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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죽음
( 안도섭 소설집 『방황의 끝』 일곱 번째 이야기)
낙지춤 잘 추기로 유명한 김 악 시인의 소식이 묘연한 지 수삼년이 지났다. 나는 처음 그의 비명(非命)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하며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었다.
"그렁께, 악이가 지혜가 없기로 천치지 뭐야!"
소주잔을 놓고 그의 죽음을 못내 아숴워하는 평옥씨였다.
"자초지종을 좀 얘기해 줘요. 원, 흥분부터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
"술 한잔 들고 얘기 하자오. 그 생각을 하면 치가 떨려서 말야."
그는 한두 잔에 금방 발개진 얼굴로 투덜대듯 늘어놓았다.
명문 S대 철학과를 나온 진평옥씨는 광주의 교수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에 온 후 입에 풀칠을 한 곳이 '동도문화사'이었다. 그 출판사에서 김악 시인이 일하고 있을 때 평옥씨도 같이 돕기로 한 것이었다.
반골기질이 강한 김 악은 시를 써온 지 삼십여 년―이른바 추천이니 현상이니 하여 등장하는 중앙문단과는 담을 쌓고 혼자 시집을 내는 것으로 자족하는 시인이었다. 그 무렵, 광주에서는 <초점>이라는 시동인회가 발족되었는데 김 악, 진평옥씨 등이 주동이 되어 몇 권의 동인지를 냈었다.
한전을 그만두고 생할의 터전을 잃은 그는 가산 파탄이 되면서 아내와도 이혼을 했다. 아니, 이혼을 했다기보다는 밤낮없이 슬독에 빠져 있는 그를 떨치고 아내가 떠났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광주 생활을 지탱할 수 없어 서울로 피란처를 구해 갔다. 그가 '동도문화사'에서 하는 일이란 교정이나 일본어 번역이었다. 이렇게 월말이면 손에 얼마를 받아쥐고 씁쓰레 웃었다. 그런 생활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시를 쓰고, 박사장의 호의로 제2시집 <키루쿡크의 석유>를 펴냈다.
그는 문단이라는 것과는 등을 돌리고 시를 쓰는 고집스러운 시인이었다. 그는 평소 문단 무용론을 주장했다. 문단이라는 것이 잡지나 무슨 회를 만들어 끼리끼리 상 나눠 먹기, 무슨 특혜 해가며 흉하게 돌아가는 꼴을 아예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내가 광주 J신문에 재직할 때, 그는 간혹 광주에 내려와 전화를 주곤하였다.
"하형, 나 야간 열차로 올라갈라는디 얼굴이나 보고 헤어집시다."
"곧 <귀거래>로 나가지요."
나는 피근시간이 바쁘게 그가 기다리고 있는 다방으로 나갔다. 내가 미처 커피잔을 비우기도 전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쪽으로 나간다.
"왜 이러십니까, 김선배는 손님이신데‥‥‥‥"
하고 나서면 그는 나를 떠밀다시피 셈을 치르고 나온다. 물으나마나 그는 약주 생각이 나서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었다.
"한잔 할 바엔 「앵두나무집」으로 갑시다. 그 집 깍두기는 아마 서울서는 맛보기 힘들걸요."
"그래, 좋고말고."
두 사람은 야간열차 시간이 가깝도록 약주를 들이켰다. 그는 이전 같지 않고 약주 몇 잔에 금방 곤드레가 되면서 뇌었다.
"하형, 아무래도 난 오래 못 살 것 같애."
"왜 그런 약한 말씀을 해요? 어서 잔이나 비워요."
거듭 술잔을 권했으나 그는 몸이 안 좋다며 사양하는 눈치였다.
"내가 술로 망할 거야. 이것이 없으면 세상 살 맛이 없으니 말야."
"글쎄, 조금씩 자제를 하셔야죠."
"많이 자제를 하는 중야. 그러다가도 한번씩 탈선을 하는 바람에 말씀이 아냐."
아닌게 아니라 그는 한때 낮도깨비로 불릴만큼 대낮에도 술을 즐기고, 취흥이 나면 그 특유의 해학적인 작태가 거리를 누볐었다.
그는 데카당 아닌 데카당이 되어 갔다. 그는 아내와의 파경 이후 보헤미안처럼 떠돌았다. 그의 마지막 보루인 시마저도 멸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거리의 술집 구석에 앉아 역설을 뇌까리며 떠들어야만 속이 후련했다. 우울한 기분을 술기운에나마 쏟아놓아야 마음이 풀렸던 것이다.
그는 근무한다기보다 의지하는 '동도문화사' 근처 술집을 떠돌면서 써낸 시 두 편을 그 후 내게 우송해 왔다. 아마 문화면에라도 지면을 할애 해 달라는 뜻에서였으리라.
찬주 형에게
서울에 틀어박혀 있소. H형만 만나고 있지. 5, 6월 경에는 제3시집 아니면 선집을 낼 예정인데, 일차 광주에 갈 적에 만납시다. <소왕국> 기타 1편쯤 H형에게 넘길까 하오. 아무쪼록 건강하시오.
진평옥씨는 그 후 '동도문화사'를 나와 N대학의 강사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김 악과도 한 달에 한 번, 나중에는 소식을 들을 정도였다. 김 악은 평옥씨와 헤어지고 나서 더욱 술에 의지하는 나날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만화가로 활약중인 장남 만석이가 가끔씩 들러 고주망태가 되어 있는 그에게 술을 자제할 것을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는 허무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명(知命)을 넘은 그는 처절할이 만큼 알몸뿐인 자신을 돌이키며 스스로 자학의 칼날 앞에 몸을 떠는것이었다.
그날도 단골인 진주집 한구석에 앉아 한잔 마시던 중이었다. 빈 자리가 다 차 갈 무렵, 주모가 손님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합석할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좋고 말고, 한잔 나눕시다 그려."
야구 선수 출신인 김 악은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게다가 그와 마주한 손님은 낯선 사람이 아니고 간혹 이 술집에서 눈이 마주치던 인물인지라 그는 술잔을 권하며 입을 방긋거린다.
"쭉 한잔 드시고 술 따라 주시구려."
"초면에 술잔을 먼저 들어 죄송합니다."
"주석에 그런 거 따져요? 잔부터 비우시구려."
이렇게 주거니받거니 몇 잔이 오갔다.
"선생은 보매 글을 쓰시는 분 같은데 혹 발표라도 하셨습니까?"
"고따위 발표같은 것 해 뭐합니까. 장난질이나 하는 문단 패거리 속에 끼어 뭘 한단 말입니까?"
"그래도 기왕 글을 쓰실 바엔 문단 활동을 해야지 않아요? 저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긴 합니다만."
"당신 뭘하는 사람인 쭐 모르지만, 술맛 떨어지는 소리 작작 하시오. 내용도 없는 시 나부랭이를 가지고 시인이다, 또 허튼소리 써갈겨 놓고 무슨 작가다 하고 뽐내는 그런 문단 따윈 나는 무시한단 말요."
어느 새 거나해진 김 악 시인은 혀꼬부랑 소리로 지껄였다.
"잠깐만, 아까 선생님 말씀 가운데 내용도 없는 시란 어떤 것을 뜻하는지?"
"허허‥‥‥내나 말하지 않소. 알맹이 있는 시, 철학과 사상이 있는 문학을 해야 한다지 않았소. 배가 고프면 고프다, 부정한 것을 보면 비판할 줄 아는 그런 문학이라야지, 개똥댕이 같이‥‥‥"
"그렇고 말고요, 개똥댕이 문학이지요."
"허허 참, 이런 술집에도 동지가 있구먼. 나는 혼자 싸우는 전사란 말야. 가진 자와 부정과 싸우는‥‥‥‥"
"그 기분으로 우리 자리를 옮겨 맥주 한잔 합시다."
짐짓 고주망태가 된 김 악은 선(宣) 아무개라고 하는 그와 맥주 홀을 찾아 들었다.
한두 컵 잔을 비울 적바다 김 악은 기분나는 대로 지껄여대고, 평소의 울적한 심정을 스스럼없이 털어 놓았다.
"김선생, 저는 선생의 그런 성격이 마음에 든단 말씀야. 그런데 선생의 시를 좀 봤으면 하는데‥‥‥?"
"허허, 당신이 문학 동지가 되려고 그러는거요?"
"누가 압니까? 마음에 들면 시집이라도 하나 내드릴지‥‥‥"
"좋소, 내 비장의 시를 몽땅 선생께 보여드리지!"
그는 자신의 심장이라도 내보일듯이 말했다.
이튿날 밤 주태백(酒太白)이 시인은 옆구리에 원고뭉치 하나를 끼고 간밤 곤드레가 되도록 마신 맥주 홀에 모습을 나타냈다. 미리 와 있던 그는 반색을 하며 시인에게 자리를 권한다. 그리고 일찌감치 맥주 파티가 벌어졌다.
"오늘은 마음 노시고 드시구려, 난 선생의 시를 감상하겠소이다."
그는 대학 노트에 박아 쓴 시를 몇 편 읽어가다가, 이해가 안되는 귀절이랄지 외래어가 나오면 시인에게 일일이 설명을 들어가면서 내용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노트를 훑어내린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어깨를 으쓱거린다.
"선생의 시를 읽으니까 나도 절로 사회 정의파가 되는 것 같군."
그런데 그의 비아냥거리는 웃음에서 일순 서슬같은 것을 의식한 시인은 속으로 아차 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평옥씨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털어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 순진하고 어리석은 친구였어. 글쎄, 자기 심장까지 빼준 친구라니까."
"예술의 순교자 김 악 시인이 그래 어떻게 되었어요?"
나는 갑자기 미궁에 빠져든 듯한 심정에서 캐어 물었다.
"그 길로 곧장 행방 불명이 되었다가 옥사를 했다지 않아."
"김 악 시인이 옥사를 했다고요?"
나는 도시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아 분통을 터뜨렸다.
"애잇, 천치 같은 사람! 아무한테나 자기의 심장을 빼주다니!"
"누가 아니래, 김 악이란 놈은 옥사를 해도 쾌싸. 술만 퍼마시더니 기어코 지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간 바보!"
"악이 장남이 만화가 아닌가베. 그 애한테 들은 건데 악이 얘기라면 술 맛이 싹 가신단 말야."
"기분 더 잡치기 전에 일어섭시다. 그만 듣기 싫소. 갑시다."
나는 괜스레 평옥씨에게 투정을 해대면서 그와 헤어져 버스에 올랐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무악재 고개를 넘어 홍제동에 이르자 차에서 내린 나는 집을 향하는 동안 혼잣소리로 뇌까리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이르러 파랑새처럼 날아가버린 시인의 유고 한 편을 꺼내어 소리없이 읽어내린다.
창밖의 눈보라는 더욱 세차게 휘몰아쳤다.
시제는 <소왕국>.
네가 여기
온 것은,
네가 여기
온 것은,
전라도 가시네야.
댕기 길게 따 느리우고.
네가 여기
온 것은,
아 봄 따라 온 거냐.
눈에는
핏자국 같은
눈물 자국이여.
외마디 말이 있을까.
벙어리 되었느냐.
하여
공양미 삼백석에 왔느냐.
공양미 삼백석에 왔느냐.
일부다처(一夫多妻)의 나라
이 무스타의
소왕국에
네가
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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