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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초대장 (박성배)
2010-05-09 15:59:32
psbae

■ 박성배(朴聖培) 아동문학가
△전남 목포 출생(1946)
△서울교대, 한양대 교육대학원 졸업
△《서울교원문예》동화(1968)·소설(1969) 최우수 당선. 한국일보사 刊『횃불』동화 추천(1969).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1978)
△한국글짓기 지도회 수석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노원문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원
△서울노원초 교장 정년퇴직
△동산산업정보고 이사. 노원문학아카데미 강사
△대한민국 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한국 아동문학 작가상, 천등 아동문학상, 한인현글짓기 지도자상 등 수상
△동화집『천사를 만난 바람』,『꿈꾸는 아이』,『달밤에 탄 스케이트』등 30여권
△동시쓰기, 극본 쓰기, 논술문 지도 등 글쓰기 관련 도서 다수
△초등학교 교과서에 <잠자리 꿈쟁이의 흔적>, <외짝꽃신의 꿈>, <가을까지 산 꼬마 눈사람>, <행복한 비밀 하나>, <새싹한테서 온 전화> 등 수록
조회:2320
추천:133

 

 

                                                                          이상한 초대장

                                      박성배

 

  학교가 쉬는 토요일 아침, 규진이는 배낭에 간단하게 오이 몇 개와 물병을 넣고 다시 한 번 초대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빠, 정말 누가 장난친 것은 아니겠지?”

 편리한 복장으로 따라나설 차비를 한 민지가 다시 확인하듯 물었습니다.

 “장난이라면 속은 셈 치지 뭐.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규진이는 초대장을 장난스럽게 흔들어보였습니다. 따분하게 집에만 있지 말고 하루 나가서 기분을 풀고 오자는 뜻이었습니다.

 

 초대장을 처음 본 것은 그제 저녁이었습니다. 영어학원에서 돌아오던 민지가 편지함에 들어있는 우편물들을 꺼내다가 ‘규진이와 민지에게’라고 적힌 하얀 사각봉투를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표가 붙어있어야 할 자리에 노란 꽃잎이 붙어있었습니다.

 그 봉투를 보는 순간 민지 가슴이 쿵쿵쿵 뛰었습니다. 이마에서 식은땀까지 났습니다. 우표가 아닌 꽃잎을 붙인 것으로 봐서 누군가 규진이와 민지를 놀려주려고 장난 편지를 써서 직접 넣고 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디 아프니? 힘이 없어 보이는구나.”

 현관을 들어서자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민지를 살폈습니다.

 “ 괜찮아요.”

 민지는 다른 우편물들을 탁자 위에 놓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봉투를 꺼내 다시 찬찬히 살펴봅니다. 보내는 사람을 쓰는 곳에는 주소도 없이 ‘늘보 아저씨가’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초록색 물감으로 쓴 붓글씨로 봐서는 장난스럽지만은 않아보였습니다. 민지는 봉투를 뜯어보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규진이와 민지에게’라고 적혀 있어서 오빠와 함께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외를 마친 규진이가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규진이가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났습니다. ‘쿵’하고 방문을 닫는 소리가 마치 현실 세계의 문을 닫는 느낌으로 길게 울렸습니다. 민지는 규진이가 컴퓨터를 켤 시간동안을 계산하며 잠시 기다렸다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빠, 잠깐만 내 방으로 와.”

 잠시 후, 요즘 별로 말이 없어진 규진이가 문을 조금 열고 귀찮은 표정으로 얼굴을 먼저 들이밀었습니다.

 “편지함에 있었는데 장난편지 같아.”

 민지는 꽃잎이 붙은 사각봉투를 흔들어보였습니다. 규진이는 갑자기 화난 사람처럼 편지를 낚아채더니 봉투 한 쪽을 거칠게 찢었습니다. 작은 초록 편지지 한 장이 툭 떨어졌습니다. 규진이는 편지지를 주워 꼼짝도 않고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인가 말을 걸려던 민지도 규진이 옆으로 가서 편지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규진이의 굳은 얼굴 표정에서는 누군가 놀려주려고 장난 편지를 보냈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결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편지지에는 간단하게 장소를 안내하는 그림과 함께 ‘우리 마을은 이름 없는 마을이야, 한 번 놀러오지 않겠니?’라고만 씌어있었습니다.

 “장난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규진이는 이내 편지지를 책상 위로 팽개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규진이의 말에는 제발 장난편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들어있었습니다. 민지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웠습니다.

 올해 6학년인 규진이는 지난 봄에 전교어린이회장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후부터 말이 없어졌습니다.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했습니다. 민지도 영어로 이야기하기 반 대표로 나가고 싶어 했으나 미국에서 2년인가 살다 왔다는 소영이에게 밀려난 후로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꾸만 친구들이 흉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 엄마는 괜히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거지 아무도 너희들을 깔 볼 사람이 없다고 말했으나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의 눈치를 보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꽃잎을 붙인 봉투도 자꾸만 누군가 둘이를 놀리려고 보낸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정말 둘이만 갈 거니? 괜찮겠니?”

 둘이서 등산 차림을 하고 나서자 엄마, 아빠가 걱정이 되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걱정 마시라니까요.”

 규진이가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 말투 속에는 엄마, 아빠가 우리들을 너무 감싸 키운다는 불만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규진이는 지난 봄에 전교어린이회장 후보로 나갔다가 겨우 몇 표 차로 떨어진 것도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학교 가는 골목길에서 팻말을 들고 규진이를 찍어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규진이를 찍으려던 아이들 중에 여러 명이 마음을 다른 후보 쪽으로 돌려버린 것입니다. 그 후, 서로 내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미안해하고 규진이는 규진이대로 못마땅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감정들이 아직 마음속에 있어서, 규진이의 퉁명스런 말에 엄마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고, 규진이는 난 언제까지나 꼬마가 아니라는 듯이 작은 배낭을 부러 크게 추스른 다음에 현관을 나섰습니다.    


 둘이는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서 내렸습니다. 편지지에 그려진 산을 찾아들자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늘보아저씨가 누굴까?”

 “아마 늘보원숭이인지도 모르지.”

 규진이가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 둘이 기분 좀 풀고 오라고 엄마가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민지는 오랜만에 농담을 하는 오빠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늘보아저씨야. 늘보.”

 규진이는 느리게 움직이는 늘보원숭이 흉내를 냈습니다. 민지도 엉금엉금 옆에 있는 소나무를 오르는 시늉을 했습니다.

 “늘보야, 나 먼저 간다.”

 규진이가 갑자기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민지도 뒤따라 뛰었습니다. 그러나 둘이는 얼마 못 가서 숨을 헐떡거리며 작은 바위를 찾아 앉았습니다.

 “요놈들아, 산을 오를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가야지 그렇게 뛰어서는 지치고 만다.”

 산을 오르던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둘이는 편지지에 그려진 약도를 보며 다시 힘을 내 걸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쪽이야.”

 규진이가 편지지를 보며 사람들이 가는 등산로와는 다른 길을 가리켰습니다. 길이라기보다는 바위와 바위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틈이었습니다.

 “ 말도 안 돼. 이런 곳에 어떻게 마을이 있겠어?”

 “ 속은 셈치고 가보는 거지 뭐.”

 규진이는 집에서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민지도 엉터리 초대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가 왜 이런 편지를 보냈는지 끝까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좁은 바위 사이를 지나 한참을 가자 둘이 외에는 다른 사람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혹시 누가 우릴 유괴하려고 한 것이면 어떡하지?”

 민지가 사방을 둘러보며 약간 겁먹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규진이는 편지지를 살피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규진이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만 민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둘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오이를 꺼내 먹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다복솔밭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가다 보면 안돌이가 있어. 그걸 안고 돌면 마을이 있대.”

 “정말일까?”

 “하여튼 거기까지만 갔다가 오자.”

 둘이는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편지지에 그려진 대로 가지가 다보록하게 많이 퍼진 어린 소나무가 작은 숲을 이룬 곳에 다다랐습니다.

 “야! 상쾌하다.”

 둘이는 가슴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향긋한 솔향을 들이마셨습니다. 거기를 지나자 조금 경사진 오르막길이었습니다. 헉헉거리며 오르막길을 올라서 다시 옆으로 난 길을 지나자 편지지에 그려진 안돌이가 나타났습니다. 한쪽은 낭떠러지였습니다.

 “무서워, 못 가겠어.”

 “뒤를 보지 말고 이렇게 바위만 안고 가면 돼.”

 규진이가 바위를 안고 조금 걸어가서 민지를 기다렸습니다. 할 수 없이 민지도 오빠를 따라했습니다. 다리를 덜덜 떨며 바위를 안고 돌자 갑자기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 딴 세상이 나타났습니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갖가지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 밭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한가롭게 길을 걷는 사람들, 나무 밑에서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토끼를 따라 온 것은 아니지?”

 민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살았다던 마을로 온 것 아니야?”

 규진이도 마치 꿈을 꾸듯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어서 와요. 내 친구들! 쿡쿡, 이렇게 올 줄 알았지.”

 누군가 좁은 길을 따라 느릿느릿 올라오며 소리쳤습니다. 

 “아저씨는 누구시죠?”

 “쿡쿡, 자세히 보렴, 날 모르겠니?”

 아저씨가 머리에 눌러 쓴 밀짚모자를 위로 치켜들며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노숙자아저씨?”

 규진이와 민지는 서로 마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래, 쿡쿡쿡, 너희들이 늘보아저씨라고 놀렸잖니?”

 “아하! 그럼 이 초대장은 아저씨가 보냈군요?”

 늘보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규진이와 민지는 놀이터에서 사는 노숙자아저씨에게 김밥이며 빵을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노숙자 아저씨는 말을 할 때마다 마치 기침을 하듯이 ‘쿡쿡쿡’ 웃어서 바보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노숙자아저씨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언제나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것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늘보아저씨라고 놀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저씨가 초대장을 보내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규진이가 마을과 아저씨를 번갈아 보며 물었습니다.

 “나도 너희들처럼 어떤 고마운 분이 초대장을 보내주어 이 곳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단다.   쿡쿡쿡”

 “그럼 우리도 여기서 살아야 하나요?”

 민지가 두려운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니야, 쿡쿡, 여긴 세상에서 살다가 실패하거나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다.    너희처럼 할 일이 많은 학생들은 받아주지 않는단다.”

 “그럼 왜 초대했어요?”

 “너희 둘이 요즘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좀 쉬었다 가라고 초대했다. 쿡쿡쿡!”

 늘보아저씨는 규진이와 민지를 데리고 마을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어서 오너라. 즐겁게 지내다 가거라.”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마을에는 십여 개가 넘는 비닐하우스들이 있었고, 각 비닐하우스마다 한 가지 농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마을 이름이 ‘이름 없는 마을’이지요?”

 민지가 궁금하던 생각을 물었습니다.

 “쿡쿡, 이름 없는 마을이란 마을 이름이 아니고 정말 이름이 없단다. 특별한 마을이라는    소문이 나기보다는 그저 흐르는 시냇물처럼, 아름다운 숲처럼 자연의 일부분으로 있고 싶   어하는 마을 사람들의 생각에서 마을 이름을 짓지 않았단다. 쿡쿡쿡” 

 규진이와 미진이는 알 듯 모를 듯하여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쿡쿡쿡, 그 까짓 이름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딸기 먹어보련?”

 늘보아저씨는 어느 비닐하우스로 들어가더니 딸기를 한 봉지 땄습니다. 그 봉지를 저울에 달더니 비닐하우스 앞에 놓인 통에 돈을 넣었습니다.

 “여기서는 필요한 것을 자유롭게 가져가고 돈을 넣는단다. 쿡쿡”

 늘보아저씨가 조금 우쭐대며 설명했습니다.

 “비닐하우스나 밭에 없는 물건은 어떻게 구하나요?”

 “쿡쿡, 마을 앞에 주인 없는 가게가 있어서 아무나 필요한 것을 가져가고 돈을 넣는단다.”

 “몰래 가져가는 사람은 없나요?”

 “아직까지는 없단다. 쿡쿡, 만약 그런 사람이 생기면 이 마을도 없어지겠지. 하지만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이 마을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거야.”

 늘보아저씨는 자신 있게 말하며 딸기를 씻어왔습니다. 딸기의 달콤하고 향긋한 맛이 몸 안에 안개처럼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마을 사람들이 여지저기서 나와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 이 마을의 촌장 선거가 있어서 구경하라고 너희들을 특별히 초대했다. 쿡쿡쿡”

 늘보아저씨가 과일을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촌장 선거 하는데 저희들이 특별히 볼 일이 있겠어요?”

 “쿡쿡, 그래도 한번 보렴.”

 늘보아저씨는 둘이를 데리고 마을 가운데 있는 커다란 회관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회관 안이며 널따란 마당까지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촌장님이 오십니다.”

 누군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난 일 년 동안 이 마을의 촌장으로 있으면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촌장이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잘 한 점이 더 많았습니다.”

 “돼지를 배로 늘린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닭은 세 배로 늘렸습니다.”

 “당근 농사가 잘 안됐습니다.”

 “감자 농사는 배로 잘 됐습니다.”

 촌장이 잘못한 것을 말하면 마을 사람들은 잘한 것을 말하는 식으로 주고받느라 한참이 걸렸습니다.

 “이제 새 촌장을 뽑겠습니다. 먼저 두 명의 후보가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섯 개의 나무 상자를 촌장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상자를 열자 종잇조각, 나뭇잎 등이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이 거기에 적힌 이름대로 수를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쿡쿡, 마을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마을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한 사람을 볼 때마다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란다.”

 늘보아저씨가 두 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촌장 후보로 가장 이름이 많이 적힌 두 사람을 발표하겠습니다.”

 계산이 끝나자 촌장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소리쳤습니다.

 “허풍쟁이와 늘보!”

 “와아!”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습니다. 허풍쟁이와 늘보는 갑자기 자기 이름이 불리워지자 손사래를 치며 몸을 뒤로 뺐습니다.

 “자, 투표에 들어가기 전에 두 사람의 연설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촌장의 말에 먼저 허풍쟁이가 사람들 손에 떠밀려 얼굴을 붉히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밖에서 살 때 사기를 쳐서 사람들에게 손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이 마을에 들어와서도 아침 네 시면 일어나겠다고 다짐하고선 네 시 이십 분에 일어날 때가 많았습니다. 음식을 적게 먹겠다고 결심해 놓고서 밥을 많이 먹어 이렇게 배도 나왔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새똥을 보고 치워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그냥 지나친 적도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촌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차례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기를 안치잖아요.”

“때로는 새벽 세 시 삼십 분에 일어나 일할 때도 있었잖아요.”

“민들레를 잘 길러 팔게 했잖아요.”

“마을 공터를 날마다 깨끗이 청소하잖아요.”

“그래서 허풍쟁이는 촌장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맨 마지막 말은 합창을 했습니다.

이어서 늘보아저씨가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저는 밖에 있을 때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사는 노숙자였습니다. 쿡쿡, 제 이름처럼 행동도 느립니다. 지난 번 마을 축제 때 사람들이 노래를 하라고 했지만 아는 노래가 없어서 숨어버렸습니다. 쿡쿡, 저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이면 일도 잘 못합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마다 쿡쿡쿡, 이렇게 바보처럼 웃음이 납니다. 그래서 전 촌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늘보아저씨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말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책임지고 일을 잘 하잖아요.”

 “하지만 일에 실수가 없잖아요.”

 “마을 회관 벽에 멋진 그림을 그렸잖아요.”

 “여름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로 일을 잘 하잖아요.”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깔보거나 흉보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늘보는 촌장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합창이 끝나자 바로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종이나 나뭇잎에 이름을 써서 투표함에 넣었습니다. 결과가 결정되자 촌장이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 새 촌장으로 뽑힌 사람은, 늘보!”

 “ 와!”

 사람들이 늘보아저씨를 번쩍 안아 헹가래를 쳤습니다. 촌장 투표에서 떨어진 허풍쟁이도 늘보아저씨를 얼싸안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떡이며 고기며 과일이며 국수며 갖가지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졌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자기가 먹을 양만큼 가져다가 먹었습니다. 배가 고팠던 규진이와 민지도 덕분에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늘보 아저씨, 촌장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민지가 다시 한 번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한 사람도 불평이 없는 마을을 만들어야 할 텐데 잘 할지 모르겠다. 쿡쿡쿡!”

 늘보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잘 할 거예요.”

 두 아이는 엄지속락을 펴 보이고, 안돌이의 바위를 안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습니다.      “우리가 꿈을 꾼 것은 아니지?”

 안돌이를 다 돌아섰을 때 규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습니다. 민지는 규진이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산 아래를 향하여 연설을 했습니다.

 “저는 영어 발음이 좋지 않습니다. 영어 단어도 많이 알지 못합니다. 영어로 이야기하기    는 소영이의 반도 못 따라갑니다. 그래서 전 우리 반의 영어 이야기하기 대표로 나갈 자격   이 없습니다.”

 “하지만 넌 하루도 쉬지 않고 영어 발음 연습을 하잖아. 그리고 화장실에서도 영어 단어 공부를 하잖아. 넌 미국에서 살지 않았어도 소영이 다음으로 영어이야기를 잘 하잖아. 그래서 넌 영어 이야기하기 반 대표로 나갈 자격이 있어.”

 규진이가 맞받아 말한 다음에 이어서 연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선거운동을 못하고 엄마가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다가 내 맘대로 안 되면 신경질을 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을 속으로 얕보기도 합니다. 학교 운동장에 떨어진 휴지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교어린이회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엄마가 선거운동을 한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하고 있잖아. 무슨 일을 하다가 안 되면 끝까지 하는 성격도 갖고 있어. 용돈을 모아서 가난한 친구를 도와주기도 했잖아.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 때 학교 운동장에 가서 눈 치우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잖아. 그래서 오빠는 전교어린이회장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어.”

 민지도 오빠의 연설을 맞받아 소리쳤습니다.

 순간 둘이의 마음 속이 뻥 뚫린 것처럼 홀가분했습니다. 바윗돌처럼 앉아있던 불만덩어리가 어디론가 사라진 기분이었습니다.

 “가자! 쿡쿡쿡”

 규진이가 늘보아저씨의 기침하는 듯한 웃음을 흉내냈습니다.

 “쿡쿡, 아자!

 미진이도 흉내내어 웃으며 주먹을 힘껏 쥐어보였습니다.

 둘이는 손을 잡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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