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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2017-12-16 16:48:26
KGI8561

■ 김근이 시인
△경북 포항 호미곶 출생(1941)
△《문학공간》 시(2006) 《문학미디어》 수필(2008)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시인연대 회원
△시집 『찔레꽃 피는 날과 바람 부는 날』, 『동행』, 『허수아비』
조회:994
추천:0

가족

인간은 태어나서 한발 두발 걸음마를 배우고, 엄마라는 말을 배우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아기는 어머니 품안에서부터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아기가 가장 먼저 접하는 세계가 가족이다. 가장 먼저 익히는 얼굴이 엄마 아빠 그리고 가족들이다. 처음 바라보는 아가의 맑은 눈동자 속에 가장 먼저 각인 되는 세계가 가족 세계라 하겠다.

가족이란 세계는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느끼는 평화의 상징이며 행복의 보금자리다. 얼러 주고 안아주고 웃어주는 가족의 관심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이 가장 밑바닥 초심에 씨앗으로 뿌리 내리면서 영원히 인생과 삶에서 느끼는 행복의 근원이 된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잣대는 그 초심에 심어진 행복이란 씨앗에 맞춰진다.

요즈음 유행되는 말 중에 혼자서 먹는 밥을 혼 밥이라고 하고 혼자서 먹는 술은 혼 술이라고 하고 혼자서 자는 잠을 혼 잠이라고 한다. 이 말을 묶어서 생각해 보면 구시대 사람들에게는 좀 서글픈 감이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혼자 사는 시대로 변화해 가고 있다. 미혼 전 자녀들도 부모와 가족을 떨어져 혼자 사는 독립 세대들이 늘고 있다.

이 과정은 지금 끝 지켜오든 가족주의 제도에서 혼 족 주의 제도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과정 이라 해야 할 것 같다.

혼자라는 의미는 언뜻 생각하면 무척 자유스럽고 홀가분한 감이 든다. 누구의 도움 없이 누구의 간섭 없이 자유로운 활동으로 자신을 개척해 가는 것은 희망 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살아가는 데는 좋은 일이 있으면 어려운 일도 있는 법이다. 한평생 평탄하게 살수만 있다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삶은 그렇지가 않다. 언제 어디서든 다급한 일에 닥칠 때는 가장 먼저 불어는 이름이 엄마요, 도움이 간절할 때 가장 먼저 기다려지는 것이 가족이다. 인간의 몸속에는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받은 보호가 몸속에 깊이 잠제 되어있어 어렵고 힘들 때 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출동 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데는 육체인 고통은 물론, 마음의 고통이 크다.

사람은 어디서나 언제나 혼자서는 어떠한 행복도 느낄 수가 없다. 누군가가 옆에서 바라보는 곳에서 만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즉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은 아무른 의미가 없다는 예기다. 혼자라는 말과 홀로라는 말에는 그 어휘가 다른 느낌이 있다. 혼자라는 말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홀가분하고 자유스러운 의미에서는 생활 자체에서부터 활력을 느끼게 한다. 그에 비해 홀로 라는 말에는 어 째 외로움이 묻어있다. 혼자라는 말에는 주위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느껴지지만, 홀로라는 말에는 아무도 없는 외톨이 라는 느낌을 같게 한다.

가족이 있는 상태에서 독립된 혼자는 자립이란 거창한 목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홀로인 경우는 다르다.

옛날에는 적게는 오인가족에서 많게는 십 명이 넘는 대가족들도 있었다.

옛날에는 오남매라면 하늘이 준 자손들이라 했다. 그 시대 시골집들은 대부분 방이 둘이다. 그나마도 요즈음 같으면 한 사람 거처하기도 불편할 공간에서 칠팔 명의 식구가 살았다. 그때는 대부분 삼대가 한 지붕 밑에서 그야말로 대 가족으로 북적대며 살았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이 가족이다. 그 시절을 격어 보지 못한 소가족 제도에서는 가족이란 깊은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자식은 부모의 울타리라 했고 형제는 서로 의지하는 짝지(지팡이)라 했다. 그래서 맏이를 그 가정의 대들보라 했고, 대들보가 튼실해야 그 가족이 편하다 했다. 맏이는 곳 그 가족과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의 재산 또한 맏이가 물려받는 제도가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지금 세상이야 말로 도무지 의해 되지 않는, 낫은 세상일 수밖에 없다. 그토록 애지중지 지키고 살아온 가족 제도가 짧은 세월동안 사라져 버렸다. 언제 부터인가 자신들이 가족을 벗어나 혼 족이 되어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늙어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바랐든 자식들은 세월 따라 떠나갔다. 올망졸망 손주들에 쌓여서 살고 싶었든 마음은 한없이 자신을 외롭게 한다. 그러나 지금 손주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아볼 사이도 없다.

가족의 제도가 무너지면서 사회는 점차로 각박해 져갔다. 많은 형제들이 어울려 사는 대 가족 일수록 형제간 우의는 더욱 단단했다. 형제간의 우의와 의리 속에서 자연적으로 인성을 배우게 되고, 가족애대한 깊은 믿음과 사랑을 마음속에 지니게 되면서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 왔다. 사회로 가는 모든 기초지식을 가족 속에서 얻었다. 그 시대 가족 속에서 배우고 익혀온 것들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가족이라면, 머리 속에는 언제나 내가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무감을 품고 살았다. 가족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가족이 내게 실망 하지 않는 가족이 되기 위해 끈임 없이 노력해왔다.

나는 평생을 가족을 내 인생에 보배라 생각하면서 살았다. 만약 내게 가족이 없었다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모든 의욕은 가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고, 어려운 일에 지칠 때면 가족을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 자체가 에너지가 되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대들은 누구나 한 번도 자신의 노후를 극정해 본적이 없이 오직 자신의 삶을 가족에 밭였다. 그러나 지금 노년의 세상에서는 남은 가족은 오직 배우자 하사람 뿐이다. 그나마 배우자와 함께라면 참으로 행복한 노후다. 이제 남은 두 가족에서 누군가 혼 족으로 남게 되어 기력을 읽게 되면, 생각하고 돌아볼 사이업이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 어느 듯 그것은 이 시대 남은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마지막 효도요 예의가 되어버렸다. 그나마도 그것은 형제가 많고 능력이라도 있는 자식들이라야 가능한 일이다. 그른 능력조차도 없는 자손들을 둔 부모들에게는 국가에서 주는 연금 몇 푼이 생명줄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생활 보다 가난한 자손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고통 서러운 일이다.

서글픈 일이라고 해야 할까? 옛 어른들이 남긴 말에 효부가 있어야 효자가 있다고 했다.

아기 대신 애완견을 품에 안고 다니는 젊은이들의 눈에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조각배처럼 세월에 밀려가는 노인들의 현실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과연 국가가 주는 복지연금이 노인들의 잠긴 마음을 얼마나 달래 줄 수 있을까? 이 시대에 던져 주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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