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 이성교 시인-강원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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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02월0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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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교 시인-강원도의 힘

평소 월간 스토리문학에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주시는 곽문환 시인을 여러 번 만났는데 곽문환 시인은 메인스토리는 월간 스토리문학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으로 스토리문학을 키우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면서 몇 번씩이나 이성교 시인을 취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이 있었다. 이성교 시인이라 하면 1956년 「현대문학」에 등단한 원로 시인으로 강원도 사람이고 신앙시와 토속시를 쓴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내심 속으로 기뻐하면서 언제쯤 취재하는 것이 좋을까 일정을 타진하고 있던 차에 또다시 곽문환 시인께서 전화를 해 주셔서 이성교 시인의 귀한 옥고 두 편을 받아 3월호에 초대시로 모셨다.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최소한의 고료를 드리고져 전화를 드리고 감사의 말씀을 여쭈면서 곽문환 시인께서 소개하였는데 저희 메인스토리 취재에 응해 달라 청을 드리니 흔쾌히 허락하신다. 그렇게 해서 일정이 정해지고 며칠이 흘렀다.

약속한 날은 봄비가 반갑게 내리는 날이었다.

평소 중앙대학교를 나와 KBS에서 오랫동안 아나운서를 역임하였던 이후재 시인께 전화를 넣어 이성교 시인을 취재하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청하니 선뜻 수락하여 함께 가기로 하였다. 수유역에 내려 잠시 기다리면서 지하철 역사 내 작은 책방 주인과 대화를 나누려니 주인은 광고를 한 책은 좀 팔리는데 스토리문학처럼 광고가 없는 책은 영 팔리지 않는다고 말을 들으니 입맛이 씁쓸해진다.

수유역에서 이후재 시인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니 이 시인은 검소하게도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타고 가자며 버스 중앙차로제 실시로 가운데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자마자 성큼성큼 앞장을 선다.

이성교 시인께서 가르쳐준 대로 버스를 타고 은행 앞에 내려 잠시 기다리려니 이성교 시인이 비가 오는 날씨에 우산도 바치지 않고 마중을 나오셨다.

필자는 두 시인을 서로 인사 소개시켜 드리려 마음먹었으나 서로가 알아보고 반가운 나머지 한참 동안이나 악수로 잡은 손을 놓지 못하며 흔드신다. 두 분은 중앙대학교 선후배간이고 이미 만난 사이라고 이후재 시인께 들은 바 있다.

시인의 집은 몇 굽이를 돌아 작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댁 안으로 들어서니 사모님께서 치마저고리가 모두 자주색인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고 때마침 따님도 다니러 온 지라 함께 다과상을 내어왔다. 사모님을 뵈니 참으로 단아하시다는 인상과 함께 교육자의 아내로서의 말없이 내조로 따라오신 검소함의 손길이 집안 곳곳에 배어있었다.

거실은 밖이 환히 내다보일 만큼의 큰 유리창으로 되어있었고 밖에는 토종 소나무 몇 그루와 철쭉 등의 작은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잔디밭 정원이 꾸며져 있었고 멀리 언덕 아래로 교회당이며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집 안은 난 화분 등과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성교 시인의 본은 우계로 우계(羽溪)는 강원도 강릉(江陵) 남쪽에 위치했던 신라 때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의 우곡현(羽谷縣)이었는데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우계(羽溪)로 고쳐서 삼척군(三陟郡)에 속했고, 1018년(현종 9)에 강릉(江陵)에 속하였다. 우계 이씨(羽溪李氏)의 시조(始祖)는 알평(謁平)의 후손으로 고려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좌복야를 지낸 이양식(李陽植)이다. 그의 아들 순우(純祐)는 의종(毅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으며, 경주(慶州)에서 우계(羽溪)로 이거(移居)하였다. 그 후 양식(陽植)의 5세손으로 예빈경(禮賓卿)을 지낸 구(球)에 이르러 경주 이씨(慶州李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우계(羽溪)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남한(南韓)에 약 3500가구, 1만5천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성교 시인은 부인 김갑순( 金甲順 ‧ 73세 ‧ 慶洲金氏)여사와의 슬하에 장남 선웅(善雄. 47세), 둘째아들 선하(善河. 43세), 셋째 아들 선주(善周. 41세) 등의 세 아들과 고명딸 선경(善卿. 39세) 등 3남 1녀가 있다.

그러면 이성교 시인과의 취재를 호칭을 생략한 채 대담 형식으로 싣는다.

김순진 : 선생님! 오늘 저희 스토리문학을 위해서 이렇게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마도 이번 호엔 독자들이 선생님의 취재 글을 보고 많은 감동과 배움을 얻을 것 같습니다. 이후재 시인은 저희 문예지로 나온 시인입니다. 오늘 이렇게 평소 존경하는 두 분과 함게 취재를 하게 되니 영광이고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의 앞날에 대한 희망이 보입니다.
이후재 : 교수님! 이게 얼마만이지요? 한 20년 되었나요?
이성교 : 네. KBS교양프로그램에서 이 아나운서를 만났던 그때가 아마도 1980년대 초 쯤 될겁니다.
이후재 : 네에.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그래도 교수님께서는 예전모습 그대로십니다.
이성교 : 그럴 리가 있나요. 세월은 가시로도 못 막는다는데…….
김순진 : 아니에요. 정말 건강해 보이세요. 이제 환갑 갓 넘으신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성교 : 허허허. 늙은이 놀리면 못씁니다.
김순진 :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아니에요. 정말 젊어 보이십니다. 약주는 좀 하시나요?
이성교 : 아니요. 저는 믿는 사람이라 술 담배는 않습니다.
이후재 : 네에……. 아마 선생님께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나가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성교 : 네. 맞습니다.
김순진 : 오늘은 특별히 취재란 형식을 빌지 말고 그냥 좌담형식으로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시는 언제부터 쓰게 되셨나요? 영향을 받은 스승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성교 : 내가 시를 쓰는데 있어 스승은 크게 세 분이 있습니다. 그 중에 처음 길을 열어준 분은 강수원 선생님이십니다. 강수원 선생과의 인연은 멀리 거슬러 올라갑니다. 강릉공립상업중학교 다닐 시절 선생님께 국어를 배웠지요. 아주 열정적인 분이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미혼이셔서 기숙사에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프린트로 ‘대관령’이란 타블로이드판 신문(월간)을 내시고 계셨지요. 그 신문에 내 시가 처음 발표되었었습니다. ‘이상(理想)’이라는 시였지요.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폐질환을 앓으셔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와 동창생 몇몇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선생님을 찾던 중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에 있었던 대한 광업회에 근무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었습니다. 거기서 시를 쓰시는 구자운 선생도 만나게 되었지요. 나는 그 무렵 강수원 선생께서 졸업하신 국학대학에 매력을 느껴 입학하였고 1956년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데뷔하게 되었던 거지요. 그 후 선생님은 대한교육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새교육」, 「새한신문」등에서 편집국장, 주간 등을 맡으셨고 나는 ‘성신여고’와 ‘성신여대’에 근무하면서 가끔 선생님을 찾아뵈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필명은 강말주였는데, 강말주 시인님은 나에게 처음으로 시에 눈을 뜨게 해 주신 스승이지요.
이후재 : 강수원 선생님 말고 또 한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성교 : 네, 또 나에게 시심을 일깨워 주신 분이 있다면 이용섭 선생님이십니다. 이용섭 선생님 역시 강릉공립상업중학교 다닐 시절에 국어선생님이셨지요. 저는 그 선생님의 첫 수업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교단에 들어서자마자 대관령을 넘어 온 내용의 자작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또 선생님은 말씀도 청산유수처럼 잘 하셨지만 중요한 교과의 문장을 다 외워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특히 선생님은 시를 많이 외우고 계셨습니다. 시를 외우시며 그 시 속에 잠긴 표정은 보통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시는 최석두의 ‘별이 날아가는 밤’이었습니다.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매우 가깝게 지내던 중 6.26전쟁이 터졌고 선생님이 북으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팠습니다. 선생님의 생사조차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은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때론 지금도 가끔 마음이 공허할 때면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김순진 : 그 두 분은 청소년기의 스승님이시고 정식으로 문단에 나오실 때 이끌어주신 분이 있나요?
이성교 : 무엇보다도 잊지 못할 스승 한 분을 말씀드린다면 미당 서정주 선생님이십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을 만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큰 뜻을 품고 서울에 왔을 때입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화사집」, 「귀촉도」에 있는 시를 베껴가지고 외우고 다녔지요.
내가 처음 <현대문학>에서 추천을 받게 된 것은 1956년 9월이었습니다. 이때는 <현대문학>지가 창간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추천의 관문은 여간 좁은 것이 아니었지요. 그것은 종전에 나오던 <문예>지가 폐간 된 이후 많은 신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주 건방진 이야기지만 아주 쉽게 추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오히려 우습지만 그때 문단 상황으로 봐서는 자칭 행운아였다고 할까요? 정말 대학 3학년 때 문단에 나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좀 어리석은 이야기 같지만 내가 문단을 꿈꾼 것은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습니다. 그때 중앙에서 대학 진학생들을 위한 <수험생>이란 잡지가 나왔는데, 거기엔 한 두 페이지를 할애하서 학생문예란 란이 있었습니다. 나는 시골학생으로서 정정당당히 시재를 인정받고는 계속해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또 <문예>에 투고를 했었지요. 그때 강릉에는 황금찬, 최인희, 함혜련, 이인수, 김유진 선생 등이 하는 ‘청포도’동인회가 있었는데 aen들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청포도>동인 중 최인희 선생은 <문예>지에 추천을 걸쳐놓고 있었지요. 모두 다 <문예>에 대뷔하길 은근히 바랐습니다만 전쟁을 겪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문예>지는 제때에 나오지 못했지요.

이후재 : 젊은 시절 시 공부는 어떤 식으로 하셨나요?
이성교 : 그 무렵, 강릉에는 학생 시동인지가 생겼습니다.  그것이 ‘산초원’이란 동인이었지요. 여기에는 강릉농업학교의 김남형, 강릉상업학교의 이성교, 강릉사범학교의 박춘희, 강릉여자고등학교의 임인진, 임영남제씨 그렇게 남학생 둘, 여학생 셋 해서 모두 다섯 명의 모였었습니다. 우리 동인들은 모두 대학 진학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합평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일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순진 : 네에. 정말 대단하시네요. 고등학교 때 그렇게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시다니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선생님께서는 청소년기부터 두각을 나타내셨네요.
이성교 : 과찬입니다. 내가 미당 선생님을 직접 뵙게 된 것은 대학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시 지망생인 故 이성환 군을 따라 당시 남산에 있던 서라벌예대에 갔을 때입니다. 그 때 선생님은 서라벌예대에 출강하고 계셨지요. 첫 인상은 동네 이장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푸근하고 다정하신 분이었지요. 어느 토요일 오후 주소를 들고 선생님의 자책을 찾아갔었습니다. 대문에 徐廷柱란 문패가 걸려있었지요. 하얀 한복을 입고 계시더군요. 그 후 두 번째 선생님 댁을 찾아가서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시가 꽤 좋구만. 열심히 하면 되겠어.”칭찬해 주시더라구요. 나는 그것에 용기를 얻어 시창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강릉으로 모신 적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가 결혼할 때 교회에서 하게 되었는데 불교신앙이 깊으셨던 미당선생님 내외분께서 교회당에 찾아오셔서 축하해 주셨다는 것은 정말 남들에게도 부러운 일이었고 나에게도 잊지 못할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현대문학에 추천해 주셨고 등단 10년 만에 시집「山吟歌」를 내었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성교를 보는 것은 솔로몬의 노래調로 말하자면 무더운 여름에 향그러이 불어오는 시원스런 바람 같다고 할까. 그것도 메마른 데를 부는 바람이 아니라, 석류라든지 그런 꽃나무의 열매들도 많이 익고 있는 무성하고 기름진 맑은 항구를 불어 닫는 바람을 보는 것 같다. …… 그의 강원도적인 골격과 풍류와 서정을 담은 여러 시편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민족의 칭송을 받을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분에 넘치는 찬사를 주셨지요.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시기에 때론 고독하지만 그 어른이 남겨 놓으신 많은 시와 사랑의 그림자로 가끔 위안을 받습니다. 나는 우리 문학사에 최고의 시인을 은사로 모신 것을 늘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이후재 : 교수님께서 시를 써오시는 데 있어서 강조하거나 넣으려는 주된 정신은 무엇입니까?
이성교 : 사는 것도 진지해야 하듯이 시를 쓰는 것도 진지해야 한다는 것이 시를 접함에 있어 저의 생각입니다.  시작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진실이 생명입니다. 진실 앞에는 모든 것이 누그러들게 되어 있습니다. 시작에 있어 이 진실(내용)이 큰 바위를 움직이게 하듯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요즘은 문학지가 하도 범람을 해서 아무나 등단하고 글을 씁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의 글을 보면 참으로 미숙한 데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글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드는데서 오는 결과라 여겨집니다. 글을 쓰면 일단 글 쓴 사람의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어 상대방에게 읽혀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갖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글의 요건인 ‘주제’, ‘구성’, 표현‘ 등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표현 면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특히 시에 있어서는 언어가 생명이므로 표현에 알맞은 고도의 시어를 선택해서 써야 하는 것입니다. 시작(詩作)에 충분히 수련 받지 않고 쉽게 나온 사람들이 시를 함부로 씁니다. 그리고 그 것을 버젓이 책으로 내서 시인행세를 합니다. 여기에 시의 혼잡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닐케도 시의 생명을 체험에 두면서 시를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하여 경고했습니다. 시르 쓰려는 사람에게 “네가 정말 쓰지 않고 못 배길 그 무엇이 있느냐? 그 때에 써라.”고 했습니다. 시를 아무렇게나 장난삼아 쓰지 말고 꼭 써야 할 때 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니까요.
김순진 : 선생님은 시에는 고향의 정서가 많이 들어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시에 있어서 고향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성교 : 누구에게나 고향은 아름다운 것처럼 고향을 그리는 글은 아름답습니다. 그 속에 고향의 산천이 담겨 있고 어릴 때 자라던 시절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고향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는 고향을 떠나 그리워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란 말이 나온 겁니다. 저는 요즘에 와서 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많은 일 가운데 시를 써 왔는가? 나이가 좀 들다보니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시를 쓴 것이 참 잘한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인은 자기 나름의 길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닦은 길에서 새로움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 시인 나름의 독창적인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엄격한 의미에서 자기 체질이 있는 것이지요. 쉽게 말하면 태양인이니 태음인이니 소음인이니 소양인이니 하고, 동물성체질이니 식물성 체질이니 나누듯이 시도 마찬가지로 몇 가지의 성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재 면으로 볼 때 도시적이냐 전원적이나, 감정의 활용 면으로 볼 때 주지적이냐 주정적이냐를 나눈다고 본다면 내 시는 아무래도 향토적인 시, 주정적인 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시골 태생입니다. 그래서 자연과 향토적 생활이 밑받침되어 있지요.
가끔 사람들은 나를 강원도 촌사람이라 평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습니다. 내 시집의 제목도 「겨울바다」, 「보리 필 무렵」, 「눈온 날 저녁」, 「남행길」, 「강원도 바람」, 「동해안」,  「운두령을 넘으며」 등으로 일관된 시의 방향으로만 써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전통적인 정서를 큰 분위기로 한 시를 쓰고 있지요. 사실 나는 요사이 많은 젊은 시인들이 어지러운 시, 새로운 유행의 시, 소위 뻔드럼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는 닮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부쩍 고향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특히 자랄 때의 여러 마을의 이야기를 쓰고 싶네요. 나름대로 로칼 칼라가 드러날 줄 압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시를 쓸 소재는 무궁무진 남아있는 셈이지요. 하하하. 
이후재 : 처음 쓰러 나오는 사람들이나 신인작가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이성교 : 시를 처음 쓰는 사람들은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 생활을 노래했으면 합니다. 무슨 새로운 시라고 해서 거기에 무작정 쫓아가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새로운 시’의 개념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형식보다 그 속에 담는 알맹이(정신)가 새로워야 합니다. 시가 무슨 유행물입니까? 남들이 새롭다고 해서 거기 따라갔다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늪에 빠져 헤쳐 나오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요즘 큰 서점에 가면 진열대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시집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모두 ‘새로운 시집, 인기 있는 시집’이란 얼굴을 하고서 말이지요. 소위 베스트셀러라 하는 시집들이 이상한 제목으로 우리의 눈을 끌고 있지요, 이런 시집의 주인공은 대개 젊은 층입니다. 소위 새로운 시를 쓴다는 명목으로 나온 시인들이지요. 이들의 시를 읽고 분석해보면 우리의 것보다 서양 시, 한 때 유행했던 시풍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시를 쓰고자 하는 의욕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우선 우리 시를 알아야 합니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새로운 시에 절대로 현혹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자기 생활을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 시인 가운데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시인들이 있습니다. 그 시인들은 저절로 명성을 얻은 게 아니지요. 그런 시인들의 시를 열심히 읽어줄 것을 권합니다. 시집을 읽지 않고 시를 쓴다는 것은 스승  없이 공부하는 것과 같지요.
이후재 : 한국 문단의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 어떤 것이 고쳐져야 하고 어떤 점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성교 : 한국문인협회에 가입된 회원 수가 7,000여명이 넘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풍성한 문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6.25전까지만 하더라도 70여명이 넘지 않았다는데 불과 50년 만에 그 백배의 숫자가 증가한 셈이지요. 문단의 숫자로 보나 문예지의 수로만 볼 때는 문학의 전성기나 문학의 르네상스라 보기 쉽습니다. 수백 종의 발표지만 하더라도 고기를 가득 잡아 실은 만선 배처럼 발표된 작품이 어마어마합니다. 발표지도 많거니와 한 사람이 3편에서 많게는 수십 편까지 발표되기도 합니다. 한국문인협회의 기관지라 할 수 있는 <월간문학>의 경우에도 한 달에 수 백편의 작품이 발표되고 그 외에는 별로 읽을거리가 없습니다. 문예지가 단순히 발표의 장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문학지의역할은 작품 발표의 광장이 될 뿐 아니라 문단의 이지가지 소식,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 이론 등 일종의 문단 백화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순진 : 그럼 문학지가 꼭 지켜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저희 스토리문학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세요.
그런 점에서 스토리문학은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우리 한국문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발표지(월간지, 계간지 포함)가 많다 하더라도 함부로 신인을 배출해서는 안 됩니다. 문예지 운영을 위해서 아무나 원하는 사람을 다 내보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임시는 몰라도 문인으로 등장하는 실력은 말이 아니고 그 문인을 내보낸 발표지의 체통은 자연 땅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그런 문예지에서 아직 문학수업도 덜 한 사람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하찮은 작품을 가지고 추천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습니다. 심사위원은 진실로 자신이 심사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문단이 잘못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또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있으니 그것은 잘못된 문인단체의 선거풍토입니다. 투표를 하자니 사람 수를 중요시하며 네 패, 내 패를 만들어 작당하는 모습이 꼴불견입니다. 문인단체는 모름지기 문인들의 권익옹호와 친목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다 했을 때 소속해 있는 문인들이 글을 잘 쓸 수 있고 문인으로서의 긍지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순진 : 잘 알겠습니다. 명심해서 좋은 문학지 만드는데 힘쓰겠습니다.  오늘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귀한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귀한 말씀 들려주신 이성교 시인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다음은 문학평론가들의 이성교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평가와 시 3편을 실어 이성교 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져 한다.

시의 공간은 이짐에 따라, 시인에 따라 각기 공간 설정을 달리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시인마다 시적 지향이 다르고, 실현하고자 한 시세계가 다르며 그 때문에 시세계나 시적 공간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소의로 해서 시는 각기 다른 공간이나 세계를 창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성교 시인의 시적 공간 전제한 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이성교 시인이 설정한 시적 공간이 共時的 이동과 通時的 이동에 따라 각기 그 세계나 모습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시적으로는 고향이라는 시의 배경 내지 대상으로서의 공간을 산이라는 현상학적 공간에서 바다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수평 이동, 시적 대상이나 배경을 달리 펼치고 있기 때문이고, 통시적으로는 공시적으로 이동된 시의 공간이 지상과 천상으로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수직적으로 새워지면서 지상에서 천상적 상위모방으로시적 공간이 설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구체화하면 첫 시집 「山吟歌」는 산을 중심자리에서 설정하고 구심점으로 작용하게 함으로써 그 구심점에서 파생하는 원심력의 자리에 고향의 여러 풍경들을 펼쳐 현상학적 구체성으로 진열하다가 다음 시집 「겨울바다」에서는 뭍으로서의 시적 공간이 바다라는 새로운 현장으로 이동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시집 「南行길」, 「하늘 가는 길」에서는 지상적 공간이 천상적 공간으로 이동된다. 또 시집「東海岸」에서는 고향이 강원도로, 강원도에서 동해안으로 여러 양태를 드러내고 있다.
- 박진환,「한국현대시인연구」

이성교 시인은 1956년 <현대문학>에 ‘노을’, ‘혼사’, ‘윤회’등의 작품을 통해 등단한 이래 「산음가」, 「겨울바다」를 비롯하여 7권의 시집을 간행했다. 현대문학상, 월탄문학상 등을 받으며 1950년대의 중요한 시인으로 부각된 그는 ‘고향의 자연, 그 토속적 정한 세계를 노래해온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6년에 낸 그이 첫 시집 「山吟歌」서문에서 서정주는 이 시집이 ‘강원적인 골격과 풍류와 정취’를 노래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시세계는 근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김소월이 평안도를, 박목월이 경상도를, 서정주가 전라도를 각각 노래했다면 이성교는 강원도를 노래했다”는 윤병로의 적절힌 저적처럼, 그이 시는 강원도라는 지역과 밀착되어 있다. 
그러니 이성교 시인의 시세계를 얘기하면서 강원도를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시가 등단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고향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원도의 서정을 이성교 시인만큼 잘 그려낸 시인이 없기 때문이라는 요인이 더 크다. 이성교 시인의 시에 있어 특징을 말한다면 빛 ‧ 물 ‧ 바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이미지들은 강원도와 관련한 시의 특징이라기보다 그의 시 전체를 떠받치는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시에 있어서 이들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 한명희,「두타문학」2005년 겨울호

포도물이 지도록
비만 내려서
이제는 미친년의 옷깃같구나-

이성교 시인의 첫 시집인「山吟歌」의 서두에 있던 아름다운 시 ‘산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와 같이 꾸밈없고, 이와 같이 절절한 목소리로 스며드는 그이 독특한 시법은 줄곧 변함이 없다. 그러한 중에도 이번 일곱 번째 시집인「동해안」은 그에게 현대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첫 시집 「山吟歌」의 꼬리를 물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이제 그의 일관된 세계가 둥근 원으로 완성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그의 시를 눈여겨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할 수 없는 신뢰를 심어주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성교 시인이 일관된 시세계를 지탱하는 관건은 신기할 정도로 유년의 순결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시적 대상 앞에서의 놀람, 웃음, 슬픔의 정서들을 그는 곧바로 펼쳐놓음으로써 일체의 수식이나 편견 없이 의식의 현존성을 포획해 낸다. 즉, 그만큼 대상과의 교감이 빠르다. 直感力이 남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우주와의 교감이 보다 수월했던 유년의 순결한 의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성교 시인이 뜨거운 애정으로 환기시키는 세계는 그가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고향으로부터 비롯된다.
- 한영옥 시인·성신여대 교수


눈온 날 저녁 외 2편

이성교

눈 온 날의 저녁은
공연히 가슴이 설렌다.
아무 집에라도 들어가
무엇을 마구 얘기하고 싶다.

온 세상이 눈에 쌓였는데
바다만 유난히 파란 얼굴을 하고
소리치고 있다.

언제쯤 울릉도 형님이
바다를 열고 오실까.

집집마다 추녀 끝에는
설날 고기가 풋풋이 말라가는데
어디서 도둑고양이가 그렇게 우는지

눈온 날의 저녁은
눈이 맑아진다.

깊은 잠 속에 묻혔던
영혼의 불빛이 비쳐온다.



가을 운동회

둥둥 북소리에
만국기가 오르면
온 마을엔 인화(人花)가 핀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연신 터지는
출발 신호에
땅이 흔들린다.

차일 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

하루 종일 빈 집엔
석류가 입을 딱 벌리고
그 옆엔 황소가
누런 하품을 토하고 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온갖 산들이
모두 다 고개를 늘이면
바람은 어느 새 골목으로 왔다가
오색(五色) 테이프를 몰고 갔다.


해안선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면
눈 맞는 이가
또 있을까.

어쩌다 뭍으로 나온
파란 선(線)위에
허연 물거품이 인다.

날마다 수천 마리의
양(羊)떼를 몰고 온 바다

후미진 마을마다
밀선(密船)이 닿는데
눈을 들면 눈이 젖어 오고

손을 들면 손이 젖어 온다.
이젠 아픈 머리도
저절로 쑤욱 들어갔겠지.

저 바위를 돌아 나가면
수없이 안개는 피는데
포구(浦口)마다 게딱지처럼
반짝이는 눈

물 위에 숱한 길이 흩어지고
해파리는 고향에 가고파
몸을 일렁이고 있다.

이성교 시인 연보
1932년 음력 2월 초하루(양력 11.29)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월천리 234번지에서 부 李德弼, 모 金玉蓮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초등학교 입학 전 어머니한테서 한글을 깨침.
1942년 가친이 일본인 교장과 심한 언쟁(사촌형 퇴학문제 항의로)을 벌인 뒤 초등학교 입학시험에서 3번이나 떨어지고 11세 때 이천간이학교(2년제)에 입학함.
1944년 일본인 교장이 가고 난 다음 호산초등학교 3학년에 편입함.
1948년 호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7월에  강릉공립상업중학교에 입학함.
1951년 1 ․ 4후퇴 때, 방위군으로 소집되어 울산 방어진으로 가는 도중 경주에서 친구들과 도주하여 귀향, 집에 왔으나 심신의 피로에다 돌림병(장질부다)에 걸려 석달을 누워 앓음. 제일 마지막 앓은 어머니가 식구들 간호 끝에 7월에 세상을 떠남(향년 37세). 중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학제에 의하여 강릉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함. 이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믿으시던 하나님을 영접하고 강릉중앙감리교회에 나감.
1952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중앙에서 나오던 대학 입학 수험지 「수험생」 문예현상 모집에 ‘남매’라는 작품이 당선됨. 이때부터 시인이 될 것을 생각하고 습작함. 이때 시내 고등학교 우수 시지망생인 감남형, 박춘희, 임영남, 임인진 등과 함께 ‘산초원’ 시동인회를 구성하고 매주 한 번씩 모여 합평회를 함.
1954년 강릉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국어선생인 강수윈 선생(시인 강말주 선생)이  졸업한 국학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서대문 영천 산꼭대기 하숙집에서 서울신문 시 당선자 김낭형과 함께 열심히 시 습작함.
1956년 대학 3학년 때 「현대문학」지 9월호에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시 ‘윤회’가 초회 추천됨. 이때부터 시인으로 자처하며 명동을 무대로 많은 문인들과 교우, 강릉에서 올라온 김남형, 임인진의 발기로 시내 대학문학지망생 윤병로, 이성환, 김여정, 이 훈 등과 청년문학회를 조직하고 대학으로 순회하며 작품 발표회를 가짐. 이런 가운데 「현대문학」 12월호에 2회 추천작품 ‘혼사’갈 발표됨.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관령을 넘다가 버스가 눈에 막혀, 진부여관에서 이틀 묵은 뒤 다시 이틀 길을 걸어 대관령을 혼자 넘었음.
1957년 「현대문학」 2월호 ‘노을’로 3회 추천이 끝나고 시단에 정식으로 등단함.
1958년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기 전, 더 공부할 욕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그때 한강철교가 아직 복구되지 않아 가교로 건너다니다가 입영영장이 나와 입대 후 육군 제2훈련소본부에서 「연무신문」을 편집함.
1959년 복무 중 대학원생 학보병 귀휴조치를 받고 1년 6개월 만에 군복무를 마침.
1960년 1월 11일. 용산 남영동교회에서 김갑순과 결혼식을 올리고 청파동에서 살림 시작.  그해 4월 성신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 여기에서 4․19혁명을 겪고 이해 12월 31일 장남 선웅 출생.
1961년 「현대문학」과 「문학예술」출신 시인들로 구성된 「60년대 사화집」(이경남, 박희진, 성찬경, 구자운, 박성룡, 박재삼, 신기선, 이창대, 허소라 제씨) 동인에 가담하여 의욕적으로 작품을 발표함.
1963년 같은 학원 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옮겨, 여고 문예반 지도를 맡음.
1964년 7월 18일 차남 선하 출생. 9월에 중앙대학교 석사과정에서 「한국현대시의 리리시즘 연구」로 수료.
1965년 시단에 데뷔 후 10년간의 작품을 모아 첫 시집 「산음가」를 출간하고 그해 겨울에 ‘호수그림’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짐.
1966년 첫 시집 「山吟歌」로 현대문학사 제정 제 1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 특별히 이 해  문예반 학생들이 뛰어나 이대 주최 전국여고문예콩쿨에서 전국1등(종합 우승)을 하여 학원 설립 이래 처음으로 문예여고의 이름을 떨쳤음. 이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를 기해 삼남 선주 출생.
1967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으면서 우석대학과 성신여대 두 대학에 출강함.
1968년 고등학교를 사임하고 성신여자사범대학 전임강사로 부임. 이 때 성신여자대학학보 주간 직을 맡아 계간지를 월간지로 발전시킴. 처음으로 문학단체에 관여하여 한국문인협회 이사가 됨. 12월 1일 장녀 선경 출생.
1970년 조교수로 승진하고 구인환, 윤제천과 함께 3인 수필집 「시성의 눈」출간.
1971년 두 번째 시집「겨울바다」를 한국시인협회편으로 내고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으로 활약.
1973년 구인환, 윤제천과 함께 대학교재 「신문장」공저 출간.
1974년 중앙대학교 문리대에 출강과 함께 세 번째 시집 「보리필 무렵」출간, 여기에 들어있는 시 ‘가을 운동회’가 국정교과서(중학국어 1-2)에 실리게 됨.(10년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로 활약.
1975년 부교수로 승진하고 구인환, 윤제천, 윤종혁, 최승범과 함께 5인 수필집 「정겨운 대화들」출간.
1977년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맡아 회장 박목월 선생을 보필함.
1978년 한영환 교수와 함께 대학교재 「문학개론」공저 출간.
1979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 한국크리스찬문학가협회 이사. 네 번째 시집 「눈온 날 저녁」출간하여 10월에 제14회 <월탄문학상> 수상, 이때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수상식을 갖지 못하고 그 대신 월탄선생 댁에서 조촐하게 시상식을 가짐.
1980년 대학시절 몸담았던 세계대학봉사회 한국본부 이사로 피선됨.
1981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승진.
1982년 첫 수필집 「영혼의 달」, 첫 시론집 「현대시의 모색」, 3인 공동 신앙시집「영혼을 잠들지 않고」(황금찬, 유안진 등) 출간
1984년 이 해는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 중앙대학교 문학박사학위 취득과 동시에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로 장립. 가을에 시선집 「대관령을 넘으며」출간. 12월에 대한민국 국민포장 수상. 아울러 고향에서 <자랑스러운 군민상>도 수상함. 한국문화예술인선교회 회장으로 피선됨. 이 해 말, 큰 결심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순복음총회신학교에 입학하여 다음해 졸업함.
1985년 「한국현대시연구」, 동시집「우리 아버지집」(장수철, 엄기원, 홍선주, 김상길 공저) 출간.
1986년 성신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역임, 9월에 다섯 번째 시집 「南行길」출간. 중앙대학교 박사과정 강사 출강.
1987년 새로 창간된 <국민일보>, 순복음신학대학 이사로 피선.
1988년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로그스교수선교회 회장 피선.
1989년 종로서적에서 선정 출간하는 신앙시집 「하늘 가는 길」출간.
1990년 순복음신학대학 강사로 출강. 성신학원 30년 근속상 받고, 문교부 해외파견 교수 계획에 의하여 1년간 일본 히로시마대학 객원교수로 다녀옴.
1992년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회갑 기념으로 시집 「강원도의 바람」, 수필집 「구름 속에 떠오르는 영상」출간.
1993년 「현대문장작법」공저 출간, 그해 여름 대학교수 해외연수 계획에 의하여 중국 교육 시찰함.
1995년. 성신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역임.
1996년 일곱 번째 시집 「東海岸」출간.
1997년 중국 연변에서 개최한 제 3회 국제문학심포지엄에 한국대표로 참석.
전년도 발간한 시집 「東海岸」으로 제 15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


저서
시집「산음가(山吟歌)」, 「겨울바다」, 「보리 필 무렵」, 「눈 온 날 저녁」, 「남행(南行)길」,  「하늘 가는 길」, 「운두령을 넘으며」,「소망의 나무」,「강원도의 바람」,「東海岸」
공동시집「60년대 사화집」,「영혼을 잠들지 않고」
동시집「우리 아버지집」
수필집「영혼의 달」,「정겨운 대화들」,「시성의 눈」, 「구름 속에 떠오르는 영상」
연구서「한국현대시의 리리시즘 연구」,「신문장」,「문학개론」, 「현대시의 모색」,「현대문장작법」

[월간 스토리문학 2006년 4월호 '메인스토리' 수록]



■ 김순진
△시인·소설가
△월간《스토리문학》발행인
△도서출판 문학공원 대표
△저서 『광대이야기』외 7권


 ['문사탐방(포커스)' 및서베이. 본 코너는 각 문예지에서 기획취재 수록한 '문사탐방' 기사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취재 및 수록 시점을 불문합니다. 가치있는 기사는 가능한 한 많은 독자에게 읽혀지고 항구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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