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문인글방_평론
HOME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등업신청/기타문의]
로그인 회원가입
회원가입
   

한국문학방송은 지상파방송 장기근무경력 출신이 직접 영상제작 및 운영합니다
§사이트맵§ 2018년 10월 23일 화요일

문인.com 개인서재
 

DSB 문인 북마크페이지

전자책 출간작가 인명록



시조
동시
영시
동화
수필
소설
평론
추천시
추천글
한국漢詩
중국漢詩
문학이론


DSB 앤솔러지 제7집


DSB 앤솔러지 제6집


DSB 앤솔러지 제5집


DSB 앤솔러지 제4집


DSB 앤솔러지 제3집



[▼DSB 앤솔러지 종합]
 



홈메인 > 문인글방_평론 > 상세보기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판매정산 페이지
도서판매/온라인강좌

전자책 제작·판매·구매의 모든 것

사이버문학관


center>이곳은 문학방송 정회원(문인회원)의 글방[평론방]입니다
(2016.01.01 이후)


김순일 시인론/최선옥
2010-11-29 00:15:09
poapul

조회:2332
추천:145

 

야생의 정신에 세운 시의 寺院

- 김순일 시집,『미꾸라지 사원』


최선옥 

(시인)



  

 1. 들어가기


 90년대 이후 시단은 사회적이고 세계적이며 또한 집단적인 거대담론이 후순위로 밀려나고 대신 자연과 일상에서, 혹은 그 외의 시적대상에서 인간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면서 그것에 시적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렇다고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담론들을 회피하거나 등한시하기보다는 그들을 주변화하거나 배경화 하는 특성을 지닌다. 또한 거대서사에 밀려있던 개인의 내밀한 서사를 전면에 내세워 현대성을 인식하기도 한다.

 세상의 대상들에 대하여 인연의 손을 뻗어 교감하며 인간의 생의 의미를 짚어가거나 인간을 중심으로 한 우주적 총체를 읊거나 자연을 다루며 생명과 생태 쪽으로 관심을 두기도 한다. 그리고 시적효과를 고양시키기 위하여 시인은 다양한 시적표현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어느 방법을 택하든 문학성을 확보, 시의 존재를 든든히 세워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자연 속에 거주하면서 자연을 시적대상으로 차용해오지만 그것을 주변화하고 배경화 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어가며 나름의 문학성을 탄탄히 세워가는 시인이 있다. 시적대상과 교감하고 호흡하며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그것을 인간의 생의 의미로 도출해 내는 시인, 도회적인 것보다는 농경사회의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오랜 습속에서 맺고 획득한 토속적인 언어구사로 사람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시를 생산하는 시인,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지우는 시적언어로, 또는 몸과 정신의 끝없는 길항에서 얻은 시적언어에 그만의 맛과 색깔을 입히는 김순일 시인의 시집『미꾸라지 사원』에 발을 들여놓는다.


2. 육체와 정신의 길항拮抗


 몸은 일상성과 우연성이 교차하는 장소다. 현재의 삶은 물론 과거의 삶까지도 기억하는 곳이다. 또한 세상을 흡수하고 기록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중적 특성을 지니는 몸이 정신과의 길항작용, 즉 서로 버티고 대항하면서 시인은 생의 깨달음을 터득하기도 한다. 따라서 몸은 정신과 맞닿았을 때 비로소 분열된 세계를 극복, 통합하고 화해하는 우주적 질서를 이루는 것이다.

 몸의 세상과 세상의 몸을 아울러 우주라고 했던가. 모든 사유와 감각이 몸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면 몸이 닿아 느끼는 것 자체가 세상일 것이다. 그 중 시인이 표현하는 몸이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어 몸에서 자연을 보고 자연에서 세상을 보고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는데 김순일 시인의 시세계는 바로 이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고리처럼 연결되면서 시인이 표현하는 언어 또한 그 속에서 경계를 허물고 서로 섞이게 됨을 말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하면 육체와 정신을 통해 시인이 꿈꾸는 시적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본연의 감정과 시적대상의 움직임 등을 표현하는 좋은 매개체다. 이는 자연을 시적주체로 삼거나 자연자체를 노래한다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마치 한통속으로 연관됨을 말한다. 그렇기에 여기에 다른 인위적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된다. 예시로 확인해 보기로 한다.


가)

어려서부터 겁을 먹고 피해 다니던,

오늘은 추녀 밑 벌집에 끌려 가까이 가본다

가슴과 가슴 등과 등살이

틈새 하나 없이 밀착해서

숨소리 반쪽까지 서로 나누어 먹고 사는

육각형의 벌집


육각수

그렇구나 내 몸 속에

흐르거나 스며 있거나 고여 있거나

목탁을 두드리며 파랗게 사는

너도 둥그런 물이 아니었구나


(중략)


오늘 벌집을 보면서

내 몸 속에 사는 육각수를 그리면서

둥글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둥그런 말들이

등뼈를 둥그렇게 구부린 용수철이 되어

천방지방 굴러다니다가

절벽에 부딪쳐 고꾸라지기도 하고

탱자나무 가시에 걸려 펑! 터지기도 하고

천길 벼랑에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지


내 가슴에 박힌 둥그런 말의 못자국을

아픈 눈물로 쓸어주는 집은

내 말이 말로 살게 해주는 집은

둥그런 유리집이 아니라

육각형이라는 것을

                                                                      -「벌집을 보면서」부분


 각이 없다는 것, 모남이 없이 둥글다는 것은 원만함과 포용력을 일컫는다. 그러나 둥근 것에 대한 시인의 갈망은 "벌집"을 보면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각지고 모난 것을 세상의 벽에 문지르며 갈고 아파해야만 한다는 것을, 애초부터 둥근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은 늦게야 깨닫는 것이다. "가슴과 가슴 등과 등살이/틈새 하나 없이 밀착해서/숨소리 반쪽까지 서로 나누"는 육각형의 벌집처럼 살아야 함을 안다. 이는 시인의 내재된 야생의 시관과도 상통한다.


나)

 몇 번을 내보내고 내보냈는데도 내 방으로 들어와 손발을 놀리며 뭔가 시늉을 하고 있는 너는


 나를 먹고 싶다는 것인가


 오대산에서 만났던 어느 시러베 도인이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내 전생의 전생은 풀벌레였다는 거였지. 피식 웃어넘겼는데......

 나의 전생은 사마귀였나?


 나를 먹고 싶다는 너는 하늘 몇 구비 돌고 돌아 다시 암사마귀로?

 전생의 전생에 내가 보듬고 살던 그 몸뚱이란 말인가


 우리는 깽깽이를 잘 켰지 풀밭에 사는 이웃들이 우리를 깽깽이 부부라고 불렀지

 어느 열이틀 달밤이었어 미치게 흘리는 달빛을 따라 우리는 깽깽이를 켜며 달궁으로 들었지 너의 자궁이 보름달로 차오르면서 너는 나의 살비늘 한 점 남기지 않고 먹어대었지


 아작아작 먹히던 황홀한 열반!


 오늘 또 네 몸에 뿌린 씨알을 위해서 내 몸을 다 내어주마

 먹어봐

                                                                               -「사마귀」전문


시인은 어느 도인이 말한 전생을 빌어 와 슬쩍 몸을 바꾼다. 바로 수사마귀로. 수사마귀로 바꾼 나, 시인은 암사마귀와 달궁에 든다. 종족보존을 위해서. 시를 위해서.

 사마귀는 교미가 끝나면 암사마귀가 수사마귀를 먹는다. 수사마귀는 자신의 종족보존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암사마귀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바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황홀한 열반", 즉 시인의 시적황홀 혹은 최고의 시적경지를 위해서가 아닐까.

 곤충과 내가 몸을 바꾼 역발상이지만 시적대상과 내가 동등하게 존재하는, 육체와 정신의 길항작용으로 동등하게 공존하는 시인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다)

진흙펄이 나의 씨방이고 젖줄이지

하얗게 시린 물의 대궐은 숨통이 막혔어

동네방네 휘젓고 다니며

흙탕물을 쳐대야 삭신에 기름이 돌았어


철이 엉덩이에 뿔이 나는 나이가 되면서

오메 아베가 창피스러웠고

하늘이 내가 꿈꾸는 사원이라는 것을 알았어


(중략)


동아줄 같은 비가 내리던 날

하늘을 향해 힘차게 올라갔어

날개를 펴려던 파란 꿈은

하늘벽에 부딪쳐 머리통이 터지고

만신창이 땅바닥에 메탱이쳐진 나는

흙탕물에 휩쓸려 둠벙으로 되돌아오고 말았어


진흙펄이 나의 상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어

그때 무지개를 보았어

내가 사는 둠벙에서 날개를 펴고 일어나

들판 건너 산 넘어 연못에 뿌리를 박고 있는

무지개를 보았어

진흙펄 속 오메아베의 사원을 보았어

                                                                    -「미꾸라지 사원寺院」부분


눈의 감각 혹은 허황된 것에 빼앗겼던 마음을 돌려 비로소 찾은 "미꾸라지 사원", "진흙펄". 미꾸라지에게 진흙펄은 삶의 터전이자 상생의 장소다. 그리고 믿음의 터전이다. 그곳에서 미꾸라지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마치 시인이 세속에서 진리를 터득하며 시를 경작하듯. 그곳에 야생의 시의 사원을 짓듯.

 시인이 시의 사원을 야생의 정신에 두고 있음은 다음의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라)

해가 묵을수록 단단하게 푸른 단단하게 곧은 단단하게 비운

나의 뿌리는 어느 적멸궁이냐고?


삼선암에서 내려오는 비구니의 발자국에 고인

독경소리 한 획도 받아먹은 일 없지


어쩌다 앞집 큰애기 쇳소리 나는 오줌발

허벅지 사이로 뜨겁게 파고드는 날은

터질 것 같은 아랫두리 움켜쥐고

흙벽에 머리를 짓찧기도 하는데


(중략)


내 뿌리의 너부죽한 궁둥이를 붙이고 사는 곳은

천한 몸 단단하게 비비고 밀치며 부딪치며

싱싱한 욕지거리 팔딱팔딱 꼬리치는 시장바닥 같은,

낮게 낮게 뒹굴며 얼크렁설크렁 살아가는 새똥받이


게가 내 뿌리의 적멸궁이지

                                                                               -「대뿌리」부분


"싱싱한 욕지거리 팔딱팔딱 꼬리치는 시장바닥 같은/낮게 낮게 뒹굴며 얼크렁설크렁 살아가는 새똥받이"인 "대뿌리"가 시인의 "적멸궁"이며 시의 든든한 터전이다. 자연과 시인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허물며 시의 생기를 돌게 하고 세계를 살아있는 존재들의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시인의 의도를 읽는다.

 시가 세상에 항복하는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빠른 물신화가 정신을 지배하려고 할수록 시는 철저히, 처절하게 세상과 맛서 싸우기를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시인은 고통 없는 삶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 삶에 부딪치고 깨지고 거들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난 것에 찔리고 거기서 생의 의미를 깨닫는, 상처의 무늬가 그대로 시가 되고 정신이 되는, 뻘흙 같은 세상을 맨발로 가면서도 고통으로 느끼기보다는 고통을 해학으로, 익살로 승화하는 시인의 야생의 정신에 든든한 시의 사원을 짓고 있다. 그 사원에 들어 시적 세상을 휘 둘러보고 있는 시인의 시관을 다음의 예시들을 통해 들여다보자.


마)

불타는 모래알에게 빌었네

물의 영혼을 찾아 서역으로 가는

시의 발바닥이 까맣게 타서

숯덩이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네


(중략)


혜초에게 빌었네

당신처럼 꼭 살아서 돌아와

영혼의 뼈다귀 하나하나 꿰맞춰

살아 있는 연꽃이 되겠다고

꿈꾸는 꽃시의 목을 치게 해달라고 빌었네


서역이 아니면 어떤가

시궁에 살아도

구천에 떠돌아도

발가락 새 고린내를 핥으며

애간장 태우는

상처 덕지덕지한

시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네

                                                                      -「막고굴에서 빌다」부분


시인은 결이 곱거나 무늬가 영롱한 시를 바라지 않는다. 신산한 삶에서 얻은 상처와 고락을 담고 있는 시를 염원하고 있다. 시인이 염원하는 시는 잔가지가 비바람에 꺾여나가면서도 상처에 새살 돋듯 봄이면 새잎을 피워내는 시다. 그래서 "시궁에 살아도/구천에 떠돌아도" "상처 덕지덕지한/시가 되게 해달라고" 혜초가 걸어간 돈황 명사산의 막고굴에서 헤초에게 빌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시에 대한 염원은 시「풀무질」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바)

 그이는 말을 벼리는 대장장이지 평생 말만을 벼리며 살아온 그이의 화두는 부드럽게 강한 조선낫 같은 말을 벼리는 거였지 불의 혼결이 숨 쉬도록 더도 덜도 아니게 노을빛만큼 달구어 히히히잉 불똥을 품어대거나 뒷발질치는 불덩이 야생마를 쇠망치로 두드리고 두드려서 쓰고 달고 짜고 쓰고 맵게 두드려서 구유물에 느긋이 빨리 재치것 담갔다 꺼냈다 물의 혼을 불어넣어 말의 척추는 두텁고 부드럽게 말의 날은 얇고 강하게 벼리고 벼리는 대장장이지

 혀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나의 헛개비 같은 말들은 너무 강해서 동강나거나 너무 물러 날이 뻐들어진 채 굴뚝 모캥이에서 녹슬고 있는 게 태반이지만 그이가 벼리는 조선낫 같은 말은 쇠심줄 같은 노간주나무를 만나도 돌부리에 채여도 벼락을 맞아도 부드러운 척추가 넉넉하게 감싸고 안아서 날이 떨어져 나가거나 두동강 나는 일이 없지

 살다가 말의 날이 무뎌지면 밤을 새워 소태 같은 어둠에 갈고 갈아 다시 부드럽게 강한 날을 세우며 살고 있는 그이는 불이랑 물의 혼결이 배지 않은 나의 말을 볼 때마다 쯧쯧 혀를 차는 내 시의 아버지 같은 그이는

 평생을 벼리며 살아온 부드럽게 강한 말의 혼까지도 목을 베어 글어묻는 목탁을 두드리며 살던 어느날 나를 불러 "풀무질",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놓는 게 아닌가


 풀무질, 풀무질이라......

                                                                               -「풀무질」전문


"부드럽게 강한 조선낫 같은 말"을, "쇠심줄 같은 노간주나무를 만나도 돌부리에 채여도 벼락을 맞아도 부드러운 척추가 넉넉하게 감싸고 안아서 날이 떨어져 나가거나 두동강 나는 일이 없"는 시를 시인은 갈망한다. 혼이 배어나오는 시를 쓰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 시인은 지금 불 지핀 시혼에 "풀무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시에서 나타나듯 김순일 시인은 그가 거처하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그의 행동반경에 수반되는 자연물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적대상을 주체로서만 보기보다는 자연현상을 빌어 와 시인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기 위한 수단내지는 배경으로 등장시킴을 알 수 있다. 시인내면의 표현수단으로 등장시킨 시적대상과 시인은 서로 교감하면서 진한 인간미와 시적 토속미를 느끼게 한다.

 시인의 시적언어는 모나고 각진 것이 아니라 농익은 익살과 해학을 섞어내며 또한 구수한 사투리를 듣는 듯 사람냄새, 삶의 냄새를 풍긴다. 이는 여러 계층의 삶이 자연발생적으로 빚어낸 언어를 차용, 그 본래의미의 심각성을 버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대립과 적의를 만들기보다는 화해하고 조율하는 시적특성을 갖게 한다.

 도회적이고 경건하고 엄숙하지 않은 일상적이고 토속적인 표현들은 시적대상에 감정공유의 촉촉한 물기를 입힌다. 심각한 의미를 의도적으로 지운 시인의 시적언어는 자연과의 자연스런 호흡법에서 터득한 것으로 시인만의 독특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이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순리를 익힌 시인만의 개성이며 장점이다.


3. 성과 속의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의 매력


 "내 가슴의 벽에 "내가 쓴 그림은 시가 아니다." 삐뚤빼뚤 쓴 액자 하나 걸어놓고 나의 시에 무디고 무딘 날이 서도록 벼리고 벼리지만 풀무질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서산장터에 나가 틉틉한 막걸리에 거칠은 푸성귀 얹어 마시고 한 이레 그렇게 마시고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개심사 해우소에 앉아 끙! 외마디로 풀고 돌아오기도 한다. 가끔은 두 손을 잡고 반가워하는 대웅보전 부처님을 서산장터에 모시고 나와 성과 속을 바꿔 입고 히히대기도 하면서 불경不敬과 불경佛經을 들락날락 내 시의 무딘 날을 벼리는 풀무질을 하지만 싹수가 노란 내 시가 극락에 들기에는 너무 많이 빗겨 와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 시인의 말처럼 김순일 시인은 시적대상 그 자체의 특성을 노래하기보다는 그것

   메모
ID : poapul    
2010-11-29    
00:17:37    
농경사회의 언저리에서 태어난 삶과 시인주변의 자연경관 혹은 종교적인 특성을 차용해 그것을 다시 몸을 통해 전혀 별개의 의미로 바꾸어 놓는데 이런 특성으로 인하여 시인의 말법은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기보다는 시인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런 시인의 시적 특성으로 인하여 시는 시적대상과의 적의나 적개심을 드러내기보다는 해학적이고 익살스런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시 속 해학과 익살의 특징은 시인과 시적대상과의 원만한 합일이며 서로 반응하며 경계를 지워가는 시인의 시적태도를 말해준다. 이는 시인의 상생의 사고관이며 대상과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시인의 시적 세계관이기도 하다.

가)
칡뿌리를 캐다가 사람의 유골을 만났다
살은 물이 되고 흙이 되고
영혼은 바람이 되었나?
두개골에서부터 발가락 마디마디까지
뼈다귀만 고스란히 남아 누워 있는

내 손길이 닿자마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숨 쉬고 사는 것은
잔가시에 찔려도 피를 흘리는 물렁한
살이 뼈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구나

시장바닥 굴러다니느라 온몸 구석구석 박힌 옹이
등때기에 깊이 박힌 죽비 자국
너희들이 내 뼈의 갈기를 세워
눈물의 짠바다를 건너게 하는
살의 상처구나
아, 골룡을 골룡이게 하였던
살이여
-「살」전문

남아 존재하는, 그래서 눈에 보이는 '뼈'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살'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다. 시인의 언어의 무늬가 시의 질을 결정짓고 언어의 표정이 시 정신을 알게 하듯 시의 무늬와 표정이 진지하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표현하기위해 동원한 시적소재가 시인의 남다른 시적시각으로 인하여 현실과 허구사이의 경계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나)
대흥산 두륜봉으로 오르는 길가 동백숲 홍등가를 지날 때는 화냥년들이 아랫두리 빨갛게 까발개놓고 직설적으로 소매를 잡아끌었네 거들떠보지도 말자 고개를 돌릴수록 몸이 제 먼저 앞질러 가서는 불타는 몸을 비우고 비척거렸지만 몸의 보시가 정신의 발걸음을 포롱포롱 날게 해주었네

돌부리에 채여 발가락 끝에 깊이 박힌 피멍든 俗을 다독이며 호랑가시 같은 뿔난 말에 찔린 온몸의 상처도 내 살붙이지 가슴팍에 박힌 화살나무의 말도 내 살붙이구 말구 산등성이 쪽에서 길이 어지럽게 불어대는 모래바람을 헤치고 몸속에서 자라는 욕망의 내장까지 삶아먹으며 오르고 오른 두륜봉

신선바위 가슴께쯤 놋대야 넓이만큼 고인 물속에 개구리 한 마리 살고 있었네 두 눈 속에 하늘과 땅이 둥그렇게 살고 있었네
초의선사의 속내를 쬐끔, 눈곱자기만큼이라도 엿보려고 두 눈 속으로 발을 들이미는 순간 나는 벙그는 줄만 알았던 나의 길을 놓치고 말았네
-「두륜봉 초의선사」전문

차와 깨달음의 선사,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를 시적대상으로 모셔오지만 정작 시인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 종교적 진리의 구현이라기보다는 시인자신의 내면의 형상화이며 자신의 존재 찾기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신선바위' '물 속 개구리 한 마리'에서 우주를 보는, 생의 진리를 보는 포괄적 안목을 시인은 지녔다.

다)
부활절 날 새벽 종소리가 무겁다
벚나무 아래 땅바닥에서 파닥이는 나비의
날개를 쓸고 있는 종지기의 굽은 등이 무겁다
나비의 날개 위에 아직 식지 않은
새벽별의 입술자국이 무겁다
사막의 가슴팍에 대못질하는
모래폭풍의 망치질 소리 무겁다
기름 타는 검은 연기 속에 돌고 있는
지구의 발자국 소리 무겁다
다 낡은 종지기의 성경책 갈피갈피에서
하얗게 일어서다 쓰러지는 소금바람이 무겁다
예수는 몇 번이나 더 죽어야 하나
-「예수는 몇 번이나 더 죽어야 하나」전문

'무겁다'는 시어가 반복되면서 시적의미가 그야말로 무겁다. 무겁다함은 한편으로는 암울하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문명을 비판하고, 비순수성을 비판하기 위해 '예수'를 차용해옴으로써 시적 의미는 더욱 고조된다. 시의 바닥에 깔린 세상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자못 묵직하다.

위의 예시들에서 알 수 있듯 시인은 때로 세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시적대상으로 삼는다. 삶의 허무, 권태, 소멸의식, 속물성, 절망 등 인간의 의식을 다루는데 그 시적표현의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 시적 이미지를 동원해 의미를 보다 무겁게, 중압감 있게 다루기도 하는데 위의 예시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실 비판적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결국 세계성 밑에 내재되어 있는 개인의 내밀한 서사를 다루면서 시인이 처한 현대성을 인식하는 태도와 긴밀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때로 역설과 아이러니, 혹은 풍자의 시적표현 방법을 채택, 시적 대상에 숨은 신성, 혹은 종교성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순과 불합리와 부조리를 단순히 흑백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과 반의 시각을 넘어서 포용하고 포괄하는 성숙한 시적 인식을 드러낸다.

라)
매일 새벽길을 쓸던 범종소리 흔적도 없이 하얗다
석천암 오르는 소나무 숲 눈길
처녀몸을 열고 들어간다
뽀드득뽀드득, 교성이 탱탱하다
인동덩굴 파란 눈 말똥말똥
사철나무 빨간 눈 크게 뜨고 두리번두리번

산발치서부터 나를 따라오는 하얀불꽃새
그 발자국에 고인 포도주빛 숨소리 포근하다

석천암은 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새하얀 고요의 숨소리뿐
범종도 목어도 석탑도 입 하얗게 떼고
부처라는 거 경전이라는 거 원래 없는 거라고
고개를 저으며 하얀 고요 속에 든다

가랑이를 벌리고 또로록 쪼로록 또로록
바위 오줌 소리
네가 부처의 어머니?

나를 따라 포롱포롱 날아온 하얀불꽃새
날개짓에서 방울방울 울려오는
파란 풍경소리 따라 도비산 정상에 올라
부처의 몸을 양파껍질 벗기듯 벗겨본다
손바닥엔 구름의 터럭 하나 비치지 않고
눈물 몇 방울!

눈물이 부처인가
-「눈물이 부처인가」전문

'범종소리 하얗다', '교성이 탱탱하다', '사철나무 빨간 눈 크게 뜨고', '포도주빛 숨소리', '새하얀 고요의 숨소리', '입 하얗게 떼고', '하얀 고요', '파란 풍경소리' 등 시 속 이미지가 풍요롭다. 시인이 이토록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이미지를 차용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무거운 시적의미를 이미지를 빌어 가볍게 하려는 시인의 의도라 할 수 있다. 비록 시가 담고 있는 의미는 무겁다하더라도 이미지의 활용으로 시적접근이 용이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마)
천근만근 짐 훌훌 털고 나오신다 대웅보전 부처님 까치발 세우고 코를 벌룽거리며 나오신다 천년 닫아걸고 사시던 마음 홀라당 벗고 몸을 여니 성과 속이 하나로 파란 하늘이시다 배롱나무 향긋한 맨살 갠지름치며 까르르 까르르 뒹구신다 꽃뱀의 알몸으로 칭칭 감고 뒹구신다 닫아걸고만 살았던 몸의 구멍구멍이 활활 타는데 연못 가운데 소금쟁이도 소금지게 내팽개치고 목욕 나온 보름달 속 항아姮娥의 보오얀 목덜미서부터 젖두덩 허벅지까지 갠지름치며 환장하신다 항아의 온몸 구멍구멍에서 배롱나무꽃 까르르 까르르 핀다
-「개심사 연못가 배롱나무꽃」전문

시적대상에 생기를 부려 넣은 시다. 의미의 곁을 저만치 지나쳐버리게 만드는 익살과 도발적인 시어가 엄숙한 '대웅보전 부처님'을 속세의 여느 사내와 다를 바 없게 변모시킨다. 이 또한 시적의미를 좀 더 가볍게 하기위한 의도된 시인의 시적표현임을 알 수 있다.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 들리는, 간지럼에 자지러지는 '배롱나무꽃'의 이미지가 환하다.

바)
우포늪에는 연꽃이 없었어 연잎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어 우포늪 하면 연꽃, 그렇게 짝을 맞춘 나의 헐렁한 나사 때문이었어 나의 시가 살아온 길이 그랬어 사막에는 모래바람만 무성하게 자랄 거라는 어디나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할 거라는 수행자는 똥뎅이 속에서도 콧구멍을 크게 열어놓고 살 거라는 내 시가 살아온 길이 주욱 그랬어 우포늪에 가서 대롱을 박기만 하면 부처는 아무 때나 연꽃의 설법을 먹일 거라고 믿었어 우포늪에는 연꽃이 없었어 헐렁한 나를 믿고 따라온 바람들이 내 뒤통수에 대고 말뚝을 박아댔어 헐렁이 나는 연꽃을 보러간 우포늪에서 연꽃의 뿌리께만 실오라기만큼 눈치 채고 돌아왔어
-「우포늪에는 연꽃이 없었다」전문

선입견과 편견에 들었던 시인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사물의 뒤편, 즉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찾으려는 마음의 시각을 갖는 감동 혹은 그렇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반성을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는 시인의 의도가 읽혀진다.

예시들에서 보듯 시적대상의 중력이 제거되면서 현실적 욕망과 의미가 무화되기도 하는데 이는 시인이 의도적으로 시적대상에 깃든 의미를 축소시키는 이유 때문이다. 의미를 무화, 혹은 축소시킨다 함은 시적대상에 깃든 삶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가볍게 하는 시적 표현법을 차용해오는 것으로서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이미지의 활용이다.
이미지의 활용법은 시적대상의 사실적인 것들을 시인자신만의 것으로 변모 혹은 변용되는 것이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오각을 이용하여 대상과의 경계역시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일상적 관습이나 인식은 무의미화 되고 무효화 되는 것이다.

4. 맺기

시인의 언어는 질곡 많은 농경의 삶에서 빚어낸 자연의 언어이기에 그만의 맛과 깊이를 느끼게 한다. 이는 여러 삶의 계층 중 시인이 몸담고 있는 삶의 터전을 중심으로 한 자연의 언어, 심각성을 버린 언어, 우리 땅에서 태어나고 발효된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인의 언어는 적의와 대립이 없는 인간의 체취가 묻어나는 언어라는 것이다.
시적대상에게 투박한 손을 선뜻 내밀어 덥석 잡아끄는 시인의 시적교감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게 함으로써 공감의 깊이와 넓이의 영역을 확대시켜놓는다. 일상과 이상이 접목하고 세심함과 대담함이 함께 하고 성과 속이 어우러져 때로는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때로는 가슴 깊이 젖어드는 감동을 전해준다.
자연과 삶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또한 껴안고 가는 시인의 시적표현 방식은 자연의 순리로 호흡하는, 자연의 이법과 호흡하는 말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그래서일까. 김순일 시인이 그려내는 시세계는 찰지고 둥글다. 둥글다는 것은 원만함과 개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지고 모난 것을 세상의 벽에 문질러 고통을 감내하며 획득한 단내 나고 흙내 나는 언어라는 것이다. 그 언어를 둘레 넓은 두리반에 시인은 푸짐하게 차려놓는다. 포용하는, 그러나 팽팽하게 당겨진 생명력의 충동으로 넘치는 시인의 밥상에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 글 말미를 여기에 붙입니다. 글이 잘려나가는 관계로...
추천 소스보기 수정 삭제 목록
다음글 : 문학평론. 권영의 詩 <상아의 나무> (2010-12-08 09:36:30)
이전글 : 김재희 작품론 (2010-11-21 20:20:40)

[특별공지]댓글에는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지불식간에라도 작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사기를 꺾지 않게 각별한 유념 부탁드립니다. 글방의 좋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목적상, '빈정거리는 투'나 '험담 투'류의 댓글 등 운영자가 보기에 좀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댓글은 가차없이 삭제할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것이 한국문학방송의 가장 큰 운영방침입니다. 비난보다는 칭찬을! 폄훼보다는 격려를! (작가님들께서는 좀 언잖은 댓글을 보시는 즉시 연락바라며, '언제나 기분좋은 문인글방'을 위해 적극 협조바랍니다. "타인의 작품에 대한 지적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상차원의 댓글도 아주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 겸허한 자세로~!" 항상 타인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미덕을 가지십시다. 기타 (작품 또는 댓글 중)욕설 또는 저속한 언어, 미풍양속에 반하는 표현 등의 글도 삭제합니다.
◐댓글 말미에는 반드시 실명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실명이 없는 댓글은 무조건 삭제합니다.
 
제2회 전국 윤동주시낭송 대회 안내 / 2018.11.10 개...
한국문학방송 2018년도(제9회) 신춘문예 작품 공모
한국문학방송에서 '비디오 이북(Video Ebook, 동영상 ...
 
사이트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