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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이후)


겨울나무 속으로 흐르는 강-8
2009-01-25 21: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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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653
추천:108

*

그해 가을이 오기 전 정희는 달포가량 ‘아시아 여류화가전’과 세미나 겸해서 해외에 나갔다 돌아 왔다. 이미 중추절도 지났고 늦은 가을은 쌀쌀했다.

 

‘한춘자’는 가게 앞 햇볕 바른 곳을 골라서 식당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 있었다.

얼굴은 누렇게 부었고 아무리 봐도 어딘가 무척 많이 아파 보였다.

멈칫거리다 정희가 먼저 인사를 하자 그녀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이 드는 듯 손을 내밀어 정희의 손을 부여잡고 기다리고라도 했는지 울기 시작했다. 비록 소리죽여 울지만 그것은 오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으며 왜 그러는지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정희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휘돌았다. 그래서 집으로 들어가자 곧장 그녀 어머니를 찾아서 ‘한춘자’의 그 의문의 울음을 물어보았다.

   “미희 언니네 애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 엄마?”

근 한 달 만에 돌아 온 딸을 반가워하며 ‘신씨’는 그곳 사정을 궁금해 하므로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저 아줌마,”

   “애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거야?”

   “그 애가 왜!”

‘신씨’는 펄쩍 뛰듯 놀래며 화를 냈다.

   “글쎄, 그렇게 작은애만 끔찍이 편애하고 아끼더니만 벌 받은 게야,”

‘신씨’는 당연 하다는 듯 말을 흘리는 그 녘에 그녀의 양면성과 미희의 아이로 향한 짙은 연민이 베여져 나왔다.

   “아, 글쎄 작은애가 건강하다고 아무렇게나 문밖에서 놀게 하더니......,”

   “......,”

   “트럭 뒤에서 앉아 놀던 아일 그놈의 운전기사가 살피지도 않은 채 후진을 하는 바람에......,”

   “아니, 애가 있는데 살펴보지도 않고 후진을 하다니?”

   “글쎄, 그 차 주인이란 작자가 새 남편 아니냐?”

   “그래서요?”

   “아이고-! 말마라,”

   “원 참, 세상에 어찌나 끔찍하던지......,”

‘신씨’는 사건의 잔혹상 현장을 혐오스럽다 면서도 그래도 소소히 애기를 들려주었다. 그야말로 가벼운 물 풍선이 차바퀴에 깔려 순식간 분산되어 터져 버린 진배나 다름없었다.

   “어머나!......”

온몸에 일시적인 냉기가 돌며 소름이 쫙 올랐다.

건강하게 반짝이던 눈망울과 세상을 향해 아직 아무런 거친 반항도 없이 해맑은 정서로 자라던 아이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친 시네라마로 뇌 속을 휘돌고 지나간다.

정희는 말을 잊고 물끄러미 서 있었다.

직접 육안으로 확인 하지는 않았어도 그 잔혹한 생명의 마감을 하였던 아픔과 고통의 장을......,

왠지 한동안은 뇌리에서 영 지워지지 않을 그런 영상으로 남을 것 같기에 가슴 한 구석이 저리도록 아파 온다.

좀 전의 문밖의 그녀가 한 없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세인이야 무어라고 주절거렸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녀로서는 생명으로 향한 삶의 지향이 남달리 크지 않았던가, 세월의 무게에 그녀의 생애를 올려놓고 보면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생명 이였다. 그것의 무게가 그녀를 아름답고 빛나게 만들었다.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도 허탈한 상실감과 허무한 인생사가 소용돌이치는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소중함을 잃은 것을 되찾지 못해 절망감에 사로잡혀 그렇게 탈진해 있는 것 이였다.

그녀가 정희의 손을 잡았을 적엔, 이미 운명이라던가, 숙명 같은 것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삶이 너무나 지독스럽게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굴곡마다 허무가 존재하는 삶을 살아 보지 않고 서는 그런 생을 살아가는 이에게 생각 없이 위로인 양 내뱉을 일이 절대 아니다. 더러 위선의 포장이 된 뇌세포들과 흑백 논리주의론 자들이 공존하기에,

윤택한 삶을 살던 이가 진창을 뒹굴던 이의 애환을 모르듯이, 흑과 백은 엄연히 다르다.

‘한춘자’가 살아 온 생애는 항상 오물 속에 서있었다. 비록 황망한 고통을 오물처럼 뒤집어 썼다 해도 그녀 내면에는 황금빛 태양이 가득 메워져 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발산 해 나오는 빛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고통의 회오리 속에서 진실을 찾아 낸 빛줄기가 흑백을 좋아하는 암전의 세상으로 비추고 있다.

오물 속에서 살아 보지도 않았던 이들은 뇌 속에 오물 가득하다. 생각 없이 오만하게 제 멋대로 살아서 양심이 헤프다 못해 너덜하다.

허나, 오물 속에 산 사람은 뇌 속에 해맑은 물과 같은 진실이 있다. 고뇌와 번민의 진창을 살았으니 양심은 강하게 무장이 되는 것이다.

그저 표면상으로 드러난 한 여인의 삶을 입방아 찧는 동네 여염집 여인들보고 그녀처럼 살아 보라고 한다면 과연 그 누가 선뜻 나서서 그녀의 팔자를 업고 비통, 절통하게 살겠는가, 그런 삶이 두렵게 느껴진다면 그녀를 진정한 마음으로 위로 해주면 되는 것이다.

 

봄에 돋는 새싹을 위해 두꺼운 표피층 안으로 만든 강물을 이루듯이 반짝이는 생명 빛이 베어든 그 강물, 지금 삶이 온통 건조한 겨울나무가 된 그녀에게 이웃의 사랑이 자양분이 되어 준다면 메마른 표피 속을 헤집고 생명의 강물이 흘러 들 것이다.

그 생명의 강은 언제나 사랑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

‘한춘자’는 경영하던 식당을 팔았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떠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혹시, 아이가 성장해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 깊은 상처를 줄 것 같기에 LA에 있는 여동생 사는 곳으로 이민을 간다고 했다.

그리고 ‘미희’의 소재를 파악했으니 무엇 보다 안심이라며......,

이제 피어난 새싹을 소중하게 키울 양으로 고국을 떠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가을이라는 과도기를 지나고 또 아픈 겨울을 앓고서

녹음 짙은 여름을 향해 싱그러운 생명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98. 9. ]

-2005년 강진문학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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