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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선물-9[박찬현]
2009-01-18 17: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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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428
추천:92

그러나 수진은 고귀해야 할 가정이란 담장 안을 송두리째 헝클고 그 둥지를 파멸시킬 권리는 자신의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의 삶을 부식 시킬만한 염산도 될 수 없으며 더 이상 그녀의 어머니가 살고 간 그 길을 수진은 거듭 밟고 가고 싶지 않았다.

수진은 자신의 어머니를 되뇌어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굳이 기억을 짚어보자면 그녀의 어머니는 안채 마님을 향한 양심의 누를 한 번도 느끼지 않고 살았으며 참으로 도도했었다. 당시 바다건너에서 유학을 했으니 배울 만큼 배운 여인이고 어찌할 도리 없이 첩실로 들어앉을 형편이 되어서 그랬지 당시만큼 그녀 어머니의 집안도 당당했었다. 그래도 타인의 가슴에 한이란 멍울을 달아 주고 살아 간 것 만큼은 수진의 어머니로서는 배제 할 수 없는 죄 많은 세월의 일이였다. 물론, 수진은 자신의 어머니가 그것을 느꼈는지 아니면 모르고 살다 갔는지 알 길은 없지만......,

 

*

안개 자욱한 새벽, 수진은 시험기간이여서 밤새 공부를 하긴 했지만 왠지 뒤채의 수빈이가 그날따라 머릿속에서 헹궈져 나가질 않고 나폴 거리는 얇은 커튼처럼 맴돌기만 했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대문 밖으로 나온 날 안개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선 벽처럼 서리서리 자욱했으며 대지는 고요했다. 그런 날 수진의 시야에 그려진 것은 자욱한 안개사이로 열려진 안채의 대문에서 남자하인 두 명이 볏섬 같은 가마니 양쪽에 통 막대를 끼워 가뿐히 들고서 집 반대편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곧 안개가 드리워 이내 그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총총히 사라져가는 그들 뒤를 따라 나와 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소리죽여 가며 오열인지 통곡인지 절망의 소리를 흘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애간장이 끊어지는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질곡의 세월이 짓 물린 허무와 아픔의 절규이며 한 많은 세월줄거리였다.

그 안개가 걷히며 청명한 옥색 아침 하늘에 수빈이 한 뜸, 한 뜸  수 놓은 것같이 하얀 백목련의 모습이였다. 하얀 백목련은 더 이상 불거진 등을 거북스럽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아주 평화스럽게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눈부신 하늘을 향해 날개 짓 도 해 보일 것이며 또 나비처럼 꽃잎으로 대지마다 내려앉아도 볼 것이고 뒷날 푸르른 목련 잎새로 다시 돋아도 날 것이다.

대지는 평화이며 육신은 감옥이였던 수빈은 자신을 올가미로 씌워 옭죄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찾아 떠났다.

안채 마님은 일생동안 번뇌와 고통을 함께 짊어 졌으나 감옥이라 명해진 집을 나서므로 거북스런 인고의 짐을 내려놓고 가벼움을 편안하게 입었다. 아마 그 이후로 마님은 사찰 출입을 자주 행보 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날에 어느 사찰로 출가를 해버렸고 그리고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곳에서 남은 여생의 그늘을 접기 위해,

 

 

수진에게 사랑은 허탈한 물욕이고. 변질되고 탈색 된 삶이다. 나서지 말아야 할 길 위에 발걸음을 놓은 것은 주변의 눈들이 좌시하지 않을 뿐더러 감당 할 처지도 없다. 아무리 사랑이란 인간 기본 욕구이며 본능이라 하지만, 수진에게는 애당초 그것이 할애되지 않은 금기의 영역이 된 구획 선상 이였다. 수진의 어머니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살았기에 온통 아픈 이들 투성인데 그녀가 또 다시 과거를 거슬러 삶을 살 순 없는 입장이란걸 누구보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진은 모든 것을 가볍게 벗으려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잘못 입었으면 깨달은 시간이 늦었을 지라도 한시 바삐 그 옷을 벗어 버려야한다. 지금 현재, 정우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이 찾아온다 해도 수진은 두 팔 벌려 반길 기력도 사유도 아무것도 없다.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하여 귀찮고 싫은 것뿐이다. 그렇다고 안채 마님처럼 사찰로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직도 여전히 하늘은 봄답게 아름답다.

수진도 간간히 아프던 몸을 침상에 널브려 놓았지만 그녀처럼 가늘고 하얀 손길이 다가왔다.

목련처럼 뻗은 가느다란 손을 잡고서 수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수빈이 아름답고 환한 미소로 수진을 내려다보고 웃고 있었다. 하늘은 온통 스카이블루 물감을 부은 듯한 공간이고 너무나 넓디넓어서 고요하다. 아무런 갈등과 미련과 아픔도 그 어떤 불 신뢰의 올가미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 수빈이 있었다. 그 새벽 아련한 목련꽃들이 막 스쳐 지나는 곳, 기분 좋은 자유로움이다.

투명 황금 햇살이 유년의 터널에 걸려있다. 수빈은 고운 모습으로 수진의 손을 잡고 그 터널을 지나 수정 알이 농익은 포도의 싱그러움처럼 빛이 여과 없이 통과되어 투명하고 주렁주렁한 길, 끝도 없이 이어진 터널을 향해 손짓한다. 수진은 침상을 벗어나 수빈의 손길 따라 수정넝쿨 터널 안으로 이끌려 어느듯 그녀는 그곳에 서 있었다.

유년의 자욱한 안개를 뒤로하고 수진은 수빈을 따라 나비처럼 폴폴 가볍게 따르고 있다.

 

 

 

 

 

 

주석:

*판도라 - 제우스가 판도라여인에게 준 상자-상자도 ‘판도라’ 라고 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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