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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머리로 어떻게 소설을 쓰나? / 강준희
2008-01-11 13:47:18
안재동

조회:3055
추천:148

[소설]   * 그런 머리로 어떻게 소설을 쓰나  * / 강준희   


   선인들은 말했다. 무릇 선비란 수무집전(手無執錢)에 불문미가(不問米價)해야 된다고.
   수무집전에 불문미가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이를 글자대로 풀이하면 선비는 돈을 집거나 만져서는 안 되고, 쌀값을 묻거나 알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선비는 돈을 집거나 만져서는 안 되고, 쌀값을 묻거나 알아서는 안 된다.아니 안 되는 것으로 알았다. 이를 선인들은 선비의 취할 바 거조(擧措)로 보았다. 그래서 연암 박 지원(燕巖 朴趾源)도 그의 소설 ‘양반전’에서 ‘선비는 손에 돈을 쥐는 일이 없고 쌀값을 묻지 말아야한다’고 설파했을 것이다.
 
   내가 C도의 KT 본부장 J의 초대를 받고 그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명지바람이 옷깃을 곰실곰실 파고드는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J는 월여 전 서울 본사에서 이곳 C도 본부장으로 승차해 왔다며 2백여 리나 떨어진 내 초라한 우거까지 자기 전용차를 보내왔다. J는 달장근을 두고 업무파악 하랴 주요 기관에 인사 다니랴 산하 지사를 초도순시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가 이제야 겨우 시간이 좀 나 초대한다 했다.
그날 나는 J가 보내준 승용차에 여봐란 듯 앉아 마치 알성시(謁聖試)에 급제한 거자(擧子)가 임금이 내린 어사화(御賜花)를 쓰고 삼현 육각(三絃六角)을 잡힌 채 유가(遊街) 하듯 의기양양 초대에 응했다. 나를 초대하는 J의 범절이 하도 극진하고 깍듯해 어깨가 절로 으쓱거려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금력도 권력도 없는 포의한사(布衣寒士)를, 그것도 변벽한 시골구석에 처박혀 소설이나 쓰는 힘없는 백면서생을 누가 이렇듯 곡진히 초대하겠는가.
J는 내 독자였다. 문예지에 발표된 내 소설(주로 단편)과 단행본으로 출간된 내 장편(혹은 그 밖의 저서)을 여남은 권 실히 읽은 독자였다. 이런 J는 일 년에 두 번 춘추로 나를 초대했고 이는 어느새 의무처럼 돼 해마다 어김이 없었다. 나는 이런 J를 대할 적마다 적이 망조해 어떻게 하면 J의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을까 궁리했지만 적빈한 서생으로는 어연번 듯 보답할 길이 없었다. 생각다 못한 나는 봄이면 이 고장 명물인 산채를 사서 보냈고 가을이면 역시 이 고장 명물인 밤과 사과를 한 상자씩 사서 보냈다. 그러나 이는 안 보내기만 못해 되레 부담만 가중시켰다. J가 내 선물을 받고 구두상품권이니 정장상품권이니 하는 값비싼 선물을 몇 갑절로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어서 J의 폐만 더 끼치는 꼴이었다.
아하, 이것도 안 되겠구나!
   나는 J의 고마움을 마음속으로만 깊이 간직한 채 글이 발표되거나 책이 출간 되면 그때마다 제일먼저 J에게 보내는 것으로써 보답에 대신했다. 그리고 어쩌다 상경해 식사를 하게 되면 밥값을 내려고 J몰래 화장실에 가는 척 계산대로 가 보면 J가 어느새 계산을 하고 내전보살하기 일쑤여서 무연하기 짝이 없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만나 뵙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러니 제발 아무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내가 낭패한 얼굴로 무연한 표정이라도 지을라치면 J는 이런 내 손을 꼬옥 잡고 환한 미소와 함께 자늑자늑 말했다. 이럴 때의 J는 도무지 악이라고는 모르는, 그래서 어떤 일이라도 달갑게 만수받이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세상이 부라퀴처럼 모지락스러워 언죽번죽 너름새 좋게 얼렁수 쓰고 그래도 모자라 간사위로 발밭고 애바르게 후림대수작질하며 사박스런 회술레로 무따래기 하기 예사요 남 안 되는 것을 제 잘되는 것보다 더 좋아해 잘코사니하기 일쑤여서 만정이 뚝뚝 떨어지는 예토(穢土)에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운 인간 본연의 원형질적인 사람도 다 있을까 싶어 경탄하기 여러 번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J는 중상을 모르고 모략을 모르고 폄하를 모르고 술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꼼수와 암수와 외수(外數)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J는 언제나 표정이 밝고 온화해 사기(邪氣)는 물론 불만 불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위선과 교기(驕氣)도 전혀 없었다. 그만한 자리에 있으면 부릇되게 자세부리고 적이나하면 곤댓짓으로 목에 힘을 줄만도 한데 J는 눈을 씻고 봐도 그런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오, 어쩌면 요즘 세상에 저런 사람도 다 있을까.
   나는 J를 볼 때마다 진흙탕 속에서 청계옥수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장히 좋았다. J는 Y대학 국문과를 나온 준재로 문학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J는 얼굴이 해맑고 키는 살망하니 커 날씬하고 피부는 하얘 선비형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다 J는 겸손하고 반듯하고 유머까지 풍부해 어디 한군데 나무랄 데가 없었다. 사람이란 대개 장점보다는 결점이 많은 법인데 J는 아무리 봐도 결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사람을 대해봤지만 J만한 사람은 별로 만나지를 못했다.
   아하, 하늘은 구제할 수 없을 지경으로 망가져 결딴날 대로 결딴난 이 애줄 없는 누리에 J같은 사람도 점지하시는구나!
   나는 J를 볼 때마다 ‘참사람’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외경하고 흔열했다.
 
   J의 초대에 칙사 대접을 받고 돌아온 나는(물론 돌아올 때도 J의 전용차로 왔다.) 그로부터 사흘 후 생게망게하게도 휴대폰 하나를 받았다. J가 보내온 휴대폰이었다.
“선생님! 제 일방적인 의사로 휴대폰 하나를 보내드립니다. 번호는 쉽게 016 669 3737로 정했습니다. 선생님! 문명의 이기는 최대한 활용하셔야합니다. 부디 거절치 마시고 소납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휴대폰을 싼 상자 안에는 J가 직접 쓴 이런 메모까지 들어있었다.
   “허허 이거 참!”
   나는 휴대폰을 멀거니 들여다 보다 거실의 탁자 한쪽에 신주 모시듯 올려놓았다.
휴대폰은 닷새가 가고 열흘이 지나도 누구 한 사람 전화 거는 이가 없었다. 아무도 전화번호를 모르니 걸려올 턱이 없었다. 아니 단 한 사람 하루 한 번씩 거는 사람이 있었다. J였다. J는 휴대폰 잘 사용하고 계시냐며 많은 분들께 알려 유용하게 쓰시라 했다. 나는 이때서야 대관절 휴대폰이 어떻게 생겼나 싶어 요리조리 살펴봤다. 그리고 여기저기 눌러봤다. 휴대폰은 많은 기능이 있는 것 같아 복잡하기 짝이 없어보였다.
야아!
   나는 더럭 겁이 나 휴대폰을 얼른 닫아 제자리에 놓았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인 나로서는 진사 열두 번을 해도 이해부득일 것 같았다. 본시 기계와 수치는 천치에 가까울 만큼 손방이어서 휴대폰을 쓴다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누구한테 휴대폰 쓰는 법을 배워 익히면 걸고 받는 것쯤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왠지 그렇게는 하기가 싫었다.
그만 누구 휴대폰 없는 사람한테 줘 버릴까.
   나는 휴대폰을 아예 멀찍이 서가 한쪽에 올려놓았다.
   이러고 일주일인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출판사로부터 보내져온 저자용 책을 정돈하고 있었다. 일간지 C일보에 3 년여에 걸쳐 쓴 고정칼럼 백 편을 한데 묶어 ‘너무도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집을 냈는데 그 칼럼집이 택배로 도착한 것이다.
   “선생님, 내일 댁에 계시겠습니까? 저 내일 선생님 댁을 방문할까하는데요.”
J였다. J가 출판사로부터 보내져온 책을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암, 있지. 헌데 무슨 일로 갑자기?”
   나는 넘어진 자리에 쉰다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렸다. 포장을 뜯고 끌러 책을 한쪽에 쌓자니 여간만 힘든 게 아니었다.
   “예,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오전 중으로 도착하겠습니다.”
   나는 J의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인가 싶어 자못 궁금했다. 보나마나 J는 또 내 벗바리가 아니면 거추꾼이 되기 위해 방문할 것에 틀림없었다.
그랬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J는 다음날 오전 열한 시쯤 이곳 KT 지사장과 여타의 직원 두 사람을 대동하고 내 누옥을 방문했다. 커다란 상자 몇 개를 가지고서 말이다.
   “아니 이건?!”
   나는 적이 놀라 J를 쳐다봤다. J가 가지고온 상자들은 컴퓨터와 프린터기였다.
   “선생님! 요즘 같은 초고속 인터넷시대에, 그리고 세계가 한 불럭의 글로벌 정보화로 바뀐 유비쿼터스시대에 육필 원고를 쓰시다니요. 더욱이 선생님은 작가가 아니십니까. 누구보다 컴퓨터가 필요하신 선생님께서 아직도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시다니 이게 어디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선생님! 이젠 제발 좀 쉽고 편하게 사십시오”
J는 어디 마땅한 공간이 없나하고 주위를 두릿거리더니 서재 창문 쪽 공간을 가리키며
   “응, 저기가 좋겠군.”
   하고 대동한 직원들에게 컴퓨터 설치를 명했다.
   “저, J본부장! 본부장의 뜻은 충분히 알고 또 대단히 고마운 일이나 나는 컴퓨터를......”
   내가 이 무슨 가당찮은 일이냐며 손사래를 치자 J는 얼른
   “선생님! 컴퓨터를 무료로 가르치는 데가 많습니다. 그러니 기초반에 들어가 배우십시오. 선생님은 머리가 좋으셔서 4 주 한 달만 배우시면 잘하실 겁니다.”
하고 휘갑을 쳤다. 그러더니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바빠서 얼른 가봐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하릴없이 J를 바라보며 우두망찰 서 있었다.
   “허, 그것 참!”
   나는 진둥걸음으로 내닫다시피 하는 J가 내 시야에서 가뭇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한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
   J가 내 칼럼집 ‘너무도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의 출간기념 잔치를 베풀어 준 것은 이로부터 이십여 일이 지난 어느 주말 밤이었다.
   J는 처음 호텔이 아니면 예술회관 같은 데서 근사하게 출판기념회를 갖자했으나 나는 사양했다. 사양 이유는 첫째 J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고 둘째 출판기념회를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하면 식상하고 촌스러워 안 하기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싶어서였다. 나는 출판기념회의 복은 타고났는지 그동안 여러 번에 걸쳐 기념회를 가졌다. 내 글을 읽은 독자들이 기념회를 열어주는가 하면 문화원이나 사회단체에서 열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독지가나 신문사에서 열어주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내 문학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전집이 나온다면 모를까 그 외엔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내 이런 속내를 알 리 없는 J는 모처럼 열어드리려는 기념회를 거절하시면 섭섭해 안 된다며 기념회는 반드시 가져야 한다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정히 그렇다면 호텔이나 예술회관 같은 데서 크게 떠벌리지 말고 조그마한 음식점에서 가까운 사람 몇 명만 초청해 조촐한 저녁시사나 하자했다.
   “좋습니다. 그러시다면 선생님께서 오십 명이고 백 명이고 마음대로 초청하십시오. 식당도 회관이 달린 큰 데로 정하시구요.”
   J는 처음 내 뜻에 따르는 듯하더니 돌연 초청인은 적어도 오십 명은 넘어야 잔치 분위기가 난다며 막무가내로 나왔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하고는 J몰래 비원이라는 한정식 집을 정해 주요 기관장 몇 몇과 가까운 친지 몇 사람 그리고 평소 내 집을 임의로 드나드는 옴살 같은 사람들만 불러 모두 이십 명 안팎으로 초청했다.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안 J는 큰마음 먹고 제대로 한 번 출판기념회를 열어드리려 했는데 본말이 전도돼 서운하다며 다음 번 책이 나올 때는 꼭 근사하고 거창하게 기념회를 열자했다. 나는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그러나 초청인이 이십여 명 안팎이면 거창하게 떠벌리는 것보다 오히려 단출하고 살뜰해 더 좋지 않느냐 하자 J는 그래도 그게 아니니 이 다음엔 어연번듯하게 출판기념회를 해야 된다고 오금을 박았다. 
 
   J가 마련해준 출간기념 축하연은 고맙고도 죄스러워 나를 망조케 했다. 그런데도 J는 되레 나한테 죄송하다며 고두사죄 했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꼴이었다.
사실 죄스러운 건 J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J가 하루 한 번씩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무슨 죄나 지은 듯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 아직 J가 보내준 핸드폰을 단 한 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핸드폰만이 아니었다. 컴퓨터도 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무용지물로 썩히고 있었다.
   이거이래서는 안 되는데. J의 성의를 봐서라도 배워 익혀 사용해야 되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냉큼 실행에 옮기질 못했다. 기계는 도대체가 손방이라 만지기 싫은 데다 핸드폰 따위에 손발이 묶여 꼼짝을 못하고 컴퓨터 따위에 노예가 돼 망석중이 노릇을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에 혼이 놀라고 상이 달아나 글이 안 될 것 같았다 컴퓨터로 먹고 사는 기능인이나 전문직 사무원이라면 몰라도 혼을 담아 글을 쓰는 작가가 육필 아닌 기계로 글을 쓰다니. 야젓잖고 자깝스럽게시리.
   하지만 이는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정신없는 소린가. 성인도 종시속(從時俗)하랬다고, 세상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사는 게 사람 사는 세상 이치인데,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혼이 어떻고 망석중이가 어떻고를 찾으며 마치 조선조 때의 선비나 할 소리를 하고 있는가. 이러고서야 어찌 이 초고속의 인터넷시대를 살아가겠는가.
말할 필요도 없이 핸드폰과 컴퓨터는 빠르고 편하고 유익해 생활전반에 써먹히지 않는 데가 없는 현대의 총아다. 게다가 컴퓨터는 또 모르는 게 없어 현대의 신이라고까지 일컬어져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핸드폰과 컴퓨터를 원두한이 쓴 외 보듯 멀리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핸드폰과 컴퓨터만 멀리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운전도 안 배워 할 줄 모르고 골프도 안 배워 칠 줄 모르며 속소위 양춤이라는 댄스도 안 배워 출 줄 모른다. 심지어는 국민오락이라며 남녀노소 다 하는 고스톱이라는 것도 안 배워 칠 줄 모른다. 운전은 차가 없으니 안 배웠고(차가 없어 안 배운 건지 안 배워 차가 없는 건지) 골프와 양춤과 고스톱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 치지도외 했다. 평생을 백면서생으로 적빈하게 사는 배두한사(白頭寒士)가 무슨 돈이 있어 그 비싼 승용차를 살 수 있으며 필드인가 뭔가 하는 데 한 번 나가면 몇 십만 원씩 내야한다는 그 엄청난 골프 값을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또 골프는 회원권인가 뭔가를 사려면 몇 천만 원인지 몇 억원인지를 줘야한다니 골프를 못 쳐 죽은 귀신이 뒤집어씌우지 않은 한 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골프는 고스톱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런데 고스톱은 망국에 이르는 병이어서 쳐서는 절대로 안 될 타짜꾼이다.
   생각해 보라.
   고스톱은, 아니 일본 화투 하나후다(花札)는 일본이 우리 조선을 망치기 위해 만들었는데 어떻게 칠 수 있나를.
   고스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더 해야겠다. 화투는, 그러니까 하나후다는 저 간악한 일본이 우리 조선을 망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 조선 땅에 보급시켰다. 일본이 이 하나후다를 만든 것은 1720 년경이었고 조선에 보급시킨 것은 그 백 년 후인 1820 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였다하면 이 화투 하나후다로 고스톱을 쳐 온 나라가 온통 고스톱장으로 화해버렸다. 이 하늘아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구월심 고스톱 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요 이 지구상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심전력 고스톱 치는 나라도 우리나라뿐이다. 얼마나 고스톱을 좋아하면 비행기 안에서도 고스톱이요 기차 안에서도 고스톱이요 식당에 식사하러 가서도 고스톱을 치겠는가.
하지만 어디 이뿐인가.
   비통을 극한 상가에 조문을 가서도 고스톱이요 병아리 같은 초등학교 일학년 어린이를 데리고 외국나들이를 간 인솔교사들이 남의 나라 공항(일본) 대합실에서도 고스톱이다. 아니 또 있다. 부자지간에도 고스톱을 치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싹쓸이니 피박이니 하며(나는 이 말들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다만 들어서 귀에 익었을 뿐이다.) 고스톱을 친다. 그러며 며느리가 시아버지한테 아버님 똥 잡수세요, 또는 아버님 그만 죽으세 요라는 말까지 예사로 해댄다. 예쁜 얼굴만큼 예쁜 여인들이(혹은 아가씨들이) 예쁜 양품점에서 예쁜 책이라도 읽는다면 얼마나 예쁠까만 음식 시켜먹은 그릇 신문지에 덮어 한쪽 구석에 놓고 고스톱을 쳐대더니 종당에는 나라 일을 보고 나라 법을 만들어 나라 살림을 살아야 하는 신성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까지 고스톱을 쳐댄다. 그 잘난 의원님들의 기사들이 대기실에서 내가 질세라 시새우며....
   참으로 기막히고 한심해 개탄을 금할 길 없다. 도대체 이 나라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이렇게도 형편없어 잡기에 능한 나라인가?
   나는 가장 불쌍하고 한심한 사람을 복권 사고 고스톱 치는 사람으로 본다. 몇 백 혹은 몇 천 원을 들여 몇 억(복권 값이 얼마이고 복권 당첨금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어림잡아서) 혹은 몇 십억을 벌려고 하는 한탕주의 불로소득은 남의 돈 거저먹으려는 고약한 심보다. 고스톱도 마찬가지여서 장난삼아 심심파적으로 시간 보내기 위해 한다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그게 아니어서 돈을 잃으면 오기가 생기고 오기가 생기면 얼굴을 붉히게 마련이다.
   복권과 도박은 요행이나 사행을 바라는 기적심리에서 하는데 세상에 요행이 어디 있고 사행이 어디 있는가. 기적은 더더욱이 없다. 노력을 하고 노력의 대가만큼 생기는 소득이야말 로 값지고 떳떳하고 당당하고 깨끗하다.
   고스톱 좋아하는 이들은 말할 것이다. 한 번밖에 못 사는 일회적인 인생을 고스톱 치며 즐겁게 사는데 그게 뭐가 나쁘냐고.
   그 나라의 장래는 그 나라의 청소년을 보면 알 듯, 그 나라의 명운은 그 나라의 가정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가정은 국가 구성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가정에서 주부가 삼삼오오 모여앉아 고스톱이나 친다면 그 나라 장래는 어찌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 천 길 벼랑에 선 듯 아찔하다. 주부는 남편(또는 시부모) 섬기고 아이들 기르며 살림 알뜰히 꾸리는 게 애국이다. 그러다 시간 나면 조용히 책 읽고 음악 듣고 친구한테 편지 쓰는 주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스톱은 망국에 이르는 병이다. 그러므로 모였다하면 고스톱 치는 사람은 망국하는데 일조하는 사람들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하나후다는 저 간교한 일본이 우리 한반도를 우민화시키고 식민지로 부려먹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럼에도 우리 조선인들은 얼씨구나 하고 논 팔고 밭 팔고 마침내는 마누라까지 팔아서 노름빚으로 날렸다.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은 남녀노소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스톱을 치고 있다. 전국이 거대한 고스톱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은 이런 한국을 “강고꾸징와 쇼가 나이(한국인은 할 수 없다.)”하며 한껏 비아냥거리고 있다. 가가대소로 희희낙락 하면서. 이러니 이 얼마나 참불가언(慘不可言)의 치욕이요 수욕이요 모욕이요 굴욕인가. 그래, 이 나라 이 민족은 자존심도 없고 자긍심도 없는가? 이러고도 우리가 민족혼을 찾고 선진국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 한국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일본에 무시당해 싸고 지배받아 마땅하다. 화투를 만들어낸 일본은 화투라는 걸 안 한 다. 아니 화투가 없다. 조선을 망칠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왜 하겠는가.
   고스톱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지는 못할지라도 경멸은 받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아, 생각느니 내 주위에 고스톱 못 치는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과 고풍한 찻집에서 커피라도 한 잔 나누고 싶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되도록 나는 핸드폰을 거들떠도 안 봤다. 물론 컴퓨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물외(物外)의 경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다 석 달째로 접어들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핸드폰 번호를 몇 사람에게 알렸고 가까이 교우하는 사람들 핸드폰 번호를 제자한테 부탁해 내 핸드폰에 입력시켰다. 이렇게라도 해 사용하는 게 J에 대한 예의요 인사일 것 같았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사실 나는 핸드폰을 몹시 경멸하고 있었다. 아니 핸드폰이 없으면 죽고 못 사는 것으로 아는 사람을 경멸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핸드폰 없이는 못 살았는지 마치 핸드폰 중독에 걸린 듯하다. 핸드폰이 밥줄이요 생활수단이어서 모든 업무와 사무와 사업을 핸드폰으로 해결하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쓰잘 데 없이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수다를 떨고 종당엔 강아지 안부까지 묻고서야 전화를 끊는 여인들이나, 이야깃거리도 안 되는 시시껄렁한 연속극 줄거리나 가수들의 신상 따위를 화제로 삼아 어느 탤런트는 어떻고 어느 가수는 어떻다는 둥 신파조 같은 말을 흘리며 활보하는 아가씨들을 보면 뇌꼴스럽기 짝이 없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심한 것은 한창 꿈을 먹고 자라야 할 소녀(여중생과 여고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손에 핸드폰이 들려져 있다는 점이다. 하늘 높고 햇살 맑은 아슬한 가을이면 모양으로라도 시집 한 권쯤 들고 낙엽 지는공원 벤치에 앉아 시 한 줄 읽고 하늘 한 번 쳐다봐야 할 여학생들이 열이면 열 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통화가 아니면 문자 메시지 보내기에 정신들이 없다. 마치 핸드폰에 상성이라도 된 듯.
   하지만 상성이 어디 핸드폰뿐인가. 승용차도 크게 다르지 않아 자가용이 없으면 사람 구실 못하는 줄 안다. 자가용도 핸드폰처럼 먹고 살기 위한 밥줄이어서 업무와 사업상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어야겠지만 손바닥만한 도시에서 빈둥빈둥 먹고 놀며 약수터에 생수 뜨러갈 때가 아니면 마누라 계하러 갈 때, 그리고 가족들과 야외로 외식하러 갈 때를 제외하곤 별로 쓸 필요가 없는 자가용을 객쩍게 끌고 다니며 가즈럽을 떤다.
   몇 사람한테 핸드폰 번호를 알리고 제자를 시켜 가까운 교우들 전화번호를 입력시키자 신통하게도 가뭄에 콩 나듯 전화가 걸려왔다.
   야아, 전화가 오는구나!
   나는 신기하고 신통해 입력된 교우들의 전화번호를 차례대로 눌러봤다.
   된다. 전화가 된다. 저쪽에서 여보세요 하고 응신이 온다.
   나는 무슨 나쁜 짓을 하다 들켰을 때처럼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기능 중에 다른 것은 하나도 못하고 받고 거는 것만 간신히 익힌 나는(걸 때는 입력된 숫자만 눌러) 이만하면 됐다싶어 핸드폰을 제자리에 놓았다. 그러나 문제는 컴퓨터였다. 컴퓨터도 J의 성의를 봐 억지로라도 배워야 하는데 이게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한다?
   나는 괜한 제사지내고 어물 값에 졸리듯 속내 없이 받아들인 컴퓨터가 야속했다. 아니 컴퓨터를 설치해 주고 간 J가 야속했다. 그때 야멸차고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하는 건데 흐리마리 어물거리다 부개비잡혀 이 모양이 됐다 싶자 과단성 없고 내뛸성 없는 성정머리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이때 행인지 불행인지 친구 K가 부른 듯 찾아와 컴퓨터를 배우자했다.
   “뭐? 컴퓨터를 배우자고?”
   나는 K가 바람처럼 나타나 뜬금없이 컴퓨터를 배우자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응. 시청에서 무료로 가르친대. 우리 기초반에 들어가 우선 4 주 한 달만 배워보자고”
   K는 이 나이에 혼자 배우기가 쑥스러워 나를 떠올렸다며 컴퓨터 동창생이 되자했다.
   “글쎄....”
   나는 호랑이는 겁나고 가죽은 탐나 어찌해야 될지 질정을 못했다.
   “뭐가 글쎄야 이 친구야. 작가가 컴맹이라니 될 소린가. 아무소리 말고 나랑 같이 등록하러 가세”
   “글쎄.....”
   “또 글쎄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데 우리 한 달만 짝궁하자고”
   K는 이러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K한테 이끌려 컴퓨터 기초반에 들어갔다. K가 허튼 소리나 하며 언죽번죽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일언지하에 거절하겠지만 K는 최고의 지식인이자 지성인이어서 어쩌면 이 기회가 물실호기다 싶었던 것이다.
   K는 군사정권 때 S대학을 나와 일찍이 외무고시에 합격한 수재로 독일(서독)의 한국 대사관에서 외교관(일등서기관)으로 근무한 외교통이었다. 이런 K는 얼마 후 독일 정부에 망명을 요청하고 외교관생활을 접었다. 이유인즉 군사정권은 선거를 통해 얻은 정권이 아니므로 정당한 정권이라 할 수 없고 그러므로 그런 정권 밑에서 구명도생 할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강간범이 주거를 침입해 여인을 강간하며 아무리 절륜한 기술로 즐겁게 해 준다 해도 그 강간범이 여인의 남편이 될 수 없다는 게 K의 논리였다. 이런 K는 독일에서 15 년을 체류하다 조국에 민간정부가 들어서서야 귀국했다.
   K와 함께 배우기 시작한 컴퓨터는 그러나 어렵고 힘들어 난공불락이었다. 역시 나는 수치와 기계는 손방에 젬병이어서 멍청이 숙맥임이 또 드러났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금방 들어도 금방 모르겠고 금세 배워도 금세 잊어 먹기 일쑤였다. 한데도 K는 나와는 딴판으로 일진월보에 일취월장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은 교재로 같은 강사한테 하루 두 시간씩 똑같이 배우는데도 K는 실력이 폭우에 도랑물 붇듯 부쩍부쩍 늘어 괄목상대 하는데 나는 꼼짝달싹 못하는 앉은뱅이처럼 제자리걸음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하, K는 역시 명문대학을 나온 수재답게 머리가 좋구나했다. 그리고 나는 구제불능의 둔재여서 하우불이(下愚不移)구나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듯 판이하게 우열이 가려질 리 없었다
   4 주 한 달 동안 K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웬만한 건 다 하는데도 나는 도무지 발전이 없어 그날이 그날이었다. 노래를 부르라면 몇 백 곡이고 부를 수 있고 고시조를 외라면 몇 십 수쯤 단숨에 읊을 수 있어도 컴퓨터는 4 주 한 달을 배웠는데도 깜깜절벽이었다. 그래도 나는 끈기를 가지고 또 4 주 한 달을 더 배워 8 주 두 달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여서 오십보백보였다. 나는 이런 내가 한심한 석두(石頭)구나 싶어 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나를 어처구니없게 천재니 수재니 하며 부러워했다. 이는 아마도 내가 가요를 칠백여 곡 이상 부르고 민요와 가곡, 그리고 군가나 동요까지 합치면 천여 곡은 좋이 부를 수 있어 붙인 호칭이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나는 가요와 함께 민요 가곡 군가 동요까지 합하면 천여 곡은 부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내가 죽으면 머리를 해부해볼 필요가 있다고들 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나는 이들이 말하는 대로 천재가 아니다. 천재는커녕 수재나 준재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는 영재나 범재도 못된다. 어느 편이냐 하면 나는 영락없는 둔재다. 둔재도 석두에 가까운 둔재다. 이런 나를 정확히 꿰뚫어본 K가 어느 날, 그러니까 8 주의 두 달 컴퓨터 교육을 마친 날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친구, 내 농담 하나 할까? 자네 그 머리로 어떻게 소설을 쓰나? 그 어렵다는 소설을”
   K는 이말 끝에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거 왜 석학적 둔재(碩學的 鈍才)라는 말이 있지.바보 또는 지능지수가 떨어지면서도    어떤 일에 대해서만은 천재적으로 잘 알고 또 잘 하는 사람 말일세. 자넨 컴퓨터만 잘못하다뿐이지 그 외엔 수재야!”
   K는 이 말과 함께 열없게 웃었다.

   두 달간의 컴퓨터 교육이 실패로 끝나자 나는 침우기마(寢牛起馬)를 생각했다. 소는 누워 있어야 하고 말은 서 있어야 한다는 침우기마.
   그렇다. 소는 누워 있어야 하고 말은 서 있어야한다. 누워 있어야할 소가(일할 때를  제외하곤) 서 있거나 서 있어야 할 말이 누워 있으면 탈이 난다.
   나는 침우기마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생 숫자와 기계는 손방인 채 선비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찌 선비가 가당찮게 한낱 숫자와 기계 따위에 얽매어 살 수 있으랴. 누가 들으면 이런 나를 자기 옹호와 자기 합리화의 견강부회라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이 소설 첫 머리서 밝혔듯 선비는 돈을 만져서는 안 되고 쌀값을 물어서는 안 된다함을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선비가 수치에 밝고 기계에 능하면 이는 이미 선비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겠지만 나는 아직 텔레뱅킹이라는 걸 모르고 현금인출기라는 데서 돈 꺼거낼 줄을 모른다. 애옥살이 문사이고 보니 현금인출기서 돈 꺼낼 일도 없고 혹 돈이 필요하면 몇 푼 들어 있지 않은 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가 행원에게 돈을 찾는다. 은행이 바쁠 때는 행원이 현금인출기를 이용하라며 좀은 귀찮은 내색을 짓기도 하는데 그러면 나는 호통을 친다. 도대체 행원의 책무가 무엇인가? 고객이 돈을 찾으러 왔으면 친절하고 깍듯하게 내줄 일이지 인출기로 찾으라마라 하다니.
   나는 남들이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은행 카드가 없어 현금인출기서 돈을 못 꺼낸다. 설령 카드가 있다 해도 나는 카드 사용법을 안 배울 것이고 배운다 해도 잘 몰라 써먹지 못할 것이다.
   자, 이러니 이런 사실을 누가 안다면 편리한 기계 문명 속에 살면서 얼마나 갑갑하고 불편하랴 하겠지만 나는 별로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책 읽고 글 쓰는 문사가 이만하면 됐지 시정아치처럼 눈알이 필필 돌게 살아 어쩌자는 것인가.
   내가 이런 방식으로 살아서인지 혹자는 나를 가리켜 안 굶어 죽은 게 참 용하다 하고 또 이 좋은 세상에 얼마나 무능하면 그렇게 사느냐 하기도 한다. 이는 내가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니어서 안 굶어 죽은 게 참 신기하다. 하기야 굶어 죽기가 정승하기 보다 더 어렵다는 속담이 있고 보면 여간해 굶어 죽지는 않는 모양이다. 경제적으로 유 무능을 따지고 돈 잘 벌고 못 버는 것으로 유 무능을 가린다면 나는 한없이 무능한 사람이어서 가난할 수밖에 없다. 돈버는 재주는 타고나질 못한데다 돈에 대한 욕심이나 애착이 없어 굶어 죽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안다. 돈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으니 돈이 가까이 범접할 수가 있겠는가.
   지난 날 내 친구 중에 은행지점장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 사무실(지점장실)이 2 층으로 증권회사 바로 옆이었다. 그러므로 지점장실을 가려면 반드시 증권회사를 거쳐야 했다. 나는 이 친구가 점심이라도 하자고 연통해 오면 지점장실로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은행 앞에서 만나거나 식당에서 만나자 했다. 누가 지점장실 가는 나를 보면 증권 하러 가는 줄 알까 저어해서였다. 그래 나는 이 친구가 지점장으로 있다가 다른 은행으로 전출될 대까지 3 년간 단 한 번도 지점장실을 가지 못했다.

   자, 그렇다면 나는 대저 어떤 위인인가.
   혹자는 나를 일러 주관이 뚜렷하고 소신이 확고한 사람이라 하고, 혹자는 외골수 옹고집에 독선주의자라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자기 정체와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라 하고 어떤 이는 바보 천치 멍텅구리 쪼다 숙맥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역시 선비는 다르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예토에 오염되지 않고 공해에 찌들지 않은 귀한 사람이라 하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더러는 또 거창하게 외국의 문화 사상 문물 따위 외세를 물리치고 배척하는 배외적 애국주의자(排外的 愛國主義者)라 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나라의 고유한 역사 전통 문화 문물만을 뛰어난 것으로 믿고 다른 나라 민족을 배격하는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라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위인인가.
   나는 과연 어떤 유형의 인간인가.
위에서 예로든 세간의 평가 중 어느 것이 내 참 모습인가. 여기서 나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졸업 때 담임으로부터 받은 통신표의 통신란의 글로 위인 됨을 대신한다.
   ‘음악 미술에 수(秀), 솔직 쾌활하고 의리와 책임감이 있는 남자다운 성격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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