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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 7월호 시월평(2010) / 최규철
2010-09-25 15:19:11
chkc320

조회:1828
추천:127

                               조선문학 6월호 시월평(2010)

                                                                         최규철(시인, 문학평론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매달 300여종의 문예지를 통해서 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양산되는 시 중에서 시의 문학성을 인정받을 만한 시다운 시가 몇 편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적어도 시인은 등단코스를 마치기 전에 시론을 통해서 ‘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시작법을 통해서 ‘시를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쯤은 익히고 등단하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시인을 사칭한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일일 것이다. 시는 시인의 인격의 산물이라 간주할 때 시인의 생활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일치감이 시의 진실성을 드러내게 한다. 그래서 H. 밀러는『시는 이중의 의미에서 육화된 꿈이다.』라 했다.

이런 진실한 시인의 시작활동이 이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풍부한 창조적 세계로 확대해 가게 하는 시대적 사명을 충족케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보통사람들의 눈에 비친 현상세계에서 보다 새롭고 심오한 창조적인 본질세계로 이끌어감으로써 세상을 풍요롭게 해야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많은 시집과 문예지를 통해서 쏟아져 나온 시가 이런 창조적 기능이 실종된, 지극히 평범한 상식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과감한 시의 혁명이 요구되는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시인은 독자보다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사명을 다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자신의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현상세계에서 안주하는 독자를 뛰어넘어 지적 감동을 통한 본질에의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상세계는 한갓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성(nous)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육의 눈으로만 보는 것은 일종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처럼 시인은 시를 통해서 지적인 놀라움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닌 창작활동에 전신 투구해야 할 줄 믿는다.

 지난달에 발표된 시 가운데 이런 종류의 시가 더러 많이 눈에 띄었지만 그 중에서 몇 편만을 골라 여기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정오에 그림자는 한 치 길이로 서 있다

천중절을 몰아 아직도 가고 있는 태양의

바퀴소리는 지상에도 잘 들리고

세 발 달린 금까마귀 날개가 덮인다.

녹음은 이미 먼 바다의 해일이 되어

하늘과 땅 가릴 것 없이 넘쳐나고

올 가을 불타는 산야를 예비하는

맛이 고운 단풍 김장하는 날

태양의 천일염 고루 쳐서 짙푸른 잎 절이고

태양의 젓갈 태양의 양념 잘 버무려

황홀하고 풍성한 가을의 진수성찬을 위한

잘 숙성되고 발효된 만산홍엽의 갈무리

조금은 부산히 단풍 김장하는 날

잎새마다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다.

-김석규의 『하지제』 전문-

 

이 시는 일 년 중 하루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제와 단오절(천중절) 절기에 금오산에서 쓴 시인 듯싶다. 특히 금오산은 태양 속에 서식한다는 세 발 금까마귀가 금빛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한다 해서 부친 이름이다. 하루해가 길고 또 강열한 태양이 비추는 하지에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태양에게 제사를 드리는 하지제의 전통이 있다. 이 날은 타오르는 태양이 하지점을 통과하는 계절로서 북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불의 축제(祝火祭)로 이어진다.

  여기서 시인은 단오와 하지의 긴 하루를 지나가는 태양의 속도감과 빛의 찬란한 광경을 『천중절을 몰아 아직도 가고 있는 태양의 / 바퀴소리는 지상에도 잘 들리고 / 세 발 달린 금까마귀 날개가 덮인다.』라는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태양과 금오산, 천상과 지상을 잇는 바퀴소리의 신비를 체감하게 한다. 태양에서는 금까마귀의 금빛 날개로 덮이고 금오산에서는 녹음으로 덮여 해일처럼 넘치는 이미지의 조화를 6행에서는 『하늘과 땅 가릴 것 없이 넘쳐나고』라 했다. 태양의 금까마귀와 금빛 금오산의 웅자, 이런 아미지의 병치묘사는 ‘하지’라고 하는 의도적인 매개어를 통해서 금까마귀와 금오산의 정교한 조화를 이루게 한다. 특히 하지에 대한 지적 경험으로 창출된 금오산의 유래가 신선한 감동을 준다.

  7-14행에서는 금오산의 가을 풍경을 미리 마음속에 그리면서 쓴 부분인데 7행의 『올 가을 불타는 산야를 예비하는』에서도 그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여기서는 태양으로 간질하고 고루고루 양념 질한 후, 그것을 숙성시키고 발효한 만산홍 단풍 김치의 가을 잔치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태양이 창출해내는 대자연의 창조적인 신비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시라 할 수 있다.

 

 

꽃들은 피는데 나는 왜 기다림이

가슴에 차 오르는가 모르겠네

향기가 떠도는 날이라 모든 게

반가운 얼굴로 가득 차 오는데

 

기다림은 이유도 없이 커지는

이것이 바람 탓이라면 그대는

내 앞에서 우뚝한 그림자 일 텐데

 

꽃들은 무슨 일로 성급함이 심해

자꾸 키를 높이어 방해로 아우성인가

 

봄이라서 서성이는 내 그림자조차

이젠 어디 있는지 몰라 찾을 길 없는

그대의 모습 따라 서성임도

길이 어딘지 정말 모르겠네

-채수영『꽃들은 피는데전문-

 

서정시의 경향을 띠고 있는 시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서정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꽃들, 향기. 반가운 얼굴, 바람, 그림자, 아우성 등의 미적 언어기능들이 기다림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우뚝한 그림자’를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색깔로 한데 어우러져 잠재된 시적 배색효과를 누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감각적인 언어의 복합성과 배열구도가 이 시의 구상화 효과를 한 층 돋보이게 해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현대인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적인 뉘앙스를 저변에 깐 서정시라 하겠다.

  꽃이 피고 향기가 만발한 분위기 속에서 반가운 얼굴로 떠오르는 그 수다한 얼굴들, 그 중에서 ‘우뚝한 그림자’만이 기다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직 봄바람의 탓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시의 10-13행부터서는‘우뚝한 그림자’인 그대 모습에 대한 ‘기다림’이라고 하는 정적인 자리에서 이제는 동적인 ‘서성임’으로 전환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서성임’도 어디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는 그대 모습(우뚝한 그림자)을 따라 서성인다고 하는, 그것은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자는 ‘모르겠네’(2행),‘몰라’(11행), ’모르겠네’(13행)를 되뇌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총체적인 내용은 정체 없는 환영과 환영의 ‘기다림’과 ‘서성임’아라고 하는 사랑의 미학적인 의미가 꽃과 향기의 봄기운을 따라 무르익어가는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실눈이 꼼지락거릴 때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파닥이던 나비의 날개

울음소리 끓는 세상 속으로 풍덩 떨어져 나온 새벽 내 눈동자 속 눈물방울에 둥지를 틀고 파닥이던 나비의 날개

  내가 처음 물고 빨은 젖이 평생 허겁지겁 구걸해야 할 밥이라는 것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이 신고 살아야할 신발이 나비 날개의 노예라 는 것을 알았네

 

가시밭길 어둠의 바다로 끌고 가는 황홀한 나비의 날개가 내 길의 주인이었네

 

도둑질하라고 살인하라고 간음하라고 하루에도 스무 번은 더 배신하라고 환하게 손짓하는 어둠의 날개

 

오늘 하루도 내가 가는 길을 어둡게 술먹이는 나비야 나비야, 내 길을 놓아다오

-김순일의 『나비야길 내 길을 놓아다오』 전문-

 

마치 이상의 『날개』에서 보여준 하나의 죄의식에서 오는 자기해체적인 자아분열을 표출해낸 시라 하겠다. 나를 주도하는 나비의 날개는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내 길’을 가로막고 『도둑질하라고 살인하라고 간음하라고 하루에도 스무 번은 더 배신하라고』어둠의 날개로 손짓하면서 부단히 죄짓기를 종용한다. 여기서 나비의 날개가 검은 날개로 바뀜으로써 시사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2연에서는 고고의 첫울음소리로 눈물 많은 죄의 세상에 태어나 첫 번째로 눈물방울 속에 둥지를 튼 나비의 날개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원죄의 표상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는 2연에서 태어나자마자 눈망울 속으로 들어온 원죄의 나비날개가 3연의 『내가 처음 물고 빨은 젖이 평생 허겁지겁 구걸해야 할 밥이라는 것 /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이 신고 살아야할 신발이 나비 날개의 노예라는 것을 알았네』에서는 의식주 문제로 야기되는 노예적인 삶으로 발전되었고, 나아가 4연에서는『가시밭길 어둠의 바다로 끌고 가는』단계를 거쳐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는 죄의 길로 나가는, 그런 진행과정을 따라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점층적 시수사법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아가미를 열었다 닫는 넙치는

물결소리가 들리는 바다 쪽으로

배밀이를 하고 있다

 

회칼이 넙치 쪽으로 가고 았다

눈 끔벅거리던

휴대폰이 가만 숨을 죽인다

식탁 위에서 망설이는 물주전자

앞치마를 두른 그가 물을 들이킨다

 

도마를 이 만치 끌어당긴다

넙치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다

                             -유병근의 『카운트다운』전문-

『시문학』6월호에 발표된 시인데 이 세상의 무자비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한 단면이 도마 위에서 펼쳐진다. 이 시의 전체적인 구도는 4행의 『회칼이 넙치 쪽으로 가고 있다』와 9행의『도마를 이 만치 끌어당긴다.』의 두 행으로 극적인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1-3행은 도마 위에 놓여 회감으로 먹히는, 죽음의 한계상황에서 넙치의 본능적인 생명의 욕구는 물결소리가 나는 구원의 바다를 향해 배밀이를 한다.

  4--8행은 회칼이 육박해 오는 절박한 상황에서 눈을 끔벅거릴 여분의 교감마저 단절된 넙치의 약육(弱肉)을 휴대폰으로 은유한 것과 아가미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넙치의 목마름을 빗대어 주전자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하는 강식자(强食者)의 초조함이 엇비슷하게 대조를 이룬다.

  치켜든 살생의 회칼과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넙치, 이런 약육과 강식의 첨예하게 대치된 긴장의 거리에서, 오늘날 끊임없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생존경쟁의 비정한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계속되고 있는 역학적인 실존의 의미를 더욱 현장감 있게 들어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회화성을 지인 즉물시임과 동시에 의미성을 지닌 관념시의 특성이 잘 어우러진 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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