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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이후)


터키 여행기
2017-04-07 11:27:51
mjh022

■문재학 시인
△경남 합천 출생
△건국대 졸업
△《한맥문학》시,《동방문학》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서정문인협회 회원
△시집『삶의 풍경』
△공무원으로 정년퇴임
△녹조근정훈장 수훈
조회:4042
추천:8

 

터키 여행기
(2017. 3.23 ~ 3. 31 = 9)
소산/문 재학

2017323() 맑음
그 동안 미루어 왔던 터키 여행길 산수유와 매화꽃이 만개하여 화사한 봄을 재촉하는 3월달. 935분 아세아나(OZ551) 편으로 터키 이스탄불로 향했다.

270 여석의 비행기가 빈자리가 없이 만원이다.
비행 예상 소요시간은 11시간 10분이다.
얼마를 비행하였을까 한국시간 1359분 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햇살이 쏟아지는 지상에는 거대한 중국내륙의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은 비행시간은 7시간 20(5,320km)이다.
이스탄불이 가까워질 무렵 가스피해를 지나는가 하면 빙판위에 잔설이 쌓인 곳도 지났다.
낮은 산봉우리들은 흰 눈과 하얀 구름이 앞 다투어 풍광을 그려내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거대한 흑해상공이다.
거울 같은 수면위에 눈부신 태양이 물에 잠기어 뿜어내는 광채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착륙 55분전에 터키대륙 상공에 들어섰다.
높은 산들은 흰 눈을 이고 있고 산재된 산 능선 사이로 구불구불 강줄기가 굼틀거리고 있었다.
임목은 울창하지 않았지만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이어 거미줄 같은 도로 따라 산재된 마을이 오후의 햇살에 빤짝이고 있었다.
착륙 20분전 이스탄불 교외 야산들 사이로 대초원들이 융단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드디어 이스탄불 시내이다. 복잡한 가로망 사이로 붉은 지붕들이 보이고 해안을 따라서는 아파트들도 많이 보였다.

바다에는 화물선들이 정박해 있고 일반 선박들은 유리알 같은 수면위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누비고 있었다.
야산도 하나 없는 해안 평야지대라 그러한지 조금은 황량해 보였다.

정확히 1515(현지시각임. 한국시간은 2115. 시차 6시간)아타튀르크국제공항(이스탄불은 국제공항이 2곳임)에 착륙했다.

외기온도는 13도 약간 쌀쌀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비행장에는 게류중인 비행기가 상당히 많았다.
가이드 김홍구씨를 만나 일행 23명이 합류했다.

터키는 면적은 783,562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85백만 명인데, 그중 교민은 3,000명이란다.
그리고 이스탄불은 면적은 1,539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500먄 명, 그중 교민은 500명이란다. 버스(벤츠)에 승차했다. 상당히 안락하고 편의기능이 많았다. 공항을 벗어나니 꽃길 조성이 잘되 있었다.

12차선을 달리고 있는 이곳은 유럽 쪽 이스탄불이라 했다.
이스탄불의 교통체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단다.
도로변에는 분홍색 지붕의 4~8층의 아파트들 사이로 미려한 고층 아파트들도 간혹 보였다.

현재시간 1620(앞으로는 현지시간임) 우측으로 마르마라 해(Sea of ​​Marmara)안선을 따라 터키 최대의 시장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지붕이 있는 시장)로 향해 달렸다..

그랜드 바자르 시장은 메흐메트 2(II. Mehmet) 때인 1461년 비잔틴 시대의 마구간 자리에 만들어졌으며, 처음에는 작은 시장이었다가 증축을 거듭해 현재는 5천 개가 넘는 규모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스탄불 최대의 시장이다.

도로변 좌측은 1100년 전 오스만 제국시대 도시 때 조성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어하는 낡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랜드 바자르 시장가는 길. 넓은 도로에는 낡은 전차와 최신형 전차가 도로 중앙으로 쉴 새 없이 다니고 도로 양안으로는 버스와 승용차들이 운행되고 있었다.
실크로드의 종작지인 그랜드 바자르는 세계 최초의 쇼핑센터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건물이란다.

그랜드 바자르 시장 입구(7번 출입구)에는 폭발물 예방을 위한 검사를 한사람씩 검색을 하고 있었다.
석조 건물인 아치형 길을 따라 완전 복개된 시장이었다.
관광객을 포함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다른 상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화려한 황금으로 당양한 제품을 정교하게 세공하여 곳곳에 진열하여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백금제품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도자기 제품도 많았다.
굵은 기둥과 벽면 천장이 다소 퇴색되긴 했지만 다양한 문양의 채색이 미로처럼 얽힌 시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50여 분간 돌아보면서 영상으로 담고 1번 출구에서 모였다.
이어 도보로 가까이에 있는 히포드롬(Hippodrome, 대경기장 또는 로마 전차 경기장)은 고대 도시의 심장부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로마 황제가 203년에 건설되기 시작해, 콘스탄티노플을 로마의 제2의 수도로 만들고자 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더 거대하게 330511일 완성되었다.

U자 형태의 경기장을 중심으로 100,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길이 400m, 넓이 120m 규모로 건설되었다.

 중앙에 보이는 오벨리스크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로 기원전 15세기에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에 세운 것으로, 기원전 390년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가 이집트에서 가져와 이곳에 세웠다.

오벨리스크의 무게는 약 300톤에 이르며, 본 길이는 32.5m였는데 수송 과정에서 밑 부분이 깨져 현재의 높이는 20m이다. 오벨리스크의 사면에는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의 용맹성을 말해주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맨 아래 부분에 389년에 만들어진 대리석 받침대가 있다.


 그리고 히포드롬에는 기원전 479년 그리스 아폴로 신전에 세워졌던 청동제 뱀 기둥과 콘스탄티누스 7세 황제에 의해 10세기에 세워진 높이 32미터의 콘스탄티누스 기둥이 있다. 원래 높이는 6.5m 이였는데 현재는 5m뿐이다

바로 인근에는 1616년에 완공된 부루모스크 대성당이 황금빛 돔을 중심으로 뾰족뾰족한 첨탑들이 석양에 빤짝이고 있었다.

이 사원은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해서 전차경기장을 중심으로 동영상으로 담고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터키 현지 식으로 저녁을 하고 1915마르마나 해변을 달리는데 교통체증이 심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테오도시우스 성벽1100년 전에 건설 하였는데 3중 성벽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서쪽으로는 마르마라(프로폰티스) 해부터 골든 혼(콘스탄티노폴리스의 내항)까지 이어진 육중한 성벽이다.

 구조를 살펴보면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해자를 갖추고 있는 성벽으로, 넓이가 2m 높이가 5m인 내 성벽, 넓이가 5m 높이 12m인 외 성벽의 삼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성벽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전체를 감싸고 있었는데, 육로에 면한 6 정도만이 3중 구조로 되어 있고 전체길이는 총 24km이란다.

이스탄불은 주 수입원이 관광사업 이라했다.
그리고 해바라기를 많이 재배하고 포도와 밀도 경작을 많이 한다고 했다.
왕복 8차선 도로에 차량 불빛이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성벽과 시내 야간 풍경을 부지런히 동영상으로 담았다.
20시경에RAMADA호텔1005(105)호에 투숙했다.

2017324() 맑음
745분 호텔을 나와톨마바흐체 궁전으로 향했다.
8차선 도로는 교통 체증이 심했다. 도로 좌우에는 4 ~5층 아파트 들이 즐비했다.

수많은 사원이 첨탑사이로 산재해 있는데 첨탑은 사원의 위치 표시이고 술탄(황제)이 방문한 사원은 첨탑이 4개 이상이고 블루모스크 사원은 첨탑이 6개나 된다. 10차선 도로도 교통체증이 심했다.
도로변은 신축한 고급 아파트가 상당히 많이 보였고 도로변 경사지에는 매화꽃 등 꽃나무 꽃들로 아름답게 조경을 해두었다.

5월이면 이곳에 터키 국화인 튜립꽃으로 전부 단장을 한다고 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터키의 이스탄불 시가지에 위치한 오스만 제국의 궁전이다.

830분 궁전앞 주차장에 내려 주위의 풍광과 마르마나 해상의 유람선들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9시에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소지품 등 검색을 마치고 궁전 정원에 들어섰다.

연못을 중심으로 활짝 핀 튜립꽃등으로 아름답게 조경을 잘해 두었다.
화려한 석조 건축물로 세워진 이 궁전은 원래는 목조 건물이었으나, 1814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압뒬메지트에 의해서 1856년에 재건되었다.


후문으로 입장을 하였다. 1층의 금박으로 장식한 넓은 대기실을 지나 2층 황제 집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 기둥 수백 개는 개당 3백만 원 한다는 멋진 크리스털로 해두었는데 아름다웠다.

실내를 밝히는 중앙에 늘어진 대형 상들리에는 60억 원이나 된다는데 정말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집무실을 중심으로 좌우는 도자기 비롯하여 모든 장식물 (심지어는 입구 바닥에 까려있는 백곰의 피혁까지도)을 대칭으로 장식을 해두었다.

3층의 황제의 서제에는 고서들이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고, 대리석 화장실, 황제의 휴식실에는 황제를 위한 당양한 연주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어 목욕탕도 독특한 이집트 산 옥돌로 만들었는데 신비감을 주는 石質이였다.

황제의 방과 응접실에는 36명의 역대 술탄(황제) 초상화가 게시되어 있고 6명의 초상화는 금박액자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나는 복도에는 戰時 그림들이 많이 있었고 후궁들의 교육장. 치장실. 소연회장 등 등 정해진 관람코스에 의거 자세히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대형연회장은 황제 등이 연설 하는 곳으로 홀 중앙에는 4.5톤 상당의 대형 상들리에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 바닥에는 가로 10m 세로 5m 나 되어 보이는 수천만 원 상당의 대형 카펫이 있는데 정말 대단했다.

이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한다면서 금으로 장식하고 세계 도처에서 보내온 진기한 물건들을 구입 진열하여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궁전내부 촬영이 금지된 아쉬움을 남기면서 1020분 관람을 끝냈다.

다시 한 번 마르마나 해상의 풍광과 궁전 주변을 영상으로 담고사프란볼루로 향했다.
왕복 6차선 시내 도로위로 터키 대형국기를 비롯하여 여타의 많은 깃발이 축제행사장처럼 도로위로 휘날렸고 도로변 가로수 아래는 아름다운 꽃들로 조경을 해두어 시선을 즐겁게 했다.

1035보스포루스 해협의 제1대교(현수교 1km)를 지나는데 유럽 이스탄불에서 아세아나 이스탄불로 넘어 간다고 했다.

참고로 보스포루스 해협에는 다리가 3개와 해저 400m 지하철이 있는데 이중 3번째 다리는 현대건설과 SK건설이 완공했고 지하철은 현대건설이 완공하여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 했다. 지금은 돌고래가 많이 나타나는 시기라 했다.

차량이 주차장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 길이 유일하기에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다리 좌우의 풍광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아파트를 많이 짖고 있는데 평균 가격이 20억 원을 넘을 정도로 비싸다고 했다. 계속해서 6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야산 구릉지대다.

산발적으로 주택과 공장들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어디까지가 이스탄불의 시경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로변의 수목들은 연초록 잎새를 자랑하며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능수버들은 마치 초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늘어진 것처럼 아름다웠고 이름 모를 분홍 하얀색 꽃나무들이 봄기운에 녹고 있었다.
1230분부터는 야산들이 나타나고 산재된 농가를 중심으로 초록융단을 자랑하는 초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약간 높은 산에는 활잡목이 새잎을 틔우고 도로변에는 활짝 핀 개나리를 비롯하여 야생화들이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중식을 하고 1350분 출발했다.

14시경부터는 경사가 급한 협곡을 지나는데 왕복 6차선 도로가 협곡을 가득 매우면서 시원하게 달렸다.
아직도 산록변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다.

긴 터널을 통과하니 먼 산의 능선으로는 하얀 눈이 흰 구름과 함께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1450분 버스는 넓은 야산 구릉지대 無立木地를 달리는데 인가도 없고 경작지도 없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부근에 잔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해발 2,000m가 넘을 것 같았다.
15시 경에는 고산 평야지대를 지나면서 4차선으로 바뀌더니 이어 급경사 하산 길을 게속 내려가고 있었다.

1525분에 에스키파잘(? 해발 1,600m)마을 주유소에서 휴식을 가졌다.
이곳에서 사프란볼루까지는 35분 예정이다.
버스는 거대한 철 제련공장을 지나면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1620분 사프란볼루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마을입구 벽면에 1994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기념 대형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13세기부터 20세기 초 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사프란볼루(Safranbolu)는 동서 무역로를 오가는 카라반(caravan)들이 자주 거쳐 가던 경유지였다. 1322올드 모스크(OldMosque), 전통 목욕탕, 이슬람교 신학교 슐레이만 파샤(SuleymanPasha) 등이 건설되었다. 가장 번성했던 17세기에 사프란볼루의 건축은 오스만 제국 여러 도시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

증개축이 불가능한 2~3층 옛 목조건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창문마다 있는 판자 덧문이 이색적이었다. 골목마다 토산품을 팔면서 관광객을 맞이하는데 포장용으로 깐 회색돌이 반들반들 윤기가 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공중 목욕탕

40여분 둘러보면서 마을 풍경을 동영상으로 담고 1720앙카라로 향했다. 3시간 소요예상이다. 잔설이 남아 있는 대평원 왕복 4차선을 달렸다.

1840분 서쪽하늘의 석양이 저녁노을의 빛을 뿌리며 내려앉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 앙카라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도로 중앙의 가로등이 길게 늘어서 앙카라 시내로 안내하고 있었다.

앙카라시내 야경은 비교적 화려했다.
앙카라는 터키의 수도이다. 이스탄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앙카라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 면적은 24,521km² 인구는 460만 명이다.
앙카라는 터키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정치적 중심지로,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터키 공화국이 세워지자, 이스탄불을 대신해 수도로 지정됐다

이어 어둠속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741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한국공원을 찾아 묵념을 올리고 야간 광경을 영상으로 담고 가까이에 있는 ALTINEL 호텔 2022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7325() 맑음
615분 호텔을 나와 터키 초대 대통령 아타튀러크의 묘(대형 강당 같은 건물의 지하에 안장됨)어둠속 차창으로 보았다.

이곳은 검문검색이 철저하고 철통보안을 하는데 공무원이 임용이 되면 반드시 이곳에 와서 신고를 한다고 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터키어:Mustafa Kemal Atatürk, 1881519~ 19381110)터키의 육군 장교, 혁명가, 작가이며 터키 공화국건국자이다. 그의 시호(諡號)인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아버지를 뜻한다.

앙카라 시내는 교통 소통을 위해 반 지하 차도가 상당히 많은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325분경에는 화려한 고층건물이 많은 곳을 지났다.
건물 뒤로 아침노을이 물들어 오면서 건물들은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소금호수로 달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차량이 적어 6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일부 낮은 야산이 있는 벌판이 펼쳐지고 있는데 초원이나 경작지가 없어 황량했다.

650분 동녘하늘이 물들어 올 무렵 버스는 4차선에 들어섰다.
7시가 지나자 밀재배지가 벌판을 뒤덮기 시작했다. 역시 경지정리가 되어있지 낳았다.

그래도 경작규모가 1인당 수십에서 수백 HA를 경작한다고 하니 소규모 영농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고속도로변은 가로수도 없고 일반 나무도 없었다 .간혹 주유소만 나타났다.
740분 우측으로 소금호수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기를 막 지났고 온도도 낮아 소금 결정체가 빈약하지만 7월경 건기에 들어서면 40도의 열기에 소금호수 주변은 새하얀 소금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곧이어 주차장에 도착하니 대형 버스 10여대와 승용차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이곳이 터키에서 2번째 큰 호수(제주도 보다 조금 작은 면적임)이자 터키 소금의 63%를 공급하고 있단다.

소금호수로 내려가는 길에 2사람이 소금을 한 스푼씩 손바닥에 놓아 주면서 비비라고 한국말로 했다.
바로 옆에는 4~5세 되어 보이는 꼬마가 손 씻을 물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필자에게 손을 비비라고 해서 비비고 씻을 물을 달라고 하니 소등까지 비비라고 한국말을 하는데 깜짝 놀랐다. 손등까지 비비고 나서야 온수 물을 부어 주었다.
그러자 손을 닦으라고 또 한국말을 했다.

한국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모두 한국말을 잘했다.
이어 30m걸어 호수로 나가서 호수바닥에 하얗게 침전된 소금과 호변의 진흙에 하얗게 어린 소금 분말을 영상으로 담았다.


주차장은 개인 소유인데 무료개방 대신에 유료 화장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1불에 2사람씩 입장하는데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었다.

82분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버스는 소금호수를 끼고 계속 달리고 있었다.
95분 지나서는 마을도 보이고 곳곳에 버드나무가 산재되어 60~70년대의 한국의 시골풍경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현재 해발 1,300m라 하는데 정면에 백설로 뒤덮인 하산(해발 3,300m)의 아름다운 풍관이 다가왔다.
940분까지 설산을 안고 황량한 들판을 돌고 있었다. 곧 이어 버스는 시골길에 들어섰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2,000명이 숨어 지냈다는 데린구유로 가고 있다.

데린구유카파도키아지하 도시이다.
카파도키아 지역 고난의 땅 데린구유는 1962년 닭치던 12(1950년생) 소년이 자꾸만 닭이 사라지는 것을 찾다가 발견하여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조그마한 마을 1700년 전의 지하도시 데린구유에 1025분에 도착했다.
좁은 주차장에서 내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6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안녕 하세요인사말로 시작 한국말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반갑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측은 했다.

60m를 들어가니 매포소와 입장 입구가 있었다.
비잔틴 시대기독교 국가에서 지금의 회교 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 핍박받은 기독교인들이 수직 땅굴(20)을 파서 대를 이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데린구유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대형 지하도시는 현재 8층까지 개방하고 있다.


지하에는 마구간. 곡물저장고. 부엌. 통풍구. 우물 등 생활필요시설을 갖추어 두었고 외침 방지를 위한 시설과 복잡한 미로는 탄복할 정도였다.

혼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길.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가파른 계단 등 어떻게 돌과 흙을 긁어내고 만들었는지 긴 세월 수십만의 생존을 위한 피땀 어린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데린구유 관광을 끝내고 1115분 다시 카파도키아 내부로 가는 길. 왕복 4차선에 들어섰다.
부근의 야산들은 거의 민둥산들이다.

11365성급(?) 아파트형 교도소를 지나기도 했다.
부근에는 마을들이 있고 포도 등 과일나무 경작지도 간혹 보였다.

먼저 터키 카펫 문화체험장을 방문했다.
원료(양털. . 실크 등)의 천연 염색과 명주실 뽑는 과정과 카펫의 수공작업의 어려움도 관람했다. 카펫 전시장에서 한 장에 수십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하는 것을 펼쳐가며 설명하는 것을 견학했다.

버스는 가까이에 있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카파도키아의 버섯바위가 즐비한 파샤바13시경 도착했다.
이름 모를 과일나무와 매화꽃이 한창 피기 시작하는 주차장에는 대형버스 수십 대가 관광객을 풀어 놓고 있었다.
 

이곳 카파도키아는 세계8대 기적이라 할 정도로 색다른 지역이다.
수백만 년 전에 에르지이스. 하산. 그리고 맬랜디즈등 고대의 많은 화산 꼭대기서 분출된 용암과 재들이 이 지역을 뒤덮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질적인 석회로 변했고 수 십 만년 동안 비바람에 의거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인들의 학대를 피해서 지하도시를 만들어 피하기도 하고 많은 교회와 수천 개의 동굴을 그들의 가정으로 꾸미면서 살았다.

기묘한 장면들을 영상에 담으면서 둘러보고 2시경 동굴호텔(STONE. CONCEPT) 에서 현지식으로 중식을 하고 동 호텔 120호에 여장을 풀었다.
오후에 열기구를 타기로 하였으나 기상악화로 실시하지 못했다.

2017326() 맑음
아침 845분 호텔을 나와 기기묘묘한 버섯형상이 늘어선 골짜기의 동굴호텔이 많다는 마을 괴뢰메 야외골짜기마을을 지나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9시에 도착했다.

괴레메(Goreme, 보이지 않는 곳)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학정을, 십자군들의 횡포와 끊임없이 출정하는 아랍 군대를 피해 바위언덕을 파서 교회와 지하도시를 만들었고 또 수천 개의 동굴을 파서 그들의 보금자리로 삼아 자연과 동화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온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살았던 이곳이 바로 카파도키아 이다.

다양한 형상의 풍경을 파노라마로 동영상으로 담았다.
가까이에 있는 우치사르에 들렸다.

 우치사르(Uchisar)란 코너, 모서리, 칼날, 화살촉, 뾰족한 이란 뜻이다. 터키 카파도키아 우치사르에는 높이 30m가 넘는 기암괴석이 있는 곳으로 기독교인들의 "은둔자의 마을"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바위산 중턱에는 아직도 작은 마을이 있다
 

정상에서는 괴레메 계곡과 괴레메 야외박물관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1,3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위치한 "우치사르"는 황량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수 없이 뚫려있는 비둘기 집이 있다
 
괴레메 국립공원(Göreme National Park) 우치사르는 외부로부터의 방어의 목적으로 터널을 만들어 살아 오늘날과 같은 벌집모양의 바위산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1020분 버스는 콘야로 향했다.
4차선 도로 주변은 오랜만에 보는 가로수가 있고 간혹 보이는 수양버들과 버드나무는 연초록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1110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달리는 주위의 지대는 몽골처럼 완경사 야산에는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았다. 간혹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리고 저지대에는 밀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현재의 고속도로는 과거의 실크로드 길이라 했다.
이곳은 여름에는 40도 이상의 열기로 아스팔트를 녹여 내린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포장도로에 모래만 남은 것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 승차감이 좋지 않았다.

고속도로변에 간혹 보이는 마을의 지붕은 모두 분홍색이라 주위의 황량한 풍경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끝없는 지평선을 가르면서 달리는 고속도로변에 주유소는 자주 나타났다.

1320분 멀리 콘야(Konya)시가지가 보이고 버스는 콘야의 공업지대를 지나고 있었다.
보수적 기풍이 지배하는 독특한 지역이고 종교색이 강한 도시라는데 시내를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도로변에 가로수를 해마다 심어도 枯死하는 것이 많아 큰 나무는 없었다.
야산 산록변에는 독일가문비 같은 나무를 많이 심고는 있었다.
콘야의 시가지 뒤편 높은 산에는 白雪이 풍광을 더하고 있었다.

1416분 고속도로변 휴게소에서 중식을 하고 안탈야로 향했다.
1450분 버스는 산길을 구불구불 오르고 있었다. 고산지대인데도 소나무와 활잡목이 많이 보였다. 인공조림지도 많이 나타났다.

응달에는 잔설이 봄기운에 녹아내리고 다습한 지역에는 버드나무가 群落을 이루면서 이어지고 있었다.
1540분 현재 골짜기의 해발 800m이다
버스는 협곡을 지나는가 하드니 바위투성이 험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척박한 땅에도 소나무 등이 자라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멋진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얼마나 올랐을까. 좌측으로 거대한 베다호수가 나타나드니 동행을 했다.
한참 후 PETLINE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매점에는 다양한 상품들을 많이 진열하여 놓고 관광객을 유혹하는데 종업원들 모두 한국말을 너무 잘해 놀랄 정도였다.

다시 버스는 안탈야로 향했다.
주위의 산들은 양지쪽 일부를 제외 하고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도로변에는 설봉을 붉고 검은 색으로 칠하여 50m 간격으로 설치해 두어 도로의 표시와 적설량을 알 수 있도록 했다. 눈이 많이 오는 지방임을 알 수 있었다.

이어 버스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2차선 하산 길을 달렸다.
도로변은 소나무 등 울창한 산림이 계속되어 마음이 푸근하고 기분이 좋았다. 경사지 산길을 벗어나 들판에 들어서니 出穗 전 파란 밀밭이 반기고 비닐하우스도 나타났다.

이곳 안탈야는 온갖 작물이 잘 자란다고 한다.
올리버. 오렌지나무와 딸기하우스 등이 많이 보였다.
역시 농경지는 경지정리가 되지 않았고 전 들판에 산재된 농가들은 한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안달야 주택(5층 내외 아파트 포함)들은 지붕위에 모두 태양광을 이용하는 시설이 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본받아야 할 일이다.

1850분 비닐하우스 집단 단지가 나타나고 4차선 중앙 분리대는 종려수가 시원하게 조성되어 있고 농경지와 주택들 사이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프러스가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인구 80만 명의 안탈야에 연간 관광객 천만 명이 온다는데 놀랐다.

1910분 다양한 콘셉트의 화려한 호텔들이 즐비한 호텔단지에 들어서니 휘황찬란한 네온불이 관광객을 유혹 하는데 마치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일행은GRAND PARK호텔8209호실에 여장을 풀고 호텔식 뷔페로 저녁을 했다.

이 호텔의 수용규모가 4,0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식사도 비닐 팔찌를 차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대형식당이 붐비었다. 식사는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2017327() 흐림
아침 620분 안탈야 구시가지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이 화려한 길을 지나 한참을 달려 시내 중심에 있는 하드리아누스의 문에 도착했다.

하드리아누스를 기리기 위한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s Gate)은 기원전 2세기에 세운 장식용의 대리석 아치로 로마시대의 영광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 중에 하나다. 130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 도시를 통치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축물이다.

섬세한 조각들로 구성된 문은 지진으로 제2, 3문과 제2문 위의 하드리아누스의 석상은 파손 되었으나 문은 복원하였다.
이 건축물의 용도는 과거 성벽의 출입구 중 하나의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구시가지로 들어가고, 나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구시가지 집터는 1000년 전 로마시대 그대로이고 원형보존을 위해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고 했다.
조금 넓은 골목길에는 1500년 전 비잔틴 시대의 유적인 人道 돌길을 5m 정도를 발굴 투명유리로 복개를 해두었다.

골목길의 석축 유적지를 돌아 바닷가 조경공원을 거닐면서 멀리 옛날 등대 역할을 하였다는 8각형 이블리 탑(13세기에 셀주크가 사원의 탑으로 세웠는데 지금은 사원은 없어지고 38m의 미려한 8각형 이블리 탑만 남았음)을 줌으로 당겨 동영상으로 담았다.

이어 해변으로 내려가 다양한 장식을 한 유람선을 타고 안탈야 해안 절경을 50여분 둘러보았다.
청자 빛 바다물길을 따라 뱃길이 이어지는데 해안 절벽위에는 미려한 양식의 호텔과 아파트들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다.

먹구름이 오락가락하는 선상에서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선율에 잠겨 잠시 세상시름을 달래 보았다.
840분 하선하여 가까이에 있는 15인승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양공원에 올랐다.

넓은 광장에는 말을 탄 터키의 건국의 초대 대통령인 아타투르크 동상이 있고 도로 건너편에는 대경목 소나무 아래 요란한 분수 정원과 대형 분재 등으로 쉼터를 잘 조성해 두었다.

이블리탑을 다시 한 번 가까이에서 영상으로 담고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다음 관광지인 올림퍼스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출발했다.


버스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데 곳곳에 해양공원을 많이 해두어 시선을 즐겁게 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우측은 험한 산을 좌측은 바다를 끼고 달렸다.
수목이 울창한 해안 길이라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1030분에 올림퍼스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다. 해발 2,365m 정상으로 4,500m를 케이블카로 올라야 하는데, 필자는 일행이 다녀올 동안 (1시간 남짓) 주스(1잔에 5 $)마시고 주위의 임상과 야생화를 영상에 담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1145분 버스는 다시 지중해를 끼고 달렸다.
왼쪽은 타우루스의 험한 바위산, 우측은 지중해. 풍광이 좋은 곳은 숲속에 분홍색 지붕의 별장(?)들이 보이는가 하면 해안가 숲속에는 수많은 편익시설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외관이 독특하고 다양한 주택들이 시선을 끌고 있었다.

도중에 중식을 하고 1310분에 파묵칼레로 향했다.
곳곳에 터널을 지나기도 하는데 정말 풍광이 아름다운 해안이었다.
어떤 곳은 호사가가 절벽위에 높은 곳에 식당을 마련하여 손님을 케이블카로 실어 나르는 특이한 광경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4시 경에는 태산 타우루스 험산 협곡에 나있는 4차선을 달리는데 주위의 산들은 林相이 빈약한 바위산 들이였다.
산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넓은 들이 나타나고 농가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과수원들인데 일부는 꽃이 활짝 피어 풍년을 예고하고 있었다.
가까운 산들은 민둥산이고 멀리 높은 산은 백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버드나무도 많은 지역은 전형적인 농촌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들판에 집단으로 활짝 핀 꽃들이 탄성의 시선을 모으는데 살구꽃 이라했다.
창밖에 시선을 땔 수 없을 정도로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로변의 즐비한 상점들이 있는 작은 도시 데니즐리 를 벗어나자 4차선 도로 중앙에 가로등이 늘어선 길을 잠시 달렸다.
도로 끝나는 지점에 백설보다 하얀 석회암석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파묵칼레 입구이다. ,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에 시작된 도시의 유적이다.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 이름은 페르가몬 왕국의 시조인 텔레포스가 아내의 이름인 "히에라"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넓은 주차장에서 성곽 정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름 모를 노랗고 하얀 야생화와 처음 보는 땅에 붉은 개양귀비 꽃이 카펫을 깔아놓은 것처럼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먼저 2세기경에 축조 하였다는 원형극장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석양빛을 안고 오르는 길 주위로 야생화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기분 정말 황홀했다.

석조의 원형극장은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울림의 원리를 위해 돌계단의 홈을 판 것을 보니 지금도 쉽게 생각 할 수 없는 것이라 약 2000년 전 인류의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곳에서 파묵칼레내려다 볼 수도 있다.

지금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 Pamukkale)에는 비잔틴 문, 로마 목욕탕, 야외극장, 신전 터, 사도 빌립의 기념교회 등의 도시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네크로폴리스라고 불리는 헬레니즘~비잔틴 시대까지의 석관묘 1,200기가 멀리 우측 숲속에 조성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온천수가 갖가지 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병을 고치러 와서 병이 나은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렇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만든 무덤이다.

수많은 유적들에 대해 설명을 들면서 발걸음은 파묵칼레가 있는 아래로 향했다.
파묵칼레(Pamukkale)터키남서부 데니즐리에 위치한 석회봉을 말한다. 파묵칼레의 뜻은 터키어로 파묵이 목화뜻하고 칼레는 을 뜻하므로 목화 성이란 뜻이다.


이곳은 실제 목화재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이어 온천수가 흐르는 테라스를 맨발로 직접 걸어보고 33도의 온천수에 足浴도 하였다.
온천수가 부족하여 한곳만 물을 흘려보내는데 전체 규모는 대단했다.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돌아서는 길 시원한 바람이 불때마다 영혼을 달래는 사이프러스의 바람소리가 저녁노을에 젖어 흘렀다.

파묵칼레 관광을 끝내고 1750분 호텔로 향했다.
가까이에 있는 대형호텔COLOSSAE318호실에 투숙했다.

20173289)맑음
730분 호텔을 나와 에페소로 향했다.
도중에 파묵칼레 입구에 있는 이불을 포함한 다양한 목화제품 판매장을 들렸다.

파릇파릇 연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을 지나면서 918분경 김이 많이 솟아오르는 지열 발전소와 빤짝이는 스텐의 대형 파이프가 넓은 들판에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올리버와 밀감농원이 끝없이 이어 지는데 간혹 수확하지 않은 밀감도 있었다.

시골이라도 4 ~5층 아파트와 10층 내외의 고층 아파트도 들어서고 있었다.
올리버 나무는 스페인처럼 산중턱까지 재배를 하고 있는데 스페인처럼 정조식이 아닌 散植을 해두었다.

도로변에는 가로수처럼 유카리스 나무들도 많아 보였다.
1130분 도로변에는 분홍색 꽃을 피우는 복숭아 등 다양한 과일나무들이 생산단지를 이루는 곳을 지나기도 했다.

에페소 지역의 하나인 셀축 마을에 도착했다.
대형 종려나무 아래로 팬지꽃 등으로 거리를 아름답게 조경을 해두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양피제품 매장에서 남녀모델의 멋진 쇼를 감상하면서 둘러보았다.

HITIT 호텔식당에서 중식 후 1345분 가까이에 있는 에페소로 갔다.
관광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서 보기로 했다.
검문하는 터키 군인들의 한국관광객에게 친절히 대하는 모습을 보니 형제의 나라다운 기분을 느꼈다.

넓은 주차장에 도착하니 호객 행위가 심했는데 모두 한국말을 잘도 하였다.
에페소(라틴어:Ephesus,)는 서부  소아시아의 에게 해 연안에 (현재의 터키)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7-6세기에 건립된 식민도시다.

에페소는 주변 도시 혹은 국가,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등의 흥망성쇠에 따라 식민지화 되는 역사로 점철되어 왔었다.

하지만 이러한 식민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페소는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기원전 6세기에 건조된 웅대한 아르테미스 신전로마 제국시대에 건조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건축물도미티아누스신전(기원후 1세기)으로도 유명하다.

제일먼저 허물어진 목욕탕과 인접한 기둥만 2개 남은 시청사를 거처 귀족들 의사 교환하는 정치 아고라 장소와 1,400명 수용의 소형 원형극장과 대형 기둥만 남은 하드리아누스 신전등을 현지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관광했다.

모든 유적들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중앙의 긴 도로를 따라 좌우로 있어 곳곳에서 해당 유적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다. . 도리스 족의 시조신이자 신성한 영웅으로 제우스와 알크메네의 아들이자 페르세우스의 후손이다.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 받으며, 사내다움의 모범, 헤라클레스 가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석상이 있는 좁은 문을 중심으로 위쪽은 귀족들 아래로는 평민들이 거주 한다는 곳을 지나 옛날의 목욕탕. 아주 멋진 화강석으로 만든 화장실 등을 돌아보았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2(아파트로는 5층높이 ?)의 거대한 셀수스 도서관(그 당시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던 에페소 Ephesus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 중 하나인 셀수스 도서관Celsus Library이다. A·D 117년에 완공했다.대리석 2층 건물인 이 도서관은 당시에 만이천권 정도의 장서를 보관했단다.
기둥 사이에 학문의 목표인 지혜, 지식, 우정, 이해를 상징하는 여신상이 세워져있다.
셀수스 도서관은 A·D 262년 고트 족의 침입과 지진에 의해서 완전히 파손되었다가 1978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단다.)이 우리를 맞이했다

.
이곳에서 모두 사진을 많이 담는 곳인데 필자는 동영상으로 전경과 인접한 유적지를 담았다.
그리고 측문으로 나가 넓은 광장에 광장 양측으로 대형 돌기둥이 수없이 늘어선 곳을 둘러보았다.

항구 쪽으로 가는 도로이자 아고라로서 집회나 종교 행사, 상거래 등에 이용되었단다.
유럽과 지중해에서 들여온 온갖 물건이 이곳에서 팔렸으며 때로는 노예들의 거래도 있었단다.
이어 창녀촌을 지나 대형 원형극장으로 갔다.

헬레니즘 시대에 축조된 원형극장은반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최대 24천명을 수용할 만큼 크다. 아래 무대에서 소리를 내면 골고루 음향이 전달된다고 한다.

크기는 지름이 154m 높이가 38m인 반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4세기경에는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이 벌어졌단다.
울림의 계단으로 복원 예정인데 시범적으로 일부 설치해 두고 있었다.

설명을 듣는 동안 중국인들이 집단가무로 시험을 하는데 너무 소음이 크서 가이드의 설명을 중단 할 정도로 울림이 컸다.

원형 극장의 규모가 너무 커서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전경을 영상으로 담고 1540쉬린제로 출발했다.
쉬린제는 워낙 고산지대라 비가내리는 등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데 오늘은 날씨덕을 보는 것 같다.

쉬린제(Şirince)는 터키 이즈미르(Izmir) () 셀축(Selçuk)에서 동쪽으로 8km 거리에 있는 마을로 해발 700m 높이의 산 속에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쉬린제로 올라가는 산길 주변은 급경사 8부 능선까지 올리버를 식재 하였는데 나무 굵기를 보아 100년은 넘어 보이는 고목 들이다.

7부 능선에 있는 넓은 주차장에는 대형버스 몇 대와 승용차들이 많이 와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맞은편 비탈에 있는 2층 주택들은 오스만 터키 시대 15세기의 농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리스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지만 1924년 터키와 그리스 정부가 주민들을 서로 교환 했을 때 그리스에서 이주해 온 터키인들이 정착했단다.

마을의 모든 건물이 흰 회벽에 붉은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데 그리스풍의 집들이란다.
고목 소나무 사이로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특산물로는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올리브, 포도주, 사과, 복숭아를 이용한 과실주, 수공예품 등이 있다.
백 년 전에 우체국으로 사용했다는 실내에서 포도주. 오디. 복숭아주 등을 시음을 했다.

1610분 버스는 아이발릭으로 향했다.
넓은 벌판 멀리 소도시가 보이는 지역을 지나는 가 했더니 1730분부터는 소나무가 울창한 산길이다.

12여분 지나자 다시 이름 모를 도시 중앙 왕복 6차선 도로를 서산으로 기울고 있는 석양을 안고 버스는 달렸다.

1756분 터키 최대의 무역도시이지밀을 통과했다. 도로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추럭들이 항구답게 수없이 다니고 있었다.
산위에 있는 고층아파트들이 석양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1830알리아지역을 지날 때는 부근에 수많은 풍력 발전기가 바람을 가르고 이었다.
이어 시원한 에게 바다가 우리일행을 맞이했다.

19시경부터는 야산 구릉지대에 수령이 오래된 올리버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버스는 저녁노을의 눈부신 낙조를 안고 달렸다.

아름다운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20시에 에게해의 휴양도시 아이발릭에 있는 GRAND TEMIZEL호텔 243호에 여장을 풀었다.

2017329() 맑음
6시에 호텔을 나와 트로이로 향했다.
어둠이 걷히고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730분 도로변의 2~3층 주택들이 분홍색 지붕위에 태양에너지 시설 등이 눈부시게 빛났다. 아주 이색적이었다. 古木의 올리버 나무들도 생기가 넘쳐 흘렸다
.
올리버가 없는 산과 들에는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알록달록 봄빛에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높은 산길을 넘자 왕복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리고 완경사 구릉지에는 무성하게 자라는 밀들이 부드러운 초록융단을 펼치고 있었다.

815분 버스가 지나는 이곳은에게 해 영향에서 마르마나 해의 기후가 미치는 곳이란다.
부근의 야산들은 올리버 재배지는 보이지 않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830분 트로이 野立看板이 안내하는 입구를 지나 농로를 한참 들어가 트로이 유적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일행 이외 버스 2대도 모두 한국관광객이었다.
트로이는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언급되는 지명이다.

영어식 발음을 따서 트로이라고도 하며, 표준어도 트로이로 등재되어 있다. 트로이 유적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기원전 3천 년 전에 발흥하여 아홉 왕조가 존재한다. 사라진 전설 같은 왕조가 트로이(Troy) 왕조이다. 트로이는 흑해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마르마라 바다에게 해를 잇는 다르다넬스해협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400년 후 호메로스(장님)이 짖은 오딧세이 소설이 실제 유적지를 발견한 사람은 독일 태생인 아인리히 슐리만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오스(트로이) 이야기를 듣고 전설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로 믿었다. 후에 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벌게 되자, 1871년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트로이 발굴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의 나이 49세 때이다


2년에 걸친 발굴 끝에 1873히사를륵(HISARLIK) 언덕에서 항아리, 황금으로 된 목걸이 등 다수의 보물들을 발굴해 트로이가 전설 속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조금은 규모가 작은 방치된 유적지를 둘러보고 거목의 사이프러스가 그늘을 지우는 거대한 트로이 목마 조형물을 영상으로 담았다.

910다르다넬스 해협의 항구로 출발했다.
바다를 끼고 달리는 도로변 주변에는 분홍빛 복숭아밭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시선을 즐겁게 했다.
10시에 항구에 도착 대형 여객선에 버스에 탄체로 승선 하였다가 내려서 선실 2층으로 올라갔다. 소요시간은 35분이다.

차나칼레(차나칼레 Çanakkale)터키북서부에 위치한 유럽지역 도시로, 차나칼레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11만 명 정도이다.)항구에 도착하여 생선을 곁들인 이른 중식을 하고 1115분 이스탄불로 향했다.

10여분 지나자 나무는 한그루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구릉지에 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푸른 밀밭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제는 모바일로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는 시대이다.

31일 귀국하는 아세아나기 좌석을 가이드의 휴대폰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참 편리한 신기술이다.

323일부터 오늘까지 장장 3,300km로를 버스투어를 한 것이다.
버스는 잔잔하고도 검푸른 해안을 달리고 있었다. 이스탄불 외곽지대에 들어섰을 때는 늘어진 능수버들의 연초록빛이 봄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시내 중심지가 가까워질수록 미려한 고층건물이 자주 나타났다.
왕복 8차선인데도 교통체증이 심했다. 언덕위의 구시가지는 낡아 보이고 초라해 보였다.

15시 경에는 거미줄처럼 얽힌 입체 교차로를 지나 우측으로 향하는데 도로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복잡한 이스탄불의 도로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
마르마나 해에는 수많은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데 밤 12시가지나 새벽 6시까지 통과 할 수 있단다. 물론 소형 배는 낮에 보스포루스 지나다닌다.

우리일행은 성소피아 성당입장 마감시간(16)전에 겨우 도착 1540분에 입장했다.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지시로 537년에 지어진 아야 소피아는 대표적인 비잔틴 양식 건축물 중 하나인데, 비잔틴건축물의 특징인 둥근 돔, 정사각형 건물, 모자이크 벽화 등이 잘 나타나 있다. 5371453까지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다. 1453529부터 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1935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했다
 

내부 바닥 대리석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나갔는지 닳아서 반들반들하고 빤짝거렸다.
2(15m) 계단 복도를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데 역시 바닥의 대리석은 닳아서 윤기가 흘렸다.
천국의 문을 지나 금박의 예수상을 영상으로 담았다.

중앙의 돔은 직경 30m, 돔까지 높이 25m인데, 돔에 기둥이 없는 것이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고 했다.

사원광광을 끝내고 17시에 칼라타 다리로 향했다.
1725분 칼라타 다리 옆에서 유람선에 올라 보스포루스 해협 관광에 나셨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반가웠다.

수많은 유람선들이 충돌할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뱃고동을 울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1대교로 가는 좌측 능선에 있는 갈라타 타워는 옛날에는 등대로 사용했고 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평균 폭이 1km 깊이는 제일 깊은 곳이 400m이다.
터키의 관할이지만 패전국가라 통행료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석양 속에 돌아보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정감이가고 삶의 활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가끔 지나는 돌고래의 재롱에 탄성이 터지기도 했다.

45분간 유람을 하고 1814분 하선하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까지 교통체증이 심해 거북이 걸음이라 1시간 20분이나 소요 되었다.
어둠이 내려앉고 화려한 네온불이 건물마다 흘러내리는 거리를 지나 9시가 넘어서RAMADA 호텔 218호실에 들었다.

2017330() 맑음
730분 호텔을 나와 톱카프 궁전으로 향했다.
830분 톱카프 궁전 주차장에 도착했다.

톱카프 궁전은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38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궁전이다.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금각만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 중이다. 총 면적은 70만 평이며, 벽 길이만도 5km나 된다.

9시에 군인들 경비와 보안카메라가 움직이는 속에 궁전에 입장하여 내부를 둘러보았다.
4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톱카프 궁전. 소피아 박물관부터 쭉 따라 나와 당도하게 되는 정문을 통해 들어가는 곳이 바로 제 1정원이다. 1정원을 지나면 바로 제2정원. 예절의 문이다.

2정원에는 오스만 제국이 얼마나 크고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는 궁전의 부엌이 있다.
그 곳은 바로 380여 년 동안 5천여 명의 사람들에게 매 끼니를 제공하던 곳이다. 부엌 옆에는 도자기 전시관이 있어 유럽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주방기구와 도자기 12천 점이 전시되어 있어 영상으로 담았다

 3정원에는 오스만 제국 황제들이 사용하던 보석과 보물이 보여 있는 보석관이다.
에메랄드 단검과 100kg이 넘는 황금의자, 술탄의 갑옷과 칼 그리고 보석으로 장식한 권총. 장총, 백여 종류의 시계 등을 촬영금지라 감탄 속에 눈요기로 둘러보았다.

톱카프 궁전의 기마병

4정원에 들어서면 골든 혼 테라스’.보스포루스 해협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전망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이스탄불 시내를 조망 할 수 있다.

관광을 끝내고 나오니 일부 외국인들도 있었지만 터키 어린이들의 단체 입장이 많았다.
필자가 동영상 카메라를 돌리니 귀여운 모습으로 손을 흔들면서 야단 이였다.

다시 인근에 있는 벽과 거대한 기둥의 푸른색 타일 장식이 아름다운 불루모스크로 걸어서 갔다.
관광객들에게는 블루 모스크(Blue Mosque)라고 부르지만터키인들은 술탄 아흐멧 사원(SULTAN AHMET MOSQUE) 이라고 부른다.

1030분 모두 신발을 벗고 입장했다.
여자는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스카프를 써야한다.
또 바지나 치마를 입지 않았다면 필요의상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남자도 반바지 차림은 입장이 안된다.
불루모스크는 1609년에 시작하여 1616년에 완성한 이곳은 처음에는 사원복합건물이었다. 오토만의 종교 건축물 중 최고이다. 터키에서 6개의 높은 첨탑이 있는 유일한 사원이다.

사원에는 전체 260개의 창문이 있으며 중앙 돔의 높이는 43m이다.
사원 내 바닥은 전 면적에 이음새가 보이지 않는 카펫을 깔아 촉감이 아주 좋았다.
거대한 기둥의 푸른색 타일 장식과 화려한 천정 돔 등을 조용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했다.
 

이어 가까이에 있는 올리버. 장미오일 등 매장에 들렸다가 중식 후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로 주변에는 다양한 꽃들로 다양한 형상의 조경을 해 두었다.
공항 내 현대차 투산의 대형광고판이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공항사정으로 예정시간보다 40분이나 지연된 18시에 아세아나(OZ552)기로 이스탄불을 출발했다.
소요 예정시간은 9시간 40분 인천공항에는 31105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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