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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호호 아줌마 1/2
2009-02-03 16:10:58
sionsira

조회:1777
추천:116

<호호 아줌마1>

 

최 윤 애

 

겨울이 물러갈 무렵 봄꽃을 기다리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인을 보았다.

사람들이 그녀를 부르면 보통사람들의 목청보다 한 옥타브 높은 톤으로 “네~.” 하고 대답을 했다.

“사장님?”

“어~ 예.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 깍두기 더요.”

“네~. 잠시만요. 언니야, 3번 테이블 깍두기 더요.”

주방을 향해 주문을 할 때도 하이소프라노로 목청껏 말소리를 다듬어냈다.

“사장님, 계산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호호호.”

이쑤시개를 치아 사이에 꽂은 중년의 손님이 박하사탕을 손가락으로 집으면서 허허허 웃었다. 그러면서 힐끗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훔쳐본 뒤에 구두를 찾아 신고 무리들과 함께 왜죽왜죽 걸어 나갔다.

“여기 깍두기 더 달라는 거 어떻게 된 거요?!”

참을성이 모자란 손님이 보챌 땐 그녀가 직접 나섰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옛말 하나 틀린 게 없었다.

종업원이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해 흥뚱항뚱 실수를 하면 그녀가 직접 나서서 해결을 했다.

손님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눈치껏 서비스를 챙기기도 했다.

깍두기 접시에 부록처럼 따라온 국수사리 접시를 내놓으며 그녀는 또 방긋 웃었다.

“맛있게 드세요. 국수사리는 서비스예요.”

작은 식당 안을 잰걸음으로 다니면서 주문 받으랴, 계산하랴, 손님 비위맞추랴, 밥 때가 되면 눈 코 뜰 새 없이 그녀는 바빴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못할 정도로.

그러면서도 그녀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설렁탕 국물을 뜨다가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노랫소리를 듣는 듯 마음이 편해졌다. 때론 가라앉았던 기분이 애드벌룬처럼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녀의 첫인상을 말해 보라면 아주 어렸을 때 즐겨보았던 호호아줌마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작은 스푼을 목에 걸고 항상 호호호 웃는 호호아줌마, 투덜투덜 아저씨의 투정도 호호호 쾌활한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재치 있는 아줌마.

동네 개구쟁이들이 어떤 실수를 해도 어쩜, 너무 멋져, 하면서 잔뜩 졸아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도리어 미안할 정도로 어안이 벙벙하게 만드는 속 넓은 호호아줌마.

그러다가도 가끔 남몰래 작아지는 비밀을 간직한 호호아줌마.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느낌이 딱 그랬다. 젊고 아름다운 호호아줌마 같다고.

그녀와 함께 우연히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시설은 깔끔했지만 주인여자가 인색하기가 가자미콧구멍 같은 노래방을 잘못 찾아들어갔다.

그러나 스크린과 무선 마이크 성능하나만은 마음에 드는 그런 지하노래방이었다.

짙은 화장에서 분내를 풍기는 주인 여자가 길쭉하고 좁다란 지하 룸 안으로 우리들을 안내했다.

땅딸막한 키에 통굽구두를 신은 주인여자는 몸에 짝 달라붙는 옷으로 볼륨을 강조하고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앞서 걸었다.

잠시 주인여자의 엉덩이를 감상하던 일행 몇 사람이 입을 가리고 풋풋거리는 걸 얼핏 보았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룸 안으로 그녀와 함께 들어섰다.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캔 맥주와 음료를 따서 마셨다.

나는 그녀의 손에 마이크를 쥐어주었다.

그녀는 명성황후 OST인 ‘나가거든’ 을 첫 곡으로 불렀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노래를 찾느라 책을 뒤적이던 일행들 모두가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웅숭깊은 첫소리부터가 우리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목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놀라웠다.

작고 아담한 체구와 동그란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웅장한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나올 수 있는지 의아함과 경외함이 들 정도였다.

산꼭대기에 오도카니 서서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늘과 맞닿은 듯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이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잠자던 영혼까지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이었다.

시들했던 온몸의 신경들이 실핏줄을 타고 전해오는 선율의 꼬임에 바싹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가볍고 가늘어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했던 솜털들마저 주뼛주뼛 솟구쳐 올랐다.

사람마다 감추고 드러내지 못했던 마음속 상처들을 사정없이 이끌어낸 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치유의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잠시 동안 자신을 망각한 채 그녀의 노래에 흠뻑 젖고 말았다.

첫 곡이 끝나자 일행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갈채를 보내었다.

가자미콧구멍이 고개를 삐죽 내밀며 유리창을 통해 엿보고 있었다. 누가 노래를 불렀는지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표정이었다.

가만 보니 두 눈조차 가자미눈깔을 빼다 박아놓은 듯했고, 깜냥이 모자란 듯 푼수데기처럼 보였다.

나는 푼수 없는 구경꾼은 무시한 채 그녀에게 앵콜을 요청했다.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그녀의 눈망울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간곡한 요청에 그녀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이어서 불렀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 처음이었다.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처음이었다.

문뱃내로 찌들어 퀴퀴한 지하노래방의 탁한 공기가 그녀의 목소리로 말끔하게 정화되는 듯했다.

가만히 앉아 경청하다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가만 가만이 눈가가 젖어들고 있었다. 그녀도 나도.

누군가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울 수 있다니!

그것은 그녀의 노래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목청으로만 부르는 노래가 아닌 영혼을 울릴 수 있는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 나의 소설원고를 읽고 울고 웃으며 온 방안을 치딩굴내리딩굴 했다며 마음의 문을 열었듯이 나 또한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웃다 울다 감동 먹고 장벽을 허물고 말았다.

마음과 마음은 그런 끈매로 이어졌다.

나는 그녀와 어깨동무를 했다. 내 키보다 머리하나아래 정도의 키였지만 내겐 무척 커 보이는 친구였다.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았다. 목소리와는 대조되게 차갑고 까칠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생각이 났다.

설렁탕을 좋아해서 외진 곳에 있는 그녀의 식당을 찾아들어가게 되었다.

설렁탕 맛은 그저 그랬다. 점심시간을 훨씬 지났기 때문인지 꽃국물에 맹물 한 바가지를 탄 듯 진한 맛은 아니었다.

그러나 친절한 그녀, 동그란 얼굴로 방긋방긋 웃으며 손님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만큼은 같은 여자로서 진한 호감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부터 난 그녀의 웃음소리가 좋아서,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좋아서 의도적으로 친해보려고 노력했었다.

따끈한 국물 생각이 날 때마다 이왕이면 그녀의 가게를 찾아 갔다.

손님이 박신대는 시간 때를 벗어나 한갓진 시간을 맞추어 늦은 점심을 먹곤 했다.

접대할 일이 있거나 접대 받을 일이 있을 때에도 난 일부러 그녀의 가게를 찾아갔다.

그러다가 아직 여물지도 않은 나의 장편소설 원고를 읽어보라 선물로 주었다.

그녀가 원고를 다 읽었다며 호호호 웃던 그날,

나와 그녀는 수육 한 접시 시켜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마누라 등살에 대충 저녁을 때우고 퇴근하려는 사람들 몇 몇 만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설렁탕 뚝배기를 비우고 있었다.

단체손님도 예약 받은 게 없는 허전한 날이었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속내를 열었다.

“제가 실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의외의 말이었다.

그녀의 말인즉,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면 죽지 못해 산다는 얘기와 동일한 말이 아닌가.

나는 소주잔을 입술로 가져가다가 놀란 토끼눈으로 그녀의 속눈썹을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인조 속눈썹을 단 동그란 눈망울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참으로 뜻밖이네요. 항상 웃기에 난, …….”

순간 난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녀가 고개를 까닥이며 또 방긋 웃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안다는 뜻이었다.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어요. 이것저것 제하고, 아이들 셋 밑구멍으로 넣고 나면 정말 여유가 없거든요.”

“맞아요. 요즘 사교육비 너무 비싼 것 같아요.”

모르는 새 학부모 회의를 하듯 말소재가 딱딱하게 굳은 고기국물같이 되었다.

갑자기 맛이 없어지려 했다.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어보았다.

“원고는 어땠어요?”

“무척 재밌게 읽었어요. 대히트 예감이에요. 울다가 웃다가 감동적이었어요.”

그녀는 담백한 곰탕국물 같은 소감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그렇게 봐주니 고마워요.”

“제가 더 고맙죠. 간만에 마음 터놓고 실컷 웃었어요.”

그녀와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나는 그 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무대에 서야 할 분이 왜 이런 식당에 매여 있어요?”

나는 드레스를 입고 마이크 앞에서 노래 부르는 그녀의 사진액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라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늘 방긋방긋 미소를 달고 사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물을 마시며 컵 위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웃고 있으면서도 울고 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

그녀의 작은 입술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작은 꽃봉오리를 보는 듯했다.

나는 젓가락질을 하면서 그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간호사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음대로 편입을 했다고 했다.

남편은 대학 다닐 때 만났고, 음대를 졸업한 후 소프라노로서 제법 굵직한 무대에서 공연도 했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식당 벽 곳곳에는 그녀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군중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의 사진액자가 붙어 있었다.

“요즘에는 공연 안 나가세요?”

“여기에 얽매여 있다 보니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요.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거든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연못속의 물고기와 새장속의 새를 보는 듯했다.

지어농조라는 말처럼 그녀는 넓은 물에서 헤엄쳐야 하고, 높은 하늘 위를 날아올라야 함에도 작은 연못, 작은 새장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그녀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보다시피 아이가 셋이라고 했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시아버지 병수발을 도맡아서 해왔었다고 말했다.

요즘에도 이런 효부가 다 있나 싶은 마음에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래전 내 모습과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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