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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노래-1[박찬현]
2009-03-09 18: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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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474
추천:93

 

 

 

1.밤의 춤

 칠흑의 먹물을 양동이로 퍼 부은 밤, 코를 골며 엎어져 잠을 자는 집들의 등을 바람들이 할퀴며 요동을 쳐대는

시간, 격자 유리창이 달린 미닫이 문 너머에 외곽의 문은, 나무로 짠 보호막 칸막이 미닫이 문이다. 그 미닫이

문짝에서 달각 달각 달각 소리를 내며, 알 수 없는 물체가 문짝을 모두 갉아 먹어 대는 듯 했다.

전 여사와 그의 딸 영미, 선미, 그리고 약국집 딸 홍희는 발뒤꿈치를 들고 안방에서 마루 쪽으로 걸어 나갔다.

마루, 바닥에서 전달되어 오는 냉기가 발가락을 타고 종아리 쪽으로 올라왔다.

밤이 오기 전, 상회의 나무 미닫이 문짝 가운데 하나를 반 뼘의 공간을 두고 닫아 두었다. 그리고 안쪽으로

유리 격자 미닫이문이 있고 상회의 실내 안쪽에는 커튼을 쳐 두었다.

달각 달각 달각, 나무문을 긁는지 두들기는지 밤을 할퀴는 바람과 장단을 맞추어 상점 밖 쪽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네 명의 여자는 숨을 죽이며 밤의 장막 속에 드리워진 커튼 까지 와 가만히 바깥쪽의 소리를 예의 주시하며

듣고 있었다.

전 여사가 힘을 주며 들고 있던 군사용 랜턴으로 커튼을 가르듯이 걷으며 상점 밖에서 문짝을 긁는지 두들기고

있는지 모를 대상을 향해 점등 버튼을 꾹 눌렀다.

칠흑의 먹물 바다에 빛은 홍해를 가르듯, 랜턴의 불빛이 격자 유리창을 쏜살 같이 관통해 문밖 물체에 달라붙었다.

그 랜턴은, 베트남전에서 운명의 사자가 어둠 속으로 날렵하게 움직이던 적의 목 줄기를 향해, 뜨겁게 발사 되던 탄알의 빛줄기처럼, 죽음의 눈동자와 흡사했다.

네 명의 여인은 순간 외마디 소리를 내 지를 뻔 했다.

랜턴의 강한 빛을 고스란히 입은 곳에는, 긴 머리를 산발하고 허연 한복을 입은 여자가 금복주 소주 빈병의 주둥이 부분을 들고서, 석고를 부은 듯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여자의 눈동자에서 불이 쏟아져 나오는 줄 알았는데, 랜턴에서 관통한 불빛이 여자의 눈동자 위에 부어져 있었다. 여자는 한 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길 다란 머리채를 획 날리며 소주병을 던져두고 어둠 속으로 바람과 함께 흡입 되어 사라졌다.

상점 안 네 명의 여자들도 랜턴을 끄고 커튼을 내린 후 방안으로 들어갔다.

 

전 여사는 조금 흥분된 기색으로 아리랑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성냥개비로 유황 딱지에 그어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는 산발한 여인의 잔상으로 방안을 혼령처럼 떠 다녔고 그녀의 두 딸들과 홍희는 좀 전의 광경으로 말을 잊고 우두커니 앉아들 있었다.

 

전 여사의 지긋지긋하게도 오래 된 암흑 속에 산발한 여자 이야기는 이미 들어 온 바이다. 그리고 그 여자를 오늘 에서야 홍희는 드디어 두 눈으로 확인 했다.

그동안 동리 사람들은 전 여사가 평소 남을 늘 폄하하지 못해 안달 하는 모습이여서 그렇게 귀 담아 들어 두질 않았다.

어둠 속의 혼령 같은 여자를 단지 전 여사가 좀 더 살을 붙여서 폄하 하는 일상다반사로 여겼던 것이 비수 같은 빛을 관통 해 드러난 이야기는 사실 이였다.

해가 뜨기 전까지 바람은 그 여자의 꼬리를 덮으려는 양 목청을 드높여 ‘우,우,’거리며 동리를 휘 감고 어둠자락으로 밀려갔다.

그리고 붉디붉은 태양 덩어리가 동쪽 하늘로 고개를 내 밀었다. 산발의 혼령들이 춤을 추던 칠흑의 밤을 모두 핥아 먹어 치우며 태양은 훤한 빛으로 지구 반대편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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