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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선물-8[박찬현]
2009-01-18 17: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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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388
추천:90

겨울이 꼬리를 감추고 아래채에 피어나던 백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던 계절, 밤새 비가 후득후득 세상을 두들길 때 목련 꽃잎들은 아주 잠간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대지로 스러진다. 대개의 봄꽃들은 싸늘한 바람에 파랗게 질린 채 개화를 했다가 곧 뒤이어 올 푸른 녹음을 위해 아름답게 져가는 안채의 마님같은 모성애이다.

햇살가득한 공간에 분분히 흩어져 내리는 꽃잎이 눈동자 위를 스쳐가는동안 수진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었다. 전화선 저 너머에서는 심한 호흡을 조절하느라 애쓰는 것 같더니 전화가 뚝 끊겼다. 뒷날 또 전화가 왔다. 그러나 역시 말없이 끊겼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났다. 수진은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고 섭외한 나부(裸 婦 )를 그리기로 했다.

6등신의 여인을 소파에 자세를 취하고 그 모습을 캔버스위로 옮겨 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인의 몸은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파헤치기 위해 수진은 여인의 벗은 모습을 한치도 남기지 않고 눈을 통해 뇌리 속으로 저장해 나갔다. 자연이 그렇듯이 유연한 곡선은 먼 산등성이와 숲의 일렁임, 계곡을 메운 허연 바위들이 여인의 둔부처럼 조화롭게 매치 되어감을 느꼈다.

 

잠시 모델에게 휴식시간을 주고 커피를 마시던 시간 휴대폰이 마구주머니에서 진동했다. 수진은 작업실 밖으로 나가서 폰을 열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올 때의 진동보다 더 요란하게 파르르 떨고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난, 너를 죽여버릴거야,”

“......,”

“내가 너를 죽일거라구,”

“왜, 감이 안 오니?”

“실례지만 누구이신지......,”

“너, 정말 이렇게 나올래!-”

“저-기요,”

“저기고 여기고 너 정말 나도 죽고 너도 죽자!”

“좀, 차근하게 설명 -”

폰 저 너머에서 격분에 못이겨 파르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동안 혼자서 퍼붓고 싶은 욕설을 죄다 퍼붓고 나서야 직성이 좀 풀렸는지 뜨듯해진 휴대폰 너머에서 서서히 말문을 열어갔다.

“이 화상이 전에는 학생들과 밀회를 하고 다니더니 이제는 강사하고 놀아 나!”

그제서야 대충 누구인지는 알겠다는 감이 닿은 수진은 말없이 그녀가 원하는대로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했다.

“네, 말씀 하세요. 전 드릴 말이 없군요.”

“남의 남자를 데리고 놀았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어!”

“당연히 입이 열 개라도 할말없고 들어 줄 일도 없지 않아?”

“어째, 이번에는 한동안 오래동안 잘 참는다 생각했지,”

“그 버릇 개주냐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참아도 보고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민혁은 그동안 그의 아내 "강희"에게 말 못할 고충을 많이 안겨다 준 삶이였다. 그리고, 강희는 민혁으로 인해 수 많은 젊은 여인들과 악다구니를 퍼가며 싸웠다. 대체적으로 그 여학생들이 기세가 등등했다하니 강희의 심상이 편치도 않았을뿐더러 일단 기선제압이고 뭐고 싸움부터 하러 들었다는 과거사 전말들을 수진은 그저 경청을 할 도리 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진에게도 강희는 일단 고성으로 성질부터 세워 밀어 부쳤다.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와 또 다른 소리는 자신의 가슴을 치는 듯 했다.

“정말, 정말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구......,”

“너무 내가 비참해......,”

그녀의 오열이 수화기를 따라 소낙비처럼 후드덕였다. 그리고, 그녀 혼자서 밤새 내리는 소나기를 모두 맞고 있는 것 같았다. 강희는 묵묵하게 들어주는 전화 선 너머 수진이 왠지 미덥게 느껴졌는지 뒤집어진 오장육부가 제 자리를 찻는듯 했다. 같은 여인으로써 가타부타 부연 발설이 없는 것으로 미뤄 보아 자신의 분노를 조금은 식혀준 시간이고, 또 자존심이 뭉개지고 모멸과 분노로 심정은 살상을 하고 싶은 여인네지만 막말을 퍼붓고 싶은 맘이 가라앉았다. 강희는 좀 전까지의 자신의 모습이 섬뜩 초라한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요, 이제는 여자를 사귀지 않은 걸루 생각했어요.”

“그동안 수상한 기미도 영 없었고-,”

“이번에도 아무런 감도 못 잡았었는데 계속 행동이 안절부절 하더군요,”

“휴대폰에 전에처럼 뭘 남겨 놓지도 않았구요.”

“그리고, 여자만의 직감 같은 것, 그것으로 좀은 이상하게 생각은 했죠.”

“아무 흔적이 없어도 그이가 제 곁에서 분명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전에 느끼지 못한 불안감, 둥지는 예 틀었어도 몸은 타 둥지에서 쉴 것 같은 조바심이 그에게서 자꾸 묻어 나오는 불안감에 휩싸여 강희는 그의 소지품들과 책상을 모조리 뒤졌으나 이렇다 할 건수는 없었지만 서랍 속에서 문득 손에 잡힌 스냅 사진 한 장이 강희의 손을 타고 심장으로 급속도로 얼어붙어 가는 냉기를 느꼈다. 왠지 뒷모습을 스냅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이 마음에서 손을 놓지 않게 했다. 분명 뒷모습이지만 뭔가 끌어당기는 알수 없는 마음바닥에서 일어나는 불안감이 그녀를 남편의 직장으로 이끌게 했고 남모르게 차를 몰고 아주 멀리서 지켜보며 그 의혹속의 뒷모습을 찾기 위한 탐색을 시작했다. 물론 하루 이틀에 캐질 일도 아니고 또 그 뒷모습 사진 한 장으로 반격할 그 무엇도 없으므로 그저 그렇게 지켜만 보았으나 그 시간이 언 한 달이 지났고 모두 헛된일이라 생각했음을 인지한 채 모든 걸 포기 했을 무렵, 그가 밤늦도록 서재에서 위스키를 마시다가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그가 그때 수진에게 걸다가 잠든 채 떨어뜨린 휴대폰에 발신 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민혁의 휴대폰에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고 싶었으나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강희는 민혁의 휴대폰을 뒤적여 여자의 번호라는 의심쩍은 육감이 들때면 강희는 주체 할 수 없는 분노에 휩쌓여 이성을 놓은채 죽음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여력을 다 해 목숨이 넘나드는 격분의 싸움을 종종 했었다. 민혁과 사귀던 여자들은 자신을 반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민혁을 부추겨 결국 가정불화로 전개되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 민혁의 입장으로서는 별것 아닌 일로 남편 얼굴에 먹칠하고 다닌다며 질색을 하며 강희를 경멸 해댔다. 그래서 전화는 일단 보류하고 번호의 주인을 알아내는 것이 빠르고 해결하기에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둘 사이를 의심해야 할 특별한 사유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잠시 그의 행동반경을 좁혀가며 조심스럽게 남편의 뒤를 밟을 생각으로 다시 처음자리로 돌아 왔다.

그녀 강희 생활상도 보통 생활사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의부증 심한 여인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 좋지 않은 오해의 각도 안에 타겟이 잡혔으나 십여 년 어린 나이에 철없이 사랑에 눈멀어 결혼을 할 당시, 오로지 민혁은 강희 하나만으로 만족한 신뢰의 약속을 철석 같이 했다. 강희는 결혼 생활이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며 사회생활까지 병행하는 철저한 조강지처였다. 그런 강희의 남편인 민혁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그 변질의 낌새를 알게 되자 강희는 회사일도 내 팽개치고 민혁의 뒤만 좇아서 그가 부정하는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커다란 사고까지 용납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사소한 여학생과의 만남에서부터 술집작부하며 오만가지를 가타부타 선을 넘고 다니고 있음이다. 그런 인생행로를 살다 보니 타인이 보는 관점에서는 멀쩡한 남편을 부인이 노심초사로 촉각을 세워 피를 말린다고 들 생각 했다.

 

수진은 강희가 그 둘 사이를 알게 된 연유를 되묻고 싶지도 않고 해서, 그녀에게 조용히 만나서 얘길 나누자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만남을 거절했다. 전에 여학생들의 기세가 이제는 신물이 났고 그 젊음 앞에서 자신이 무너지는 것이 무엇보다 싫다고 했다.

강희는 수진의 태도를 떠 보려 수진이 그림을 그리고 있던 뒷모습이 찍힌 스냅사진을 봤다고 말했다. 수진은 그 사진을 아는 바가 없었다. 강희의 묘한 발언 속에 "뒷모습이지만, 이전 그 야해빠진 작부나 여학생들과는 조금은 달라 보였다."고했다.

사실 달라보았자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차피 그녀의 가슴팎에 깊은 생채기를 남겨 놓은 것을, 그리고 달랑 사진 하나에 담긴 뒷 모습이 야해빠질 정도로 민감한 여인네들이 그다지 많지도 않을 것이고......, 수진은 강희 앞에서 죄인인 입장이고, 설사 역으로 강희가 만나고자 요구해도 처지를 논할 입장도 아니다. 수진은 무슨 말을 늘어 놓아도 변명으로 강희에게 각인 될것 같기에 수진은 강희의 입장을 고려해 그녀가 원하는 모든 요구에 관해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강희는 수진과의 일련의 대화 가운데 이미 민혁은 타인으로 서 있었다. 또한 여자의 직감으로 물증 없이 걸어 댄 전화가 놀랍게도 그동안 남편의 삶을 퍼석하게 만들어 논 장본 이란걸 안 이상 강희의 인생은 전투가 끝난 들녘의 널브러진 용기 잃은 패잔병이 된 황망한 모습이다.

 

 

수진은 나부의 모습을 마저 캔버스에 담아두기 위해 부지런히 붓길질을 했다.

여인은 살아서도 오묘함이요. 그림 속에서도 그저 오묘함이다. 하지만 작가의 심사에 따라서 그 명제는 달라짐이고 역시 여체의 진실성은 신성 할수도 요염한 요부가 될수도 있는 것이다.

 

수진은, 방종이 한남자만을 믿고 살아 온 여심을 상처내고 흠집을 주었다면, 민혁은 거듭되는 권태의 질펀한 늪에서 그날이 그날 같은 곳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수진의 바람을 잡고 매달려 있음이다. 그 바람 갈피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은 감으로 잡고는 있었으나 예상을 초월해서 우습게도 자신답지 않게 오래도록 매달려 있었으며 이제는 그것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심지를 굳혀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깊이 안주하고 싶어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갈대 같다고 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적중하지 않은 곳에서 인생을 하차하고 짐을 부려 놓고 싶은 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착시 현상일지라도 감내하고 싶었다. 평생을 죽네 사네하며 결혼을 해도 어느 날 즈음에 동지가 적이 되는 것을, 해서 그저 편안함을 추구하다보니 그 둘은 너무 멀리 까지 휘적휘적 걸어 왔다. 그래서 조금은 피곤했고, 조금은 형평이 비슷한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조적 비소를 머금기도 하고, 고독이 머물던 향내가 멀어지면 제각기 그림자를 걷우고 가던 길을 가려 했다. 피곤해서 그저 잠시 앉았다가 툴툴 털고 일어나려 했던 벤치가 의외로 편안해서 오래 좀 더 앉아 있기로 한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약속이나 한 것마냥, 그렇게 시간을 여한 없이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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