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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삼촌 1-5 / 키다리
2012-11-19 11:41:39
simsazang

조회:836
추천:81

 

바보 삼촌

심혁창

1. 키다리 삼촌


노라 삼촌은 키가 해바라기보다 더 높고 얼굴도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벙글거립니다. 허리도 가늘고 다리도 길기만 하고 키는 그렇게 큰데 체중이 새털 같아서 군대도 못 가고 직업도 없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바보 소리도 가끔 듣지만 남의 말을 잘 듣고 친절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삼촌을 키다리 바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느 날 키다리 삼촌이 밖에서 들어오며 다른 날보다 밝은 얼굴로 긴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싱글벙글했습니다.

노라는 열두 살이지만 스물두 살 키다리보다 머리가 영리합니다.

“삼촌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응, 응, 히히히.”

“뭔데?”

“나 오늘 부자 되는 법 배웠다.”

“어디서?”

“너 알고 있지? 나 교회에 안 다니는 거.”

“알아.”

“사람들이 나를 키다리 바보라고 놀려서 교회에 가기 싫어서 안 가는데 오늘 교회 문틈에 귀를 대고 목사님이 하는 말을 몰래 들었다.”

“무슨 말인데?”

“목사님이 그랬어. 가난해도 감사, 학벌 없어도 감사, 몸이 약해도 감사, 무슨 일이든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지식도 많아지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된다고 했다.”

“에이, 그런 말은 들으나마나지 뭐.”

“왜?”

“그건 누구든지 다 아는 말이야.”

“다 알면 뭘 해? 실지로 그래야지.”

“삼촌이나 잘 해 봐.”

“알았다. 이제부터 나는 모르는 건 너한테 물어볼 거야. 목사님이 그랬어. 학벌이 낮으면 모르는 것을 아무한테나 부지런히 물어보라는 거야. 그리고 가르쳐 주는 사람한테는 ‘감사합니다.’ 하고 꼭 인사하라고 했다.”

“아무리 해도 삼촌은 안 될 거야. 중학교까지 나와 가지고 아직도 알파벳을 못 다 외우고 한문으로 자기 이름도 못 쓰고, 겨우 한글만 알잖아. 중학교도 의무교육이니까 다녔지 그렇지 않으면 초등학교도 못 나왔을걸.”

“내가 머리 나쁜 건 알아. 그렇지만 네가 가르쳐주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기억할 거야. 뭐든지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알았지?”

“내가 헛고생만 하게 생겼군, 후후후.”

삼촌은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거든. 대개 자기가 아는 말은 나도 아는 줄 생각하고 말을 하는데 난 남이 하는 말 가운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

“어떤 말인데?”

“사람들이 운동하면서 아자아자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이냐?”

노라는 갑자기 말이 막혔습니다. 저도 신나게 운동할 때는 쓰는 말인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하기는 창피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전에서 찾아보았지만 그런 단어는 없었습니다. 이럴 때는 아는 척하고 적당히 둘러댈 수밖에 없습니다. 삼촌이 모처럼 처음 물어보는 것을 모른다고 하면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멋지게 대답했지요.

“삼촌, 그건 가자가자 하는 말이야. 알았지?”

“가자가자! 알았다. 앞으로는 가자가자 하지 않고 아자아자할 게 흐흐흐. 노라야 고맙다, 넌 내 선생님이야. 감사합니다.”

삼촌은 허리까지 푹 숙이고 인사를 했습니다.

‘이크, 큰일 났네.’

2. 오다가 떨어졌다

노라는 아자아자를 가자가자라고 가르쳐 놓고 걱정입니다. 사전에도 없는 말을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바보 같은 삼촌은 그 말을 쓸지도 모릅니다.

 

다음 날 밖에 나갔다 돌아온 삼촌이 노라한테 다가오며 싱글거렸습니다.

“노라야, 또 물어볼 게 있어.”

“또 뭔데?”

“경민이네 가게에 갔더니 온 점원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면서 오다가 떨어졌다! 야호오! 하고 좋아하더라. 누가 오다가 떨어졌는지 모르지만 많이 다쳤을 거 아니냐? 그런데 떨어졌다고 좋아하는 걸 보니 그 사람들 아주 나쁜 사람들 같더라.”

노라는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대답했습니다.

“삼촌, 그 오다라는 말은 발음을 좀 잘못한 거야. 오다가 아니라 오더인데 오더란 말은 명령, 주문, 지시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그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어떤 사람이 사겠다는 주문이 떨어졌다는 말이야.”

삼촌은 하하하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런 거냐? 난 또 누가 떨어졌다는 줄 알고 걱정까지 했지. 또 가르쳐주어서 고맙다. 감사합니다.”

삼촌은 허리까지 꺾으면서 감사합니다는 존경어를 써서 노라를 웃겼습니다. 삼촌 이름은 하동길입니다. 웃을 때는 입속이 다 들여다보이도록 짝 벌리고 활짝 웃지요.

삼촌은 신이 나서 황새걸음으로 껑충껑충 대문을 나갔습니다. 노라 할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저 눔아가 무이 그리 좋아 입이 째지게 웃으며 나가노?”

“아무것도 아니에요. 할아버지.”

“언제는 큰일 있었나? 맹이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웃제.”

이때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시었습니다.

“무슨 야기를 그리 재밌게 한당가?”

“아무 것도 아이다. 동길이가 웃으며 나가서 따라서 안 웃었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서울서 삼십 년을 사셨다는데 아직도 할아버지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고 할머니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십니다.

3. 금붕어 사랑

할아버지는 삼촌을 두고 이런 말씀을 잘 하십니다.

“우짜던동 내 아아가 아인가. 키만 장대같이 크고 속이 대나무맹이 후청후청하이 우이 장가를 가노.”

그러면 할머니는 꼭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 안 허오. 두고 보시오. 저래도 장가는 허벌나게 잘 갈 겅게로.”

삼촌은 직업 없이 놀고먹어도 사람됨이 착하여 미워하기보다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인기 짱입니다.


삼촌은 오래 전부터 어항에다 금붕어와 팥 붕어를 사다 길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르던 어항 속의 금붕어를 들여다보고 말했습니다.

“금순아, 금복아 얼마나 답답하냐? 그 좁은 어항 속에 사는 너희는 감옥살이보다 힘들지? 그렇지? 내가 너희들한테 멋진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 줄게. 기다려 알았지?”

노라가 곁에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삼촌, 금붕어들 놀이터가 어딨어? 어항 속이 바로 금붕어들 놀이터야.”

“넌 몰라. 금순이가 나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니?”

“뭐라고 했는데?”

“오빠 말이 맞아요. 우리는 이 좁은 어항이 싫어요. 물을 빨리 갈아주지 않으면 물에서 나는 냄새가 얼마나 역겨운지 알아요? 우리를 풀어 주세요. 그랬단 말이야.”

“거짓말.”

“그래서 내가 금붕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어딘데?”

“학교 운동장 끝에 공원 있지? 그 공원 구석에 바위로 둘러친 호수가 있잖니? 거기는 물도 맑고 아이들도 오지 않아서 좋아. 거기다 놓아 줄 거야.”

노라는 그럴 듯하다고 생했습니다.

“그 작은 호수 말이잖아? 거기다 이 애들을 데려다주면 정말 행복하게 헤엄도 치고 놀 거야.”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난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이 금붕어들 해방 날이다.”

그렇게 하여 삼촌은 금붕어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싱글벙글 호수로 가서 물에 풀어주며 말했습니다.

“금순아, 금복아 그리고 졸개들아 어항 속에서 고생 많았다. 여기는 호수다. 싸우지 말고 재밌게 살아라.”

금붕어들은 물에 놓아주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물풀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삼촌은 풀어주고 나서 서운한 듯 중얼거렸습니다.

“이 놈들이 인사도 없이 사라지네.”

4. 가뭄

삼촌은 물 묻은 손을 궁둥이에다 쓱쓱 무지르며 서운한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집에는 빈 어항이 입을 딱 벌리고 굶은 얼굴로 삼촌을 바라보았습니다.

“주인들을 내보내고 나니 빈 어항이 보기 싫은데!”

삼촌은 어항을 깨끗이 닦아 방 귀퉁이에 두고 빈 항아리 속을 멍하니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애들이 있을 때가 좋았어……. 좀 서운하기는 하지만 금붕어들은 넓은 물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행복하게 살 거야.”

그리고 다음 날부터 하루에 한 번씩 호수로 갔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물풀 속에 숨은 붕어들은 보이지 않고 심한 가뭄으로 날마다 물만 줄어들었습니다.

가뭄이 너무 심하여 나무도 시들시들하고 풀들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물이 점점 줄어들자 삼촌은 초조한 마음으로 호수를 들여다보며 금붕어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았습니다.

봄에 잠깐 내린 비가 여름이 깊도록 비 한 방울 안 내리고 전국의 큰 저수지가 바닥이 나고 지하수가 나지 않는 마을에서는 물차가 물을 실어 나르게 되었습니다.

삼촌은 어항에다 물을 가득 담아 들고 호수로 갔습니다. 어항 물을 부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금순아. 금복아 어디 숨었냐? 물이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야. 어항에 물 떠왔어.”

삼촌은 물을 부어주지만 바닥이 드러난 호수에 어항 물은 땅도 적시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뒤를 따라다니는 노라를 보고 삼촌이 말했습니다.

“너무 가물어서 큰일 났다. 이랬다가는 호수가 말라 버리겠어. 너도 빌어 봐. 하나님 비 좀 내려 주에요. 금붕어들이 큰일 났어요.”

해가 저물 때야 호수를 떠나 집으로 왔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심한 가뭄으로 작은 웅덩이는 이미 다 말라 바닥이 드러났다고 쩍쩍 갈라진 저수지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전국이 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가뭄이 오늘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삼촌은 금방 종이에다 글씨를 썼습니다.

<이슈>

“노라야, 이슈가 뭐냐? 뭐가 있다는 거야?”

노라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뭐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이슈 그러니까 문제라는 말이야. 뉴스거리가 될 만한 문제라는 거지.”

“그런 것이냐? 너는 아는 것도 많아 좋겠다. 나는 아는 것이 너무 없어. 노라야 고맙습니다.”

“그게 무슨 인사가 그래?”

“잘못 했나? 고고, 아니, 노라 감사합니다.”


5. 금붕어야 이게 뭐야

키다리 삼촌은 다음 날 허리 아래에 차는 노라를 잡아당겨 안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호수에 또 가 보자.”

“호수?”

“금붕어들 잘 있나 보러 가자.”

“또?”

“어항에 물도 담아가지고 가자. 너무 가물어서 그 애들도 목이 많이 마를 거야.”

어항에 물을 가득 채운 삼촌이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쨍쨍 내리 쬐는 해가 머리를 벗겨낼 듯이 따가웠습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도 못 나오고 우쭐우쭐 자란 나무들도 더워서 잎이 축축 늘어졌습니다.

호수에도 바닥이 드러나고 햇볕이 불화로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호수에는 물 한 방울도 없고 수초들이 지친 채 줄기만 세우고 잎새는 처져 있었습니다.

삼촌은 급히 물풀을 헤집고 들어가 붕어를 찾았습니다. 붕어는 없고 새까만 개미들만 줄을 서서 한쪽으로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따라 가던 삼촌이 갑자기 슬픈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아아, 금붕어야 붕어야아아 앙.”

노라도 다가가 보고 놀라 입을 딱 벌렸습니다.

“아! 금붕들아!”

이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귀여운 붕어들이 모두 바짝 마른 호수 바닥에 발랑 누워 앙상한 뼈와 새까만 눈만 남았습니다.

 삼촌이 앙상하게 남은 금붕어 갈비뼈를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중얼거렸습니다.

“미안해, 금붕어들아. 이런 게 아닌데, 이게 뭐야.”

삼촌 속도 모르는 개미들은 금붕어를 뜯어가고 뼈만 남았는데 그것마저 물어가려는 듯 새까맣게 모여들었습니다. 삼촌은 개미들을 이리저리 밀어내며 소리쳤습니다.

“비켜 이놈들아! 날이 이렇게 가물 줄 몰랐어. 금옥아 금복아. 난 너희들한테 더 좋은 세상을 주려고 여기다 풀어 주었는데 이게 뭐야, 이게 뭐냐구! 불쌍한 너희들이 뼈만 남았잖아.”

삼촌은 붕어들의 가느다란 뼈를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노라는 삼촌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금복아, 그렇게 예쁘고 건강하던 네가 이렇게 뼈만 남았잖아. 먹이를 줄 때마다 가장 먼저 입을 벌리고 달려들던 너였는데 예쁜 너는 어디 가고 이게 뭐야. 내가 잘못했어. 좁아도 어항에서 살게 해 주어야 하는 건데 내가 잘못해서 너희들만 죽게 했어.”

뜨거운 해가 호수 바닥에서 열을 확확 일으키는데 삼촌은 그것도 잊은 채 죽은 금붕어들한테 미안하다고 빌며 울었습니다. 누리가 참지 못하고 서둘렀습니다.

“삼촌, 이제 그만 가자!”

“너 먼저 가.”

“여기 이렇고 오래 있으면 열사병 걸려.”

삼촌은 개미들을 쫓아 보내고 나무토막을 집어 호수 바닥을 팠습니다. 그리고 금붕어 뼈들을 모아 그 속에 묻고 꼭꼭 눌러주며 중얼거렸습니다.

“잘들 자라. 잘 있어. 미안해 금옥아 금복아.”

삼촌은 들고 온 어항의 물을 그 위에 부었습니다.

“얼마나 목이 타서 목말라 죽었냐? 물이다, 내가 떠 왔어. 마시고 먹고 잘 있어.”

삼촌은 정말 사람이 죽기나 한 것처럼 정성껏 금붕어들을 묻어주고 일어섰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발길도 무거웠습니다. 삼촌이 참 착한 바보라는 것을  누리는 깊이 느꼈습니다.

“삼촌, 이제 웃는 얼굴로 집에 가자.”

“금붕어 생각하면 이렇게 슬픈데 어떻게 웃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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