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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노래-2[박찬현]
2009-03-10 17: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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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611
추천:101

 

2.실타래의 탈출

집으로 돌아 온 홍희는 아침 조반을 들기 전 세수를 하며 옆집을 향해 귀를 세웠다. 그 집도 아침 조반을 드는 시간인지 식구들의 부산함만 들려 왔다.

밤 새 산발한 여인의 목소리는 귓전에 없었다. 그녀는 늘 말 수가 적었다.

전 여사가 지목한 여자는 홍희가 살고 있는 좌측 집이며 생활 용품을 파는 제일 상회이다. 전 여사는 우측 정육점 집과 좁은 골목을 하나 건너 나란히 횡으로 앉은 집에 포목을 파는 청운 상회이다.

전 여사는 조반을 들고 왔는지 안방 아랫목에 앉아 밤 새 일어난 사건을 피워대는 담배 연기 마냥 뿜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거의 자기 집에서 아침을 먹고 오는 일은 드물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전 여사는 늘 홍희내 집에서 아침을 해결 해 왔다.

“나하고 무슨 원수가 졌 길래 그 모양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오,”

“온 동네 것들을 도둑질 해 가더니 그것이 종당엔 미친 것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귀신처럼 머리는 산발을 하고, 소복은 또 왜 입어?”

“밤에 아무라도 만나면 까무러질 행색을 하고 다니느냐 이 말이야!”

그녀의 발설을 들으며 가족들은 의아 해 했다.

전 여사가 풀어 놓는 제일상회 여자의 행색에 관해서 선뜻 이해가 들지 않은 모양이다.

“이 여자가 고단수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맨발로 싸돌아다니겠느냐 이 말이야,”

“모든 정황으로 보아서 이 여자는 도둑질이 주목적이 아니야,”

“분명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거란 말이지, 안 그렇습니까?”

전 여사의 말을 응대 해주기란 사실 정황이 선뜻 와 닿지 않는 내용이다.

밤을 다스리는 마녀로 변질 된 여인의 행각은 누가 들어도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내용이다. 멀쩡하게 살아가던 여인이 귀신 행세를 한다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설득력이 없는 사항이다.

그 밤에 홍희 역시 눈으로 보았지만, 그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들의 현장을 직접 사람들에게 훤히 드러 내놓지 않은 이상 어느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전 여사는 늘 이점이 못 마땅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흘려버리는 처사에 대하여,

홍희 부모들과 전 여사의 아침 이야기는 길었다.

 

약국 매장 문을 열고 먼지 털이로 약장 구석구석을 털어 내었다.

한 자락 바람이 먼지 털이에서 털려 나는 먼지들의 허연 입자를 쓸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바닥과 의자들을 걸레질을 하고 약국 바닥에는 물 조리개로 살살 흩어 뿌린 뒤 결이 부드러운 빗자루로 깨끗이 훑어 낸다.

그러기 위해 문들을 활짝 열어 두어야 하고, 그리고 다시 네 개의 겹 폭이 된 출입 문 미닫이 들을 제자리로 간격을 맞추어 닫았다.

기둥을 사이로 나머지 세 겹 폭을 마저 닫고 있는 동안, 지난 밤 새 산발을 했던 옆집 여자가 마당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잠시 산발의 잔상이 스쳐가고 등골에서 알 수 없는 한기가 올랐다. 지난밤에 목격한 그녀의 모습이 가시지 않은 충격으로 아직 뇌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라보는 홍희를 그 여자는 아무런 의식도 느끼지 않은 채 마당에 빗자루 자국을 남기며 팍팍 쓸고 있었다. 잔 흙가루만 쓸려서 마당 어귀에 모았다.

맞은 편 마당과 마당 사이에는 비가 내리면 빗물이 골을 내며 시장 통을 세로로 가로질러 양곡 시장을 지나 빨래 터 이기도 한 개천으로 흘러가는 경계선이다.

그 경계선에서 그 여자는 빗자루를 탁탁 털더니 자신이 쓸어 낸 훤해진 마당을 돌아보고는 곧장 상회 안으로 들어 가 버렸다.

 

피부에 얇은 각질을 만들 정도의 싸늘한 바람이 불지만, 그 여자는 다시 밖으로 나와 상회 앞에 생활 용품 몇 가지를 내다 놓았다. 살얼음 앉은 붉은 홍시가 든 상자도 나란히 놓았다.

그런 연후, 상회 안으로 들어 간 여자는 털실 뭉치와 대 바늘이 든 바구니를 들고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서 밖을 가끔 내다보며 재바른 손놀림으로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털실의 일정한 짜임의 코처럼 한 코, 한 코 정확해야 만이 스웨터가 되던 목도리가 되던 완성이 될 것이다.

처음 발단부터 기형으로 태어 난 것일까, 아니면 저 여자의 어디서부터 시작의 코가 잘 못 된 것일까, 그리고 저 여자는 도대체 낮과 밤이 다른 날들의 다른 삶을 짜고 있는 것일까, 그 용도는 무엇이며 왜 전 여사의 집을 한 두 해도 아니고 집요하게 머리를 산발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나도는 것일까, 그래서 궁극에는 무엇을 얻기 위함인가,

저 털실로 그 여자는 집 식솔들의 옷들을 거의 짜 입혔다.

정 사각 격자 유리창이 퍼즐 조각처럼 이어진 너머로 앉아 있는, 그 여자의 실타래 속에 숨어 있는 의혹의 조각이 몇 줌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조각들을 찾아 맞추어 보고 싶은 충동이 마음 바닥에서 회오리처럼 일어났다.

홍희의 굽이치는 의혹 심 같이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 실타래가 그 여자의 손가락 사이로 풀려서 기어오르고 있다.

온갖 의혹을 잔뜩 잉태한 실 뭉치에서 털실은 비밀의 무리들처럼 풀리어 대바늘에서 놀고 있었다.

얌전하게 뜨개질을 하고 있는 그 여자의 모습은 밤의 일상과는 전혀 무관한 여인상을 빚어내었다. 지킬과 하이드의 이중생활처럼,

손님이 그녀의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재빠르게 일어나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며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물품을 팔고 있는 상회의 주인 일 뿐 더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닌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녀에게서 일상 가운데 이상한 그 무엇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점 이었다.

간밤에 머릿속이 번개라도 맞은 양 정신이 아찔했던 괴리의 시간 폭은 잠시 사차원이나 꿈의 공간을 유영했던 기억처럼 남아도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님을 가게 앞 까지 나와 마중을 해주고 제자리로 돌아가 실타래를 고르며 좀 전처럼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여덟 쪽의 미닫이 문 가운데, 한 쪽문을 드나들게 해 둔 옆 쪽 자리에서, 열심히 뜨개질을 하고 있는 여자 쪽 미닫이문이, 여러 개의 쪽 유리가 되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녀를 분할하여서 비추었다.

그 여러 개의 쪽 유리창처럼, 그녀 내면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나누어져 들어 앉아 있는 것을 품어 안고, 쪼개진 한편의 모자이크가 되어 그렇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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