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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식 동화] 꽥꽥이와 허수아비. 2,3
2008-12-24 13:52:01
green21an

조회:2374
추천:146

꽥꽥이와 허수아비.2,3

 안재식(小亭 安在植)

  점점 더 하늘은 높게높게 올라가더니, 티끌 하나 없이 맑아졌습니다. 산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향기가 더욱 진해졌습니다.  그러자 매미들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메뚜기들은 신바람이 나서 타닥타닥 경쟁이라도 하는 듯 벼 줄기 사이로 뛰어오르기를 하였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진 벼들은 고개를 숙이고 노랗게 익어갔습니다. 허수아비는 새벽부터 밤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습니다. 맛있게 익은 벼 이삭 냄새를 맡은 새들이 밤낮으로 제집 드나들 듯 찾아와 먹어치우기 때문입니다. 저쪽 새들을 쫓다보면 이쪽 새들이 몰려와 이삭을 쪼아 먹고, 이쪽 새들을 쫓다보면 뒤쪽 새들이 쪼아 먹는 통에 허수아비는 온몸에 땀범벅이 되곤 하였습니다.

  허수아비는 참새들에게 무섭게 보이려고 인상을 험악하게 찡그리기도 하고, 팔을 훠이훠이 저으면서 삿대질도 하였습니다. 그런 허수아비가 안쓰러워 꽥꽥이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새들을 쫓았습니다.

  “꽥꽥, 저리들 못가. 꽥꽥.”

  “꽥꽥아, 고맙다. 네가 도와줘서 새 쫓기가 한결 편해졌단다.”

  “허수아비 아저씨, 매일같이 팔을 벌리고 있는 것도 고역인데, 도망가지 않는 새들까지 쫓아야 하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어요.”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걸 난들 어떡하겠니? 그나저나 너희들과도 곧 이별을 해야겠구나.”

  “왜요?”

  “벼가 익으면 논물을 대주지 않잖니. 물이 없으면 너희들이 다니기도 힘들 테고, 또 할 일도 없잖아. 그러니 논에 나올 일도 없을 거고. 너희들은 좋겠다. 착한 웅이를 집에서 매일 볼 수 있을 테니…….”

  “아, 그렇군요. 하지만 아저씨도 논에 일이 없으면 웅이네 집으로 오시면 되잖아요?” “아니야. 난 벼를 추수하기 전까지는 계속 새들을 쫓아야 해. 그리고 사람들에게 필요 없으면 버려질 테고…….”

  “아저씨가 버려지다니요? 내년에 다시 일을 해야잖아요?”

  “아니란다. 추수가 끝날 때쯤이면 나는 낡고 더러워져서 사람들이 내년에 다시 쓰지 않으려고 할 거야.”

  허수아비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깃들었습니다.

  “아니에요. 웅이나 웅이 아빠는 좋은 사람이에요. 틀림없이 버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웅이에게 아저씨를 버리지 말고 우리들처럼 집에서 같이 살게 해달라고 조를 게요. 그러니 아저씨, 슬픈 마음을 갖지 마시고, 힘내세요.”

  “말이라도 고맙구나. 내년에도 너희들은 이 논에서 헤엄치고 다니겠지.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거라.”

  허수아비가 슬프게 말했습니다. 꽥꽥이도 슬퍼졌습니다. 웅이에게 부탁을 해서 허수아비 아저씨에게 환한 웃음을 돌려주기로 다짐했습니다. 그후로는 허수아비 말대로 꽥꽥이네 가족은 논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꽥꽥이는 논에 가고 싶어 온종일 꽥꽥꽥! 하고 울었습니다.

  점점 더 하늘은 높아졌습니다. 비누 없이 세수를 하고 싶을 정도로 하늘은 깨끗했습니다.

  쑥부쟁이가 연보랏빛 향기를 흩날리면서 겨울 양식 준비로 마음이 급한 벌들을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억새는 은빛 물결을 이루고, 씨앗을 흰눈처럼 날리면서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벼들은 이삭이 무거워져서 고개를 더욱 떨구었습니다. 웅이네 논은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웅이 아빠, 엄마의 얼굴에는 풍년의 기대감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여보! 올해는 대풍인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얼마나 피땀을 흘렸는데……. 꽥꽥이들도 고생했고…….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지. 아무래도 내일은 벼베기를 해야 되겠어…….”

  “그래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돌아요.”

  다음날 아침, 웅이네 마당은 시끌벅적 잔칫집 같았습니다. 벼베기를 해야 할 탈곡기도 오고, 추수를 도와줄 마을 어른들도 오셨습니다.  웅이 엄마는 새참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음식을 푸짐하게 마련하여 동네 어르신들을 대접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늘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눈을 부시게 하고, 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진홍색으로 변해 눈을 따갑게 하였습니다. 마당 가마솥에선 햅쌀로 지은 밥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호박을 썰어 넣은 부침개 냄새는 코와 위장을 자극해 꼴딱꼴딱 침을 삼키게 하였습니다.

  음식 냄새와 일손을 거들러 오신 동네 아주머니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웅이네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웅이는 꽥꽥이에게 달려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얘기해 주고, 오늘 벼베기를 하여 집에서 잔치를 벌인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좀 소란스러워도 참고 조용히 있어달라고 하고는 곧바로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어느덧 해가 산중턱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웅이 아빠와 일꾼들이 추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동네 어르신들도 한 분 두 분 웅이네 마당으로 모이셨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한가득 차려졌습니다. 어르신들은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시고는 입을 벙긋벙긋 하셨습니다.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웅이 엄마!”

  “수확한 거 모두 팔아야 되겠는걸.”

  “아, 대풍년 잔치는 풍성해야 해. 우린 고맙게 먹으면 되고. 하하하!”

  “어르신들이 도와주셔서 올해는 대풍년입니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음식이니 많이들 드세요.”

  웅이 아빠가 어르신들에게 막걸리 한 잔씩을 따라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제일 어르신인 숙정이네 할아버지는 어째 오시질 않았나?”

  “어휴, 그 어르신 말도 꺼내지 말아요. 웅이 아범이 논농사 지은 오리 한 마리를 내놓지 않는다고 단단히 화가 나셨어요.”

  “웅이 아범이 눈 딱 감고 한 마리 드리지 그랬어. 쯧쯧.”

  동네 어르신들은 웅이 아빠를 나무라듯 혀를 찼습니다.

  “오리들을 잡아먹으려고 키운 게 아니고요. 논농사를 같이 지은 우리집 일꾼인데, 어찌 잡아드시라고 내놓을 수가 있겠어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

  웅이 아빠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웅이는 아빠가 혹시라도 꽥꽥이네 가족 중 한 마리를 숙정이 할아버지에게 드리겠다고 하실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런데 단호한 아빠의 말씀을 듣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꽥꽥이에게 더욱 잘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꽥꽥이는 웅이 아빠가 볏짚을 깔아준 울안에서 따뜻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살도 포동포동 오르고, 털도 윤이 났습니다. 편한 생활 때문인지 허수아비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저녁 밥상에 웅이네 가족이 빙 둘러앉았습니다. 웅이는 햄이나 고기반찬이 없어도 김치와 장아찌만으로도 맛있게 밥을 먹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7시 저녁 뉴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 AI가 중국에서 발생하여 우리나라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수만 마리의 닭과 오리들을 폐사시켰고,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사람이 병원에서 혼수 상태입니다. 닭과 오리 등을 키우는 농가에서는 방역을 철저히 하시고, 조류인플루엔자가 걸리지 않도록 철새의 접근을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알과 닭, 오리 등은 익혀서 먹으면 감염이 안 되니 꼭 익혀 드시기 바랍니다.]

  뉴스에서는 닭과 오리가 있는 축사를 비춰주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고 닭과 오리들을 묻는 장면도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축사 주인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도 전달되었습니다.

  “작년에도 그러더니 또야! 축사 주인들이 또 곤액을 치르겠네.”

  “그러게나 말이에요. 통닭집들도 장사가 안 되어 부도가 나고 폐업한 집이 작년에도 꽤 많았는데…….”

  웅이는 뉴스를 들으며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엄마! 우리 꽥꽥이도 위험한 거야?”

  “글쎄다, 우리 오리들에게 별일이야 있겠니? 하지만 당분간 오리와 놀거나 특히 오리똥을 만지면 안 돼! 그리고 자주 손을 씻어야 해. 알았지! 웅이야.”

  “네, 엄마.”

  그때 문밖에서 “으흠!” 하는 헛기침소리가 들렸습니다. 윗집에 사시는 숙정이 할아버지가 오신 것입니다.

   "어서 오세요. 저녁은 드셨나요? 드시지 않았으면 들어오세요.”

  “아! 내가 온 것은 밥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이 집에 있는 저 오리들 때문에 왔어."

  “어르신, 그 오리들은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에끼, 고얀 사람! 내가 오리를 달라고 온 것이 아니라, 방금 뉴스를 보니 조류인플루엔자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는 말씀이야. 그래서 이 집에서 키우고 있는 오리 때문에 우리 동네도 위험에 처할 수가 있단 말이지. 병이 생기기 전에 저 오리들을 내다 버리던가, 폐사시키란 말일세. 내가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니 그리 알게.”

  “네에? 어르신, 저 오리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요.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자네가 어떻게 알아? 병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를……. 어찌됐든 나는 저 오리들 때문에 오늘 밤부터 잠을 못자겠어.”

  “어르신, 절대 그렇게는 못합니다.”

  “어허, 이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듣네! 몹쓸 사람 같으니…….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동네 사람들은 죽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는 거로군.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서 우리가 이사를 가던지, 아니면 웅이네가 이사를 가던지, 결판을 내야 되겠어!”

  숙정이 할아버지는 꽥꽥이네 가족들을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시고는 휑하고 돌아서 나가셨습니다.그 날 밤, 웅이 아빠는 걱정이 되어 한숨도 못 주무시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날이 밝자, 웅이 아빠는 마을 회관에 모여 있는 동네 어른들을 찾아뵙고 의논을 드리기로 마음먹고는 맛있게 익은 홍시를 한 아름 안고 마을회관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모여 있던 동네 어른들이 웅이 아빠를 보고는 슬금슬금 일어나 신발을 신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르신들, 왜 그러세요?”

  “웅이 아범, 우리도 조류 독감인가 뭔가 하는 게 걱정되네. 그러니 얼른 오리들을 치워버리게. 홍시는 다음에 먹을 테니.”

  하고는 모두 자리를 뜨셨습니다. 그 후로부터 웅이네 대문 근처에는 동네 사람들이 얼씬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따라다니면서 설명을 하고, 사정을 해도 마을 사람들은 냉담하기만 하였습니다. 웅이와 같이 놀던 아이들도 웅이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풀죽은 웅이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진 엄마가 아빠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셨습니다.

  “웅이 아빠, 아무래도 오리들을 처분해야겠어요.”

  “어떻게 처분을 해!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어요. 어차피 폐사시키던가, 버려야 되는데, 어찌 내 손으로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나!”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 손으로 죽이지는 말고, 오리들을 먼 곳에 풀어놓으면 어디론가 살길을 찾아 떠날지 모르잖아요.”

  “어휴, 사람의 도리가 이래선 안 되는데…….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돼! 어찌 이런 일이…….”

  웅이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웅이는 아빠에게 꽥꽥이네 가족을 버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서 울었습니다. 아빠는 알았다는 듯이 웅이의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웅이는 꽥꽥이에게 달려가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너희들을 버리라고 하였으니 병에 안 걸리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웅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웅이 아빠는 오리들을 트럭에 싣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리들은 꽥꽥거리면서 안절부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 가려고 버둥거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웅이 아빠의 트럭은 한참을 달려 어느 한적한 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허둥지둥 오리들을 풀어놓은 웅이 아빠는 황급히 트럭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셨습니다.

  오리들은 트럭을 좇아 뒤뚱뒤뚱 뛰기 시작하였으나, 달리는 트럭을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꽥꽥이는 웅이를 찾았습니다.

  “꽥꽥, 웅이야! 꽥꽥.”

  꽥꽥이는 목놓아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몇몇 오리들은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개울로 뛰어들어 헤엄을 치고, 물고기도 잡아먹으며 좋아라고 하였습니다.

  “야, 꽥꽥아! 슬퍼할 것 없어. 실컷 일만 부려먹고 버린 사람들이 뭐가 그리 좋으냐? 죽도록 일만 하고 사느니, 우리끼리 자유롭게 사는 게 난 더 좋다. 그러니 울지 마.”

  오리들은 그동안 웅이네 논에서 힘들게 일했던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꽥꽥이는 웅이와 헤어진 것이 무척이나 슬펐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날씨는 추워졌습니다. 오리들은 서로의 몸을 부비며 추위를 견뎠습니다. 밤새 하얀 눈이 내리더니, 개울물마저 얼어버렸습니다. 오리들은 먹을 것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굶어 죽는 오리가 생겼습니다.

  웅이 아빠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나, 추위를 피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꽥꽥이는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웅이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꽥꽥, 나는 도저히 여기서 못살겠어요. 웅이를 찾아가렵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꽥꽥, 거기가 어딘 줄 알기나 해? 그리고 우리를 버린 사람을 찾아서 뭣 하게!”

  “야, 가다가 죽겠다. 그래도 여기 함께 모여 있는 게 좋아.”

  “아니에요. 웅이 아빠가 우리를 버렸지, 웅이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꽥순이가 일어나더니 꽥꽥이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도 갈게. 여기 있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인걸.”

  “그래, 가자.”

  꽥꽥이와 꽥순이는 웅이를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눈이 쌓인 길은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걷고, 또 걸었습니다.

  밤이 오고, 또 아침이 되었습니다. 꽥꽥이와 꽥순이는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배고프면 눈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발톱이 빠질 정도로 발바닥이 아팠습니다. 꽥순이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습니다.

  또다시 밤이 되었습니다. 찬바람이 휭휭 불었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지친 꽥꽥이와 꽥순이는 길가 논에서 눈을 부치기로 하였습니다.

  “꽥꽥아, 죽으면 안 된다. 어서 일어나!”

  꽥꽥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눈을 못 뜨게 방해를 하였습니다. 꽥꽥이가 안간힘을 쓰면서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간신히 눈을 떴습니다.

  허수아비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허수아비의 옷은 모두 찢겨 있었습니다. 머리에 썼던 밀짚모자는 없어져버리고, 머리 부분은 터져서 볼품이 없었습니다.

  “꽥꽥아, 정신이 드니? 여기엔 왜 왔어. 그 꼴은 뭐고.”

  "꽥꽥, 우리가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전염병에 걸릴까봐 웅이 아빠가 내다 버렸어요. 흑흑.”

  “조류인플루엔자가 뭔데? 너희들도 병들었니?”

  “아니에요. 우리는 병에 걸리지 않았어요.”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너희들을 왜 버렸을까? 내년 농사를 지으려면 너희들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데 아저씨는 왜, 그 모양이에요?”

  “나, 나란 존재는 한철 농사 때만 쓰려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건데 뭐.”

  “아니, 여름 가을 내내 새를 쫓아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버린다고요?”

  “그래, 사람들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실컷 부려먹고는 필요없으면 버린단다.”

  “이제 보니 사람들은 참 나쁘네요. 자기네가 필요하면 잘 해 주고, 필요없으면 버리니까요. 참, 꽥순아, 일어나.”

  그제서야 꽥순이 생각을 하고 꽥꽥이가 불렀습니다. 꽥순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몸은 차갑게 얼어 있었습니다.

  “꽥꽥, 꽥순아, 죽으면 안 돼! 일어나.”

  얼어 죽은 꽥순이를 흔들며 우는 꽥꽥이를 허수아비 아저씨가 달래주었습니다.

  꽥꽥이는 허수아비 아저씨와 웅이네 논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서 마음 편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저씨, 나하고 같이 떠나요?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서 살아요.”

  “그래, 나도 떠나고 싶단다. 그러나 발이 하나뿐이라,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야.”

  “꽥꽥, 내가 도와드릴게요.”

  허수아비 아저씨는 땅에 깊숙이 박고 있던 한 발을 끙끙거리며 들어올렸습니다. 꽥꽥이가 도와주었습니다. 힘이 약한 꽥꽥이와 허수아비 아저씨는 꽥순이를 땅에 묻어주지도 못하고 작별 인사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성하지 못한 다리와 몸을 이끌고 뒤뚱뒤뚱 논을 빠져나갔습니다.

  꽥꽥이와 허수아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픈 상처로 인해 생긴 깊은 한숨을 논에다 버리고 가듯이……. 웅이 아빠가 버리고 떠났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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