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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노래-15[박찬현]
2009-04-05 02: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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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335
추천:85

 

 

 

15.영원한 귀가

제일상회의 장남이 검푸른 얼굴에 충혈 된 눈을 한 몰골로 집으로 돌아 왔다.

그는 간암이라는 통보를 의사에게서 받았다.

그와 동거를 하던 여자는 간병을 거부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긴 겨울이 두꺼운 얼음 층의 강을 건너가듯 굼뜨게 건너갔고 어김없이 봄은 왔다.

햇살이 긴 한나절에는 장남은 의자를 상회 밖에 내다 놓고 앉아서 두꺼운 담요를 두르고 햇살을 받았다.

가끔은 햇살을 따라 깊은 잠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의 부인은 화가 났다.

남편이 죽을병이 나서 화가 났고, 죽을병이 들어서 돌아 온 남편이 화가 났고, 무책임한 여자라고 속을 뒤집어 놓은 간부가 간병을 포기 한 것이 못내 화가 치밀었다.

“입 속의 꿀처럼 노닥거리더니 그런 여자가 죽을 서방에게 꿀이라도 바르던지 해서 낮게 해야지 왜? 두 손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간부가 ‘당신이 무책임해서 남편 간수 못 한 것 아니냐,’라고 쏘아 대던 말이 뇌를 스쳐갔다.

“나는 무책임해서 감당도 못 하는데 책임 강한 여자가 죽을병을 만들었으니, 제대로 살려 놓던지 목숨이라도 붙어 있게 만들어 놓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녀는 원망에 찬 볼 맨 소리를 표적 없이 읊었다.

“남편 간수를 그렇게나 잘해서 지금 이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 나보고 어쩌란 거에요?”

홀로 남게 된 남은 생애의 자신에게 내지르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그 기고만장한 화상이 당신의 생명줄을 맘대로 주무르는 것 같은데, 그 여자에게 당장 돌아가서 자리를 펴고 눕든가, 병간호를 받든가 알아서 하세요,”

감정이 북받쳐 메마른 울음만 토해 내었다.

“살 자리와 죽을 자리는 이곳이 아닌 것 같으니 그 여자에게 돌아가세요,” 며느리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다.

“당신의 인생이 그곳에서 평생 지지 않을 꽃을 피우듯 살았으니, 그 꽃방석에서 지더라도 져야 옳은 것이 아니에요?”

장남은 가타부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신의 몸 하나마저 운신하기 힘들다.

제일상회 여자는 장남의 목숨이 절명의 시간을 넘나드는데 며느리가 볼 맨 소리를 하는 것을 곱게 봐 줄 수가 없는 모양인지 못 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원망과 걱정이 뒤 섞인 며느리는 제일상회 여자를 향해 항변하듯 뇌었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그 여자를 지금 당장 데려다 놓고 수발하라고 하면 될게 아니에요?”

“애 아빠가 그 여자와 살림을 차렸을 때 언제 어머님이 나서시어 뭐라고 그 여자에게 따끔하게 말 한 마디라도 하셨어요?”

퉁퉁 불어서 나오는 말들을 받아주기 귀찮은지

“알았다. 수발은 내가 하마!”

“그러니, 남편 코앞에서 퉁퉁 거리지 말고 네 편할 대로 해라!”

며느리는 침묵했다.

장남의 약을 타러 병원에는 제일상회 여자가 갔다.

며느리는 그저 지켜 볼 뿐......,

고부간의 갈등은 외형적으로 드러내었지만 두 여자의 마음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장남의 병세는 집으로 돌아 올 무렵 이미 온 몸에 암의 포자가 전이 된 후 였다. 병원에서도 손을 쓸 방도가 없어서 그냥 집에서 편하게 운명하도록 배려를 했다. 그러한 억장 막히는 커다란 암막이 내리 쳐진 상황이니 어디엔가 울부짖어도 시원찮은 판국인데, 며느리는 그 간부에게, 제일 상회 여자는 며느리에게, 서로 알면서도 속을 후비는 아픔을 부비고 있다.

장남의 포니자동차를 경익이가 타고 다녔다.

장남이 급하게 아플 때는 운전을 할 수 있는 가족이라고는 경익이 뿐 이였다.

급작스레 숨이 넘어 갈듯이 아픔을 호소하면 밤중에라도 경익은 장남을 자동차에 싣고 이웃 도시 병원으로 달렸다.

날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장남도 더 이상 마당에 의자를 내다 놓고 햇살을 받을 처지가 못 되었다.

 

 

여름이 오기 전 비가 밤 새 많이도 내렸다.

봄에 피었던 꽃들이 그 비에 휩쓸려 모두 땅 위로 너절 분하게 흩어 졌다.

그 밤에 제일상회 장남도 모두 져 버린 꽃들과 함께 이승의 문턱을 넘어 가 버렸다.

제일상회에서는 장남의 아이들이 목 놓아 울었다.

며느리도 자신의 삶이 억장이 막히는지 가슴을 두드리며 울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정씨와 제일상회 여자는 소리 없이 애잔히 목을 놓았다.

밤기차 편으로 내려 온 경숙은 슬피 울었다.

가족들은 서로 다른 삶의 길 위에 선 각자의 입지에서 여름 초입의 빗물처럼 애잔하게 들 울었고, 그리고 장남의 장례를 지냈다.

평생 무한 없이 살 것 같았던 생명이라고 믿었던 끝은 죽음으로 결말을 보았다.

가까운 생명 하나를 세상에서 떠나보낸 가족들은 그다지 멀지도 않은 곳이 초엽처럼 얇은 문턱 밖에 존재 하고 있음을 그 때서야 피부로 느꼈다.

청운상회 전 여사가 생을 마감 했을 때에는 문상객 하나 없었다.

가족이 즐비하고 보유한 자산이 많은 제일상회 장남의 장례에는 문상객이 많았다.

 

 

정씨는 이른 아침부터 밭으로 논으로 바쁘게 다녔다.

경숙은 벌려 놓은 일들이 바빠서 곧장 서울로 돌아갔다.

홍희가 영미에게 볼일이 있어서 상경 했을 때 잠시 들러 보았던 경숙의 사업장은 꽤 몫 좋은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카페를 운영 하고 있었다.

카페가 매혹적인 그녀를 닮아 우아 했다.

흘려듣기로는 일본인 노 사업가가 국내에 차려 준 카페라고 들었다.

경숙의 미모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남편이 군복무 중에 있을 때 다른 남자에게 정을 주었으니 남편에게로 향한 애정은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살아가는 일 가운데 그녀에게 무엇 보다 중요 한 것은 애정이 아니라 경제적인 사안이 살아가는 일에 최대 관건 이였다. 그 상대가 노인이 되었건 어린 나이가 되었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여자는 삶이 평온해야 사랑도 수반 되는 것이지만 사랑은 어린나이에 이미 신물이 나도록 겪었다. 경숙은 그 사랑이란 것은 단지 교과서 사이 숨겨 놓은 잡지의 부록 같은 존재로 생각을 했다.

그녀의 아들이 성장해서 친부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경숙에게 다녀가곤 했다.

경숙은 자신의 성격과 닮은 삶을 여유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또한 자신의 아들을 직접 대학을 보내며 거두는 행복으로 살고 있었다. 천만 다행으로 자신이 벌어서 아들을 양육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녀는 여자로서 큰 지복이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선 당장 경제적인 곤욕 없이 살고 있다는 점과 또한 별 무리 없이 내일을 계획 할 수 있는 입장을 퍽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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