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44)- 목월과 지훈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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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07월02일 11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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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의 문단 반세기(44)- 목월과 지훈의 우정

[황금찬]
 
『문장』에 추천은 끝냈지만, 1941년에 『문장』이 폐간되고 말았다. 어디 『문장』뿐인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도 모두 폐간되고 말았다. 한
▲ 황금찬 시인
국 사람들의 음신(音信)은 모조리 끊어지고 말았다. 시를 써도 발표할 지면이 있는가. 또 글과 말을 모조리 빼앗긴 민족이, 친구들 만날 기회가 있겠는가. 

1942년. 지훈이 목월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나 그 편지의 내용은 지훈이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편지를 보내고 얼마 후에 목월에게서 편지가 왔다. 짧으면서도 면면한 정회가 서려 있었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경주박물관엔 지금 노란 산수유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늘한 옥저를 마음속에 그리던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오실 때 미리 전보 주시압>’ 

이 짧은 글을 받고 나는 이내 전보를 쳤다. 철에 이른 봄옷을 갈아입고 표연히 경주에 내린 것은 저녁 어스름 분분한 눈송이와 함께 봄비가 뿌릴 때였다. 목월은 초면의 서울 나그네를 맞으려 박목월이란 깃대를 들고 건천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 밤, 객사에 목월이 나에게 보여준 시는 「밭을 갈아 콩을 심고」란 시였다. ‘장독 앞에 모란 심고 장독 뒤에 더덕 심고’의 구절과 ‘꾹 구구 비둘기야’라는 구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외롭고 슬픈 내 노래의 마음을 세상에 알아주는 이가 목월이라는, 처음 보는 눈이 크고 맑은 시인은 그밖에 없는 성싶어 미덥고 서럽던 생각, 6월에 출장 다닐 때 걸어가는 길가에서 들은 비둘기 울음, 혹은 살살 날리는 어스름과 산그늘도 그의 소개로 나는 독고 보았다. 

석굴암 가던 날은 대숲에 복사꽃이 피고 진눈깨비가 뿌리는 희한한 날씨였다. 불국사 나무 그늘, 나는 찬술에 취하여 떨리는 봄옷 외투를 덮어 주던 목월의 체온도 새로이 생각난다. 그리하여 나는 보름 동안을 경주에서 머물렀고 옥산서원의 독낙당에 눕기도 하였으며, 「완화삼」이란 졸시를 보내기도 하였다. 

목월에게 목월의 시 「나그네」는 이 「완화삼」에 화답하여 보내 준 시이다. 운이 없는 현대시에는 이렇게 더 절실한 심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였다. 붓을 꺾고 떠돌며 살던 5년간을 우리는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하소연하며 해방을 맞았던 것이다. 

<지훈의 편지> 중에서 경주에서 돌아온 조지훈은 목월의 인정과 경주의 풍물을 잊지 못했다. 또 가고 싶고 또 보고 싶었다. 그래 편지로 마음을 달래고 있다가 이날 시 한 편을 얻으니 그 시가 바로 「완화삼」이다. 

지훈은 그 시를 목월에세 보내기로 하고 백지에도 옮겨 썼다. 이것이 두 사람의 화답시의 시작이었다. 


완화삼(玩花衫) ─ 목월에게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지훈의 이 시를 받고 목월은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우정과 그리움이 하늘에 사무치는데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약은 멀어져만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이 실려 오는 경주의 토함산, 언제나 토함산은 나를 숨겨줄 것만 같았다. 토함산 위에 달이 간다. 구름이 가는 것이 아니다. 달이 가는 것이다. 목월이 시 한 편을 쓰니, 바로 「나그네」이다. 

이 시를 화답시로 지훈에게 보내게 된다. 이 두 시인이 서로 보내고 받고 한 화답시는 저녁노을도 족히 시기할 수도 있었으리라. 

목월이 밤중에 붓을 들고 앉아 화답의 시를 썼다. 지훈의 「완화삼」에서 마음을 파도처럼 끌던 구절은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구절이다. 그래 시제 밑에 그 구절을 삽입시켰다. 


나그네 ― 술 익는 강 마을에 저녁 노을이여 ― 지훈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 시들이 우리나라 시인들에게 있어서 최초의 화답시가 된다. 그들의 우정은 꿈같이 아름다웠다. 

지훈이 먼저 가고 몇 년 후에 목월도 가고 마니,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두 편의 시가 구름 속에 꿈꾸고 있다. 

■ 황금찬
시인. 《문예》·《현대문학》등단. 월탄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외 다수 수상

[월간《문학세계》2010년 9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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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 시인
[문학세계]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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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dsb@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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