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 파성 설창수 시인과 진주, 그리고 개천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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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2월04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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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성 설창수 시인과 진주, 그리고 개천예술제

양왕용

<1>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진주에서 고교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1959년 제10회부터 개천예술제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도 영남예술제라 불리
▲ 양왕용 시인
우던 예술제에 얽힌 추억과 그 행사를 흰 한복을 입고 주도하던 파성 설창수(1916~1998)시인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개천예술제의 번외 행사였던 유등축제에 밀려 서부경남 전 주민들의 관심 밖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서부경남 전 주민들의 잔치였고, 영남예술제하면 으레 설창수 시인을 떠올렸다. 

이러한 유명세 탓으로 파성 설창수 시인은 제2공화국 시절에 1960년 4.19혁명의 산물인 7.29총선에서 잠시 꽃 되었다가 사라진 국회 양원제의 상원격인 참의원 그것도 임기가 장기인 6년제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필자의 기억으로 지금의 부산광역시와 울산이 포함된 경남 전체를 한데 묶은 광역 선거구에 24명이 입후보하였는데 파성 시인은 기호가 맨 마지막이었다. 

장발의 풍모로 소개된 선거 벽보에서 여자같다는 촌로들의 반응도 있었지만 영남예술제 창시자라는 유명세에 서부경남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상위권에 당선되었다. 말하자면, 비록 5.16 군사 쿠데타로 10개월 만에 해산된 참의원 제도였지만 설창수시인은 지방의 문인이자 문화예술운동가에서 중앙무대의 정치인이 되었으며, 1961년에는 현재의 예총회장격인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 대표의장으로 취임하게 되는데 그 발판은 개천예술제가 마련한 것이라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니다.

<2>
설창수시인은 원래 진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1916년 1월 16일 경남 창원에서 아버지 설근헌 옹과 어머니 황호 여사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창원공립보통학교 6년 과정을 졸업하고 그가 16세 되던 1932년 진주농업학교(당시는 5년제)에 입학하게 되자 온 가족이 진주로 이사하게 되어 진주 시민이 된 것이다. 

▲ 설창수 시인
그가 정착한 진주는 조선조부터 경상우도 중심지역으로 고종 33년(1896년)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남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어 명실상부의 행정중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파성이 정착한 1930년대는 그 영광이 일제에 의하여 상실된 시기였다. 1924년 2월 초 조선총독부가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 도청을 부산으로 옮긴다고 발표한 이래 진주를 비롯한 서부경남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의 야반도주를 감행하여 1925년 4월 17일 지금은 동아대학교 캠퍼스가 되어있는 부산시 부민동의 도청 신청사 앞에서 이전식이 거행된 것이다. 

따라서 진주는 일제에 대한 적개심과 민족의식이 충만한 도시였다. 그리고, 1910년 개교한 진주농업학교(진주농림고등학교 전신)가 유일한 중등교육기관이었는데 1923년에 경남공립사범학교(진주사범학교 전신) 1925년에 일신여자고등학교(진주여자고등학교 전신)와 진주고등학교가 개교되어 4개의 근대적인 중등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있었다. 다행이 경남공립사범학교는 부산으로 이전하지 않아 초등교사 양성기관으로 지역 인재를 흡수하였으며, 진주농고, 진주고, 진주여고 등도 서부경남 주민들의 교육열에 부응하였다 .

뿐만 아니라, 뜻있는 지역인사들에 의하여 언론, 사회 문화 활동이 일제 강점기의 다른 지역 거점도시에 비교하여 손색없이 펼쳐졌다. 1909년 10월 최초의 지역신문인 경남일보 창간, 기타 월간 지역지들의 발간으로 설창수 시인이 진주농업학교에 입학한 1930년대는 진주는 비록 도청은 부산으로 이전하였지만 교육적, 문화 예술적, 사회적으로 서부경남을 비롯한 경남 나아가서는 영남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도시였다.

설창수시인은 진주농고를 다닐 때부터 학생운동에 관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37년 5년 과정을 졸업하고 창녕군 대지공립보통학교 촉탁교원(6개원) 부산무진 진주지점 서기(1개월)등의 짧은 직장생활을 마치고 1939년 일본의 교토에 있는 입명관(立命館)대학 예과 야간부에 입학했다. 1년 후인 1940년에는 동경으로 옮겨 일본대학 예술학원 전문부에 입학하였다. 이 대학은 김기림이 1926년~29년에 재학하였고, 설창수 시인과 같은 시기에는 김춘수 시인과 조향 시인이 다녔던 대학이다. 

그는 입학초에 한국 유학생과 문학동호회를 만들었으나 아마추어 수준이라 그만 두고 2학기에 이석영, 김보성, 박현수 등과 일인 학생 4명과 더불어 ‘화요그룹’을 만들어 창작에 몰두하였다. 동인 가운데 김보성은 우리 모두 아는 바와 같이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다.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때 그는 북구주의 저수지 공사장에 징발되어 노역을 하던 중 1941년 12월31일 일인 형사대에 연행되어 부산에 있는 경남 경찰부 유치장 1호 감방에 수감되었다. 2년형의 언도를 받아 1944년 만기 출옥되었다. 이러한 행적에 근거하여 그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3>
1944년 감옥에서 출옥한 설창수 시인은 30대로 갓 진입하던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을 진주에서 맞았다. 그는 건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1946년 진주시인협회 설립을 주도하여 기관지 <등불>을 4호까지 발간하게 된다. 

설창수 시인과 함께 40대 장년으로 해방공간의 진주문단을 이끌었던 동기 이경순(1905~1985)시인의 회고에 의하면 1945년 광복과 더불어 나중에 한국예총의 전신이 되는 문화건설대 진주지부가 조직되고 문학, 연극 음악, 무용, 국악 부문 등으로 나누어 활동하였으며 회지 <낙동문화>를 발간하였다고 한다.1)

그러다가 앞에서 언급한 진주시인협회가 창립되고 동인지 <등불>을 간행하게 되는데, 그곳에 참여한 중심 동인은 백상현, 설창수, 이경순, 김보성, 최계락, 노영란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등불>은 진주 시인들만 작품을 발표한 것이 아니고 유치환, 김달진, 김수돈, 조향, 김춘수, 박목월, 조지훈, 이숭자, 이윤수, 손동인 등 주로 영남 출신의 쟁쟁한 시인들이 동인으로 집필하였다.

그리고 1948년 1월 15일까지 제 4집을 발간한 후 제 5집(1948.6.15)부터는 진주시인협회가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영남문학회로 확대 개편됨에 따라<嶺南文學>이라 제호를 바꾸고 1948년10월10일에는 제6집이 발간된다. 그러다가 1949년4월5일 제7집부터는<嶺文>으로 다시 바꾼다.1949년 11월1일 처음으로 개최된 영남예술제에 맞추어 제7집을 발간한다. 

이 이후로는 매년 영남예술제 기념호로 일종의 영남예술제지 성격이 된다. 1960년11월20일 제11회 개천예술제(영남예술제가 1959년부터 개칭됨) 특집호로 18집을 내고 종간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도 이미 오래전에 경남대학교의 석사학위 논문으로 나온 바 있다.2)

그 당시의 출판 사정과 독자층을 감안할 때 진주에서 이러한 정기적인 종합문예지가 비록 연간이지만 나왔다는 것은 처음부터 종간될 때까지 영남문학회 대표로 발간을 주도한 설창수시인의 역량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동기 이경순 시인이 17집(1959.11.3), 18집(960.11.20)에 주간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 설창수시인은 영남문학회 대표로 1949년부터 시작되는 영남예술제 대회장이면서 예술제 문학부문에 참여하는 경향 각지의 문인들의 작품을 수록하여 <嶺文>발간을 주도하였다. 

<嶺文>은 추천제라는 신인 등용문도 가져, 지금은 나이가 70세 전후가 된 문인들 가운데 <嶺文> 출신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초창기의 발간의 실무는 1947년 진주고등학교 재학생으로 경남일보 신춘문예 공모에 산문이 입선하여, 문단의 화제가 된 인물인 최계락(1930~1970)이 맡았다. 최계락은 1952년 해방 이후 재발간된 <文章>지에 <哀歌>라는 시가 추천되어 시인이 되었으며 주옥같은 동시를 많이 창작하였다. 대표작 <꽃씨>는 60~70년대 중학교 교과서에 인용되어 인구에 회자되었다. 경남일보, 소년세계 그리고 국제신보 문화부에 근무하였으며 4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별세하였으며, 유족과 친지가 뜻을 모아 부산 동래․금강공원에 시비를 건립하였고 최계락문학상이 제정되어 있다. 

영남문학회는 해방공간에 좌우이념대립 속에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청년문학가협회 등과 연대함으로써, 우파지향성을 분명히 가졌다. 이점 역시 설창수 시인의 민족주의 세계관에 입각한 창작 활동과 영남 예술제 주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영남문학회는 서울, 대구, 경북, 경남, 제주 지역 일대에 지부를 둘만큼 한국문학계의 비중 있는 문학단체로 성장하였으며 , 이로 인하여 경남 문단의 위상도 한층 격상되었다. 지금의 경남문단은 도청소재지가 있는 창원이 주도하고 마산, 진주, 통영, 사천, 김해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그 당시에는 경남도청 소재지 부산과는 떨어져 있는 진주가 서부경남뿐만 아니라, 영남예술제를 기반으로 하여 경남문단 나아가서는 전국 문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개천예술제는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설창수시인의 제안과 주도로 1949년 11월 영남예술제로 창시되었다.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변론(웅변) 등 주로 순수예술분야에서 백일장, 실기대회, 경영대회, 초대전, 공모전, 강연회 등의 형식으로 처음에는 음력 10월 3일부터 일주일간 개최되었다. 1959년 제 10회 때에는 애초의 창제정신인 개천개국사상을 부각시킨 개천에술제로 개칭하여 영남이라는 지역성을 뛰어 넘는다.

지금은 유사한 축제가 많으나 대한민국 최초로 창시된 종합예술제였다. 그동안 6.25 전쟁이 났던 1950년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을 제외하고는 매번 개최되었다.

1962년부터 1968년까지는 국가원수가 개제식에 참석하는 최초의 예술제였다. 최근에는 양력 10월 3일부터 일주인간 개최되고 있으며, 문화재단이 발족되어 재단 주도로 전환되었다가, 지난해부터는 다시 진주예총이 주관하고 있다. 

제6회 영남예술제(1955년) 외곽행사로 출발한 유등축제가 그 테마의 참신성과 규모의 방대함으로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특화되는 바람에 지금은 오히려 유등축제에 파묻히는 위상이 되었지만, 이것은 비단 개천예술제에만 찾아온 현실이 아니고, 대중들의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도가 예전만 못함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천예술제는 1983년에는 경상남도 종합예술제로 지정받았고 1999년부터는 세계적인 문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기획실을 상설 운영하여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설창수시인은 1949년 제1회 때부터 대회장을 맡아 1961년 제11회까지 주도하였다. 특히, 개천예술제는 다른 문화예술제와 달리 임란진주대첩의 주인공인 삼장사와 논개의 애국 충절 추모와 개천개국사상을 선양하고 있다. 이 역시 설창수시인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문학정신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만큼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설창수 시인이 주도하여 작성한 1949년(단지 4282년) 제 1회 창제 취지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이 있는 곳에 꽃이 피는 것과 같이 인류의 역사가 있는 곳에 문화의 꽃이 되는 것은 아름다운 우주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은 문화의 또 한 겹 그윽한 꽃이 요, 예술이 없는 세기에는 향기와 참다운 인간 정신의 결실이 없는 것이다. (중략)
  여기 독립된 1주년을 길이 아로 새기고 엄연하게 되살아난 겨레의 아우성과 마음 의 노래와 그 꽃의 일대 성전을 사도 진주에 이룩하여 전 영남의 정신으로 개천의 제단 앞에 삼가히 받들어 이를 뜻하는 바이다.

제 1회 영남예술제의 대회장은 설창수가 이경순, 박영환(박노석), 조진대는 문학부를, 미술부는 박생광이 마산시인 김수돈과 설창수가 연극부를 맡았다. 제1회(1949)부터 11회(1960)까지 설창수 시인이 대회장이 되어 예술제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1961년 5.16군사쿠테타로 인하여 예술제는 많은 변화가 오게 된다. 무엇보다 설창수 시인에게 큰 시련이 오게 된 것이다.3)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4.19혁명이후의 참의원선거에서 그는 참의원에 당선되고, 이를 발판으로 지역 문인으로는 진무후무한 전국문화단체 총연합회 대표까지 되었다. 그는 그 이전 해방 이후 창간된 경남일보에 입사하여 주필, 사장이 되었으며 문교부 예술과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1년의 5.16쿠테타는 그를 참의원의원, 문총대표의장, 경남일보 회장, 개천예술제 준비위원장 영남문학회 회장 등 5개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까닭은 그의 5.16쿠테타에 대한 비판의식 내지 4.19정신구현의 좌절이라는 그의 저항에 따른 당시 권력층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 개인적인 체험은 그 당시 진주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동기 이경순 시인 댁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동기 선생으로부터 설창수시인의 5.16 쿠테타로 인한 군사정권에 비판하는 경남일보 논조를 직접 들었으며 동기선생은 이로 인한 설창수 시인의 불이익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군사정권으로 인한 참담한 그의 입지는 평생 군사정권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끊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63년 제 4회 개인 시화전(8월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순회 내지 방랑하는 한국 문단 전무후무한 시화전 나들이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화전은 서울, 광주, 대구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시.군 소재지를 거쳐 면 단위 마을까지 돌아 국내 221회 일본 2회의 대기록을 세웠으며 85년 7월 고성군 하이면에서 마감되었다. 이것은 시인의 생활의 강을 건너는 방편이 되었으며, 이러한 떠돌이 삶은 5.16쿠테타로 인한 현실적인 박탈에 기인하여 그의 작품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4)

<4>
설창수시인은 예술제를 주도하는 문화활동 못지않게 창작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등불>(1949년)창간호 <창명(滄溟)>외 3편을 발표하였으며 이어서 <嶺南文學> <嶺文>뿐만 아니라 대구에서 발간한 <죽순>서울의 <白民>, <文藝>., <詩와 詩論> 등 잡지 매체와 산문매체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작품활동의 성과는 1952년 8월 30일 영남문학회에서 발행한 <三人集>에 수록되어 있다. 이 <三人集>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본 연구도 있다.5)

<三人集>은 설창수시인, 이경순시인 그리고 조진대(1920~196) 소설가 등 3인의 공동작품집으로 발행인은 설창수, 발행처는 영남문학회(진주시 본성동 184)인쇄처는 진양당인쇄소로 되어 있다. 1952년은 아직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쟁기였으며 전쟁기에 북한인민군의 남부군사령부가 있었던 진주는 유엔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는데 이런 와중에 <三人集>이 발행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문학적 열정이 얼마나 대단하였는가를 증명하고도 남을 일이다.

<三人集>은 제자는 진주 서예가 정명수(1909~2001)가 썼으며, 표지는 그 당시 진주에 있던 동양화가 박생광(1904~1995)이 그렸다. 표지는 4도의 칼러로 네 사람의 악공이 가야금과 피리 등을 연주하는 雅樂圖를 그렸다. 그 당시의 작품집 수준으로 보아 전국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장정이었다.

三人集이라는 가로로 쓰여진 제자 밑에 詩, 創作이라는 장르명칭이 있고 아악도가 가로로 그려져 있으며 그 밑으로 세로로 薛昌洙, 李敬純, 趙眞大라는 저자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속표지 또한 초록색으로 三人集이라는 책이름이 세로로 쓰여져 있고,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다음으로 총목차가 이경순의 시집 <生命賦> 설창수의 시집 <開閉橋> 희곡 <魂魄> 조진대의 창작집 <별빛과 더부러>, 장정, 겉;朴生光 제자: 鄭命壽, 서: 유치환 순서로 되어 있다. 서문을 쓴 청마 유치환은 그 당시 한국문총의 산하단체인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이면서 통영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설창수시인의 시는 중간 표지 다음에 題表라는 이름으로 <旅程>부터 <開閉橋>까지 15편이 수록되어 있다.. 희곡은 속표지 다음에 희곡, 魂魄 1막 2장(금무단상연) 등장인물, 시대, 장소 등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自跋>이라는 일종의 후기가 수록되어 있다.

설창수시인의 초기의 작품세계를 <三人集>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그의 문화운동적 업적과 문학적 업적에 비하여 작품세계를 살펴본 글은 많지 않다.6)

그의 <三人集>수록 작품 가운데 파성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開閉橋>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짓밟음, 바람비, 수레바퀴, 침뱉음을
오랜 동안 말없이 참아 온 내다.
내 등덜미의 살결은 메마르고
뼈, 힘줄, 주름살, 흉터만이 남아 있다.
디디어 보라, 내 껍질은 따글거린다.
이제 난 일어선다.
성낸 쟈이안트처럼 敢然히 일어선다.
銳角化된 내 등덜미 위에
아무도 기어오르지 못한다.
내 두 줄기 動靜脈은 불꾼 번쩍이고,
내 머리카락은 끊어진 양 곧게 뻗어
나는 이 때 발목으로 自由를 保障한다.
나는 푸른 港灣의 숨통을 解放한다.
나는 兩洋의 憧憬을 連結한다.
내 성낸 蹶起는 모든 世俗的 妥協을 모른다.
내 아슬아슬히 목 없는 肩平線--
接續鐵板의 冷嚴한 感覺 위에
한 마리의 비둘기도 날아 앉지 못한다
美貌도 恐喝도 特權도 阿諛도…
난 無慈悲한 怪漢이 아니다.
외론 어머니의 服藥時間을,
첫 靑春의 密會時間을 막으려곤 않는다.
난 規律과 攝理 앞에 順從한다
난 背信을 모른다.
난 偉大한 原始人이다.
난 偉大한 文明人이다.
서건 눕건
난 偉大한 奴隸다.
           ―「開閉橋」전문

이 작품의 제재는 최근에 다시 개폐교로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부산의 영도다리이다. 1950년대 당시는 비록 일제에 의하여 건립되었지만 부산뿐만 아니라 영남 나아가서는 전국의 구경꺼리였다. 뿐만 아니라, 6.25사변으로 인한 피난 가족 혹은 이산가족의 만남을 위한 약속장소로서 대중가요에도 자주 등장하는 민족의 애환을 간직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이러한 영도다리를 제재로 하여, 관념 혹은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관념은 분단의 비극이나 이산가족의 아픔이 아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6.25사변 이전에 쓰여졌을 수도 있다. 아마 6.25사변 이후에 창작되었다면 그의 기질상 동족상잔이나 이산의 아픔에 대한 형상화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언급은 두 곳에서 찾을 수 있다.7)

두 사람 모두 민중 지향성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필자 역시 동감이다. 뿐만 아니라, 서사성 혹은 서술성과 우의성(알레고리)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첫 부분인 1~3연은 영도다리가 닫혀 있다가 일어서는 상태를 서사성 짙게 형상화한다. 그러나 4연부터 마지막 연까지는 다리에다 관념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사물에다 관념을 부여하는 것을 아이러니라 보는 이도 있고 알레고리로 보는 이도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이러니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알레고리에 머물고 있다고 보는 바이다. 이것은 시인의 기질 못지않게 애국지사, 문학운동가, 정치가적 기질을 가진 설창수시인의 성격하고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후반부의 경우 4연은 세속적 타협을 거부하는 지사적 기질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질은 끝내 5.16 군사정권과 타협하지 않는 뒷날의 그의 행적을 미리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6연에서는 결코 의인화한 개폐교를 시적 화자가 비정하고 몰염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 청춘의 사랑과 같은 규율과 섭리에 순종하는 인간미를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6연에서의 위대한 원시인 위대한 문명인, 위대한 노예 등은 결코 편협된 가치관으로 살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이원적 세계관은 그를 문교부 예술과장으로, 참의원으로 그리고 미국여행에서의 느낌을 「성좌 있는 대륙」(1960, 수도문화사)으로 출판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 대한 그 자신의 애착은 그의 회갑기념 시선집(1976, 현대문학사)에서도 시집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적 경향을 ①주관적 자아 확립과 대상의 관조 ②역사조명과 시사반영 이라고 규정하고 다음에 인용되는 순수 서정적 경향을 ③서정시가의 격조와 자연 수용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8)

모란은
몰래 벌린다.
어둠을 먹어
한결 붉었다.
모란 입술에
이슬 고인다.
밤 모란 너로 하여
잠 못 이룬다.
           ― <牧丹> 전문

그가 아무리 의지의 시인 혹은 관념의 시인이라고 해도 모란꽃에서는 아름다움과 설레임을 발견하고 있다. 강희근 여시 파성의 시에도 아름답고 숨가쁜 서정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작품은 열거하고 있지 않지만 <석란>, <무지개>, <모란 움 하나>, <치자꽃 핀다.>.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모란 움 하나>, <치자꽃 핀다>는그의 대표시라 할만큼 아름답다고 보고 있다.9)

<5>
설창수시인은<三人集>에수록된<魂魄>을시작으로100이넘는 희곡을 창작하였다 그리고, 초창기 개천예술제의 연극부도 맡았다. 희곡 작품 110편은 그의 전집(1986.시문학사) 마지막 권인 제6권에 수습되어 있다. 따라서 앞으로 다른 이들이 그의 희곡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희곡의 경향을 앞에서 살핀 최광렬은 「항일과 분단문학의 결집」이라 지적하고 있다. 

설창수 시인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와 평가는 아직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그리고 그의 전집 역시 완벽하지 못하다. 그가 작고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가 주도하여 창설한 개천예술제는 누가 무어라고 해도 진주의 상징이자 브랜드 관광상품이다. 이 세상에 남은 후배 우리들이 설창수 시인의 세계관과 작품세계를 편견없이 연구하여 그의 평전이나 전집 간행 운동의 초석이 될 필요가 있다. 그가 동분서주하여 만든 <嶺文>역시 어떠한 형태든지 복간 내지 계승하는 것 또한 신중하게 검토할 문제이다. 특히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 미망인 김보성 소설가가 작고하기 전 서둘러 보는 것도 생생한 증언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1)이경순, 해방후 진주문단의 20년 - 嶺文을 중심으로(<진주예총 >21.예총진주지부 1965.11) pp. 24~25
2)송창우, 경남지역 문예지 연구(1995.12, 경남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학위 논문,)pp.25~32
3)강희근, 개천예술제 40년,(개천예술제 40년사, 1991, 재단법인 개천예술재단pp21~40에서 1949~1960을 초창기로 1961~1969을 시련기로 1970~1980을 격동기, 1981~1990을 중흥기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설창수 시인은 시련기부터 물러나게 되는데, 이것은 그의 군사혁명 정권비판과 연계되었다고 볼 수 있다.
4)강희근, 설창수 시 연구, 경남문학연구 제4호,2000년<경남문학관>pp.50~51
5)이순욱, 근대 진주 지역 문학과 삼인집(지역문학연구 제10호<2004.가을>경남․부산지역 문학회)pp.303~325)에 자세히 연구되어 있다.
6)김춘수, 소외자의 영탄과 의지의 알레고리- 동기와 파성의 시세계<현대문학> 1977.4발표, 김춘수시론전집Ⅱ, 서울, 현대문학사, 2004) pp.79-95최광렬, 설창수 문학과 그 세계-인간의 의지가 관념의 형이상학(시문학 1986.5) pp.96-105강희근, 설창수시연구, 경남문학의 흐름<보고사;2001> pp.299-316,2006년<경남문학연구 제4호 PP40-55에 재수록박노정, 설창수의 문학세계,(경남문학연구 제2호<경남문학관,2004)
7)앞에서 인용한, 강희근(pp. 43-44)과 이순욱(pp.315-317)의 논문에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고 있다.
8)최광렬, 앞의 글(월간, 시문학 1986.5)에서 설창수 고희기념 전집 6권(시, 수필, 희곡, 1986, 시문학사)의 세계를 간략하게 살피고 있다.
9)강희근, 앞의 논문, p.55

■ 양왕용
시인. 부산대 명예교수

[《남강문학》창간호(2009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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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 시인
[남강문학]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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