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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2월25일 08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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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시대 문학작품의 해석 비판

[김용직]

1. 분단 상황의 인식

8·15 이후 우리는 국토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고 있는 중이다. 38선의 고정화로 남쪽과 북쪽은 전혀 이질적인 정치적 이념을 떠받드는 상황에서 살게 되었다.
▲ 김용직 평론가
그동안 우리는 6·25 동란을 거쳤으며 최근에는 민간인 피격 사망과 연평도 사태까지를 겪었다. 이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군사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에 걸치는 것으로 실로 복잡하며 심각하다.

화제가 문학 분야로 옮기는 경우 우리는 분단상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책을 세우거나 전략을 짜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다. 다만 문학과 인문학은 모든 행동의 주체인 인간을 다룰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하여 분단시대의 우리 문학과 문단이 처한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지향하는바 대민족문학의 푸른 서부가 열리기를 희망하며 기대하는 것이다.

2. 이상(李箱)은 반전시인(反戰詩人)인가

이상(李箱)의 〈오감도(烏瞰圖)〉는 1934년 〈조선중앙일보〉를 통해서 발표된 작품이다. 그 무렵 우리 주변의 통념으로 볼 때 애초부터 그의 시는 이단에 속했고 파격적이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기하나 대수의 기호를 삽입한 것이 있었고 숫자를 거꾸로 박은 것이 포함되었다. 극단적 실험시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의 작품이 발표되자 신문 독자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무슨 개수작이냐.” “미친놈의 잠꼬대냐.” 당시 〈조선중앙일보〉의 문화부장은 이상과 같이 구인회(九人會)의 동인인 이태준(李泰俊)이었다. 그의 적극적인 옹호가 있었음에도 당초 30편 발표가 예정된 〈오감도〉는 15회로 중단되었다. 한마디로 이상의 시작 활동은 비난과 오해 속에서 시작된 셈이다.

지금 우리 주변의 독자들은 1930년대의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IT시대를 살며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세대다. 그런 10대와 20대들도 이상의 〈산촌여정(山村餘情)〉이나 〈권태(倦怠)〉를 즐겨 읽는다. 이런 추세를 타서 이상의 작품은 오늘 우리 주변의 비평가들이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인기 상품이 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상이 부활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특수 경기 속에서도 이상 문학의 주변에는 한 가닥 그림자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그 보기가 되는 것이 〈시제십이호(詩第十二號)〉의 경우에 나타나는 오독 현상이다.

때묻은빨래조각이한뭉텡이空中으로날라떨어진다. 그것은흰비둘기의떼다. 이손바닥만한하늘저편에전쟁이끝나고평화가왔다는宣傳이다. 한무더기비둘기떼가깃에묻은떼를씻는다. 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맹이로흰비둘기의떼를때려죽이는不潔한전쟁이시작된다. 空氣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묻으면흰비둘기의떼는또한번이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이상 〈시제十二호〉 전문

우리 주변의 어느 비평가는 이 시를 반전(反戰), 저항시라고 보았다. 그 논거가 된 것이 “비둘기를 때려 죽이는 불결한 전쟁”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 전쟁은 그에 맞서는 개념인데 그것을 “비둘기를 때려 죽이는”이라고 하고 다시 그 위에 “불결한”이란 관형어까지를 붙였으니까 시제12호=반전시의 도식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가 발표되었을 무렵 일제는 대륙 제패의 야욕에 들떠 있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이어 전선을 태평양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음모를 짜기에 급급했다. 일제는 그런 침략 행위를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건설이며 세계 신질서 수립을 위한 전략이라고 선전했다. 그런 전쟁을 ‘불결한 전쟁’이라고 한 것은 일제의 침략행위를 배제, 반대한 것이다. 이런 논리를 전제로 하여 이 시가 항일저항시로 확대 해석된 것이다.

얼핏 일리가 있을 듯 생각되는 위와 같은 작품 읽기에는 논리화의 과정에 심한 비약 현상이 나타난다. 여기서 비둘기는 문자 그대로의 비둘기가 아니다. “때묻은 빨래 조각”의 비유가 그렇게 쓰인 것이다. 그 사이의 사정은 둘째 줄 허두에 나오는 대명사 “그것”을 통해 너무도 명쾌하게 드러난다. 이것을 침략행위의 수렴형태인 전쟁으로 풀이한 것은 단순 작품 읽기라고 보아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오독이다.

3. 조기천(趙基天)의 〈백두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의 압권인가

남쪽의 작품 읽기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오류가 발견되는 것과 꼭 같이 북쪽의 창작 해석에도 아주 비슷한 사례가 나타난다. 조기천의 〈백두산〉은 1947년 〈로동신문〉을 통해서 발표된 장편 서사시이다. 그 분량은 3천여 행에 7장 57절에 이른다.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백두산〉 이전에 발표된 장편 서사시에는 김동환(金東煥)의 《국경의 밤》이나 《승천(昇天)하는 청춘(靑春)》이 있었다. 이들 작품은 둘 다 그 길이가 1,000행 안팎에 그친다. 그에 대비시켜 보면 〈백두산〉은 우리 현대문학사상 초유의 장편 서사시가 되는 셈이다.

우리가 장편 서사시라고 할 때 그 보기가 되는 것이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이거나 호머의 《일리어드》 《오딧세이》 등이다. 이들 작품에는 반드시 그 주인공으로 초인이 등장한다. 위기에 처해서 그들은 비상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가 수많은 시련을 거쳐가면서 크고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는 것으로 서사시의 줄거리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유형의 시를 우리는 영웅서사시라고 한다.

영웅서사시의 관점에서 보면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나 《승천하는 청춘》에는 한 가지 아쉬움이 생긴다. 거기에는 뚜렷하게 영웅으로 부각된 인물이 없다. 그에 곁들인 사건과 줄거리 또한 읽는 사람들에게 박진감을 느끼게 하며 듬직한 공감대를 형성해 줄 정도로 크거나 묵직하지 못하다. 이에 반해서 조기천의 〈백두산〉에는 서사시 구성의 기본 요건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항일 유격전의 지휘자인 김 대장이다. 그는 당시 북한의 인민정권에서 제일인자로 부상하기 시작한 김일성이었다. 조기천은 백두산을 그런 김일성의 항일 유격활동의 근거지이며 혈전장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것으로 〈백두산〉은 적어도 영웅서사시의 기본 요건 가운데 하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조기천의 〈백두산〉이 나오자 북한의 당과 문예 조직은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상찬 일변도의 말을 쏟아내었다. 여러 정부 기관과 사회단체, 각급 학교에서는 이 작품을 교재로 택해 독서회를 벌였다. 그 결과로 초판 20만 부가 불과 몇 달 만에 팔려나갔다. 〈백두산〉이 나오기까지 우리 문단에서 그것도 시집이 해를 거듭하지 않은 채 여섯 자리 숫자로 판매 성적을 올린 예는 없었다. 해외에서도 아마 그런 사례는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기천의 〈백두산〉이 일으킨 당시 북쪽의 반응은 과연 합리 타당한 논리적 근거를 가진 현상이었던가. 이제 우리는 이렇게 제기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어 보기 위해 실제 작품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드러난 바와 같이 서사시 〈백두산〉은 항일 유격활동의 주역인 김 대장의 영웅적 활동을 정점으로 한 작품이다. 영웅서사시였으므로 〈백두산〉은 김 대장의 상상을 절한 전투능력을 부각, 묘사하는 각도에서 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으로 김 대장의 모습이 초인으로 부각되어야 〈백두산〉이 영웅서사시의 1차적 자격을 얻어낼 것이다.

이 사이의 사정이 이렇게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백두산〉에서 김 대장이 유격활동의 현장에서 펼치는 활약상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 경우 예외격으로 지적될 부분이 제2장의 3절과 4절 일부다. 3절에는 일제의 토벌대가 들이닥친 홍산골에서 항일유격대가 반격을 가하는 장면이 노래되어 있다. “바윗돌이 골짜기를 쳐부신다/ “만세” “만세” 골 안을 떨치며/ 산비탈에 숨었던 흰 두루마기들/ 나는듯이 달려 내렸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김 대장은 전투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장 4절에 이르러 비로소 그가 전투현장에 나타난다.

산비탈 바위 위에/ 청년 하나이 번쩍 올라선다/ 후리후리한 키꼴에/ 흰 두루마기 자락이/ 대공으로 솟아오르며는/ 거센 나래 같이 퍼득이는데/ 온 몸과 팔과 다리―/ 모두 다 약진의 서슬에 불붙고/ 서릿발 칼날의 시선으로/ 싸움터를 단번에 쪽―가르며/ “한 놈도 남기지 말라!”/ 그는 부르짖었다./ 바른 손 싸창을/ 바위 아래로 번쩍이자/ 마지막 발악 쓰던 원쑤 두 놈이 / 미끄러지듯 허적여 뒤여진다―

여기 나타나는 바와 같이 전투현장에서 김 대장은 처음부터 승리를 약속받은 사람으로 행동한다. 본래 서사시에서 영웅은 반드시 위기에 처한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는 적어도 죽음의 위협 아래 놓이며 목숨을 빼앗길 순간과도 되풀이 맞닥뜨린다. 그것을 무릅쓴 그의 활약이 곧 서사시의 요체가 되는 극적 활약상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서사시의 교의에 따르면 김 대장은 적어도 피를 흘리며 싸우는 전투현장에 서 있어야 한다. 〈백두산〉의 그 어디에도 그런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리 양보해도 〈백두산〉이 영웅서사시의 창작 원칙과 거리가 있음을 뜻한다.

서사시 〈백두산〉이 발표되었을 무렵 북쪽의 긍정 비평가들이 금과옥조로 휘두른 창작원칙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이론이다. 사회주의적이란 단서가 붙지 않은 사실주의란 그저 일반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여러 상황을 작품화시키면 그만이었다. 이에 대해 사회주의 창작 원리에는 작가에게 무산계급의 이익에 부응하며 계급혁명의 원칙에 충실한 선에서 작품을 쓰라는 요구가 부가된다. 이런 사회주의 창작 원칙으로 보아 조기천의 〈백두산〉에는 명백하게 보완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다. 그 구체적 보기가 되는 것이 제2장 6절의 한 부분이다.

아 이것도 천운이라 할까/ 사나이 부르짖으며/ 휘익 손만으로 돌아서더니/ 난데 없는 뻐꾹소리 높았다/ 뻐꾹―뻐꾹―/ 잠잠하던 솔밭도 기쁘게 화답한다/ 뻐꾹―뻐꾹―/ 또 솔밭에서 나오는 두 사나이

여기서 뻐꾹새 소리를 내는 사나이는 항일유격대의 정찰원인 철호다. 그는 김 대장의 지시에 따라 유격대의 국내 침공 작전을 위한 전초 공작원이 된다. 그는 국내 조직과의 연락을 위해 신분을 감춘 채 접선장소로 잠입했다. 이때 그가 이용한 것이 유격대가 만든 암호 사용이었다. 그 방법으로 철호는 뻐꾹새 소리를 흉내 내었다. 이 장면의 앞부분을 보면 철호가 유격대의 근거지에서 공작지인 마을로 내려간 시기는 이른 봄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 걸린 시간을 감안해 보아도 철호가 마을에 도착한 시기는 봄철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다.
철호가 뻐꾹새 소리를 내자 그에 응해서 마을 지하공작조에 속한 사람들도 뻐꾹새 소리를 내고 나타났다. 그것으로 철호는 유격대의 국내 거주조와의 접선을 이루어 내었다. 이것을 조기천은 일제의 국경경비대의 번득이는 감시망을 따돌린 교묘한 접선 수단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행동 설정이야말로 서툴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본래 뻐꾹새는 우리나라의 텃새가 아니라 남쪽에서 날아와 여름을 지내는 철새다. 이 새가 우는 시기는 나뭇잎이 무성하게 피어나는 여름철이다. 그런데 속잎도 피어나기 전인 봄에 유격대가 뻐꾹새 소리로 암호를 삼았다면 어떻게 되는가. 일제의 국경수비대나 정찰은 곧바로 그것을 수상쩍게 생각할 것이다. 그 결과는 명백하다. 철도 아닌 뻐꾹새 소리에 긴장한 일제의 경비대와 경찰은 즉각 수색망을 펼 것이며 그 결과는 유격대 정찰조와 국내조직의 색출, 검거로 연결될 것이다.

한마디로 조기천의 〈백두산〉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 원칙에서 어긋난다. 뿐만 아니라 단순 사실주의 시각으로 보아도 〈백두산〉은 감출 길 없는 결함이 내포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전 문예조직과 평단이 총출동한 상태에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고 칭예한 것이 북한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북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창작 해석과 평가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4. 혼동될 수 없는 근대와 현대

우리와 동시대 비평이 지닌 바 결함의 하나에 실제 작품의 분석,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 보기가 되는 것이 이광수와 임화(林和)를 다 같은 근대주의자로 보고 있는 경우다. 뿐만 아니라 《무정》이나 《흙》이 〈날개〉나 〈지주회시(?會豕)〉와 구분되지 않고 근대문학 작품으로 판정되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백철(白鐵)의 《신문학사조사》는 전편과 후편 등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전편은 1920년대 중반기까지를 그 하한선(下限線)으로 한다. 거기서 논의된 것은 ‘창조’ ‘폐허’ ‘백조’ 동인들까지의 문학이다. 《신문학사조사》 제2권에는 별도로 현대편이란 제호가 붙어 있다.

그 상한선은 신경향파가 형성된 1920년대 중반경이다. 이때에 대두된 계급주의 문학을 백철은 《신문학사조사》 현대편의 기점으로 잡았다. 새삼스레 밝힐 것도 없이 신경향파는 그다음 단계에서 카프로 확대 개편된 계급문학의 유파를 가리킨다. 임화(林和)는 소장파의 일원으로 카프에 참가하여 곧 그 지도분자가 된 시인 겸 비평가였다. 백철은 이런 임화를 근대주의자가 아닌 현대주의자로 잡은 것이다. 백철과 달리 1970년대의 우리 문단에 진출한 소장 비평가들 사이에는 임화를 근대주의자로 잡은 예가 나타난다.

임화에 대해 백철은 적어도 한 가지 사실에 맹목이었거나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그것을 뒷전으로 돌려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두루 알려진 것처럼 계급문학의 바탕이 된 것은 마르크스주의다. 우리는 마르크스를 헤겔 좌파라고 한다. 헤겔의 갈래에 마르크스를 넣는 까닭은 그가 사회의 개혁을 통한 역사의 진보를 믿었기 때문이다. 두 철학자가 의거한 것이 다 같은 진보사관이었다. 단 마르크스가 헤겔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헤겔 철학의 바탕이 된 것은 이성을 통한 세계 인식을 전제로 한 인간 생활의 통대적 파악이었다. 그런 시각에서 그는 변증법의 논리에 따라 역사를 정, 반, 합의 궤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애초부터 그 극복을 시도했다. 그에게 헤겔류의 역사철학은 관념론의 부류에 드는 것이었다. 그는 계급적 모순 타파를 뜻하는 혁명으로 달성되는 세계의 개조를 기도했다. 이렇게 차이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개념에 연속성을 인정한 점에서 두 사람의 철학은 다 같이 근대적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백철이 임화를 포함한 신경향파와 카프의 문학에 대해 현대의 판정을 내린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1970년대의 소장 비평가들이 임화를 근대주의자로 본 것은 이런 논리의 반사 이익을 통해서 얻어내게 된 덤이다. 논리의 전개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임화를 근대주의자로 보는 견해에는 일리가 인정되는 셈이다.

임화의 경우와 달리 이광수의 소설과 이상의 창작에 다 같이 근대적이라는 관형어를 붙이는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이야기가 다시 헤겔로 돌아간다. 그의 독특한 역사철학을 바탕으로 한 미학은 근대소설의 기본요소 가운데 하나인 플롯 개념 정립에 적지 않은 자극제가 되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근대소설에서 문제되는 플롯은 사건과 사건을 원인과 결과 관계로 엮어냄으로써 이루어지는 구조화의 개념이다. 그 이전 소설은 사건과 사건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 그것을 우리는 이야기 소설이라고 한다. 이야기 소설에서 플롯 소설로의 변형이 바로 근대소설이 얻어낸 특징적 단면이다. 그렇다면 이야기와 플롯의 차이는 무엇인가. 

E. M. 포스터는 이것을 ‘왕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왕비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들어 설명했다. 왕이 죽고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이야기 곧 스토리(story)다. 왕이 죽자 슬퍼한 나머지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플롯이다. E. M. 포스터에 따르면 전자에는 인과감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왕비의 죽음은 왕의 죽음에 원인이 있다. 왕비의 죽음은 왕의 죽음이 결과인 것이다. 두 개의 사건 사이에는 원인결과의 관계가 성립된다.

화제의 초점을 이광수와 이상 소설의 차이로 돌리기로 한다. 《무정》에는 이형식, 선영, 영채 등 등장인물의 성격화가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각자가 서로 개체로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개혁을 지향한다. 이런 의식들이 원인이라면 이 소설 결말 부분에서 뚜렷한 선으로 나타나는 사건은 삼랑진 수해현장에서 우리 사회의 개혁을 외치는 장면이다. 이광수가 나오기 전에 이런 사건에 대한 동기부여, 또는 원인으로 지적될 등장인물의 행동은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광수의 소설은 근대적이다.

《무정》에 반해 〈날개〉나 〈지주회시〉에는 근대적인 의미의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날개〉의 ‘나’는 지식계층 출신임에도 근대적인 의미의 자아나 생활 의식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다. 〈지주회시〉에는 아예 제 몫이라고 내세울 행동을 하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그’는 뚜렷한 선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백하듯 그의 생각을 중얼거린다. 그리하여 그의 행동은 근대소설에서 문제되는 사건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을 우리는 ‘의식의 흐름’을 기술한 마르셀 푸르스트나 제임스 조이스류의 소설이라고 한다. 이상을 근대주의자로 보는 견해는 이런 사실을 망각한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상의 시에 나타나는바 근대적이 아닌 매우 강한 현대성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상의 시에는 숫자를 거꾸로 쓰고 수학기호에 지나지 않는 표기로 이루어진 행들이 있다. 이것은 이상의 시가 DADA와 초현실주의적 기법에 의거했음을 뜻한다.

앞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근대시와 소설의 미학은 이성의 역할을 믿는 진보사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현실은 언제나 각박하고 고통스럽다. 특히 20세기에 접어들자 그 초두부터 세계 곳곳에는 놀라울 정도로 파괴적인 집단폭력 사태가 야기되고 대량학살이 자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에 바탕을 둔 인간해석이나 세계정신을 전제로 정반합(正反合)의 개념을 뼈대로 한 역사 해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20세기 초에 남달리 예민한 신경을 가진 문학도들이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전위적인 문학과 시 운동을 시도한 DADA는 기성세대의 일체 철학을 거부,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반근대 운동으로 나타나고 격렬한 전위예술 경향을 탄생시켰다. 반근대운동으로 시작한 DADA와 입체파, 표현파 등은 헤겔 철학의 갈래에 드는 세계정신을 전면적으로 부정, 배제했다. 그들은 그 무렵까지의 시와 문학이 언어를 매체로 한 사실에 유의했다. 그 나머지 시의 밤을 표방한 모임에서 그들은 발을 구르고 개 짖는 소리만을 내었다. 전혀 의미가 없는 고함도 질렀다. DADA의 선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

신문을 들어라. 가위를 들어라. 당신의 시에서 알맞다고 생각되는 분량의 기사를 신문에서 골라내라. 그 기사를 오려내라. 그 기사를 형성하는 모든 낱말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잘라서 푸대 속에 넣어라. 조용히 흔들어라. 그 다음엔 다른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라. 푸대에서 나온 순서대로 정성들여 베껴라. 그럼 시는 당신을 닮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무한히 독창적이며, 매혹적인 감수성을 지닌, 그러면서 무지한 대중에겐 이해되지 않는 작가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DADA에서 시작된 전위 시는 애초부터 작품의 표현 매체로서 말이 의미를 가지는 것을 거부했다. 이런 전위 예술의 흐름을 이은 이상의 〈오감도〉가 근대문학의 갈래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근대문학작품을 쓰지 않은 이상을 굳이 근대문학자의 범주에 넣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우리가 가질 말도 그 테두리가 드러났다. 이상의 시와 소설은 이성에 바탕을 둔 세계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의식의 결과다. 그런 문학을 근대적이라고 보는 생각에는 이제 종지부가 찍혀야 한다.

■ 김용직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격월간《유심》2011년 11/12월호(권두논단)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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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직 문학평론가
[유심]2011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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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dsb@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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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 활성화를 위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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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시를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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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음으로써 울림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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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음밭에 희망의 ...
[조회수 1881] [추천수 1회]
작금의 문학 사안, 문인들...
[조회수 1817] [추천수 1회]
미당 서정주의 시를 어떻게...
[조회수 3365] [추천수 3회]
윤동주와 정지용 짝사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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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 정보화시대의 문학...
[조회수 2697] [추천수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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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147] [추천수 2회]
예술가의 밥은 누가 책임져...
[조회수 1834] [추천수 2회]
미래의 문학이 가는 길은?
[조회수 2272] [추천수 2회]
문학을 소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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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시(寄夫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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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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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복지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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