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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노래-18[박찬현]
2009-04-17 06: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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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655
추천:92

 

 

18.광녀들의 군무

홍희 아버지가 허리를 다쳤다. 일흔이 넘고 보니 어떻게 잘못 돌에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졌는데 무릎이 가슴팍을 받았다.

종종 있는 사고의 유형이지만, 뼈에 칼슘이 빠져 나가 골다공증이 심한 경우 가슴 쪽에서 타격을 가해도 척추가 부서지는 예가 많다는 것이다.

허리를 움직이지 못해 서울에 있는 한국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영미는 결혼 전에 자신의 결혼을 반대 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 드레스 가게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주부이자 큰 며느리가 시아버지 병간호를 돕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고집에 홍희가 바쁜 와중에도 하루걸러 병원 엘 드나들었다. 그러면서도 영미는 가끔 저녁시간 자신의 남편이 퇴근 할 무렵 병원엘 왔다.

함께 집에 들어가려고 왔다는데 홍희가 보기엔 그것이 아니 듯 했다.

홍희는 자신의 아버지가 병원 밥에 입맛을 잃어보여서 육개장 국을 끓여오느라 해질 저녁에 병원 엘 왔다.

입원실을 돌아서 들어오려는 초입에 영미가 남편과 언쟁을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아버님 병원비를 준비하고 있다면 갈라 설 준비 해둬.”

“내가 왜, 너희 집 부모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고 결혼을 했어야 했는데?”

“못 마땅한 며느리에게 손 내밀 필요 없잖아?” 독기를 잔뜩 품은 말이 와르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언제 손 내밀었다고 그래?”

“부모님들이 여유가 없지도 않지만 그럴 분들도 아닌 거 잘 알잖아?”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아무튼 난 한 푼도 내놓을 수 없어!”

“네가 돈 벌어 오냐?” 홍희 오빠는 까칠하게 답을 했다.

“누가 벌어 오든? 그럼, 애들은 누구네 식구인데?”

“우리 애들이고 우리는 식구이니까 그 돈은 우리 가족들의 돈이야!” 형광의 독이 스며든 언어들이 홍희의 발 앞 까지 굴러 와 멈추었다.

“그러는 너도 부모인거 같은데, 부모란 본을 보여라!”

아무리 봐도 늘 같은 변론들이 오고 간 것 같은 이음새이다.

“그러니까, 난 네 부모들처럼 악랄하게 그러진 않을 거야! 내가 뭐가 모자라서 며느리 감으로 못 마땅하다는 거야?”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형광 볼들이 수평을 이룬 바닥 위로 쏟아져 나와 어지럽게 와르르 굴러 다녔다.

“그건 이미 지나간 일들이잖아! 그리고 결혼 허락해서 했잖아! 우리가 동거 하고 있냐?”

“그래도 나는 용서를 할 수가 없어!”

“그래, 하든가 말든가 머리 아프니까 그만해라!”

“난 온몸이 아파 심장도 터질 것 같다고!”

아주 칼날이 살을 베어 가듯 영미가 내 뱉는 말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삭 아삭 뼈까지 먹어 드는 것 같았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탁구공이 탁자 위를 옮겨 가듯 받아서 쳐 올렸다.

“눈에 불 꺼라, 그러다 잘 하면 여기서 또 치겠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 홍희는 내심 적이 놀랬다. 그러고 보니 동생들 입에서 나온 말들을 흘려들은 적은 있었다. 영미가 동생들이 보는 앞에서 홍희 오빠를 폭행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홍희는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라며 동생들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영미는 어려서 목발을 오래 짚고 다녀서 그런지 여느 여자들 보다 어깨가 넓었고 힘이 거친 편이다. 그리고 홍희의 오빠는 몸이 야윌 대로 야위어서 더러 식구들과 모여 잠들 때 보면 바닥으로 기어들어 가듯 가라앉으려 하는 쇠약한 체구이다.

“하지 말라면 안 할 것 같아! 내 심장 터지느니 너를 죽이는 게 한결 속 편하지!”

홍희는 하마터면 국이 든 통을 바닥으로 놓칠 뻔 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 둘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자 홍희는 입원실로 들어 왔다. 그날 밤, 입원실 보호자 자리에 누워 그 둘의 언어들을 되 새겨 보았다. 그러나 홍희는 정작 머리만 아팠다. 그 둘의 인생이 가엽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했지만 왜, 그렇게 새끼줄처럼 꼬여 있는지 안타까웠다. 그 밤에는......,

 

 

병원 측에서는 홍희 아버지에게 수술을 시술 할 수 없다고 했다.

“환자가 일단은 연세가 많고 당뇨가 심하므로 부서진 척추를 수술하기에 난관이 있습니다.”라는 담당 주치의 말이었다.

홍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죄다 동원해서 척추만을 전문으로 시술하는 병원을 알아냈다.

곧장 그 병원에서 홍희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는 것은 홍희 남동생 이였다.

“간밤에 형수가 수술을 못하니까 아버지를 모시고 가라고 해서 지금 고속도로를 타려고 진입로를 가고 있는 중이야 누나.”

“그럼, 진입로 들어가기 전에 강변북로로 빠져 나와서 가르쳐 주는 대로 오도록 해.”

병원 측에서는 입원 하였던 대학병원 방사선과에서 찍은 MRI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희는 그길로 지하철을 타고 강남에서 한국대학병원으로 갔다.

간호사들이 사진을 내 놓지 않았다. 영미의 입김이 들어간 얘기 그대로이다.

홍희는 그때서야 눈에 불을 켜고 간호사를 몰아 세웠다.

“환자의 병을 고치고 살리는 곳이 병원이고 의사의 직무이며 간호사들의 입장인데 지금 당신들 나하고 싸우자는 건가, 놀자는 건가, 당장 사진이 필요하니 내놓으시죠.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어 내보 낸 환자인데 그 사진으로 국이라도 끓여 드실 건가요?”

“지방 대학 병원에서도 환자에게 필요한 사진을 CD로 구워서 주는데 무슨 이런 경우가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홍희는 환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저의가 뭐냐고 항변을 했다. 간호사들은 홍희가 너무 화가 나서 병원이 떠나가라 떠드는 게 싫어서인지 어찌 되었건 순순히 방사선과에서 찍은 사진들을 내 놓았다.

“스캔 뜨고 우편으로 보내 줄 테니 그때 맘대로 하십시오!” 라며 쏘아 붙였다.

간호사는 새침하고 다리미로 뻔뻔하게 다려 놓은 듯 표정을 지으며“필요 없는데요.”라며 대답 했다.

“아니, 필요도 없는데 왜, 좀 전에는 주네마네 하며 사람 약 올리신 겁니까?”

“며느님 대시는 분이 그렇게 해달라고 해서요.”

"......,"

홍희는 영미가 시켜서 그렇게 했다는 대목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간호사가 더 어이가 없었다.

영미가 '병원비를 한 푼도 내 놓을수 없어!'라고 입 속에서 가당치 않게 튀어 나오던 말들이 홍희의 뇌리에 영상으로 흘렀다.

“이봐요. 그 며느님이 병원비 낸 다고 합디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잘 모르겠으면 확실히 알아보고 말을 해야지 무책임한 말을 줄줄이 뱉어 놓고 글쎄요 라니? 잘하면 사람 여럿 잡겠습니다.”

“그리고, 환자 보호자는 분명히 저인데, 어디에다가 말도 안 되는 상담이 오고 간 거 에요?”

“정작 보호자는 뒤로 제쳐 두었다고 칩시다. 무슨 대학병원이 일개 개인 병원보다 더 웃기지 않나요?”

“그 며느님이 대학병원 원장이든가요? 아니면, 사적으로 남용하는 직무가 영 말이 안 되는 일이란 걸, 그 쪽은 지금 알고나 있는 것이에요?”

“지금, 그 쪽은 아무나하고 상담하고 혼자서 결정하고, 상식이 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아니면, 이 병원 규율이고 규칙인가 보죠?"

간호사는 뭐라고 우물거렸다. 영미의 말 한마디에 맞장단을 치며 환자를 우롱하는 자세가 홍희는 도무지 용납 할 수 없는 일로 받아 들여졌다.

영미의 그 용의주도함이 기가 막힌 행태로 연 이어 지는 것이 홍희로 하여금 경악을 하게 했다.

홍희의 눈길이 간호사의 손가락에 착용한 반지에 머물렀다.

“당신도 부모가 있을 테고, 결혼도 하신 듯한데, 며느리는 모두 시부모를 병신 만들어도 된다는 법률 조항이라도 새로 만들었습니까?”

홍희는 주체 할 수 없는 모멸감에 간호사를 향해 마구 면박을 주었다.

말이 대학 병원이지, 근무하는 직원은 개인 캡슐에 주저앉아 개인 마케팅을 하는 소호몰 병원으로 전락해 있다. 인명을 다루는 중요한 곳에서 개인의 판단과 감정개입이란, 철저하게 순환이 빠르게 되어야 할 조직체가 혈관을 막는 응고체로 작용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병원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홍희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은 인명을 경시한, 한 인간의 비열함이 도도한 푸른 혈관처럼 쿵쿵 거리며 그 속을 관통을 하고 있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데로 간호사 직무나 잘 지키시지 그래요!”

“꼭 환자들이 그것을 들먹거리는데 다 아세요?” 비아냥거리며 말꼬리를 물고 늘어 졌다.

“이런 맹랑한 여자를 봤나?”

“환자와 보호자의 시간을 잘라 먹어야 소화가 잘 되는 간호사인가 보군요. 그 선서는 간호사들만의 능히 외우고 다녀야 할 선서문이지 일반인들이 세부 사항을 꼭 알아야 만이 당신 같은 간호사들에게 모욕을 당하지 않나보죠?”

"대답 한번 들어 봅시다.”

“이미 아주 중요한 내 시간이 그 쪽 위장으로 다 들어 가 버렸으니 남은시간이 머 필요나 하겠습니까?”

그 간호사는 계속 입안에서 오돌 뼈를 씹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오물 거렸다.

간호사는 빈정대듯 조소를 입가에 흘리며 매양 사람을 우롱하고 있었다.

사진을 획 집어 들며 한동안 화가 잔뜩 났는지 아니면 질린 것인지 모를 표정의 간호사를 노려보며 한 마디 더 늘어놓으려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그동안 시간이 절반은 간 듯 했다.

끝까지 뻗대던 간호사 한명만 무슨 큰 임무를 맡은 양 했지만, 주변 직원들은 사실 난감 해 했었다.

공적인 일을 행하여야 할 간호사가 특정인 한 사람에게, 아주 사적인 감정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전력 피력 했다는 점이 홍희의 기분과 온 힘을 기진하게 했다.

홍희는 가만히 생각을 하면 할수록, 신경전을 벌이지도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 놓은 영미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영미의 농후한 입담이 오고 갔음은 역력 했고, 모르긴 몰라도 약간의 뒷돈도 집어 주고도 남을 영미였다.

방사선 사진에는 분명 심각한 증세가 그려져 있을 터이고, 홍희가 다른 병원을 찾으러 다니러 나간 것을 안 이상, 영미는 분명 홍희가 그 사진을 필요로 할 것일 터이고, 사진을 내어 주면 남은 병원 뒷감당을 해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영미는 싫어서 온몸으로 거부하러 들었다. 홍희의 입장을 전혀 고려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시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말린 무 오가리처럼 말라비틀어진 양심을 한 겹 벗겨낸 속에, 깊숙이 들어앉은 얄팍한 속내가 몹시 기분 나쁘게 어른거렸다.

남의 속을 뒤집을 대로 죄다 뒤집어 놓고 입을 꾹 닫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양 시치미를 뚝 떼고 자기가 하던 일들에 시선을 멈추고 있는 간호사를 뒤로 하고 병원을 걸어 나왔다.

 

 

아침부터 강남으로, 서울 강북도심에 있는 병원으로 그리고 다시 강을 건너 왔다.

척추 전문 병원에서는 전체적인 사진을 다시 제대로 찍기는 하지만 그 사이 얼마만큼 병의 증세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나가는지를 알고 싶어 하였다.

홍희가 들고 온 사진들을 의사는 스캔을 했다.

그리고 홍희 아버지는 그날로 모든 사진 촬영을 마치고 입원실에 누웠다.

홍희 아버지는 영미가 퇴원 한다니까 함박웃음을 베어 물고 “조심히 내려가세요.”라며 배웅 했다고 했다. 그 가식적인 모습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배어 나와 홍희 아버지도 몸서리가 쳐진 느낌 이였다.

그러고 보니 홍희가 병원엘 오지 낳은 날 그렇게 일 처리를 한 것이다.

옮겨 간 병원에서 수술을 할 동안 영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홍희는 역시 발도 들여 놓지 말라고 언성을 높였다.

 

영미는 무엇이 분하고 억울했는지 홍희에게 전화를 해서 뜬금없는 말들을 주저리 흘려 놓고 있었다.

“네가 오빠랑 세희를 둘이서 한 달에 한번 씩 고향에서 만나게 해주었지?”

“그 둘이서 모텔에서 하룻밤 지내고 오게 하다니 네가 나에게 그럴 수 있냐?”

세희는 홍희 오빠가 사귀던 여자였고 영미가 갈라서게 만든 사이다.

“무슨 엿 가락에 이빨 부러져 나가는 소리야? 지금 소설 써?”

“발이 저리지? 둘러 댈 것도 없고 하니 소설 쓰냐고?”

“새가 올케 눈에 용하게도 똥물 지렸나보네, 눈이 제대로 안 보여?”

“네가 내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는 걸 알고나 있니?”

“올케네 가정? 소중하지~, 그 소중한 걸 파괴를 할 리가 있나, 아니, 따슨 밥 먹고 무슨 휜 소리야?”

“소중한 거 알면서 그런 짓을 해? 내가 없는 말 하는 걸로 보이니?”

“요즘, 올케 쉰밥이나 뭐 잘못 먹은 거 아냐? 그러지 않고서야 정신 나간 소리를 자꾸 읊어대는 거야?”

“너희들 서로 짜고 그러는 거지?”

“올케, 짜긴 뭘 짠다고 그러는 거야? 난 털 옷 한 벌도 못 짜고, 그물도 짤 줄 몰라!”

“내가 너를 모를 줄 아니? 너도 세희 좋아 했잖아?”

“글쎄, 세흰지 삼흰지 난 모르겠고, 올케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아니 지금 보니 제대로 미쳤네!”

그 대답에 영미는 휴대폰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홍희는 그냥 전화기를 꺼 버렸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영미 영향으로 너무나 뻔뻔스러워서 정신질환자 같았던 간호사랑 열변을 토해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뒷목이 뻐근하며 아파 오는데 또,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얘기이냐고 항변을 해 봤자, 분명 영미는 귓등으로 홍희의 말을 흘려 버린 채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변형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영미는 자신이 의구심을 품었던 것들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미 그녀는 누구도 감당 할 수 없는 대단한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세희도 엄연히 가정이 있고 자식을 둘이나 둔 어미인데 이미 떠나간 옛 남자를 속으로야 그리워 할 런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영미는 시나리오를 쓰듯 홍희를 몰아 세웠다.

영미는 누가 뭐래도 영락없는 전여사의 실체였다. 툭 하면 남을 모함하고 남의 개인사를 뒤에서 쑥덕거리던 역사가 거침없이 불거져 나왔다. 아련한 과거에 전 여사는 자주 눈에 뛰던 모습은, 비구니들이 입을 먹색 바지를 즐겨 입고, 항상 가부좌를 틀은 채 한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고, 여자도 아닌 남자들에게 남은 한 손으로 가리고 무언가를 귀에다 대고 늘 소근 거렸다. 거기에 머리를 들이 대고 들어 주던 남자들도 멀쩡한 지위를 가진 자들의 행색이 그렇거니와 지치지 않고 항상 남의 말을 하는 일에 일상다반사로 여기던 전 여사의 모습이 지금 영미에게서 여실히 들어 나고 있었다.

홍희는 가당치도 않은 전화에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떠들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탔다.

홍희는 병원 복도에 마련 된 물을 마시면서 예전에 전 여사가 “목이 탄다.” 며 허겁지겁 달려 들어오던 모습이 어둔 창가에 그려졌다. 화가 난 홍희는 들이키던 물을 부어 버렸다. “몹쓸 것들......,”

검은 밤 창가에 별들이 가까이 내려와 죽창과 횃불을 높이 들고 왕왕 거렸다.

칠흑의 밤을 가르고 건너 편 빌딩 숲으로 붉은 혈흔들이 넋이 되어 흘러내리고 바람소리를 내며 울어 대었다.

그 영혼들이 울음과 혈흔들이 뒤 섞여 매달려서 창문이 덜컥 거리고......,

 

 

그해 겨울 엄동설한에 영미는 남편을 집에서 내 몰았다.

“더 이상 바람기를 간과 할 수 없다.”라며 정확한 요지는 홍희 아버지의 병원비를 내었다는 것에 기인하여 싸움의 발단이 되었다.

장남이 마땅히 마련해야 하지만 또한 남매들 가운데 형편이 제일 넉넉하다.

가방에 간단한 의복만을 넣어서 집 밖에 내다 놓은 채 문을 걸어 잠갔다.

가족들은 “나왔으니 들어가지 말라!” 는 엄명을 했다.

영미 때문에 회사에서 나와 개인 사무실을 열었다. 그 사무실 근처에 집을 전세 내었다.

그는 영미의 난동을 안 보게 되어 편하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가정 일이야 모르는 일이니 가타부타 할 노릇도 못된다.

영미는 모든 가족이 자신을 해코지 하려 드는 이들로 비추어 졌다. 그래서 가족들과도 아이들의 왕래를 칼처럼 끊었다.

홍희 오빠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 왔는지 말은 안 해도 뭔가 다짐을 한 듯 6년이 넘도록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영미는 아이들과 자신조차도 시댁에 발길을 완전히 끊었다.

영미는 홍희 오빠에게 시댁과의 연을 끊으라는 강단의 조치를 취 했지만 그도 오기를 부렸고 홍희네 집 가족들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그녀는 앞서 나가 대처하고 있었다.

 

홍희 오빠는 신경쇠약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신경쇠약이 심한건지 부부가 닮아들 가는 건지 홍희 오빠도 뜬금없이 “세희와 전화 주고받지 마라,”는 언질을 주었다.

홍희는 가당찮은 말들이 그 끝이 보이질 않고 연신 흘러들 나와서 이유 없이 목을 조아대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영미는 홍희를 골려 줄 심산으로 홍희 신랑과 연인 이였던 난숙과 동창이랍시고 한 달에 한 번씩 춘천에서 올라 와 만난다고 했다.

그럴 기회가 주어 질 때마다 춘천서 올라오는 난숙은 홍희 신랑을 회사 근처에서 만나고 내려간다고 말 해주었다. 난숙이야 홍등가에 머물다가 남의 가정을 파탄으로 이끌고 나이 지긋한 남자와 살고 있으니 자기 마음대로 행동에 옮기고 다녔다.

아무튼 홍희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주장을 하는 것은, 영미가 난숙과 홍희 신랑을 만나게 해준 결과, 그 둘은 뒤끝이 염려 없는 사이들의 만남인지라 그들 자율 의지대로 놀아났다.

그들의 위험한 외도를 보아 온 경험을 토대로 유추를 해서, 분명 홍희도 자기 오빠와 세희를 만나게 해 주고도 남을 것 같은 확신이 든 것이다. 난숙과 홍희 남편의 행색으로 봐서, 그 둘도 그들처럼 행동 한 것으로 이미 과거 완료형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영미는 의부 증 증세가 감도는 정 자세로, 홍희에게 진술 비슷하게 목을 조아 대었던 것이다.

 

대체적으로 정신 분열 증세에 합류를 할 즈음에는, 환자들이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이 상대방인양 착각의 시각으로 불신하는 습관이 있다.

세희 역시 영미와 같은 그들의 친구이다.

홍희야 세희가 가끔 잘 있느냐는 안부 전화를 해 올 뿐 그저 친분이 있고 같은 종교를 가졌기에 인사 차원에서 전화를 받는 입장 이였다. 더러 세희가 “오빠는 잘 있는지요?” 하고 물어 오면 “올케가 집안 어른들에게 잘해서 평화롭게 잘 산다.”고 답을 해 주었다. 그 이상의 특별하거나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전부이다. 그것도 일 년의 한 번 정도 걸려오는 전화이다.

그렇다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그녀를 갈라 세워 영미 엄마의 인생처럼 남의 가정을 십분 오열로 찢을 일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감히 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혹, 홍희 오빠와 그녀가 영미 말대로 만나고 다닌다면 홍희는 그러한 일을 수수방관 할 일이 못 된다. 예전에는 어떠한 사이였든 현재 서로의 자리가 무엇 보다 중요하기에 열일 제쳐두고 말려야 할 입장이다.

영미는 홍희가 울화통을 터트리자 세희의 집에 있는 그녀의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서 세희의 동태를 살폈고 심지어 그녀의 남편에게 까지 전화를 걸어 대었다.

세희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홍희씨랑 전화를 이제 하지 말아야 겠어요.”라는 마지막 그녀와의 전화였다.

뒤 이어 영미는 “너희들 이제 전화질 그만 해라!”는 엄포를 하는 듯 했다.

홍희는 영미로 인해 지쳐가고 있었다.

“도대체 제정신이야?”라며 홍희는 말도 썩고 싶지 않아 했다.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어 나가는 특별한 재주가 말 같지 않았고 영미는 그러한 일들에 우쭐 했다. 그런 영미에게 홍희는 ‘정신 병원에 함께 가보자’라고 하고 싶었지만 둘이서 나란히 병원엘 가다가 아마도 홍희가 아스팔트에 곤죽이 되어 드러누울 것 같아 입을 닫아 버렸다. 전 여사가 들어갔던 정신병원이 눈앞에 그네처럼 오락가락 해 보였다. 홍희는 영미를 그곳에 가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치졸한 인생 같으니,” 홍희는 전화기를 집어 던져 버렸다.

 

홍희는 자기오빠가 집을 나와 혼자 사는 곳이 걱정이 되어 집을 드나들고 싶어도 분명,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을 영미의 감당 할 수 없는 폭탄 같은 눈이 싫어서 자제를 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위험성을 감수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온갖 덤터기를 다 뒤집어쓰고 있는데 무슨 억울한 소리를 더 들으려고 드나들 일이 있겠는 가 란 결론을 내렸다. 홍희 어머니는 하나 뿐인 오빠를 돌아 봐 주지 않는다고 성화이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영미란 존재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진절머리가 났다. 자다가 생각을 해도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그 기막힌 두뇌들을 무슨 수로 당해 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해답이 없었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 아닌 듯, 하면서도 때론 너무나 정상인 것들이 상대방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영미의 일그러져 실룩거리는 얼굴조차도 떠 올리고 싶지 않았다. 영미는 자신이 그럴 것이라고 믿고 주장을 해댈 때면, 언제부터인가 얼굴근육이 몹시 크게 움직여졌다. 그 모습은 과거의 영미는 없고, 몸속에서 자라 온 기형의 바이러스가 확장 되어 돌출 해 영미의 모습을 괴기스럽게 만들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유전인자는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그 형태를 자연스럽게 사람의 몸속에서 부터 형성되어 나오고 있다. 영미도 전 여사에게서 물려받은 그 특이한 유전 인자가 서서히 몸 밖으로 불거져 나오면서 광란의 도가니는 해를 거듭하고, 시간이 차츰 두터워 질수록 몸속에서 흘러나온 이물질들의 행렬을 제거 할 방도가 없다.

홍희는 “왜, 내가 저런 인간과 정신을 합류해서 황폐해져 가야 해,” 라는 단말마의 답이지만 그녀를 보면 인간이 사그라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와 시비를 가리려 들다 보면 어느새 함께 미쳐서 날뛰는 광녀들의 도가니이다. 홍희 자신이 갑작스럽게 돌변하여 영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모양새로 흐트러져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홍희 스스로는 경악스럽고 몸서리가 쳐 졌다.

숨겨진 두뇌에 용의주도한 계산은 잘 맞아떨어졌고, 교묘한 질주가 끝나는 지점에서 연인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래서 자신들이 계산 해 만든 삶의 완성을 위해 홍희를 아주 적절히 이용하여 결혼을 했으면, 자신들이 알아서 처리 할 사안이라고 생각 했다.

 

홍희는 두 번 다시는 마주보고 싶지 않은 영미의 그 검은 속내의 편지들을 죄다 간직 하고 있었다. 그것들에게서 영미의 광란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을 뿐, 이미 그 안에 잔뜩 웅크리고서 틈새가 나오면 그 사이를 비집고 멀리 뛸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이 선연해 보였다.

당시에는 보편적인 생각으로 여겼던 그 작기만 했던 일들은, 어른들이 그렇게들 염려 했던 그 큰 인생사들이, 키 큰 파도처럼 마구 숨통을 조이며 덤벼들었다. 전 여사가 연탄집게를 들고 영미를 죽이려 듯, 동공이 풀린 채 콧김을 휘날리며 달려들던, 그 모양새 그대로이다.

밤의 어둠처럼 랜턴을 안고 지켜보던 시간 같이, 그들의 겨울은 몹시도 길고 지루 했다. 그녀의 한 생애가 끝나도 마감이 되어 지지 않고, 무언가 찜찜한 것들이 뒤집어 꼬인 뫼비우스 띠 마냥 해결 할 수없는 영역의 숙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선서란 것은 이를테면, 그 직무에 종사하는 이는 모름지기 보편적으로 지켜라하는 내용 아닌가요?”

“그러니까 다 외우고 계시냐구요?” 끝까지 우롱을 하며 사마귀처럼 매달려 시간을 흡혈 했다.

“의사와 지금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다 외야 하고, 법조인과 대화중이면 천칭저울을 든 여신 과 같은 마음으로 정직하게 하겠다는 장구히 서술한 내용을 다 읊어야 하는 군요?”

“그러는 그쪽은 그 모든 걸 다 외우고 다니나요?”

“저하고 상관도 없는데 왜 외어야 하나요?”

“그럼, 나 역시 상관도 없는 구절을 다 외울 일은 없죠, 안 그래요?”

“단지, 어느 영역에서 어느 문건을 알고 있는지가 중요한 거죠,”

그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간호사의 마음가짐새가 너무나 삐딱하여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홍희로서는 사실 시간이 촉박 했지만, 눈 앞에 광경은 좌시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홍희는 그녀가 원하던 답안지 한 장을 휘릭 날려 주었다.

“대충 알기로는 나이팅게일 선서 란 것은, 일생을 의롭게 살며 당신 같은 비 간호사들 말고 전문 간호 직에 최선을 다 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를 한다고 하는데, 그 여러분은 당신에게는 하등의 필요도 없는 여러분 이겠군요?”

“그리고 언뜻 생각하니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함과 또 간호하면서 알게 된 환자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가족의 비밀사가 환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며느리와의 비밀 약조 였나 본데, 어찌 제 눈과 코에는 구린내 나는 비리로 자꾸 보여 지는지 모르겠군요?”

“무슨 약조를 어떻게 하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단 일초라도 다급한 생사가 달린 중요한 환자들의 시간을 몰지각하고 개념 없이 갉아 먹어 드시는가요?” “간호사는 환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하여 매순간 협조를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이건 협조가 아니고 협박과 무 개념 기준치를 훌쩍 넘어 있다는 걸 모르나요?” “그렇게 환자 가족을 철저히 우롱을 해야만 헌신과 협조를 하는 것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한 우스운 개념들이 이 대학병원만이 치루고 있는 관행인지 미처 몰랐군요.?”

“하긴 월등히 무 개념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홍희가 간호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 홍희 아버지가 말렸다. 힘든 직업이라며 만류했다. 어쨌든 그 당시 공부 한답시고 외어 두었던 것이 엉뚱한 곳에서 아주 무가치하게 쓰였다.

간호사는 냉동실에서 금방 끄집어 낸 냉동 된 시체 마냥 질려버림을 오도독 씹고 있어 보였다.

이미 간호사의 자존심과 영미의 상식이 중요한 시간을 증오의 매듭으로 묶여져있었고,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 가버렸다. 흔적도 없이......,

어느 단체나 어느 기관에서든지 규정집을 만들고 지켜야 할 선서문 따위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사안이기에 항상 선두에 배정 해 놓았다.

그것은 언제나 그러한 직업에 필요한 조항들로 묶여져있다. 아주 상식적인 내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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