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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순창작동화] 말의 열쇠를 파는 집
2009-01-26 21:26:46
pooleep7

조회:2223
추천:129

                                                                                       권창순 창작동화

말의 열쇠를 파는 집

 

 

 

 

시장골목 중간쯤에 꽃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꽃집 옆에 ‘말의 열쇠를 파는 집’이란 간판을 건 이상한 가게가 생겼습니다.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말들은 말의 열쇠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한 가게에는 자판기 같은 기계가 몇 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주인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유리문엔 비 오는 날 오후부터 말의 열쇠를 팝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생태연못의 애기부들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어린이대공원은 문을 닫았지만 생태연못 나무다리광장에선 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함부로 해.”

“우린 그들의 마음을 전해주는 성실한 우체부야. 그런데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고 있어.”

“우린 꽃처럼 그들의 마음의 향기까지도 열심히 전해주는데 그들은 우리들의 존재를 너무도 하찮게 여겨.”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해.”

“우리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이때 흥분한 말들을 보며 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고운 말을 사랑한 사람들이 많이 불편할 텐데.”

“어쩔 수 없어. 거친 말을 쓰는 사람들도 그들의 이웃이야. 그러니까 불편함을 함께 나눠야만 해.”

“그렇지만.”

“입아, 널 아가리라고 하면 좋아? 주둥이라고 하면 좋아? 주둥아가리, 아각빨이라고 하면 좋냐고?”

“그건 싫어!”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우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한다니까. 말 친구 여러분 그렇지요?”

“맞아요.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말의 대표님!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박수소리가 그치자 말의 대표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의 뜻대로 행동하도록 합시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우리 사랑님의 마법으로 꽃집 옆에 가게를 열어 철저히 준비를 해놓았으니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나무다리광장에 힘찬 박수소리가 또 울렸습니다.

얼마 후, 말들은 자신이 머물던 동네사람들의 마음으로 하나 둘 돌아갔습니다.

 

갓밝이에 상처투성이의 말들은 동네사람들의 마음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사람들에게 학대를 당하진 않았지만 친구들을 돕기 위해 몇몇 말들도 행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말들은 한곳에 모였습니다. 그곳은 자판기 같은 기계 속이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자판기 같았지만 그곳은 어린이대공원보다 넓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까진 바쁘지 않을 테니까 물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며 즐겁게 지냅시다. 하지만 안내방송을 하면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오면 더욱 상냥하게 사람들의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우린 결코 사람들을 미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한목소리로 대답한 말들은 휴식을 즐기기 위해 공원 여기저기로 흩어졌습니다.

 

여름방학숙제를 하던 순영이는 엄마 심부름으로 과일가게에 갔습니다.

“할아버지, 졸라(매우,정말) 맛있는 참외주세요.”

“졸라맛 나는 참외는 없구나.”

주인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꽃집 옆 ‘말의 열쇠를 파는 집’을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 참외 졸라 맛있게 생겼어요. 빨리 주세요.”

순영이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귀 떨어지겠다. 졸라맛 나는 참외는 없으니까 다른 가게를 가 보거라.”

주인 할아버지는 순영이의 등을 떠밀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뭘 잘못했나요?”

“졸라맛 나는 참외는 없다니까!”

순영이는 일그러진 할아버지의 얼굴이 무서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장골목을 걸었습니다.

“뭐야! 졸라맛 나는 참외는 없다고 딴소리만 한단 말이지?”

다른 과일가게에서도 참외를 사지 못하고 돌아온 순영이를 보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누나, 구라(거짓말)치는 거 아냐.”

“너 주둥이(입) 닥쳐!”

순영이는 컴퓨터게임을 하는 동생에게 신주머니를 던지고 자기의 방으로 가버렸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살던 많은 말들을 잃어버리고 무척 답답했습니다.

“우리 딸이 큰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이 마음을 전해줄 마땅한 말이 없어 답답해 죽겠습니다.”

중년의 대머리아저씨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모처럼 시험을 잘 봤는데, 뭐라 말해줘야 합니까?”

답답한 순대국집 아저씨도 사람들을 보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대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빨리 비가 내려야 말의 열쇠를 사지.”

“그 열쇠를 사면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을 겁니다.”

“우리들이 말들을 너무 부려만 먹었어.”

“말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어.”

답답한 동네사람들이‘말의 열쇠를 파는 집’의 작은 유리문을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후텁지근하더니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으니 오후부터는 ‘말의 열쇠를 파는 집’에서 말의 열쇠를 사서 원하는 말을 마음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후가 되자 시장골목은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덩그렇게 놓여있던 자판기 같은 기계에 불이 켜지고 음악도 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트모양의 로봇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조용히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동안 말을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말은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자기들 맘에 가둬놓고 말을 학대한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떤 말은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말이 상처를 입으면 사람들은 더 깊은 상처를 입고 말 것입니다. 말은 사람들과 평화롭게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서로 소중한 관계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상 말사랑이 전해드렸습니다.”

가게의 작은 유리문이 열리자 줄을 선 사람들이 차례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순영이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년의 대머리아저씨가 하트모양의 로봇 말사랑 앞에 섰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이 하루에 세 가지 착한 일을 하여 열쇠를 살 자격이 있는지 마음을 찍겠습니다.”

로봇 말사랑의 하트중앙에서 초록불빛이 번쩍하였습니다.

“손님께서는 열쇠를 살 수 있습니다. 동네 골목길도 깨끗하게 청소하였군요. 여기 말의 열쇠가 있습니다.”

중년의 대머리아저씨는 로봇 말사랑이 건넨 말의 열쇠를 들고 자판기 같은 말기계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취직한 딸을 생각했습니다. 장한 딸의 모습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때 말기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열쇠를 초록구멍에 끼우고 왼쪽으로 돌려주십시오.”

중년의 대머리아저씨는 열쇠를 초록구멍에 끼우고 왼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러자 산새소리 물소리가 나더니 중년의 대머리아저씨 마음으로 데구르르 말 하나가 굴러들어 왔습니다.

축하한다!

‘그래 이 말이야. 내가 딸에게 제일 먼저 해주고 싶던 말이! 아! 얼마나 해주고 싶었는지. 말님 고마워요. 고마워! 내 마음을 전해주는 사랑의 우체부님!’

중년의 대머리아저씨는 가게를 나오자 집을 향해 뛰었습니다.

순대국집아저씨가 로봇 말사랑 앞에 섰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이 하루에 세 가지 착한 일을 하여 열쇠를 살 자격이 있는지 마음을 찍겠습니다.”

로봇 말사랑의 하트중앙에서 초록불빛이 번쩍하였습니다.

“손님께서는 열쇠를 살 수 없습니다. 손님은 변한 게 없습니다.”

순대집국아저씨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습니다.

“한번만 더 찍어보면 안 될까요? 기계는 고장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봇 말사랑은 순대국집아저씨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고 왜 자격이 없는지 마음속에 그림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들 훈이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영화가 나오고 있습니다. 순대집국집아저씨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나 그 돈 다 못주니까, 맘대로 해. 그럼 배째라고! 끊어!”

큰 소리에 훈이가 아버지를 바라다봅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화살이 훈이에게 날아옵니다.

“대가리(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이런 영화를 봐.”

굴밤주먹을 날리며 텔레비젼을 꺼버립니다.

마음속에 그림이 꺼지자 순대국집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가게를 나왔습니다.

순영이가 말사랑 앞에 섰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이 하루에 세 가지 착한 일을 하여 열쇠를 살 자격이 있는지 마음을 찍겠습니다.”

로봇 말사랑의 하트중앙에서 초록불빛이 번쩍하였습니다.

“손님께서는 열쇠를 살 수 없습니다. 좋은 친구를 가졌지만 좋은 친구가 못되는군요.”

홍당무가 된 순영에게 로봇 말사랑은 눈을 감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왜 열쇠를 살 수 없는지 그림을 보여 주었습니다.

며칠 전, 순영이는 학원을 다녀오다 놀이터로 민희를 불렀습니다.

동네 놀이터 정자나무그늘은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했지만 순영이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하고 몸이 불편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민희를 동훈이가 왜 좋아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동훈이는 키도 크고 잘생기고 부자동네에 살고 공부도 잘하는데 말입니다.

비탈진 골목길로 힘들게 올라온 민희는 순영이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순영아, 잘 지냈어?”

‘밥맛없는 애야! 여자애가 대굴빡(머리)은 왜 그리도 큰지.’

중얼거리던 순영이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옆에 와 앉는 민희를 빤히 바라다 보았습니다. 민희의 큰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혀있습니다.

“부탁이 있어서 말야.”

“순영아, 네가 나한테 부탁할 일도 있어? 무슨 부탁인데?”

민희가 작은 눈알을 굴리며 순영이를 바라다보았습니다.

‘저 여우같은 눈깔(눈) 좀 봐.’

순영이는 한참이나 민희를 빤히 바라다보았습니다.

“순영아, 무슨 부탁인데?”

민희가 바짝 다가앉자 순영이는 한뼘 쯤 물러나 앉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동훈이에게 전화 좀 해 줄래. 내가 하면 잘 안 받아서.”

“겨우 그 부탁이야. 알았어. 저기 공중전화가 있다. 나 동전도 있어. 전화 걸어줄 게.”

‘그래, 나도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순영이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어 기뻐.’

민희는 즐거운 표정으로 절뚝이며 공중전화 쪽으로 갔습니다.

민희의 뒷모습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순영이는 주머니 속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공중전화기 쪽으로 갔습니다.

“동훈이니? 시골이라고? 그럼 초록 잎새를 흔드는 예쁜 바람도 많이 볼 수 있어 좋겠다. 등대 같은 반딧불이도 볼 수 있고. 서울 오면 시골에서 본 들판의 풀잎이나 곤충 그리고 징검다리 등등 많은 얘기를 해줘. 벌써 가슴이 설레여. 할머니 이야기도 꼭 해줘. 기다릴게. 참 내 정신 좀 봐 순영이 바꿔줄게.”

싱글벙글하는 민희를 흘겨보다 순영이는 수화기를 받았습니다.

“잘 지냈니?”

“너도 잘 지냈어?”

“왜 전화를 받지 않았니? 생일 때는 서울로 오겠지? 무슨 선물을 줄까?”

“미안하지만, 할머님이랑 생일 보낼 거야. 난 선물 많이 받았어.”

“누구한테 선물을 많이 받아? 누구한테? 응?”

“서울 올라가면 보자. 학원 잘 다니고. 잘 있어.”

전화가 끊기자 순영이는 민희를 한참이라 노려보다‘주제에 선물을 보냈나 보지.’하고는 큰 길 쪽으로 가버렸습니다.

민희는 순영이의 뒷모습을 바라다 보다 함께 사는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빨리 가서 할머니 점심밥 차려 드려야지.”

민희가 내려간 비탈진 골목길로 시원한 매미울음이 냇물처럼 흘러갔습니다.

순영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의 열쇠를 파는 집’을 나왔습니다.

 

오늘도 중년의 대머리아저씨는 출근하는 딸을 보면 참 즐겁습니다. 일을 마치고 동네에 돌아오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며 쓰레기를 줍습니다. 골목도 깨끗해져 좋고 딸에게 즐거운 아버지의 마음을 전할 수도 있어 참 좋습니다. 오늘은 딸에게 고맙다 라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순대국집아저씨가 다시 말사랑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열쇠를 살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말집을 나온 순대국집아저씨는 모처럼 아들과 어린이대공원엘 갔습니다. 정문을 지나면 왼쪽 연못가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그 정자에서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고 있습니다.

“아빠! 죽돌이 할아버지들 많아요.”

“갈 곳이 많지 않아 그렇지.”

오랜만에 아빠와 공원에 온 득수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아빠처럼 돈을 많이 벌어 놔야지요. 돈이 최고니까요.”

신바람이 깨질까 봐 눈치 빠른 득수는 아빠가 좋아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이 핑계 저 핑계로 갚지 않고 큰 소리만 친 것도 부끄러웠습니다.

순대국집아저씨는 득수를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득수와 함께 회전목마도 타고 청룡열차도 탔습니다.

득수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온 순대국집아저씨는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고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순영이는 골목의 쓰레기를 줍는 중년의 대머리아저씨를 보는 것도 즐겁고 아빠를 자랑하는 득수를 바라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동훈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동훈이가 시골서 올라왔습니다. 순영이는 새가슴처럼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어린이대공원으로 갔습니다. 동훈이가 만나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동훈이는 동화마을 입구에서 순영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 있었니? 이거 시골서 가져온 선물이야.”

동훈이가 작은 조약돌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고마워. 이건 생일선물이야.”

순영이가 포장한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고마워! 집에가서 풀어봐도 되지?”

순영이는 섭섭했지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순영아, 그 조약돌 말야. 바위의 알이란 생각이 안 드니?”

“그냥 납짝한 돌멩인데. 졸라(정말) 귀엽다.”

동훈이는 조금 전에 마을 놀이터에서 만난 민희를 생각했습니다.

“민희야, 시골서 가져온 선물이야.”

“동훈아, 고맙다. 근데 이 조약돌 말이야. 큰 바위의 알 같다. 이렇게 반들반들 납짝한 돌이 되기 위해 오랜 세월 바위도 참고 견뎌냈을 거야.”

“무얼 참고 견뎌?”

“예쁜 알이 되려고 거센 물살을 말이야.”

동훈이는 시골 이야기에 푹 빠진 민희가 참 예쁘고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동훈아, 지난번 전화했을 때 생일선물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누가 보낸거야? 혹시 민희가 보낸 선물도 있어?”

동훈이는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 대굴빡(머리)에 주제파악도 못하고.’

얼굴이 붉혀진 순영이를 보고 동훈이가 말했습니다.

“난 그때 민희의 말을 듣고 참 많은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어. ‘초록 잎새를 흔드는 예쁜 바람도 많이 볼 수 있어 좋겠다. 등대 같은 반딧불이도 볼 수 있고. 서울 오면 시골에서 본 들판의 풀잎이나 곤충 그리고 징검다리 등등 많은 얘기를 해줘. 벌써 가슴이 설레여. 할머니 이야기도 꼭 해줘.’라고 한 민희의 말. 민희의 그 말 때문에 자연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느꼈어. 특히나 힘든 세월을 살아오신 할머니 이야기를 들을 땐 울기도 했어. 그러나 할머님은 무척 좋아하셨어. 민희는 참 좋은 친구야. 너두.”

“뭐, 나두?”

“그래.”

순영이는 얼굴이 화근거렸지만 기분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순영아, 너 나한테 할 말이 있니? 네 표정이 그런 것 같아.”

순영이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이 기회에 마음에 있는 말을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꼭 쥔 손에서 땀이 나고 입술은 떨렸습니다.

“저어 동훈아 나 말이야.”

“뭔데?”

“저어 널~”

“순영아 답답하다. 말해봐.”

“동훈아! 널~”

순영이는 좋아한다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가슴이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동훈아! 널~”

“동훈아! 널~”

“동훈아! 동훈아!”

식은 땀을 흘리며 발버둥치는 순영이 방으로 빨래를 하던 엄마가 급히 달려왔습니다.

“꿈을 꾼 모양이로구나. 근데 동훈이 이름은 왜 부르고 그래. 너 동훈이 좋아하니?”

“몰라!”

순영이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울음을 놓았습니다.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왜 생각이 안 난 거야. 그래. 말의 열쇠를 사야지. ‘말의 열쇠를 파는 집’에 가야해. 아니야 먼저 생태연못에 가서 말들을 만나야해. 거친 말을 써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좋아한다’는 말을 쓰게 해달라고 해야지. 빨리 가야해.”

순영이는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순영아. 어딜 가니. 점심밥 먹고 학원가야지.”

순영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순영이는 달렸습니다.

순영이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시장골목 꽃집.

그러나 그 꽃집 옆에‘말의 열쇠를 파는 집’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꽃집 옆에 새로 문을 연 만두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뿐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순영이는 어린이대공원을 향해 뛰었습니다. 지하철 지하도를 달려 공원정문을 지나 생태연못 나무다리광장까지 뛰었습니다.

생태연못 나무다리광장에 도착했을 때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난간대를 잡고 한참 숨을 골랐습니다.

그러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토론을 하던 말들의 모습은 보지지 않았습니다. 애기부들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잠자리들이 어지럽게 연못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럼 모든 게 꿈이란 말이야!”

순영이는 눈시울을 손등으로 닦으며 생태연못 옆에 있는 동화마을로 갔습니다. 꿈속에서 동훈이를 만나 좋아한다고 고백하려다 못한 곳입니다.

순영이는 사방을 돌아보고 아무도 없음을 알자 동훈이를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동훈아, 널 좋아해! 좋아한다고! 좋아한다니까!”

좋아한다고 소리 내어 말을 한 순영이는 가슴이 시원해짐을 알았습니다.

동훈이가 곁에서 웃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머리가 크지만 눈이 작은 별처럼 고운 민희가 곁에서 웃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순영이에게 동훈이도 민희도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순영이는 분수대앞 꽃밭으로 갔습니다.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순영이는 생각했습니다. 바람이 지금 꽃과 함께 흔들린다고! 그러니 순영이는 지금 바람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꽃과 바람처럼 말들이 우리들 마음을 흔든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라고!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순영이는 가슴에 두 손을 모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 보는 것입니다. 마음속 상처 입은 말들이 만져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들아, 미안해! 고운 말들아, 정말 미안해.”

“고운 말을 쓸게. ‘말의 열쇠를 파는 집’이 동네마다 있으면 안 돼. 우린 소중한 동무야. 서로를 사랑해야해.”

집으로 걸어가는 순영이의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시장골목에 들어서자 순영이는 입술 앞에 손바닥을 펴고 “정말 사랑해해”하고 말했습니다.

순영의 손바닥엔 하트모양의 사랑이란 말이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우리도 정말 사랑해!”

순영이가 사랑이란 말에 눈맞춤을 하자 사랑이란 말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순영이는 맘껏 숨을 들여 쉬었다 손바닥을 향해 내 쉬었습니다. 그러자 수 만개의 하트모양의 사랑이란 말이 동네사람들의 마음으로 날아갔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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