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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2014-12-24 14:16:21
sws60

조회:517
추천:60

(단편) 갱년기

신외숙

 

 

 

 

며칠 전부터 툭하면 등이 화끈거리고 열이 난다.

어떨 땐 뜨겁기까지 해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러더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가 하면 무릎 관절에 이상이 왔는지 삐꺽거리기까지 한다. 기운이 딸린 지는 오래 되었다. 인생 후반전을 향해 가속페달이 밟혔는지 몸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마음은 여전히 어린시절을 해매며 순수지향적인데…….

지금까지 살면서 중년 이후를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다. 그러나 먼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나이 사십을 서러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나이 오십이 벌써 앞을 지나고 있다. 친구들 사이엔 벌써 손자 본 치들도 있다. 노쇠 현상에 따라 건강했던 친구들도 각종 질고(疾苦)를 나타내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암기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요즘 들어 자주 건망증 증세가 나타난다. 머리칼은 반백을 뛰어 넘어 올백이 될 지경이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 갱년기 증상이 찾아왔다. 사십 대 중반에 슬관절염, 즉 퇴행성이 일찍 찾아와 엄청난 심신의 고통을 겪었다. 무릎 관절을 이어주는 물렁뼈가 소모돼 나타나는 통증은 실로 엄청나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했던 통증이 나중에는 혈액순환 장애가 오면서 냉증과 함께 점점 고관절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허리 아래 부분이 끊어질 듯 아파오면서 의자에 앉는 것 마저 힘들었다. 허리 통증은 무릎 통증에 비해 훨씬 심했다. 겨울이면 다리 전체가 마비되는 것처럼 통증이 심하고 한여름에도 뜨거운 전기 찜질팩을 해야만 잠들 수 있었다. 게다가 우울증마저 겹쳤다.

기운이 딸린 건 오래 전 이야기다. 평생, 채식만 한 탓에 골다공증도 진행돼 있었다. 그래도 혈압이나 당뇨 증상은 발견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 년 전에는 앞니 그것도 송곳니 뼈가 다 닳아 없어져 임플란트를 해 넣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질고(疾苦)가 두렵다. 죽을 때는 고생 않고 편하게 잠자듯이 가야 하는데, 입만 열면 걱정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노후대책을 해 놓았는가.

자신에게 수시로 묻는다. 노후대책은 곧 경제대책이다. 죽어도 돈이 있어야 대우 받는 세상이다. 맘몬 사상까진 아니더라도 나도 이젠 돈의 필요성에 절감하며 돈벌이에 매달리려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보다는 예술적 가치에 목매달고 살았는데 작년에 혹독한 돈가뭄을 겪고 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연쇄부도로 사업장을 잃고 목숨마저 잃은 남편이 내 창작의욕마저 꺾어 놓은 것이다. 돈 때문에 겪은 스트레스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예술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단 생각이 들었다. 예술에 대한 가치가 급락하면서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형편이었다.

허무맹랑한 소설에 마음 빼앗긴 지 벌써 20년 세월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현실감각을 잊고 환상 속에 사느라 세월 가는 줄도 몰랐다. 남편 덕분에 안심하고 창작에 전념하느라 경제관념마저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어느날 정신 차리고 보니 무능력이란 단어가 내 발 앞에 머물러 있었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임플란트 수술로 또다시 거금을 날려 보내고 말았다. 그때 겪은 스트레스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올해는 어떡하든 돈벌이를 하려고 취업을 했는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바쁠 때만 나가는 알바라 용돈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제 돈 가뭄은 정말 싫다. 작년 일 년 동안 무능력한 내 자신이 너무 싫어 죽을 뻔했다. 악착같이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인데 중년의 나를 쉽사리 써줄 고용주가 없는 게 문제다. 그리고 아무리 가치가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평생 숙원인 문학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언젠가 영등포 로터리를 지나다 본 적이 있다.

영등포 역전과 마주한 건물에 7080 노래방이란 아크릴 간판이었다. 거기서 조금 더 지나면 중년나이트란 네온사인과 함께 카바레 골목이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있다. 부킹 100%라는 문구를 달고서. 그들이 한결같이 내거는 조건은 쾌락이다. 요즘은 문구를 바꿔 무도장으로 변신해 미친 중년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세상은 갈수록 악이 보편화 되고 쾌락 일변도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인터넷에 악성 댓글 다는 인간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세상이다. 적색 분자가 활개치고 다녀도 오히려 두둔하고 악을 정의로 둔갑시키기까지 한다. 인터넷이나 신문지상을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하는 말이 있다. 아! 나도 어느덧 보수층이 되고 말았구나.

7080 베이비붐 세대라는 말을 흘려듣곤 했었는데 이념에 있어 확실하게 보수층이 된 것이다. 몸에서 기력이 빠져 나가고 돋보기가 아니면 책도 못 읽는, 임플란트를 하다 하다 지쳐 아예 틀니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마는 어느새 갱년기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이라는 단어를 붙여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전철을 탔을 때 앞에 앉아 있는 어린 여자애가 자리를 양보할 때도 우유를 먹던 아기가 빤히 쳐다보며 할머니라고 했을 때도 못 들은 척 넘겨버리고 말았었다. 감성이 죽어 계절의 변화를 세월 탓으로 몰아붙이고 나서도 나는 내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는 정신보다 앞서 몸을 지배하고 세월의 변화를 주름살로 나타낸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젠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늙음을 모면해 보겠다고 보톡스 주사를 맞는다거나 황토 찜질방을 가거나 하지 않는다. 비싼 화장품 쳐 발라가며 유행하는 옷차림을 하고서 꼴사납게 나다니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모임에서 일인데 얼굴은 육십도 훨씬 넘어 보이는 여자가 화장은 낮도깨비처럼 하고는 옷은 쫙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서 활개 치며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본인은 몸매 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이지만 얼마나 꼴 사납던지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여자들은 모임에선 가장 먼저 술잔을 부딪치며 브라보를 외치고 남자들과 음담패설 하는 데는 항상 앞장 선다. 중년을 또다른 말로 사추기라고 하던가. 노년을 앞두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모습에는 신물이 난다.

지난 여름까지 난 임플란트를 총 10개 해 넣었다. 처음 했을 때는 가격이 250만원을 호가하더니 지금은 150원 대로 가격이 낮아졌다. 그럴지라도 한꺼번에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담이 여간 큰 게 아니다. 거기에다 수술에 따른 통증과 후유증은 노이로제 증상마저 일으킬만큼 엄청나다.

잇몸의 뿌리가 썩어서 하는 수술인만큼 난이도가 높아 성공했다 해서 꼭 안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다른 부위에 계속해서 발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꾸 임플란트를 하다 보면 나중에는 차라리 몽땅 빼버리고 전체 틀니를 할 걸 그랬다고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임플란트와 함께 나타나는 또다른 증상은 골다공증이다. 재작년에 해 넣은 위 어금니는 몇번이나 째고 꿰매기를 반복할만큼 상황이 심각했었다. 그 이유는 임플란트를 식립할 자리를 열고 보았더니 뼈가 텅 빈 채 시커멓게 구멍이 나 있었다. 의사가 인공뼈를 넣고 망치 같은 걸로 쾅쾅 박고는 실로 꿰매버렸다.

임플란트는 통증도 통증이려니와 목돈이 소요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5-6년 전에 해 넣은 임플란트가 잘못 되었는지 잇몸 이식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임플란트 한 부위의 잇몸이 약해 자꾸 주저앉기 때문에 입천장에서 살을 떼어다 잇몸 부분에 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다. 통증이 엄청나고 비용도 만만치가 않아 듣는 순간 너무도 화가 나 기절하는 줄 알았었다.

중년기 들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짜증이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순간 치솟는 분노를 발산하고 만다. 짜증낸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면 될 것을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또다시 반복하고 만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을 포기하고 산 것 같다.

칼주름이 진 맨 얼굴에 헐렁한 바지에 굽 낮은 단화와 구제품 일색인 내 옷차림에 스스로 절어 있었다. 외모 가꾸기를 외면한 건 여자로서의 기능 상실과 최소한의 사랑욕구마저 포기한 것과 같다. 중성화 되어버린 의식은 이성(異姓)에조차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가끔 밤잠을 설치고 느닷없이 우울이 찾아오는 걸 보면 갱년기 증후군이 확실한 것 같다. 내가 자꾸만 같다란 표현을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스스로 인정하기가 싫은 것이다. 내가 중년기 아니 갱년기라는 사실을.

남들은 중년기에 이르러 명예욕이 급상승하고 그에 따라 마지막 노욕이 극성을 부린다는 데 나는 정반대다. 무기력증과 자포자기가 내 전신을 휘감고 자괴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첫 번째 증상이 무관심이다. 가족에 대해서도 나 자신마저도 전혀 돌볼 생각을 않고 죽은 듯이 누워 잠만 자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낮잠 자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었다. 금보다 귀하다는 시간을 잠으로 허비한다는 건 수치와 모욕과도 같다. 스스로에게 찬물을 끼얹고 도태를 자초하는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시간을 나는 중년기에 들어 아낌없이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죽음을 앞당기기라도 하듯.

날씨가 추워지자 내 의식은 더욱 나태해졌다. 아침이면 이불 속에서 꼼짝 않고 누워 TV에 시선을 꽂는다. 드라마와 휴먼 이야기, 뉴스가 차례로 끝나고 나면 배에서 꼬르락 소리가 난다. 간신히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가스불을 켜고 주전자를 올려놓는다. 냉장고를 열어 보지만 먹을만한 게 안 보인다.

달걀 몇 개를 주전자에 넣고 끓인다. 돌아서며 컴퓨터에 시선을 꽂는다. 인터넷은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촉진제와 같다. 인간 악의 각종 해악상이 실시간 별로 떠오른다.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고 악에 편승한 기사가 수없이 출몰한다. 인격모독, 아니 인격살인이 가장 첨예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인터넷이 아닐까.

이제 인터넷은 정보망의 1순위라기보다 악의 온상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정체불명의 온갖 기삿거리가 오염되고 타락한 의식을 부추기고 급기야 이념마저 혼탁하게 변질시키고 말았다. 그 한 예로 동심이 가장 먼저 물들어버린 것이다. 폭력과 게임, 인격살인과 혼탁한 가치관으로.

이제 동영상의 해악상은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더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단골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모든 게 스마트폰으로 통한다는 말은 중독증세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린아이들도 스마트폰 중독이 되어 엄마 아빠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찾는다.

이제 인터넷의 보급은 동영상과 함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치관의 몰락과 여러 가지 중독증상으로 최첨단 악마 노릇 하고 있는 것이다. 무제한의 정보 유출은 물론이고 양심 기능마저 망가뜨리고 악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고 있다. 인터넷을 보면 순간적으로 악에 편승하는 기분이 들어 우울이 빠르게 마음을 강타한다.

인터넷 상에 떠오른 기사를 보면 마음 속에 한 문장이 떠오른다.

악은 빠르고 집요하다.

악은 강하고 잔인하고 포기할 줄 모른다.

컴퓨터의 보급이 치매를 앞당겼다는 말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간단한 수치 계산도 약속장소 날짜조차 핸드폰 기능이 알아서 척척 해주니까 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중의 우상으로 떠오른 연예인에 대한 기사가 맨 머릿 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가수와 탤런트와의 연애기사다. 시대의 얼짱 몸짱의 대명사로 통하는 사람들이다. 섹스어필을 무기로 화면을 달구는 가수들은 감정도 기획사에 맡겨야 하나. 소속사들은 연애 기사를 놓고도 공방을 벌인다. 이상하게 그런 기사를 대할 때면 몸에서 기운이 스스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정신이 몽롱해졌다가 감각마저 흐릿해진다.

컴퓨터를 끄고 돌아서는 순간 열기가 등에서 머리 위쪽으로 치닫는다. 정수리 부근이 뜨거워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근래 들어 이런 증상이 심화된 것 같다. 처음엔 화병의 일종인 줄 알았다. 울화가 치밀어 심장이 뜨거워지면서 나타나는 증상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가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중에야 알았다.

갱년기 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열기는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몸속에다 난로를 들여다 놓은 것 같았다. 불덩어리를 껴안고 살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짜증이 났다. 가장 힘든 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분별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생리가 끊기면서 복부비만 증상도 찾아왔다.

다른 표현으로 운동부족이 복부비만으로 나타난 것인데 옷을 입고서 거울 앞에 서면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다. 통나무 드럼통 더 나아가 코끼리 같다. 몸이 비둔해지니까 새옷을 자꾸 사야 하고 그것도 해가 바뀌면 또다시 새옷을 사야 한다. 자꾸 몸집이 불기 때문이다.

이젠 어쩔 수 없어,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잖아.

스스로 위로해 봤자였다. 살찌는 거야 그렇다 쳐도 노쇠 현상은 슬픈 서곡이었다. 맨 처음 나타나는 증상이 기억력의 감퇴였다. 다른 건 몰라도 기억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근래 들어 돌아서면 깜빡 깜빡하고 자주 잊는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다가도 방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 안 날 때가 많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길을 걸어갈 때였다. 친구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핸드폰이 안 보인다 했다. 집으로 들어가 잠시 뒤에 나왔는데 인터넷 전화기였다. 친구는 아무래도 치매 증상 같다며 한숨을 내리쉬었다. 또다른 친구는 한동안 저혈압으로 고생했는데 갑자기 고혈압이 됐다며 의심병의 수위를 높였다.

친정어머니에게 나타났던 고혈압 증상이 자신에게 찾아온 건 아닌가 해서였다. 그녀 말고도 고혈압과 당뇨병 합병증에 시달리는 친구는 여럿 있었다. 암으로 극한 고통에 헤매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끔찍한 건 노후대책이 전무한 것이었다. 젊어서 자식에 올인한 결과 노후대책을 전혀 하지 않은 베이비 붐 세대의 끝간 몰락이었다.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자식 걱정에 노후 걱정까지 거기에 병고까지 하나같이 죄수 같은 표정이었다. 한동안은 세 집 건너 암환자라더니 요즘은 중국에서 불러오는 초미세먼지까지 환경이 가져다주는 재앙으로 폭탄을 껴안고 사는 기분이다. 의료기술의 발전보다 병은 더 먼저 알고 최첨단 장비를 가지고 찾아온다.

그중에 가장 빠른 진화는 스트레스라는 불명예다. 인간관계의 악재로 들이닥친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사람들은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해대거나 속을 끓인다. 속을 끓인다는 건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마음의 파멸을 의미한다.

누군가 말했었다. 남을 미워하는 건 독약은 내가 먹고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미움은 반드시 저주를 동반하는데 그 저주가 바로 자기를 향해 내리꽂히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나 종교에서 용서를 강요하는지도 모른다. 미움은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을 증가시켜 각종 폐해를 일으킨다니 그것만큼 원흉도 없으리라.

상대방을 향해 독기어린 말로 상처 주는 인간이 있다 치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미워한다 치자. 그렇다고 그 사람이 잘못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몇 년 전에도 그랬다. 내 가슴속에 불덩어리를 집어넣은 그 인간은 소문난 인간악마였다. 그는 자기가 가진 지위를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이익과 상처를 주었는데 그러함에도 그에겐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악인에게도 힘과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면서도 그에게 다가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그에게 칭찬과 아부를 아까지 않았다.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탕발림 같은 말을 늘어놓다가도 돌아서면 끝없는 악담을 퍼부었다. 그렇게 이용해 먹다가 시효가 끝나면 언제든지 돌아설 작정이었다.

그 점 또한 악마도 알고 있었기에 쉽사리 그들의 계획에 놀아나지 않았다. 악마를 이용해 지위를 얻으려는 자나 악마나 모두에게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더구나 악마는 용인술에는 자타가 공인할만큼 정평이 나 있었다. 그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위치에 도달한 것은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쉽사리 남에게 알려줄 리라 있겠는가.

결국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갔다가 실컷 이용만 당하고 쓰라린 상처만 입고 돌아섰다. 늙은 악마는 그 방면에 있어 선수였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돌아서면 악마의 뒷담화 하기에 바빴다. 별별 욕을 다 끌어다 대고 저주의 함성을 밤마다 쏘아댔다. 그래도 악마는 여전히 건성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만고불변의 법칙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한번쯤 올 법한 불행도 비껴갔다. 매번 그랬다. 그렇다고 악마가 마냥 편안한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불면증이었다. 그는, 가해자가 들었으면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그 엄청난 비밀을 어느날 내 귓가에 말해주고는 여행을 떠나버렸다.

여행을 간다고 사라질 불면증이라면 벌써 사라졌겠다.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가해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떠들어대는 악담에 내가 편승한 것은 7-8년 전의 일이다. 그 악마가 상처 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해자 그룹이 따로 결성될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여서 작당을 하거나 힘을 모아 한꺼번에 덤비자는 취지는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소심한 피해자로서 입담이나 까자는 것이었다. 하긴 한꺼번에 달려들어 봐야 악마를 이길 방법은 전혀 없었으니까. 오히려 해코지나 당하고 말지. 그러니까 그때가 여의도에 벚꽃이 지고 나서 부활절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느날 악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치밀하고도 계획적인 은밀한 유혹의 말로,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제의를 달고서.

왜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게 빨려 들어가는지 그 엄청난 카리스마의 마력을 떨쳐버리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단언컨대 나는 그에게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고 털끝만한 욕심도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 제의를 받는 순간 내재돼 있던 욕심이 확 불거져 나오는 걸 느꼈다. 그런 걸 두고 이심전심이라고 하던가.

나만큼은 특별한 줄 알았는데 왜 그랬을까. 아! 그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고 교만이었다.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한 결과였다. 악마가 건네주는 달콤한 술잔을 받기 전 난 왜 진즉 그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어떤 단체든 그곳에는 수뇌부가 있기 마련이고 그들에겐 항상 평판이 따라다닌다. 평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잣대가 되며 관건이 되기도 한다.

여러 경로를 거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알아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았을 것을. 그러나 속셈은 딴 데 있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혹시나 내 오래된 꿈이 무너지지 않을까.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닐까. 그보다 내게도 그를 통해 얻게 될 이익이 있지 않을까 서둘러 결정했다. 순간의 결정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욕심이었던 것 같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게 지겨워 한꺼번에 뛰어 올라 보겠다는 요행 심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급상승 해보겠다는 무리수를 두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게 그 모험 같은 제의를 덜컥 받아들이고 만 것이다. 그깟 명예가 뭐라고. 기득권층에 빌붙어 잠시의 안락(安樂)을 누리려 했을까.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때 심한 모욕감을 뒤집어쓰고 났을 때였다. 어디에다 두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너무나 뻔한 속임수였고 말도 안 되는 제의였기 때문이다. 그 제의를 받아들인 내게 더 큰 문제가 있었음을 자타가 공인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게임은 끝났고 돈은 날아가 버리고 난 뒤였다. 일단 인정하고 나니 차라리 홀가분했다.

까짓 돈 몇 푼 날린 거야 벌어서 만회하면 되고 그런데 마음의 상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분노가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데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악마와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밤낮없이 심장을 태우는 것이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끔찍한 파멸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미움은 한마디로 거대한 집착이었다. 나와 원수의 마음을 강한 동아줄로 묶고 학대하고 고문하는 악마의 장난질이었다. 악마의 장난질에 마음을 맡겨 놓은 것도 나였다. 처음부터 안 맡겼어야 하는데 뒤늦게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런 인간에게 놀아난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 인간에게 잠시 기대했던 내 얄팍한 이기심이 너무 가증스러워 정신 차릴 수가 없었다. 혼란스럽다 못해 뒤로 넘어질 지경이었다. 날이 갈수록 얼굴이 연탄재 뒤집어 쓴 것처럼 검게 변해갔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 다음 순서는 위궤양과 불면증이라고. 하긴 그 인간도 악마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불구덩이인 내 가슴속에 불을 쏟아놓긴 매 한가지였으니까. 나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것 같아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 돌아다녔다. 한 겨울 얼음이 꽁꽁 얼고 삭풍이 귀를 떼내는 것처럼 추워도 매일같이 나가 돌아다녔다. 다행히 위궤양이나 불면증은 찾아오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면 원없이 식탐을 부렸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 금세 잠에 골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게 위궤양과 불면증이 찾아올 거라고 말해준 사람은 분명이 악마일 터였다. 남의 불행을 미리 간구하거나 사주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너무도 악마가 편재해 있는 것 같다.

내가 너무도 상심해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면 상대는 보일듯 말듯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니가 당했지.”

그러면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 악마 같은 인간아 너도 똑같이 한번 당해 보렴, 아니 죽을 때까지 당하면서 살아라. 악마는 아니 원수는 아무 때나 툭하면 나타나 내 속을 뒤집어 놓고 떠났다. 세상은 언제나 강자의 몫이었고 약자는 항상 피해자였다. 그런데 우스운 건 강자나 약자나 악은 공통으로 마음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악은 악을 부르고 평안이라는 단어를 내게서 빼앗아 가버렸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말할라 치면 어김없이 악마가 먼저 찾아와 상대의 마음을 제압해 버린다. 그러면 상대 역시 악마로 변해 상처 위에 기름을 끼얹고 가스불을 켜대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일 뒤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존재에 대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로 작심했다. 그러면 혹 내 환경이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남들보다 조금 선하게 살면 내게도 행운이란 게 찾아오지 않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주변에 어려움 당한 사람들이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 힘껏 도와주었다.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란 건 아니었다. 내 마음 편해보자고 잠시나마 미움과 분노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도움을 받고 나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도움을 요청할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그러더니 일단 도움을 받고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한번은 나보다 훨씬 처지가 나쁜 사람이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기에 도와주었더니 나중에 내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불쌍한 사람 도와주고 나서 보기 좋게 당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위기에서 건져주고 나니까 갑자기 내게 덤터기를 뒤집어씌운 인간도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더라. 꼭 그 형국이었다.

세상에 인과응보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누가 그런 말을 했던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차라리 짐승은 은혜를 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사람이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었다. 한 때는 선과 의로 심으면 언젠가는 좋은 열매가 있으리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구제헌금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그 구제기관 직원이 기금의 일부를 빼돌렸다는 기사가 뉴스 시간에 나오는 게 아닌가. 그 다음부터는 기부금 내는 것에 대해 일절 외면하고 살았다. 지인(知人)이 다가와 온갖 하소연을 하며 도와달라 요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연히 도와주었다가 해코지 당할까 두려워서였다.

세상은 온통 이기주의 냉소주의로 무장한 후안무치들로만 가득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어느덧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날로 마음속에 독기와 냉기만 쌓여갔다.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악이 내 안에서 동이로 쏟아질 것 같았다. 도저히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어 직장마저 내팽개치고 말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돌아다니던 걸 범위를 넓혀 여행길에 올랐다. 떠남의 이유는 정신적 해방이었다. 아는 얼굴 대하는 고통에서 벗어나자 살 것 같았다. 다행히 내 예금통장은 약간의 여축분이 있었다. 한번 악마에게 당하고 나자 돈 관리를 철저히 해 손실을 미연에 방지했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해 경계 수위도 높였다. 이제부턴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 따윈 베풀지 않고 살리라. 대인기피증으로 온 몸과 마음이 꽁꽁 묶여 있는 채로 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배낭을 가슴에 움켜쥔 채 버스에 오르자 열기가 확 끼쳐져 왔다. 바깥 풍경을 보니 겨울이었다. 사람들이 등산복 차림으로 고속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뒤로 자유 방종 이기심 냉소주의도 따라 올랐다. 소통 부재로 삶을 도적당한 것 같은 나도 그들 속에 섞여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여행만큼 큰 마음의 호사도 없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면서 한결 편안해졌다.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배짱도 올라왔다. 내공이란 단어도 생각났다.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 나가자 갑자기 인생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데 차창 밖을 보니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뿌연 초미세먼지가 건물 중앙을 구름처럼 가리고 있었다. 아참, 그렇지 오늘 미세먼지 경계주의보가 내렸지. 그것도 모르고 여행길에 오르다니, 이렇게 무계획적이고 멍청할 수가.

하긴 나는 평소에도 즉흥적이고 흥분하길 잘했다. 남편이 내게 툭하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좀 더 신중할 수는 없는 거야? 당신은 어째 매사에 즉흥적이야."

그는 생전에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외조 잘하는 남편이었다. 내가 소설 쓰는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면 항상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힘든 나머지 내가 포기할라치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격려해 주었다. 내게 대학원 진학을 권면한 것도 그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미국 유학 보내고 나서 두문불출 하며 숨죽여 울던 사람도 그였다.

그에겐 많은 장점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절망과 혼돈 속에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조언과 산 소망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가 해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재난을 만난 사람들에게 다가가 봉사활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는 아이티와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그는 갈 때마다 동역자들을 구하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생활비의 절반 이상이 뭉텅이로 들어가곤 했다. 봉사하러 갔다가 풍토병을 만나 죽을 위기를 여러번 겪기도 했다. 아무리 뜯어 말려도 소용 없었다. 그러다 작년 사업장 문을 닫은 후 마지막이라며 떠난 봉사 현장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고 말았다. 그는 선행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떠날 때면 남모르게 했기에 주변사람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죽음이 신문 맨 하단에 몇 줄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을 단지 사고사나 단순한 과로사로 아는 지인들도 많았다. 그것이 세상 인심이었다. 요즘은 인터넷 댓글이란 게 있어서 재앙과 고난당한 사람들에게 악성 루머와 욕설을 해대는 인간들도 있다.

그런 거에 비하면 그의 죽음은 살신성인과 마찬가지로 조용한 편이었다. 남편이 떠나고 나자 난 극단의 허무와 우울증에 사로잡혔다. 삶과 죽음 사이에 갇혀 신음하는 불쌍한 어린양 같은 신세 같았다. 어느날인가부터 나는 매일같이 여행길에 올랐는데 핑계는 소설 구상이었다.

아들은 미국에서 학위를 따자마자 그곳에 주저앉았다. 교포 2세 처녀와 눈 맞아 결혼했는데 처가가 굉장한 부자라 했다.

아빠가 없는 고국에는 죽어도 돌아오고 싶지 않다 했다.

 

한겨울 날 여행 길에 올랐는데 차창 밖으로 미세먼지가 날리더니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들판과 산야가 하얗게 변해갔다. 강물과 비닐하우스 위에도 눈이 덮이더니 어느새 내 마음도 하얗게 변해가는 것 같았다.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뒷자리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보아 중년부부 같았다.

“지난달 우리 동기 하나가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인데 등반하다가 죽었다는 게야, 여럿이서 힘차게 정상까지 올라간 것까진 좋았는데 그만 하산 길에 심장마비로 갔다는 거야.”

“저런 건강도 좋지만 무리를 한 거로군요, 3과를 피하라는 말이 있는데요, 과로 과식 과속이래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절제가 왜 맨 나중에 있는 줄 아세요?”

“글쎄.”

“앞의 8가지를 다 잘했더라도 절제를 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기 때문이래요, 어쨌거나 그 분도 참 안 됐네요, 가족만 불쌍하게 됐네요.”

“그러게, 우리 동기들이 새로운 산악회를 만들었는데 산 중턱까지만 갔다 오는 거야, 괜찮지?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히 운동도 되고.”

“그러게요, 경치 좋은 산에 가서 맑은 공기도 쏘이고 마음도 비우고 체력도 단련하고 일석삼조네요.”

“이상한 게 사람이 늙을수록 욕심이 상승한다는 거야, 욕심을 부리다 보면 한도 끝도 없고 과유불급이라고 올라갈수록 내려올 일만 생긴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야.”

“전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에 태어난 걸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나요? 1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학교 문턱도 못 밟아 봤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지만 잠시 눈을 돌려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상 어딘가에서는 먹을 양식이 없어 처참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악습에 시달리는 나라도 많대요.”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악습이 있는데 남편이 죽어 화장할 때 살아 있는 부인도 함께 화장한다는 거야, 죽으면 여신이 된다는 명목 하에 환각제를 먹여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데 무려 10시간 동안이나 고통을 당하며 죽는다는 거야. 더 기가 막힌 건 일 년에 2500명이나 되는 어린 소녀를 인신제사로 드리는 거야, 그것도 산 채로. 아직도 이 지구상에서 그런 끔찍한 범죄가 벌어진다니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돼.”

“북쪽에 있는 어떤 국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3000달러를 준대요, 우스운 건 대통령이 마피아 출신이래요. 그런데 기가 막힌 건 그 3000달러라는 지원이 끊기면 아이를 갖다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가 하면 어떤 국가는 남편이 아내에게 너랑 이혼이야 라는 말을 세 번만 하면 자동적으로 이혼이 성립된다는군요.”

“그러면 아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이들은?”

“이혼과 동시에 아내는 맨몸으로 쫓겨난대요, 물론 아이들은 이혼과 함께 남편 소유가 되고요.”

“세상에 아직도 그런 나라가 있다니,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참 살기 좋은 나라야, 옛날에 비하면 우리나라도 여권신장이 많이 된 셈이지, 오히려 남자들이 버림받는 세태라는 말도 있어.”

“외국에 나가 보면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잖아요, 너무 잘 살아서 다이어트니 명품이니 하는 걸 보면 참 씁쓸해요, 한쪽에선 굶어 죽는다고 난리이고 한쪽에선 살찔까봐 일부러 굶고, 하긴 요즘 젊은이들은 취직 못해 안달이긴 하지만요.”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망하지 않는 건 보이지 않는 의의 용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엘리야 당시 모두가 바알에게 무릎 꿇었다고 생각했지만 칠천 명이라는 숨은 의인이 남아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소수의 강한 힘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어, 악은 강해 보이지만 결코 선을 이길 수는 없어, 왜냐하면 신은 그들 편이니까.”

“동유럽에 가면 짚시족들이 있는데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많아요, 어린 짚시 아이들은 평생 양말을 한번도 신어보지 못한 채 죽는 아이들도 많대요, 어린 짚시 소녀들은 열한 살이나 열두 살이면 아이 엄마가 된대요, 대부분 근친상간으로 태어나는데 불쌍해서……… 그런데 감사한 건 그런 아이들을 위해 복음과 빵을 전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이에요. 그분들은 이 시대 마지막 희망의 보루일 거예요.”

저들은 필시 자기들을 의의 용사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남들은 죄악시하면서 자신들만큼은 선과 정의의 화신으로 여기는……… 그렇다면 저들이야말로 위선자일 것이다. 악마도 평상시에 저들처럼 말하는 걸 좋아했었다. 자신을 항상 정당하게 포장하면서 성공한 선인인 양 의인인 양 행세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악마의 화법은 교묘했고 그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악마에게 당한 이후부터 어떤 사람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불신부터 앞세웠다.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가 낭패 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어쩌면 나도 저들과 별반 다름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지난날 잠시 선행을 흉내 냈던 것도 내 의를 쌓는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내세의 보장을 염두에 두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아성을 높이 쌓다 보니 어느새 교만이 나를 눈멀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즐거워야 할 여행길에서 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걸까. 갑자기 머리가 실타래 엉킨 것처럼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창밖을 보니 주먹 만한 눈송이가 덩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차량이 거북이걸음을 하며 자꾸 뒤쳐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고가 났는지 119 구급대와 앰뷸런스가 눈을 뒤집어 쓴 채 고속도로 갓길에 정차된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들것을 들고 앰뷸런스에 오르는 대원들이 보였다. 이 눈 폭탄을 맞고 사고를 만났으니 운이 없어도 엄청 없는 사람이었다.

“저 눈을 그냥 맞으면 안 되는데, 초미세먼지가 섞여 병 폭탄을 그대로 맞는 거나 마찬가진데.”

나는 혼잣말로 지껄이며 여전히 그쪽을 주시했다. 자세히 보니 쏟아지는 눈발 속에 사고승용차가 보였다. 검정색 에쿠스였다.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내려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자기들 일 아니라고 너무들 하는구나. 속으로 탄식하며 자동차 넘버를 보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차량 번호가 눈에 익었다. 차량 번호는 아직도 임시 번호판을 달고 있었는데 에쿠스 자동차와 일치하면서 뭔가 떠오를 듯 떠오를 듯하다 사라졌다. 저 자동차 번호판을 어디서 봤더라. 기억이 미로를 헤매는데 뒷좌석에서 또다시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의롭고 선하다고 해서 겸손한 건 아니야, 진짜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남을 인정하는 거야. 남을 판단하는 건 결코 겸손이 아니야.”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요?”

그들의 대화를 듣는 순간 속에서 심한 욕지기가 났다. 방금 그들이 한 말이 화살처럼 가슴에 와 박히면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짜증이 울컥 솟았다. 당장 일어서서 폭포수같이 말 따발총을 쏘아주고 싶었다. 시끄럽다고 이젠 그만하라고.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람을 미워하는 건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는 것과 같다는군요, 미움은 마음속에서 지혜를 빼앗고 아둔하게 하는 촉매제와 같대요.”

점점 내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고 싶었다. 그래, 나 아둔한 인간이다. 어쩔래? 그러나 말은 입안에서만 감돌뿐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악마는 항상 심리에 정통했다. 상대를 보면 무엇이 약점인지 강점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다.

약점을 이용할 때도 많았지만 강점이나 장점을 이용해 자기의 유익을 취하는데 선수였다.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유발했고 명예나 인정욕구에 환장한 사람들에겐 교묘한 방법으로 돈을 갈취했다. 마음을 빼앗고 상처를 입히고 나서는 반드시 앙갚음을 했다. 그에겐 어떤 심령술(心靈術)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단체 어느 기관 어느 누구에게나 평판은 반드시 따라다닌다. 평판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자 그 사람의 이력서이다. 그런데 그 진실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명예라는 욕심에 환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명예에 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은 정의롭고 인정받아야 할 존재라고 말할 뿐이다. 나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남들이 다 명예에 미쳐도 나만큼은 예외라고 생각했다.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믿었다. 대쪽 같진 않더라도 적어도 불의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내 의를 쌓기 위한 명분도 있었지만 가끔 선한 일에도 동참했고 거금을 희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악마에게 잠시 정신을 빼앗기고 낭패와 개망신을 당한 이후부터 그 아성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나는 전혀 선인도 의인도 아니었다. 겸손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나의 모습은 전부 가짜였단 말인가. 더구나 악마를 미워하고 저주까지 한 내 모습은 어디 있다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생각하는데 또다시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됐다.

버스 안에 히터를 너무 가열시킨 걸까. 몸에서 열기가 사라지지 않자 짜증이 울컥 솟았다. 짜증이 나면 누군가를 향해 분노와 욕설이 생각난다. 이래서 인간의 본성은 악이라고 했던가.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결혼하여 미국에 자리 잡은 뒤부터 엄마에게 일체 무관심으로 나오는 아들에 대한 섭섭함도 가슴을 치밀고 올라왔다.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지, 생각하는데 뒤에서 또 말소리가 들려왔다.

“갱년기 갱년기 말로만 들었는데 요즘 실감하는 것 같애. 기운도 딸리고 혈압도 예전 같지 않게 자꾸 상승하는 것 같애, 당신은 괜찮아?”

“요즘 자꾸 구역질이 나고 엄청 피곤한 게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이젠 서서히 죽음을 준비할 시기가 왔나 봐요.”

“죽음은 불청객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사실 죽음만큼 공평한 것도 없는 것 같아.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잖아.”

죽음. 불청객. 공평.

악마를 미워할 때 가장 많이 떠올렸던 단어였다. 그보다 더 많이 떠올렸던 단어는 용서와 사랑이었다. 악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그 길밖에 없다고 해서였다. 그러나 승리보다 패배가 더 자주 나를 찾아왔었다. 잠이 들었는지 뒤에서는 더 이상 말이 들리지 않았다. 순간 이상한 적막감이 마음속에 소용돌이 쳤다.

그때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조금 전 고속도로 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였다. 눈 폭탄을 맞고 서 있는 에쿠스 자동차와 트렁크에 박힌 차량 임시 번호판이 악마의 모습과 함께 오버랩되면서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에쿠스는 악마가 여러 사람들에게 갈취한 대가로 산 신형 자동차였다.

여행을 떠나면서 내게 자랑하며 하던 말이 떠오른다.

“잠시 이 에쿠스와 함께 여행이나 떠날까 해, 불면증이 심해져 내 정신이 아냐, 여행하면 좀 나아지려나, 아직 임시번호판이지만 잘 기억해 둬, 이거야말로 이긴 자의 몫이 아니겠어, 패자는 항상 말이 없는 법. 승자의 말은 성공담이지만 패자의 말은 변명이 될 뿐이라는 것 항상 명심해 둬.”

그런데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죽음이라는 공평이라는 단어. 왜 그랬을까. 나는 그가 떠나던 날 그 차량번호를 내 머릿속에 똑똑하게 암기하고 있었다. 무슨 불길한 암시를 품듯. 에쿠스 자동차와 차량번호를 암기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문득 스마트폰을 열었다.

오늘의 교통사고를 터치하려다 손가락이 얼어붙고 말았다. 손가락에 경직 현상이 일고 있었다. 갑자기 손가락에 쥐가 난 걸까?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몸이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블랙홀이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한참 어둠속을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 내 몸을 흔들면서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도착지에 다 왔어요, 어서 내리세요. 그만 일어나라구요.”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사람은 조금 전까지 내 뒷좌석에서 열심히 이야기하던 그들이었다. 차창 밖은 전혀 낯선 풍경을 한폭의 수묵화처럼 담아내고 있었다. 버스가 터미널 안으로 서서히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짐칸에 머리를 쿵 박고 말았다. 몸이 옆으로 갸우뚱 하더니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승객들이 짐을 들고 승강장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나도 어느새 그들 뒤를 따라 나서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아주 기분 나쁜 소식을 들었다. 그건 내 기대와는 달리 악마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담 그날 내가 본 건 환상이었을까. 분명 에쿠스 자동차에서 앰뷸런스에 옮겨지는 시체를 보았는데.

그렇담 그것 역시 내 착시 현상이었던 걸까. 난 또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무작정 거리를 나섰는데 초미세먼지에 겁먹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한 채 종종걸음 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하고 싶은 말을 마스크 안에 숨긴 채 극기훈련 중이었다. 나는 얼른 주변을 살펴본 뒤 약국에 들어가 마스크를 샀다.

앞으론 말조심 하며 살아야지. 하마터면 악마의 죽음을 기정사실처럼 말할 뻔하지 않았던가. 가슴속에서 잠시 회개와 자성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가는데 무릎이 삐꺽댔다. 본격적으로 갱년기 증상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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