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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04월1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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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100년을 점검한다

(이 글은 한국문인협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계절문학》 창간호(2007.겨울호)에 특별기획으로 수록된 내용입니다.)


현대문학 100년을 점검한다 
― 시 100년


성찬경 (시인·예술원 회원)
성춘복 (시인·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송배 (시인·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사회 이강렬 (극작가·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주간)
정리 차윤옥 (시인·한국문인협회 사무차장)



사회자_ 사상가 볼테르는 일찍이 "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라고 했습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경제와 산업화의 논리에 밀려 문학이 극도로 침체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시어가 어느 때보다도 의미와 가치와 위안을 안겨 줍니다. 아시다시피 매년 11월 1일은 '시의 날'입니다. 아마도 최남선이 신시라는 이름으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1908년 11월 『소년』지에다 처음 발표한 것을 기념하여 제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8년도는 우리 현대시의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문학 의 100년을 점검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고, 앞으로 이 좌담은 장르별로 이어질 계획입니다. 오늘은 시 분야에 대한 좌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찬경_ 우리 현대문학이 출발한 지 100년이 됐다니 감회가 큽니다. 그 동안 우리 시문학은 참으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였지요. 우리 현대시의 시발점이라 여겨지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보면 알 수 있습 니다. 오늘날에는 시를 습작하는 소년, 소녀도 이렇게 쓰지는 않을 겁니다. 기교면에서나 내용면에서 100년이란 세월의 부피만큼 크게 성장을 한 것이지요. 돌이켜보면 100년이란 세월은 그야말로 고난의 시기여서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3분의 1 정도, 광복이 되어서 감격할 겨를도 없이 터진 6·25전쟁,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 그런 와중에서 우리 현대시가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성장을 했으니, 우리시의 생명력이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우리 시의 모습이 충분히 만족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 성찬경


김송배_ 말씀하신 것처럼 흔히들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기점으로 신시 100년, 신문학 100년이라는 표현으로 우리 문학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신문학' 이라는 용어 개념부터 정리해야 할 줄로 압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 문학 연구자들과 평론가들도 이 용어에 대해 정확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 같습니다. 1
967년 12월호 『현대문학』에 '신문학 60년 기념 100 인 시선'을, 1968년 l월호에 '신문학 60년 기념 특집'으로 평론가들이 중심이 되어 대표 시인, 작가론과 현황과 방향 등을 진단하는 글들이 부록으로 실린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표현한 '신문학'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지금 100년을 맞으면서도 '신문학'이라는 어휘가 합당한지는 약간 의문스럽습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한국문학 100 년'이나 '현대문학 100년'으로 정의해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춘복_ 우리는 문학의 태동기를 육당과 춘원의 시대라 하며, 이들을 '신문학의 개척자'라는 표현으로 회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에서는 육당이 『소년』과 『청춘』지를 주재하면서 신시의 형성과 전개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지요. 그 후에 창간된 『태서문예신보』에 김억 등의 창작시와 베를레느 등의 영시를 번역하여 수록함으로써 우리 신시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데, 신시의 출발점은 아무래도 「경부철도가」라든가 기독교의 찬송가, 혹은 창가에 대한 새로움이 문화 일반으로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_ 1920년대와 1930년대는 동인지 태동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현대시가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김송배_ 그렇습니다. 1919년 3·1운동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강한 독립 정신으로 1920년대에는 많은 문예지와 종합지 그리고 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1919년에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 문학은 계몽주의 성격을 벗어나 근대문학의 시조인 『창조』가 창간되고 여기에 수록된 주요한의 「불놀이」 등의 작품이 반자유 음율의 신시로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고 봅니다. 이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되어 우리 신문학운동에 등불 역할을 했고, 『개벽』 『폐허』 『장미촌』 『조선지광』 『동명』 『백조』 『금성』 『조선문단』 『폐허이후』 『영대』 『생장』 『해외문학』 『문예시대』 『삼천리』 『문예공론』 『조선문예』 등이 창간되어 우리 문학의 새 터전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미촌』에는 변영로, 황석우, 노자영, 박영희, 박종화 등이 참여하여 스스로 자유시의 선구자라고 일컬을 정도로 시의 형태나 제재, 표현 등에서 자유형과 감각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냈습니다. 특히 『백조』는 『장미촌』의 전신으로 나빈, 홍사용, 노자영, 박종화, 이상화, 오천석, 이광수, 박영희, 현진건, 김기진 등이 시뿐만 아니라 소설, 수필, 희곡, 평론, 번역까지 망라하는 종합문예지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성춘복_ 양주동이 『금성』을 주재하여 삶을 소재로 하는 경향과 번역시를 소개했으며 김동환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 중반에는 오상순 등이 『폐허이후』에서 허무를 주조로 한 창작시를 위주로 했지요. 『영대』는 서구의 서정시 번역을 위주로 한 문예지였습니다. 『조선문단』은 순문학과 민족문학을 지향한 것 같고, 『해외문학』은 당시 일본 유학생이던 김진섭, 이선근, 정인섭, 이하윤의 발기와 이헌구, 김광섭 등의 가입으로 해외문학연구회가 결성되어 기관지로 발행했습니다. 1930년대에 와서는 초기에 박용철 발행의 『시문학』에 김영랑, 변영로, 신석정이 활동하고 『문예월간』 『신인문학』 『삼사문학』 『시원』 『예술』 등의 지면이 새로 생기면서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김팔봉, 김수영, 노천명, 피천득, 이무영, 장서언, 오일도, 이회승, 김용호 등의 활동이 두드러집니다. 이들은 언어의 혁명을 이룬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송배_ 1930년대 후반에도 『사해공론』 『시인부락』 『낭만』 『조광』 『시 건설』 『시인춘추』 『백지』 『인문평론』 『문장』 등 시문학 발전의주축을 이룬 잡지들이 출현했습니다. 특히 『시인부락』에서 서정주, 오장환, 김광균, 김달진, 김동리 등의 활동이 돋보였고, 『문장』에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청록파가 탄생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성찬경_ 저는 이 시기의 우리 시사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역시 시인 정지용과 이상의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기림도 있네요. 정지용이 열어 놓은 시의 새 국면은 가히 우리 시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용 이전의 시와 그 이후의 시를 비교해 보면 정서의 성숙도와 표현의 기교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정지용 시인이 정서와 감각을 시적 심상으로 일치시킨 점, 거기에 따르는 교묘한 은유 사용의 솜씨, 이런 것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실지로 정지용은 기가 막힌 명시를 남겼습니다. 쉬운 예가 회자되는 저 「고향」「향수」같은 시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시인도 어느 의미에서는 정지용을 능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될 정도입니다. 특히 정지용이 발굴했다고 하는 이상(김해경)의 출현도 경이적인 사건이며 지금도 그 신선한 충격이 벅차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뭐랄까요, 한 마디로 우리 시에 새로운 '모더니티'의 개념을 끌어들인 점이죠. '모더니티'라는 말의 개념도 단순히 정의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현대사회와 현대사의 복잡하고 불안한 요소'를 '모더니티' 개념의 하나라고본다면 바로 이 점이 이상에게 들어맞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상의 경우는 '일제'의 압제에서 오는 슬픔과 불안과 울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수수께끼 같은 난해성으로 나타나는데, 이 난해성이라는 것이 일종의 위장술인 셈이지요. 이상은 처음부터 까다로운 표정으로 심중의 착잡함을 위장한 것입니다. 이상의 시에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처음부터 내장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시를 놓고 이렇게도 풀어 보고 저렇게도 풀어 보지만 도저 히 풀리지 않는 난해시다 이렇게 말하는데, 처음부터 풀 수 없게 만든 것을 풀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죠. 처음부터 풀 수 없는 수수께끼스러운 표정이 바로 이상 시의 정서적 내용이다, 이렇게 여겨 버리면 오히려 간단히 풀리는 거예요. 이렇게 시에 불가해의 표정을 한 '모더니티'를 도입했다고 하는 것이 이상의 시가 갖는 시적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이후 이상만큼 충격적인 현대시적 문제를 제기한 시인은 아직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시인 김기림은 서구의 새로운 시학적 기법을 도입한 선구자적 시인이라 하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요, 긴 시도 있지만 역시 김기림의 대표적인 시는 「바다와 나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시의 서정의 싱싱한 신선도는 오늘날에 와서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일제시대에 우리말로 시를 썼다면 그 일 자체만 가지고도 굉장한 애국자이며, 일제시대의 시인들에 대해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 이강렬


사회자_ 문학사에 있어 해방공간으로 불리는 1930~40년대는 어느 시기보다도 문학을 비롯한 뛰어난 예술작품들이 많이 나왔던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 다. 그건 아마도 식민지시대 일제의 문단통치를 이끎으로써 야기된 다양한 서구 근대문물의 유입 과정에서 오는 새로움과 대중들 역시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자본주의를 꿈꾸던 이율배반적인 환경에서도 기인한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 속에서 다양하고 복합적이고 서정적인 문화 환경 이 만들어졌고, 모더니즘의 경향도 그런 것들의 산물이라고 보여집니다.

성춘복_ 문호의 개방과 과도한 주의와 주장 및 경향들로 하여 다양한 실험의식이 시도된 시기였습니다. 그야말로 화려한 시의 꽃밭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격동기의 여러 모습으로 하여 좌절과 반성, 시도와 전개의 화려한 출발점을 보였던 듯싶습니다.
 
성찬경_ 굉복이 돼서 구사일생한 우리 민족의 해방에 감격하고 있을 때, 곧 우리 문단에서 벌어진 일은 정치논리에서 오는 좌우 이념대립의 양상이었습니다. 좌파의 논리는 처음부터 문학이나 예술을 정치에 예속시키는주장이어서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달가울 이유가 없습니다. 허나 이런 와중에서도 좋은 작품을 써 보겠다는 일념에서 문학 수업 자체에 전념한 작가들이 없을 리 없고, 오늘날의 우리의 문학적 성과는 이런 시인들의 노력과 은공이 크다고 말해야 되겠지요.
 
김송배_ 1940년대가 우리 시문학사의 격변기였다면, 광복을 맞으면서 일제 저항기와 광복 초기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 하에 우리글과 말을 말살하고 창씨개명 등의 압제에서도 윤동주, 이육사, 이상화, 한용운 등 저항시인이 있었는가 하면, 친일문학으로 기울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붓을 꺾 고 은신한 채 지조를 지킨 분도 많았습니다. 광복 초기의 혼란 중에서도 김윤성, 정한모 등이 동인지 『백맥』을,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3인시집 『청록집』을, 김광균, 변영로, 오상순, 박종화, 김영랑, 이하윤 등이 『해방기념시집』을 발간하는 등 새로운 도약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복 전후는 한 마디로 좌우의 대결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릅니다.

성춘복_ 아시다시피 외세에 의해서 광복을 맞았습니다. 그로 인해 38선으로 양단된 국토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이 대립합니다. 임화, 임학수, 조벽암, 이용악, 정지용, 김기림 등은 북으로, 반대로 김동명, 구상, 함윤수, 조영암, 양명문, 이인석 등은 남으로 왔지요. 그 이전에 우익측 문인들이 조선문화협회(박종화, 이하윤, 김영랑, 오상순, 김광섭 등)와 전조선문필가협회,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민족문학을 통한 독립촉선과 찬탁운동에 반대했습니다. 물론 임화가 중심이 된 조선문학가동맹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성찬경_ 저는 1956년에 등단했으니까, 저도 광복의 소용돌이에서 벗어 난 것은 아니었으나, 꼭 순수시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시로서 수준 높은 작품을 쓰겠다는 일념에 불타 있어서, 정치적인 영향은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자세로 시를 쓴 시인들도 많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구체적인 결실이 1961년에 시작하여 1967년에 제12집으로 마감한 『60년대 사화집』입니다. 여기에 참여한 시인들은, 박재삼, 박희진, 박성룡, 구자운, 이경남, 이성교, 성찬경, 범대순 등인데, 모두들 이 사화집을 시 쓰는 도장으로 생 각했습니다.

사회자_ 얼마 전에 일간지에서 10대 시인과 대표시가 발표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정주의 「동천」, 정지용의 「유리창」,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김수영의 「풀」,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 이상의 「오감도」, 윤동주의 「또다른 고향」, 박목월의 「나그네」등인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지용과 백석의 경우 선정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납북된 이후 30년 이상 우리 문학자에서 증발된 존재였기 때문에 특히 그렇습니다.
 
성춘복_ 10인의 선정과 그 대표작들은 취지와 인식의 차이에서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언론을 상대로 선정한 점, 순학술적인 의미의 선정, 혹은 독자의 기호에 맞추어 가려 뽑은 점 등, 다양한 방법에 의해 그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아시겠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는 가변적입니다. 시 작품에 대한 평가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전에 즐겨 읽었던 명작도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작품들이 있지 않습니까. 마치 절대가치를 가진 시처럼 군림하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마땅합니다. 쉬운 시, 읽기 쉬운 시는 대중적인 입맛에 맞아떨어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인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좋은 시는 시공을 초월 합니 다.

성찬경_ 10대 시인에 시인 구상이 빠졌다는 것은 저로서는 다소 유감입니다. 구상은 시가 1천 편이 넘으며, 모두 깊이가 있는 시들이어서, 정말 큰 시인입니다. 반면에 백석을 l0대 시인으로 꼽는 것이 타당성이 있을까요. 물론 백석도 중요한 시인이긴 하겠지만요. 이런 일 역시 유행과 저널리즘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문이 눈치를 살피고 유행을 따라가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합니다. 누군가가 진지하게 문학작품을 정독하고 깊이 생각한 연후에 걸맞는 평가를 내려야 합니다.

사회자_ 시인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와는 다르게 불명예와 질곡으로 얼룩진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친일문학 작품을 남기거나 광복 후 정통성 없는 군부독재 세력에 영합하여 영달을 누린 작가가 그들입니다. 어떻든 그들을 기초로 시단은 더욱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1980년대 베스트셀러 시집들의 경향과 그 시절 우리 시단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송배_ 우선 서정윤의 『홀로 서기』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이 생각나는데, 시인의 시 정신보다는 출판사의 상업정신이 팽배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처럼 사이버 공간에서 저질 시들이 난무하고 시집의 양산에 따라 시인과 독자가 공통적으로 질적 향상이 시급하다는 평자들의 소리가 있습니다만·······.
▲ 성춘복


성찬경_ 더러 몇십만 부 팔렸다는 시집을 보니, 문예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행을 타는 인기와 문학적 진가가 반드시 일치하는 게 아니라는 보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시를 소녀적인 감상(센티멘탈한) 정도로 보는 풍토에서는 벗어나야 되겠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시 독자의 감상적 수준이 여전히 이런 정도에서 머물러 있다는 보기가 되는 일이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면서도, 다소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성춘복- 인터넷을 통한 일반 대중의 기호, 나아가서는 누구든 첨삭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한 조립성의 작품들, 그리고 언론매체의 부추김으로 대중화되고 타락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한 경향 등, 그렇게 반길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한 시대를 강변하는 작품들은 그 시대 안의 호흡으로 끝맺기가 쉽습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언어로 영원성을 차분하게 천착한 작품이라야 반듯해지리라 믿습니다. 시작품에서 '뜬다'든가 '잘 나간다'는 말은 모순이 있습니다. 그런 유행 풍조에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인터넷과 휴대폰의 생활화로 활자 매체가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시대에는,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시보다도 현실적인 시가 유행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 가치의 본 모습을 지키려는 시인들의 미래지향적인 시정신도 그 못지않게 나타나게 마련이고, 다행히 그렇게 믿을 만한 징후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회자_ 우리 시사(詩史)를 살펴보면 '순수시'와 '참여시'가 첨예하게 대립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민주화 운동과도 맞물린 현상으로 여겨집니다.

성찬경_ 1980년대부터 이른바 '참여시'와 '순수시'의 대립이 표면화됐는데, 이제 보면 이 문제는 원칙적으로 그리 어렵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시가 주제면에서 시대의 흐름을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게 하면 시대에 의해서 버림을 받습니다) 시대정신에 너무 매달리면 이번에는 시에 의해서 버림을 받기 십상입니다. 영국 시인 셸리의 유명한 시 「서풍부」도 내용면에서는 일종의 정치적 참여시입니다. 그런데 시로서도 워낙 명작이니까, 긴 생명력을 갖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윌리엄 블레이크의 「런던」이란 시도 역시 같은 경우입니다. 시는 세상만사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습니다. 참여시라고 해서 하나도마다할 이유야 없지만, 그것이 시의 작품성에서 떨어진다면 별 의미가 없지요. 좀더 두고 보면 더 드러날 것입니다. 정치적 슬로건만 있고 시로서 미숙한 것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이제 두고 보면 아시겠지만, 시간이라는 청소부가 하는 쓰레기질은 참으로 완벽합니다.
 
김송배_ 시인들이 상업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창작을 한다면 그것은 시의 본령을 이탈한 것이지요. 그리고 참여시에 대한 논쟁은 옛날에 끝났습니다. 시인들이 시적 상황이나 주제가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면 이미 그 시인은 이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시도 그래요. 민중과 영합하는 것인지, 민중을 선동하는 것인지 정의가 모호합니다. 요즘은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시운동이 있긴 합니다만, 사회와 정치를 비판하고 불의와 독재에 저항하는 시정신은 몰라도 무지막지하게 언어를 동원하여 시의 형식을 빌리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_ 이념의 문학은 언젠가는 종식되지 않을까요. 남는 건 결국 순수문학이라는 점을 우리는 지난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김송배_ 이념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북통일이 되더라도 혼돈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번에 남북작가들이 금강산에 모여서 교류회담을 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김 모의 「조국은 하나다」라 는 시에서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하나다'라고 이쪽 시인이 낭독하고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서글픈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성춘복_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같은 사물을 보고도 독특하게 표현하는 시인들을 보면 참으로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신성이겠지요? 남북의 시인들이 금강산에 모여 앉아 '조국은 하나다'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새롭고 빛나는 시가 절로 탄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는 이데올로기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성찬경_ 100년을 자란 우리 현대시가 이를테면 크고도 튼실한 나무로 자랐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 꽃도 있고 열매도 있는 균형 잡힌 나무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저는 긍정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시는 너무나도 정(情)에 헤픈, 어떻게 보면 '주정적(主情的)'인 면에 너무 치우쳐 있습니다. 시의 서정성에만 너무 의지해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현대시는 너무도 여성성(女性性) 쪽으로만 비대해져 있고, 반면에 남성성, 지성성(知性性)은 허약한 형편입니다. 중에서 특히 시에서 지적인 활동과 요소가 많이 부족합니다. 리고 시에 철학적, 이상학적인 깊이가 부족합니다. 런 소리를 하면, 시에 철학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하는 분이 있을 법한데, 시를 가지고 철학 논문을 쓰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철학적, 형이상학적인 깊이를 시화 (詩化)해서 시에 용해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야 위대한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대시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시인 아닙니까. 엘리엇, 예이츠, 릴케, 발레리, 타고르 다 그런 시인입니다. 존재와 인생을 갚이 묵상하고 통찰하고 그런 사상 내용을 시에 담으면, 그것은 곧 넓은 의미에서 철학적인 내용과 통하며, 그것이 곧 지성의 작용 아닙니까. 이런 점에서 우리 시는 그런 쪽으로 더 나아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자_ 시란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승화, 회복시켜 주고 삶의 진정성을 일깨워 줍니다. 2000년대 즉 오늘 우리 시단의 현주소는 어디일까요?

성찬경_ 방금 말씀 드린 얘기와 관련이 되겠습니다만, 한 마디로 현재 우리에게 제일 결핍되어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현대인은 너무나 물질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소위 물질문명이라 하는데,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질학대의 시대입니다. 물질을 너무 학대합니다. 특히 종이의 낭비는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고급 종이에 인쇄돼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치성 품목의 광고가 아닙니까. 물질을 학대한 결과 나타나는 환경오염, 공해는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생활면에서도, 또 시에서도 다시 찾아 나서야 할 것은 영성(靈性)이라 생각합니다. 영성의 회복, 이것이 우리 시가 가야 할 방향 아닐까요.

성춘복_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지난 10년, 혹은 20년 전후의 구호적 타산적 문학운동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문학 본래의 자세로 돌아와 인간의 진정성에
▲ 김송배
대한 고구(考究)가 필요하고, 또 그런 반성의 경향들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김송배_ 항간에는 우리 시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그 이유는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면서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것은 시인의 시정신과 표현력 등에서 작품의 질이 저하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아마도 이런 현상은 시에 대한 교육부재가 큰 원인일 것입니다. 인문학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또다른 하나는 많은 문학지가 발간되어 시인을 양산하는 것도 그 원인입니다. 여과 없이 추천된 시인에게는 문협이나 단체에서 재교육을 실시하는 방안도 연구해 봐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_ 결국 교육의 문제와 귀결되는데, 교육에 있어 인문학의 위기는 실용 중심의 학문에 밀려 상당히 깊어져 있는 현실입니다. 인문학은 바로 철학이며 궁극적으로 문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기도 하지요. 기초가 없는 문학, 박리가 상실된 문화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작금의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가볍고, 천박하고, 자극적인 어휘로 시류에 편성하는 글들이 그러한 예이지 않습니까. 

성춘복_ 옳은 말씀입니다. 문화의 꼭짓점은 문학입니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데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정량의 시를 외우는 공부를 합니다. 감수성을 닦는 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우리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 초등학생들이 교육 현장에서 과연 시를 외우는 교육을 받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시 한두 편 외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회적인 풍토를 부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김송배_ 우리 시인들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자가 충전을 위해서도 많은 지적 자양을 비축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의 여건들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참 안타깝습니다. 경제 중심, 편리함 등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거 곤란합니다. 경제, 편리함, 행복 그 구심체에 문화가 있어야 하고, 그 문화 속에는 당연히 문학이 축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각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성춘복_  동의합니다. 미인의 얼굴에 돋은 사마귀는 일종의 매력으로도 볼 수 있지만, 서정시에 밉게 놓인 낱말 하나는 용서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정지용의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릴케는 시의 첫행을 위해 14년이나 고심 했다는 일화를 남기지 않았습니까.
 
사회자_  그렇다면 우리 시의 숙제와 앞으로의 발전적 방향에 대한 진단과 의견 개진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매년 가을마다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노벨문학상에서 언론을 통해 우리의 작가가 논의될 때마다 특히 다른 장르보다도 시인들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만큼 역량에 있어서 시는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는 증거로 보여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 글로벌 시대에 맞게 세계를 시장으로 한 시문학이 나아가야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송배_ 우리는 지금 진보와 보수, 민족과 순수라는 개념으로 문단 자체가 두 쪽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남북과도 화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끼리 서로 곱잖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을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대비하는 것도 이런 문제들이 먼저 결론지어져야 할 것입니다. 문단통일도 안 되면서 민족정신이 결집된 문학이 세계화에 어떻게 기여하겠습니까. 노벨문학상 수상도 그런 정신에서 출발해야 할 줄로 압니다.

성찬경_ 무엇이고 땀 흘려 애써 노력하고, 거기에서 결실을 얻으려는자세가 필요합니다. 쉽게 쉽게 결과를 얻으려는 생각은 경계해야 되겠지 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겉멋' 정도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는 시 쓰는 사람은 시대적 풍조에 반항해야 합니다.

성춘복_  한 마디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넘볼 만큼 우리 시가 발전해 왔다는 말씀인데, 바람직한 현상이고 소망입니다. 하지만 사전에 거기에 걸 맞는 정지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언어에 대한 숙련이 우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우리 안에서 곰삭혀져서 다른 나라의 언어와 인쇄, 그 나라의 종이에 인쇄되어, 저네들에게 읽혀져야만 비로소 소정의 목표에 이릅니다. 더 차분히, 더 진지하게 번역과 보급을 신중히 해야 가능할 줄로 압니다.
 
사회자_  문학의 번역은 창작에 버금갈 정도로 단순한 단어의 번역 차원이 아니라 작가의 심성과정서 그리고 사상이 담긴 문체이기에 번역작가의 양정 또한 정책적으로 장기 과제로 풀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춘복_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말에 대한, 우리들의 체질에 대한, 우리의 습관과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있은 다음 다른 나라의 말로 옮겨지는 방법을 연구하자면 장기간의 노력 경주가 있어야 합니다. 네덜란드의 경우인데, 내가 직접 경험한 목격담입니다. 번역하는 사람을 초청해서 작가와 함께 일 주일 정도 생활을 같이 하더라구요. 말하자면 합숙이지요. 밥도 같이 먹고, 술도 함께 마시고······. 작품 한 편 툭 던져 주고, 이거 한 번 번역해 봐라,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말, 우리글의 숨은 의미와 다양성을 외래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뛰어넘어야 할 복잡하고도 오묘한 과정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 하겠습니까.

김송배_ 결국 이런 문제는 국가의 정책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_ 우리 시가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북 문인들의 교류 문제도 소흘히 다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제에 이데올로기가 문학 작품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 보고, 남북 문인들의 교류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접목되어야 바람직한지도 짚어 보시면 어떨까요?

김송배_ 남북문학 교류는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야겠으나, 언젠가 도래할 통일을 대비하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남북 간의 이질적인 언어, 경향, 주제 등에 관해서 연구가 진행되는 것으로 압니다만, 국가에서 실질적으로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남북교류는 순수문학 단체가 참여하지 못하는 반쪽 교류임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문협에서도 남북문학교류위원회를 활성화해서 그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성춘복_ 정치적인 문제라면 몰라도 원칙적으로 문학에는 이데올로기가 없습니다. 이데올로기보다는 오랜 기간 사고와 습성이 달라진 점과 언어에 대한 여러 이해가 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남북교류를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점진적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회자_ 긴 시간 의미 있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 시 문학의 미래지향적 측면에서 현주소를 점검해 보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계간 《계절문학》 창간호(2007년.겨울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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