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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동화>소원을 들어주는 둥구나무 <4. 두근두근>
2009-02-04 13:33:40
sionsira

조회:2166
추천:134

 

< 소원을 들어주는 둥구나무 >

최 윤 애

4. 두근두근

 

짹짹, 짹짹짹, 짹짹짹.

맴맴, 맴맴, 맴맴맴맴.

깍깍깍깍, 깍깍깍깍.

 

조그마한 시골마을이지만 아침을 여는 소리만큼은 대도시의 소음 못지않게 시끄럽고 요란했다.

“잠꾸러기 왕자님! 그만자고 일어나요.”

하마아줌마가 곤히 잠들어 있는 니가의 이불을 들추고 깨우는 바람에 잠이 깼다. 김치찌개와 구운 생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벌써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주무시네. 왕자님, 일어나셔야죠.”

하마아줌마는 니가의 곱슬곱슬한 갈색머리가 어린왕자를 닮았다면서 처음 볼 때부터 꼭 왕자님이라고 호칭했다.

니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다 하품을 하면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늦은 밤, 엄마의 일기장을 읽다가 울어서 그런지 눈이 퉁퉁 부어있어 잘 떠지지가 않았다.

“아빠는요?”

“아빠는 새벽에 김 기사랑 서울 가셨어요. 오늘 중요한 손님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대요. 주말에나 오실 겁니다.”

하마아줌마가 니가의 남아 있는 잠마저 몽땅 쫓으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줌마의 계획대로 남아 있던 잠마저 시원한 바람에 금세 달아나버렸다. 창문 앞 자귀나무 잎사귀도 일찌감치 깨었는지 활짝 웃으며 하느작거리고 있었다.

“김치찌개에 자반고등어 구워놓았으니까 얼른 씻고 밥 먹어요. 잠꾸러기 왕자님!”

“알았어요. 아줌마. 금방 씻고 내려갈게요.”

니가는 정신이 반짝 나도록 찬물에 세수를 했다. 찬물에 세수를 하자 뻑뻑했던 눈알이 느슨해지고 눈두덩의 붓기도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니가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언덕길을 내려왔다. 어제 다 둘러보지 못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방학이 끝나면 다니게 될 학교도 궁금했고, 책방은 어디에 있는지, 학원은 어디가 좋은지, 도서관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지 알아보려면 하루가 바쁠 것 같았다. 그리고 해가 둥구나무 위에 걸릴 때 만나기로 한 새로운 친구들과의 약속도 무척 기다려졌다.

니가는 아빠가 오면 자전거를 하나 사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까지 걷기에는 좀 먼 거리였기 때문에 자전거로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도보로 20분 거리쯤에 있는 바다 수평선 아래로 유유히 떠다니던 배한척이 아스라이 가라앉고 있었다.

니가는 단걸음에 둥구나무로 향했다. 라고가 아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둥구나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놀고 있었다. 자전거 뒤에 앉아 양쪽 다리를 새의 날개처럼 벌리고 환하게 웃는 아니의 얼굴이 무척 밝아보였다.

니가는 엄마도 아니만 했을 땐 저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둥구나무 아래에서 놀았겠지? 라는 생각을 하자 짙은 그리움이 고추바람처럼 코끝을 할퀴고 지나갔다.

청바지에 빨간 반팔 티셔츠를 입은 아니는 양쪽 다리를 까딱까딱 거리면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었다.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일기장에서 금방 툭 튀어나온 어린 열매의 분신을 보는 것 같았다. 활짝 웃고 있는 아니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이 괜히 떨리고, 가슴이 자꾸만 콩닥거렸다.

‘이게 뭐야, 내가 지금 저 깜콩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설마, 아닐 거야. 아니야.’

니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디를 보아도 아니가 엄마를 닮은 구석은 한 군데도 없었다. 아니는 엄마보다 피부도 까무잡잡했고 키도 짧았다. 얼마나 피부가 까맸으면 ‘까만콩, 깜콩’ 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까. 그런데도 왜 엄마와 닮은 느낌을 저도 모르게 받는 것일까. 니가는 그것이 참 이상했다.

니가는 두 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가다가 자꾸만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머춤하고 말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 눈동자가 니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때 보았던 엄마의 눈동자처럼 아니의 눈동자도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아니의 모습이 한없이 예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 니가 왔구나. 안녕?”

아니가 먼저 귀엽게 인사를 건넸다.

“으응. 너희들도 우리 집에 가서 놀지 않을래?”

니가는 응, 반갑다, 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 생각을 다른 데 빼앗기는 바람에 엉뚱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생각 없이 던진 말이긴 해도 도로 물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니와 라고는 기다렸다는 듯 응수했다.

“좋아. 안 그래도 구경하고 싶었어. 아니야, 너도 좋지?”

“응.”

자전거를 한 쪽에 세워두고 삼총사는 둥구나무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앉았다.

그때 안전모를 쓴 사람이 측량기를 들고 둥구나무 가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온 동네 먼지란 먼지를 다 뒤집어쓴 사람처럼 거무죽죽한 얼굴로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신작로에 침을 퉤퉤 뱉었다. 그 소리를 듣던 아니가 귀엽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삼총사는 안전모를 쓴 사람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 이상한 나무가 가로막고 있어서 도로를 낼 수가 없다니까요. 부득불 베어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워낙에 완강하게 반대를 하니 마음대로 손을 델 수도 없는 거 아니요. 그러니까 곧장 내지 말고 이 나무를 에돌아서 길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니까요.”

서류뭉치를 옆구리에 낀 사내는 한눈에 보아도 공무원처럼 보일 정도로 얼굴이 하얗고 몸뚱어리가 야리야리했다.

사내는 지적도를 들고 오른손을 이마에 얹어 해를 가리면서 요리조리 사방을 살펴보며 뭔가 계속해서 지시를 했다. 안전모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지 툴툴거리면서도 마지못해 따르는 눈치였다.

“일단 방도는 강구해 보도록 하죠.”

두 사람의 대화가 삼총사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니가 니가의 귀에다가 대고 속살거렸다.

“나무를 베지는 않을 건가봐. 잘됐다. 그지?”

“응. 내 귀에도 그렇게 들려.”

니가는 그만 낯이 고추장 빛으로 변해버려 귀퉁이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런 남의 속도 모른 채 아니는 계속해서 귓불을 간지럽게 속삭였다.

“내가 어제 아빠한테 들었는데 말이야, ………….”

니가는 깜짝 놀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순간 아니의 이마와 니가의 이마, 아니의 코와 니가의 코가 자석처럼 붙어버렸다. 귀가 먹먹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다. 아파트현장에서 들리는 소음도, 시끄러운 매미소리도, 바람소리도, 두 사내의 거친 음성도 들리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아니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의 콧바람이 니가의 인중을 뜨겁게 달구었다. 계속해서 니가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니가 까만 눈동자를 깜빡거릴 때마다 심장이 튕겨져 나올 것처럼 팔딱거렸다. 아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옷에 묻은 흙을 탈탈 털어내었다. 그 몸에서 털어져나가는 흙 알갱이들이 금가루처럼 햇빛에 비쳤다.

‘내가 왜 이러지? 미쳤지, 미쳤어! 저 깜콩을 언제 봤다고 좋아하는 거야!’

아니가 서서 니가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니가는 아니가 눈치라도 챌세라 안 그런 척 바보처럼 웃어 버렸다.

“으흐흐. 그러게 말이야.”

“야. 너 왜 그래? 바보처럼.”

옆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라고가 니가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툭툭 쳤다.

“아니 나는 그냥, 둥구나무를 베지 않게 되어서 좋다고. 그 말을 하려고 하는데, 아니가.”

“아니가 뭐?”

“아니, 아니.”

“나 여기 있는데 왜 자꾸 부르니?”

아니와 라고가 니가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을 올려다보던 니가가 황급히 몸을 털고 일어나며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병정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 구경하고 싶다면서? 안 갈거니?”

“응, 응. 갈 거야.”

삼총사의 뒷모습으로 뜨거운 뙤약볕에 열을 받은 신작로의 열기가 아른거렸다. 둥구나무의 나뭇가지들이 삼총사를 향해 손짓을 했다. 가지 말라는 듯. 좀 더 놀다가라는 듯. 함께 있고 싶다는 듯 …….

7월의 뙤약볕 아래 산과 들, 바다가 뜨겁게 익어갔다. 아파트 공사장의 건축자재들도 달구어져 있고, 점심을 먹고 난 인부들은 나무그늘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오침을 즐기느라 축 늘어져 있었다. 논과 밭에 곡식들은 무럭무럭 익어가느라 구슬땀을 뚝뚝 흘리고, 청설모부부는 부지런히 도토리를 물어다 쟁이느라 나뭇가지 위에서 강동거렸다.

니가가 아니와 라고에게 집 구경을 시켜주고, 2층 방에서 놀고 있을 때 하마 아줌마가 헉헉 뱃숨을 몰아쉬면서 시장을 잔뜩 봐가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하마 아줌마는 정성스럽게 에그 햄 샌드위치와 과일샐러드를 만들어 예쁜 접시에 담아 우유와 함께 내놓았다. 아니와 라고는 하마 아줌마가 만들어 준 간식을 맛있게 먹은 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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