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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돌이와 토순이/ 정연균
2011-01-02 20:19:48
dusrbs0324

조회:3308
추천:117

 

토순이는 눈을 뜨자마자 옆에 놓인 침대부터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침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삐걱!’

토순이가 눈을 비비며 창문을 열었습니다.

밤새 눈이 내렸는지 사방천지가 온통 하얗게 변해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눈이 많이 올 것 같아. 내가 나가서 먹을 것을 좀 구해올게.”

“집에 나 혼자 있으라고?”

“당신은 아픈 몸이잖아. 혼자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고 어제 점심나절쯤 나간 토돌이가 결국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토순이는 외투를 걸치고 급히 대문 밖으로 나섰습니다. 숲 속으로 난 길마저 분간이 어려울정도로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습니다.

‘토돌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떡하지?’

눈 위로 발도장을 찍으며 힘없이 걷는 토순이의 얼굴에 근심이 하나 가득 드리워졌습니다.


“어서 네가 지니고 있는 그 야채를 배불리 먹으란 말이야. 그래야 살이 토실토실 오를 게 아니냐?”

동굴의 한 쪽 벽면에 기댄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토돌이를 향해 아비늑대가 호령하듯 말했습니다. 아비늑대와 그 가족들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와 함께 군침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여보, 그냥 저 토끼를 지금 잡아먹도록 합시다. 우리 새끼들에게도 모처럼 별식을 먹여줘야지요”

어미 늑대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비늑대가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아니야. 지금 밖에는 눈이 너무 쌓여 아무도 돌아다니지를 않아. 이럴 땐 토끼 저 녀석의 살이 좀 더 찌도록 당분간 놔두는 게 옳아.”

그러자 더 이상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어떡하지? 지금쯤 토순이가 온 숲 속을 헤매며 날 찾고 있을 텐데...’

꼼짝없이 늑대가족의 동굴에 갇힌 토돌이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몸이 아픈 토순이가 걱정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어제 오후였습니다.

때가 한겨울인지라 이미 가까이에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토돌이는 산을 두 개나 넘어 멀리까지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개의 산등성이만 넘으면 그 곳에는 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가가 몇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우스 안에는 봄에나 맛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신선한 채소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토돌이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멀쩡한 것은 가져가지 말아야겠지?’

혼자 중얼거리며 토돌이는 주인이 거두지 않을 만큼 못난 채소만 골라 가져온 자루에 담았습니다.

하나 가득 담긴 자루가 꽤 무겁긴 했지만 맛나게 먹을 토순이를 생각하면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토돌이는 토순이가 기다리고 있을 집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습니다. 막 산을 하나 넘고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웅!’

바람결을 타고 어디선가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순간 토돌이는 벌떡 일어나 다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늑대의 눈에 띠였다간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렇게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 저 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토순이가 반겨 맞아줄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게 섰거라!”

그 때 토돌이의 바로 등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돌아보니 커다란 늑대 한 마리가 혀를 길게 뽑은 채 토돌이 가까이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쿠, 큰일 났다.’

순간 토돌이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흥! 도망을 가겠다고? 어림없지!”

늑대가 금방이라도 낚아챌 기세로 달려왔습니다. 다급해진 토돌이의 눈앞에 동굴 하나가 나타났고 다행히 동굴의 문도 반쯤 열려있었습니다. 토돌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동굴 안으로 얼른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동굴 안으로 들어선 토돌이는 정녕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 토끼가 제 발로 우리 집을 다 찾아주셨네?”

어미 늑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럼 여기가 늑대의 집?’

토돌이는 그만 풀썩 주저앉았고 바로 그 때 아까 자신을 쫓던 덩치 큰 늑대가 동굴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른 먹어.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널 잡아먹고 말테다.”

거듭되는 아비늑대의 협박에 토돌이는 하는 수 없이 배추 한 닢을 자루에서 꺼내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평소에는 그토록 맛있는 배추였건만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그 시간에, 토순이는 토돌이를 찾아 하염없이 숲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같이 갔던 산 너머 마을까지는 일단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눈 위에는 그 어떤 발자국도 보이지 않을 만큼 숲길은 깊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토순이의 볼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내가 널 영원히 지켜줄게. 사랑해.”

그렇게 약속했던 토돌이었습니다. 그런 토돌이에게 만약 어떤 위험이 닥쳤다면 토순이도 더 이상은 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토순이는 비로서 자신이 토돌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토순이는 겨우 산 하나를 넘고는 지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고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먼 하늘 위에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토순이는 있는 힘을 다해 얼른 큰 소나무 아래로 몸을 숨겼습니다.


깜빡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토순이의 귀에 두런두런 이야기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빠, 오늘도 허탕치고 가면 우린 뭘 먹죠?”

“어쩌겠니? 눈이 좀 녹을 때까지는 비상식량을 조금씩 아껴먹으며 견뎌야지.”

“참, 어제 잡은 토끼 있잖아요? 오늘은 그 토끼로 배를 채우면 안 될까요?”

“인석아, 어제 아빠가 말했잖니? 좀 더 살을 찌워서 잡아먹어야 하다고.”

“에이, 먹고 싶은데....”

토순이는 아비늑대와 아들늑대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으며 몸을 숨긴 채 그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늑대에게 잡혀있다는 그 토끼가 토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토순이는 늑대들이 들어간 동굴 밖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토끼 저 녀석 오늘 뭣 좀 먹었나?”

아비늑대의 물음에 어미늑대가 대답을 했습니다.

“에구, 하루 종일 울기만 하네요. 집에 두고 온 토순이가 걱정된다며 보내달라고 애원만 하지 뭡니까?”

“토순이?”

“아낸가 봐요. 지금 병을 얻어 누워 있데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아비늑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네가 아무리 그래봐야 소용없다. 끝내 음식을 먹지 않겠다면 내일 당장 너를 잡아먹을 테니 맘대로 해라.

토순이의 눈에는 또 다시 눈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추위에 떨면서도 토순이는 동굴 밖에서 밤을 꼬박 지새웠습니다. 마음은 백번이라도 얼른 토돌이를 늑대의 집에서 구해내고 싶었지만 굳게 닫힌 동굴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느새 서서히 먼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토순이는 어떻게 하면 토돌이를 구할 수 있을까 오직 그 궁리뿐이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쉬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눈으로 허기를 대충 때운 토순이가 큰 바위에 올라 산 아래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토순이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포수가 분명했습니다. 저마다 어깨에 장총을 맨 채 산으로 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토순이는 갑자기 산 아래를 향해 자신의 몸을 굴렀습니다. 그리고는 최대한 포수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앗! 토끼다.”

한 포수가 토순이를 발견하고는 소리쳤습니다.

“잡아라!”

포수들이 토순이를 향해 일제히 총을 빼들었습니다. 토순이는 몸을 돌려 다시 있는 힘을 다해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포수들도 토순이의 발자국을 따라 뛰었습니다. 이윽고 다시 늑대의 집에 도착한 토순이가 급히 문을 두드렸습니다.

“계세요? 안에 누가 계시면 문 좀 열어보세요.”

문이 삐꺽 열리며 아비늑대가 험상궂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어머! 늑대씨네 집이었군요. 실례했습니다.”

토순이는 얼른 몸을 돌려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애들아! 또 토끼가 나타났다. 모두 나와서 토끼를 잡자.”

아비늑대의 명령에 동굴 안에 있던 늑대들이 모두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포수들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포수들과 마주친 늑대가족들은 혼비백산하여 숲 속으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잡아라! 토끼는 놔두고 늑대부터 잡아라!”

대장의 명령에 포수들은 총을 겨누며 늑대의 뒤를 쫓았습니다.

‘이 때구나.’

토순이는 얼른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니, 당신이 여길 어떻게?”

밧줄로 묶인 토돌이가 놀라며 소리쳤습니다. 토순이는 서둘러 밧줄을 풀었습니다.

“여기부터 어서 빠져나가야 해요.”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얼른 나가자.”

동굴 밖으로 나선 토돌이는 한 쪽 어깨에 자루를 짊어지고 또 한 쪽 손으론 토순이를 부축하며 산길을 걸었습니다.

얼마 후, 저쪽 등성이에서 몇 방의 총성이 울려퍼졌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숲 속은 깊은 적막에 잠겼습니다.


집에 도착한 토순이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은 더욱 창백해보였습니다.

토돌이는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신선한 채소로 맛있는 음식부터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토순이를 부축해 식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자, 음식을 먹고 어서 기운을 내도록 해요. 이젠 아무도 우릴 헤치지 못할 거야.”

토순이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 2011년 올해가 무슨 핸지 알아?”

“무슨 핸가요?”

“사람들이 정한 것이지만 올해가 바로 우리 토끼들의 해래. 또 사람들은 우리가 달나라의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는다고 믿고 있어. 재미있지?”

토돌이는 어떻게든 토순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몸이 아플 때는 무엇보다 기분이 좋아야 빨리 나을 수 있다는 것을 토돌이는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달나라에 여행 한번 가볼까? 가서 옥토끼 부부도 만나보고...”

“농담도 잘 하시네요.”

“농담이 아니야. 난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줄 수가 있다구.”

“고마워요. 그러나 난 당신이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지금도 무척이나 행복한 걸요.”

토돌이는 몸을 일으켜 토순이의 곁으로 다가앉았습니다. 토순이가 조용히 토돌이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습니다. 토돌이의 손이 토순이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끝>


2011년 1월 2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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