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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노래-12[박찬현]
2009-03-25 23: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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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373
추천:89

 

12.햇살 출타 중

봄날 햇살은 투명하고 고왔다.

대지 속에서 잠든 생명들을 다독여 깨우는 햇살이다.

영미는 여고를 졸업하고 꿈에 부푼 햇살처럼 대학에 진학 시험을 쳤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학에 필기시험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정작 면접에서 교수들은 장애자라는 이유로 대학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반도 위에 있는 구름은 저가 내리고 싶은 곳에만 비를 뿌렸다.

교육계가 망원경을 거꾸로 놓고 우주를 관찰하고 있었다.

역사는 퇴행을 하고 사회는 흑백논리에만 안주하고 위선과 가증으로 겹겹의 옷을 입고 교육자라 칭했다.

자연은 언제나 투명하게 그 자리 그대로인데 자연의 수혜를 입고 살아가는 생명체가 서로에게 우스운 광대모습을 하고 허공에서 허우적였다.

영미는 재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본교 양호실에서 근무했다.

 

 

방학이 왔다.

매미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목이 쉬도록 하늘을 향해 울어 대는 뜨거운 날 집으로 내려 왔다.

청운상회가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공장에서 생산되어 나오는 기성품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농사일에 바쁜 아낙네들은 더 이상 재봉틀에 매달려 가족들의 옷을 만들어 입히지 않아도 되었다.

청운상회의 포목들은 긴 잠 속으로 들어갔다.

파리를 날리는 일이 예사로운 날들이 되고 정치 일로 찾아오는 발걸음도 끊겨 갔다.

새 정치에 새로운 운동권자들이 대거 나섰기 때문이다.

전 여사는 누워서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무의미한 시간들이 그녀의 공간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 할 일 없는 시간들 사이로 강한 빛 한 줄기, 전 여사의 뇌리를 비추었다. 펄럭이는 시네라마가 되어......,

천장에는 때 아닌 김형욱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처음에는 흑백으로 보이던 김형욱의 얼굴이 서서히 천연색으로 변화 되어 갔다.

전 여사의 공간은 온통 스크린들로 둘러 쳐지고 있다.

그런 날들이 길어지자 천장과 벽에도 심지어 가끔 옆자리에도 김형욱이 웃음을 흘리며 돌아다닌다. 아예, 김형욱은 전 여사의 스크린에서 탈출 해 밖으로 나와 성큼 성큼 나돌아 다닌다. 전 여사를 배회하며......,

 

 

영미가 잠에서 깨어 난 아침

분명 옆자리이거나 부엌에 있어야 할 전 여사가 없다.

주변을 뒤지고 옆집과 홍희네 집에도 물어 보고 갈만 한 곳을 수소문 해 봐도 다녀 간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해가 저물고 밤이 왔다. 길었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전 여사는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았다.

영미는 일단 경찰서에 연락을 취했다.

집에서 기다려 보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사 나흘 뒤 밤이 마을을 덮고 곤히 잘 때 전 여사는 집으로 들어 왔다.

맨발에 옷은 더럽고 꼬질꼬질하다.

그녀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 만큼의 고단함으로 깊은 잠 속에 빠져 들었다.

영미는 전 여사를 깨워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고 싶어도 너무 고단하게 잠을 자기에 일어나면 가부를 묻기로 하고 그냥 지켜보았다.

전 여사를 위해 상을 차렸다.

그리고 밤이 왔다. 영미도 사나흘 전 여사를 찾느라 기진해 깊이 잠이 들었다.

아침이 왔다. 옆 자리에 전 여사는 일어 나 밖으로 나갔는지 없다.

밥상의 끼니를 깨끗하게 비웠다.

주변을 찾았다. 옆집에 갔다. 갈만 한 곳을 수소문 했다.

없다. 그림자도......,

도대체 이제 것 하지 않던 일들이 일어났다.

옷장을 뒤져 새 옷으로 입고 나갔다.

갈 만 한 곳을 모두 찾아보았다. 없다.

영미는 속이 탔다.

그래도 경찰에 연락을 했다. 기다려 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사나흘이 되어서 돌아 왔다.

낯선 농부의 아낙네 옷으로 갈아입고 고무신을 끌면서 들어 왔다.

이번엔 영미가 잠을 자려던 전 여사를 붙들고 다그쳤다.

그냥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 이 아줌마 왜 이래? 네 이년!”

전 여사의 눈은 매서웠다.

“네년이 서방하고 잤냐?”

갑자기 영미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영미는 갑자기 발생한 일이라 방어고 무엇이고 할 여유조차 없었다.

간신히 전 여사의 손아귀에서 영미의 산발한 머리채를 빼 내었다.

전 여사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니 웃었다.

그리고 옆으로 픽 쓰러져 누워 잠이 들었다.

발을 살펴보니 아주 오래 걸어 다닌 흔적이 선연했다.

잠자는 전 여사의 더러워진 발을 닦기 위해 대야에 물을 담아 와서 씻어주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잠도 자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슥한 밤이 되자 전 여사는 부스스 잠에서 깨어 상에 차려진 밥을 걸신스럽게 입으로 퍼 넣었다.

옷을 찾기 위해 일어나려다 영미를 보더니 “왜 그러냐?”며 물어 왔다.

“또 어디에 갈려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어딜 간다고 그러냐?”

전 여사는 태연하게 내 뱉었다. 그러면서 장롱 쪽으로 다가갔다.

영미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전 여사도 지지 않았다.

막고 다가가고 그러다가 아침이 왔다.

전 여사는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꽁초를 버리고 돌아누웠다. 말이 없다 자고 있는지,

영미는 그래도 꿈적도 않고 방안을 수비하듯 지키고 앉아있다.

알 수 없는 느낌이 영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밤의 형편은 끝없이 길었다.

랜턴을 들고 밤을 꼬박 새던 그 때보다 더욱 힘들었다.

이틀을 꼬박 잠들지 못하고 신경전을 벌인 탓에 영미는 앉은 상태로 깜박 졸았다.

긴 잠을 잔 듯 했다.

순간 ‘아차,’하며 눈을 떴다.

없다. 방이 텅 비었다.

전 여사는 옷을 갈아입고 바람이 되어 나가 버렸다.

이제는 이집 저집 다닐 일도 아니었다.

그사이 여러 정황을 훑어 생각을 해보니 옅은 짐작이 다가 왔다.

영미는 우선 홍희네 집에 들러서 홍희의 부모에게 상의를 나눈 뒤 홍희와 함께 완행버스를 탔다. 손님이 원하는 곳에 잠시 정차 해 세워주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이다.

전 여사가 가고 있을 목적지와 행로를 탔다.

구불구불한 신작로 길을 달리다 8KM에서 내렸다.

신작로 먼지는 두 여인들에게 허연 흙먼지를 살포하고 떠나갔다.

그 주변 일대의 주민들을 만나기를 바랐다.

다행히 밭에서 잡풀을 뽑고 있던 아낙네를 만났다.

그 여인은 두 여인의 일행을 알아 봤다.

청운상회 딸과 약국집 딸이란 걸 근자에 모르는 이는 드물다.

“저희 어머니를 혹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응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해거름 녘에 저기 신작로 고개를 넘어 가는 여사를 봤지?”

“어딜 가시는데 더운 여름에 버스도 타지 않고 그렇게 걸어서 가시나 했네,”

영미의 짐작이 맞았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영미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 그 아낙네가 손가락으로 가르치던 신작로 언덕 아래로 걸어 나갔다. 버스가 설만 한 곳에서 한참을 다시 기다렸다.

저 멀리서 완행버스가 흙먼지를 뿌옇게 신작로를 덮으며 터덜터덜 달려오고 있었다.

손을 들어 차를 멈추고 그녀들은 다시 버스에 탔다.

이웃 도시로 이어지는 길이였다. 버스 대합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고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 앞에는 작은 파출소가 있었다.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 영미는 복장과 생김새를 읊어주며 전 여사의 인상착의를 발견하면 연락을 취해달라며 청운상회 전화와 홍희네 집 전화번호를 남겨두고 나왔다.

그 도시에 그다지 갈만한 곳은 없다. 하지만 소소한 생활 용품을 도매로 가져오던 상회로 가서 그녀가 들리면 연락을 해 달라고 간청을 하고 버스 역으로 돌아 왔다.

영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며 맺혔다.

둘이서 목마름을 축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영미의 머리는 복잡했다.

꼭 가서 확인 해 보고 싶으나 자신을 버린 아버지란 작자의 집을 자기 발로는 살아 생전에 가지 않으려던 곳이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 산 아래로 돌아누우며 사라지고 있었다.

조그마하게 남았던 태양의 그림자가 영 꼬리를 감추자 저녁은 금 새 왔다.

대지는 어둠에 덮여 꿈쩍도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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