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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신춘문예 당선 시 읽기(1)-기청
2009-04-19 10:51:46
sosickr

조회:2500
추천:122

 

 

/2009 신춘문예 당선 시 읽기/

우울한 시대의 초상(肖像)(1)

-우리시 흐름의 관점에서

     氣   淸

 

 

들어가면서-당선작 주요특징

 

새해 아침, 채 날이 밝기도 전에 신문들이 먼저 도착했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잉크냄새를 풍기면서. 뭔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찾는 인간종족의 DNA, 그 우성인자의 원초적 발현(發顯)에 대한 기대감이다. 신문을 뒤적이면서 야성의 후각이 청각이나 시각보다 먼저 뇌리를 스친다.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란 먹잇감을 발견하자 굶주린 야성은 잠시 충격에 머문다. 얼마 후 표범의 눈빛으로 빛나던 충격은 하이에나의 비굴하고 저급한 빈정거림으로 바뀐다. 올해도 그런 실망스러움의 반복으로 끝날 것인가.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의 특징을 요약하면, 먼저 주제 면에서 현실의 불안과 좌절을 반영하고 있다. 금융위기라는 절대절명(絶對絶命)의 시대적 과제가 작품에 투영된 결과인가.   표현의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모호성 불확실성이란 혼돈과 전조(前兆) 불명의 방황이 길을 어둡게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그림자가 아직 길게 드리워져 있다.   단편적 발상과 산문화 경향은 시문학을 질기고 거친, 한마디로 맛없는 서양식 스테이크로 만들고 있다. 또 랩 형식의 단순화된 리듬, 독백과 자조는 오늘 우리시대 기계 부품화된 존재의 고독과 내면의 반란(叛亂)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 산문화 경향과 서정의 실종

 ‘문예사조’ 또는 ‘경향’이란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작가의 정신적 지향을 말한다. 여기에 동시대의 어떤 공통분모로 집약했을 때 가능한 말이다. 문학에서 어떤 흐름 또는 경향을 말할 때 작가의 지각의 틀이 중요하다. 작가의 가치관 세계관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표출된다. 또 표현수법의 유사성 차별성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런 조건과 함께 무엇보다 일정한 시대와 공간(장소)를 배경으로 나타난 집단적 정신의 동향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우선 우리 시의 외형적 형식을 보자. 비단 금년 뿐 아니라 상당기간 동안 지속 되어온 산문화 경향은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가. 현대란 특성과 관련하여 우선 뭔가 할 말이 많아졌다는 의미가 있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시의 특성을 되짚어 보자. 시는 말의 절약이자 축약을 특성으로 한다. 불필요한 조사의 남발과 서술형어미의 반복은 낭비다. 이렇게 보면 산문화 경향은 시의 본질과 상충하는 일종의 반칙으로 볼 수 있다.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연장이 있다 얼마 전 죽은 곤줄박이에
떼 지어 모인 개미들이 그것을 수거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일과를 마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번뇌만으로는 달에 못 미치는 나무의 머리통을 곤줄박이가 대신,
벅벅 긁어주는지, 나무 아래 하얀 달 거품이 흥건하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민구 (조선일보 당선작, 일부)

 

이 모래먼지는 타클라마칸의 깊은 내지에서 흘러왔을 것이다
황사가 자욱하게 내린 골목을 걷다 느낀 사막의 질감
나는 가파른 사구를 오른 낙타의 고단한 입술과
구름의 부피를 재는 순례자의 눈빛을 생각한다
사막에서 바깥은 오로지 인간의 내면뿐이다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은 경계로 방향을 다스리며
죽은 이의 영혼도 보내지 않는다는 타클라마칸
순례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는 것이므로
끝을 떠올리는 그들에게는 배경마저 짐이 되었으리라
순간,잠들어가는 육신을 더듬으며
연기처럼 일어섰을 먼지들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그들의 꿈에 제(祭)를 올리고 이곳으로 왔나
피부에 적막하게 닿는 황사는
사막의 영혼이 타고 남은 재인지
태양이 지나간 하늘에 무덤처럼 달이 떠오르고 있다
-저녁의 황사 -정영효 (서울신문 당선작, 일부)
그냥 읽으면 앞의 작품들은 산문의 한 부분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조금 더 격을 감안하면 수필의 한 대목이 될 것이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에서 ‘달’은 ‘비누’로 ‘욕망’을 ‘칼’로 비유하고 있는 점이 참신하다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저녁의 황사>에서는 ‘연기처럼 일어섰을 먼지‘에서 먼지를 연기로 “무덤처럼 달이 떠오르고”에서 달을 무덤으로 비유한다. 그것도 유사성이 가장 가까운 직유의 표현으로.  직유는 수사에서 가징 초보적인 것이다. 시의 함축성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산문화 경향은 각 장단점이 있다. 우선 읽기 편하기 때문에 독자의 시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준다는 점이다. 일부 난해시는 시를 독자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쪽으로 기여한 면이 있다. 요즘 독자로부터 사랑 받는 생활시, 대중시, 감성시의 경향을 보면 산문화 경향이 한몫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의 서정성 음악성 함축성이란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는 역작용도 있다.   앞의 시들이 이런 형식의 산문성, 단조로운 비유에도 그나마 작품성을 획득하는 것은 이들의 시적 발상에 있다. <오늘은--->에서 ‘나무 그늘’에서 ‘뼈’를 느끼는 인식이나 ‘곤줄박이’=천상적인 것, ‘개미’=지상적인 것의 대비가 이채롭다.
<저녁의 황사>에서는 ‘황사’를 보며 ‘타클라마칸의 사막’을 떠 올리는 시적 상상력이나  ‘황사’를 ‘사막의 영혼이 타고 남은 재’로 ‘나는 앞을 쫓지만 뒤를 버리지 못했다’란 현실의 인식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결국 시가 추구하는 ‘낯설음의 세계’란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볼 때 시적 참신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2 한국판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징후들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는 미국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G. 쉬타인이 제1차 대전 이후, 정치 시회를 등진 채 문학의 새로운 모습을 재발견하려 고민한 미국의 전쟁세대를 지칭해서 처음 사용했다. 이후 60년대 말-70년대 출생한 X세대에 이어 프랑스 일본과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최근 금융위기와 함께 조금씩 잊혀지던 악몽이 다시 살아나면서 그런 징후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이런 배경에는 특히 사회 경제적 위기와 관련해서 청년 실업문제, 암담한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이다.
 
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
젊음이 더 이상 수작 피우지 않아서 좋아? 싫어?
스스로 묻다가 무거운 짐 원없이 내려놓았다
맆 피쉬라는 물고기는 물 속 바위에 낙엽처럼 매달려 산다
콘크리트 계단에 몸을 붙인 청년의
물살을 떨다 만 지느러미
뢴트겐에서 춤추던 가시, 가물가물
동전 몇 개 등록상표처럼 찍혀 있는 손바닥과
염주 감은 손목의
그림자만이 화끈거린다
채 풀지 못한 과제 놓아버린 손아귀
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의 푸른 이마였던 그의
꿈이 요새에 갇혀서
해저로 달리는 환상열차
잎사귀인지 물고기인지를 한 땀 바느질한
지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이들이
다리 하나 하늘에 걸칠 때
-맆 피쉬 - 양수덕 (경향신문 당선작, 전문)
 
 이런 현실문제를 다룬 것으로 <맆 피쉬>(양수덕) <술빵 냄새의 시간>(김은주-4항 작품 참조)등이 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암담한 현실에 대한 불안이다. <맆 피쉬>는 생존을 위한 무기로 보호색을 택하지만 이미 대항능력을 상실한 무능 무기력, 절망의 젊은이다.  ‘땡볕’ ‘지하도 계단’ ‘동전 몇 개’가 한계상황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해저/콘크리트 계단, 꿈/요새의 대비는 이상과 현실, 희망과 절망, 젊음과 수치(羞恥)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술빵 냄새의 시간>도 <맆 피쉬>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낮의 햇빛’ ‘실업수당’ ‘을지로 한복판‘은 치열한 현실이다. ’술빵‘은 배고픔과 허기로 곧 실직을 상징하는 후각적 심상이다. 오래전 지난 세대가 겪었던 ’보리 고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알레고리다.  ‘흐린 날’과 ‘맑은 날’ ‘하늘’과 ‘맨홀’ ‘바리케이드’와 ‘술빵의 내부’는 이상과 현실, 포근함과 냉혹, 안존과 위기가 교차하는 불안한 공간이다. 오늘 우리시대의 우울한 초상(肖像)을 그리고 있다.
 

3 포스트모더니즘 따라 하기

 1900년대 이후 근 한 세기를 풍미해온 모더니즘, 아직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름으로 살아있다. 지구의 외딴 구석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구미에서는 이미 60년대에 그 모습을 바꾸었다. 우리의 경우 30년대 모더니즘을 도입하고 90년대에 와서야 포스트의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상통하는 면은 전통과의 단절, 불확실성, 전위적 실험성, 파편화. 반리얼리즘과 비정치성 비역사성 등이다. 서로 다른 면은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행위와 참여, 패러디와 패스티시, 탈장르화, 자기 반영성을 들 수 있다.  둘은 한 뿌리로 논리적 연속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인 것이다.
 
 이곳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입니다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
저녁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꾸짖으러 옵니다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숟가락이 구덩이 옆에 꽂힙니다.
잘 뒤집으면 모자가 되겠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형이
내가 한 눈 파는 사이 구덩이를 들고 나갑니다
달리며 떨어지는 잎사귀를 구덩이에 담습니다
숟가락을 뽑아 들고 퍼 먹습니다
잘 마른 잎들이라 숟가락이 필요 없습니다
형은 벌써 싫증을 내고 구덩이를 던집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러 옵니다
반짝반짝 구덩이
외출하기 위해 나는 부엌으로 갑니다
중력과 월요일의 외투가 걱정입니다
그릇 사이에서 구덩이를 꺼내 머리에 씁니다
-무럭무럭 구덩이- 이우성 (한국일보 당선작, 일부)
 
 그냥 읽으면 무슨 소린지 아리송하다. 뭔가 잡히는 게 없는 ‘뜬구름 잡기’처럼 보인다.  슈르레알리즘이나 심리주의 계열의 시로 비치기도 한다. 이런 면, 이를테면 당혹감 일상의 탈피와 낯설음의 충격, 이런 점이 새롭다면 새로운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집요함이 보인다. 모호함 불확실성 실험성 등 주요메뉴를 고루 갖추고 있다.
 "내가 파놓은 구덩이‘는 ’함정‘이거나 ’위장‘혹은 ’가식‘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비논리의, 눈으로 형상을 볼 수 없는 무형인 관념의, 그러면서 요리조리 모습을 바꾸는 마술사와 같은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한다. 마치 30년대 이상(李箱)의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 시의 모호성과 불확실성 비논리성은 암담한 시대의 불안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계속)              

                              월간 [문학공간] 09.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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