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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펀소설>미술관 앞 포장마차 1
2008-02-27 00:57:13
sionsira

조회:1914
추천:175

 

<미술관 앞 포장마차>

 

최 윤 애

사당역 6번 출구로 나가면 서울시립미술관이 나온다.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던 여름날 미술관 앞 보도블록 위에 허름한 포장마차가 오도카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낡은 천을 대충 이어 만든 것처럼 바람이 불면 천막이 맥없이 퍼덕거렸다.

키가 난쟁이를 조금 면한 듯싶은 왜소한 사장은 손바닥만 한 텔레비전에 푹 빠져 비가 쏟아지는지, 쏟아진 빗줄기에 손님들의 발등이 젖는지 마는지, 안주가 비바람에 싸늘하게 식던지 말든지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낮 동안 태양열에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에서 고무 탄내가 스멀스멀 올라오다 빗줄기에 사정없이 얻어맞더니 냄새마저 서서히 사라진다.

모가지가 달아난 청동 남자의 몸뚱어리 여럿이 일렬로 줄을 서서 포장마차 뒤에서 나지도 않는 폼을 잡고 있다.

어느 여류 화가의 작품전시를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이 떨어질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펄럭거려 한밤중에 음산한 음향효과를 가중시킨다.

지나가는 차량들은 인도로 물을 얼마나 많이 넓게 보낼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조심성 없이 속력을 내고 달린다.

빗줄기에 발등이 젖는 건 고사하고 지나치는 차량이 튕기는 물에 옷까지 젖는데도 난쟁이 사장은 별 관심이 없는지 텔레비전에 흠뻑 빠져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않는다.

낡은 포장마차 안에는 닭똥집 한 접시 시켜놓고 소주병을 빨고 있는 손님 한 팀뿐이다.

시곗바늘은 10을 향해 째깍째깍 달려간다.

아득한 공중엔 까만 어둠이 머물고, 가로등 불빛을 의존해 세워진 포장마차 안 우련한 불빛 속에는 두 청춘 남녀가 머물고 있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비친 빗줄기가 선명하게 몸체를 드러낸다.

강렬하게 내리쏟는 경쾌한 빗소리 때문에 발등이 젖고 웃옷이 젖어도 전혀 불쾌하지 않다.

바다를 그리워하게 하는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양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고 앉은 여인의 눈가도 빗물이 튄 듯 흠뻑 젖어 있다.

여인과 마주보고 있는 남자는 소주잔을 한 입에 시원스럽게 털어 마시며 안주를 집어먹는다.

두 사람에게선 아픔이 느껴진다.

애절하면서도 강한 아픔. 지남철처럼 끈끈한 끌림을 느끼면서도 애써 떼어내려는 슬픈 노력이 느껴진다.

난쟁이 주인의 얼굴은 텔레비전 속에 있으나 양쪽 귀는 그들의 입술을 향해 활짝 열려있었다. 남자가 술기운을 이용해 여인에게 용기를 낸다.

“당신 그만 헤어져라.”

“……….”

여인은 단번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속에서 우물우물 말 알맹이를 돌리다 살며시 뱉어낸다.

“실은……, 나도 그러고 싶어.”

여인의 대답이 떨어지자 남자는 더욱 용기를 내어 재우친다.

“어차피 잘못된 만남이었잖아. 하루라도 빨리 그 굴레를 벗어나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건데. 너의 행복도 생각해야지. 요즘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남자는 속이 상한지 여인이 따라주기 무섭게 소주잔을 비운다.

여인이 안주를 집어 남자의 입에 넣어준다.

남자는 가슴이 아파 죽을 지경이라는 듯 꾸역꾸역 안주 속에 분노를 섞어 우적우적 씹어 삼킨다.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스러움과 바로 코앞에 두고도 품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교차하여 뒤범벅이 된 감정을 겨우겨우 안추르느라 눈에 핏대까지 섰다.

여인은 원피스를 입고 하얀색 카디건을 걸쳤음에도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남자가 입고 있던 양복저고리를 벗어 여인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옷에서 남자의 냄새가 났다. 은은한 스킨 냄새와 새물내가 섞여 여인의 코를 자극했다.

어쩌면 그날 밤 그 일만 없었어도 평생을 맡고 살았을 냄새였으리. 여인이 직접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와 와이셔츠 위에 입혀주고 먼지를 털어주는 시늉을 하면서 단단한 어깨를 한 번 더 쓰다듬으며 남자를 느꼈으리.

그러나 지나간 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다.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 술잔을 기울일 수는 있어도, 술잔을 기울이며 오래전 추억을 들추어내며 안주삼아 되씹을 수는 있어도, 십년 전 그날 밤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여인이 안타까움을 못 참고 울음을 토해낸다.

“그날 당신이 조금만 더 일찍 왔어도 난, 난 …….”

남자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다.

한 여름 밤의 적막을 깨는 장맛비는 더욱 거세게 쏟아졌다.

여인의 울음이 빗소리에 묻혀 약하게 들린 까닭에 난쟁이 주인이 눈치를 못 첸 듯 여전히 텔레비전에 빠져있다. 난쟁이 주인의 얼굴이 TV 화면이 바뀔 때마다 울긋불긋 변했다.

남자가 등받이가 없는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 여인 곁으로 바투 다가가 앉는다.

여인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삼킬 때 남자는 자신의 어깨를 내밀며 여인의 등을 덮두들긴다.

전화벨 소리가 핸드백 속에서 가늘게 들린다.

여인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번 훑어내고는 핸드백을 열고 자주색 핸드폰을 귀로 가져간다.

“여보세요?”

남자가 여인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엿듣는다.

“너 지금 몇 신 줄 알아!”

호통 치는 사내의 목소리가 우레와 같이 울려 전화기 밖으로 사정없이 삐져나왔다.

“예. 지금 들어갈게요.”

“빨리 들어와!”

“예.”

전화를 끊은 여인이 심하게 몸을 떨었다. 남자가 손으로 어깨를 감싸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공포로 질린 여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핸드폰을 보니 디지털시계가 11시를 알렸다.

남자가 계산을 한다. 그때서야 난쟁이 사장이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잔돈을 거슬러 준다.

남자는 술에 취해 눈동자가 벌겋고, 난쟁이 사장은 텔레비전을 지나치게 보는 바람에 눈이 벌겋다. 모르는 사람이 두 사람을 놓고 보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주 서너 병은 마셨거니 할 판이었다.

여인의 낯빛이 두려움과 공포로 창백해졌다.

어깨에 걸치고 있던 양복저고리를 벗어 남자에게 돌려주고 옷매무새를 바르게 고치고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빗줄기는 여전히 샌들을 신은 여인의 발등을 촉촉하게 적시었다.

“오늘 즐거웠어. 그리고 고마워.”

“순애야. 내가 아까 했던 말 빈말 아냐. 잘 생각해봐.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영민 씨, 그러지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설령 호태 씨한테 맞아 죽는다 해도 그건 내 운명이야. 가볼게.”

“기다려. 데려다 줄게.”

대리기사를 전화로 불러놓고 등기소 앞에 주차해 둔 자동차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간다.

그들 뒤로 난쟁이 사장이 짧은 다리를 바장이며 천막을 거두는 모습이 우련한 가로등 불빛에 보인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마자 천막을 거두는 손길이 바빠 보였다.

여인이 슬쩍 고개를 돌려 미술관 앞 포장마차를 본다. 천막이 걷히고 뼈대만 앙상한 모습이 볼썽사납게 보여 얼른 고개를 돌린다. 마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 듯.

우산을 받쳐 든 손을 남자가 포개어 잡았다. 우산 두 개가 하나로 포개어졌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대며 걷던 취객이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걷는다.

남자가 인상을 쓰며 노려보자 황급히 허정대며 지나쳐갔다.

“세상이 이렇게 혼잡하니 어떻게 혼자 보낼 수 있단 말이요.”

남자가 차 문을 열고 여인을 태운 후 옆 자리에 다가가 앉는다.

차 안 공기는 눅눅했다.

대리를 기다리는 동안 남자가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틀어 차안에 잔뜩 낀 습기를 없앴다.

아늑함이 느껴졌다.

단조로우면서도 깔끔한 남자의 성격이 그대로 차 안에 묻어났다.

남자가 여인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뜨거웠다. 손바닥도 뜨겁고 숨을 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날숨도 뜨거웠다.

여인의 젖은 몸이 전류에 감전이 된 듯 저려왔다.

차라리 22,900볼트 특 고압에 감전이라도 되어 더 이상 아파할 가슴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다 타버렸으면 나을 것 같았다.

몸은 엉뚱한 사람에게 있고 마음은 진짜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있는 여인.

하룻밤의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인해 어긋나버린 인연을 가슴 아파하며 십년을 참고 보냈다.

남자는 남자대로 지키지 못한 무책임감에 방황하였고, 근래에 마음을 잡고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여인을 다시 만났다.

불기이회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아니, 더 이상 여인의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면 자기가 사랑하던 여인을 붙잡고 놓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여인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본다.

여인의 눈동자가 가로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입술은 더욱 붉게 타올랐다. 숨소리가 빗소리처럼 강해졌다.

남자의 입술이 여인의 입술에 포개어졌다. 술 냄새, 단 냄새 혼합된 냄새가 났다.

남자가 강하게 혀를 밀어 넣으며 가슴위로 손이 올라갔다.

여인이 남자의 몸을 밀어냈다.

“영민 씨. 이러지마!”

“순애야. 내 마음 속엔 언제나 너 하나뿐이었어. 널 갖고 싶어.”

여인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남자는 몸을 반듯하게 고쳐 앉으며 반대쪽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색찬란한 모텔 네온사인 불빛이 연신 유혹의 손짓을 하고 있었다.

마음은 여인의 손목을 잡아끌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입술을 깨물며 참아내었다.

검은 우산을 쓰고 나타난 대리기사가 창문을 두드렸다.

눅눅한 물 냄새가 대리기사 몸에 묻어서 차내에 퍼진다. 복잡하게 엉키던 머릿속이 순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목동으로 가주세요.”

“영민 씨 집하고는 정 반대편이지?”

“응. 하지만 조만간에 한 방향이 되도록 해보자.”

빗줄기가 쏟아지는 한강을 바라보며 어둠속을 뚫고 달렸다.

여인을 철 대문 앞에 내려주고 남자는 돌아갔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긴 채.

여인은 조심스럽게 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밤새 이웃의 항거까지 들어가며 세간이 부서져 마당에 내동댕이쳐지고, 여인의 팔과 등, 어깨와 눈 주변이 가로등 불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비가 그치고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한바탕 난동을 부리던 사내는 코를 골며 잠들어 있고, 여인은 부서진 세간을 쓸어 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아냈다.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었다. 속내를 모르는 이웃 사람들은 맷정이 고운정보다 더 무섭다는 둥 여인의 고통을 모르는 소리만 해댔다.

여인은 무릎깍지를 끼고 앉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벗어나야해. 벗어나야해.

몸을 웅크린 채로 잠이 들었다. 온 몸이 욱신욱신 아팠다.

마음은 더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여인은 날마다 새가 되는 꿈을 꾼다. 절대로 새장 속에 갇히지 않으리. 이왕 새가 되려면 독수리가 되어 아무도 깔보지 못하는 존재가 되리.

새가 되어 마음껏 창공을 날아다니고 싶은 열망을 꿈속에서나 이룬다.

십년 동안 여인의 성격은 많이 소심해졌다. 속으로 감출 줄만 알았지 드러내놓고 표현 할 줄 모르게 되었다. 아파도 안 아픈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 그리워도 안 그리운 척, 표정을 잃고 감정을 잃어가며 십년을 보냈다.

아이는 없었다. 사내에게 맞아 처음 유산이 되었을 때 몰래 의사선생님께 부탁하여 수술을 받았었다. 집에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냐고 자꾸 물어온다.

사내는 샐녘에 술이 깨고 나면 여인을 강제로 안는다.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귓불을 핥고 지나가면 온 몸에 소름돌기가 돋는다. 피멍이든 육체를 탐닉하는 사내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허물이 벗겨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순애야. 난 널 사랑하는데 넌 왜 날 아직도 싫어하는 거야. 어젠 많이 아팠지? 미안해. 사랑해. 널 사랑해. 넌 특별한 여자야. 안으면 안을수록 날 미치게 만든다니까.”

여인을 안을 때마다 버릇처럼 토하는 말 찌꺼기였다. 알맹이가 빠진 말 찌꺼기.

차라리 아무런 말없이 안으면 나으련만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러지마! 호태 씨! 싫어.”

처음으로 반항을 하며 싫다고 말했다.

“뭐? 싫어?! 정말 내가 싫어?!”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여인을 노려보다 테석테석한 손바닥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악-!”

사내는 미친개 같이 달려들었다가 밖으로 나갔다.

침실 군데군데 흔적이 남았다.

여인은 그런 주변을 보면 자신의 추레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 느껴져 말끔하게 청소를 한다.

그리곤 앉아 일기를 쓴다. 폭발하기 직전의 감정을 쏟아내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헤어졌을 때, 숱한 감정의 변화와 생활의 변화 등 하고 싶고, 느끼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일기로 기록했다. 그런 후 자물쇠로 잠가 놓았다.

그 속엔 십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기를 쓰고 난 후에야 편안히 누워 잠을 청한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방에서 영민을 생각하면서.

영민을 생각하면 그날이 떠오른다.

십년 전 그때도 한여름이었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한나절을 지나 거리마다 어둠이 내리깔릴 때 순애는 영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중전화 부스가 있는 공원 가로등 밑에서.

순애는 영민이 사준 버터플라이 원피스를 입고 하얀 샌들을 신고 있었다.

공원 앞 공중전화부스에서 한 사내가 어딘가 전화를 걸면서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댔다.

순애는 힐긋 곁눈질로 바라보다 이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사내의 얼굴에 듬성듬성하게 난 칼자국 때문이었다. 팔뚝에는 가느다란 뱀이 기어 올라가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

순애는 벤치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길 생각이었다. 살다보면 피하는 게 좋을 때도, 좋을 사람도 있는 것이다.

순애가 일어나는 순간 검은 물체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 아가씨! 남의 얼굴을 훔쳐봤으면 값을 치러야 할 거 아닌가!”

“저, 아저씨 얼굴 안 봤어요.”

사내는 키와 몸집이 무척 컸다. 코스모스 같이 여린 순애의 몸피 세 배는 더 넘어보였다.

순애는 종종걸음으로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것이 사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이후 순애는 늘 검은 그림자를 느끼며 살았다. 학교 수업이 마친 후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영민 씨와 데이트를 즐길 때에도 한쪽에서는 늘 검은 그림자가 느껴졌다.

누군가가 자꾸 훔쳐보는 듯한 불쾌한 느낌.

순애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영민을 만났다. 소공자와 소공녀를 닮은 분위기에 이끌려 서로 사귀게 되었다. 대화가 잘 통했고, 취미나 추구하는 삶의 성향이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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