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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두 여자(1)
2018-07-14 10:43:37
weolsangusa

■ 최용현 수필가
△《문예사조》수필 등단(1991)
△구로문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아내가 끓여주는 커피는 싱겁다』,『꿈꾸는 개똥벌레』
△꽁트집『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인물전『삼국지 인물 소프트』,『삼국지 인물 108인전』
조회:317
추천:19

두 여자(1)

 

  최용현(수필가)

3학년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고향집에 내려왔다. 방학 동안에 행정고시 1차 시험 공부를 하려고 1차 시험 관련 책을 잔뜩 싸들고 왔다. 4학년 때 1차에 합격해놓고 2차 시험 공부에 전념해야 졸업 후에 2차 시험 합격을 노려볼 수가 있다.

집에 오니 지연 언니가 집에 와있다며 오빠가 내려오면 연락해달라는 전화가 왔었다.’고 여동생이 전해주었다. 지연은 고향마을에서 함께 자란 초등학교 2년 후배였는데, 군에 있을 때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귀었다. 내가 제대를 하고 집에 왔을 때 우리는 동네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몰래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부산에서 만나 함께 영화도 보고 해운대 백사장에서 손을 잡고 걸으면서 장래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그러나 둘 다 개성이 너무 강한 탓인지 한번 대판 싸우고 나서 헤어지고 말았다. 지연은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서울로 돌아가 2학년에 복학했다.

2학년 겨울방학 때, 우리 집은 정든 고향마을을 떠나 읍내로 이사를 갔는데, 이사 가기 전날 밤에 지연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그때는 서로 안부를 묻고 잘 가라, 잘 있으라는 인사만 나누었다. 대학생활하면서 가끔씩 생각이 났지만 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다. 다시 1년이 지났는데, 만나자고 전화가 온 것이다.

헤어진 지 2년 만에 읍내 다방에서 지연과 마주 앉았다. 지난 가을에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내게 만나자고 편지를 썼는데 우리 학교로 보내려다 결국 못 보냈단다. 내가 서울에서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단다.

집에서 자꾸 선을 보라고 해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집에 와있는데, 선을 본 사람 중에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단다. 나이는 네 살 많고 장남인데 부산에 조그만 빌딩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쪽에서 속히 결혼을 하자고 하는데, 내 생각이 나서 결정을 못하고 있단다. ‘그 사람 사랑해?’ 하고 물었더니 묵묵부답이었다.

우리는 며칠간 계속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지연은 우리는 비슷한 점이 많아서 잘 맞을 것 같기는 한데, 둘 다 성격이 너무 여려서 생활력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하면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않는 나를 에둘러 책망하기도 했다. 나는 지연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사람한테 가렴. 나는 아직 학생이라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어. 우리 10년 후에 다시 만나자. 그땐 애들도 어느 정도 컸을 테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겠지. 그때 네가 흔들리면 내가 바로잡아주고, 내가 흔들리면 네가 바로잡아줘.”

지연과 헤어지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길거리 레코드점에서 윤시내의 열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197912월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방학 동안에 하려고 했던 고시공부는 완전히 물 건너갔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가슴이 답답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밥을 먹으면 체했다. 나는 작은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ABBA 테이프를 틀어놓고 혼자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아니 온몸을 흔들어댔다. ‘남자답게 잘 보내놓고 내가 왜 이러지. 지연이가 내 가슴에 그렇게 깊이 박혀있었더란 말인가.’ 하고 되뇌며 혼자 이별의 아픔을 삭여갔다.

해가 바뀌었다. 이모님이 오셨다. 작년에 얘기했던 그 처자가 아직도 시집을 안 갔다며 또 선을 보라는 것이었다. 작년 겨울방학 때도 우리 동네에 좋은 처자가 있으니 선을 보라.’고 하셔서 학생이 무슨 선을 보느냐?’며 묵살했었다. 이모님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쭉 보아왔는데 인물도 좋고 심성도 좋아서 정말 남 주기 아까운 처자란다.

그 처자가 여태까지 선을 서른 번 정도 봤는데, 본 사람마다 식을 올리자고 난리였단다. ‘그런데 왜 아직 시집을 안 갔어요?’ 하고 반문했더니, 그 처자 바로 위에 여섯 살 많은 오빠가 있는데, 오빠가 결혼한 뒤에 가겠다고 해서 안 간 거란다. 작년 겨울에 오빠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올 겨울에는 꼭 시집을 보내겠다고 집에서 서두르고 있단다.

그 처자의 나이는 스물여섯, 아니 해가 바뀌었으니 이제 스물일곱이란다. 나와 동갑이었다. 어머니는 말은 안하셨지만 내가 선을 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예순 중반인 아버지가 중증 간경화로 누워계시기 때문이었다. 나는 선을 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198015, 어머니와 함께 약속한 다방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좀 있으니 이모님이 보이고 한 처자가 멋쩍은 듯 이모의 등 뒤에 붙어서 오고, 그 뒤로 처자의 어머니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눈에 번쩍 띄는 얼굴이었다. 키도 적당히 컸다. 저런 처자가 어떻게 시골에 파묻혀 있었지. 얘기를 나눠보니 성격도 양처럼 유순했다.

함께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군밤을 사서 나눠 먹으며 둑길을 걸었다. 동갑이라서 그런지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 만난 사이처럼 편안했다. 작년부터 내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단다. 이모님이 내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이틀 후에 또 만났다. 우리 집에 편찮으신 아버지가 계신다고 인사를 하러가자고 했더니 두말 않고 따라왔다. 그녀를 보내고 나서 부모님께 여쭤봤더니 그만하면 괜찮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나보고 결정을 하라신다. 내가 하겠다고 하면 방학 중에라도 결혼식을 올려주시겠단다.

그때 여동생이 오빠, 지연 언니가 2월 초에 결혼한다고 하던데, 혹시 그 언니 땜에 홧김에 하려는 거 아니야? 좀 더 생각해보고 신중하게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 하고 태클을 걸었다. 나는 그날 밤을 꼬박 새며 성을 쌓았다가 허물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답이 나왔다.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날이 밝았다. 나는 이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저쪽에서, 2월에는 음력설이 있어서 한 살 더 먹게 되니 1월 중에 하자는 연락이 왔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세 번째 만나서 저쪽 부모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예식장을 예약했다. 네 번째 만나서는 함께 반지를 주문하고 옷도 맞추었다.

다섯 번째 만남은 신랑 신부로 만난 결혼식장에서였다. 1980124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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