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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내 친구 장(張)씨"
2009-04-03 12:00:54
yookh

조회:1550
추천:88

단편소설 "내 친구 장(張)씨"

           유 금 호 

  내 친구, 장(張)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장씨의 고향이나 나이,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친구’라는 호칭을 쓰면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고향이나, 학교, 군대, 사업관계, 하다못해 무슨 취미교실에서라도 만난 그런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개가 늦게까지 걷히지 않았던 봄날의 산골짜기, 낡은 국방색 배낭 하나, 잠이 덜 깨어난 듯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찌...어찌.... 이리 내 고고...고향과 똑 같지요? 더듬거리던 말투, 그것이 그와의 첫 대면이었다. 

  강원도 접경, 양평 산골짜기에 10여 년 전 낡은 농가가 딸린 땅을 얼마간 장만해둔 것이 있어서 주말에 잠깐 들렸을 때였다.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나이 들어 소일거리라도 만들겠다고 마련한 곳이었다. 국유림에 이어지는 골짜기 끝자락의 한때 화전민들이 머물던 척박한 산골이었지만 작은 계곡물이 흘러 앞서 살던 노인은 낮은 곳에 다랑논을 만들어 쌀 두어 가마니씩은 수확을 해왔다고, 했다. 
 계곡물과 오두막 집 뒤로 이어지는 잣나무 숲이 마음을 끌어, 자식들이 다 떠난 뒤 면소재지로 옮겨 사람 냄새 맡으며 여생을 나겠다던 노부부에게 양도받은 땅이었다. 서울에서 기껏 한 시간 반 거리인데도 봄날의 산골짜기는 서울과 두어 주일 기온 차이가 있었다. 

 서울 거리의 가로수 잎이 비쭉비쭉 돋는 걸 보고 들어갔는데도 거기는 아직 겨울이었고 그날은 오전까지도 안개가 걷히지 않고 있었다. 
 마당 아래쪽 석축 돌 틈 사이에 철쭉을 심고, 집 둘레에 이팝나무와 산딸나무, 벚나무 등속 10여 그루, 나무를 심을 계획이었다. 아침에 용달차가 부려놓은 철쭉을 다 심은 뒤, 마당 끝에 내 키 정도의 벚나무를 심으려고 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자갈이 많아 괭이와 삽을 번가라 쓰다 보니 구덩이 파는 것이 만만하지 않았다. 이마 위로 눅눅한 골짜기의 안개가 자주 달라붙었다. 
 새끼줄로 뿌리를 감싼 벚나무 한 그루를 구덩이에 세운 뒤 흙을 채우기 전, 새끼줄을 잘라내려고 전정가위를 손에 쥐었던 때였을 것이다.      “줄...줄...새끼 줄.... 풀지 말고 그대로 그냥....” 용달차 기사가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복장이 달랐다. 용달차 기사는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나무...나무... 나...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 그대로 흙을....” 헐렁한 모직 점퍼에 국방색 배낭, 그을린 얼굴의 중년을 지난 남자였다.더듬거리 는   말투와 그의 외모에서 왜 그 순간 푸석푸석 잘 마른 가을날의 수숫단 냄새를 느꼈을까. 
 안개에서 느껴지는 습한 공기 중에 그 메마른 체취가 꽤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벚나무 한 그루를 심고, 새 구덩이를 파기위해 괭이를 들자 그가 배낭을 벗어놓고 내게서 괭이를 가져갔다. 그리고 능숙하게 구덩이를 팠고, 구덩이 안에서 나무의 방향을 잡아 세웠다. 
“새끼줄....줄을...줄 풀면 뿌리....뿌리가 흔들려 차차...착근이 잘 안될 수도 있거등요. 고무줄로 묶은 거는 내내...내년에 잘라내야 하지만 짚이야 썩는 것이라서....” 
 혼자 힘이 들었던 참이라 모른 척, 그의 도움으로 10그루 나무심기를 마치고나서야,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냈다. 
 그는 씨익 미소만 지어보이고, 계곡 물에 땀을 씻고 돌아왔다. 안개가 물러가면서 봄볕이 마루 위로 기어들었다. 
 아래 동네에 사느냐고 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지나다가 들린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가 낳고 자란 시골과 너무 흡사한 지세여서 자기도 모르게 휘적휘적 골짜기를 따라 올라왔다고 그는 몹시 더듬거리며 말했다. 
 막걸리를 한 사발씩 비운 뒤 이름을 물었더니, 장(張)가요, 그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장씨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준비해 간 도시락과 반찬을 마루에 늘어놓고 점심을 같이 먹은 후, 그가 외양간 곁의 공터를 보더니, 텃밭을 자그맣게 만들어 푸성귀를 심으면 한 여름 반찬은 할 것이라고 했다.

 전부터 나도 직접 상추나 쑥갓, 아욱 같은 것을 조금 심어보았으면 했던 참이었다. 
 장씨는 메고 왔던 배낭을 밀어놓고 삽과 괭이를 찾아들더니 그 공터에 아궁이의 재까지 긁어다가 뒤섞어 능숙하게 금방 골을 만들고 둔덕을 만들었다. 자기는 무엇을 심고, 가꾸고 하는 일이 너무 하고 싶다고 했다. 농사꾼 아버지의 대를 잇지 못한 것이 나이 들면서 후회가 되고 그것이 병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예상하지 않은 인연이었지만 나는 그 골짜기의 땅과 집, 그리고 내 사정 이야기를 대강 해주고, 몇 해째 밭이 놀고 있다고 했다. 농촌에도 요사이는 쉬고 있는 땅이 많아 산골짜기의 거친 농토는 농사꾼들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나도 그 동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말을 더듬거리는 내 나이 또래 남자 한 사람이 그렇게 해서 그 산골짜기에 머물기 시작했다. 
  외양간으로 쓰던 헛간을 손질해서 지난 해, 작은 방과 부엌을 만들었는데 기거는 그곳에서 하면 되었다. 장씨가 그 골짜기에 기거하게 되면서 나는 주말이면 서둘러 거의 매주 그곳으로 내려갔다. 
  그는 오두막집과 묵은 밭에 손보아야 할 것들을 조언했고, 얼마씩의 경비를 전해주었는데 장씨는 요술 손을 가진 것처럼 집과 주변을 갈 때마다 놀랍게 변화 시켰다.

  주말에 하루나 이틀씩 그곳에 머무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저녁이면 마당 한쪽에 장작불을 피우고, 주먹만큼씩 자란 햇감자를 알루미늄 호일로 싸서 잉걸불에 익히고 소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여러 시간을 나란히 앉아 있는 날들이 있었다. 
 장씨는 말더듬이가 심한 탓도 있었지만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서로 대화가 없어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었다. 그에 대한 몇 가지 정보라도 알고 싶었다면 그 무렵 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고 어눌한 말 때문에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얼마간의 윤곽은 짐작할 수 있었을 터였다. 
 초여름 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소주를 몇 잔 나누다가 그가 꺼냈던 딸 이야기 전후해서 몇 마디 물었으면 대꾸를 했으리라 생각된다. 
 산골의 밤은 주위가 금방 완전히 새카맣게 변해버려서, 모닥불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그가 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정적 속에 계속되고 있던 소쩍새 울음으로 감상적인 분위기가 되었던 탓이었다고 생각된다. 
 집에서 기르던 ‘잉꼬’가 죽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유치원 다니던 딸아이가 모이를 주던 새여서 아이가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튿날 마당 한쪽에 딸아이가 죽은 새를 묻고 나무젓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준 것을 보았는데, 아이가 그 무덤 위에 며칠째 계속 물뿌리개로 물을 주더라는 것이다....꽃씨도 물을 주면 싹이 나지 않아? 딸아이에게 해줄 말이 없어서 돌아서서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회상 끝에 딸아이나 가정, 고향에 대해서 에둘러 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씨는 금방 오두막집 뒤쪽 산에 초여름이면 벌겋게 익어가는 산딸기와 큰 나무를 휘감아 올라간 칡덩굴과 머루덩굴, 더덕과 도라지. 옻나무와 화살나무, 붉나무, 신나무, 들로 화제를 바꾸어버렸다.
 “자자....장마 때 옮겨 심을 나무 몇 그루를 보아 두었구먼요....2.30년은 더 된...늙은... 늙은 머루 덩굴도 저쪽에 하나 옮겨 심을라고요.” 
 내가 거기 묵고 있는 날에도 그가 한가하게 쉬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 보아두었는지 산골짜기에 자라던 야생두릅과 오갈피나무, 산초나무, 하늘나리, 원추리와 붓꽃들을 캐 와서 집 주위에 심기도 하고 물이 고이는 계곡 곁에 작은 돌미나리 밭을 만들기도 했다.
 1미터가량의 키가 큰 ‘고비’둥치를 여럿 캐다가 계곡 가까이 심어놓기도 했는데 나는 그렇게 큰 야생의 양치식물이 우리 땅에 살고 있는 줄 모르고 어디에서 ‘소철’을 옮겨 심어 놓은 것으로 알았다. 
  한때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놓은 땅이었지만 내가 머물지 못하다보니 사람이 거처하지 않는 공간의 쇠락은 뻔한 것이었다. 마당과 길을 덮은 개망초와 쑥 줄기들 속에 오두막집은 폐가처럼 점점 우중충해 져서 그곳에 가는 날에도 기껏 마루를 치우고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오거나, 지난해에 손질을 해놓은 아래채에서 캠핑하듯 하루 밤을 머물다 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장씨가 머문 뒤부터 집이나 주변이 점점 달라져갔다. 
 우선 집 주위의 질경이, 애기똥풀, 개망초와 쑥 줄기들이 말끔하게 뽑혀나가고 마당의 빗자루 자국이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달라져가는 분위기에서 무인도에 표류했던 ‘로빈슨 크루소우’ 생각을 가끔 했다. 
 사람이 살지 않던 원시적 공간이 변화해가는 것이 흥미로웠던 ‘로빈스 크루소우’의 무인도처럼 장씨가 기거하면서 그 골짜기가 다른 곳으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오두막집 역시 함석지붕이 거의 삭아 있었는데, 얇은 철판을 기와처럼 처리한 지붕개량제가 있다고 해서 그에게 부탁, 지붕을 보수했다. 

 낡은 집을 훗날 헐어내야지 하면서 외면해 왔던 몇 군데 구멍이 뚫린 벽을 그의 권고대로 황토마감제로 보수하고나자 전혀 다른 황토집이 되어버렸다. 음습하던 뒤뜰 역시 빗자루 자국 선명한 뒤란으로 바꾸어졌다. 
 지붕을 새로 덮고 방 하나에 구들장을 놓은 뒤 도배를 했다. 나는 늦은 시간 서둘러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새로 도배한 방에서 목침을 베고 깊은 단잠을 자기도 하고, 잡초가 말끔하게 잘려나간 밭 언덕을 운동화 차림으로 느긋하게 걷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상한 것은 계속 바뀌고 있는 그 공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장씨인 것 같은 생각이 가끔 들었다. 그 변화의 공간에 내가 잠시 손님으로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였다. 
 그가 아래 마을에서 얻어다 뿌린 메밀 싹이 밭 한쪽에서 다북하게 올라오고, 텃밭의 상추와 쑥갓들이 커 올라오자, 그것들을 내 맘대로 뜯어도 괜찮을지 망서려지는 때도 있었다. 삼면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서 그런지 골짜기는 아침 안개가 자주 끼었다. 
 그러나 해가 솟으면 안개가 스믈스믈 숲 속으로 물러나고 맑고 청량한 풀, 나무냄새가 곧장 골짜기를 채워주었다.

 여름이 되면서 장씨에게서 풍기던 초겨울의 마른 옥수수 대 냄새, 밟으면 푸슬거리며 부서져 버릴 것 같은 건초나 여름가뭄 날의 풀풀 흩날리는 흙냄새 같은 것이 옅어져갔다. 
 자주 골짜기를 감싸 도는 안개가 그의 건조한 분위기에 수분 공급을 해주고 있을까.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던 바삭바삭 부서져 흩어질 것 같던 건조한 체취에 어느 날부터 나무와 풀냄새가 섞여갔다. 
 시각을 가득 채워주는 연한 초록색에서 진초록, 혹은 보라색 칡꽃, 빨강색의 산딸기와 검게 익어가는 산 버찌와 오디 열매, 자주 후각에 와 닿는 비온 뒤의 흙냄새, 어린 머루열매와 더덕 줄기, 찔레 순 냄새,...그 골짜기의 모든 것들이 장씨를 감싸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 부터였을까,   장씨와 내가 역할 바꾸기 놀이를 하는 기분이 드는 적도 있었다.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그가 대신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에게서 그 골짜기에 살고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 냄새가 섞여 나는 것 같았고, 그의 혈관에 피 대신 수액(樹液)이 흐르고 있다는 상상이 되기도 했다. 
 그 냄새에 대한 느낌은 숫자가 엄청 불어나서 농사에 피해를 입히기 시작한 ‘청설모’ 사건 이후에 더 강하게 풍겨왔다. 밤이며, 잣, 호두.....가리지 않고 먹어대는 외래종 다람쥐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말이 많아졌고 골짜기 주변 밤나무나 마당 한 쪽 호두나무 고목을 오르내리는 녀석들을 나도 자주 보아 왔다. 
 그런데 그가 청설모를 구워먹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호두와 밤을 다 먹어 치워서 쥐 잡이 덫을 놓아 청설모 몇 마리 잡았다고 했다. 어렸을 적 시골 아궁이 앞에서 참새를 구워먹듯 짚으로 한 마리씩 통째로 싸서 불 속에 넣어 구웠더니 쫄깃거리는 맛이 참새와 비슷하더라고 그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말했다.....잣을 먹은 놈은 잣 냄새가 나고, 밤을 따먹은 놈은 밤 냄새, 호두 먹은 놈은 고기에서 호두 냄새가 나더라고.....그러고 보니 장씨한테서 청설모 냄새가 나네. 농담으로 던진 이야기였지만 정말 그의 체취 속에 덜 익은 호두와 밤. 잣과 머루 냄새가 섞여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혈관에 피 대신 수액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도 그때부터였나 싶다. 
  주변이 모두 초록색이어서 안개가 낄 때는 초록색이 안개의 작은 알갱이 속에 부옇게 물감처럼 풀어져 가까이 있는 사물들을 같은 색깔로 물들이는 것 같았다. 사실 그가 나무들 사이에 서 있거나 걷고 있을 때는 그의 발쪽에서부터 푸른 기운이 몸 전체를 적셔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옹이 박힌 두꺼운 그의 손을 마주 쥐면서 우리는 감각의 공유를 밀약했을지 모른다. 
  나무나 풀을 가꾸어보고, 나뭇잎 사이를 스치고 오는 공기를 심호흡 하고 싶던 내 무의식의 욕망이 그를 통해 대리 성취되고 있는 셈이 아니었을까. 배신, 음모, 위선, 비정한 긴장과 자기혐오의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 끝이 보이지 않게 얽혀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바람이나, 안개 흙과 물, 여린 풀과 억센 가시의 나무들 사이에 서 있고 싶은 꿈, 그러면서도 매일 아침 넥타이를 다시 졸라매는 현실적 삶을 걷어찰 용기가 퇴색해버려 나는 새로운 복제품의 내가 필요해진 게 아닐까. 나와 장씨는 사실 이인동체(二人同體)의 동거, 혹은 영혼과 욕망의 교류라는 독특한 생명체로 진화해 가는지도 몰랐다. 
  장씨가 나무로 변해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혈액에 피 대신 나무 수액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그런 상상은 사실 장씨라는 객체가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였는지 모른다.

 그 주말 역시 해가 돋은 한참 후까지도 안개가 골짜기를 채우고 있어서 나는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도 장씨의 모습을 쉽게 찾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안개 속에서 그의 밀짚모자가 보였다. 
  집 뒤쪽 콩을 심어놓은 밭고랑의 안개 속에서 장씨는 잡초를 뽑고 있었는데 아래 둔덕에도 또 다른 밀짚모자가 안개에 묻혀 있었다.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나는 짐을 내려놓고 준비해 온 수박과 참외만 챙겨들고 정자(亭子)로 가만히 옮겨 갔다. 그때야 그가 허리를 펴고 밀짚모자를 벗어보였다. 
  내가 손을 흔들었다. 
  아래쪽 밭이랑에 있던 밀짚모자 역시 허리를 펴고 모자를 벗었는데 순간, 나는 어,하고 입을 벌렸다. 아래 밭에서 풀을 뽑고 있었던 사람은 생각지도 않게 머리를 허옇게 민 스님이었던 것이다. 
  “스님께서 어떻게 ...” 
  “울력 나왔지요.” 
  가까이 가서야 나는 잇몸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스님이 여승인 것을 알았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중한테 집이 따로 있습니까? ....두어 달 되었나요. 마침 이 산등성이 너머 쇠락한 암자(庵子)에 맛 좋은 석간수(石間水)가 있어서요. 언제 들리시면 석간수로 끓인 차,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스님이 이웃에 사셨군요.” 
  “그런 셈이네요....소승 만월(滿月)이라 법명을 받았습니다.” 
  오십 중반을 넘겼을까, 웃을 때 눈가에 작은 주름들이 여러 겹 잡혀 나이 들어 보였지만 해맑은 피부에 눈이 퍽 맑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내가 점심 공양(供養)을 준비하겠다고 했더니, 맛있게 먹겠노라고 했다.
   내가 전기밥솥 코드를 꽂을 때쯤 스님과 장씨는 봄에 일구었던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 풋고추, 오이 등속을 바구니 그득 씻어 왔다. “스님에게 술은 못 권하지만 오늘은 땀을 많이 흘리셨으니 곡차(穀茶)는 한 잔 하시지요.” 나는 시치미를 떼고 준비해 간 막걸리를 대접 세 개에 그득하게 따랐다.
   “감사하게 수분 보충 하겠습니다.” 
   스님은 눈가에 잔주름을 잔뜩 만들며 스스럼없이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비웠다. 
   나야 초면이지만 그간 장씨와는 서로 대면한 적이 몇 번 있는 듯싶었다. 
   혹시 두 사람, 장씨와 만월 스님이 젊은 시절 연인 사이였을까. 아니면 세속에서 오뉘 사이였다가 여기서 만나게 된 것은 아닐까. 어느 날 스님이 깻잎과 파초 줄기로 담은 장아찌를 장씨에게 챙겨다 주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잠시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두막집을 찾아 온 스님을 두어 번 더 만났지만 두 사람의 표정 어디에도 그런 세속적인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로 연락을 하라고 했지만 장씨가 내게 전화를 해 온 것은 딱 두 번이었다. 
  처음 그가 내게 전화를 해 온 것은 이른 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내게 애완동물 가게가 가까우면 나무로 만든 ‘잉꼬’와 ‘문조’둥우리를 몇 개 구해왔으면 좋겠다고 몹시 더듬거리며 이야기 했다. 
  집 뒤의 큰 밤나무에 꾀꼬리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른다는 말과 함께 집 주변에 산새들 살 집을 걸어주고 싶다고 했다. 
  사실 장씨는 놀라울 만큼 산에 있는 나무나 풀, 산새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종달새’가 새끼를 기르는 동안 제 집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위장술을 쓰는 지와 ‘뻐꾸기’가 작은 산새 집에 알을 낳아 기르게 하는 것들을 참으로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신기한 것은 ‘새’이야기나 ‘나무’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그가 거의 말을 더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날은 아내와 동행이 되어 구들장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햇감자를 구워먹으면서, 새 이야기를 들었는데 훗날 아내는 그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했다. 
 종달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려고 둥우리로 돌아갈 때면 사람들 눈을 의식해서 곧바로 둥우리로 내려앉지 않고 2,30미터 떨어진 공중에 정지해 떠 있다가 직선으로 땅위에 낙하한 뒤 종종종 둥우리로 기어간다고 했다.
  뻐꾸기가 제 새끼를 직접 기르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뻐꾸기 새끼를 기르는 ‘뱁새’나 ‘오목눈이’ 어미 새는 머리통이 지저분하게 젖어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뻐꾸기 새끼는 뱁새나 오목눈이 어미보다 금방 몸이 더 커져서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온 어미 새 머리통까지 입안으로 가져가 침을 묻혀 어미 새 머리가 지저분해진다는 거였다. 
  “새끼 새 잡으러 갔다가 머리통 더러운 어미 새 만나면 뻐꾸기 새끼 잡는 것은 백방이거등요.”
   "잉꼬"와 "문조"용 나무 둥우리를 꼼꼼하게 집 뒤 밤나무 가지와 집 뒤 기둥에 걸어놓고 장씨는 며칠 내로 산새들이 들어와 새끼를 키울 거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한 주후에는 두 곳에 ‘곤줄박이’와 ‘박새’가 살림을 차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가을 그가 두 번째 전화를 해 왔다. 
  이번에는 집 가까운 곳에 ‘동물병원’이 있으면 애완견용 ‘진드기 약’을 좀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떠돌이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왔는데 ‘진드기 약’을 발라주고 싶다는 거였다.
  ‘진드기 약’을 사가지고 간 그 주말 아침, 내가 차를 세우고 마당에 내려서자 아직 덜 자란 누렁이 한 마리가 나를 보더니 낑낑거리며 꼬리를 저어댔다. 살던 집을 잊어버렸던지, 주인에게 버림을 받았던지 한 주일 전, 큰 길에서부터 줄곧 그를 따라와 밥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름이 없으니 내게 이름을 지어주라고 해서 그냥 ‘누렁이’라고 하자고 했더니 장씨는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마 한쪽 끝을 제 잠자리로 자리를 잡은 뒤, 드물게 등산하는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어 집 쪽으로 들어서거나 하면 사납게 짖는다고 했다. 꼬리를 흔들고 반가워하는 사람은 ‘만월’스님과 나밖에 없었다. 
  전부터 제 주인이었나 싶게 ‘누렁이’는 장씨를 어느 때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냇물에 손을 씻으러 갈 때도, 숲에서 죽은 나뭇가지를 주어올 때도 언덕에서 풀을 벨 때도 ‘누렁이’는 장씨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누렁이’가 장씨 곁을 벗어날 때는 주말에 내 차 소리가 들리거나 만월 스님이 마당 입구에 들어설 때뿐이었다. 
  꼬리를 흔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누렁이’는 자주 내 앞에서나 스님 앞에서 발랑 제 배를 드러내 보이고 낑낑거리는 것으로 반가움의 부피를 표시하곤 했다.

 장씨 곁에 붙어 있던 ‘누렁이’가 사라진 것은 겨울이 지나고 장씨가 골짜기에 머물러 지낸지 1년이 되어가던 때였다.

 항상 장씨 주위에만 맴돌았지 골짜기를 벗어난 일이 없었다는 ‘누렁이’가 사라지고 나서 장씨는 몹시 서운해 했다. 그러자 그에게서 마른 풀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인연이 다 된 게지요. 내가 강아지를 한 마리 구해다 줄까, 했더니 고개를 저었다. 
  얼마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제 옛 주인을 찾아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누렁이’가 사라지고 한 달 뒤 장씨도 그 골짜기를 떠나버렸다. 
 <그간 신세 많았습니다.> 내가 가져다주었던 작업복들과 신발을 말끔하게 정리해놓고 달랑 쪽지 한 장, 그는 증발하듯 그 골짜기에서 사라져 버렸다. ‘누렁이’가 떠난 뒤 나는 머지않아 장씨 역시 골짜기를 떠날 것이라는 예감을 했다.

  그 동안 그에게서 느껴지던 푸른 기운이 줄어들면서 건조한 수숫대 냄새가 다시 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렁이가 사라지고 그에게서 그 푸른 기운이 퇴색되면서 나기 시작한 수숫대 냄새를 맡으며, 직감으로 아, 이제 장씨가 골짜기를, 나를 떠나는구나. 내 가슴 한쪽이 휑하게 비워지면서 전염되듯 내 몸에서도 버스럭대는 건초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내 친구, 장씨는 어디로 간 것일까.

  새로운 봄이 시작되어 그와 함께 지난해에 심은 나무들의 싹이 나기 시작해도 장씨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혹시 그가 돌아오면 옛날처럼 지낼 수 있도록 아래채는 그대로 두었다. 그와 지난 해 함께 심었던 자귀나무에는 올 여름 유난히도 붉은 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종자가 다른 흔하지 않은 나무라고 장씨가 자랑스럽게 말했던 대로 보통 분홍색으로 피는 자귀나무의 공작 벼슬 같은 꽃술이 진한 빨강색이었다. 꽃무더기가 가지 끝을 뒤덮고, 검정색 ‘긴꼬리제비나비’들이 어디서 몰려 왔는지 10여 마리가 넘게 그 꽃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니기도 하고 앉기도 했다. 
  사실 그가 머물러 있는 동안은 가끔 그 골짜기의 주인이 장씨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했던 듯도 싶다. 
  채양이 큰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은 채, 그가 밭둑에 서 있을 때나, 가축두엄을 포크로 떠 담아 나무 밑에 흩뿌리고 있을 때, 손바닥에 퇘퇘, 침을 뱉고 나서 도끼를 휘두를 때면 그의 모습은 초록색의 배경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사라지고 나자 만월(滿月) 스님 역시 내가 환영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일까, 자글자글한 주름을 눈가에 만들면서 잇몸을 들어내고 웃고 있던 그 여 스님은 실제가 아닌 허상이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장씨가 떠나고 난 두 번째의 주말, 나는 별 생각 없이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 옆 골짜기를 찾아들었다. 
  그 골짜기에도 작은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거기 어디 쯤 작은 암자 마루에 장씨와 만월스님이 나란히 앉아 있거나 텃밭에서 푸성귀를 거두고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을 했지만 그 골짜기 어디에도 암자나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비가 억세게도 쏟아지던 날, 구들장 놓은 방에 장작을 집어넣다가 재속에 묻었던 감자를 후후 불어가며 같이 먹었던 장씨와 스님은 이제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아니 그와 연관된 모든 기억조차 내가 만들어낸 허상인가. 그들이 사라지고 여러 달이 지났지만 어느 때건 내가 머무는 골짜기에 되돌아와 풀을 메거나 나무에 거름을 주고 있을 것도 같고, 무심하게 툇마루나 정자 위에 앉아 있을 것 같은 기분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오고 싶을 때 잠시 와서 머물고 어느 날 또 바람처럼 사라지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장씨가 내게 ‘친구’라고 말해 본 적도 없고, 자기 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심지어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나는 지금 그를 ‘친구’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핏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줄기차게 쏟아지던 비가 개고 하늘이 높아져 있었다. .
 ..그 너구...너구리가 닭을 또 세 마리 잡아 갔다는만요...어눌하게 중얼거리던 꿈속의 장(張)씨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두막집을 보수하면서 구들장을 놓느라고 문짝을 다 때어내었을 때였다. 합판으로 막아놓았던 옆문에 제대로 된 한옥 문짝을 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문짝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구들장 놓인 방 아궁이에 걸린 무쇠 솥에 물을 가득 길어다 붓고 한 이틀 불을 때면서 구들장을 말리고 있었다. .
 ..너구...너구리가 자고 갔구만요...장씨가 뒤통수를 긁으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 한쪽에 배설물이 두어 뭉큼 놓여 있었다. 
 국유림에 이어지는 산골이어서 밤이면 산 짐승들이 자주 내려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너구리가 내려와 빈 방에서 자고 가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장씨는 배설물을 치우면서 자기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민망한 얼굴이었다. 
  “짐승이 자고 간 자리는 옛날부터 명당이라고 그래요. 이왕 같이 살자고 합시다. 외로운데 너구리라도 찾아오고 하면 좀 좋아요?” 
 꼭 이렇다하게 기분이 나쁠 것도 없어서 그렇게 웃고 말았는데 내 이야기를 그때 마침 아래 마을 사는 아주머니가 마당에서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요?” 
  “그 너구...너구리가 저희 집....자...자기네 닭을 일곱 마...마리나 잡아먹었다는 만요.”
  내가 같이 살자고 한 너구리가 자기네 닭은 잡아갔으니 그 닭 값을 물어내야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닭 값 받으려면 그쪽에서 재판을 걸어야지요. 그런데 글쎄 너구리가 참고인으로 재판정에 나올지 모르겠네.” 
  그렇게 웃고 지난 적이 있었는데 조금 전 꿈속에서 장(張)씨는 그 너구리가 또 아주머니네 닭 세 마리를 더 잡아먹었다는 거였다. 
  나는 일어나 앉아 빗물에 씻긴 자귀나무 꽃에 날아드는 ‘긴꼬리제비나비’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비가 쏟아질 때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비가 그치자마자 나타났을까. 다섯 마리, 여섯 마리.... 일곱 마리나 되는 검은 색의 나비들이 빨갛게 공작벼슬처럼 피어있는 자귀나무 꽃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자귀나무 뒤편으로 지난 해 심은 노각나무, 산딸나무, 신나무, 산벚나무들 역시 비에 젖어 더없이 청량해 보였다. 
 그 나무 들 사이 어디에 섞여 있다가 슬그머니 장씨가 고개를 내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벌렁 뒤로 넘어져 배를 내놓던 누렁이는 또 어디로 갔을까. 눈가에 자글자글한 작은 주름을 지으면서 웃던 만월 스님은 또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누렁이와 만월 스님, 장씨까지도 다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환영이었을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집 주위에 심어진 나무들, 여물어가는 콩밭, 이제 꽃이 피어버린 상추와 아욱 들 사이에 스며들 듯 장씨와 만월 스님과 누렁이가 함께하고 있다는 그 느낌만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들은 이 골짜기 어디에 안개처럼 그렇게 스며들어 잠시 쉬고 있다는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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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yookh    
2009-04-03    
12:30:04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하늘을 색칠하라'당선으로 데뷔.
장편소설 '만적'(제1회 만우 박영준 문학상 수상), '내 사랑 풍장'(제17회 pen 문학상 수상), 소설집 '여자에 관한 몇 가지 이설, 혹은 편견'(제24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겨울에 내리는 비'.;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새를 위하여'등 다수. 현재 목포대 국문과 명예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ID : 관리자    
2009-04-03    
20:02:07    
유금호 선생님, 작품 감상 잘 하였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작품을 자주 감상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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