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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2월04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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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진주 학생 문학활동

정재필

1. 영남예술제와 한글 백일장

6.25의 전화(戰禍)가 군데군데 남아있는 1954년 2월, 그 무렵 학생들에겐 유일한 문학 공간이었던‘학원(學園)’이라는 잡지에 우연히 투고한 시가 입선 게재
▲ 정재필 시인
되면서 당시 진주중 3학년이던 필자의, 문학과의 끈질긴 인연은 시작되었다. 진주 시내에서 유일한 서점인‘진주서점’사장님께서 학교로 필자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고 하교 길에 들르니 축하한다며 당시에는 학생들이 좀체 가질 수 없었던 국어사전 한 권을 안겨 주셨다. 그 커다란 사전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필자는 무슨 유명한 시인이나 된 것처럼 가슴 뿌듯했고 어깨에 힘이 갔다.

같은 반은 아니지만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의 성종화 군이 2,3 개월 전에‘학원’에 시가 실려 필자보다 먼저 이런 영광을 누리고 있었던 것을 뒤에 알았다. 졸업을 앞둔 때라 문예반 담당 선생님이 교지를 만든다고 필자와 성종화 군의 습작 노트를 보자고 했고 나중에 교지가 나왔을 때 두 사람의 글만으로 도배가 되어 있어 아연실색했다.

졸업 후 필자는 진주사범으로 성종화 군은 진주고교로 진학해 헤어졌다. 그러나 학도호국단 행사라던가 영문(嶺文) 주최의‘논개문학의 밤’등 행사가 있을 때엔 학생 대표로 불려나가 시낭독도 하며 자주 만났다. 그리고 경쟁이라도 하듯‘학원’이나‘학생계’라는 잡지에 글을 발표하고 있었다.

당시는 6.25 직후라 학교마다 사정이 비슷해 겨우 프린트 등사물로 연간(年刊)의 교지가 연명(延命)되고 있었다. 진주고는 허유(시인.전 한국투자증권 사장), 민영희, 고영근(국어학자.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성종화(수필가.현 대광법무사법인 대표)를 중심으로‘비봉(飛鳳)’이, 진주농고는 정공채(시인.작고), 최근덕(현 성균관 관장)을 중심으로 ‘쌍백선(雙白線)’이, 진주사범은 최계림(소설가.작고), 허태유, 한만선(전 부산삼육초등학교장), 정재훈(시인.전 문화재관리청장), 최낙인(전 창원시 교육감), 필자를 중심으로‘두류봉(頭流峰)’이, 진주여고는 정혜옥(수필가.전 대구수필가협회 회장), 윤필선, 진숙자(수필가), 안병남(시인)을 중심으로 '새누리'가 간행되어 1년에 한 번 나오는 교지를 통해 간신히 서로의 필력(筆力)을 가늠할 정도였다.

6.25 직후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각 학교마다 이처럼 문학열이 꺼지지 않았던 것은 파성 설창수 선생님이 필생의 민족문화사업으로 일궈놓은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의 전신)의 분위기와 한글 백일장 때문이었으리라. 변영로, 이은상, 유치환, 구상, 모윤숙, 노천명, 김광섭, 이하윤, 이원섭, 김상옥 등 교과서나 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많은 시인들을 직접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고 또 한글 백일장에서는 각지에서 몰려든 많은 문우들과 글 솜씨를 겨루고 사귈 수 있었다.

1949년에 개최된 제1회 영남예술제 한글 백일장은 촉석루에서 열려 시부에는‘만추’라는 시제로 이형기(진주농고.시인.작고)가 시조부에는‘촉석루’라는 시제로 박재삼(삼천포고.시인.작고))이 각각 장원을 했다. 1950년은 6.25가 터져 건너뛰고 1951년 2회부터 한글 백일장은 폭격으로 불타 없어진 촉석루 대신 비봉루로 옮겨 열렸고‘남강을 보며’라는 시제로 부산의 송영택(시인)이 장원을 했다. 3회에는 이상일(경주출신)이 4회에는‘기원’이라는 시제로 정은모(진주여고)가 각각 장원을 했다.

1954년 5회 한글 백일장에는‘국화(菊花)’라는 시제로 장원 정혜옥(진주여고 3년), 차하에 성종화(진주고 1년)가 입상하면서 그들의 필력이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입증했다.

          화려한 정원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여기
          메마른 흙과 하늘이 통한 곳에
          조상이 물려준 절개를 외우며 섰습니다.
          하나의 넋두리 속에서 피는 화려한 의상이 아니기에
          더욱 가냘픈 생명이옵니다.

          내 조국은 찬바람 부는 언덕을 넘은 곳
          외로움은 가을 불나비처럼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나에게 노래를 주십시오.
          오월의 푸른 언덕은
          내가 지킬 언약은 아니라구요.

          가도 가도 바람은 불고 서리는 내리는데
          내일을 기다려 참아야만 하는
          서러운 전설 속에서 피는 국화

          나는 국화이옵니다
                     ― 정혜옥(진주여고 3년),  <국화>

2. 진주학생문학회 조직과 한글 백일장 전성시대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이듬해, 당시 진주농대에 재학중이던 하택준 형(수필가.전 국제신문 논설위원)의 사랑방에 진주농대 하택준, 김영환, 진주고 허유, 민영희, 고영근, 성종화, 진주사범 허태유, 한만선, 정재훈, 최낙인, 손상철, 필자, 진주여고 안병남, 최인자, 김옥순, 김정희, 이월수 등이 모여 진주학생문학회가 결성되었다. 그런데 그때 왜 진주농고가 빠졌는지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매주 돌려가며 작품을 발표하여 격론을 벌였고 그 열기(熱氣)가 끝내 사그라들지 않으면 떼를 지어 촉석루 곁의 파성 설창수 선생님 댁으로 몰려가 명쾌한 시비(是非)가림을 청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우릴 반갑게 맞아 격론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우리를 한 줄로 세워 유장(悠長)하게 흐르는 남강물을 바라보게 한 후 “약해, 많이 약해.”라며 두루뭉수리로 우리들의 성급함과 문약(文弱)함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이런 열기 탓이었을까, 그해 1955년 6회 영남예술제 한글 백일장에는‘자화상(自畵像)’이라는 시제로 장원 성종화(진주고 2년), 5위 허유(진주고 3년), 가작 손상철(진주사범 1년) 등 회원 3명이 입상했다. 아마 이 때가 백일장으로서는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황금시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학원문단’에서  내로라 하며 문명(文名)을 떨치던 전국 각지의 청소년 문사들이 대거 참여했고 심사위원들도 골머리를 앓았는지 장원, 차상, 차하로 입상자를 정하던 예년의 방법과는 달리 1위~ 5위로 입상자 수를 늘여 발표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 한 줄을 떠올리는데 사나흘을 끙끙대야 하는 무척이도 민한 필자로서는 한 시간 안에 시 한 편을 뚝딱 다듬어 내는 백일장 시에 대한 요령과 입맛이 떨어져  이 때부터 백일장 참가는 포기했다. 

대신에 백일장이 열리는 비봉루 현장에서 ‘학원’지를 통해 낯익은 많은 문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주 오현고의 김종원(시인.영화평론가), 마산고의 이제하(시인.소설가), 송상옥(소설가), 김성택(김병총.소설가), 주문돈(시인.전 한국화장품 이사), 부산 동아고의 한영탁(수필가,번역문학가.전 세계일보 국제부장,논설위원), 경남고의 김준오(문학평론가.전 부산대 국문학과 교수.작고), 김재성, 장승재(시인.전 포항문화방송 편성국장), 부산고의 김민부(시인.작고), 경남상고의 장병국(작고), 홍삼출, 박태문(시인.작고), 부산상고의 박천석, 권영근, 동래고의 박영진, 정두채(정두수.작사가)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몇몇은 필자의 집으로 데리고 와 밤을 새며 입상 및 낙선 파티를 함께 가진 것으로 기억한다. 

훗날 그 때의 분위기를 시인 김종원은 1950년대 학원문단에 오른 303인 시집 '시의 고향'(1989년 창조사 간)에서 '시의 고향, 학원문단'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전략>'학원'은 나의 시심을 키워준 시심의 꽃밭이자 신앙과 같은 안식처였다.그러기에 초면일망정 '학원'이라는 한 울타리에 있었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 우리는 무작정 즐거웠고 대견했다.

고3 때인 가을, 진주의 개천예술제에서 만난 이제하 김성택 허유 성종화 정재필 등이 바로 그런 예였다.그때 우리는 비봉루의 한글시 백일장에 참석했었다.경남 일대는 말할 것 없고 서울에서까지 모여든 이 예술제는 명실 공히 전국적인 행사로 인식되고 있었다. 백일장에 참여한 학생들의 면모도 만만치 않았지만, 서울에서 내려온 심사위원들 역시 김광섭 모윤숙 이하윤 등 그 이름이 쟁쟁하였다. <중략>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심사 결과가 나왔다. 장원 성종화(진주고) 2등 김성택(마산고) 3등 김종원(제주 오현고) 4등 이제하(마산고) 5등 허유(진주고) 순이었다. '학원문단' 출신들이 모두 상을 휩쓸었다. 모처럼의 기회를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이 고장 문우들의 초대로, 우리는 저녁 때 정재필(진주사범)의 집에서 신명난 축하의 밤을 가졌다.<후략>" 

3.불발탄으로 끝난 '한대림(寒帶林)'동인

이듬해 선배들이 졸업하고 나니 진주 학생문학회 모임도 시들해졌다. 대신에 졸업반이 된 성종화 군과 필자는 졸업 기념 2인 시화전을 갖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림은 영남예술제 회화부에 특선한 사범 동학년인 화양동 화백이 맡기로 했다. 필자의 집과 성종화 군의 자취방을 오가며 작업이 3분의 2쯤 진행되었을 무렵 문제가 터졌다. 그해 봄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야당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내걸고 이승만 독재에 대항하여 출마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뇌일혈로 급서했고 한창 정의감에 불타던 성종화 군의 시심(詩心)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해공의 죽음을 애도하는 격한 추모시를 써서 조례 때 방송을 하는 일을 벌였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그는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혀 일체의 학생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화전 장소까지 물색해 놓고 학교에 형식적인 신고를 하려 했는데 경찰 정보계의 압력을 받는 학교 측에서는 자퇴 카드까지 내밀며 윽박질러와 그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시화전을 열 마음도 싹 가셔 수십 장 그려둔 시화를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우리의 2인 시화전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 무렵 성종화 군의 자취방에 대해서 좀 얘기하자. 진주 근교 마동(현 진양호 수몰지구)이 고향으로  여느 시골 출신 학생들과는 달리 꽤나 넓은 독방을 얻어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봉곡동 어느 깊숙한 골목 안 한옥 사랑채로 기억되는데 골목을 돌아 나오는 흙 담이 아주 운치가 있었다. 담 너머로 대나무 몇 그루가 보이고 박꽃도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어 시상이 저절로 떠오를 듯한 멋진 곳이었다. 오호라, 이곳이 그가‘학도주보’에서 특상을 받은 수필‘담’의 소재가 된 곳이구나 생각했다. 이곳을 소재로 그 수필을 썼는지 아니면 그 수필을 발표하고 그런 정취에 맞는 이곳을 자취방으로 구해 찾아들었는지 아마 시간적인 정황 상 후자인 것 같은데 이 때부터 그는 수필에도 뛰어난 재질을 보였던 것 같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필자는 불쑥불쑥 그의 자취방을 찾았는데 아무리 예고 없이 찾아가도 그의 방안은 항시 깨끗이 정돈되어 있어 요즘 더운 날씨에도 좀체 넥타이를 풀지 않는 흐트러짐 없이 정갈한 그의 색시 같은 성품이 이 때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해 여름 필자는 진주사범 학생들에겐 숙원이었던 프린트물 교지를 선명한 활자 교지로 바꿔 발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예산은 마침 그 해 운영위원장을 맡은 최낙인 군(전 창원시 교육감)이 문예반 출신이라 많이 힘을 써 확보할 수 있었고 남은 건 거기에 걸맞은 알찬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편집자의 고충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남의 글을 베껴내는 모작(模作)이나 도작(盜作)들을 추려내는 일이었다. 신입생 글 중에 문장이 유려하고 내용이 출중한 글 몇 편이 올라왔다. 꼭 황순원이나 오영수의 글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글씨나 문장은 같은 사람 글인데 글마다 작자 이름이 다른 게 문제였다. 다른 문예반원들에게 수소문해 봐도 그런 이름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본명 아닌 자신만이 아는, 그것도 익명(匿名)으로 여러 개의 필명을 사용했으니 그 진위를 누가 쉽게 가려낼 수 있었겠는가? 

‘틀림없이 소설 줄이나 읽은 어떤 녀석이 남의 글을 베껴 장난치고 있구나.’ 
그 때부터 그의 글은 무조건 탈락 대상으로 분류돼 결국 그 해 교지에는 실리지 못했는데 졸업 후에 알고 보니 그가 뒤에 작가로서 이름을 드날린 솔마 김상남이어서 지금도 술자리를 같이하면 그 때 일을 사과하고 술 한 잔을 더 권한다. 

성종화 군과의 2인 시화전이 무산된 후 우리는 영남예술제 백일장을 통해 알게 된‘학원’출신들로‘한대림(寒帶林)’이라는 전국을 아우르는 학생 시동인지를 낼 계획을 세웠다. 서울사대부고 이성만(작고), 이태식(전 서울대 교수), 김성실, 동아고 한영탁(수필가,번역문학가,전 언론인) 경남고 김재성(미국거주), 경북여고 이현숙(이현정,시인,소설가)  진주고 성종화(수필가,시인), 진주여고 안병남(시인), 최인자(작고), 김옥순(응용미술가,미국거주) 진주사범 필자 등이 참여했고 필자가 원고와 출판비를 추렴으로 모아 편집까지 마쳐 출판 담당인 부산의 동아고 한영탁 군에게 우송해 동인지가 나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한 달, 두 달이 넘어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안달이 난 필자와 성종화, 최인자가 겨울 방학을 맞아 급거 부산으로 내려갔다. 

사정은 이랬다. 당시 동인지 인쇄는 고가인 활자 인쇄보다 저렴하고 정감이 가는 필경으로 등사해 낸 프린트물이 유행이었고 마침 부산사대 미술과에 재학 중인 이해근(당시‘수험생’이란 잡지에 입상한 시인. 작곡가 이상근 교수의 實弟)의 필경 솜씨가 뛰어나 누군가의 소개로 거기에 맡겼던 것인데 이분이 술을 좋아해  그 돈을 유흥비에 다 탕진하고는 차일피일하며 목이라도 빼라고 하고 있어 한영탁 군 혼자서 속을 끓이고 있었다. 아침 일찍 한영탁, 성종화, 최인자, 이현숙, 필자 다섯 사람이 만나 백씨 이상근 교수 집에 얹혀사는 이해근의 거처를 물어 찾아갔다. 아침부터 술에 절여 소주잔을 홀짝거리며 
“동생들, 미안해. 이 빚은 살면서 꼭 갚을게.” 
이러는 그 앞에서 우리는 더 할 말을 잃고 물러났다. 
(그는 대학도 흐지부지 그만 둔 후 학교에 근무 중인 동문들을 찾아다니며 시를 적은 노트를 보여주고 곧 시집이 간행되어 XX에서 출판 기념회를 할 것인데 그 축하금을 미리 받는다며 돈을 거두어 가고 나중에 그 장소로 찾아간 동문들만 낭패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그의 동문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온다. 그렇게 살다가 그는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횡사했다.) 

그날 밤, 우리 일행은 광복동 입구의 어느 다방에서 고석규, 송영택 시인들이 주최한‘릴케 문학의 밤’에 참석했다. 우리 좌석 가까이 앉아 있던 고석규 시인(당시 부산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생)은 까까머리 고등학생인 우리 일행을 보자 주변 탁자 위에 놓인 땅콩과 과자 접시를 몇 개 모아 우리 좌석으로 와서“후배님들 나중에 부산대학으로 와요. 거기서 함께 공부해요.”하는 것이었다. 이 한 마디가 나중에 필자의 진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줄이야····. 

끝난 뒤 우리 일행은 한영탁 군이 마련한 부산 좌천동의 바다가 내려다 뵈는 어느 언덕 위 전망 좋은 집(한영탁 군의 친척집)에서‘한대림’동인의 장렬한 해단식을 가졌다. 한영탁, 이현숙, 김재성, 성종화, 최인자, 필자 여섯 사람이 밤을 새워 못 마시는 술을 마셔가며 문학을, 미래를, 젊음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새고 있었고 다음날 우리는 문단에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하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 당시 소통이 어려웠던 서울 친구들에게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해 고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위해 상경하는 경우 자세한 경위 설명과 함께 이해를 구하리라 다짐했는데 공교롭게도 성종화 군과 필자는 서울로 진학하지 않았고 2년 늦게 서울로 진학한 한영탁 군이 서울 친구들에게 상당히 곤욕을 치렀으리라 생각이 든다. 

뒤에 한영탁 군은 언론계로 진출해  대한일보, 조선일보,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를 거쳐 한국어판 리더스 다이제스트 편집장을 지내다가 세계일보 국제부장 및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번역 작가로도 많은 역서(譯書)를 남겼는데‘티베트에서의 7년’‘주은래’‘등소평’‘나의 사랑 버지니아 울프’‘바다 한가운데서’등 다수가 있다. 지금은 수필가로 등단해 활동하고 있다.

4.'시부락(詩部落)’창간에 얽힌 이야기

▲《시부락》제1집 표지 사진. 제자(題字) '詩部落'은 파성 선생님의 친필임
진주로 돌아온 성종화 군과 필자는 두 번의 좌절을 거울삼아 지난해 결성했던 진주 학생문학회를 바탕으로 진주 시내 문학도들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시동인지 한 권이라도 발간하고 졸업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기간이 촉박해 동분서주하며 진주고 성종화, 김은영, 허일만, 이원가, 진주여고 김정희, 이월수, 진주사범 정재훈, 손상철, 김안자, 필자 총 10명의 시작품을 모아 편집을 해서 파성 설창수 선생님께 제호(題號)를 얻으러 가니‘시부락(詩部落)’과‘청천(菁川)’두 개를 내어놓고 고르라는 것이었다. 시동인지라‘시부락’을 골랐다. 1936년에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을 중심으로 발간된 시 전문동인지‘시인부락(詩人部落)’이 있고 또 ‘부락(部落)’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건너온 왜색 짙은 말이라 좀 께름칙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말이다.(다른 하나의 제호였던‘청천’은 이듬해 후배들인 최용호, 손상철, 박재창, 서정훈, 허일만 등이 벌인 동인 이름으로 자연스레 넘어간 것으로 안다.)
 그리고 그 책의 편집 후기(後記)를 필자가‘여죄(餘罪)’라는 말머리를 달아 이렇게 썼다.

                                              여죄(餘罪)

      우리는 가난하다. 그리고 끝없이 고독하다.  우리는 지금 아무런
     과녁조차도 뚫어보지 못하는 불안한 위치에 있다.  우리에겐 누군
     가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지만 그런대로 우리는 너무나 아득하다.
      마침내 탈피를 시도하는 총질을 한다.  불안과 기존의 것에 대한
     처절한 항변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모든 외부와의 타협을 끊고 조
     용히 자숙의 깃발을 마련한다.
      실은 가난함이란 우리의 의미가 될 수 없다. 차라리 꽃은 예사로
     이 피었다가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1957. 2. 5  <재필>

이렇게 해서 1950년대에 진주를 뿌리로 한 최초의 학생 시동인지‘시부락(詩部落)’1집이 4.6 판 프린트 인쇄로 표지에 비닐까지 입힌 호화 책치레를 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서점 가판대에 자리 잡은 이 책을 보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손으로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책이 졸업식 직전에 나와 뒤풀이도 못한 채 필자는 발령지로, 성종화 군은 가세가 기울었거나 다른 계획이 있었던지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고향으로 뿔뿔히 흩어져 아쉬웠다. 비록 시 전문 학생동인지이긴 했지만 허일만이 주관하여 김안자, 유부웅, 황영석 등과 더불어 1집과 똑 같은 책치레로 2집('57.12). 3집('58.5)이 속간되다가 발전적 해체를 해 그 뒤 활발히 전개되었던 학생 종합문학 동인인‘청천(菁川)’이나‘영화(嶺花)’의 모태가 되어 진주 학생 문학 동인활동의 탄탄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뿌듯하다.  

몇 년 후 1959년 겨울에야 진주 광성 다방에서  '시부락' 동인 주최 제1회 송년문학의 밤을 가짐으로써  못한 뒤풀이의 한을 풀 수 있었다. 그날 인사말을‘영문(嶺文)’출신 소설가 강종홍 군에게 맡겼는데 초등학교 교사인 자신은 코흘리개 애들 앞이라면 몰라도 다방에 가득 자리한 성인 청중들 앞에선 영 자신이 없다고 꼬리를 빼기에 부랴부랴 시장 막걸리 집으로 데려가 탁주 몇 사발을 안겼더니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우리는 아직 꼬리가 달린 개구리입니다."라는 명 인사말을 남겨 그 일이 지금도 술자리에 가면 곧잘 회자(膾炙)되곤 한다.   

그 뒤 성종화(수필가.현 대광법무사법인 대표), 정재훈(시인.전 문화재관리청장), 손상철(시인.현 한국교육삼락회총련 사무총장), 최용호(시인.현 진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서정훈(전 진주시장), 이월수(시인.작고), 김정희, 김상남(소설가.전 부산남구문인협회 회장), 강종홍(소설가), 허일만(시인), 김안자(김정숙.전 부산동삼초등학교장), 유부웅(작고), 이문형, 강동주(시인), 김영화(시인.작고), 황영석, 황경자(시인.작고), 허옥랑(시인), 조정남(시인), 노영표, 김판용, 김석라(김지연.소설가.현 한국여류문인회 회장), 성명숙(성지혜.소설가), 하선자, 최옥경, 정영순, 조현희, 박홍주, 필자 등 옛 얼굴들과 후배들이 한데 어울려‘대화(對話)’동인이란 새 이름으로 송년문학의 밤 모임이‘60년대 진주의 본격적인 문학 동인지인‘흑기(黑旗)’나‘영도선(零度線)’,‘남가람’등이 나오기 전인 1963년까지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거의 반세기 전의 얘기다.

■ 정재필
시인. 전 남강문우회 회장

[《남강문학》창간호(2009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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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필 시인
[남강문학]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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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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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 만나는 '목가의 시인' 신석정
교보문고-민음사 협력, eBook 시장 포문 연...
신경숙 "한국문학 해외소개의 변화와 발전...
수원시, 시인 고은 문학관 건립키로
국민대, '조형실기대회' 과제로 詩 채택 관...
한국문협-환경미술협회 업무협약 체결
문협-문예협, 저작권 관련 업무협약 체결
거제시, 문학 등 지역예술단체에 5천5백만...
한국 시문학파기념관 개관
충남도, 문예진흥기금 399건 10억원 지원 ...
울산시, 2012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결정
간윤위, ‘2012년도 우수도서 선정·지원 ...
문광부,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지정
한국문협이 만든 '노벨문학상 빈 자리'의 ...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2011 졸업식
태백산맥문학관 옹석벽화, 한국기록문화 대...
의령문인협회 제12회 인터넷 시화전
"번역인문학의 나아갈 길"
한국문인협회 사무실 이전 완료·기념식 개...
롤렉스, 문학 등 '사제 예술 프로그램' 6개...
한국문협, 한강라이프와 업무협약 체결
장편『춘천옥 능수엄마』, KBS한민족방송·...
천상병 시인의 섬과 안면도
한국문협, 11월중 목동으로 사무실 이전
정부 문화예술 부문 예산, 최초 1조 원 돌...
한국문협, 진동규 시극 '자국눈' 영화제작 ...
목포문학관, 문학평론가 김현 전시관 개관
'한글.한국' 도메인 관심 집중, 일부 도메...
해남군, 한국 최고의 정원 윤선도 금쇄동 ...
파주출판도시 축제 '파주북소리 2011' 10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전국에서 독서문...
남해군 '노도 문학의 섬' 조성 기본설계 중...
충남도, ‘제52회 충청남도문화상’ 수상 ...
인천시, 9월 ‘독서의 달’ 다채로운 행사 ...
강진군, 희귀본 문학서 5백여 점 공개
문화부, 소외 계층에 대한 우수 교양 도서 ...
거창군, 문학도시 기본계획 수립용역 최종...
한국도서관협회, 2011년 도서관 문학작가 ...
한국도서관협회, 2011년 3/4분기 우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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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가 지났습니다. 정유년이 후...
우선 늦었지만 칠순을 맞이하신 ksny81...
정말로 죄송하네요. 게시판의 글방에 ...
지난 2015년 05월에 수필집 "낮에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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