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문인글방_소설
HOME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등업신청/기타문의]
로그인 회원가입
회원가입
   

한국문학방송은 지상파방송 장기근무경력 출신이 직접 영상제작 및 운영합니다
§사이트맵§ 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문인.com 개인서재
 

DSB 문인 북마크페이지

전자책 출간작가 인명록



시조
동시
영시
동화
수필
소설
평론
추천시
추천글
한국漢詩
중국漢詩
문학이론


DSB 앤솔러지 제7집


DSB 앤솔러지 제6집


DSB 앤솔러지 제5집


DSB 앤솔러지 제4집


DSB 앤솔러지 제3집



[▼DSB 앤솔러지 종합]
 



홈메인 > 문인글방_소설 > 상세보기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판매정산 페이지
도서판매/온라인강좌

전자책 제작·판매·구매의 모든 것

사이버문학관


이곳은 문학방송 정회원(문인회원)의 글방[소설방]입니다
(2016.01.01 이후)


은미 엄마
2014-11-30 12:33:00
chis0123

조회:575
추천:51

趙 官 善

 

은미 엄마

 

 

--·?…….”

··버니?…….”

따가운 초가을 햇살을 한 손으로 가리고 노점상 과일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여자를 향해 긴가민가 생각하다가 그가 아는 체를 하자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쏱아져 나온 첫마디였다. 오라버니라는 호칭은 운영하던 하숙집을 정리하고 강씨를 따라 강씨의 고향으로 떠날 채비를 할 무렵에 은미엄마가 그에게 붙인 호칭이기도 했다.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건 아니지만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은미엄마의 하숙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냈던 인연 또한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에서 그는 은미엄마가 반가웠다. 나아가 만난 지가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은미엄마를 그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속물성이나 예의가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은미엄마를 잠시라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했던 것이다. 그는 시선을 돌려 부근의 찻집을 찾았다. 그가 은미엄마를 다시 만난 건 그녀가 자신의 집에서 하숙 하던 강씨와 결혼하겠다며 하숙집을 정리하고 첩첩산골로 들어 간 후 약 팔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은미엄마의 하숙집에 주거를 정하기 전에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교수추천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무려 10년 동안 적을 두었었고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손바닥만하다고 자조하는 아파트도 장만했고 회사운영에 대한 노하우도 습득했지만 단 하나, 결혼 오 년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자녀가 생기지 않아 약간의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었다. 직장이라는 것이 생활에 대한 안전성은 도모되겠지만 야망을 품은 젊은이들에게는 늘 떠남의 플렛홈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중에 그는 그 방면의 일인자라 자처하는 동창 몇을 규합하여 사직서를 제출하고 유사업종의 작은 생산공장을 인수했었다. 회사를 설립할 때만 해도 전도유망이 아니라 그 계열에선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동창들 사이에서 분분했지만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립서비스였다. 창업 당시, 무리한 투자를 피하자는 초기의 마음과는 달리 시간과 비례하여 사업은 확장됐고 구성원들의 기대와 욕심은 가성소다를 넣은 찐빵처럼 부풀기만 했다. 그러나 용어의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IMF의 쓰나미가 전국을 강타했고 중소도시에 둥지를 튼 그들 또한 자금사정의 경색은 당연했다. 일행은 운전자금 조달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했다. 한때 전도체처럼 유지되던 금융권은 대면조차 외면했고 운전자금 조달이 어렵게 되자 부도를 피하기 위해 끌어다 쓴 사채가 결국 무리수가 됐던 것이다. 창업 삼 년이 고비라더니 그 경구 또한 그들을 비켜 가지 않았다. 그 무렵, 아내는 하나 있는 아파트를 자기 명의로 이전해 달라는 말을 했고 그는 만약을 위한 보험이라 생각하고 순순히 아파트의 명의를 아내 앞으로 돌려 놓았던 것이다. 부부별산제 법률 안에 숨어서 만약을 대비하자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전제된 행위였지만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하고 있었다. 부부사이에 후사가 없다는 것을 그는 등한시 했던 것이다.

몇 달이면 해결되라 생각했던 자금사정이었다. 거래처에 뿌려진 상품의 판매만 원활해진다면 몇 달까지 끌 이유도 없는 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IMF 쓰나미는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의 진로를 막고 있었다. 너도나도 주머니에 지퍼를 채우거나 소비를 절제했으며 최소생활비로 가게를 꾸리느라 불요불급한 지출을 지양했다. 그들의 공장에서 생산된 몇몇 생필품들 또한 거래처의 매대를 오래도록 지켜야 했다. 대출받은 운전자금의 이자미납은 원금까지를 독촉했고 아울러 사채의 후유증은 급기야 그와 일행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몰고 말았다. 일행은 채권자들을 피해다녀야 했다. 뉴스와 소문 등을 통해서 채권추심을 위한 사채업자들의 망나니 같은 행동을 알고 있는 터라 일행의 흔적은 서로간에도 연락되지 않을 만큼 깊은 곳을 찾아들었었다.

나락의 길로 떨어진 인생은 설상가상이었다. 어쩌다 연락이 닿은 아내는 이혼을 언급했다. 언어도단이었다. 그는 이혼만은 막아낼 요량으로 아내를 설득했다. 천지간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미사여구를 총동원하기도 했었지만 가정법원은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아내의 굴레로부터 삶의 보호막을 얻어내려던 그의 계획은 법정불출석으로 부부관계가 종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언제 솟장이 송달된 것인지, 청구취지가 무엇인지, 청구원인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계산된 절차에 의해 호적에서 이름 석 자를 지워버린 아내는 아파트마저 처분하고 그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사라졌던 것이다.

종점이라고 단정 지은 시점에 이르자 그는 옷가지를 담은 가방 하나를 어께에 메고 더 큰 도회지의 인파 속을 헤집고 들었다. 다중의 그늘 속이 차라리 자신을 은닉하고 은폐하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해서였다. 낯선 도시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처지가 대입되어 생경한 듯했다. 갈 곳이 없었고 정주할 곳은 더욱 없었다. 정처를 정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서야 보험이랍시고 아파트의 소유권을 아내 앞으로 이전해 놓은 것이 자승자박이 됐다는 걸 알았다. 너무나 많은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 되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실소가 나왔다. 집을 나왔다는 것이, 단순한 외출이나 출타가 아니라는 것이, 한지붕 밑에서 한이불을 덮고 자며 더러는 서로의 육신을 구석구석 탐하던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것이 더욱 가슴아프게 했다. 더하여서 신용불량자라는 열패감과 채권자 또는 사채업자들의 추심의 목표물이 된 터라 터럭끝 하나라도 노출돼서는 아니 된다는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이 수반된 일이었기에 그의 속내에는 깊은 나락감만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는 정말 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쪽으로 발길을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채권자들의 눈을 피하는 방법으로 고향은 물론 일가붙이가 살고 있는 방향 따위로는 최악의 방법임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의 숲은 안전했다. 설령 지명수배자 명부에 등재되어 얼굴이 벽보 속의 인물로 알려진다 해도 지극히 평범한 이목구비의 자신을 알아낼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루 해가 이슥하도록 그는 잘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한다고 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아무 곳에나 들어갈 처지가 아님이 그를 압박했다. 시선에 잡히는 빌딩과 산마루에는 이네가 덮이고 있었다. 그시간까지도 도회의 밤거리를 헤매고 있는 영혼들이 숫한 듯했다. 그는 보안등 밑에서 몇몇 노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자리께로 걸음했다. 무리의 한복판에는 장기판이 놓여 있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불쌍한 영혼들인 듯 했다. 그곳에서 훈수를 두거나 말 참견을 하다가 그는 입성이 허름한 사내의 뒤를 따라 간판도 없는 허름한 하숙집을 찾아들었다. 숙식비는 생각보다 저렴했다.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해도 당분간은 견뎌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듯했다. 만약을 생각해서 일주일 치 숙박비를 지불한 후 노천 세면대에서 대충 씻고 좁은 하숙집 방바닥에 몸을 눕히자 서러움이 밀려 왔다.

그렇게 시작된 떠돌이 생활이었다. 그는 며칠 후에 노동자들이 모이는 새벽인력시장을 기웃거렸다. 그곳의 고용인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 없었지만 그에게는 단단한 몸둥아리가 있었다. 아니할말로 단순노동을 제공하고서라도 그는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경제사범으로 낙인이 찍힌 만큼 화이트칼라로서의 입지는 언감생심이었다. 다만 생활이 나아지면 나아지는 대로 변화를 모색해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한번 바닥으로 떨어진 팔자는 여하히도 비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루이틀이 사흘나흘이 됐고 한 달 두 달이 일 년 이 년이 되는가 했는데 그렇게 오 년 여를 은미엄마의 하숙집에서 죽은 듯이 살았던 것이다. 그 사이에 오야지의 배려로 조금은 쉬운 일을, 다른 노동자보다 자주 맡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흘렀다 하여 입장이나 처지가 나아졌다거나 변화가 있었는 건 아니었다. 그무렵은 헤어날 수 없는 혼돈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위안이 있었다면 오로지 하나, 은미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었고 아울러 포기할 수 없는 생활이었고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이었던 것이다.

호구지책을 위해 가능한 만큼만 세상 속에 드러내야 했던 육신의 운명을 그는 제어하지 않았었다. 힘겨운 시간이었고 세월이었다. 건강하고 단단한 육신을 소유했지만 노동에 단련되지 않은 육신은 한동안 고통을 수반했고 육신에 수반된 고통은 절망의 빛을 더욱 깊게 채색했었다. 아니할말로 소줏잔을 앞에 놓고 종말의 길을 모색하려 한 적도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줏잔이 그를 지켜주기도 했던 세월이었다. 자신을 스쳐간 지난 시간의 일부였다.

강씨는?”

그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는 듯 하더니 갔어요라는 짤막한 한마디로 그간의 정황을 대변하듯 말 했다.

가다니?”

저세상으로 갔어요.”

아니, 어쩌다가?”

허구장창 소주만 마셔대더니 어느날 갑자기 죽겠다고 배를 움켜잡고 뒹굴길레 병원엘 갔더니 위암 3기라는 거예요. 살려보겠다고 수술을 했지만 죽을 날을 받아놓은 것처럼 만사를 귀찮아하더니 물려받은 재산 절반을 까먹고는 가더라구요. 그 밑으로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데…….”

기훈이 녀석 많이 컷겠네?”

그녀석도 갔구요.”

아니, 가다니?”

………….”

은미엄마는 말이 없었다.

어쩌다가?”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더니 옛말 하나도 틀리지 않습디다.”

은미엄마는 자조했다. 지난 몇 년의 시간을 어렵게 수용한 흔적을 그녀는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의 자화상을 애련하게 색칠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문득 생각해낸 듯 그는 입을 열었다.

은미 소식은 자주 듣고?”

소식들은 지 한참됐어요.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 한 번 찾아 왔었는데 오히려 서먹서먹합디다. 나나 저나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냥 에미니깐 한번 찾아 왔던가 봐요. 고작 점심 한 끼 해 먹이고 보냈는데……. 그러고는 소식이 없어요. 저도 서운했을 거예요.”

그래도 한 번 찾아가 보시지. 보고 싶을 터인데.”

속으로야 보고 싶지만 어차피 운명이 다른 걸요. 팔자라 해도 좋고요. 아니 팔자겠지요,”

팔자도 만들기 나름이라 했다는데.”

………….”

은미엄마는 말을 거두었다. 그녀의 동공에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있음을 그는 읽을 수 있었다. 은미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은미를 낳기까지 그녀가 소유했을, 아니면 그녀가 음미했을 행복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그 남자에게 본처가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자신의 손에서 세상사를 놓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녀는 어머니가 됐고 가장이 되어 세상을 지켰던 것이다.

남자의 심리란 대체적으로 대동소이한 듯 했다. 하숙집엔 여러 사람의 뜨네기 사내들이 있었고 은미엄마에게 마음을 두는 사내도 여럿 있었다. 그런 중에도 은미엄마 역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은미엄마의 동공 속에서 읽고 있었지만 모르는 체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오묘해서 은미엄마의 마음을 그 남자는 외면했다. 권씨 성을 소유한 남자였다. 남자와 정식으로 통성명을 한 적이 없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남자를 권형이라 불렀다. 짐작으로 두어 살은 손 아래라 생각했기에 다가가기가 수월한 듯 했다. 권씨가 은미엄마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인지 알고도 모르는 체를 한 것인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권씨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다. 다만 은미엄마가 남자를 흠모하고도 남을 용모의 소유자란 걸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도 권씨의 용모를 부러워 했다. 생각하건데 사내의 용모 어디에서도 싸구려 하숙집을 전전할 팔자로는 보이지 않는 듯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은미엄마는 밖에서 그를 한 번 만났으면 하는 전갈을 했다. 그는 은미엄마의 마음이 자신에게도 유착돼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마치 친정오빠 같아서 하는 말이라며 그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하는 은미엄마를 보며 그는 실소했다.

그는 은미엄마의 부탁을 전제로 권씨를 만났다. 자초지종을 숨기고 권씨에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바라며 은미엄마를 권했다. 권씨는 웃으며 조용히 거절했다. 아직 호적이 정리되지 않은 아내가 있고 비록 어리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이 삼남매나 있다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아내와 재결합의 가능성은 없지만 아직은 혼자라는 등식을 부인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권씨였다. 그는 은미엄마에게 자초지총을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한 번 기울어지면 원래의 위치로 되돌리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은미엄마는 내색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앓는 듯했다. 자신의 속내를 알아주지 않는 사내를 생각하며 은미엄마는 종종 소줏잔을 기울이고 깊은 잠을 청하는 듯 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밤, 기회를 엿보고 있던 누군가가 술에 취해 잠든 은미엄마를 덮치는 소리를 그는 들었던 것이다. 그날 은미엄마를 덮친 사람은 노총각 강씨였다. 은미엄마의 저항과 욕정을 해소하고자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사내의 몸부림에서 강씨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옆방의 소란은 간단히 종료되지 않았다. 마음에 담아둔 여자를 탐하고자 달려드는 사내의 욕구와 완력은 쉽게 포기되는 게 아니었다. 옆방에서의 소란은 시간을 끄는 듯 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연하의 강씨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한 듯했다. 은미엄마가 사람 살리라고 고함이라도 질렀다면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종료될 수 있었겠지만 은미엄마의 저항하는 몸부림은 바로 옆방인 그의 방을 넘어서지 못했었다. 그 밤, 은미엄마는 남자를 받아들였고 강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은미엄마의 방을 나갔었다. 은미엄마와 강씨와의 그러한 밤은 두어 번 더 있었다고 그는 회억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은미엄마의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이미 월경도 끊긴 것을 안 은미엄마는 몇며칠을 고민하다가 아무도 몰래 강씨를 만나야 했다. 가진 것이 없다뿐이지 보아하니 면무식에 어디 내놓아도 빠진 구석이 없는, 나름대로 이목구비도 갖춘 사람 같았다. 아울러 은미엄마는 강씨가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은미엄마는 평소에도 착한 사람이 좋다고 생각해온 터였다.

강씨는 자신의 행위가 오래전부터 은미엄마를 마음에 담아왔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강씨는 이제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자신의 가정사를 얘기했다. 고향이 벽촌이고 벽촌인 고향에 노모가 있으며 얼마간의 논밭과 선산도 있다고 했었다. 그렇게 고향에 노모가 있고 얼마간의 전답이 있지만 농촌으로 시집올 여자를 찾지 못해 아직까지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해 도회지에서 노가다를 해서라도 짝을 맺을 수 있다면 그 짝을 찾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은미엄마는 뱃속의 아이를 책임질 자신이 있느냐고 강씨를 다그쳤다. 강씨는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소원이었고 조건이었다. 은미엄마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씨는 고민을 했다. 은미가 문제였다. 이미 취학연령이 된 은미를 자신의 아이로 키울 자신이 강씨에겐 없었다. 고민 끝에 강씨는 은미를 친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것을 제안했다. 은미엄마는 펄쩍뛰었다.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각오였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시작됐다. 은미엄마는 산부인과를 찾기로 결심했다. 뱃속의 아이를 지울 생각이었다. 이미 은미엄마의 마음 속엔 강씨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지금의 이대로가 좋겠다는 생각에서 비켜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하여 산부인과를 찾은 은미엄마에게 의사는 산모의 생명까지 위험한 일이라며 수술을 거절했다. 그길로 다른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의사의 대답은 동일했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렇지만 강씨에게 매달릴 생각은 추후도 없었다. 시간은 은미엄마의 속내를 외면하며 흘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은미엄마는 아이를 순산했다. 핏덩이였지만 한눈에도 이목구비가 잘 생긴 사내아이 였다. 은미엄마는 결국 그 아이가 자신에게 오라줄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강씨도 은미엄마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아이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목구비가 자신을 닮았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조금씩조금씩 아이가 자라자 아이의 이목구비는 더욱 강씨를 빼닮고 있었다. 강씨는 은미엄마를 설득했고 은미엄마는 은미를 함께 키우는 조건이 아니라면 강씨 청을 거절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은미엄마로서는 두 아이를 홀로 키울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은미엄마는 남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밤마다 육신을 파고드는 젊은 육욕의 곤혹을 참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때로는 자신을 원하는 남자를 골라 남자의 여자가 되고 싶은 충동도 있었지만 그 또한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은미엄마는 강씨의 설득을 수용하고자 은미아버지를 찾아갔다. 양육비를 지급할 형편이 안 되는 은미아버지는 은미를 책임지겠다는 언질을 던졌다. 이미 구면인, 은미아버지의 아내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했다. 미안하지만 그녀에게 은미를 부탁한다는 한마디를 꼭 남겨두고 싶었지만 그 말은 은미엄마의 가슴속에서만 맴을 돌았다. 은미를 제 아비에게 남겨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아울러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어쩌면 은미를 위해서라도 그 결정이 잘 된 결정일 것이라고 은미엄마는 자위했다.

은미를 제 아버지에게 남겨두고 돌아온 은미엄마에게 강씨는 아이 이름을 기훈이라고 지으면 어떻겠느냐 물었고 은미엄마는 강씨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그길로 하숙업을 청산한 은미엄마는 강씨를 앞세우고 강씨의 고향 땅을 찾았다. 은미엄마가 강씨를 따라 새로운 보금자리로 찾아든 때는 논밭마다 추수를 끝내고 겨우살이 준비에 여념없을 무렵이었다.

계곡과 계곡으로 이어진 골짜기의 한켠에 강씨의 본가가 있었고 집 앞으로 제법 많은 양의 강물이 내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아니, 내라기 보다는 강에 가까운 물길이었다. 다행인 것은 시어머니라 불리운 강씨의 어머니였다. 면총각을 못해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안타깝고 죄스럽던 아들이 손자까지 등에 업고 오는 아들내외를 보면서 노친네는 맨발로 달려나와 며느리를 맞았던 것이다. 때맞추어 은미엄마의 입성을 환영한다는 듯 외양간의 암소가 긴 울음을 날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은미엄마의 시집살이는 안온했다. 시집살이라기 보다는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 은미와 기훈이, 이렇게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 두 사람의 남자를 만났다고는 해도 정식으로 결혼식이라는 걸 올리지는 못했지만 은미아버지 때와는 또다른 삶의 형태를 살아갈 수 있다고 은미엄마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도회지 생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들의 천지였고 잠시만 육신을 움직여도 그 댓가가 거짓없이 나타나는 생활이라 욕심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는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텃밭을 이루고 있는 집 앞에는 작은 비닐하우스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자신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듯 며느리를 아꼈다. 은미엄마가 스스로 일을 찾아 몸을 움직이면 마치 궁중의 공주라도 모셔온 듯 팔을 걷어부치고 며느리의 일을 가로막았다. 은미엄마의 마음 속에 행복이라는 어휘가 조금씩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산촌의 겨울은 적막했다. 밤은 유달리 급하고 빨리 찾아왔으며 이웃도리를 다닐 이웃도 가까운 곳이 오리고 십리였다. 군데군데 전신주에 매달린 보안등이 있었지만 그믐과 초승으로 이어지는 무렵이면 산촌은 한 발 앞도 분별할 수 없는 암흑천지였다. 강씨와 은미엄마는 환경에 순응했다. 앞 산에 해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면 서둘러서 저녁밥을 지었고 산그림자가 앞마당에 닿기도 전에 설거지를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아들이며 손자인 기훈이를 제외한 세 사람은 정신을 빼앗겼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이면 강씨의 속마음은 달아올라 식을 줄을 몰랐다. 마흔 줄에 닿을려면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려야 하는 강씨의 남자는 오로지 은미엄마에게 연결돼 있었다.

강씨는 은미엄마에게 눈짓을 했다. 그만 티브 앞을 떠나 두 사람 만의 공간으로 가자는 암시였다. 은미엄마도 강씨의 눈짓이 싫지 않았다. 아니 젊은 남편의 욕구를 전제한 눈빛이 한없이 좋았다. 그러나 선뜻 일어나 시어머니 곁을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은미엄마는 남편의 채근을 모른는 체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저승객의 노친이 아들 내외의 속 사정을, 속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피곤하구나, 나 먼저 잘란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제 방으로 가라는 노친네의 신호였다. 노친네의 신호에 아들은 곧바로 엉덩이를 일으켰지만 며느리는 쉽게 엉덩이를 일으키지 못했다.

어여 가서 자.”

엉덩이를 머뭇거리는 며느리를 향해 뱉어내는 노친네의 음성에 아들의 속내를 읽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 어머니.”

은미엄마는 남편이 건너간 건넛방의 자리께로 찾아들었다. 그 밤 남편의 온 몸의 피가 한곳으로 모아져 자신의 깊은 육신에 파고들 것이란 예감에 은미엄마의 몸피에도 뜨거운 열기가 맴돌고 있었다. 은미엄마는 남편의 옆자리에 몸을 밀어넣었다. 얇은 요 한 장이 바닥에 깔린 것의 전부였지만 장작불을 지핀 방바닥은 따뜻했다.

기다림은 필요치 않았다. 은미엄마의 뜨거운 육신을 향해 남편의 손이 거침없이 옮겨져 왔다. 은미엄마의 육체가 반응하는 기척을 느끼자 남편의 남자가 은미엄마를 옥죄기 시작했다. 은미엄마의 육신은 남편의 욕구보다 한 발 앞서 반응했고 그 반응에 대한 희열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그러한 시간의 연속이, 그러한 밤의 연속이 은미엄마를 그곳에 머물게 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은미엄마는 알고 있었다. 드넓은 도회지를 떠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깡촌에 살면서도 밤마다 열리는, 밤마다 느끼게 되는 여자의 희열을, 아니 인간 최고의 희열감을 은미엄마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 오로지 제 어미 만을 믿고 자라온 아이를, 자신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돌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온 아이를, 아니 세상에서 피붙이라곤 오로지 은미 하나뿐이라고 생각해온 아이를, 울며불며 매달리던 그러한 은미를 제 아비라는 이름의 사내에게 던지듯 냉정하게 남겨두고 낯 익지 않은 사내 하나만 믿고 따라 들어온 이 산촌에서 보는 것, 듣는 것들을 생략하고 살아가는 재미가 남다른 것이라고 은미엄마는 종종 생각했다.

산촌의 겨울은 길었다. 초설이 내려 잠시잠깐 동양화 같은 풍경을 이루었던 산촌의 겨울은 설상가상이 아닌 빙상설상으로 이어졌다. 산촌에 쌓인 눈은 세상을 하얗게 바꾸었지만 바뀐 것은 산촌의 동양화 같은 풍경만이 아니었다. 산촌 생활을 시작한 지가 오래지 않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보고 듣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은미엄마는 삶에서 체험하고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인지 식자우환이 진리인지는 알지 못해도 보고 듣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에 평안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은미엄마는 생활에서 체험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부엌데기로 하루를 시작하여 이곳저곳에 널부러져 있는 잡다한 것들을 정리하고 하루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안방의 티브이 앞에 앉아 연속극이나 가수들의 노래자랑 따위를 시청하다가 다시금 잠자리에 누워 젊고 건강한 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지만 은미엄마는 근심걱정이 없는 생활이 좋았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어린 딸, 은미의 손을 떼어내며 제 아비에게 은미의 미래를 맡길 때만 하더라도 근심걱정의 전부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은미엄마는 자신의 가슴에서 이미 은미를 온전히 떼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태기는 없누?”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또 눈이 내려 문 밖의 길이 완전히 없어진 어느 날, 노친네는 티브이에 눈길을 던지고 있다가 은근히 며느리의 배를 바라보며 물었다.

기훈이 난 지가 언제고? 터울이 너무 떠도 안 좋다. 어차피 기훈이 하나로 끝낼 생각이 아니라믄 퍼뜩 하나 더 낳거라.”

노친네의 관심사는 오로지 둘째 손주인 듯 했다. 대놓고 하는 말이야 처음이지만 노친네의 눈길이 종종 자신의 배쪽에 와 닿고 있다는 것을 은미엄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노친네의 속내에 자리한 둘째 손주에 대한 기대가 짐작되는 바였다.

우연히라도 생기면 낳지요. 뭐할려고 굳이 애를 씁니까.”

사실 은미엄마의 속내에는 기훈이 동생에 대한 생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잊은 듯 뇌리를 맴돌고 있는 은미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출산은 피하고 싶은 은미엄마였다. 첩첩산중인 이곳을 떠난다는 보장이 없고서야 굳이 아이만 더 낳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은미엄마의 속내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설령 환경이 변하여 가솔들이 산촌을 떠나는 사정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도회지 생활을 뒷밭침해 줄 환경이 준비되지 않은 다음에야 기훈이 동생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은미엄마였다.

그들 내외가 나흘 밤낮으로 내린 눈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시간에 티브이에서는 영동지역의 폭설을 특집으로 다루는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논밭에 나갈 일이 없어지자 강씨는 밤낮으로 은미엄마를 탐했다. 노친네는 아들며느리의 욕정이 가져올 두번째 손주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산천을 하얗게 물들였던 눈이 녹아내려 내를 이루고 그 산천에 꽃이 필 때까지도 은미엄마의 배는 불러오지 않았다. 그러나 노친네의 눈길은 며느리의 뱃가죽을 훔치는 일에 등한하지 않았다.

산천에 쌓여 천지간을 뒤덮었던 눈이 녹아 내를 이루자 은미엄마와 강씨는 논밭에 나갈 일이 빈번했다. 노친네는 며느리를 아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들 혼자 논밭 일에 매달리는 것 또한 마음에 차지 않았다. 아무리 젊고 건강한 나이라지만 등골이 휘도록 일을 하고나면 여자와의 밤잠자리를 피하게 된다는 이론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쉬엄쉬엄 해. 무슨 일을 그렇게 죽자사자 하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손자 기훈이를 옆에 끼고 살면서도 노친네는 또 하나의 손주를 마음 속에 욕심내며 입을 뗐다. 허리께를 두 손으로 짚으며 은미엄마와 함께 사립문을 들어서는 아들 내외를 향해 노친네가 던지는 말에도 강씨는 노친네의 말을 듣지 못한 척 했다. 노모의 기우에 찬 말들이 더러는 고막에서 맴을 돌기도 했지만 강씨는 가급적이면 대꾸를 피했던 것이다. 노모의 아들 걱정이 아니, 두 번 째 손자 욕심이 전제된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아내와 아들을 위한 유일한 미래로의 길이기에 강씨는 노모의 염려에 찬 마음을 못 들은 척 하려했던 것이다.

기훈이는 이미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여 가까운 곳은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노친네는 기훈이를 자신의 시선에서 놓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종종 손자의 그림자를 눈에서 놓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노친네의 가슴과 명치께에 풀썩풀썩 회오리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장마가 산촌마을을 적시고 있었다. 산촌의 장맛비는 도회지의 것과 또 다른 내용을 품고 있었다. 도회지의 장맛비는 내리는 족족 하수구로 향했지만 산촌의 장맛비는 낮은 곳으로만 향하다가 더러는 여기저기에 웅덩이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아울러 흙탕물로 변한 강물은 길을 지웠으며 더러는 논밭을 지우기도 했다. 그러나 간혹 장마가 그친 자리께에서는 안개가 피어 올라 상승기류를 타고 산정을 향하며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놓기도 했다.

장맛비가 앞 개울의 물결을 뒤집어 놓은 듯한 다음 날 오후, 하늘은 언제 그 많은 비를 쏟아부었는냐는 듯 청명했다. 그렇게 잠시 장마가 그친 시간에 강씨와 은미엄마는 삽과 호미를 들고 논과 밭으로 나갔다. 농촌생활이란 것이 꽃눈 날리는 시절에 씨를 뿌리고 시간과 비례하여 곱게 자란 각종의 곡식과 채소들 사이사이에서 길게 목을 빼고 있는 잡초나 피들을 뽑지 않으면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것 쯤은 강씨는 알고 있었고 은미엄마는 오로지 남편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애비! 허리는 괜찮누?”

호미와 삽을 들고 사립문을 나서는 아들의 귀전에 던지는 노모의 마음이었다. 평소에도 논밭 일을 혼자서 도맡아 해온 아들이었지만 손주 욕심을 끊을 수 없는 노친네는 아들 허리가 걱정이었다. 사내는 허리가 온전해야 가정이 편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터라 노친네는 아들의 허리가 마음에 걸려 잠시 며느리가 보이지 않는 틈을 타 자신의 기우를 전했다.

염려마유.”

노친네의 기우가 한결같았듯 아들의 대답 또한 한결같았다. 시간이 흘러 장마가 물러난 자리마다 여름 기운들이 깊이 뿌리를 밖고 있었다. 강씨와 은미엄마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산천마다 산골마을의 여름특징으로 가득하자 강씨와 은미엄마는 논밭이랑을 메우고 있는 잡초들을 뽑기 위해 전신을 땀으로 적시고 있었다. 한낮을 지나 해그림자가 조금씩 길이를 늘려가고 있는 때였다.

에미야, 에미야! 기훈이가 안 보인다. 아 못 봤제?”

전신에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을 즈음 생각지도 못하던 노친네가 허겁지겁 아들 내외를 향해 달려오며 밭은 숨줄을 뱉어내고 있었다.

뭐라 하는교?”

기훈이가 안 보인다.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기훈이가 없어졌다아이가…….”

아가 안 보인다니 그기 무슨 말인교?”

기훈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노친네의 탄식은 언어로 장식되기에 약간의 무리가 있었지만 강씨는 들고 있던 쟁기를 내동댕이치고 집을 향해 달렸다. 뒤를 이어 은미엄마도 강씨를 따랐지만 쏜살처럼 달리는 남편의 속도를 따를 수가 없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노친네가 혼자서 아이를 찾아 헤매다가 아들에게 달려온 것이라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내외와 노친네가 아들과 손자인 기훈이를 찾고자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세 사람의 화통 같은 음성이 여기저기에서 메아리를 일으켰지만 어디에서도 기훈이의 기척은 들려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훈이는 아직 언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이제 겨우 두 돌을 지난 갓난아이였다. 강씨는 아들 기훈이의 행적을 샅샅이 뒤졌다. 더러는 진흙탕이기도 했고 더러는 크고작은 자갈들이 자연적으로 깔려 길을 이루고 있는 산촌에서 사라진 두살바기 아이를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내는 일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두 내외와 할머니가 미친 듯 하루밤낮을 헤맨 끝에야 아이는 찾아졌다. 아이는 작은 웅덩이 가장자리께에서 마치 유영하듯 떠 있었고 숨결은 이미 끊겨있었다. 강씨와 은미엄마, 할머니가 싸늘하게 식어 굳어버린 세 살바기 아이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었지만 모든 상황은 그렇게 종료된 후였다.

강씨는 술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마음을 달랠 방법이 없었다. 몇 달인가를 술에 젖어 자신의 존재를 잊고 지낼즈음의 어느 날, 은미엄마는 술상을 앞에 놓고 앉은 강씨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보! 이제 그만하세요, 뱃속에 아이가 든 것 같아요.”

은미엄마는 자신의 배에 손을 얹으며 나직히 말했다. 사실 기훈이를 잃을 무렵에 태몽을 꾸었지만 그녀는 눈앞에서 사라지던 아들, 기훈이의 영혼에 사로잡혀 아무말도, 아무 느낌도 토설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남편의, 잃은 아들에 대한 깊은 상심이 너무 오랜 시간 지속되는 것에 말문은 열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

은미엄마의 뱃속에 아이가 들었다는 소리에도 강씨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내의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두 살 나이로 명계를 달리 한 아들 기훈이를 대신할 수 있는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 들어 있다는 형언할 수 없는 소식에도 강씨의 표정은 술잔을 향한 채 였다. 은미엄마는 그러한 무채색의 남편 곁으로 몇 번이고 다가 앉으며 강씨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배에 올렸다. 아직 아무런 태동을 못하는 뱃속의 생명체였지만 그래도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편에게 어떤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에서 였다.

그날 이후 강씨는 차츰차츰 술과의 거리를 멀리했다. 그렇게 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강씨의 뇌리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을 잃기 전의 위치로는 회귀할 수 없었다. 깔깔대며 해맑게 웃어대던 아들 기훈이의 환영이 시시각각으로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은미엄마는 늙은 시어머니를 산파로 삼아서 새 생명을 분만을 했다. 새생명은 딸이었다. 노친네는 기훈이를 닮은 사내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의 영역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목전에 떨어진 새생명이 막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에 찰라적인 실망을 느껴야 했다. 노친네의 조용한 표정에서 환희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느낀 은미엄마는 묻지않고도 새생명의 자웅을 알았다. 방안이 조용했다. 새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울음소리만 작고 좁은 공간을 조용히 채울 뿐이었다.

강씨는 새생명이 반갑지 않았다. 까닭 모를 어떤 서운함이, 상실감이 술의 여신에게로 떠밀리고 있다는 사실성을 강씨는 알지 못했다. 가끔씩 자신을 유혹하는 술기운을 한동안 억지로 억지로 참고 견뎌왔지만 왠지 모를 제어능력이 완전히 풀려가고 있었다. 노친네가, 은미엄마가 강씨의 풀어진 제어장치를 잡아당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시간은 한동안 지속됐다. 그러는 사이 은미엄마는 자신의 뱃속에 또다른 생명이 잉태된 것을 알았다. 태어난 아이가 채 말을 배우기도 전이었다. 은미엄마는 외형적으로 자태가 드러날 때까지 남편에게도 노친네에게도 아무런 낌새도 내용도 언급하지 않았다. 가끔은 도회지로 나가 뱃속의 생맹체에 대하여 자웅을 알아보고도 싶었지만 설령 뱃속의 생명체에 대하여 실망을 한다해도 별다른 변화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전제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때마다 자웅을 알기 위한 병원진료는 포기하곤 했다.

시간을 채워 은미엄마는 뱃속의 아이를 분만했다. 또 딸이었다. 경우가 같을 수야 없지만 자신의 뱃속에서 딸아이를 셋이나 생산했다는 것에 은미엄마는 처음으로 자책했다. 아들을 잃어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새생명이 덜렁 고추 하나를 달고 태어나기를 기대했었는데 그녀의 실망감은 남편보다 못할 것이 없는 듯 했다. 금방 해산을 한 산모였지만 딸을 생산했다는 자책감은 그녀에게 산후조리마저 포기하게 했다. 노친네가 산모에게 산후조리를 종용했지만 차라리 힘들게 움직이는 것으로 남편의 속내를 바꿔볼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산후조리를 스스로 포기한, 산모인 아내의 무분별한 노동에도 강씨는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과 비례하여 술 병만 늘릴 뿐이었다.

스스로 초래한 분주한 와중에도 은미엄마는 은미가 생각났다.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예쁠까?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으며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노라니 은미아버지의 얼굴도 함께 오버랩됐다.

잘 생긴 남자였다. 남자는 매일 같이 가게에 들려 이것저것 먹거리들을 구입해서 비닐봉투에 담아 들고 갔다. 여자는 군모를 쓴 남자의 계급장에 눈이 갔다. 학사장교인지 얼굴이 헤맑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가 말을 걸어주기를 자신의 속내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을 위해 점포를 정리하는 친구의 가게를 인수한 지가 일년 정도가 지난 무렵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매일이다시피 그렇게 가게에 들리는 건 필요이상의 그 무엇이 내재된 것이리라 미루어 짐작하기도 했다. 아울러 매일 같이 이슥한 시간에만 가게에 들린다는 건 부근 어디 쯤에 남자의 주거지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중대장급이면 영외근무가 가능하다는 것 쯤은 여자도 경험칙상 알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댁이 이부근이신가 보죠?”

아닙니다. 저 위 달동네에서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방을 개설했어요.”

그러면 선생님이세요?”그런 셈이지요.”

! 그래서 매일 밤 학생들 군것짓 꺼리를 사 가셨군요?”

.”

저는 젊으신 분이 벌써 아이가 여럿이구나 하고 오해를 했답니다, 하하.”

다 제 아이들이죠.”

정말요?”

그런 셈이지요.”

그렇게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대화는 날이 지날수록 깊이를 불려갔다. 남자는 비교적 단답이었고 여자는 가급적 한마디라도 더 덧붙이고 싶었다. 여자의 질문과 질문에 남자의 짤막짤막한 답변이 뒤따랐지만 분위기를 다룰 줄 아는 여자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의 마음이 남자의 주변에서 맴도는 시간이 많아졌다. 만남을 이어갈수록 남자의 곁을 떠나는 것이 항상 서운했고 허전했다. 남자는 그러한 여자를 가슴 깊이 끌어안기 시작했다. 남자의 속내에 도사리고 있는 애욕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견뎌내기란 자신의 살점을 뜯어내는 것 만큼이나 고통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 겪는, 처음 맡는 향취가 아니었지만 여자의 향기는 향긋했다.

달콤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프로포즈가 기다려졌다. 아니 남자의 프로포즈를 기다렸다. 본격적으로 남자를 만나온 지 일년 정도가 흘렀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여자의 건강성을 상징하는 신호가 벌써 넉 달째 끊겼다는 걸 여자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몸피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것도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여자의 몸피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를 만날 때마다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자신의 애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언어를 대신한 여자의 눈길은 진정으로 애절했다. 그러나 남자의 마음은 마이동풍이었다. 벽창호가 아닌다음에야 이럴수가 없다는 생각이 여자를 지배했다. 서운함이 여자를 엄습했다. 차라리 자신의 하복부가 빨리 확연한 변화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답답했다.

- 제 몸이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나요?”

그렇게 운을 뗀 여자는 창피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 남자의 눈치가 저렇게나 둔감한 것이란 걸 여자는 처음으로 알아야 했다.

어디 아파요?”

………….”

남자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여자는 처음으로 남자를 커피샾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이불을 덮어쓰고 오랜 동안 눈물을 쏟아냈지만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다음 만남에서 여자는 그간의 정황을 남자에게 토설하리라 작심하기도 했다.

조금만 기다려. 먼저 해결해야될 일이 있어.”

여자가 자신의 몸 속에 남자의 분신이 잉태되어 자라고 있다는 소리에 여자에게 전달한 남자의 대답이었다. 무엇이 둘 사이의 결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남자가 속 시원히 말해주기를 기다렸지만 남자의 대답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오면서 남자에게서 들었던 단편적인 얘기들을 거두어 모아서 남자의 지난 흔적찾기에 나서야 했다.

여자는 가게 문을 닫아 걸었다. 하루 정도면 시간은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남자에게는 아무런 낌새도 비치지 않았다. 남자가 지나가는 투로 몇 번 여자에게 언급했던 남자의 고향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남도의 작은 해변마을이었다. 남자가 고향이라고 밝힌 소읍에서 물어물어 찾아간 남자의 고향집에는 남자의 부모와 자신과 나이대가 비슷한, 몸매를 가꾸지 않은 여자와 아직 취학 전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하나 있었다. 여자는 어른들에게 작은 딸의 친구라고 속이며 남자가 말한 남자의 누이동생을 입에 올렸다. 오래도록 연락이 닫지않아서 지나가는 길에 들려봤다는 말에 그들 모두는 속아주었다. 그러나 차라리 찾아오지 말 것을 잘 못 왔다고 여자가 후회한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할아버지 무릅에 앉아 할아버지의 말동무를 하고 있는 아이의 생김새가 남자의 외관을 그대로 빼닮았던 것이다.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라는 젊은 아낙의 청을 읍내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둘러대며 남자의 고향집을 나서는 여자의 가슴에 비수가 꽂히고 있었다. 여자는 야간버스에 앉아 쏜살처럼 지나치는 밤의 풍경에 시선을 던져놓고 있었다. 날이 밝는 대로 산부인과를 찾아가리라 결심한 여자는 그 밤을 뜬눈으로 견디다가 날이 밝자 병원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의사는 뱃속의 아이가 이미 온전한 인격체로 태어날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말 했다.

오후가 되자 평소처럼 남자는 여자를 찾아왔지만 여자는 함구했다. 남자 또한 가게를 폐문을 하고 어제 하루 어딘가를 다녀온 여자의 행적을 묻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함구가 답답했지만 그렇게 말하기를 즐겨하던 여자의 함구를 남자는 단순히 여자의 변덕쯤으로 생각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남자가 입을 뗐다.

왜 속였어요?”

자신에 대한 여자의 채근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몰라 휘둥그레 동공을 굴리고 있는 남자를 향해 여자는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얘기했다.

결혼 했다는 것, 아이가 있다는 걸 왜 말하지 않았어요?”

………….”

지난밤 내내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의 일들로 인해 여자는 많은 것을 제어한 채 조용히 입을 열었지만 평소처럼 남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미안해. 사실 지금 이혼소송을 제기한 상태인데 아내에게 귀촉사유가 없는 사건이라…….”

그걸 말씀이라고…….”

그 날 이후 여자는 남자를 피하려 했지만 오히려 남자는 여자의 곁자리에 머물려는 방법만을 모색했다. 더우기 자신의 아내를 상대로 제기했다는 남자의 이혼청구소송사건은 남자를 외면했다. 당연한 귀결임을 여자는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여자는 아이를 낳았다. 남자는 아이에게 은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여자는 남자를 떠나자고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가 알지 못하는 곳을 생각하다가 도회지의 친척을 떠올렸고 그렇게 도회지를 선택했던 것이다. 여자는 지인의 조언으로 허름한 하숙집을 얻어 운영하던 중 강씨를 만나 산 설고 물 설은 곳에 정착한 것을 회억하고 있었다.

생각이 그곳에까지 미치자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노라면 잘 생긴 남자에게 끌렸다는 것 보다는 자신에게 수퍼를 양도하고 결혼한 친구의 남편과 비교되는 사람을 기대했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사였다.

에미야 에미야!”

은미엄마의 안면에 떠올랐던 웃음기가 채 지워지기도 전에 노친네가 은미엄마에게 달려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애비가, 애비가…….”

은미엄마는 들고 있던 호미자루를 팽개치고 노친네를 앞서 집을 향해 달려갔다. 남편은 배를 움켜잡고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조금전까지도 소줏잔을 들이키던 남편이라 일시적인 현상이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고통은 배가되고 있었다. 은미엄마는 면소재지에 비상대기중인 119를 불러 읍내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마친 읍내병원 의사는 더 큰 병원진료를 권유했다. 그러나 더 큰병원에서 반 년 이상을 입원해 있던 남편은 제발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사이에 은미엄마는 딸 하나를 더 분만했다. 남편을 집 뒤 선산에 장사 지내고도 은미엄마는 산골집을 떠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늙은 시어머니 외에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어진 두 딸이 있어 홀몸시절처럼 쉽게 오고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시어머니의 깊은 상심은 병이됐다. 시어머니는 조석끼니를 거부했고 세상살이를 한탄했다. 잘 되면 내 탓이요 안 되면 조상 탓이라 하였듯 노친네는 조상들의 죄은 죄가 어떤 것이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와 새파랗게 젊은 아들을 그렇게 잡아가야 했는가를 탄식하다가 어느 봄 날 며느리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틈에 외양간 대들보에 스스로 목을 메고 자진하고 말았던 것이다.

남편의 첫 제사를 치러내자 은미엄마는 남편도 시어머니도 없는 산골에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앞세우고 필요한 짐을 꾸렸다. 수중에는 강씨를 따라 산촌으로 올 때 가지고온 자신의 재산이 그대로 있었고 당장의 환금성에서 시간이 걸릴 일이었지만 남편이 병원비로 날리고도 남겨놓은 선산과 논밭 등의 부동산도 상당했다. 짐을 싸며 태생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도회생활에 적합한 것이라 자구한 은미엄마는 두 딸을 위해서라는 전제를 덧붙였다. 가진 것 이것저것들을 정리하고 합치면 도회지 변두리에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적당한 집도 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 전제됐던 것이다.

은미엄마는 예전의 장사 경험을 살려 도회지 변두리에 적당한 집을 얻어 또다시 무허가 하숙을 차렸다. 자신을 훑고 지나간 그간의 시간쯤은 일개미들처럼 분주히 움직이는 도회지에서 누구의 시선에도 문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자로서 얼굴이 아직은 반반하다는 것이 최고의 무기였고 음식솜씨가 입소문을 타고 파문처럼 퍼져나가 몇 칸 되지 않는 공간은 빌 사이가 없었다. 다만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여자가 혼자서 무허가하숙집을 꾸려나가기에 예전과 달리 힘이 벅차다는 것을 은미엄마 스스로 느끼고 있던 무렵이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점심시간을 한참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직업의식이 전제된 은미엄마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과는 재결합하셨고요?”

………….”

괜한 것을 물었다는 자책이 은미엄마를 미안하게 했다. 지천명이 내일모레인 자신에게 오라버니라 부르는 사람도 흔치 않은 일이라 그는 은미엄마가 남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난 어느 날, 은미엄마가 친정오빠 같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그녀로서는 기실 친정오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면에 은미엄마 속내에 사내가 정말 친정오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는 걸 그가 알 리도 없었다. 아니할말로 그가 먼저 오누이를 맺자고 제안했으면 못이기는 체 응했을지도 모를 은미엄마였다는 걸 알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은미엄마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 또한 표현하지 못했다.

  그와 은미엄마가 커피샾을 나와 햇살 속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태양이 서쪽 산마루를 넘어가기 위해 한참이나 기울어진 무렵이었다. 저녁이 되기에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은미엄마가 저녁시장을 둘러봐야 한다며 엉덩이를 일으켰던 것이다. 커피샾을 나선 그와 은미엄마는 다시 한 번 손을 잡았지만 두 사람의 실루엣은 포도 위에서 길게길게 갈라지고 있을 뿐 어느 한사람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고막에는 은미엄마의 하숙집 주소 하나가 명징하게 음각돼 있었다.

 가을 바람 한줄기가 은미엄마의 목덜미에 걸린 머풀러를 스쳤고 머플러 끝자락은 은미엄마의 어깨 위에서 가볍게 나풀거리고 있었다.

 



   메모
추천 소스보기 수정 삭제 목록
다음글 : 갱년기 (2014-12-24 14:16:21)
이전글 : 살수, 아! 청천강 (2014-05-01 12:25:00)

[특별공지]댓글에는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지불식간에라도 작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사기를 꺾지 않게 각별한 유념 부탁드립니다. 글방의 좋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목적상, '빈정거리는 투'나 '험담 투'류의 댓글 등 운영자가 보기에 좀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댓글은 가차없이 삭제할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것이 한국문학방송의 가장 큰 운영방침입니다. 비난보다는 칭찬을! 폄훼보다는 격려를! (작가님들께서는 좀 언잖은 댓글을 보시는 즉시 연락바라며, '언제나 기분좋은 문인글방'을 위해 적극 협조바랍니다. "타인의 작품에 대한 지적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상차원의 댓글도 아주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 겸허한 자세로~!" 항상 타인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미덕을 가지십시다. 기타 (작품 또는 댓글 중)욕설 또는 저속한 언어, 미풍양속에 반하는 표현 등의 글도 삭제합니다.
◐댓글 말미에는 반드시 실명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실명이 없는 댓글은 무조건 삭제합니다.
 
한국문학방송 운영 동해안 문학관(&숙박) '바다와 펜'...
경북도청 이전기념 전국시낭송경연대회
제2회 ‘박병순’시조시인 시낭송 전국대회 / 접수마...
 
사이트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