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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이는 내 각시/ 정연균
2009-11-12 22:29:19
dusrbs0324

조회:2210
추천:142

훈이와 옥이는 나란히 앉은 짝꿍입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옥아, 나 색연필 한 번만 빌려주라."

어쩌다보니 미처 준비를 못해 온 훈이가 옥이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 소리로 부탁을 해보았습니다.

"넌 무슨 애가 준비물도 제대로 못 챙겨 오니?"

아니나 다를까, 쌀쌀맞게 한 마디 하고는 색연필을 중간쯤 밀어 놓았습니다.

"못된 기집 애, 이왕 빌려 주는 거 웃으며 주면 어디가 덧나나?"

속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그러나 서운한 마음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옥이가 어떻게 말은 해도 미운 마음이 크게 들지 않는 훈이였습니다.

언제부턴가 훈이는 마음 속으로 다짐해 놓은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담에 어른이 되면 반드시 옥이를 제 각시로 만들고 말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옥이는 분명 여러면에서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건 물론이고 거기다 마음씨까지도 무척이나 고운 아이였습니다.

훈이 반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옥이는 항상 큼직한 도시락 통을 들고 와서는 점심시간에 그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어떤 날은 자신은 하나도 먹지 않고 모두 그 아이들에게 주기만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옥이건만 훈이에게만은 유독 쌀쌀맞게 대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지난번의 작은 사건 하나가 있은 직후부터였지만 말입니다.


그러니까 약 한 달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훈아, 오늘이 내 생일인데 네가 내 대신 이 초대장을 나눠주고 이따가 모여서 같이 와 줄래?"

하면서 분홍빛깔의 봉투 몇 장을 훈이에게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알았어. 걱정 마."

대답을 하고는 봉투에 적힌 명단을 살펴보니 남자 아이도 훈이까지 세 명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귀공자처럼 잘 생긴 반장 재식이었고 또 한 아이는 옥이와 늘 도시락을 함께 나눠먹는 유동이었습니다.

"어라? 옥이가 이 두 녀석을 좋아한단 말이지?"

훈이는 은근히 심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재식이와 유동이에게는 전달도 하지 않고 여자 아이들에게만 초대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방과 후, 훈이와 여자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갔다가 다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마다 정성껏 자그마한 선물도 마련을 하였습니다.

"어머, 재식이 하고 유동이는 왜 같이 안 왔어?"

"으응, 갸들은 다른 일 때문에 못 온다고..."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훈이도 알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재식이는 몰라도 유동이는 꼭 왔으면 했는데......."

옥이의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훈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또 한 차레 마음속의 심술이 꿈틀대는 것을 느껴야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거짓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자꾸만 불안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차려진 음식을 입에 넣어도 전혀 맛을 느낄 수가 없었고 나중에는 별로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배까지 살살 아파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훈이가 거짓말 한 사실을 알게 된 옥이는 태도가 돌변하여 마치 차가운 얼음장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훈이는 거짓말에 대한 후회를 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옥이가 그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여자들이란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일부러 겉으론 아닌 척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만나면 맨 날 티격태격 싸우던 삼촌과 순이 누나가 얼마 전 환하게 웃으며 결혼한 사실만 봐도 그럴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좋아하는 옥이를 속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답지 못한 비겁한 행동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훈이가 용기를 내어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옥아, 내가 너한테 꼭 할 얘기가 있거든?"

"뭔데? 빨리 이야기 해 봐!"

옥이가 새촘한 표정으로 톡 쏘며 물었습니다.

"아니, 여기서 말구. 이따가 문구점 옆 떡볶이 집에서 기다릴게."

" .........."

옥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옥이의 침묵은 곧 승낙의 뜻일거라고 훈이는 받아들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훈이가 먼저 떡볶이 집으로 갔습니다.

"아줌마, 떡볶이 2인분 주세요."

주문을 하고 턱을 고인 채 옥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떡볶이가 나오고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갔지만 옥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도 안 댄 떡볶이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나쁜 지집애!"

훈이는 자신의 마음을 끝내 몰라주는 옥이가 몹시 미웠습니다. 또 내일 아침에 어떻게 옥이의 얼굴을 대할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훈이는 힘없이 떡볶이 집을 나와 집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날 밤 훈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유동이네 집 앞을 지나치는데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언뜻 보니 방문 앞에 빨간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옥이의 구두라는 것을 훈이는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며시 방문 가까이로 다가가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옥아, 항상 우리 유동이에게 잘 대해줘서 너무도 고맙구나."

유동이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나는 얼마 못살 것 같구나. 앞으로도 우리 유동이 하고 사이좋게 지내다오. 알았지?"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 엄마도 항상 유동이를 걱정하고 계시는걸요?"

유동이는 옆에서 울고 있는지 이따금씩 훌쩍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왔습니다.

훈이는 말 한마디 않고 혼자 유동이네 집으로 온 옥이가 얄미워 식식대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훈이는 처음으로 옥이를 본체만체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오늘은 유동이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훈이는 어젯밤의 꿈을 떠올리며 어쩌면 유동이 엄마가 정말 더 아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옥아, 너 유동이 소식 모르니?"

정말 아무 말도 건네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훈이는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나도 모른다. 근데 웬일이냐? 네가 유동이 소식을 다 묻고."

옥이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유동이의 빈 책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옥이의 그런 표정을 본 훈이는 또 심술이 불근불근 솟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훈이도 속으로는 유동이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고는 곧장 유동이네 집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유동아!"

방문이 열리며 유동이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유동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것이었습니다.

"유동아, 왜 그러니?"

"엄마가... 울 엄마가..."

유동이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울먹거리기만 했습니다.

훈이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유동이 엄마가 괴로운 표정을 지은 채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너, 119에 전화 했어?"

"119? 불도 안 났는데?"

"이런 바보, 전화기 어디 있니?"

훈이가 급히 119로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아저씨, 제 친구 엄마가 많이 아프세요. 빨리 좀 와 주세요."

훈이는 자세한 위치까지 또박또박 설명을 해준 다음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시 후, "삐요 삐요" 소리를 내며 구급차가 도착을 했습니다. 유동이 엄마는 소방대원 아저씨들의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졌습니다.

"유동아, 나도 병원에 같이 가 줄게."

훈이는 유동이 혼자만 병원으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훈아, 고마워."

훈이와 유동이가 구급차를 타고 막 출발하려는데 눈앞에 옥이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옥아, 우리 지금 병원에 가는 거야. 너도 함께 가자."

반가운 마음에 훈이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옥이도 얼떨결에 차에 올라탔습니다.

"유동아, 어떻게 된 거니?"

달리는 차안에서 옥이가 물었습니다.

"밤새 엄마가 많이 아팠어. 근데 훈이가 와서 119 아저씨들을 불러준 거야."

유동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옥이는

"어머, 못된 줄만 알았던 훈이에게도 그런 면이 다 있었네?"

하며 훈이를 향해 살며시 웃음을 지었습니다. 오랜만에 웃어주는 옥이의 모습에 훈이의 기분은 삽시간에 좋아졌습니다.

 

진찰을 다 마친 의사 선생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이런, 진적에 병원에 왔었어야지. 근데 너희 말고 어른은 아무도 안 오신 거냐?"

유동이는 엄마와 단 둘이서만 살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턱에 손을 대고는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제가 저희 엄마 오시라고 할게요."

옥이가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나도 엄마에게 전화 해봐야겠다."

훈이도 전화 부스를 찾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얼마 후 훈이 엄마와 옥이 엄마가 거의 동시에 병원으로 도착을 했습니다.

"선생님, 수술비는 걱정하지 마시고 어떻게든지 유동이 엄마를 낫게 해 주세요."

두 엄마가 의사 선생님의 팔을 붙잡고는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수술하고 치료만 잘 받으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

이렇게 해서 유동이 엄마는 무사히 병원치료를 받게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건강도 되찾아 갔습니다.

며칠이 지나 유동이가 다시 학교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가 따뜻하게 유동이를 맞아 주었습니다.

"훈이하고 옥이는 잠깐 앞으로 나오도록."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훈이와 옥이를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훈이와 옥이가 이번에 우리학교의 장한 어린이로 뽑혔어요. 그 이유는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지요?"

친구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훈이와 옥이는 친구들을 향해 동시에 손을 들어 흔들었습니다.

그러다 훈이의 눈과 옥이의 눈이 서로 마주 쳤습니다. 옥이가 생긋이 웃었습니다. 훈이도 힛죽 웃었습니다. 오늘따라 옥이의 보조개가 더욱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옥이의 해맑은 표정을 보며 훈이는 또 다시 다짐을 했습니다.

"역시 넌 내 각시감으로 딱이야. 그리고 앞으로 내가 널 영원히 지켜줄 테니 아무 염려하지 마. 알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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