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문인글방_소설
HOME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등업신청/기타문의]
로그인 회원가입
회원가입
   

한국문학방송은 지상파방송 장기근무경력 출신이 직접 영상제작 및 운영합니다
§사이트맵§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문인.com 개인서재
 

DSB 문인 북마크페이지

전자책 출간작가 인명록



시조
동시
영시
동화
수필
소설
평론
추천시
추천글
한국漢詩
중국漢詩
문학이론


DSB 앤솔러지 제7집


DSB 앤솔러지 제6집


DSB 앤솔러지 제5집


DSB 앤솔러지 제4집


DSB 앤솔러지 제3집



[▼DSB 앤솔러지 종합]
 



홈메인 > 문인글방_소설 > 상세보기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판매정산 페이지
도서판매/온라인강좌

전자책 제작·판매·구매의 모든 것

사이버문학관


이곳은 문학방송 정회원(문인회원)의 글방[소설방]입니다
(2016.01.01 이후)


길없는 길을 찾아서(소설)
2009-01-05 16:31:22
예외석

조회:1551
추천:91
첨부파일 :  1231140682-45.hwp

 

 

길 없는 길을 찾아서

                                                                                                   

 예외석


*


"행님 지장보살 할래요?" 천수는 알 수 없는 말을 주절거렸다. 잠꼬대려니 하면서도 천수가 한 말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행님 소리를 듣네예" 노식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저 녀석이 내가 소리를 듣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새벽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법당에서는 예불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3시 50분. 한여름인데도 산사의 새벽공기는 한겨울처럼 한기가 느껴지도록 오싹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세면장으로 가서 조심스레 고양이 세수를 했다. 그러다 세숫대야에 머리를 푹 담그고 물을 격렬하게 한바탕 튀겼다. 한참 후에야 물이 너무 차가워서 머리가 깨질 듯한 아픔을 느끼며 수건으로 닦아냈다.


한낮의 뜨겁고 괴롭던 기온과는 달리 새벽의 공기는 차가웠다. 몸을 한바탕 부르르 떨고 나서 가슴속까지 시원함을 느꼈다. 여기서 가까운 마산에서는 이런 기분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었다. 법당으로 향하면서도 귓가에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에 진저리를 쳤다. "저 소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힐 것인가."


법당에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니 예불을 올리는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앰프를 통해 나오는 흘러나오는 소리는 원광스님의 귀신을 쫒는다는 주문소리라고 했다. 이 무슨 해괴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마음이 움찔해지기도 했다.


훨씬 나중에야 그 알 수 없는 독경 소리가 불교의 천수경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불교의 상식이 없었던 노식은 그 소리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법당에서 절을 할수록 귓가에 들리던 소리들은 차츰 멀어져 가기 시작했고 최후의 발악을 하며 아우성을 치는 소리들을 들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기 시작할 무렵 새벽예불은 끝이 났고, 날은 어느새 훤하게 밝아져 오고 있었다.

"내가 정말 정신이 어떻게 홱가닥 한 것인가?" 노식은 자신에게 몇 번이나 되물어 보아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미쳐? 난 그저 미친 척만 했을 뿐이야. 그저 쇼에 불과한 것이었어, 난 그저 좀 쉬고 싶을 뿐이야. 난 미치지 않았어." 몇 번이나 자신에게 거듭 다짐하고 다짐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또다시 귓가에 그 소리들은 다시금 들리기 시작했다.


법당 건물 한쪽 귀퉁이에 무언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천수였다. 그러고 보니 새벽예불 훨씬 이전부터 천수가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밤새 잠도 자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서 있었던 모양이다. 천수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력은 멀쩡한 상태였다. 이 절에 오게 된 것은 정신적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요양을 오게 된 것이었다.


노식은 가만히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이 절에 오게 된 계기도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었고 자의든 타의든 문제의 병을 고쳐볼 요량으로 절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러면 나도 "또라이"란 말인가? 아니야, 나는 저 천수와는 달라. 나는 "또라이"가 아니야..."


산사의 여름은 낮에는 수양자들과 보살들이 밭에 일하러 가고 없었다. 정신이 대체로 온전한 요양자들은 강당에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중 나이가 지긋한 김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전직이 목수였다고 한다. 자신의 기술로 틈틈이 강당의 마룻바닥을 손질해주고 있었다. 김씨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가 지루한 산사의 시간을 때워주는 유일한 낙이었다.


김씨의 이야기보따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였다. 말하는 투로 보면 젊은 시절에 한가락 했을 난봉꾼인 것도 같았다. 장군이라는 젊은 청년은 겉보기에는 시골 농사꾼 같은 순박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눈빛은 특이하게 아주 강했다. 장군의 이야기에는 정신의학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했고,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대단히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았다.


장군은 철학과 사상, 정치 분야에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의 병명은 정신분열증이라고 했다.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 자신의 병의 원인은 편집증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생각을 집중하게 되면 그 생각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서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다른 생각들이 새끼를 쳐서 머리와 마음속에 계속 집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그 집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자리 잡게 되면 곧바로 분열증상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사물을 관찰하는 기준이 두개, 세 개로 나누어지면 정신도 두개, 세 개로 분열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환청과 환상이 보이게 되고 현실과 이상이 겹치면서 현실감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대인관계에서 오는 신경성 불안증세로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생들이나 직장 내 집단따돌림 같은 것이 있다.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어 심하면 우울증이나 정신분열 증세로까지 발전한다는 것이다. 노식은 자신의 증세와 비슷함을 느끼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들었다. 모든 것은 스트레스와 직접 연관이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과는 일단, 벗어나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동료관계 또는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심과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열등감, 이 모든 것을 벗어 던져버리고 자유로워져야 병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같이 쉬운 일인가. 노식이 그 동안 모질게 버텨온 것도 사실은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바로 그것이 주원인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장 존귀한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모든 우주 만물의 중심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기, 흙, 바람, 나무 하나 하나에도 나라는 존재와 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이다. 그날 노식은 강당 한 모퉁이의 낡은 책장 속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제목이 "나는 누구인가"였다.


어느새 한낮에도 가슴속까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노식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종달새의 지저귐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들었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빠, 오늘 일찍 오세요..." 아내와 두 아이들은 해맑은 미소로 노식을 향해서 두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지난여름 그 베란다에서 노식은 죽음을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


참 오랫동안 노동현장을 떠나 있었다. 치열하게 살아 온 20여 년 동안 인생의 밑바닥부터 책상머리에 오기까지 별의별 일들이 많았다. 짧게는 3일에서 3개월, 6개월 만에 그만둔 직장들이 눈앞에 스쳐간다. 현장을 떠나 책상 앞에서 근무한 지가 햇수로 6년째다.

열아홉 살 여름, 이글거리는 폭염 속에 면접을 보러 간 곳이 철도차량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필기시험을 대충 본 후 실기시험에서 용접봉을 몇 개 태웠다. 그러면서 면접 때문에 입고 간 옷에 구멍이 숭숭 나고 말았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노가다 하는 공장에서 무슨 얼어 죽을 면접이야 땜질만 잘하면 장땡이지.”

노식은 그렇게 직장생활을 용접공으로 시작하였다. 1984년 여름이었다. 공장이 막 신설되어 노동자들의 고향이 전국구였다. 팔도 사나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동고동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철을 다루는 공장이어서 사람들의 성질들이 대부분 거칠었다. 특히 조선소에서 올라 온 노동자들은 한마디로 싸움닭 같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곳이 정문 경비실이었다. 그곳에 근무하는 경비들은 마치 군대 헌병들처럼 복장을 갖추고 위압감을 주었다. 대부분이 해병대 출신이라고 하였다. 그 때에는 노동자들의 출근 복장이나 두발까지도 일일이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두발은 무조건 스포츠형 머리로 깎도록 은근히 강요하기도 했었다.


그 시절 현장에서의 위계질서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군대처럼 선배들에게 철저히 복종해야만 일을 배울 수가 있었다. 80년대에는 어느 현장이나 비슷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로 작업 도중 망치나 스패너, 화이버(안전모)가 날아다니기도 했고, 주먹질이나 발길질은 예사였다.


하루 일과를 아침 조회로 시작했는데, 이 조회란 것이 또 가관이다. 출근하면 작업복 갈아입고 광장에 모였는데 이 광장을 관리자들은 연병장이라고 불렀다. 연병장에 집합해 전체가 공장외곽을 따라 두 바퀴씩 돌면서 군가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국민체조를 마치고 군대식 점호를 취했었다.


한 달 간의 교육을 마친 후 배치 된 곳은 전차를 조립하는 공장이었다. ‘레이스링’이라고 부르는 전차포탑을 조립하는 곳이었다. 특수 작업이었기에 모든 도면과 용어를 영어로 사용하고 있었다. 공고를 막 졸업한 노식과 동기들은 쉽게 적응이 되었지만, 산업현장에서 오랫동안 경험으로 일 해 왔던 선배들은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팔도 사나이들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퇴근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막걸리 한잔 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물결을 헤치고 숲길을 따라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거제 조선소에서 올라온 같은 반 형님을 따라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자주 먹었었다. 지금 포장마차가 있던 숲길 그 자리는 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노식이 그 공장을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평소에 같이 근무하던 제관반 근무자가 사사건건 선배라고 행패를 부렸다. 그런 것은 현장의 관행처럼 받아들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그 인간이 볼일이 급하면 화장실에 갔다 오면 될 것을 귀찮다고 탈의장 뒤편에서 쓰레받기에다 볼일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쓰레받기에 담긴 이물질(?)을 받아서 화장실에 버리려고 가다 그만 다른 사람에게 걸리고 말았었다.


쓰레받기로 발길질이 날아왔다. “ 이 새끼 이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야 요 존만한 새끼가 겁 대가리를 상실했네. 쓰레받기에다가 오줌 누는 것은 어디에서 배워 처먹었어?”노식의 작업복은 오물로 더럽혀지고 말았다. 그 순간 참고 있었던 성질이 치받고 올라오고 말았다. 느물거리던 그 인간의 면상에다 확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박치기를 하고 나니 손, 발이 제 마음대로 나가는 것이었다. 뒤엉켜 두 사람의 얼굴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결국 어이없는 사건으로 1년도 채 못 되어서 첫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그 뒤 10여 년을 이리저리 방황하고 말았었다. 중간에 요행으로 들어간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갔다 온 후 전전한 직종이 50여 가지는 될 성 싶다. 지하 막장에까지 가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그나마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 게 항공기 조립기술이었다.            


항공과 인연을 맺은 경력이 잡동사니까지 끌어 모아보니 7년 정도가 나왔다. 그 잡동사니란 것은 영세하청 중소기업에서의 하루살이 경력까지도 포함된 것이다. 그 혹독했던 IMF 때도 항공경력사원을 모집하는 업체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도 난 업체의 찌꺼기 물량을 처리하지 못해 억지로 설립한 공장이었다.


어찌 되었던 그 공장에 억지로 머리를 박고 디밀었다. 두 차례나 서류전형에서 탈락했지만, 계속 담당자를 물고 늘어지며 귀찮도록 전화질을 해 대었다. “이번에는 안 되더라도 다음에 모집이 있으면 꼭 좀 연락 주이소...” 하루에 한번 씩은 해댔을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든가 드디어 연락이 왔었다.


1997년 겨울이었다. 그 혹독했던 IMF 한파 속에서 그 해 겨울은 더 춥게 느껴졌다. 마산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첫 발걸음을 딱 떼는 순간 더 이상 발걸음이 옮겨지질 않았다. 너무 추워서 온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고 아래 위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억지로 걸음을 옮기니 손발이 따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계동 본사 사옥에 도착했다. 어색한 양복과 몸을 억지로 추스르고 마음을 다잡았다. 되던 안 되던 자신감을 갖고 박치기하자. 누군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긴장된 마음으로 대기하면서 며칠 간 달달 외우다시피 했던 항공조립기술책의 내용들을 떠올렸다. 현장기술사원을 채용하는 면접에서는 일반적인 질문보다 틀림없이 기술적인 질문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사실, 7 년 동안 잡다하게 항공과 인연을 맺어 왔지만 현장경력은 실제로 짧은 기간이었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책을 후벼 파게 된 것이다.


여러 면접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이 기술적인 내용들을 질문했었다. 이런 행운이 있을까. 노식은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였다.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술술 답변하니 면접관들이 아주 흡족한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면접은 그동안 여러 수십 차례에 걸쳐 보아왔기 때문에 일상적인 행위처럼 몸에 익숙해져 있었다. 지금 직장은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되었었다.


오랫동안 손에서 떨어져 있었던 에어드릴과 해머를 잡으니 감각이 오지 않았다. 도면은 또 가물거리기만 할 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검은 것은 글이요 흰 것은 종이일 뿐. 모를 때는 그저 동료들에게 묻고 후벼 파는 길 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사격에 서툰 총잡이가 총을 잡았으니 그 사격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구멍을 뚫으면 불량이요 박으면 골통이다. 몸과 마음이 괴로운 시간이 6개월 정도 지나갔다. 현장에서 딱 6개월을 보내니 휘바람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

               

항공과 인연을 맺는 동안 한 중소기업에서의 아픈 기억도 있었다. 그 때에는 관리자로 근무를 했었다. 당시 현장의 작업환경과 임금, 복지 그리고 인간적인 처우는 한마디로 표현해서 사람을 짐승처럼 다루었다. 중소기업에서 뭐 그리 기대할 것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최소한의 인권마저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독한 유해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서 기본적인 안전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작업관리도 엉망이었다. 항공기 날개의 페인트를 벗기는 작업에는 ‘리무버’라는 독한 유기용제가 사용되었다. 그것은 선진국에서조차 규제를 받는 독성물질이었는데도 사업주와 간부들은 안전보호구조차 지급하지 않고 작업을 시켰었다. 그 물질을 오랫동안 공기로 흡입하면 중추신경이 마비가 되고 남자들은 성기능에 장애가 오게 되는 무서운 것이었다.


어느 날  퇴근 후 자주 가던 식당에서 작업자들과 소주를 마시면서 그들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새벽마다 빳빳하게 힘을 발휘하던 물건이 요즘 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메스껍고 머리가 아픈 증상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임금문제라든지 급한 사정이 있어서 월차 한번 쓰는데도 한참동안 일장연설을 들으며 벌 아닌 벌을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인 그들의 물건이 말을 듣지 않는다니.


다음 날, 입사동기인 김과장에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검토해서 대책을 찾아보자고 회의를 하였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할 뿐 별 다른 대책이 나오질 않았다. 그날 오후 노식은 이 부장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보았지만, 짜증스러운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누가 그런 소릴 해? 어떤 자식이야? 촌놈의 새끼들이 취직도 못하고 빌빌거리던 것들을 밥 먹고 살게 해 주니까 이제 와서 딴 소리야? 못된 짓 하고 다니고 딸딸이를 많이 치니까 물건이 망가지지”


“밥...” 그것도 밥이라고? 월급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원래 그 공장은 화장실 변기를 생산하던 요업공장이 부도가 나 폐허가 된 공장을 임대 얻은 것이다. 사업 초창기에 귀신 나올 것 같았던 공장에 들어가 보니 다 허물어져가는 가마에다 기계설비는 녹이 슬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곳을 관리자들과 현장 조, 반장들이 곡괭이, 삽 그리고 해머 등을 가지고 직접 뒤집어엎었다.


겨울 내내 얼어붙은 바닥을 까고 뒤집으면서 모두가 손바닥이 쩍쩍 갈라 터졌다. 협력업체들 중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해 주겠다고 하더니 노가다가 웬 말인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허름하지만 얼추 공장 같은 모양새를 갖추어 놓았다. 노식과 동료 한 사람은 겨울 내내 노가다를 하다가 허리 병이 생기고 말았다. 시설물을 철거하다가 다친 것이 10여 년이나 지난 지금도 가끔 통증이 찾아올 때가 있다.


겨울 지나서 꽃피는 봄이 와도 노식은 계절 감각이 없어져 버렸다. 봄철 내내 또다시 공장 바닥 페인트칠을 직접 하고 잡다한 시설물들을 갖추었다. 그런대로 모양새를 꾸며놓고 경력사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내었다. 그러나 공장이 워낙 시골구석에 있는데다 출퇴근 차량도 없어 지원자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인근지방의 기술 없는 사람들을 채용해서 교육시키기로 하였다.


초창기부터 공장을 그렇게 시작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어느 정도 숙련이 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당연히 임금을 올려주어야 했다. 그러나 해가 지나가도 임금은 올려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해 겨울 국회에서는 노동법 개악 안이 날치기로 통과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엄청남 정리해고의 회오리가 불고 말았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이었다.


그 당시 노식이 다니던 성당에서 신부님이 차량용 스티커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뽑았습니다.”는 내용의 부착물이었다. 노식도 당연히 그것을 내 차에 붙이고 다녔다. 당시 공장에서 신분이 관리자였지만, 노식은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저항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동료 관리자들과 윗사람들에게는 정신이 이상한 놈 또는 ‘또라이’ 같이 인식되었을 것이다.


사장은 종교가 같아서인지 말이 없었으나 보는 눈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부장이라는 사람은 대통령이 자기와 같은 기독교 신자이고 그것을 그렇게 자랑삼아 떠벌리기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보자 눈이 돌아가는 것이었다.“별 또라이 같은 새끼들이 미친 짓거리들을 하고 있어 밥 먹고 살게 해 주니까 이것들이 지금 하는 짓거리가 제정신이야?” 그 인간은 당시에 교회 집사로 있더니 지금은 장로님이란다.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지난 초여름 날이었다. 그날 회의 때 슬레이트 건물공장에서 지난여름과 겨울 내내 고생했던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회식을 한번 하자고 제안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부장의 짜증스런 답변만 나왔다. “회식은 무슨 얼어 죽을 회식이야, 안 그래도 요즘 돈이 없어 죽겠구만. 지들끼리 처먹던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해.”   


노식은 김 과장을 구슬려 회식비를 반타작 하자고 했다. 노식과 김 과장 둘이서 3분의 2를 부담하고 나머지 모자라는 금액은 조금씩 십시일반 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삼거리 식당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다. 술이 몇 잔씩 거나하게 돌자 작업자들은 하나 둘 마음속에 있던 불만들을 털어놓았다.


“월급봉투를 보니까 왜 기본급 안에다가 월차수당을 포함시켜 놓았느냐”, “잔업수당은 1.5배로 계산해 주어야 하는데 왜 지들 마음대로 계산을 해 놓았느냐”, “작업장에 환풍기가 없으니까 유기용제를 사용하는데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 대책을 좀 세워 달라”는 등의 하소연들이었다. 전혀 부당한 요구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인상을 있는 대로 팍 쓰면서 “그런 것 다 들어주는 회사는 없다. 그나마 우리 회사에서 여러분들을 최대한 배려해서 잘해주려고 한다.”는 황당한 대답을 나불거렸다. 노식이 눈치를 주어도 안하무인이다.


작업자들의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마디 꺼냈다. “여러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의견들은 잘 들어보았다. 그런 생각들은 여러분들이 하기 이전에 나도 회사에 대한 감정들이 별로 좋지는 않다. 하지만 당장에 모든 것을 해결하기 보다는 차근차근 하나씩 건의해서 같이 한번 고민하고 해결해 보도록 하자.” 그러나 김 과장은 여전히 인상을 쓰면서 노식을 쳐다보았다.


김 과장이 밖에 나가 담배 한대 피우며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작업자들한테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왜 하냐? 그런다고 이부장이 들어줄 것 같나? 사장한테는 아예 말도 못하게 할 텐데.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고 월급만 받아 가면 되지 괜히 나서서 욕 얻어먹을 필요 없지 않냐.” 그래도 이놈은 동기라고 마음이 통할 줄 알았는데 한 수 더 뜬다. 그래도 한 번 더 작업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자고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내일부터 작업거부하고 제끼자는  것이었다. 이건 파업도 아니고 태업도 아닌 것이 뭐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분위기가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김 과장은 사태를 짐작하고 한마디 하면서 먼저 일어섰다.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할 테니 생각들을 잘 해보고 결정을 내려라,”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렸다.


어차피 한번은 부딪쳐야 할 일이었다. 차라리 매를 맞을 거면 같이 맞자는 판단이 들었다. “여러분이 그렇다면 내가 함께 동행 하면 안 될까? 나도 회사에 이런 저런 건의 할 것이 많은데 그러면 내일 하루 같이 제끼고 놀러나 가자. 나도 머리나 좀 식혀야겠다. 할 말 있으면 잘 정리해서 내일 같이 이야기 좀 해보자. 내가 사장님께 건의 해 줄께.”


그렇게 모처럼 하루 동안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소주한잔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여러 의견들을 충분히 정리도 해 놓았다. 그러나 다음날 공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노식이 작업자들을 선동해서 산으로 들로 끌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 부장은 아예 노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장에게 가 보라는 것이었다. 고자질을 누가 한 것인지 묻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엎지르진 물이었다.


사장실로 들어갔다. 한마디로 대화는 필요 없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런 배신을 할 수가 있나? 너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더 긴 말 필요 없고, 누가 앞장서서 한 일인지도 듣고 싶지도 않고 네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만둬라. 난 더 이상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노식은 말없이 작업자들의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메모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와 버렸다.


사장은 노식을 다시 불러서 작업자들이 이런 불만사항들이 있는지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생산담당인 이부장이 아직 한마디도 건의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니까? 얼마나 많이 회의시간마다 논의를 했는데. 생산과장인 김 과장은 또 아무 말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까?” 노식은 입 아플 것 같아서 더 길게 말하기가 싫었다. 사장이 원하는 대로 그만 두겠다고 말하고 나와 버렸다.


사장실을 나오자 이 부장은 똥 씹은 표정으로 “왜 그랬어? 왜에...아, 불만이 있으면 서로 대화로서 해결해야지 그렇게 나오면 돼나? 사장님이 뭐라고 그러셔? 애들도 아니고 관리자가 말이야 마인드가 안 돼 있잖아 마인드가...” 순간 성질이 확 치받고 올라와서 사무실 문을 발로 차 버리고 나와 버렸다. “내가 나가면 되잖아 이 개새끼들아...”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노식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최초의 계기였다. 

*


"쎄엥...드르륵 부아아앙", “에이 씨팔..." 샌딩을 하고 있는 병욱과 노식은 벌써 등에서부터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레프트윙의 최종도장이 검사에서 불합격되었다. 라이트윙은 합격했다. 출하일까지는 하루 남았다. 피를 말리는 고통이다. "깡패" 서태완 부장이 씩씩거리면서 나타나 도장반을 온통 휘저어버렸다. "야 이 새끼들아, 너거들 누구 죽는 꼴 볼라 카나 어이?...내 좀 살리도고...오늘밤사이로 다시 갈아엎고 새로 뿌리라...오늘 날밤 까서라도 내일아침에는 출하시켜야 한데이..." 늘상 이런 식이었다.


간신히 샌딩을 마치고 크리닝 작업을 한 후 레프트윙에 독한 알로다인 칠을 마쳤다. 부스 밖으로 나와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하늘을 쳐다보니 밤하늘에 별이 오늘따라 무척 투명하고 밝았다. "하이고, 언제 까지 이래 살아야 하노..." 밤하늘에 흰 담배연기를 훅 하고 뿜으며 노식이 내뱉었다. "형님, 담배 한 대 꼬실라고 잊어버립시다. 어차피 해야 되는 일 아닙니까?..."


노식은 기가 막혔다. 생산관리에서 족쳐대는 납기일은 바이어들이 요구한 납기일 보다 항상 2개월에서 3개월가량 빨랐다. 경영진이 보잉사와의 협상에서 밀려 엄청나게 낮은 단가로 수주를 받아온 것이다. 그 때문에 손해를 만회하려고 애꿎은 작업자들만 족쳐대고 있었다. 처음에 정상속도로 윙(날개) 하나를 출하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 그 6개월을 그 다음에는 3개월로 줄였다. 이제는 윙 하나를 빼는데 한달 보름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경영진이 잘못한 걸 왜 우리가 뺑이 쳐야 하는 건가...우린 이미 3년간 임금이 동결상태잖아..."


새벽4시. 간신히 1차는 노식이 , 2차는 병욱이가 페인트를 뿌려놓고 부스를 나왔다. 방독마스크를 벗고서 두 사람은 서로의 몰골을 보고 소태 씹은 얼굴로 입만 쩝쩝 다셨다. "크악, 퇫...에이 씨팔, 뺑끼 가루에 목구멍이 막혔어...침도 안 넘어간다. 우웩..."병욱이 또 구역질을 시작했다. 겨우 맑은 공기를 들여 마시던 노식도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왔다. "으헉, 으..." 소태처럼 쓴 침이 흘러내렸다. 항공기의 도장에 쓰이는 페인트와 유기용제들은 일반 유기용제들보다 곱절로 독하고 인체에도 치명적이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아직 도장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유해수당조차도 주지 않고 있었다. 현장 조립공정라인에도 독한 유기용제들을 사용하는데 작업자들이 아무도 불평을 하지 못했다. IMF라는 핑계로 임금은 벌써 3년째 동결 상태다.


"병욱아, 우리도 노동조합 한번 맹글어보자..." "형님, 미쳤어요? 그러다 짤리면 어떡할려고요" 병욱이도 노동조합에 대한 소망을 늘 비쳤었다.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 눈치만 보면서 지내고 있었다. "으아. 노동조합 있으면 좋지만, 얼마 전에 아산의 만도기계도 개박살 났잖아요?...잘나가던 노조도 깨지는 판에 우리 같은 무노조 회사에서 가능할까요?..."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되는 기다. 함 해보자. 회사에서는 저거가 수주 잘못 받아 와놓고 우리한테 지금 기름 짜고 안 있나...그것도 얼매나 잡아 돌리고 있노? 낮은 단가에 수주 받아 놓고도 공정기간을 단축하는 바람에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지 않나 말이다. 우리는 전부 다 바보들인기라...바보 "


6개월의 공정기간을 한달 보름으로 줄이고도 3년간 임금동결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병욱이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오다가도 서글퍼진다. 밤새도록 샌딩을 하고 페인트를 날리다보니 눈썹과 콧구멍이 허옇게 되었고 두 뺨은 시커멓다. 노식도 페인트가루 때문에 콧구멍 안이 뻣뻣하다. 머리카락도 두 번 세 번 감아도 늘 돼지털 같다. 강원도에서 군대생활 할 때 콧구멍 안이 얼어서 살얼음이 생겼던 때가 생각이 났다.


뜬눈으로 밤을 새워서인지 입안이 칼칼하고 눈이 따가웠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당진군청 입구를 노려보았다. 새벽부터 담배를 벌써 두 갑이나 피워대고 있었다. 피를 말린다. 사무국장 영철이는 안 그래도 바싹 마른 체구에다 밤새 긴장한 탓인지 얼굴이 더 수척해졌다. 아침 8시 30분, 드디어 병욱과 도영이가 나타났다. 도영이의 손에는 노란 서류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멀리서 노무팀 정대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도영이에게 손을 흔들고 이따가 전화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사라졌다. 노식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병욱과 도영이를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긴 한숨만 내쉬고 기다렸다.


9시 5분이다. 지역경제과 담당직원이 군청입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를 태섭이 바짝 따라붙어서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병욱과 도영이는 아직 노식과 사무국장 영철이가 나타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다. 노식은 5분 후에 느긋하게 가짜 서류봉투를 들고 군청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진에서 자주 보던 건달패 여섯 명이 골목에서 나타나 노식과 영철이를 향하여 우르르 몰려 나왔다.


그들과 신호를 주고받던 병욱과 도영이 노조설립신고서가 든 봉투를 들고 잽싸게 군청으로 달려갔다. "어이 추형, 오랜만이유...회사는 안 가시고 여긴 워쩐일이유? 워디 가시는 길이슈?..." 진한 충청도 사투리로 당진의 건달 호태와 똘마니들이 느물거리며 노식과 태섭이를 에워쌌다. "호태 아이가?...니가 아침부터 여는 우짠 일이고?..." "추형, 호태, 호태 부르지마시유이. 여그 동상들 보기 민망허유. 그라고 여기는 내 구역이유 추형이야말로 여긴 워쩐일이유?"


"그건 그거고, 울들이 밤새 업소 몇 군데 돌고 난께 날밤 까부려서 배가 좀 고픈디 추형이 아침밥 좀 사주시유..." 건달 호태는 회사의 사주를 받고 작정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노무팀 정대리와 작당을 한 병우과 도영이 회사에서 만든 유령노조설립신고서를 먼저 접수하려고 했던 것이다.

잠시 후에 병욱과 도영이 얼굴이 창백해진 상태로 군청에서 나왔다. 노식과 건달 호태 일행 앞을 서둘러 지나갔다.

상황을 모르는 건달 호태는 눈치도 없이 소리쳤다. "뱅욱씨, 일은 잘된겨?...오케이?...", "오케이는 무슨 놈의 오케이냐 이 씨팔놈들아...꼴좋다..." 평소에 얌전하던 영철이가 갑자기 "꽥" 소리를 질렀다. " 일 다 끝났다 임마야. 퍼뜩 절마 저거 함 따라가 봐라" 노식이 히죽 히죽 웃으며 호태의 가죽잠바 상의를 툭 쳤다. 일단은 상황 종료다. 노식은 긴장이 풀리면서 긴 한숨이 나왔다. "후우..." 입안은 깔깔했지만, 담배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비쩍 말라서 장작개비같은 영철이가 싱긋이 웃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지난여름 세 개로 흩어져 있던 공장이 하나의 단일회사로 통합법인이 설립된다는 정보를 입수했었다. 마산공장과 부산공장엔 이미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있어서 자동승계 절차만 밟으면 되었다. 그러나 당진공장엔 노조가 없는 상태여서 어느 누군가 먼저 노조를 설립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당시 대한그룹 변속기 사업부에서 근무하던 인력들이 항공사업부로 전배를 오게 되었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유재수와 노

   메모
추천 소스보기 수정 삭제 목록
다음글 : 고래심줄(소설) (2009-01-05 16:38:48)
이전글 : <멀티-掌篇(짧은 단편)소설> Moon Roof (제3부) 끝/박만엽 (2008-09-03 18:20:22)

[특별공지]댓글에는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지불식간에라도 작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사기를 꺾지 않게 각별한 유념 부탁드립니다. 글방의 좋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목적상, '빈정거리는 투'나 '험담 투'류의 댓글 등 운영자가 보기에 좀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댓글은 가차없이 삭제할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것이 한국문학방송의 가장 큰 운영방침입니다. 비난보다는 칭찬을! 폄훼보다는 격려를! (작가님들께서는 좀 언잖은 댓글을 보시는 즉시 연락바라며, '언제나 기분좋은 문인글방'을 위해 적극 협조바랍니다. "타인의 작품에 대한 지적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상차원의 댓글도 아주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 겸허한 자세로~!" 항상 타인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미덕을 가지십시다. 기타 (작품 또는 댓글 중)욕설 또는 저속한 언어, 미풍양속에 반하는 표현 등의 글도 삭제합니다.
◐댓글 말미에는 반드시 실명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실명이 없는 댓글은 무조건 삭제합니다.
 
한국문학방송 운영 동해안 문학관(&숙박) '바다와 펜'...
경북도청 이전기념 전국시낭송경연대회
제2회 ‘박병순’시조시인 시낭송 전국대회 / 접수마...
 
사이트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