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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의 결혼 이야기 이영지
2013-07-13 11:09:32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조회:1975
추천:143
첨부파일 :  1373681372-94.hwp
결혼의 의미
 
성경에서의 결혼은 다음과 같이 시를 지을 수 있다.
 
사랑아 사랑아 23 - 창세기 2:7-25
생명나무와 에덴의 시학 20130714 - 李 英 芝
-결혼이력서: 난 당신 가슴이에요-
 
하나님 닮은 당신의 가슴(아담)을 눈으로 보여주세요
 
당신 없인 못살아요(2:5)
반쪽 가슴의 안개(2:6)에요
 
하얀 빛의 아침 이슬의 눈으로 만나요
입의 머리(2:7)로 만나요
저녁에 숨쉬는 하늘구름으로 만나요
 
당신의 바다 사랑 가슴을 눈으로 보여주세요
 
콩닥콩닥
포로르 날아가는 에덴동산가슴(2:9)
흐르는 사랑 가슴 물길로 싸비비(2:10)어 주세요
온종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래땅에서
구슬땀으로 엮어진 금반지(2:11)
진주(2:12)이슬 목거리까지
예쁜 손가락에 끼워주세요
말씀의 목거리로 걸어주세요
 
한 목숨 다 바쳐
구스땅(지옥의 땅)으로 흐르며(2:13)
십자가에 달려주세요
 
오오
아니에요 당신을 눈으로 보아야겠어요
오오 이제 눈으로 보이게 해 주세요
돌아와 주세요 앗수르 동편(말씀 전해야 하는 세상)으로 흐르는(2:14) 넓은 말씀의 강에
눈으로 보이는 가슴을 열어 주세요
 
우리 둘이
열린 가슴으로
우리의 입으로 서로 말씀전해요(2:14) 말해요
사랑한다고
푸덩덩 깊으디 깊은
가슴에서 나오는 말씀의 강에
죽어야 사는 아침(2:14)을 만들어요
 
우린 서로들 반쪽가슴이에요
당신의 반쪽가슴과 반쪽가슴이 만나
말씀을 맞추어
눈으로 보이는(2:18) 가슴을 열어 놓아줘요
텅빈 옆구리에 말씀을 넣어요
사랑을 들여놓아요(2:20)
 
입을 맞추며 소리지릅시다
새들아 지저귀라
오리야 새끼들을 모아라
가슴의 말들이 쏟아지게 이름을 불러요(2:20)
온통 나만을 생각해줘요
저는 당신 머리에 든 가슴이에요
온 통 제 생각뿐인 당신(2:21)
당신이 저를 사랑하는 건
제 가슴에 당신의 말씀이 가득 들어서에요
복음이 가득들어서에요
제 가슴은 복음덩어리에요
당신이 하라는데로 움직이는 복음이에요(2:21)
 
전 복음이에요
당신은 말씀이고요
저는 전하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하라는데로 전하는
당신이 당신에게서 잘라낸 가슴(2:23)이에요
입으로 조잘조잘, 쫑알쫑알 떠드는 여자 복음이에요(2:22)
향기가 눈으로 보이는(2:23)
 
저에겐 향기가 있어요
잘룩한 허리
아름다운 얼굴
긴 머리칼
 
당신이 눈을 못떼는
저는 당신의 복음이에요(2:22)
당신의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에요(2:22)
당신이 가슴으로 말씀하시는 여자 아내(2:23)에요
 
이제 깊은 물에서 떠나 물 위를 걸으며
물 위에서 한 지붕을 이루고 가슴을 맞댄(2:25)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느라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미리 맞보는 부부에요(2:25)
 
위의 시는 창세기 2장을 중심으로 쓴 결혼의 이야기이다. 창세기 2장은 남자와 여자의 결혼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그런데 처음 때에는 안개만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안개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담 글자(아담/아담, 2:6)의 물 ם(/)만 빠진 ד󰔞(에드/안개, 2:6)이다. 글자의 뜻은 나의 가슴이다. 성경에서 는 하나님뿐이므로 하나님의 가슴이 된다. 곧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때의 하나님의 마음은 지면의 글자가 (프네-하아다마/지면에, 2:6)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서 사람의 결혼문제가 나오게 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만들고 싶음을 지면과 동일시하는 언어로 하여 땅의 사람을 만들고자 마음을 잡수셨다. 그리고 곧 이어서 사람 아담(에트-하아담/사람을, 2:7)을 만드시는데 흙으로 만드신다. 이 때 흙은 히브리어로 (아파르/, 2:7)이다. 따라서 흙이란 하나님의 눈과 입과 머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기 위한 도구가 모두 수집된 것이 흙이다. 이 세계 어디에나 있는 흙은 하나님의 숨 쉼이 있어서 모든 생물이 태어나는 신비한 근원지이다. 땅은 하나님인 내가 가슴에 말씀, 물을 가득 담아 가지고 계시는 곳이다. 마음이 있는 곳, 곧 하나님의 신비가 그대로 있는 곳이 땅이다. 이 때 땅은 아다마(하아다마/, 2:7)로 표시되어 아담을 소망하는 의미로 되어 있다. 곧 하나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가슴이 되려 한다는 뜻이다.
이 때 (-하아다마/, 2:7)라 하여 분명 이 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정관사를 덧 붙여서 까지 성경은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코에 생령을 불어넣으신, 즉 숨이 있게 하시는 목적은 히브리글자가 제시하는 네페쉬(레네페쉬 하야/생령)에서 분명한 목적성인 󰗡(..)가 사용되면서 입으로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 들어난다. 따라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하여 에덴동산, 곧 하나님의 사람이 거처할 곳을 마련하신다. 에덴이다. 에덴은 눈으로 영원히 하나님이 우리들을 얼마나 가슴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성경은 눈을 아주 중요시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언약 양식으로 한다. 시의 의태어는 곧 눈으로 봄에서 일어난다. 성경은 이 눈의 중요성을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지상에서의 에덴동산을 눈으로 보라 하신다. 자연에서의 아름다운 산천초목의 기기묘묘한 모습을 사람들은 바라보면서 감탄한다. (아인/, 5:5)으로 시작되는 에덴의 글자는 (아인)은 눈을 의미하며 발음 아인으로 하며 수치는 70을 의미한다.710배이다. 하나님의 눈에 대한 결정적 완전수의 무흠을 말한다.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열리면 온 세계가 다시 보이는 눈의 중요성이다. 에덴이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더 있다. 증거 또한 사람이 다름 아닌 하나님께 번제들이기 위해 존재에 대해서이다. 이 일 증거궤(아론 하에두트/증거궤)의 증거  (하에두트/증거)증거(하에두트/증거)-ד󰘞(아드/증거)가 등장하는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쉐마아 이스라엘 엘로헤이누 여호와 에하드, 6: 4)의 큰 글자 증거(아드)는 오직 그 한 분이심을 현현한다. 한국말에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관계는 하나님이 아들 예수에게 영원한 이 표징을 두기 이 세상의 삶 안에 증거 ד󰘞(아드/증거)를 써서 홀로 쓰이지 아니하고 비밀스러운 영원히 (올람/영원히)과 합하면서 영원을 강조된다.
ֵ글자 에덴의 는 가슴을 의미한다. 문을 의미한다. 와 문의 관계는 우선 전자 는 히브리어에서 발음을 달레트로 하며 수치는 4이며 히브리어로 달레트 곧 문이다. 음가는 이다.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통과해야 할 관문은 예수라는 기둥에 매달려 있어야 열고 닫으며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문은 기둥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기둥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피아노에 매달려야 하고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믿음이 좋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달려야 한다. 이 매달림은 성경에서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하였다. 문이며 곧 성경의 글자 ד(달레트/문 가슴) 달레트이다.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이름값이다.
글자 ד(달레트/문 가슴)는 관문의 의미이다. 무엇을 통과하여야 하는 달레트는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여주신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목표를 가지고 도달지점, 곧 마음이 가난하여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며 함께 가도록 보여주신 길을 함께 가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가슴을 달고 있어야 한다. 이 가슴은 개인의 가슴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슴이다. 한국어에 드리다드림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글을 쓰고 끝마무리에 드림이나 올림이라고 쓴다. 드림은 따뜻한 가슴으로 드리는 뜻이 강하고 더 높은 분에게 글을 올리는 뜻도 강하다. 히브리 문자 가슴이기도 한 이 달레트와 올라의 긴밀성은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길어 올리는 의미다. 그 의미를 다윋이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뜨겁고 끓는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매달리는 이 문에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 사랑을 받으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문에 매달려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가 다윋이다.
에덴의 문은 또 히브리어로 입, 발음 와 관련된다. 발음은 인데 문은 안팎이 있다. 문의 안과 밖이 결정되는 이 문밖은 입의 사역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의미로 확대된 문인 달레트와 관련은 입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문의 입이다. 곧 하나님의 입데 대한 사역이다. 한자어이긴 하지만 왕을 일컬어 페하 하는데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말은 그 어원이 엉뚱한데서 나오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통하여 변하지 않고 그 뜻을 동일하게 전한다. 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중요성은 백성들과 관련된다. 이때는 백성이 말 그대로 옮겨야하는 백성이 있다. 문의 안팎이 되는 결과로서 말씀의 중요성과 백성들이 그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말씀으로 명령하는 자와 말을 듣는자의 소통이다.
하나님은 그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반드시 그의 흔적을 남긴다. 말씀이, 혹은 말이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나와서 또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돋아나게 된다. 한국인들은 해가 돋아,’ 싹이 돋아라고 한다. 그런데 히브리어에서는 이 돋아다윋이다. ‘다비드이기도 하고 그리고 젖꼭지 도드이다. 젖꼭지 모양은 돋아 있다. 하나님이 결혼문제를 중요시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는 아가서가 정경화 된 내력과도 같다. 성경에서의 결혼 은유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와의 관계이다. 마음을 두는 그 깊이로 하여 가장 귀하게 여기는 아내의 자리이다.
다윋에게서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길은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를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인도된다. 비가 오게 하는 구름하늘의 그 구름 위로 오르신 분에 대하여 본 그대로 오심(12: 1)을 믿으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는 예수님을 닮으려는, 남편 따라 하나님 신부로서의 삶은 에덴을 좋아하는, 아내가 경영하는 에덴을 좋아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좋아함을 항상 보라라고 자랑하는 일이다.
ֵ에덴 ן󰕋󰘠(에덴)ן(Nun/물고기)은 물고기를 의미하며 발음을 으로 하며 수치는 50이다. 히브리어로는 ןוּנ(, Nun/물고기, 규정)이며 음가는 n/이다. 그런데 이 어미형은 영원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원래 언어 נ(물고기, 영원, 규정)으로 ן(ןוּנ/눈의 어미형)특히 이 언어는 같은 물고기가 두 번 쓰인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는 그리스도인을 말한 노벨 문학 수상 작품이기도 한 51년 영화 쿼바디스에서 베드로가 남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에서 비니키우스가 소국 공주 리기아에게 한 눈에 반해 정원에서 만나면서 막대기로 모래에 물고기를 그려 자신은 기독교인임을 알려준다. 이 물고기는 에덴으로 가는 사람들이 물고기 의미인 이 ן נ(엔 엔)2회리듬을 가진 에덴으로 가는 길에서 있다.
믿는 사람들의 징표였던 쿼바디스에서 리기아가 그려 보인 물고기는 예수님이 많은 사람 앞에서 물고기 두 마리로 수 천 명(4000 ~ 5000)을 먹이고도 남은 사랑 나눔 실천이다. 왜 세 마리나 또 다른 수의 물고기가 아니고 물고기 두 마리인가는 2회의 리듬 곧 두 번째의 의미인 두 번째 아담 예수님과 관련된다.
잌크튜스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다. 물고기는 눈(영속자)의 아들 여호수아의 의미와도 연관(대상 7: 27)되는 예수 그리스도는 ÏΧθΥΣΪησού(예수) χριστού(크리스토) θεός(에오스) ϒυίός(위오스) Σ의 약자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머리글자가 된다. 인간 물고기를 낚는 청년 예수는 하나님 사랑의 실천을 한 후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물고기는 수로왕능에서도 발견된다.
 
성경에서 에덴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거기 (2:8)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2:10)
P.VHNG P.NE VQPA C.NMS
적시고 에덴에서 발원하여 강이
12회 반복되면서 에덴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에덴동산에서 결혼하여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시었다.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고 생명나무의 길인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시면서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는 곳을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 된 곳으로 소고와 비파가 있게 하시었다.
에덴은 하나님이 가지가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핀 곳이며 물 대임을 받은 에덴의 모든 나무가 있어 위로를 받는 곳이다. 또한 영화와 광대함이 있는 에덴은 황무한 곳이라도 하나님에 의하여 에덴동산을 두시었다.
그리고는 네 강까지 만드시는데 예루살렘으로 가는 하나의 길을 위해 하나 에서 네 곳으로 나누어지게 하시었다. ‘이라는 글자가 없고 다만 하나를 위하여서 펼쳐지기위해서 흐르는 길은 에덴동산이 다름 아닌 말씀이 펼쳐지려 하는 곳이다. 이 때 말씀을 펼칠 대상이 아담의 아내이다. 왜냐하면 아내는 자신의 갈빗대를 뽑 만들었다. 이 점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좋은 말씀의 물을 먹이기 위해서 말씀으로 퍼레이드가 펼쳐지게하는 내용과 같다.
원문은 그 하나 ד󰖎󰔟󰕘 ם󰚅(쉠 하에하드/그 하나 거기, 2:11) 비손 ן󰚇י󰘫(비손)이다. 글자가 가지는 의미로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입으로 끝까지 말씀전하는 사역이다. 말씀을 전하여야 하는 의무자는 하나님의 신부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아내, 갈빗뼈로 만든 여자이다. "그 하나의 거기" 위치는 현재 확실한 곳이 제시되지 않는 유토피아 그 하나 거기는숨 쉼 글자 ה(헤트/숨쉼)를 글자 양쪽에 표시한다. 이 숨 쉼 사이 안에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상징글자ז(자인/연장)으로 하여 하나님의 남자로서의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두 글자사이에서의 연장언어가 가지는 의미는 글자를 양쪽에 두어 유일하게 예수님을 상징하여 숨 쉼의미를 통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상징한다.
문학 언어로 구성된 이 한 강은 숭숭 구멍이 나 있는 모래땅이다. 이 곳에서 금이 만들어지는데, 이 때 연장, 곧 예수님 상징을 사용헌더, 원문 하자하브 (하자하브/금이 있는, 2:11)로 하여 숨 쉼 언어하자하브)(하 하) 로 한다. 아담의 여자는 아담으로 하여 숨을 쉴 수 있으며 그로 하여 살아갈 수 있다., 이 결혼 이야기는 숨쉼이 양쪽에 모두 사용되면서 그 사이에 연장 󰖆(자인/연장)를 끼워 넣었다. 한국인들은 하자라는 말을 잘 사용하는데 바로 연장을 우리가 사는 땅. 곧 하나님의 집 안에 넣어 우리를 숨 쉬게 하자는 것이다. 곧 예수를 만들기 위한 강이 비손강이다.
그리고 두 부부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의 제자 사역장이 어서 비손강은 글자그대로 비젼의 강이며 글자풀이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입으로 영원히 말씀을 전하는 의미이다. 문학적 표현으로는 쓸모없는 모래땅을 전부 금 곧 말씀으로 싸 바른곳이다. 금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사금이 정금이 되기까지 빙빙 돌며 춤추는 모습이다.
성경은 주의 계명은 금보다 좋으리라 하는데 이 때 호마노(2:12)가 또 두 번의 숨쉼 언어를 다시 나란히 놓인다. 원문은 하솨함(하쇼함/호마노, 2:12)이다. 히브리어의 이 기호는 양쪽에 숨 쉼글자 󰕘(/숨 쉼)가 있고 그 사이에 예수님이 두 손을 들고 십자가의 달린 모습의 󰚇(/연단)이다. 따라서 하나의 강 그곳은 숨 쉼을 양쪽으로 하고 그 사이에 두 손을 높이 든 󰚇 기호 때문에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 때 예수님뿐만 아니라 무리, 곧 사역자들임을 암시하는 것은 히브리어 복수 물 ם(/)을 통하여 사역자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음을 예시한다. 곧 사람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서이다.
사람이 결혼하여 둘이 하나가 되는 개념은 성경이 유독 두 번째를 강조하는 이유가 된다. 탈바꿈이기도 한 둘째의 강 의미는 성경에서 네 강의 설명에서 두 번째로 처음 강을 표시하고 기혼강은 구스 땅을 휘돌아 싸안고 돌고 있다. 구스 땅은 검은 땅이다. 이 때 결혼하여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의 목표가 정해진다. 거듭나는 전연 딴사람이 되어가는 이 강은 하나하르 ר󰕗󰘅󰕘(하나하르/, 2:14)이다. 결혼햐면 사람이 변한다. 한국말 그대로 하나로 된다. 둘이 하나가 되는 관계는 처음 강을 강을 숨쉼 표시를 2회 사용하듯이 (하나하르/, 2:14)에서 󰕗 󰕘(하 하/두 번의 숨쉼 의미)로 하여 여호와의 구두어 예흐예에서 보여주던 2회 리듬 ה ה(흐 흐/ 두 번의 숨 쉼 의미) 그대로이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숨 쉬게 하려는 강이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라는 의미에서 둘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둘 중에 누구든지 하나가 희생할 때에 집안의 화목은 유지된다. 더구나 둘 다 양보하는 관계는 절대, 가정 화목의 기초이다.
역시 주인공은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로 오로지 은혜를 갚기 위한 강 기혼 ןוֹחי󰔹(기혼)에서 분출하다’, ‘솟아나며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작은 골짜기 지역을 흐른다. 일찍이 낮고 낮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이듯이 두 번째의 강은 졸졸흐르며 아주 낮은 곳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놓는 제잘거림의 나할/시냇가)로 변한다.
성경의 강은 기본형 나하르와 나할두 개가 있다. 기본형 나하르는 에덴의 동산에서 흐르는 강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작은 시냇물이며 기업이며 유업의 뜻을 지닌 나할을 숨겨두시고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부부들은 졸졸 흐르며 반짝이는 이미지이다. 이 보여주기의 나 할 일은 내 해이면서 내 할 일이다. 시냇물 나할/시냇물)이 되어 신앙의 공동체의 부부 들은 내 할 일 의 나 할일을 찾아 하나님의 일을 묵묵히 할 따름이다. 구스 땅과 같은 어두웁고 검은 이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어 예수님은 그의 일을 하셨다.
예수님의 나눔일은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다. 이를 기록하는 일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갈빗대이고 이는 여자이다. 기혼강은 예루살렘 성 밖의 동쪽 기드론 골짜기에 졸졸졸 흐르면서 예루살렘에 물을 공급한다. 예루살렘 강줄기가 되기 위해 탈바꿈하면서 유프라데강을 향하여 흐른다. 드디어는 권위의 강으로 인식되듯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말씀을 든든히 잡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지키는 유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빛나고 있다.
성경은 결혼과 관련하여 먼저 또 셋째 강을 펼치신다. 의미는 물을 내뿜어 터져 나오는 강 힛데겔 ל󰙐󰕋󰕙(힛데겔/2:14)이다. 오직 가슴으로 작은 구멍인 바늘귀의 구멍, 곧 어려움을 통과하여야 하는 강의 흐름이 있는 이 강은 가슴에 있는 말씀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의 강이다. 강은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는 이미지이며 남쪽에서 북방 유브라데까지 가는 강으로, 유부라데 강을 위한 강이다.
힛데겔은 하드 + 칼로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의미는 날카롭고도 빠르고 신속하고 예리한 물살 이미지의 강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다니엘이 포로기 때 정월 이십사일에 힛데겔 강가에서 일어난 환상 중에 본 세마포 옷을 입은(10: 4)분을 보았듯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부부관계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은 힛데겔 강은 앗수르 동편으로만 흐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볼 수 있는 자들이다. 음역과 가까운 티그리스강이라고 부르는 이 강의 상류는 범위가 넓으며, 강폭이 유프라데강보다 좁고, 터키 국경과 바그다드와의 고도차가 300m 이상 될 정도로 크기 때문에 강물이 많고 흐르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상류의 강수 상황에 따라 쉽게 범람하면서 화살처럼 빨리 나는 힘의 능력을 가진다.
에덴의 셋째강에서의 동편 강조는 성경에서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43:1~4)라 하였다. 부부가 결혼하여 얻어지는 영광은 나약한 두사람이 결혼하였지만 그 권위가 넘치는 존재들이 된다.
성경은 넷째 강 유브라데 강에 대하여 키레(P. Kyle)는 생명을 살리는 강이라 하였다. 유프라데 강은 말씀을 전하는 입술의 의미이다. 물렌(Mullen)은 유브라데 강과 메소포타미아 두 강이 생명의 젖줄기의 근원이라 하였다.하나로 모아지는 유브라데 강은 문()과 입술의 의미 곧 말씀과의 긴밀성이다. 곧 홍문표의 문, moon과 하이퍼성으로 연결되어지는 오로지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가는 강 유프라데강은 입으로 말씀을 전하는 강이다. 어원을 같이하는 유브라데 이파레드, 2: 10)와 유프라데 페라트. 2: 14)는 열매의 강이다. 말씀의 열매를 상징한다. 참 좋은, 비옥한 유브라데강에 대해서는 그 강물이 어디로 흘렀는지는 성경이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네 강의 중심이 되는 강이다. 이에 대한 이해는 4/4개념으로 1의 의미로 전환한다.
방위로는 사방의 의미이며 성경은 이 사방 곧 4개의 방향에 대하여 언급하며 43위 일체의 개념이 더하여 저서, 동 서 남 북 네 방향 모두 성령이 함께 하게 된다. 12사도와 개념으로 이해 할 때 더욱 확실해진다. 4방향으로 삼위일체이신 셋이 된 12길이다. 유브라데강은 큰 강, 하수(23:31, 1:7, 7:20)이다. 비손강은 사프완에서 유브라데강과 합쳐진 후에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간다. 거기서부터 페르시아만까지는 비손강이라 부르지 않고 유브라데강이라 부른다. 기혼강은 코람사르에서 유브라데강과 합쳐지고, 힛데겔강은 쿠르나에서 유브라데강과 합쳐진 후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간다. 강이 합쳐진 후에 페르시아만까지의 강은 더 이상 비손강도, 기혼강도, 힛데겔강도 아닌 오직 유브라데강일 뿐이다. 모든 강물은 유브라데강에 귀결된다. 유브라데강의 유프라데 뜻은 입으로 말씀전함의 의미이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함을 성경은 에덴동산의 네 강을 예로 들고 그 문학적 은유로서 제시한다. 신학적 설명으로는 천년왕국 너머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넘겨졌던 세상의 권세를 찾아오실 것이며, 만물을 다시 하나님의 권한 아래 두실 것이다.
에덴동산을 흘렀던 모든 강물이 유브라데강에 귀결되는 것처럼,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 강물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 길 가운데로 흐를 것이다. 그리고 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에서는 그 생명수로 인하여 달마다 새로운 과실이 풍성히 맺히고 그로 인해 만국이 소성될 것이다. 유브라데강이 에덴동산을 흘렀던 모든 강의 중심이 되는 참 좋은생명수이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부부문제의 회복을 의미한다. 회복은 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 사역의 일을 할 때이며 성경의 강은 막연하게 지리적 조건으로서만이 아니다. 네 째 강 은 네 째의 개념이 아니다. 4/4로서의 하나의 의미이다. 넷째 강 앗수르 동편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동쪽을 향해 빨리 죽으러 가는 행복의 강이다. 유프라데 강은 입으로 말씀을 전하는 강이다. 열매를 담당한 기독교인들의 일인 서로 화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하나님의 일꾼이 있는 강이다. 온통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입의 중요성에 제시되는 유프라테스강 자체가 이 의미를 지닌다.
자신은 죽어지며 말씀전하는 하나님의 신부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신도들이다. 넷은 죽음 의미로 악이 그 위력을 떨치는 때이다. 하나님이 그의 외아들로 하여금 죄악이 한 번에 씻어지게 하신 이 곳에 대한 이해는 유브라데 강은 에덴동산에서 넷째 강 유브라데 강의 열매로 죽어야 사는 의미이다.
결국 부부문제는 1/1 2/2 3/3 4/4 5/5 6/6 7/7.....로 온전히 죽어질 때 사는 의미이다. 넷째의 이 4는 완전한 동침 즉 4/4의 개념이다. 넷째 날의 모세가 있다. 모세는 물에서 건져졌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였다. 일곱째 날은 7/7로서 한 날 즉 주의 날이 되며 구약 전체의 의미가 전하는 죽어야 산다이다. 성경은 일의 설명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사는 것이고 그리고 그 죄악의 정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하여 한 번에 씻어짐을 나타낸 이 단 한 길이며 그리고 그토록 열망하는 에덴시학의 길이다. 하나는 하나(하에하드/하나, D.AMS/관사, 완료, 남성단수, 2:11)로 시작하여(에하드/하나, D.AMS/관사, 완료, 남성단수, 2:24)오 끝난다.
부부는 서약을 한다. 좋은 집 포로르 날아가는 에덴동산(2:9)을 마련하고 사랑의 가슴 물길로 싸비비(2:10)어 진다. 온종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래땅에서 구슬땀으로 엮어진 금반지(2:11)를 아내의 손에 끼워주고 진주(2:12)이슬 목거리까지 걸어준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구스땅(지옥의 땅)으로 흐르며(2:13) 십자가에 달린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피와 땀을 다 쏟는다.
그리고 밤낮으로 바라보며 가슴을 열어 놓는다. 이러한 남편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고 남편의 자리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지경에서 다시 아내는 남편의 자리를 바라보며 그곳에 남편이 서 있기를 바란다. 이 바람이 이루어 진 날 (2:14) 넓은 말씀의 강에서 두 부부는 합하여 입으로 서로 말씀전하고(2:14) 그 깊이가 더하여 죽어야 사는 아침(2:14)을 만든다. 이 희생정신으로만 이루어진 가정은 서로들 반쪽가슴을 가진 존재이며 당신의 반쪽가슴과 반쪽가슴이 만나 말씀을 맞추어 일을(2:18)한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 하는 일은 가슴의 말들이 쏟아지게 부르짖게(2:20) 된다. 밤이나 낮이나 서로 붙어서 다니며 당신(2:21)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 여자는 남편의 하나님 말씀을 가득 담은 가슴에 들어서서 복음이 된다. 복음을 전한다. 복음덩어리로 움직이면서 당신이 하라는데로 움직이는 복음이(2:21)되는 관계가 부부관계이다.
여자는 복음이고 남자는 말씀이다. 말씀자와 기록자의 관계는 말씀을 내는 자, 곧 명령자와 전달자가 되어 전하는 사람과 묵상하는 자 사이가 하나가 되는 관계가 부부관계이다. 남자의 가슴이 잘려진 가슴(2:23)으로 만들어진 여자는 입으로 조잘조잘, 쫑알쫑알 잘도 떠들면서 복음(2:22)전하는 향기가 눈으로 보이는(2:23) 관계가 부부관계이다.
보통으로 여자에겐 향기가 있어서 남자들을 유혹한다. 잘룩한 허리며 아름다운 얼굴이며 긴 머리칼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만든 여자는 복음, 남자의 갈빗대, 가슴으로 만든 마음이 담긴 여자이다. 복음(2:22)이다. 그러기에 당신의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2:22)이 된 부부이다. 남편의 말씀을 들고 사는 여자 (2:23)이다.
이제 깊은 물에서 떠나 물 위를 걸으며 세상의 물 위에서 한 지붕을 이루고 가슴을 맞댄(2:25).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미리 맞보는 일이다. 이부부의 관계는 싸울때도 많고 괴로움도 많다. 부부는 일평생 아름답던 머리와 얼굴이 변하여 가기까지 괴로움도 많다. 그리하여 같이 십자가의 고통을 미리 맛보면서 괴로움의 죽음 고통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 부분 경험하연서 늙어간다. 그러하여 이 세상을 살다가는 부부이다.
 
 
 
 
 
 
 
 
 
 
 
 
 
 
 
 
1. 아담의 우물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아담이 하와에게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2: 23)이라 하였다. 시적 관점의 조명이다. 힐만(James Hillman)은 아담의 우물인 화와(2: 22)를 부부로서 부모가 되는 관계라 하였다.아담의 갈빗대 하나로 만든 둘의 관계는 부부 사이가 아닌 혈연관계이다.
아담 ם󰕇(아담)의 기억 · 남자 ר󰗇󰕾(자카르/남자, 1: 27, 32: 13)와 그 기억을 기록할 녹명 인자(錄名因子) · 여자(내게바/여자, 1: 27)와의 긴밀성은 부부 관계가 혈연관계(3: 16)임을 성경은 제시한다. 갈빗대 대신으로 번역된 이 대신 · 밑바닥(타흐타나/밑바닥, 2: 21)이다. ר󰙴󰔯(빠사르/, 2: 21)를 브라트시오티스(Bratsiotis, N. P)는 복음 곧 여성 이미지이다. 살을 지닌 여성은 씨를 낳고 죽어야 하는 구약의 특수성이다. 먹힌 다음 영적 생명이 태어나는 빠사르가 지닌 고기(16: 12)의 의미는 먹을거리이다. 예수님은 죽으신 후 부활했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 모든 것의...복음을 전하는 그 안은.(콜 빠사르...베콜-빠사르/복음을 전하는 그 안, 9: 16) 언약 2회 리듬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아담 하와의 관계는 살 나누어 가짐이다.
2. 아담과 아다마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살닿음이다. 복음관계이다. 가장 깊은 곳 תיתּ󰖕󰚜(타흐티트, 32: 22) 깊은 곳에(베타흐요트/깊은 곳, 63: 9) 깊은 곳 (타흐티이흐/깊은 곳, 86: 13)는 복음의미이다. 한국말에 닿았다 · 밑에 ת󰖏󰚜(다하트/밑에, 25:19)라는 말이 있다.
아담과 하와 관계를 보편성으로 이해할 때 아담의 우물을 수평선 하나에 의한 수직으로 재형성 된다.오실자의 표상으로,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되 인격성(2: 18-25)에서 성소를 향하여 선다.여호와의 일의 장소로 아담의 숨은 의미를 알레고리로 보아 영혼문제가 아닌게 아니다. 아담과 아다마와의 관계로서 하늘과 짝(2: 6)을 이루는 아다마의 일, 땅과 하늘의 일이다.
아담은 배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는 자이다. 이 때의 첫글자 א(알레프)는 시작 · 신적인 요소 · 나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א(알레프)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성경은 이 신적인 요소를 나는 나(아노히 아노히/나는 나, 43: 11)2회 반복리듬은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의 뜻으로 하나님을 의미한다. 아담은 가슴의 깊은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물을 끌어 올리는 자이다. 하나님이 생기를 코에 불어 넣음으로써 사람이 된 아담은 살기를 소망하는 자이다. 아담은 물을 먹어야 하는 자인 동시에 배워야하는 자이다. 피를 가진 사람 아담은 특별한 특징을 가진다.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은혜로 얻은 이 마음의 물을 퍼내는 자가 사람이다. 육이 된 아담은 피의 사람이다. 그러기에 오실 자 예수님은 육신으로 둘째 아담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필요한 피를 주시어서 살게 하였고 이 피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 아담의 아내 하와와의 관계는 사랑의 띠로 하여 갈비뼈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이 관계는 혈연의 관계이다. 실제의 현실에서는 혈연이 아니다.
아담과 예수님과의 구별은 아담은 땅에서 하나님이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살은 자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인간의 죄를 감당하시었다. 이러한 구별은 인간이 예수님을 본받아 살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에서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인간과는 다르다. 동시에 하늘에 오르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을 보이시어 하늘의 사람임을 나타내시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와 결혼하고 이 땅의 육의 사람이 되어 산다. 그러하기 때문에 가장 인간적인 잘못으로 우상을 섬기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위하여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시었고 그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의롭다 함을 얻는다.
다음은 아담 ם󰕇(아담)과 아다마 ה󰗪󰕇(아다마)의 리듬이다.
 
 
3. 아담과 아다마의 물 흐름의 의미
 
 
* 28-1: ם󰕇(아담)ה󰗪󰕇󰔣ה(하아다마)의 리듬은 아래와 같이 화살표로 기호화하였을 때 더욱 뚜렷한 물결리듬을 이룬다. 아담과 아다마의 아름다운 리듬은 물 흐름의 이미지이다. 성경의 아담과 아다마의 물 흐름은 2회의 리듬을 보인다.
다음은 그 리듬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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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6- 9: 6)
 
* 28-2: 의 특징은 물 흐름 이미지이다. 아담 아다마 아담(1: 26-9: 6)의 긴밀성은 물결무늬이다. 동시에 덮는 이미지가 비율적으로 높아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덮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신 흔적이다. 이 물 흐름의 이미지와 관련한 이어지기는 아담 ם󰕇(아담)의 피 ם󰕇() 의미인 피(담밈) 이어지기 관계이다. 언어(하아다마/아담을 소망)는 아담의 소망함이다. 곧 내가 배워서 말씀을 소망함이다. 아담을 소망 아다마) · (담마)닮다 · 같다가 의미하는 피(담마, 14: 11, 89: 6) (듬마, 3: 25, 7: 5)에서 곧 살기를 소망함이다.
헤일(John Paul Heil)은 아담과 아다마의 관계를 자식을 낳는 관계로 연계 · 로버트 벌전(Robert D. Bergen)은 아들은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임스 힐만(James Hillman)은 이 둘은 성적 차이와 부모가 되는 관계라 하였다. 아담(2: 4-5)은 그 계보가 10대째 노아(6: 1-11)로 이어지고 노아에서 다시 1010곱인 100세 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는다(21: 5). 구약의 특징은 죽어가기 시작하는 미완료 형을 아담이 낳은 허무의미인 아벨 (헤벨, 4: 8)의 죽임 당함에서 제시하였다. 마크(Mark M)는 헤벨(아벨)이 형의 손에 죽어 그 이름이 다시는 불리어지지 않았음을 들어 하나님의 부재(不在)로 하고 있다.그러나 죽어가는 · 아직도 그 죽음이 끝나지 않는 죽음의 진행형(바야하레게후, 4: 8)로 하여 성경은 헤벨(아벨)이 살기를 소망, 곧 아담을 소망(하아다마/아담 소망, 4: 10)함이다.
아벨은 아직 죽음이 끝나지 않는 진행형이다. 헤벨의 땅 아다마는 다시 삶을 소망하며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시빌(M. Civi)도 이를 아직 끝나지 않는 삶의 소망,말하자면 잔다는 의미이다. 아벨은 산제사 곧 자바/제사를 드리는, 2076)생축을 잡아드리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셨다. 반면 예물  (고르반/예물, 7:37)은 한국어로 골라 봐이다. 골라 וֹג(골러/사로잡아, 왕하 24:16) 드리는 예물은 예물을 드리는 자와 생명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전연 다르다. 따라서 제사와 예물이 전연 다름은 전자는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제사이고 후자는 골라서 선물로 드림으로 하여 받아들여 지지 않았음을 성경이 제시하고 있다. 가인의 제사는 가짜이었다.
기본형 ה󰔨󰕾(자바/제사를 드리는, 2076)는 살아 있는 생축을 잡아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신약의 예수님의 전 인류를 위해 죽으시는 일과 연결된다. 생축을 잡아(티제바, 12: 15) 우양을 잡았다’, 즉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잡아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자리 둘째 자리를 반복하는(이즈베후 지브헤/제사를 드리는, 33:19)) (리즈보아흐 제바/제사를 드리고, 16:23) (조베아흐 자바/제사를 드리고, 삼상 2:13 (조브힘 자바/제사를 드리는, 대하 7:4) 2회의 리듬을 강조한다. 첫 아담이 아닌 두 번째가 되는 예수님을 이미 구약은 한국식 발음 잡아로 제시한다. 예수님은 그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어 하나님께서 흠양하시었기에 제사를 받으시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부활시키시었다. 이와는 달리 성경은 완전히 죽은 죽음을 노아 때 수장된 자들을 죽었더라(메투/죽었더라, 7: 22)라 하였다. 로버트(Rebert D)는 데라의 완전 죽음 죽었더라 바얌마트/죽었더라, 11: 32)를 들고 있다. 이들은 우상을 섬기는 자이었다. 아브라함은 이곳을 떠났다. 성경은 동생 가인에 의하여 죽음을 당한 헤벨(아벨)은 죽어가고 있는 (바야하레게후/죽어가고 있는, 4: 8) 진행형으로 한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물들은 구약에서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진행형의 문법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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