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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의서의 형이상시의 기상 / 최규철
2009-03-04 02: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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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2687
추천:138

 

 

 

한국시에서서의 형이상시와 기상

                      최규철

 

 

 

♠ 들어가는 말

형이상시는 17세기 영국시인 존던을 주축으로 한 일단의 시인 구릅들이 시작한 한 시유파로서 그 시풍은 연애시와 종교시의 극치를 이루면서 당대뿐만 아니라 후세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던 시 운동이기도 했다. 이런 형이상시는 기상(奇想 conceit)이라든가 역설(paradox), 아이러니(irony) 등을 통한 지성적인 감각, 그리고 압축된 생략 구문 등의 특징으로 극적인 언어구사에 의한 효과를 더하게 하는 특징을 가졌다. 이런 형이상시의 여러 특징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특징은 기상(奇想 conceit)인데 형이상시의 여러 특징이 바로 이 기상(奇想 conceit)을 중심으로 한 역학적인 메커니즘의 구조 하에서 결합되고 시로서 형상화된다.

 

♠ 기상(conceit)이란 무엇인가

본래 기상(Conceit)은 르네상스 시대의 소네트 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페트라르카 기상을 말하고 있는데 대개 아름답고 잔인한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애인을 무덤이나 바다, 태양과 비교하는 과장된 비유법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7세기에 접어들면서 형이상학파 시인들이 자주 썼던 형이상학적 기상(conceit)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띤 지적인 경향의 기상(conceit)으로 발전했다.

이런 형상시의 기상(奇想 conceit)은 일종의 시의 기법으로서 외견상 유사성이 없는 이질적인 개념이나 이미지들을 매우 재치 있고 기발한 기법으로 비교하는 일종의 비유적 표현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기상(奇想 conceit)은 두 가지 사물이나 또는 개념을 교묘하고 대담하게 연결하여 뜻밖의 유사성을 발견하려 하는 지적인 시수사법이다. 이것은 가까운 것들을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동떨어진 것들을 폭력적으로 결합하는 원인적(遠引的) 비유를 통해서 시의 새로운 감동과 긴장을 유발하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리하여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 가장 고상한 것과 가장 비천한 것, 그리고 천국과 지옥, 영혼과 육체, 남녀, 명암 등의 양극화 된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어떤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서 결합시킴으로써 구상화 과정을 이루는 일종의 메타포이다.

 

그리하여 기상(奇想 conceit)은 이질적인 두 가지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이나 신앙의 의미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드러내기 위해서 알맞은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을 찾는 데 주력한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나 관념을 감각적인 어떤 사물이나 사건, 정황 등으로 전환되게 하는 대상이 필요하며 이것이 곧 엘리엇이 언급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엘리엇은 ‘정서를 예술 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상관물을 발견하는 것, 이외의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하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나타내는 방법이 된 한 쌍의 사물, 혹은 정황이나 일련의 사건을 발견하는 외는 없다. 그것은 독자의 감각체험으로 끝남과 동시에 그 정서를 환기하는 사물이 아니면 안 된다.‘ 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감정의 예술적 객관화가 강조될 때 이러한 객관화를 위하여 이용되는 심상, 상징, 사건 등이 바로 객관적 상관물이다. 개인의 정서가 예술적 객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노출된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의 재료상태로 남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 상관물의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T.S 엘리엇을 비롯한 형이상시인들은 주로 개성을 최대한 억제하고, 주관적 정서를 객관화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구상화하는 데 힘을 썼다. 이것이 곧 T.S 엘리엇이 ‘전통과 개인의 재능’(1917)에서 언급한 ‘몰개성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몰개성은 시가 시인의 개성을 초월하여 완벽하게 객관화된 경지를 말한다.

그리하여 T.S 엘리엇은 형이상시를 언급하면서 어떠한 체험도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는 감수성의 메커니즘이며 감성과 지성이 분리된 상태가 아닌, 혼연 일체로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이라 했다. T.S 엘리엇은 그의 저서 ‘형이상시인론’(1921) 에서 존 던에게는 사상을 직접 감각적으로 포착하거나 사상을 느낌으로써 재창조하는 능력이 있어 사상을 장미향처럼 맡을 수 있고 타이프라이터의 소음과 요리냄새를 새로운 전체로 만들 수 있는 감수성의 메커니즘으로 간주했다. 이렇게 그는 형이상시를 「통합된 감수성(unified sensibility)」이라 격찬 했다.

사실 형이상시에서의 기상(奇想 conceit)은 위에서 언급한 객관적 상관물과 몰개성이론과 큰 연관을 지어서 생각해야 한다.

이런 형이상시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 곧 기상(conceit)임을 감안할 때 이런 기상적 비유는 형이상시의 생명이요, 형이상학 세계를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문덕수 교수는 그의 저서 「오늘의 시작법」에서 ‘형이상 시는 일차적으로 형이상성, 곧 신이나 절대자의 존재 인식과 철학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시다. 이런 점에서 형이상 시는 철학적 · 종교적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 형이상의 기상과 예시

 

이런 기상적 비유를 존던의 「사랑의 연금술」 (Love Alchemy)에서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나보다 더 깊이 사랑의 광산을 팠던 사람들이여

말해보라 사랑의 행복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를

나도 사랑하고 소유하고 알아보았다

그러나 늙을 때까지 내가 사랑하고 소유하고 알아볼지라도 나는 그 숨은 신비를 발견하지 못하리라

오 그것은 모두 사기일 뿐

그 어떤 연금술사도 이직 영약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만일 연구 도중에 그에게 어떤 향기가 나는 것이나

혹은 약 같은 것이 우연히 얻었다 해서

그의 풍만한 연금 단지를 찬양하는 것처럼

그렇게 연인들도 풍요하고 긴 기쁨을 꿈꾸지만

얻는 것은 단지 겨울처럼 보이는 여름밤뿐이다』.

 

이 시에서 존던은 ‘광산을 파는 일’ 을 ‘여자를 사랑하는 일’ 로 비유하고 남녀의 사랑의 양극화 성격을 폭력적으로 결합하는 가장 완벽한 기상(conceit)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여자들에 대한 그런 남자들의 사랑이 여자들에게서 금과 같은 ‘영원하고 진실한 사랑’ 을 얻는 데 목적이 있음을 말해준다.

이 시에서 언급된 연금술은 유럽에서는 아연. 알루미늄. 등과 같은 비금속으로 금, 은과 같은 귀금속을 만들거나 또는 영약 만들기를 목표로 했고, 중국에서의 연금술은 주로 불로장생(不老長生)하거나 만병통치의 묘약 제조에 힘썼던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 신비로운 마법은 이미 신빙성을 잃었고,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존던은 이런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연금술사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묘약에 집착한 것과 같이, 남자들도 연인들의 사랑에서 긴 겨울밤에 나누는 사랑과 같은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실은 짧은 여름밤에 나누는 사랑과 같은 일시적인 사랑으로 끝날 뿐, 한갓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권용각은 그의 논문 「존던의 시에 나타난 형이상학적 기상」에서 아래와 같이 도식으로 비유적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때 「임신한 여성」은 보조관념인「풍만한 연금단지」의 원관념이지만 「임신한 여성」은 다시 한번 더 비유되어 「겨울 같은 여름밤」으로 환치(換置) 된다. 그러면서 겨울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여름밤과 같은 짧고 순간적인 사랑의 이미지를 환기시킴으로써 육체적인 사랑의 짧고 허무함을 역설해죽고 있다.

존던은 이 이외에도 부부의 관계를 컴퍼스의 두 발에 비유하여 고정된 다리를 여인의 역할로 움직이는 다리를 밖에서 활동하는 남편의 다리로 묘사한다든지, 에로스의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승화시킨다든지, 스케일 큰 사랑을 식물처럼 천천히 자라면서도 제국처럼 널리 퍼질 수 있는 「식물 같은 사랑」으로 표현함으로써 외견상 이질적인 것으로 유사성을 발견하는 등, 현대 시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더욱이 형이상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미미하나마 얼마쯤의 변형된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토양에 걸맞은 시의 특색을 가지고 서서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 특색 중 두드러진 부분은 종교적인 영역에다 더욱 강한 포인트를 두고 발전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17세기에 대두된 영국의 형이상시에서도 종교적인 신앙경험이 시 속에 용해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 형이상시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게 두드러져서 시인 자신이 갖는 종교에 따라서 그 교리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깊이 접근해 가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형이상시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오면서 모더니즘의 기교와 그 구조적인 메커니즘의 결구럭을 뛰어넘는 변용과정에서 기상(conceit)을 통한 더욱 강한 응축력과 이미지와 이미지의 조형, 내지 그 합성화의 결과로 오는 시적 회화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이론으로 인한 시의 탈구조, 탈중심, 탈언어(언어 이탈)의 경향 때문에 오는 시적 결구력의 약화와 그 결함이 형이상시의 기상(conceit)을 통해서 더욱 강한 구조적 결합을 강화시켰고 의미의 탄력성과 밀도있는 언어 질서의 구축을 실현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형이상시는 우리나라 시인의 시 중에서 두으러지게 나타난 시는 김현승의 「절대신앙」, 「마음의 집」, 김춘수의 「모자를 쓰고」, 김종삼의 「나의 본적」, 박남수의 「손」, 문덕수의 「꽃과 언어」, 박진환의 「가을 이미지」, 허영자의 「얼음과 불꽃」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김현승의 「절대신앙」과 박진환의 「가을 이미지」를 예시로 살펴보겠다.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풀어 줍니다.』

-김현승, 「절대신앙」전문 -

 

이 시에서 ‘절대신앙’을 나의 눈송이가 불꽃 속으로 뛰어들어가 녹아 나는 없어고 불꽃만 남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신앙의 본질적인 면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절대신앙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얼핏 보아서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두 개의 사물, 즉 눈송이가 불꽃 속으로 뛰어들어가 녹는 모습과 폭력적으로 결합하여 시적 기상(conceit)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적 세계와 육체적 세계, 정신세계와 사물세계를 폭력적인 결합을 통해서 융합하는 기상(Conceit)을 말한다. ’화자의 눈송이‘가 ‘절대자의 불꽃’ 속으로 뛰어 들어가 연소되어 삼켜지는 것은 절대신앙을 가진 자만이 절대자의 불꽃 속에서 자신은 사라지고 절대자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영화의 단계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김현승이 그의 신앙의 관념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감각적인 언어로 구상화하여 완벽한 시로 형상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객관적 상관물과 정서적 등가물을 발견하고 절묘하게 항이상시적 기상(conceit)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무게는

잴 수 없다

 

가을의 저울로 재기 전엔

중량은 미지수다

 

눈금에 새겨지는

순금의 순도

그런 무개와 빛깔쯤으로

낙엽은 진다

 

더러

중량미달의 낙엽 하나

그러나 그 속엔

가을 무게가 들어 있다』

 

-박진환,「가을 이미지」 잔문-

 

 

나무 잎은 뿌리에서 뽑아 올린 수분과 영양분을 탄소동화작용과 광합성작용에 의해서 열매를 맺게 하고 가을에는 마른 잎으로 떨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열매를 위해 수분과 영양분을 다 제공하고 허깨비 마른 잎으로 떨어지는 낙엽의 그 아름다운 빛깔의 미학적인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가을은 떨어지는 무게로 수확을 측량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낙엽은 열매를 맺게 하고 중량미달의 마른 잎으로 떨어지는 무게이지만 진정한 가을의 수확량의 측정은 허깨비처럼 가벼워진 낙엽의 무게와 반비례되는 상대적인 저울로만 그 무게의 의미를 잴 수 있다.

1-2연에서 낙엽의 의미가 지니고 있는 이런 자기희생의 형이하학적인 개념을 시인은 3연에서 ‘눈금에 새겨지는/ 순금의 순도/ 그런 무개와 빛깔쯤으로/ 낙엽은 진다’ 라 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고도 정신적인 중량의 척도로 그 존재 의미를 승화시키고 있다.

시인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의 풍경 속에서 가을 낙엽의 무게가 주는 정신세계와 사물세계의 병립된 의미를 발견하고 열매를 위해 다 바치고 희생함으로써 스스로 중량미달의 마른 잎으로 떨어지는 낙엽의 무게에서 가을의 모든 수확량이 지닌 무게의 의미론적인 상상을 가능케 한다. 이런 맥락에서 시인은 종연의 ‘ 더러/ 중량미달의 낙엽 하나 / 그러나 그 속엔 / 가을 무게가 들어 있다’ 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 이 시가 낙엽이라고 하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서 스스로를 희생함고 그것으로 얻어진 가을의 정신적인 가치와 물질적인 풍요를를 폭력적으로 결합시킨 형이상학적 기상(Conceit)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모더니즘이 미치지 못한 정신세계를 수용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해체한 시의 결구력을 다시 기상(Conceit)으로 더욱 견고하게 응축시킨 가장 수준 높은 시적 경지에 이른 시라 하겠다. 적어도 이 정도의 시는 형이상시의 기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박진환은 자작시 「가을의 이미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낙엽이란 사물이지만 사물의 배후에 가을을 의미론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형이하적 전경과 형이상적 후경의 구도를 지니고 있어 양극화의 시법을 동원했음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곧 시인 자신이 이 시가 형이상시의 기법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형상시의 기상(conceit)은 불교신앙에서도 그 례를 들 수 있다.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

 

-서정주『내가 돌이 되면』전문-

 

이 시는 아무런 군더더기가 없는 아주 간결하고도 전환이 빠른 시이다. 생략과 암시, 비유와 상징, 비약과 확대 등이 고도로 숙련된 기법으로 시를 함축시켰다.

나를 통해서 돌을 연상하고, 돌을 통해서 연꽃을 연상하고, 연꽃을 통해서 호수를 연상하고, 다시 호수를 통해서 연꽃을 연상하고, 연꽃을 통해서 돌을 연상하고. 돌을 통해서 나를 연상함으로써. 나로 시작해서 나로 귀의한다. 이것은 나는 돌과 같고, 돌은 연꽃과 같고, 연꽃은 호수와 같다는, 즉 자아에서 벗어나 우주의 본체로서의 참된 대아로 귀의하는 불교적 시 세계로 진입한 선시적(禪詩的) 경지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전생(輪廻轉生)이 인간계와 축생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그 윤회의 범위를 벗어나 돌이나 연꽃이나 호수 등의 사물로 확대 인식될 수도 있다. 특히 선택된 네 게의 언어인 나, 돌, 연꽃, 호수 중에서 그 중심 시어가 윤회와 환생(還生)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연꽃임을 감안할 때 이 시가 나에게서 돌로, 돌에서 연꽃으로, 연꽃에서 호수로. 그리고 다시 호수에서 연꽃으로, 연꽃에서 돌로, 돌에서 나로 윤회하는 경지를 강조하고 있음은 더욱 명확하게 해준다. 여기서 연꽃에서 윤회 환생을 의미하는 등가물의 발견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 시의 기법이 예사로운 기법에서 벗어나서 이 심오한 형이상학적인 불교의 교리가 아주 이질적이고 동떨어진 네 개의 객관적 상관물과 충돌하고 상합하면서 폭력적으로 결합된 기상(Conceit)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폭력작인 결합 과정에서 수식어는 다 생략되고 한 개의 낱말 단위로 표현된 메타포만 남아서 더욱 시의 긴장감을 더 해준다. 여기에 형이상시의 절묘한 시의 진미를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영이상시는 심오한 종교적인 교리와 정서, 그리고 철학적인 사념에 수반되는 형이상학적인 영역에서 감각적인 이미지로 구상화할 수 있는 기능 때문에 관념 일변도로 치우치기 쉬운 종교시가 기상(cconceit)을 통해서 사물 세계와 관념 세계를 아우르는, 그리하여 랜슴이 언급한 제3류형의 완벽한 시로 발돋움 하게 된다.

 

다음은 졸시 『금맥을 캔다』에서 기독교적인 형이상시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노다지를 캘 수 있는 금맥은

땅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금속탐지기로도 미치지 못한 지점에서

뜨거운 지열에 녹아 혈맥처럼 흘러야만

손끝으로 맥을 짚어 감지할 수 있다.

 

태초부터 시작한 피의 흐름은

갈보리의 심장에서 뿜어낸 더운 피로 길을 닦아

요한계시록에서는 찬란한 황금 길을 낸다.

 

우리의 몸에서 굳어버린 사랑도

말씀 안에서 생명의 불꽃으로 녹아

혈관에 흘러야만 손끝에서 금맥이 짚어지는 것

 

용광로에서 용해된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온라인으로 이어져 흐를 때

그 사랑은 영원한 길로 연결 된다.

 

우리의 굴진작업이 어둔 갱도에서

하루하루 자신의 생살을 찍어내는 길이지만

언젠가 정련된 금의 실상은

태양의 눈빛에 닿을 때 그 빛이 살아난다.

 

오늘도 우리는 황금 노다지에서

내부의 어둠을 뚫고 그날의 금맥을 캔다.』

 

이 시는 금속탐지기로도 감지되지 못하는 금맥이 뜨거운 지열에 녹아 흐를 때 손끝에서 그 금맥의 흐름을 진맥할 수 있음을 상기하면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통한 메시아의 인류구원 사역을 조명해 본 것이다.

그래서 2-3연에서『태초부터 시작한 피의 흐름은 / 갈보리의 심장에서 뿜어낸 더운 피로 길을 닦아 / 요한계시록에서는 찬란한 황금 길을 낸다.// 우리의 몸에서 굳어버린 사랑도 / 말씀 안에서 생명의 불꽃으로 녹아 / 혈관에 흘러야만 손끝에서 금맥이 짚어지는 것』이라 했다. 아담 이후 인류의 피의 흐름은 원죄로 인하여 혼탁해지고 혈관이 굳어지면서 동맥경화로 인해 멸망해가는 세상을 예수의 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의 피로 녹여줌으로써 구원의 길을 닦아 천국 가는 황금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구원의 피가 우리의 몸 안에 흐르고 있음을 손끝에서 진맥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추구하는 천국을 획득하는 황금 노다지를 캐는 일이다. 이 시에서 선악과로 인한 인류의 타락과 원죄를 낱낱이 기록한 창세기로부터 인류구원이 완성된 요한계시록의 황금길에 리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형이상시의 ‘순수한 통징’을 엿볼 수 있다.

황금도 금광석상태로 굳어있다면 노다지일 수 없다. 금광 원석이 뜨거운 용광로에서 용해되어 순금으로 정련될 때 황금의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광의 갱도에서 곡굉이로 굴진작업을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자신의 생살을 찍어내는 십자가의 고통과 불같은 시험으로 연단하는 어둔 갱도의 밤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천국에서 영혼의 태양인 메시야의 빛 앞에서 찬란한 광채를 발할 때가 온다. 그래서 5연에서 『우리의 굴진작업이 어둔 갱도에서 / 하루하루 자신의 생살을 찍어내는 길이지만 / 언젠가 정련된 금의 실상은 / 태양의 눈빛에 닿을 때 그 빛이 살아난다.』라 했다.

이 시에서 금광과 예수의 십자가의 구원사역과는 하등의 연관성이 없는 동떨어지고 이질적인 것이지만 이것들을 기발한 시적 기법을 통해서 폭력적으로 결합하여 총체적인 시적 조화를 이룩한 것이다. 이것이 기상(Conceit)이다. 형이상시는 또한 이런 중층묘사의 기법을 통해서 깊은 시의 의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 맺 는 말

 

오늘날 관념시와 사물시의 양극성을 극북하지 못하고 정함이 없이 표류하고 있는 현대시의 편향성을 형이상시가 철학과 종교 등의 관념 세계를 통합적 감수성으로 결합하고 이미지화할 수 있는 기상(conceit)의 가능성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뛰어넘지 못한 모더니즘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현대시의 모든 결함을 커버함으로써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시가 바로 형이상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형이상시의 저변확대는 이념의 갈등과 대립, 인종과 빈부 등, 고질화된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통합적 감수성으로 아우르고 순수한 통징으로 인류구원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는 형이상시야 말로 종말론적인 말세의 징조를 대비해야하는 오늘의 인류사회에 한줄기 빛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형이상시의 빛이 바로 전광석화처럼 번쩍이는 기상(Conceit)에서 발생하여 구원의 길에 이르는 순수한 통징에서 마친다. 따라서 기상은 모든 시인들이 익히고 터득해야 할 가장 긴요한 시의 기법이요 메타포라 할 수 있다.

 

형이상시가 17세기 영국에서 존던을 중심으로 대두되어 20세기에 와서 엘리엇을 중심으로 하여 재조명되고 새로운 변용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엘리엇의 그 대표적인 형이상시가 『황무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 새롭게 변용된 형이싱시가 한국에서 뿌리내리고 토착화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때가 온 줄 안다.

그리하여 평소에 형이상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형이상시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단의 거목이신 문덕수, 성찬경, 두 분 교수의 후광을 입고 박진환, 김지향, 홍문표, 김봉군. 원응순 교수 등과 필자가 ‘한국형이상시회’를 발족함으로써 종교를 초월한 21세기 한국의 토양에 걸맞은 형이상시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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