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 신산한 삶과 아내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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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12월0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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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한 삶과 아내의 무게
이관희의 첫 소설집

"그놈은 버린 자식이외다. 하지만서두 어떻카갓소. 기래두 내 새낀데...."
버린 자식이라니? 그러니 좀 도와 달라는 뜻일까? 나는 대성이 아버지의 말뜻을 얼핏 알아들을 수 없었다. 흔히 있는 학부형들의 단순한 하소연 같기도 하고...
그런 그에게 나는 또 아까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니 아까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을 마저 한 셈이었다.
"저, 대성이가 살다 온 곳은 어딘가요?"
"그건 와 자꾸 묻소? 서울 제 이모네 집에 가 있다 쫓겨왔수다. 그러구두 한 이태나 핵굘 안 댕겨서 다 이렇게 됫디요."
대성이네 집을 방문하고 온 날부터 나는 또 앓았다. 종종 앓는 몸살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심했다. 꿈에 엄청나게 큰 눈을 가진 무슨 짐승이 금방 대성이 얼굴이 되어 달려들어서 기를 쓰고 도망 다니다가 잠을 깨곤 하였다. 전등불도 켜 있지 않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흔건히 내밴 땀이 파도 소리에 차갑게 식고 있었다. 누가 옆에 좀 있어 주었으면―. 서울 엄마가 아시면 당장 짐싸들고 올라와 시집이나 가라고 난릴텐데.
이 선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밤 갈매기 울음소리가 창문에 와 부딪는다. (중략)
그런데 교사직의 어머니 아버지 역할의 뜻은 그런 일반적인 의미가 아닌 '인간의 어머니', '인간의 아버지'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선생이 언젠가 말한대로 사랑받을 자격 같은 것을 논하지 않는 그냥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라는 뜻에서의 어머니 역할이요, 아버지 역할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십자가였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이기 전에 먼저 근원적인 인간에 대한 긍정, 즉 '인간 긍정의 사도'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지난 2년 동안의 첫 교사 생활을 통해서 내가 절감한 교사직의 십자가였다. 대성이는 어쩌면 그 십자가의 실체를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나타난 모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 선생의 말뜻이 아닌가?

―이관희, 단편소설 <무서운 아이> 부분
 
 시인이요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이관희 씨가 그의 단편소설들을 단행본으로 엮은 소설집 『아내의 천국』(연인M&B 刊)을 냈다. 그의 첫소설집이기도 하다.
이관희 씨는 <현대문학>지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뒤 『꽃과 여인을 노래할 수 없는 시대』 등 4권의 수필집을 출간하는 등 꾸준히 수필 창작에 몰두해오다 최근엔 인터넷 수필 전문 사이트인 'e-수필'의 운영과 편집실무를 맡으면서 '창작수필론'을 집중적으로 문단에 이슈화시키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 소설집의 머리말에서 "<무서운 아이>는 고 이범선 선생께서 추천해주신 작품이다. 그러나 문단의 공인은 받지 못하였다. 그때가 1972년도쯤의 일이었는데 당시 선생께서는 아직 추천권이 없으셨다. 중학 시절부터 무시로 선생댁을 드나들며 글 공부를 하던 나에게 이 작품을 보신 선생께서는 이제는 문단에 나가서 글을 써 보라며 나를 오영수 선생께 보내셨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민충환 문학평론가(부천대학 교수)는 이관희의 소설세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옛 선현은 인생삼락(人生三樂)을 얘기한 바 있는데 이관희의 첫 소설집『아내의 천국』을 일독하면서 문득 여기에 좋은 작품을 읽는 즐거움 하나를 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그것은 이관희 작품이 여느 작가들의 글과는 확연히 구분될 만큼 예사롭지 않은 그의 경륜과 신산한 삶의 무게가 함께 길항작용을 한 소이라 믿어진다.
<무서운 아이>에서는,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이기 전에 먼저 근원적인 인간에 대한 긍정, 즉 '인간 긍정의 사도'가 아니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고 <어떤 변신>에서는, '하나님을 만나 봤다는 식'의 광신적인 아내의 행태를 비판하던 남편이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자연스레 신앙인으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편, <그 해 겨울은 참 추웠었네>에서는 매우 가난한 남녀가 '풀잎 밥상'을 앞에 놓고 생일잔치를 벌이는 동화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가히 한국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할 만큼 매우 감동적이다. <아내의 천국>에서는, 평소 교인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열렬히 강론하던 김 목사가 아내가 죽은 뒤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게 된 사연을 그리고 있다. 즉, 자신이 지금껏 해 온 설교에는 '아내가 가짜 보석반지를 진짜처럼 닦고 또 닦고 아끼고 사랑하였던 것과 같은 사랑이 없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다.
서양 고사에, 하늘만 쳐다보며 별 연구에만 전념하던 학자가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졌다는 얘기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원리만을 일관되게 강조할 뿐 변화하는 시대와 사람들을 도외시하고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결여된 요즘의 교단, 아니 우리 모두에게 이관희의 소설은 부끄럼을 각성케 해준 한국문학의 한 성과이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부족 됨이 없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은 민충환 문학평론가의 표현대로, 이 소설집에 든 9편의 작품들은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생활 혹은 종교에 대한 이관희 씨의 철학이 배어 있음을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목사가 아내가 죽은 후 더 이상 설교를 못 하게 된 데에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함께 그만이 아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위로차 방문했던 사람들도 다 돌아가고 난 후 텅 빈 아내의 방에서 아내가 쓰던 물건들을 정리하던 김 목사는 작은 보석상자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중략) 그렇게 그것들을 닦고 또 닦는 사이에 어느덧 그 값싼 인조 보석반지들은 누가 봐도 모조 반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진짜 보석 반지들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단편소설 <아내의 천국> 부분

기와집 소녀는 까만 눈을 가졌습니다. 새까만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었습니다. 얼굴이 하얗습니다. 꼭 엄마같습니다. (중략) 코스모스 꽃잎이 하나 없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소년은 여위어 갔습니다. 소녀는 기와집 뜰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몇 번이고 무서리가 하얗게 내렸습니다. 저녁입니다. 꼭 한 사람 여인의 울음소리가 절간에 울려왔습니다. 울음소리는 밤이 깊도록 그치지 않습니다. 국화가 다투어 피었습니다. 
▲ 이관희 소설가

―단편소설 <동승(童僧)> 부분
 
이 소설집에 담긴 9편의 소설 중 <동승(童僧)>은 문학소년 시절의 작품으로, 고3 재학시절 <대광뉴스> 제28호(1959.6.13)에 게재되었다고 작품 말미에 적고 있다.

이관희 씨는 대광중고등학교를 거쳐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수학하였고, 미국 Pacific Christian College를 졸업하였다.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 시부문과 소설부문,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논픽션부문 등에 각각 입선된 바가 있고, <현대문학>지의 신인수필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개똥벌레 한 마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단상집)와 『사랑하고 죽으리라』(시집) , 그리고 『다시 연애하는 세상이 되어야 살 수 있다』를 비롯한 4권의 수필집이 있다.

[독서신문 제1435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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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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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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