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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선물-6[박찬현]
2009-01-18 17: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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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501
추천:92

 

수진이가 알고 있는 수빈의 병마는 수빈이 네 살 때 즈음에 집안 하인 종속인 여인네가 수빈을 등에 업고서 두레박 우물 속 샘물을 길어 올리다가 두레박 끈을 놓치는 바람에 우물 안쪽을 훑어보느라 상반신을 우물 속 안으로 기울였다. 너무 깊숙이 기울이느라 등에 업은 애기 포대기 띠가 느슨하게 묶여진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수빈은 하녀의 등에서 힘없이 밀려 나와 일순간에 우물 속으로 빠져버렸다. 다행히 볏섬을 져 나르던 남자 하인이 그 모습을 목격하고 재빠르게 몸을 날려 우물 안으로 들어 가 수빈이 익사하기 전에 목숨을 구했으나,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던 차 우물 안 돌기에 부디 친 관계로 그 이후 시름시름 앓기 시작 했다. 그런 이후로 수빈은 성장을 멈추게 되었고, 척추에 이상이 오면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창백하게 혼절을 시시 때때로 했다. 당시 수빈이 앓던 병은 수진이 성장해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것이 소아마비 증세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 일이 마님으로서는 처음 절망했던 일이였으며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 갈 아픔 이였다.

 

집안에 이렇듯 무거운 공기의 흐름이 일자, 마님은 뜰 안의 수목이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지, 라일락이 향기를 흘리며 베시시 웃는지, 하늘색이 무게를 바꿔가며 철새들이 왔다가 가는지 그저 세월의 무상만 잡고 시간을 읽었다. 그러나 비껴 갈수 없는 숙명과 운명을 숙지했음이다. 그 구겨진 세월의 자락을 포개며 세어 나오는 한숨 속에 숙연히 묻어버리는 인고의 석상을 수진은 읽을 수 있었다.

 

오래된 앵두나무는 그런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마다 농익은 앵두 알들을 우물 안으로 동동 뛰웠다. 수진은 우물 안을 그렇게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대청으로 나서던 마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진을 바라보았다. 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 드는 알수 없는 자책감에 우물에서 손을 떼고 돌아 서려하면 낮은 목소리로 마님은 수진에게 말을 건넸다. “위험하게 우물 안 앵두를 건지려 하지 말고 나무에서 잘 익은 것으로 골라 따거라.”아무리 내리 사랑이라 했거늘 그분은 성녀의 모습으로 안채를 그렇게 지키고 있었다.

언제나 하루 같이 몸단장에 여념이 없는 수진의 어머니의 행색을 곱게 봐주기란 기실 그리 쉽지 않을 터이고 더욱이 그런 여인의 산물이 아니던가, 그래도 마님은 큰 어머니처럼 아직 솜털 보송한 수진이 곱게 비춰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이 낳은 자식은 속절없는 인생을 맞이하고 살기에 수진을 바라보면 수빈이도 곱게 교복을 입고 여느 소녀처럼 살기를 꿈에서라도 소망처럼 기원했었지만 고통을 홀로 삮히던 세월 속에서 수진이도 내 자식이려니 하는 감과 미워한들 자신에게 돌아 올 것 없는 업을 쌓는 것이기에 그 모든 것들을 단념한지 이미 오래 된 시간이다.

 

아래채의 아담한 쪽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 한켠에 이미 흐드러지게 만개했다가 밤새 내린 소낙비에 분분히 흩어진 백목련 꽃잎들, 그 옆에는 라일락이 제법 향내를 풍기며 잔잔한 꽃잎 더미를 피워내고 있었다. 오래 되지 않아 지고 말 꽃이지만 그 모습은 소멸의 시간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혹의 자태를 한껏 목을 뽑아내고 있었다. 수국은 비를 몰고 오는 꽃이지만 담 넝쿨이 이어진 능수화는 농익은 태양에 달군 여름을 불러들일 것이다.

봄볕이 따사로운 대청을 잇는 안방 문이 열려져 있었다. 그 너머 수진의 어머니는 경대를 접어 세워 들여다보며 열심히 머릿결을 참빗으로 다듬어 내리고 있었다. 봄 하늘을 담은 뉴똥 저고리에 아직 때 이른듯한 분홍치마는 수진어머니의 마음을 내보이듯 여며 입은 모양새는 설레임 이였다. 라일락 나무아래를 서성이는 수진을 건네 보는 그녀의 어머니는 고개를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안채 마님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지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자신의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여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타인의 근심 하나가 담장너머에서는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검은 숯덩이가 된 가슴 속 아픔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당시로써는 수진은 어머니의 마음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나날이 그녀의 어머니는 경대 속을 바라보며 화사한 꽃으로 변신하는지 그것이 궁금했었다. 분 냄새가 요란한 것은 상대방을 절대 측은지심으로 봐줄 의향이 없었다는 것이 란 걸 훗날에서야 생각이 들었다.

 

그 직사각형의 경대는 어린 날 들의 편린들을 모조리 함축해서 담고 있었기에 수진에겐 뒷날 아주 특별한 자아성찰의 도구가 되었고, 그것은 곧 그녀에게 있어서 아픔의 도구이기도 했었다. 거울안의 마음은 아름다움과 꿈을 창조해내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풍파를 담고 온 *판도라의 상자일 뿐 이였다. 어머니는‘판도라’였었다. 충분한 선물을 아버지에게서 모두 받았으나 아직 상자 속에 갇혀 있는 ‘헛된 희망’ 하나 뿐 이다. 그래서 상자 밖으로 나온 세상 모순과 아직 나오지 못한 그 욕망들이 진실을 내세우며 두드려댔었고, 거울 밖 그녀 어머니는 그 헛된 욕망의 세월 속에서 추한 껍데기만을 희구하며 진실인줄 착각하고 살아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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