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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향의 24시집 <발이 하는 독서> 해설/김명원(문학평론가)
2009-01-08 18:01:27
poembank21

조회:2637
추천:145
김지향 제 24 시집 '발이 하는 독서' 해설 스팸신고
 
시간이 직조하는 감각의 四季 변주곡 4악장

김 명 원 (문학평론가)

김지향 시인의 시 내외적 세월은 50년을 상회한다. 오랜 시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는 도도하면서도 면면한 지속성을 한결같이 유지하는데, 그것은 그녀의 시가 지향하는 주제가 어떤 것이 되었든, 그것들을 양식화하는 감각의 기율에 대한 섬세한 세공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인은 메시지보다 이미지의 숨결을 우선시하며, 남다르게 시의 전편에 정련되고 세련된 이미지군을 팽만하게 위치 시켜 어느 시인의 경우에서보다도 놀라운 매혹의 경지를 부여하고 있다. 사물 깊숙이 숨겨져 있는 한 톨의 빛까지 끝끝내 찾아들고, 사물 배면에 부려진 한 방울의 그림자까지 그려내는 세필의 붓끝으로 창조하는 그녀의 이미지 제작 기법은 언제라도 젊고 푸르고 싱싱하고 활력이 넘친다.
특히 24번째 상재하는 이번 시집은 계절이 가리키는 시간의 심연을 건져 올려서 반짝이며 물방울 튀기는 四季의 감각을 시원하게 선사한다. 시집의 시 배열 순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시간 흐름상 자연스러운 규범 하에서 발견하게 되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시인의 집적된 연륜은 어긋나지 않는 순리적 상황하에서 이번 시집의 시들을 전개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의 질서 속에서 정작 화폭의 휘장을 열면, 시인의 시편들은 때로는 의문사로, 때로는 감탄사로, 때로는 초록빛으로, 때로는 빨간색, 검은색, 하얀빛으로, 걷잡을 수 없으리 만치 화사하고 눈부신 이미지의 음표와 기호들로 빼곡이 붐빈다. 그러기에 그녀의 시가 연주하는 비범한 四季를 듣기 위해서 객석은 만원을 이루고, 그녀 시가 지휘하는 속도를 감지하기 위해서 독자들은 흥분한다. 그녀의 음악은 누구와도 비교를 불허하도록 새롭고 색다르게 한 해를, 그리고 시간의 엄정한 진정성을 그녀만의 비법으로 해석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연주가 시작되었다.

서주 ‘시간 속으로’, 가볍고도 사색적으로
시간은 칸트(Immanuel Kant)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가장 특수한 경험양식이다. 이는 어떠한 공간적 질서도 주어질 수 없는 인상이나 정서나 관념 등과 같은 내적 세계에 관계되기 때문에 공간보다 일반적인 경험양식이 되는 것이다. 또한 공간뿐만 아니라 因果, 實體와 같은 일반적 개념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인지된다. 아무리 혼란한 경험일지라도 그 속엔 어떤 요소들이 서로 연속하고 변화하거나 지속하고 있는 것을 쉽게 지각할 수 있는 연유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험 속에는 가장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여건으로서 繼起, 흐름, 변화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불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시간의 양상들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경험 속에는 時間的 指標(temporal index)가 찍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시간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그것이 自我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알고 있다. 소위 자아니 인격이니 하는 것은 개인의 역사를 이룩하는 순간들과 변화들의 연속을 배경으로 할 때에만 경험되고 터득된다. 한스 마이어호프, 김준오 역,『文學과 時間現象學』, 삼영사, 1987, 11-12쪽.

김지향 시인의 이번 시집 ★발이 하는 독서 ★의 제재는 단연 ‘시간’이다. 연속된 시간의 흐름이자 시간의 변화에 따른 사물들의 움직임이며, 그 활동의 저변에서 꿈틀거리는 광맥의 심상들이다.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안에서 포착되는 이미지들의 총체이며, 서로 변별력 있게 수집되는 이미지의 일체들이다. 서로 보이고 흩어지면서, 서로 느끼고 어루만지면서, 서로 변모하고 닮아가면서 그녀 자신의 시간 개념 속에서 네 개의 계절이 어떠한 추이로 완성되어지는지 살펴볼 일이다.

1악장 봄, ‘생명의 시발’, 알레그로 콘 브리오
봄은 김지향 시인에게 있어서 충일한 생명력과 관련되어 있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은 시간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하면서 시간이 배태한 시원으로서의 창조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녀 역시 계절의 첫 단계인 봄은 사물과 자아를 생산하며 개선하는 영원한 원천이라는 점에서 생성(becoming)의 시간으로 간주된다. 그러기에 이 시기의 시들은 모두 생명 이미지와 초록빛으로 채색된 색채이미지들이 활용된다. 그리고 봄을 향유하고 만끽하게 하는 질료들로는 풀꽃, 물고기, 산, 숲, 들, 봄비, 새싹, 아이들, 손주 창준이 등이 등장한다.

시간은 하루분의 파일을 열어놓고
하늘 한 필 얹어놓는다 하늘 배꼽에서
바람처럼 엎질러진 생 공기가
사방으로 몸을 찢어 뿌린다
공기가 몸을 찢을 때마다 풀씨 같은
산, 들, 강이 머리를 드러낸다

산에는 숲들이 들에는 풀꽃들이 강에는 물고기들이
눈썹을 흔들며 수만 개의 기호로 일어난다

(중략)
입주자 오지 않는 빈 문서엔
재빨리 시간의 손이 공기를 불러 온다
새로 불려온 공기는 팽팽한 배불뚝이 임부다

새로 태어난 새파란 새 우주로
빈 자리를 채워 넣기 바쁜 시간은
좀처럼 죽을 시간도 없다
-「시간은 바쁘다」부분

인용시「시간은 바쁘다」에서 시간은 하루 단위로 분절된다. 시의 1연에서 시간을 인식하기 위한 인지 과정으로서의 시간 개념은 “하루분의 파일을 열어놓”는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고, 이러한 열어 놓음의 행위는 개방의 욕구와 열린 공간성을 촉발해내는 기제로 사용된다. 다시금 생명 탄생을 고지하기 위한 배경으로 “하늘 한 필 얹어놓”자 “하늘 배꼽에서/
바람처럼 엎질러진 생 공기가/ 사방으로 몸을 찢어 뿌린다”는 다소 과장적인 표출 행동이 개시되는 것이다.
더구나 2행에서의 “하늘 배꼽”은 시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획득하는데, 여기에는 석기 시대 여신상의 모습이 관련되어 있다. 여신의 임신한 배는 언덕과 동일시되는데, 예를 들어 남서 영국 윌트셔 실버리 언덕에 있는 기념물(BC 2750년)을 살펴보면, 원형 꼭대기는 생명을 생산하는 힘이 집중되어 있는 여신의 ‘배꼽(옴팔로스, omphalos)’ 형상이다. 그리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실버리에서도 배꼽은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중심의 상징적 기능은 마치 태아가 배꼽을 통해서 자라나듯이 우주의 만물이 여신의 배꼽으로부터 창조되어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짐부타스에 의하면 그리스의 많은 화병들에 나타나는 옴팔로스의 표현은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는 여신 내부의 뱀이거나 왕관을 쓴 여신이다. 신석기 무덤의 경우에도 단면도를 살펴보면, 임신한 배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무덤 안에 있는 널따란 판에도 임신한 배와 배꼽을 상징하는 매듭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원시인들이 여신의 배를 통해 재생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영란,「원시 신화 속에 나타난 여성의 상징 미학과 여성주의 인식론의 새로운 모델」,『여성의 몸에 관한 철학적 성찰』, 철학과현실사, 2000, 70-72쪽.

그러기에 인용시에서 “하늘 배꼽”은 무한한 생명성의 구심점으로 집중된다. “하늘 배꼽”을 통해 “생 공기가/ 사방으로 몸을 찢어 뿌”려서 “공기가 몸을 찢을 때마다 풀씨 같은/ 산, 들, 강이 머리를 드러낸다”는 것이 출산의 이미지로 표출되며, 산고 후에는 “산에는 숲들이 들에는 풀꽃들이 강에는 물고기들이/ 눈썹을 흔들며 수만 개의 기호로 일어”나는 생명의 충만함이 펼쳐지는 것이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새로 불려온 공기는 팽팽한 배불뚝이 임부”로서 임신한 대지모신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잉태의 이미지들은 결국 시의 후반부에서 “새로 태어난 새파란 새 우주”로 드러나며, 겨우내 광활한 스산함이 전부이던 대기와 대지 등은 이제 봄을 맞이하여 “빈 자리를 채워 넣기”에 분주하므로 시인은 “바쁜 시간은/ 좀처럼 죽을 시간도 없다”고 술회하기에 이른다. 행복한 탄성이요, 탄생의 광대한 예고인 셈이다.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서 봄은 새로운 생명이 懷胎하고 출산되는 가이아의 이미지로 매김 되며, 여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우주 만물들은 그에게 복속된 ‘아이’로 표현된다.

미안한 듯 고개를 수그리며
어머니 몸을 뚫고 제멋대로 솟아나와
환한 세상구경을 하고 있는
앙증스런 손가락들이
땅의 얼굴을 곰보로 구겨놓고
(중략)

하룻밤 사이 수만 장의 파란
그림엽서를 땅 끝까지 펼쳐놓은 아이들.
-「봄비 그리고 새싹」부분

밤새 예고편을 거둬 넣은/ 나무들이 펼쳐놓은 스펙터클/ 푸른 터널이 덤불을 만들었다/ 지난밤 머리맡 둑길에서 버들가지들이/ 감추었던 아이들을 내놓느라/ 푸른 혈관 출렁이는 소리 내 귀에 쏟아 붓더니/ 오늘 아침 창문에 청청한 초록 지도를 그려놓았네// 앞뒤로 딱지처럼 붙어 앉은 아이들이/ 뚝. 뚝 진초록 물감을 흩뿌리며/ 사람들의 감탄사를 받아 적는 중이다/ 지금 마악 달아오른 햇볕처럼 뜨거운 산고를 치룬/ 관악산 치맛자락에 조롱조롱 매달린 새파란 아이들/ 땡볕 같은 산고 끝에 태어난 여린 아이가/ 사방천지 더 푸르고 활기찬 스펙터클을 펼치려 서둔다
-「스펙터클, 갓난 아이」부분

두 편의 인용시 모두는 봄의 화사한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봄비 그리고 새싹」은 봄비로 적셔진 대지에서 움터 오른 새싹을 가리켜 “하룻밤 사이 수만 장의 파란/ 그림엽서를 땅 끝까지 펼쳐놓은 아이들”이라고 비유하고 있으며,「스펙터클, 갓난 아이」에서도 “관악산 치맛자락에 조롱조롱 매달린 새파란 아이들”이라는 앙증맞은 은유를 통해 “땡볕 같은 산고 끝에 태어난 여린 아이가/ 사방천지 더 푸르고 활기찬 스펙터클을 펼치려 서둔다”는 맛깔스런 감흥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위의 예거한 인용시들은 모두 파란(푸른)색과 초록빛을 색채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즉 “새파란 새 우주”(「시간은 바쁘다」), “파란 그림엽서”(「봄비 그리고 새싹」), “초록 지도”, “진초록 물감”, “푸른 터널”, “푸른 혈관”과 “새파란 아이들”(「스펙터클, 갓난 아이」) 등이라는 것과 이들 시에서 여러 번 반복 강조되는 파란(푸른)색과 초록빛이 지니는 상징성이다.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색채 시지각(color vision)’에서 특정 색채는 그 대상에서 행동성이 유발되어 사람에게 자극을 전달한다고 말한다. 사실 인간은 색채와 더불어 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색을 체험하며 생활로 받아들이고 있다. 색채로 뒤덮여진 지구, 그 속에서 색채에 의해 길들여지고 훈련된 인간, 이는 이미 태초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조상을 경악하게 하고 의식을 지배한 것은 낮과 밤이었을 터이고, 황금 태양이 나타나니 세상이 온갖 형체와 색채로 드러났으며, 태양이 숨으니 세상은 캄캄한 칠흑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이질적이고 상반된 두 개의 공간에서 인식되는 색깔은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였고 순응과 적응, 반항의 양식을 갖게 하였다. 생득적 인지의 매개물로 자리 잡은 색감은 가장 원초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미감의 원리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파란(푸른)색과 초록빛이라는 색채는 아른하임에 의하면 ‘심원’과 ‘희망’과 ‘영원성’을 상징한다. 김지향 시인은 이로써 봄을 통해 생명의 발원과 영원한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했음이 드러났으며, 우주는 이제 싱그러운 초록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다. 약동감 넘치는 봄, 1악장이 연주되었다.

2악장 여름, ‘타오르는 격정의 심향’, 빠르고 격렬하게

김지향 시인에게 있어 여름은 ‘소리’로부터 유출된다. 봄에 탄생한 생명체들의 온갖 들끓는 목숨들은 여름에 이르러 소리를 발생하고, 소리를 통해 청각적인 변주의 음계를 갖추며, 활력을 띠는 동적 이미지로 거듭난다. 여름의 소리 체계를 확연하게 발생하는 생물체는 단연코 ‘매미’일 터이고, 매미의 울음 소리를 통해 자연과 도시는 연결되며, 고요한 시간대와 소음의 시간대가 이어지며, 죽음의 공간과 생생한 삶의 공간이 하나로 맺어진다.

매미가 운다 나무속에서 나무 밖으로 운다/ 돌맹이처럼 굴러다니는 소리는 어디에 있는지/ 한 개도 보이지 않는다 나무 잎사귀들이 반짝거린다/ 온 몸이 흔들린다 바람이 슬그머니 기지개를 켠다/ 하늘과 땅 경계가 흔들린다 경계에서 나온 새떼가 날아간다/ 하늘 끝으로 지워진다 구름이 치마폭을 펄럭인다 문득/ 껑충껑충 뛰어가는 바람이 등에 구름을 업고 날개를 친다/ 한 두 개비 떨어지던 비가 하늘과 땅을 허리띠로 동여맨다/ 경계가 지워진다 비속으로 열린 서랍 같은 전철이 검은 빗금을 남기며/ 수평으로 흘러간다 전철 속에서 매미가 운다 가다가 멈춘 전철에서/ 수세미처럼 비어져 나온 사람들의 발끝에서 매미가 운다/ 빨간 신호등을 짓뭉갠 차량이 매미소리를 매달고 달아난다/ 차량의 거친 발통을 붙잡고 흔들리는 파도를 타고 가는/ 교통순경의 입에서 매미가 운다 매미는 나무 밖에서 운다/ 작년에 죽은 여름이 왁자지껄, 살아난다
-「여름이 살아난다」전문

예시된 시의 도입부는 매미의 울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도 “나무 속”에서도 “나무 밖”에서도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격앙되어 반복 강조되고 있다. 이는 매미 소리의 배경이 되는 후경으로서의 소리는 “돌맹이처럼 굴러다니는 소리는 어디에 있는지/ 한 개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음향을 삭제시킴으로써 더욱 맹렬한 소리 구조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효과를 자아내게 한다. 그리하여 매미의 울음소리는 공간상의 확장을 도모하는데, 매미 소리가 얼마나 지독했으면 “하늘 끝으로 지워”지고, “경계가 지워”져서 “전철 속에서 매미가” 울고, “가다가 멈춘 전철에서/ 수세미처럼 비어져 나온 사람들의 발끝에서 매미가” 울고, “차량이 매미소리를 매달고 달아”나고, “교통순경의 입에서 매미가” 울게 된다. 사방 천지가 매미 울음소리의 도가니로 변한 것이다.
한 연구자의 발표에 의하면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느끼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일반적으로 60내지 75데시벨(dB) 정도라고 한다. 이는 대형 버스가 지나갈 때의 소음이 약 80데시벨인 것에 비교하면 꽤나 시끄러운 소리이다. 1987년 로데스대학의 빌렛은 아프리카 매미(Brevisana brevis)의 울음소리는 50cm의 거리에서 106.7데시벨, 북아메리카에 사는 두 종류의 매미(Tibicen walkeri와 T. resh)의 울음소리는 같은 거리에서 105.9데시벨의 소리를 냈다고 보고하였으며, 1995년 산본과 필립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위급한 상황이나 적이 나타났을 때 북아메리카 매미(T. walkeri)의 소리는 108.9데시벨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에 추정해 볼 때, 여름을 대표할만한 생물체인 매미와 소리의 상관관계는 더욱 뚜렷해지는 셈이다. 곧 여름하면 가장 우선적인 소음으로 영향을 끼치는 매미 울음소리가 자연히 연상되는 청각적 관성이 환기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의 말미에서 온통 매미 울음의 소리통으로 변한 도시의 경관을 “작년에 죽은 여름이 왁자지껄, 살아난다”고 부기한다. 이제 막 생명력의 크기와 넓이를 확보하여 무럭무럭 자라가고 있는 무한 욕망과 욕구를 시인은 소리로 변환시키고, 죽음에서 살아남의 전이 구조로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극치의 정서는 태양의 열기를 감내할 수 없을 지경의 곤혹과 격정으로 연결된다.

불 바늘을 쥔 땡볕이 몸속 서버에 불 주사를 놓으며 헐거워진 마음을
거머쥐고 톡 톡 두들긴다 어서 몸에 불을 심어라 심어라 다잡으며
사막 한 채로 주저앉아 있는 연소불량의 몸속을 땡볕으로 마저 태우려는
여름 한 복판 온 내면의 입을 모두 열어놓고 뚜껑 열린 시한폭탄
한 묶음 감춘 땡볕의 불쏘시개가 쳐들어온다
순간, 우주 속으로 떠오른 내 몸 수세기의 삼라만상을 한꺼번에 읽는다
1초의 속독법을 익히느라 오관 전체를 활짝 여는 찰나, 깊이 박힌 몸속
모래 산이 우주 창고로 날아 가버린

오늘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나는
새 독서법으로 새 삶을 읽어가는 중이다
-「땡볕의 불주사」부분

어제는 지붕 서까래 아래 참새가 곤한 잠을 눕혔다/ 밤새 후끈거리는 바람이 서까래를 들락거리며/ 참새의 잠을 헝클어놓았다 참새는 새끼들을 거느리고/ 허공에 까맣게 점을 찍으며 허공 밖으로 날아가고/ 까맣게 타버린 어제는 도마뱀 꼬리처럼/ 잘린 꼬리를 두고 사라졌다// 꼬리 잘려 넘어온 갈 곳 없는 어제의 꼬리위에/ 시간은 또 다시 둥지를 튼다/ 다시 햇볕을 쏟아 부어 날을 빚는다 (중략) // 까맣게 타버린 시간을 물고 참새가 날아간 하늘 서쪽은 마침내/ 온몸 운동하던 해가 마지막으로 가서 닿는 그늘 깊은 산기슭/ 댕기머리 속으로 오늘이 쏙 내려가면 동강난 꼬리를 잡고/ 내일은 또 다시 돋아 오른다/ 시간은 연속극처럼 날을 만들어낸다// (요즘 어제와 내일 사이는 후끈한 바람뿐이지만.)
-「어제와 내일 사이」부분

첫 번째 인용된 시「땡볕의 불주사」는 얼마나 태양열이 치명적이었으면 “불 바늘을 쥔 땡볕이 몸속 서버에 불 주사를 놓”는 것으로 상정되고 있다. 위협적으로 존재하는 땡볕은 “몸에 불을 심어라 심어라 다잡”으면서 “사막 한 채로 주저앉아 있는 연소불량의 몸속을 땡볕으로 마저 태우려”고 한다.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진 외기의 변화에 순응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체념 상태에 이른 것을 시인은 “온 내면의 입을 모두 열어놓고 뚜껑 열린 시한폭탄”인 셈인 “한 묶음 감춘 땡볕의 불쏘시개가 쳐들어온다”는 전투적 상황으로 고지하고서, 도전적이며 역동적인 주체인 땡볕에 굴복 당하는 “순간, 우주 속으로 떠오른 내 몸 수세기의 삼라만상을 한꺼번에 읽는다”는 인식으로 내시한다. 이는 “1초의 속독법을 익히느라 오관 전체를 활짝 여는 찰나, 깊이 박힌 몸속/ 모래 산이 우주 창고로 날아 가버린” 무의식의 경지이다. 우주 창고란 인간의 의식 세계로는 감지가 불가능한 규모 밖의 또 다른 공간이자 거대한 섭리의 영역인 것이다. 여름이 배태하고 있는 초극적인 더위와 햇볕과 폭압성은 결국 시인의 몸을 포박하고 점령하여 무의식의 경지로까지 끌고 간다. 여름은 자신을 불살라 타자들마저 불사르는 가학적 존재인 연유이다.
이렇듯 여름은 지칠 줄 모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구축해간다. 두 번 째 인용시「어제와 내일 사이」에서는「땡볕의 불주사」와는 달리 바람이 등장한다. “밤새 후끈거리는 바람이 서까래를 들락거리며/ 참새의 잠을 헝클어놓”아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참새는 새끼들을 거느리고/ 허공에 까맣게 점을 찍으며 허공 밖으로 날아가고” 말며, 정당하게 하루라는 시간을 제 기능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까맣게 타버린 어제는 도마뱀 꼬리처럼/ 잘린 꼬리를 두고 사라”지게 된다.
땡볕과 후덥지근한 바람의 방해로 생명체들은 자신들의 생리적 수순를 잃고 우왕좌왕한다. 질서는 와해되고 해체되어 왜곡된 삶으로 어긋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획득되는 색채이미지는 인용시에서처럼 “까맣게 타버린 시간”으로 도포되는 검정색이다. 검정색은 사멸 색채이며 억압의 색채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포함하는 궁극적인 색채다. 여름은 모든 생물체들이 생장점을 향해 기승하는 생명 표출의 최강점이 되는 동시에, 더위와 강압적인 기후 조건으로 인하여 죽음이라는 역설적인 반미학을 생성하므로 검정색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서 여름이 연주하는 교묘한 아이러니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게 된다.

3악장 가을, ‘익어 가는 정념의 완숙’, 차분하고 약간 느리게

이제 시인에게 가을이 오고 있다. 봄이 생명으로 충만한 계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면 여름은 못견디도록 힘겨운 땡볕과 무더위와 습도 높은 북동풍으로 인한 고투 과정이 그려졌으며, 이제 가을은 지난한 폐쇄와 배타의 시간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는 안정된 구도로 나아간다. 방만하거나 방기되었던 시간의 고삐를 잡고 새로운 감성의 중심을 찾아 복귀하는 일, 이를 두고 시인은 “지퍼를 채운다”(「불볕을 주머니에 집어넣고」)고 표현하기도 하고, “바람도 빌딩 꼭지에 꽁지를 내려놓고 쉰다”(「그리다만 가을 한 장」)고 노래하기도 한다. 결국은 모두 가을이 됨을 예시하는 방편으로서, 열려서 유출되던 감각의 지퍼를 채우는 것을 시작으로 휴식과 안도의 계절이 시작될 것임이 바람도 쉰다는 매개 이미지를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봄이 ‘시간의 자궁’에서 발아한 생명성의 모체였고 여름이 자궁에서 출산한 생명체들이 성장하는 시기였다면, 가을은 이제 고난을 벗고 안식을 생성하며 마지막 완성을 염원하는 완숙의 절정기인 것이다.
이 시기는 성숙함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생명의 수확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붉은 색채이미지가 채색된다.

몸이 싸늘한 바람을 기다리는 나무마다 지름길로 온 따끈 거리는
햇볕의 불 주사에 따끔따끔 이마가 빨갛게
익는다
(중략)
도토리 키 재기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꿈치를 쳐들고 있는 고추밭,
진 다홍 손가락을 대롱거리는 탱탱한 고추송이에 탁, 탁, 날개를 치며
고추잠자리 떼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건너편 사과밭 사과나무엔 공들여 키운 아기의 발그레한 뺨을
쓰다듬는 거치른 손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
-「그리다만 가을 한 장」부분

온정의 햇살로 지상의 과일과 야채들이 익어가고 있다. 릴케가 그의 시「가을날」에서 “과일들을 결실토록 명하시고/ 그것들에게 따뜻한 햇살의 이틀을 주시옵소서”로 읊은 것과 마찬가지로 김지향 시인 역시 “나무마다 지름길로 온 따끈 거리는/ 햇볕의 불 주사에 따끔따끔 이마가 빨갛게/ 익는” 들판과 산야의 식물들에게 퍼붓는 햇볕은 가을을 붉게 무르익게 하는 시적 중개 매체가 된다. 이는 “진 다홍 손가락을 대롱거리는 탱탱한 고추송이에 탁, 탁, 날개를 치”면서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중인 “고추잠자리 떼”와 병치되면서 고추의 색깔인 붉은 빛과 고추잠자리의 색인 빨간 색이 중첩되어 배가되는 효과를 자아낸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시인의 시선은 길 건너편까지 확대된다. 가을이라는 시간이 부려놓는 넉넉함의 풍만과 풍요는 공간상의 확장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치는 연유이다. 그러기에 붉은 색채는 길 건너에도 번져든다. “건너편 사과밭 사과나무엔 공들여 키운 아기의 발그레한 뺨”들이 가을을 향해 시간의 궁극을 도모하며 삶의 극치를 향유하기에 몰아적 붉음의 황홀한 순간으로 점입하게 한다.
지각(perception)이 자극을 인지하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시지각은 어떤 형태를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것 이상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특별한 매커니즘을 일컫는다. 색의 지각은 생리적인 현상인 동시에 감각을 통하여 하나의 감정을 일으키는 심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색채 감정은 개성이나 환경, 조건 등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작용이 본능적일 수도 있으나 대상을 통한 경험에 고유한 감정을 가질 때도 있으며 환경과 사물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 연상적인 감정이 일어난다 최영훈, 『색채의 원리와 활용』, 미진사, 2004 참조.
는 점에서 색채는 시적 감흥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색에는 온도감이 있고, 운동감이나 중량감, 경연감, 주목성, 명시도, 판독성, 강약감 등이 있다. 그리하여 색의 상징성은 색의 연상과 같은 고정된 감정이 아니라 독특한 것이 된다.

피카소가 하늘 이마에 왕방울 황소 눈을 매달았다
풀잎들이 손끝으로 황소 눈알이 머금고 있는
물감을 톡, 퉁긴다
뼈 채로 서 있는 나뭇가지에 왕방울 홍시가 열린다

하늘 이마 군데군데 얼룩처럼 빨간 칠을 한
홍시가 가을바람을 굴린다
나무들이 내는 뭉툭한 타악기 소리
-「가을, 피카소의 물감 통」부분

내 앞에 스르륵 미끄러져 온 길이/ 가득 담은 나뭇잎의 붓끝으로 빨간 시를 쓴다/ 한 자국도 옮기지 못하는 창백한 내 발등에/ 마음 아린 나뭇잎이 쯧. 쯧. 쯧. 혀를 차며/ 나뭇잎 사이사이 초롱꽃처럼 달랑거리는/ 수은등을 끌어와 불빛 같은 시를 붓는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온 우주에 시를 쓴다/ 하늘에다 땅에다 사람의 몸에다/ 빨간 시를 쓴다)// 블랙홀에서 불어온 먼지바람에도/ 돌담 위에도 터널 속에도 주렁주렁/ 시가 익어간다/ 사람들은 숨차게 뛰어온 삶의 굴레를 벗어/ 가을의 가지에 걸어놓고/ 가을 내 시를 읽다가 스스로 시가 되어버린다
-「나뭇잎이 시를 쓴다」부분

시인에게 있어서 가을의 색채 지각은 시종일관 붉은 색감과 원형 감각으로 표출된다. 첫 번째 인용된 시「가을, 피카소의 물감 통」에서 가을은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로 그려진다. 시적 화자는 가을이 무르익는 어느 날 감나무가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꽃보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열매의 고혹스러운 신비감에 매료되었을 것이며, 그것을 일컬어 “풀잎들이 손끝으로 황소 눈알이 머금고 있는/ 물감을 톡, 퉁긴다”고 설파한다. 왜냐하면 감나무의 진홍빛 점묘는 누군가의 손길로 터트려진 물감의 흐드러진 원형 방울들일 터이고, 그러한 싱그러운 방울들은 “뼈 채로 서 있는 나뭇가지에 왕방울 홍시가 열”리는 모습이며, 방순하리만치 눈 시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본다면 “얼룩처럼 빨간 칠을 한” 경우일 것이며, 이러한 “홍시가 가을바람을 굴”리면서 동요를 일으키어 적잖은 시적 파동을 몰고 오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번 째 인용시「나뭇잎이 시를 쓴다」에서 어떻게 가을의 심상들이 집적되어 시가 탄생되는 지를 주목하게 한다. 봄 내내, 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 내내 지켜왔던 시간의 길들이 이제는 열매로 수확되고 노고의 결실로 완성되었기에, 시적 화자는 “내 앞에 스르륵 미끄러져 온 길이/ 가득 담은 나뭇잎의 붓끝으로 빨간 시를 쓴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詩作이란 시간에 이르는 표표한 과정이 아니던가? 갈급하고 애저린 기다림과 고통을 관통하고 내다 거는 한 줄기 불빛이 아니던가. 이를 두고 시인은 “블랙홀에서 불어온 먼지바람에도/ 돌담 위에도 터널 속에도 주렁주렁/ 시가 익어간다”고 노래한다. 우주의 미궁 속 시원에서 발현한 시간 감각은 내세의 돌담이나 터널, 어떠한 보편적인 공간과 양식에서도 존재하기에 “사람들은 숨차게 뛰어온 삶의 굴레를 벗어/ 가을의 가지에 걸어놓고/ 가을 내 시를 읽다가 스스로 시가 되어버린다”고 자인하며 이미 시로 거듭 추수되었음을 축송하는 것이다. 시간은 가장 완숙한 계절 가을에서 집결되고, 그 가을의 최후에서 절명의 시를 쓰게 하며, 그 시를 부르다가 우리 모두는 다 같이 시 자체가 되어버린다. 본질이 뒤섞이고 존재가 혼효하면서, 가을과 시와 시인과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된다.

4악장 겨울, ‘시간의 무시간성, 비워내는 적요’, 느리고 장엄하게

四季의 끝에 이르렀다. 항시 ‘끝’에는 안도와 회환과 불안이 있다. 더 이상의 기다림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희망이 없기에 늘 ‘끝’은 외롭고 음울하다. 그러기에 마지막 계절은 침묵을 조장한다. 너무 많은 시간을 걸어왔기에, 너무 긴 감성을 소모했기에, 한 해를 소요한 네 가지의 계절을 나름대로 충분히 음미했기에, 그리고 그 때마다 시창작에 심혈을 기울였기에 시인은 이제 자신을 내려놓고 시간을 멈추게 한 채 안거에 든다. 사위는 고요하고 생명을 거두어들인 대지는 적요하다. 바야흐로 겨울이 된 것이다.

하늘 몸이 흔들린다
바람살은 실티처럼 찢겨져
흰 피를 뿌리며 앞산 머리 뒤로 숨는다

(중략)

몸을 감춘 바람이 전깃줄에 휘감겨
줄 끊어진 낙하산으로 내려앉는다
온 땅이 내는 소리를 뒤덮는다

겨울 한낮
세상은 높낮이를 지운 하얀 몸으로 길게
한 줄로 조용조용 얼어붙는
-「어떤 겨울날 1」부분

(겨울은 시체들을 품고 있는 공동묘지인가/ 스스로가 만든 묘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겨울은 휴식을 즐기는 평화주의자인가)// 아래위로 새하얀 머리칼을 나부끼며 바람이 뛰어 든다/ 바람의 머리칼 위로 실구름 같은 그림자를 접고 새하얀/ 하늘 새떼 솜뭉치 틈새로 하늘에 갈아 앉는다// 겨울은 바람의 센 머리칼과 하늘 새의 실구름 날개가/ 가로 새로 짜깁기로 여는 흰빛의 그림 한 폭/ 펼쳐놓고 다문 입술에 붓을 끼운 행위예술인가
-「어떤 겨울날 2」부분

예시된 시 두 편 모두에서는 눈 나리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눈이 내려 휘광이 드리워져 눈부신 경치가 조장되었다는, 단순하게 감상이 두드러지는 풍경시들이 아니다.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내장된 시각으로 세심하게 그려내는 세밀화도 아니다. 오히려 겨울의 눈 나리는 풍광에 대한 따뜻한 정서는 삭제되었거나 유폐된 것으로 보인다. 시 「어떤 겨울날 1」에서 눈 나리는 모습은 “하늘 몸이 흔들”리고, “바람살은 실티처럼 찢겨져/ 흰 피를 뿌리며 앞산 머리 뒤로 숨는” 것으로써 죽음으로 표상되고 있으며, 중심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동사들 역시 모두 다 퇴락과 관계가 있다. 예를 들자면, “숨는다”, “내려앉는다”, “뒤덮는다”, 그리고 “얼어붙는” 등의 동작들은 모두 비활동적이며 폐쇄적인 의미망을 구축하는 연유이다.
겨울이 부여하는 신산함과 핍진함이 교직하는 풍경은 시「어떤 겨울날 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겨울은 시체들을 품고 있는 공동묘지”로 인식되거나 “스스로가 만든 묘지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평화주의자”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겨울은 시인에게 하얀 색감으로 다가온다. 하얀 색채는 모든 색을 발산하는 색체계의 기본 색채로 모든 색을 수렴하는 검은 색과는 대비 구조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왜냐하면 여름은 온갖 생명의 구성 요소를 흡수하고 흡인해야만 가능한 성장의 계절이므로 검정 색채가 선택되었다면, 겨울은 이제 모든 생명들과의 이별을 염두에 두었기에 모든 색채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져야 했던 설정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새하얀/ 하늘”과 “흰빛의 그림 한 폭”이 겨울 이미지로 축조되는 것이다.
이제 시인은 四季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그것은 시간의 길이 안내하는 공간 속에서 부려지는 시 작업이었다. 시인은 어렵지 않게 접하는 일상의 사물들에게서 새롭고도 고유한 의미를 발견해 냄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빛나게 완결시켰다. 시인만의 특이한 발견 속에서 직조된 시간은 시인만의 시 속에서 축복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구현된 시인의 감각은 현상이 드러내는 형상들에 이미 구속받지 않게 되었다. 이제 시인은 자유로우며, 자신과 시와 계절과 삶을 투명하게 넘나든다.

시계가 걸어온 길을 펴 본다/ 햇볕이 콩콩 발자국을 찍는 두루마리를 열면/ 이미 삭아 파삭한 뼈로 누워있는 평발 길/ 뼈 위에 머리 없는 몸통만 앉아있는 반 토막길/ 몇 갈래의 길이 새끼줄처럼 꼬여 나온다// (중략) 열매가/ 되지못한 열매를 향해 날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의 시계의 길 쉬지 않고/ 걸어도 발병이 안 나는 시계의 길// 나는 가끔 시계의 길을 열어보며/ 길의 거울에 내 몸 전체를 검진해 본다
-「시계의 길, 두루마리」부분

밤에 홀로 별을 쳐다보면 생각나는
타다 남은 추억 몇 송이 간추린다
사람은 마음을 열고 뒤돌아볼 때 그때가
우주와 합일되는 무소유의 극점임을 깨닫는다
그 합일의 무소유를 지상에 새기는 순간
사람은 다른 하늘로 호명되어 간다
-「아직은 안 보이는」부분

남은 지상 사람들아,
공간 밖 공간을 쳐다봐라
새로 돋은 새 풀처럼 톡 톡 머리들이 튀어나와 있지!
겉옷을 벗어둔 지상은 이미 눈동자 빠진 허공일 뿐
내일이면 없어질 구멍 뚫린 항아리일 뿐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수명 다한 낡은 잡기장 같은
지상을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하며 떠나간 사람들을 기다린다
또 다시 생기발랄한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공간 밖 공간」부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부려놓는 사계절의 시간은「시계의 길, 두루마리」에서 묘파한 바와 같이 “시계의 길”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시간이 지칭하는 영역을 벗어나 있다. 3월이면 봄, 6월이면 여름, 9월이면 가을이고 12월이면 겨울인 식의 단순 기제로서 시계의 사명감, 즉 “쉬지 않고/ 걸어도 발병이 안 나는 시계의 길”로 점검되는 시간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여 감각으로 수용하는 자연의 시간으로 이미 시인에게는 시로서 환치된 이유이다. 그러하기에 이제 김지향 시인의 四季는 시간의 언어가 아니라 자연의 언어로 전이된다. 자연의 언어는 시간과 합치된 시점에서 출현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지양하거나 시간을 견디거나 시간을 초월하면서 존재하기도 한다. 여기에 시인이 견지하는 시간으로서의 四季의 의미가 위치한다.
또한 자연의 시간과 자연의 언어는 인간과 합일하여 인생의 언어를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는 추억이나 회상, 그리움과도 같은 과거로 되감기는 인생의 언어가 놓이기도 하며, 희망이나 꿈, 동경과도 같은 미래를 예견하는 인생의 언어가 생성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언어에는 과거를 향한 성찰의 언어가 틈입하며, 미래의 도래를 설레도록 기다리는 풋언어가 내재한다. 그리고 현재의 언어는 과거와 미래를 함축하면서 진화된 현재의 언어로 다시금 탄생한다. 시「아직은 안 보이는」은 이런 점에서 시인에게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죽음을 동시에 현재로서 아우른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한다. 시인은 밤의 시간에 “타다 남은 추억 몇 송이”를 꺼내보면서 “사람은 마음을 열고 뒤돌아볼 때 그때가/ 우주와 합일되는 무소유의 극점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순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접점인 순간이 된다. 왜냐하면 시인은 “그 합일의 무소유를 지상에 새기는 순간”이 “다른 하늘로 호명되어”가는 순간이라고 새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용시「공간 밖 공간」에서 시인은 죽음을 넘어서는 미래에의 초시간적 시간에 역점을 둔다. 반성적 존재로서의 사람들은 “수명 다한 낡은 잡기장 같은/ 지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반면에 “또 다시 생기발랄한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순환적인 열망을 간직한 미래지향적 존재들인 연유이다. 과거의 삶은 현재의 근원이 되며, 현재는 미래를 기다리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김지향 시인이 발원하는 세계가 드러나는 셈이다. 이는 시간적 현존재로서의 인간이 종래 추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회억과 과거를 답지한 채 희망의 무시간적 미래로 기투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시적 자아가 염원해 왔던 四季의 아름다움과 그 본질이 함의한 인생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계절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무수히 변환하며, 김지향 시인이 감각으로 직조해낸, 눈부신 四季의 변주곡은 우리의 문학 속에서 영원히 연주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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