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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이후)


시의 연인 -백영풍 목사시인의 시 평 이영지
2011-02-28 07:34:59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조회:2121
추천:143
첨부파일 :  1298847479-4.hwp

 


백영풍 목사시인의 시 평 이영지

시의 연인


  

1. 사랑의 시인


  백영풍 시인의 『마음에』는 제1부 ‘만남이후’, 제2부 ‘마음에’, 제3부 ‘기다림’, 제4부 ‘부활의 기도’, 제5부 ‘20세기 출애굽’, 제6부 ‘꽃구름’, 제7부 ‘어머니 유품’ 제8부 ‘시장통에서’의 구조를 가집니다. 백영풍 시인의 시 심층구조는 한국적 정서를 심층의 깊은 바다에서 시의 그리움을 낚아 올리듯 시의 연인다운 따뜻함으로 지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이한 현상은 그의 시적 구조가 현실의 메카니즘을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자적 지시로 모더니즘적 성향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입니다.

  백영풍 시인의 시어는 특히 누이(4),눈(11),눈물(3),당신(33),아버지(15),아이(2),사랑(38),어머니(15),하늘(35),해(5) 등에 다빈도 지수를 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점은 백 시인이 사랑의 연인이 되고 시의 연인이 되고 상징성으로서의 예수님의 연인이 되는 것은 백 시인의 이미지 시어 ‘사랑’이 38회로 가장 많고, ‘하늘’이 35회이며 당신이 33회의 빈도수를 보여 이 특징인 바로 30회 이상의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위의 시어에서 보이듯이 가장 토속적이고 향수적인 한국의 정서에 익숙해 있으면서도 현대의 메카니즘적 물질의 양산과 그 안에 메세지적 시의 깊은 심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백 시인은 시를 통해 그가 소명으로 받은 사랑과 하나님의 상징성으로서의 시적 이미지인 하늘에의 관심도를 시적 페러디와 역설과 아이러니로 그의 시적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 아이러니는 역설적이면 역설적일수록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깊이 몰두해 있음으로 인하여 사람 사랑함을 그의 지상명령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듯 현실을 고발하는 목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문명인은 상처를 받지 않는다 단지 상처를 줄뿐이다

그는 치유 받기를 거절하고 다만 깊게 곪아갈 뿐이다

문명인은 문맹인과 사는 법을 모른다

다만 지배하는 기술과 빼앗는 능력만 잔인할 정도로 탁월하다

그들의 지혜는 하늘을 찌르고 그들의 힘은 땅을 누른다

   

그러나 하늘을 찌르는 지혜는 유황불이 되어 내릴 것이요

땅을 누르는 힘으로 만든 성은 재가 되어 사라지리라

문명인! 너는 호미로 칼을 만들었고 양심의 어두움을 방패삼았으니

그 칼은 너를 찌를 것이요 방패는 너를 드러내리라

칼과 방패로 쌓은 탑이 하늘에 닿았느냐

주추는 좀 삭고 뼈대는 녹아 내린다


하늘은 너의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요

땅은 너를 결박할 것이며

바다는 너를 침몰할 것이다


하늘은 비를 그칠 것이며

땅은 갈라질 것이요

바다는 그 바닥을 드러내리라


우주 공간에 산소가 동이 날 즘

마지막 태양이 너를 찾아와 강렬한 빛으로 사를 것인즉

철갑으로 두른 쇳물은 녹아내려

네 살을 태우고 네 뼈를 달구리라

   

아픔이 없는 너

슬픔을 모르는 문명인이여!

- 「아픔이 없는 너 문명인이여!」


  이 아이러니는 감히 그가 시의 연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이는 그의 사랑의 세계를 고양시켜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1부 ‘만남 이후’는 「당신(Ⅰ)」, 「당신(Ⅱ)」, 「만남」, 「아직도 먼 하늘」, 「만남 이후」, 「키웨스트에서」, 「사랑의 기도(Ⅰ)」, 「사랑의 기도(Ⅱ)」, 「사랑의 기도(Ⅲ)」, 「그」, 「무슨 이유로」, 「까미유 끄로델」, 「들국화」, 「고백」, 「가을은(Ⅰ)」, 「가을은(Ⅱ)」, 「책망」, 「소녀와 델리」, 「순교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제 1부 ‘만남이후’는 당신을 만난 이후의 백 시인 삶의 변화에 대한 철저한 자아성찰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성적 사고에 의한 정확한 표출의 의미는 시가 갖는 주지적 관점인바 절대적 소크라테스의 진리관인 지행합일(知行合一)과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4주덕의 이상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 가미된 현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한국인다움의 휴머니스트적인 백시인의 마음의 터전을 철저히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삶으로 그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데에 축복과 그 사랑을 받은 값어치로서의 당신을 닮아감을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합일의 경지로 시화 하는 데 있습니다.


황폐한 나의 땅에서

목마름이 있는 하늘에서

당신이 자라고 있습니다.

   

기쁨이 되고, 아픔이 되고

그 속에 당신은 피고 있습니다.

   

꽃은 피었다 지고

새벽은 어둠을 뚫고 열리듯

소나기 쏟아진 후 일곱 빛깔

당신은 무지개로 오시리라

- 「당신(Ⅰ)」에서


  섬세한 새싹이 자라난 과정은 결코 움틀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이 없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길을 소나기 쏟아진 새벽 이후의 일곱 빛깔로 된 무지개로 오시리라 믿는 믿음의 싹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길의 찬란하고 영롱한 빛으로 오시는 길에 서 있습니다. 시인 자신이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되어 시의 연인이 되는 데 있습니다. 즉 자신을 그리스도화 시키는 시적 형상화는 “당신”이란 표현으로 한 대상을 지칭하고 있으나 곧 한 대상인 “당신”은 시인 스스로임을 감지케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자란다거나 당신이 피고 있다면 당신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신앙적 대상인  당신이면서 그 당신은 시인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스스로에 대한 소망을 담고 삶의 현실 가운데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젖 땐 아이처럼

당신을 그립니다

목마른 손짓으로 당신을 부릅니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곁에 있지 않아도 함께한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시는 님

   

만남만으로도 

그리운 사랑입니다

- 「당신(Ⅱ)」에서


  좋은 신앙시는 좋은 시라는 백 시인의 시적 등가적 가치관은 시인과 동일시 된 시를 통한 그리움 쏟아내기 입니다.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매개로 한다는 당신에의 그리움은 진물이 나도록 걷는 삶의 여정이 결코 고달프고 서러운 길이 아님을 예시합니다. 야곱이 그의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14년을 수일같이 여겼듯이 1부의 관건이 되고 있는 「만남 이후」의 시에서는 “함께 있어도 그리운 당신”이 됩니다. “헤어지면 더욱 그리운 당신”인 그리움의 무게는 “이억만리 쫓아온 당신”에서 구체화됩니다. 이 그리움은 단순한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이 되는 “향수병은 온 몸으로 번저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절대적 당신에의 그리움은 “宴樂(연락)의 우주공간에 팽게 쳐진 객이 되어” 있어도 결코 외롭지 않는 삶의 화려한 행진곡이 됩니다. 오늘날 허물기 시대와 잃어버리기 시대의 특징의 한복판에 서서 백시인은 그의 삶의 화려함을 결코 한낱 인간인 백시인의 일상성에서 찾고 있지 않다는 것에 그의 시쓰기의 중요한 의미가 담겨집니다. 그것은 그의 「사랑의 기도(Ⅰ)」에서 그의 삶이 이 멀티미디어 시대에 허물어 지지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눈에서 멀어졌지만

마음에서 더욱 가까옵는

그런 사랑을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손으로 붙잡지 못해도

마음으로 붙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죽어도 영원히 죽을 수 없는

그런 사랑을

- 「사랑의 기도(Ⅰ)」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라고 하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있음으로서 며느리가 되듯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나라는 말을 할 수가 있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백 시인은 예수님이 있기에 존재하는 시인입니다. 이러한 시적 상징의 연인 관계는 시적 화자가 여성성이 되는 특징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나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요한복음과 마태복음 등 사복음서에서 때로는 나를 따라 오라 하였고 그리하지 말라고 금언을 말씀하시고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연계성은 백 시인에게 있어서도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아버지의 일을 대신하였음을 보여주는 바와 같은 따라하기의 시적 상징성으로서의 연인관계입니다.


사랑하는 민아!

정수리가 으스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그리고

살 갗이 뒤집어 지도록

죄인의 형틀에 묶여

가혹한 채찍을 맞아야 할 놈은

정작 애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의 십자가를 졌구나

   

잠들지 못한 너의 고통을

형벌로 알고 견딘다

사랑하는 민아!

감히 무슨 자격으로

너를 책했는지 모르겠구나

   

넌 알고 있겠지

날마다 훨씬 더 크고

부끄러운 죄를 짓고 사는 놈이

무엇하나 솔직히 고백치도 못하고

어물쩡한 어리석은 애비인 것을

   

그렇지만 이 밤 네가 먼저 잠들기 전에는

난 잠들 수가 없구나

- 「책망」에서


  아버지에게 사랑받기는 그대로 옮겨져서 아들의 아픔을 아버지가 대신하려는 아비된 자의 심층의식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아버지 마음의 아픔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는 Glory와 Honor의 두 종류로 나뉘어 집니다. 영광과 존귀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만큼 하나님을 향한 존귀와 영광을 드리는 자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들에 대한 사랑의 아픔은 하나님께서 백 시인에게 주시는 존귀와 영광임을 알게 된 뒤에 오는 인간으로서의 고난과 영광과 존귀가 됩니다. 영광은 아픔이 동반되는 나눔에 있습니다. 이는 백 시인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닮음꼴이 되는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마음입니다. 마치 온조왕이 그의 사랑하는 백성을 위하여 밤새도록 바위에 앉아 있어서 바위가 따뜻해졌듯이 따뜻한 마음의 바다에 머무는 사랑 그 깊이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하여 밤을 새우는 마음의 세계는 「소녀와 델리」에서도 통시성을 갖습니다.

  

천국, 만남과 쉼이 함께 하는 곳

낙원, 어느 곳에서도 믿음과 사랑

무엇을 해도 기쁨과 평안

  

한 소녀가 사는 그곳은

델리의 나라인데

   

호수 위에는 백조만이 울고

순백의 나래짓 고이 접은 채

소녀가 서둘러 떠났음을

델리는 슬퍼하고 있었다

   

그 후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고

델리는 황폐한 땅

척박한 그곳에 한송이 꽃은

피고 있었다.

- 「소녀와 델리」


  만남과 쉼이 함께 하는 곳은 천국입니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해도 믿음과 사랑,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게 넘치는 낙원과 같은 델리의 나라에 소녀가 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소녀가 서둘러 떠났음으로 인하여 델리는 슬퍼하고 있게 되고 따라서 그 둘의 공간인 호수 위에는 순백의 나래짓 고이 접은 채 백조만이 울다가 간 자리가 됩니다. 그 후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음으로 인하여 델리는 황폐한 땅이 되었습니다. 둘만의 공간이 천국이 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며 그 소녀가 없으면 황폐한 땅이 되는 은유의 상징성으로 바로 절대자와의 같이 있음이 극대화 하는 의미 확대의 공간입니다. 또한 비유적으로 그대가 없는 세상의 황폐한 땅을 백 시인은 순교자의 자세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순교자 무덤가엔 꽃이 피는데 꽃으로서 꽃보다 다시 피기 위하여 떨어지는 꽃으로 피고 있습니다. 말없이 원망 없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화려한 자취도 모양새도 없는 향기로운 꽃으로 피는 순교자의 삶을 앙망함은 순교자 무덤가엔 천상의 꽃이 피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피어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랑의 꽃으로 피기 위하여 「순교자」의 길을 걸어 갑니다. 그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로, 시작도 끝도 없는 그로, 죄인인 나를 사랑의 포승으로 묶어 감금해 버린 채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 버렸기에 나는 사랑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내 가슴에 새겨준 그가 내 첫사랑임을 고백하는 시적 화자는 바로 사랑의 대상임을 고백하고 처음도 끝도 없는 끝 없는 사랑의 그임을 「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에게 그가 주는 비중은 측량할 수 없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그의 세계가 시작도 끝도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인인 시적 화자를 사랑의 포승으로 묶어 감금해버린 채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 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 시인의 세계를 시의 연인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서도 찾아지는데 시적 화자의 가슴에 새겨진 이러한 그의 능동적 행위는 시적 화자로 하여금 그가 내 첫사랑이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그 순교자 무덤가에는 늘 꽃이 피고 그 꽃은 꽃으로서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의 꽃을 피기 위하여 떨어지는 꽃으로 핀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이 꽃은 천상의 꽃이 되고 시적 화자로 하여금 영원히 피어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랑의 꽃으로 피기 위한 사랑의 포승자가 되게 하며 시적 화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더 아름다운 꽃다운 꽃이 되기 위한 그의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행복자가 되고 있습니다.

  제 2부 ‘마음에’는 「열병을 앓은 후」, 「이별」, 「마음에」, 「물망초의 노래」, 「어느날」, 「무제」, 「바보의 사랑」, 「葬地에서」, 「순교자를 보내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열병을 앓은 후」에서는 사랑의 열병을 치룬 후의 모습이 시적 표출 구조가 됩니다. 열병을 치룬 대가만큼 「열병을 앓은 후」의 시에서 사랑의 시적 화자는 눈이 맑아지리라는 어느 소녀의 말이 진실한 사랑임을 확인합니다. 순수한 세포를 새로 움트게 하고 싱그러운 생기의 호흡을 주는 것은 열병을 앓은 후에 즉 열병을 치룬 후에 오는 필연의 눈이 맑아지는 경험입니다. 백 시인이 사랑의 연인이 되는 것은 그가 시적 화자를 여성으로 잡는 데 있습니다. 그와의 사랑이 열병이 되고 열병을 앓은 후에는 그 열병의 경험과 체험을 통해 참으로 진실하고 참된 사랑을 나눔에 대한 희열에서 오는 사랑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인의 자세는 「이별」에서도 같은 등가성을 이룹니다. 가슴에 사뭇힌 어머니 툇마루에만 서성이시고 날밤을 새다 가신 날, 그날 아침 첫 서리가 몹시도 내리던 날에는 하얀 국화꽃이 핀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은 그 열병을 앓은 후도 변함없이 시적 화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존재는 다름아닌 예수님임을 암시합니다. 이별의 대상이 어머니라는 이 체험의 바탕은 시적 시안이 형이상학적이어서 비록 이 세상의 육신의 혈육들과 헤어짐을 경험하지만 승화하여 종교적 차원으로 영입되고 그 대상은 절대성의 상징성으로 하얀 국화꽃이 되는 시적 환유를 하고 있습니다. 유명을 달리하는 이 아픔은 「마음에」 시에서 구체화 됩니다. 비가 비가 아니라 눈물임을 암시하는 이 한 사람을 사랑한 사랑의 절대치는 이 세상에서 체험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럽고 소중한 체험입니다. 

  

때로는 가는 줄기로

때로는 굵은 줄기로

   

이편에 비가 내린다

   

시도 때도 없이

바람은 비구름 저편에

소나기를 몰고 오고

   

굵은 줄기로 쏟아질 적엔

   

이편에 내리는 비는

비가 아니다

- 「마음에」


  마음에 새겨진 사랑의 화인은 애인보다 더한 친구로 친구보다 더한 애인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며 땅에서 하늘까지 낮과 밤도 없이, 쉼도 없이, 잠도 없이 그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적 동일성을 보여줍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니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니라 하리라” 하였습니다. 잠언 22장 1절에서부터는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빈부가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한다”고 하셨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옹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였고 영혼을 지키는 자는 재앙을 멀리 한다. 하였습니다. 행복을 찾고자 하는 자의 모습은 그만큼 절제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로 사랑의 빚진자가 되고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됩니다.

  제 3부 ‘기다림’은 「비 오는 날」, 「기다림」, 「추억」, 「민들레」, 「思慕」, 「잠 못 이룬 밤」, 「그리움」, 「回想(Ⅰ)」, 「回想(Ⅱ)」인데 기다림이 그 중심핵이 됩니다. 줄기줄기는 모자이크 빛으로 합성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림자가 되어 굵은 소리를 내며 우는 날은 설운 가슴에 묻어 둔 사연이 온통 쏟아 붓게 되는 날이며 전달되지 않는 편지를 띄우는 「비 오는 날」이며 바로 잠시, 잠깐 있다 곧 오리라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어머니,아버지,누이,형이 그리운 날입니다. 이 그리움은 부엉새의 울음이며 평생을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사랑의 연인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기다림」 시는 생사를 달리한 사람을 기다리는 극적 그리움의 세계는 백 시인의 아름다운 시적 환상입니다. 이로 인하여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시를 통한 가능성이 되게 하는 사랑의 연인이 되게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백 시인에게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시적 연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를 통하여 가능한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떼 지어 노는 피라미 떼와 같이 물장구치는 추억의 젊은 날은 깔깔히는 햇살에 벌거벗은 동무들이 에덴의 냇가에서 웃던 「추억」의 이밤은 달무리에 핀 어머니가 오동나무 가지에 걸린 날로 「잠 못 이룬 밤」입니다. 떼 지어 노는 피라미 떼와 물장구치는 아이들이 깔깔히는 햇살에 벌거벗은 동무들이 에덴의 냇가는 웃음이 넘치던 유년의 강가는 지나갔지만 백 시인의 마음에 아름다운 보물이 됩니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이밤, 찾아오시는 님인 달무리에 핀 어머니가 오동나무 가지에 걸렸습니다. 그 님은 바로 님이여 가슴속에 아련히 피어오른 봄꽃이고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 끈질긴 만남의 결박입니다. 간장을 후벼내듯 밤새 목 메인 울음을 울음 우는 그 현실입니다.

  

2. 하늘의 연인

  

  백 시인이 하늘의 연인이 되는 시어의 최다빈도수의 심층의식은 제 4부에서 ‘부활의 기도’를 「送舊迎新의 祈禱」, 「새해소망」, 「풀잎의 기도」, 「부활의 기도」, 「恩寵」, 「使命」, 「殉名」, 「召命」, 「聖別」, 「청명한 날」, 「개혁의 전사들이여」, 「강변 언덕에」, 「어느 가을 날」, 「주바라기」로 하는 데 있습니다. 「送舊迎新의 祈禱」의 부제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찬송하게 하소서를 그 의미의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겪는 송구영신의 의미입니다. 바로 백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은 참회의 정신으로 무릎 꿇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새해에는 찬송하게 하소서”라는 서장을 비롯하여 존재의 의미를 모르고 살았던 행복할 수 없었던 날들은 낙엽처럼 모두 떨어져 내 버리고 힘겹게 오르던 언덕에서 지난 시련의 끝을 보는 시안은 바로 육신의 쓰라림이 영혼 깊숙히 파고든 은혜입니다. 회오리 바람 할퀴고 간 상처들의 파편 속에서도 절대자를 향해 백 시인은 다만 오! 주여 곤고한 이곳, 칙칙한 늪에서 우리를 구원 하여야 할 당연한 외침으로 돌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밝아오는 아침 저 눈부신 태양처럼 땅에서 땅 끝으로 그리고 하늘에서 하늘 끝으로 퍼지게 하는 주님의 명령을 기다리며 오늘을 견디는 입술을 가진데 대한 감사입니다. 백 시인은 성스러운 찬송을 가슴이 타도록 소망 하고 있습니다. 저무는 20세기 마지막 바라보는 강가에 건너야할 터널인 어둠 속 迷路를 오히려 당신을 향한 타는 갈망으로 돌리고 있음에 백 시인의 커다란 믿음의 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을 부르다가 죽고 싶은 노래가 거룩한 제사가 되어 순결한 제물로 드리고 있는 이 사랑을 찬송하게 하여 달라고 갈구하고 있습니다.

  「풀잎의 기도」는 시들한 쭉지에 내리시는 은총의 새벽에 찾아오신 님이 됩니다. 이 님은 작은 꽃망울로 가냘프고 여린 것으로 아무도 모르게 피어나는 생명의 신비한 소리입니다. 다가와 첫 사랑의 고백처럼 가슴이 파르르 떨리고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눈시울이 뜨거운 아침을 만나는 기적의 현장을 갖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바래도 좋을 작은 이슬방울이 됩니다. 오뉴월 신작로 바닥 뭍 사람들 발바닥에 깔려 당신의 따스한 품에 안식을 바라는 아름다운 환상에 젖습니다. 이 사랑은 아무런 원망도 없이 오히려 얼어붙은 세상에 초연히 묻히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백 시인은 시적 가치로 그의 시의 연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부활의 기도」에서 보여주는 영광의 나라 부활의 아침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사랑하는 사람의 낯을 보게 되며 빛나는 그이의 얼굴을 대하는 자기 자신임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恩寵」의 시는 언젠가는 가야 할 몸이지만 아침을 바라는 은총 때문에 벌써 어디론가 갔어야 할 몸이지만 기다리는 대상이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시적 화자가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가 됩니다. 떠나버린 사람을 기다림 때문이야라는 시적 은유를 통해 간절한 기다림의 삶을 가치화하고 있습니다. 한 점 구름처럼 허공에 떠가다가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이거나 먼지일 뿐인 시적 화자는 오히려 풀끝에 매달린 이슬이 형용할 수 없는 빛으로 아침을 맞이하듯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에의 안타까운 기다림이 되는 시적 가치입니다. 화자가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백 시인으로 하여금 오늘도 기력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당신에의 기대 때문인 시적 폭력어에 매력성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당신의 강압적인 포박 때문이라고 하고 있으며 당신은 나를 동여 맨 사랑의 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호수가 조는 오후

초라한 껍데기들

흔들리는 갈대를 보았다

   

산새도 조심스레 울어재는

육신의 산란한 잡음이듯

잔물결로 일어선 바람

찌그러진 얼굴도 보았다

   

가랑비 고운 눈물이

옷깃을 적시며

告解를 한다

   

가을의 정열은 더욱 붉게 타고

빈곤한 사랑도 익어 가는데

잠든 호수의 고요한 품속에

객은 이미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 「어느 가을 날」에서


해 따라 가는 해바라기

해 바라며 살고

   

주 따라 가는 주바라기

주 바라며 산다

   

해바라기는 해 닮고

주바라기는 주 닮고

   

해 따라가는 해바라기

주 따라가는 주바라기

   

해바라기는 해를 보며 웃고

주바라기는 주를 보며 웃는다            

- 「주바라기」에서


  「어느 가을날」 시에서는 호수가 조는 오후 초라한 껍데기들 흔들리는 갈대를 보는 가을풍경 속에서 또 산새도 조심스레 울어 재는 육신의 산란한 잡음으로 이는 잔물결로 일어선 바람과 찌그러진 얼굴도 보는 경지에 이르는 시인의 시안은 바로 가랑비 고운 눈물이 옷깃을 적시며 告解를 하는 장면이 됩니다. 이러한 사물의 나와의 동일화는 백 시인의 삶의 일정이 가을의 정열이 되어 더욱 붉게 타게 하고 빈곤한 사랑도 익어 가게 하는 신비의 경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열 속에서도 잠든 호수의 고요한 품속에 백 시인이 이미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삶의 현장은 시인만이 갖는 은총이 되는 것입니다. 「주바라기」 시에서 보여주는 사물의 객관화적 시의 은유는 바로 시가 갖는 가장 핵심적인 은유의 장을 해 따라 가는 해바라기가 되는 것이며 해 바라며 살아가는 과정과 주 따라 가는 주바라기 주 바라며 산다고 하는 대립과 비유의 경지를 통해 해바라기는 해 닮고 주바라기는 주 닮아 사는 삶의 존재 이유는 바로 백 시인이 시의 연인이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해 따라가는 해바라기는 주 따라가는 주바라기가 되는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해를 보며 웃고 주 바라기는 주를 보며 웃는다는 이 사물의 동일화와 시가 갖는 예수님과 동일화를 갖는 삶의 현장은 오늘도 온종일 주바라기를 실행하는 실천의 삶이 일생동안 이어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제 5부의 ‘20세기 출애굽’은 「양갈래」, 「허물」, 「죽은 사람」, 「촛점」, 「명동거리」, 「번개치는 날」, 「길목에서」, 「速報」, 「20세기 출애굽」, 「(Ⅰ)序幕」, 「(Ⅱ)탈출」, 「(Ⅲ)신광야 길」, 「(Ⅳ)終幕」의 시로 되어 있는데 출애굽을 하여야 하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양 갈래」 길은 끝없는 인생의 삶을 시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가 봐도 허망한 것이 왜 그리 그리울까? 가 봐도 그뿐인 것을 왜 그리 목 메울까? 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갖는 하늘에의 소망은 가도 가도 메마른 땅에서 채울 수 없는 커다란 호수가 되는 시적 하늘에의 소망으로 잠재울 길 없는 그리움이 됩니다. 이러한 시의 연인은 시를 위해 사는 삶이 곧 하늘에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가 봐도 허망한 것이 왜 그리 그리울까? 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백 시인은 가장 인간적인 내면의 깊은 심연에서 그의 목메인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백 시인은 그곳을 가도 가도 메마른 땅의 채울 수 없는 커다란 호수이고 잠재울 길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움은 오히려 백 시인에게 있어서는 「허물」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 세상에 연연하는 인간의 주름잡힌 얼굴의 모습 그대로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이제, 그만들 정신 차리고 어두운 눈을 뜨고 살피는 시적 화자는 바로 이 점이 언제나 가지고 있는 무거운 멍에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아름다움이 우리 시인들의 가장 큰 장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훌륭한 시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바로 21세기의 상징적 의미의 가장 번화한 「명동거리」의 모습이 투영된 현실이기도 합니다. 명동거리가 한해 또 저물어 가지만 구세주는 언제 오시는가고 하며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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