쩍새(=접동새)’의 비극적 정서가 유사하였다.

넷째, 현용 남북한 국어사전에서 ‘소쩍새(=접동새)’와 ‘두견이’를 구분하지 않은 채 같은 새로 동일시한 혼동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개탄하며 하루 빨리 올바르게 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섯째, 모름지기 모든 시인들은 시적 소재를 선정하여 제재화함에 있어 이 같은 오류를 범해선 안 되며,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선 그 소재에 대한 면밀(綿密)한 조사와 충분한 고증(考證)을 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불후(不朽)의 명시(名詩)란 소재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인식을 아름다운 언어로 분칠하여 그럴 듯하게 도금(鍍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섯째, ‘ ‘두견이’는 밤부터 울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우는 야행성 새인가? 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는 야행성과 주행성을 겸한 새인가? 아니면 간혹 번식기에는 밤에 울기도 하지만 주로 낮에 우는 주행성 새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보다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 

중국의 조류 백과사전인 『금경주(禽經注)』에 ‘일명 원조(怨鳥)라고도 부르는 두견이는 괴로운 듯 피를 흘리면서 우는 것을 그치지 않고 밤을 새워 새벽까지 울며, 그 흘린 피는 초목까지 적신다(一名怨鳥苦啼血不止 夜啼達旦血漬草木)’라고 기록되어 있어 마치 이 새가 야행성인 새로 인식케 하고 있고, 또한 중국 명대(明代) 본초학(本草學) 연구서인 『본초강목』에는 ‘봄에는 저녁이 되면 곧 울기 시작하여 밤을 새워 새벽까지 울며, 울 때는 반드시 북쪽을 향해 운다. 여름에는 더욱 심하게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울며 그 소리가 애절하다(春暮卽鳴 夜啼達旦 鳴必向北 至夏尤甚 晝夜不止 其聲哀切)’라고 기록되어 있어 마치 이 새가 야행성과 주행성을 겸한 새로 인식케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우리 새 소리 백 가지(이우신, 현암사, 2007)』에서도 ‘두견이는 날 때도 울고 밤이나 낮이나 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중국의 『본초강목』 기록과  동궤(同軌)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조류학자 경희대학교 윤무부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두견이’는 틀림없는 주행성 새이며, 그렇기 때문에 ‘두견이’는 주로 낮에 울며, 번식기(4월말-5월초)에만 간혹 밤에 울기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의 세 가지 상반된 기록과 주장은 앞으로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 하면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수많은 고시조, 한시(漢詩), 현대시에서 시적 제재화된 ‘두견이’는  ‘밤새도록 피를 토하면서 우는 야행성 새’로 노래되었기 때문이다.

■ 조세용
시인. 건국대 중원연구소장                

[수필집『가게 기둥에 立春』(새미 刊) 수록]




[ 조회수 5,460 ] [추천수 4]
 
조세용 시인
가게 기둥에 立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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