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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심전심
2014-01-15 11:03:43
sws60

조회:1112
추천:72

(단편) 이심전심

신외숙

 

 

한때 악녀 드라마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흔한 장희빈 말고 도덕관념은 고사하고 악과 술수로 똘똘 뭉친 인간 악마. 요즘 그와 비슷한 드라마가 TV 영상물을 마구 흐리고 있다. 막장 드라마는 한 술 더 떠 정상적인 가정은 도외시 한 채 완전 실패작만을 내놓고 있다. 돈과 명예만을 최상의 가치로 설정해 놓고 그 이외의 것은 아예 평가절하 하고 있다.

 

어떤 악녀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부와 명예를 쫒아 질주하는데 이상한 건 그런 악녀일수록 머리 회전이 빠르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게다가 미모까지 갖추었다. 악은 교활하기도 하지만 지혜롭기도 한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나는 결코 선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악인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악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피해의식이 강해 나도 모르게 악쪽으로 기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소심한 편이지만 결정적 인 순간에 이르면 냉혹해진다. 마음속에 칼자루를 쥐고 상대의 마음을 향해 돌진하기 때문이다.

 

내 직업은 상담사다. 심리학 공부할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임상심리사가 되고 보니 후회할 때가 많다. 진즉에 피드백을 했어야 했는데 그 원수 같은 놈의 돈이 없어 포기한 게 여간 후회되는 게 아니다. 상담을 하면서 마음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내담자의 말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휘말려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상담할 때 경험이 통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심리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상처의 내용과 자라온 환경, 성격이 비슷하다 해서 같은 방법을 적용했다간 엉뚱한 결과가 나타나 낭패 보는 일이 허다하다.

 

나는 아직 초보 단계를 띤 걸음마 수준이라 그런지 상담하다가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번은 한참 상담 중인데 내담자가 갑자기 내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발생했다.악과 분노로 충천한 내담자가 가해자에 대한 화풀이를 상담자에게 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경우였다.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가해자나 피해자나 사람은 똑같이 악하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사실은 상처와 학대는 대물림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됐을 때 알코올 중독자가 될 확률이 70 퍼센트다. 성 중독, 도박 중독도 마찬가지다.

 

통계에 의하면 알코올 중독자는 250만 명에 육박하며 도박중독자는 350만 명이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그렇다. 성중독자는 앞의 숫자를 훨씬 상회한다. 그 이외 일중독, 쇼핑중독, 종교중독, 돈 중독을 합치면 과연 중독자가 아닌 경우는 얼마나 될까.

 

중요한 건 누구나 중독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악하다.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다. 창세 이래로 인간은 각종 범죄에 노출된 채 악마의 노리개처럼 살아왔다.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악해진다고 말한다. 또 민심은 천심이라고 한다. 또 다른 말로 동심은 천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 말이 맞다면 인터넷에서 툭하면 불거지는 청소년 범죄와 초등학교에서의 폭력과 왕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잔인하기로 말하자면 고대는 더했다. 사람을 죽이는 갖가지 방법만 해도 그렇다. 고문 기술 또한 현대 못지 않다. 오히려 더 악마적이고 인격 자체가 없었다.

 

세상이 좋아져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화가 발달하고 온 세계가 하나로 통하면서 오히려 인권은 상승한 셈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에서 일어나는 여성 학대 등 아동 노동 착취 등에 대해 온 세계가 공분하고 있는 걸 보면 현대야 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3대 악녀 중 하나인 달기라는 왕비는 악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 백성을 숯불이 피어오르는 철봉 위로 걸어가게 했다. 걸어가다 떨어지면 숯불에 이글이글 태워져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좋아서 깔깔대고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왕은 그녀의 즐거움을 위해 철봉 위에 기름을 발라 일부러 떨어뜨리게 했다. 달기는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웃고, 사이코 패스의 극치다.

 

그러고 보면 측천무후는 그녀보다 양호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측천무후는 권력을 잡기 위해 자신의 딸을 스스로 목 졸라 죽인 뒤 왕비가 죽인 걸로 뒤집어 씌웠다. 자신의 딸을 귀여워하는 왕비를 내쫓은 것도 모자라 끓는 가마솥에 삶아 죽였다. 비슷한 방법으로 정적을 무수히 참하고 독재를 행했으나 정치는 잘 해 백성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악의 승리를 놓고 신의 존재여부를 따지며 인과응보를 부정하기도 한다. 일테면 유태인 600만 명을 살해한 나치 독일의 경우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여겼던 유태 민족은 나치의 가스실로 실려가 잔혹하게 죽임 당했다. 때로는 생체 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일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대동아 전쟁 때 우리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차출해 갔고 처녀들은 정신대로 데려가 유린했다. 뿐인가. 시인 윤동주조차 생체실험 즉 마루타가 되어 희생당했다. 그런데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의 반역자 역할을 했던 친일파는 지금까지도 영달을 누리는 것이다.

 

선과 악의 결과는 때때로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 모양이다. 그래서 신의 존재 여부와 권선징악의 논란거리가 되는 것이다. 여러 심리학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엄밀히 말해 사람에게 희생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음의 동기가 먼저 출발하는 것이다.

 

상담 도중 욕설을 퍼붓는 것보다 더 황당한 건 포옹이나 키스를 원하는 것이다. 이는 주로 여자 내담자들이 남자 상담자들을 향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외국에서는 이를 일부 허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진 금기사항이다. 또 한가지 우울증 환자를 상담할 경우이다. 상담하는 동안 절대 자살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다.

 

만일 상담 도중 자살이 발생할 경우 유가족이 찾아와 상담일지를 요구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건 보통 고난도의 작업이 아니다. 상담할 때 첫째 조건이 진실성 문제이다. 자신을 자꾸 포장하고 모든 원인을 가해자에게 돌리며 책 임 회피를 하면 치유가 난망해진다.

 

대학 시절 내적치유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강사가 말했다. 치유가 더딘 것은 환자 대부분이 위로만 받으려고 할뿐 회개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충분히 원인제공을 했음에도 모든 걸 가해자 탓으로 돌리는 바람에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처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랑과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때로 집착으로 변하여 갖은 꼴불견을 나타내는데 퍼내도 퍼내도 끊이지 않는 갈증과 같은 것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색이 있다. 겉으로는 천사인 척 행동하면서 속에는 인정욕구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가 이에 속한다.

 

그런데 우스운 건 상담자 자신도 과거의 상처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치유가 덜 끝난 상태에서 상담자들은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 스트레스를 감당 못해 우울증에 빠진 경우도 있고 정신병동에 입원한 케이스도 있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은 우리 상담자들을 참 많이 힘들게 한다.

 

작년에는 상담자가 자살한 경우가 있었다. 그녀 내면에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가 있었다는 소문이었다. 대부분의 상담자들은 혹독한 과거의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도 치유 받고 동병상련이라고 같은 상처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스스로 상담사로 뛰어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떤 기술적 차원으로 접근하는데 공감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치유는 일어난다. 한가지 명심할 것은 어떠한 경우에서든 상담사는 냉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에 말투나 행동으로 보아 쿨해 보이는 상담사가 있었다. 그녀는 환자를 상담할 때 스킬을 가지고 했다.

 

밝고 명랑해 보여도 안에는 냉담함이 감정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그녀는 자기 감정 상태에 둔하고 상대의 감정과 과거 캐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그녀는 상담사들 가운데서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우선 인물이 반듯하고 몸매가 환상적이리만치 아름다웠다.

 

친절하고 매너도 좋았다. 내담자들은 은근이 그녀를 선호했다. 빼어난 미인이 상담해 주는 걸 은근히 좋아했다. 그녀에게는 다분히 성적 매력도 돋보였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어느날 그녀의 모습이 상담소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무 연락도 없이 무단 결근한 것이다. 그리고 핸드폰도 놓아둔 채 어디론가 급박히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빈 책상 위에는 핸드폰만 보일 뿐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K라고 해두자. 그녀는 잠적하기 며칠 전 농담처럼 말했었다.

“난 이제 이 직업이 지긋지긋해, 내담자를 두고 늘 과거로 여행이나 떠나고 감정이입 되는 것에도 신물이 났어, 이젠 나도 온전히 나이고 싶어, 아니 난 탈아(脫我) 하고 싶어.”

 

처음엔 단순한 스트레스로 보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근무 중에도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몰래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웬만큼 힘들지 않으면 자신의 신상에 대해 말을 아낀다.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사생활에 대해선 항상 노코멘트였다.

 

그에 앞서 그녀는 항상 인정욕구에 시달렸다. 외모 치장에도 지나칠 만큼 신경을 썼고 남보다 인정받기 위해 갑절의 노력을 기울였다. 애정결핍과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중적인 인격구조를 형성한다.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이나 결점을 결코 내보이는 법이 없다.

 

오히려 자신 안에 있는 단점을 선과 의로 포장해 내놓는데 이것이야말로 위선이다. 즉 가면을 쓰는 것이다. 그들은 웬만해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항상 친절모드로 일관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쓸 뿐이다. 그를 위해 외모 가꾸기는 물론, 선심공세와 함께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들의 사고(思考)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항상 민감하다. 원하는 부분을 채워주고 나서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딱 한가지다.

그래 너밖에 없어.

 

겉으로 보기엔 천사 같지만 내부는 위선과 교만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들은 자기가 한 선행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상대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분노를 터뜨리며 여기저기 발설하고 다닌다. 그러다 막상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면 태도가 돌변한다. 천사인 양 의인인 양, 기고만장 안하무인 교만의 선봉이 된다.

 

그때부터는 자랑하러 다니느라 바쁜 세월을 보낸다. 인터넷 사이트와 SNS는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다. 그들은 인정받는 순간에도 더 많은 인정욕구에 시달린다. 여왕처럼 군림하고 싶어 하고 사랑을 독점하고 싶어 안달을 한다. 내 가까운 지인(知人) 중에 그와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녀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쳤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에겐 그에 걸맞는 외모와 능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볼품없는 외모에 궁색한 집안에 가진 거라곤 건강한 몸뚱이뿐이었다. 또 한가지 있다면 헤픈 마음이었다. 정(情)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툭하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밥을 사면서 인정을 베풀었다.

 

집에서 김치를 담그면 지인들에게 퍼주기에 바빴다. 그런데 우스운 건 그 대상에서 나만 빠져 있는 것이다. 온갖 도움은 내게서 받으면서 정작 호의는 다른 데로 돌린다. 그녀는 나이 삼십이 넘자 결혼하고 싶어 안달을 했다. 누군가 나타나 자기 하나만을 사랑해 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여건상 쉽지 않았다.

 

남자들이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그녀의 욕구를 채워줄 리 만무였다. 다급해진 그녀는 닥치는 대로 선을 보기 시작했다. 외모 학력 집안을 가리지 않았다. 오직 자기 한 사람만을 사랑해 준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선을 보던 중 드디어 한 남자에게 뽑혔다.

 

그 역시 만나는 여자마다 퇴짜를 맞아온 인상이 험악하고 인상만큼 살아온 인생이 굴곡진 남자였다. 그는 여자에게 관심의 표시로 자주 전화하고 선물공세를 펼쳤다. 여자는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구나. 여자는 진정 행복했다. 어느 비오는 봄날 저녁이었다.

 

남자가 술에 취해 말했다. 오늘 나와 함께 밤을 지내자고. 여자는 겁도 없이 덜컥 몸을 맡겨버렸다. 마음과 미래와 함께 송두리째 하룻밤 새 몽땅 맡겨버렸다. 생리적인 욕구가 급했던 남자는 몇 번 밤을 보내고 난 뒤 점차 여자에게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발을 빼려고 하자 여자는 더욱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어떻게 붙잡은 사랑인데— 여자는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여자에게 남자는 처음이었고 이미 뱃속에는 어린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남자는 결혼이야기만 나오면 뒤로 빼더니 급기야 이별 통고를 했다. 여자는 울며불며 매달렸다. 뱃속의 아기를 봐서라도 이별만은 안 된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의 뺨을 후려치며 말했다.

 

“누가 니 맘대로 애를 가지래?”

남자는 고심 끝에 억지로 웨딩마치를 올렸다. 신혼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툭하면 주먹질에다 외박을 밥 먹 듯했다. 여자는 남편의 여자 문제를 붙들고 늘어졌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남편이 일만 끝나면 게임장이나 도박장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이면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했다.

 

자식들이 태어나도 본체만체 했다.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월급만큼은 아내 통장으로 곧바로 입금하는 것이었다. 꼴에 가장이랍시고 아내와 자식들의 생일은 꼬박꼬박 챙겨주면서 온갖 생색을 다 냈다. 살다 보면 꼭 흐린 날만 있는 건 아니어서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아이들의 대입시가 코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그쯤 그녀는 아이들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다니고 있었다. 음식점 알바와 마트 계산원과 요구르트 배달원, 심지어 병원 청소까지 했다. 알바를 다니면서 그녀가 하는 또다른 일은 잘생긴 남자만 나타나면 넋을 잃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떤 여자인지 모르지만 좋겠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랑 사는 여자는 얼마나 팔자가 늘어졌을까.

 

늘 술과 도박에 미쳐 사는 남편은 외모가 거의 범죄인 수준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찌나 인상이 사나운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미리 질겁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자 다른 남자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일을 하다가도 잘생긴 남자만 보면 갖은 친절을 베풀었다.

 

커피를 타주면서 식사대접을 하겠다며 넌지시 운을 떼 보기도 했다. 저런 남자랑 일주일만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다. 그녀는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대리충족 욕구에 시달리며 매달렸다. 남자들은 처음엔 한두번 데리고 놀 요량으로 받아주었지만 이내 싫증을 내고 돌아섰다. 그녀에겐 애정결핍 증세가 병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중독에 빠진 남편에게서 그녀가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 차리고 보면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자식들은 공부한다며 엄마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점차 자라면서 엄마를 무시하기까지 했다. 남편이 했던 것처럼 아이들도 닮아가고 있었다.

 

그럴진대 그녀는 사랑에 대한 욕구충족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타나 자신의 빈 가슴을 채워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밤낮없이 미친 듯이 돌아다녔는데 사랑해 주는 남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내가 말했다.

 

“니 남편도 너를 그렇게 사랑해 주지 않는데 왜 남의 남자에게 가서 사랑을 구걸하고 매달리는 거니?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니?”

내 말에 그녀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넌 여적 결혼을 못 한 거야.”

이 망할 년이……….

 

나는 간신히 그 말을 목 안으로 삼켰다. 그리고 나서 속으로 말했다. 남의 남편이나 바라보면서 집안 꼴 잘 되겠다. 너나 니 남편이나 꼭 같다.

희한한 건 사랑욕구에 시달리는 사람치고 제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특징은 남의 속만 들여다봤지 정작 자신은 살피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결코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에겐 어떤 반성이나 회개도 없다.

 

 

K가 사라지고 나자 우리 상담원들은 일종의 패닉상태에 빠졌다. 정신병동에 가면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들도 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멀쩡한 사람 상대해도 미칠 것 같은 세상인데 정신이 회로에서 이탈된 사람들을 놓고 하루종일 씨름을 하니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과 상담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정신상태를 놓고 몇 단계로 나누어서 체크한다. 모두들 K가 사라진 이유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최악의 경우 모두 말은 안 했지만 자살도 염두에 두고 있는 눈치였다. 또다른 경우로 납치 살해까지 생각했다. 묻지마 범죄가 극성을 부리는 험악한 세상이다.

 

그런데 왜 생각은 항상 최악과 부정적인 경우만 상정하게 되는 걸까. 그녀에 대한 신상정보는 따로 없었다. 학위증과 자격증이 전부였다.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지인관계나 가족관계, 특히 어린 시절 이야기는 한번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좀처럼 자기 속내를 말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유달리 과시욕이 강하고 인정욕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경쟁심도 은근히 많아서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녀가 말없이 사라진 걸로 보아 조만간 복귀할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자리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녀의 소지품과 일했던 자료들을 일단 보관한 뒤 수소문에 나섰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K의 부모는 미국에 체류 중이었는데 소재가 불분명했다. 이혼했다는 말도 있고 별거중인지 전혀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그녀의 하나뿐인 남동생은 군에서 장교로 복무 중이었는데 따로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었다. 위관급이라 자주 부대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열어서 지인들에게 연락을 시도하려 했지만 비밀번호를 알 수 없어서 그마저 불가능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그녀는 쉽사리 직장을 그만 둘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핸드폰까지 두고 사라진 걸 보면 모종의 암시를 뜻하는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혹시 남모르게 빚을 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빚쟁이들이 회사로 안 쳐들어올 리가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녀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지나갔다.

 

직원들은 점점 두려운 암시에 사로잡혔다. 혹시 혹시? 그 뒤에 따라 나오는 단어는 역시나 자살이었다. 그동안 그녀를 찾는 전화는 한 통화도 없었다. 언젠가 그녀가 하는 통화를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었다. 분명 남자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대화 내용으로 보아 뭔가 일이 다급한 것 같았다.

“제발 이번 한번만요, 저를 믿어 주시면 안돼요? 전 지성씨뿐이라고요, 절 안 믿어주시면 전 어쩌라구요.”

 

그녀는 전화를 끝낸 뒤 한동안 숨죽여 울었다. 뒷모습이 어찌나 불쌍한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나왔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자세였다. 남의 사생활에 함부로 끼어 들 수도 없고 그냥 지나쳤는데 날이 갈수록 표정이 초췌하게 변해 갔다. 그 이후에도 그런 식의 전화 통화를 여러번 들을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였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아예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온 지도 모르고 그녀는 제 감정에 들떠 마구 지껄여대고 있었다.

 

“그래 니 맘대로 해, 나도 지쳤어 더 이상 붙잡지 않을게. 하지만 너라는 인간에게도 양심이란 게 있다면 반드시 후회할 날이 있을 거야. 하긴 신이 존재한다면 너 같은 인간을 그냥 놔둘 리 없지. 세상엔 인과응보란 법칙이 있잖아. 그래야 너 같은 쓰레기 같은 인간도 심판을 받지. 뭐라구? 용서? 용서 좋아하시네, 너도 이 담에 나 같은 딸 낳아서 똑같이 당해라.”

 

내용으로 이번 남자는 이전의 경우와는 다른 것 같았다. 전에 통화한 사람은 경어를 사용했고 매달리는 형국이었다면 이번 경우는 심각한 피해나 배반을 당한 경우가 틀림없었다. 저주성 발언이 마구 쏟아지는 걸 보면 정신적 경제적 폐해(弊害)일 게 뻔했다. 어쩌다 저런 미인한테 그런 일이 발생했단 말인가.

 

그녀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환상적이리만치 미모였다. 약간 공주병이 심각해서 그렇지 몸을 함부로 굴리거나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할 여자도 아니었다. 하긴 남녀 사이의 문제를 누가 알겠는가. 얼굴은 침울해도 그녀는 본연의 임무인 상담만큼은 언제나 스킬로 임했기에 직원 중 어느 누구도 그녀의 사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 표정과 통화 내용을 두고 소설을 써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측과 추리는 우리의 직업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사에까지 적용한다는 건 무리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소설을 써대며 그녀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어떤 기대감과 호기심을 가지고서. K가 사귀는 남자는 도대체 몇 명쯤 될까. 직업은? 외모는? 나이와 학벌은? 그녀와 교제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된 걸까? 설마 결혼약속까지?

 

잠은 잤을까? 몇 번이나? 그러다 남자가 싫증나서 돌아선 건 아닐까? 그래서 울며불며 매달리다 안 되니까 강짜 부린 건 아닐까. 누가 먼저 유혹했을까. 하긴 K정도의 몸매라면 남자들이 환장할만도 하지. 특히 둔부 부분은 섹스어필 그 자체 아니던가. 그래서 K는 항상 스키니나 레깅즈 따위를 즐겨 입지 않았던가.

 

덕분에 야코 죽은 건 내가 아니었던가. 난 몸매가 S라인은커녕 완전 통나무 수준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그녀와 내 몸매는 완전 극과 극 수준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성격과 달리 사랑과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편이 아니라 마음 관리를 잘 하는 편이었다. 시기 질투가 심해도 인정받기 위해 목숨 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위장술에 천재인 그녀도 도저히 견딜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내게 다가와 숨죽여 가며 말했다.

“전 앞으로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현재보다 더 중요한 건 미래에요, 현재보다 미래에 집착하며 삽시다.”

그녀는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더니 말했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이제I 생각났어요.”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난 너무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누가 너가? 말하려다 나는 간신히 참았다. 순간 불신했지만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순전히 스킬로 상담에 임한다는 것도 내가 내린 결론이고 판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야말로 내가 배운 이론대로 그녀를 판단하고 멸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녀의 말이 나를 긴장시켰다.

 

“이젠 나도 나를 제자리로 되돌리고 싶어.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되찾고 싶어.”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진실이다. 잘 모르지만 무언가에 잔뜩 쫒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은 건 순전히 직업에서 오는 일종의 감(感)이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동안 새로운 상담사를 뽑지 않은 것도 암묵적인 동의하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기적처럼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어색한 표정으로 나타난 그녀는 자기의 자리를 확인하고는 보일듯 말듯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이 얼마나 얄미운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 자리 아직 그대로인 거예요?”

“다시 돌아올 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연락도 없이 너무 심했던 거 아냐? 최소한 연락은 했었어야 걱정을 안 하지,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낸 건데?”

“사정이 있었어요.”

 

“도대체 그 말 못할 사정이 뭔데? 한달 동안 무슨 급박한 일이 있었기에 아무 연락도 없었던 건데?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그동안 핸드폰도 없이 어떻게 지낸 거야?”

아동청소년 상담심리 담당하는 소현숙이 물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중독심리 상담자인 여형경이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새로 핸드폰을 샀거나 대포폰을 쓰던가 했겠지.”

“대포폰요? 말도 안 돼 제가 무슨 범죄자인가요.”

여형경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그게 아니고 그냥 지방에 머물면서 잠시 명상 좀 했었어요.”

“명상 좋아하시네, 자기가 명상할 성격이야? 거짓말을 해도 믿어줄 말을 해라.”

 

언제 나타났는지 소장이 말했다. 모두들 안심하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막상 그녀가 나타나자 모두 떫은 감 씹은 듯 표정이 냉랭하고 매몰찼다.

“죄송해요, 전 벌써 짤린 줄 알았는데…… 사실 오면서 제 자리는 이미 없어졌겠구나 생각했거든요, 다른 후임자가 와 있을 줄 알고…….”

“알았으면 앞으론 말썽 부리지 말고 근무 잘 해요.”

소장은 약간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고 난 뒤 K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선생님 저 사실은 그동안 여기저기 여행 다녔어요, 이따 퇴근 후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으세요?”

“네?”

 

그녀는 뭔가 신난 듯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러마고 했다. 퇴근하려면 아직 2시간 남짓 남았다. 그런데 K는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놓더니 계속 카톡을 했다.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어. 나는 자리에 앉아 한달 동안 있었을 그녀의 행적을 두고 머릿속으로 소설을 써내려갔다.

 

혹시 헤어진 남친과 재회를? 그러다 둘이서 밀월여행을? 아님 새로운 남친이 생겼을 경우도 있다. 워낙 인물이 좋으니까. 저렇게 신나하는 표정을 보면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그나저나 뻔뻔하기도 하지. 스마트폰까지 새로 샀으면서 도대체 연락은 왜 안 한 거야? 그냥 확 짤랐어야 하는 건데.

 

나는 속으로 볼멘 소리를 하다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5층 상담소 창밖을 내려다보면 도심의 풍경이 영상처럼 다가온다.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발걸음을 지상에서 지하도로 차도로 인도로 계속 옮기고 있었다. 빌딩의 전광판에서는 실시간 별로 뉴스를 타전했고 신호등에 따라 차량은 끊임없이 질주를 반복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현수막이 보수와 진보의 주장을 바람 따라 펄럭였다. 그런가 하면 도심 한쪽 끝에서는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이단 종파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전광판의 글자가 내 눈을 강타했다. 도심의 미세먼지 농도를 알리는 경계경보였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독한 병균까지 매달고서 한반도 상공을 더럽히고 있었다.

 

미세먼지는 암모니아와 탄소화합물 등 유해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너무 작아 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아 폐에 쌓인다. 이로 인해 폐질환과 뇌질환 및 암세포에 영향을 주는 악성물질이다. 세상이 진화할수록 공해도 수위를 높여가며 생명체를 위협하고 있다. 뿐인가. 인간사회에는 암적인 존재가 더욱 늘어나 연약한 심령을 초토화 하고 정신병의 발발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언젠가 교육방송에서 곤충들의 세계에 대해 본 적이 있다. 일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곤충들의 세계도 약육강식으로 이루어진다. 유충이 성충이 될 확률은 10% 미만이다. 도중에 천적에 의해 잡혀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곤충들은 종족보존을 위해 목숨을 건다. 그중에서 꿀벌들과 말벌들의 전쟁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꿀벌은 벌집을 만들어 꿀을 모은다. 안전한 곳에 꿀을 비축하여 유충들, 즉 자기 새끼를 보호하는데 그 역할은 일벌들이 감당한다. 벌꿀은 수천마리가 모여 유충을 돌보는데 어느날 천적인 말벌들이 나타났다. 말벌은 크기나 힘에 있어 벌꿀의 700배에 달한다. 말벌은 꿀벌이 사는 곳을 급습하여 일대 전쟁을 치른다.

 

수없이 많은 벌꿀들이 말벌들에 의해 쓰러진다. 그럼에도 꿀벌은 종족보존을 위해 끝까지 항거한다. 말벌들 역시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쟁을 치른다. 잔인한 말벌들은 꿀벌을 향해 사정없이 독침을 쏘고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처음부터 꿀벌과의 전쟁은 이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수천마리의 꿀벌이 말벌에게 초토화 되고 마지막 남은 일벌 역시 죽음으로 대항하지만 말벌을 이기지는 못한다. 마침내 말벌은 꿀벌들의 새끼들마저 잔인하게 죽이고 꿀을 탈취하여 자기 새끼들에게 양도한다. 종족보존을 위해 수천마리의 꿀벌들은 모두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적자생존 양육강식의 법칙은 여치와 연가시에서도 목격된다. 여치의 몸을 숙주 삼아 기생하던 연가시는 가장 잔인하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여치의 영양분을 모두 흡수하여 만신창이로 만든 뒤 겨울이 되면 여치의 뇌를 조종하여 강가로 이끈다. 여치의 항문을 통해 빠져 나온 연가시는 길게는 90센티에 이르는데 보통 4-5마리 정도다.

 

연가시는 강물로 들어가 겨울을 난 뒤 산란하는데 성공한다. 연가시의 알은 봄이 되면 또다시 여치의 몸에 들어가 온갖 영양분을 빨아 먹으며 기생한다. 연가시가 빠져 나가면 불쌍한 여치는 힘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연가시는 겨울 동안 긴 지렁이 형태로 한데 모여 사는데 모양새도 징그럽고 생존방법이 너무도 잔인해 토막 내 죽였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뻐꾸기나 원앙새가 남의 둥지에 제 새끼를 떨어뜨려 놓는 경우는 연가시에 비하면 그래도 신사적이었다. 연가시는 생물체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경우였다.

 

어찌 연가시 뿐이겠는가. 사람들 역시 연가시 못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죄악상이 연가시를 닮아 있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매춘 여성들을 지하에 가둬 놓고 착취하다가 불이 나자 도망도 못 가고 타죽은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 TV 뉴스에 방영된 적이 있다. 생명 경시 사상은 고대 중세에서 가장 극명하게 증명된다.

 

중세에는 사람을 병기 취급하여 오직 전쟁을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한 군주의 욕심에 따라 군사는 수없는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갓 태어난 생명조차 주인의 허락이 없으면 울다 죽는 경우가 많았다. 죄없는 수많은 인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경우는 얼마나 많았던가. 마녀 사냥이 그 대표적인 예다.

 

언젠가 심리학 교수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그는 심리학의 한계에 대해 역설했는데 아무리 심리학이 발달해도 심리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인간 본성이 악하고 상처가 계속해서 되풀이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게 상담하러 오는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에게 늘 맞고 사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원한에 몸부림치면서도 가해자인 남편에게서 떠날 생각을 못했다.

 

공포로 인해 가해자의 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녀는 젊은 날부터 남편에게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는데 세월이 가면 나아지겠지 하는 바람으로 살았다. 자신이나 되니까 남편이랑 살아주지 어떤 여자가 살아주겠냐며 여전히 남편에 대한 사랑을 염원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폭력을 써서 그렇지 사실은 남편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녀가 상담하러 오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해결 방법을 찾자는 것인지 내게서 남편에 대한 어떤 희망 섞인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상담자로서의 내 능력을 테스트 해 보겠다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나 나는 냉정을 유지해야 할 상담사였다. 화가 난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함부로 분노를 표출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상담할 때마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혼자서 계속 떠들다 돌아갔다. 내게는 말할 시간을 10분도 채 주지 않았다. 문제는 그녀의 이야기가 전혀 논리에 맞지 않고 황당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맞아서 뇌에 치명적인 손실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 갈 정도였다. 상담 도중 내가 질문을 하면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하거나 게임을 시도했다. 넌 떠들어라. 난 듣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도대체 왜 상담을 오는지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그녀가 노골적으로 싫어지면서 저의가 의심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피해자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교만과 아집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의 원인 제공자는 본인 스스로였다. 처음에는 상처받았다고 울고불고 하더니 나중에는 남편에 대한 험담과 욕설을 입에 달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충분히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에도 남편이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정을 지키기 위한 희생자라는 것이었다. 대화 도중 자신을 미화(美化) 하는 발언도 수없이 되풀이 했다. 대부분 어불성설이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지친 나머지 상담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다시는 안 왔으면, 그런데도 그녀는 시간만 되면 꼬박 꼬박 나타났다. 한번은 상담실에 들어서는데 표정이 밝았다. 남편이 잘해주는가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자기는 이제 남편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체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물었더니 애인이 생겼다고 했다.

오 마이 갓.

 

나는 기함해서 뒤로 넘어질 것 같았다. 체중이 거의 90킬로에 달하는 그녀는 얼굴도 몸매도 엉망이었다. 더구나 얼굴은 욕구불만으로 항상 부어 있었다. 어디서 만났느냐고 하니까 다단계라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녀와는 더 이상 상담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새 애인과 함께 콩볶듯 너무 행복한 모양이었다.

 

일 년이 지났다. 그녀는 완전히 풀죽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살이 엄청 빠졌고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바람핀 걸 남편에게 들켜 위자료 한푼 없이 맨몸으로 나왔는데 갈 곳이 없으니 나보고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서, 내가 저한테 바람피우라고 했나. 도무지 상식이 안 통하는 여자였다.

사이코 같은 년.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저러니 남편에게 얻어맞고 버림받았지. 그날 나는 그녀에게 돈 몇푼 쥐어 보내는 걸로 모든 걸 마무리했다. 그런데 창밖을 내다보는데 그녀와 인상이 비슷한 여자가 횡단보도를 건너 이쪽 건물로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니가. 아! 이게 웬 재수람. 나는 당장 몸이라도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핸드폰에서 문자메시지가 떴다. K가 퇴근 후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소장에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건물을 나와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갈 때였다. 조금 전에 보았던 그녀가 내 앞을 빠르게 지나 옆 건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 건물은 십자가가 달린 교회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죄에 찌든 영혼을 세탁하겠다고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순진한 한 젊은 목사가 시무하는 곳이었다. 신도 수는 잘해야 100명 정도? 짐작컨대 얼마 안 가 문을 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벌써 몇 년째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저 혼 빠진 여자가 왜 저곳으로 들어간담.

 

그것도 내 사무실과 가까운 저곳으로. 자리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리는데 K가 와 앉았다. 그녀는 반가운 기색으로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여전히 의심 반 멸시 반 섞인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에니어그램에서 나오는 성격 유형 중 2번 성격을 가장 싫어한다.

 

2번 성격은 내가 앞서 말한 애정결핍에다 사랑과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인정과 관심을 유도하기 때문에 얼마나 피곤한지 모른다. 직업 때문에 참고 지낼뿐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인간관계마저 참을 이유는 없다. 나는 몹시 피곤했기에 빨리 용무를 끝내고는 일어서고 싶었다.

 

“선생님 저 그동안 여행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언젠가 선생님께서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현재보다 미래에 집착하라고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요?”

이 여자가 그동안 잠적했다 나타나서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가. 짜증도 났고 긴장도 됐다. 온종일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는다.

 

“한 달 동안 잠적해 있다 나타나니 기분이 좋은가요? 다들 걱정해 주니까 존재감을 느끼나 보죠?”

나는 나오는 대로 마구 지껄였다. 그녀는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했다.

“선생님 의미요법 있잖아요, 전 여행 하면서 그 의미요법에 대해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어요.”

“자존감이 높아졌나 보군요.”

“여행하면서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어요, 난 어떤 존재인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난 왜 끝없이 사랑과 인정욕구에 시달리는가. 내가 달려가야 할 종착역은 어디인가. 생각하다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 거예요, 현실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동조를 구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풀어지고 있었다.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그녀에게 품었던 고정관념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세상에 마음처럼 간사한 건 없으리라.

 

“여행하면서 신문을 보는데 초등학생들의 폭력과 욕설에 관한 기사를 읽었어요,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은 게임 중독은 물론 욕설수준이 상상 이상이래요, 백약이 무효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새롭게 결심했어요, 아동심리학을 좀더 열심히 공부하자. 사람의 심리구조는 3세면 완성 되잖아요, 그러니까 어린시절의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뻔한 사실을 그녀는 강의하듯 말했다. 또 짜증이 울컥 솟았다. 이 여자가 도대체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가. 자기가 아동심리학을 공부하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제 친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술만 마시면 처자식에게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고 휘발유를 뿌리고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난리친 적도 많았어요.”

 

나는 놀라 뒤로 나자빠지는 줄 알았다. 그녀의 성격상 도저히 나올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번 성격은 자기의 허점이나 단점은 절대 노출시키지 않는다. 언젠가 그녀가 상담을 끝내고나서 몰래 숨어서 팩에 든 소주를 마시던 기억이 났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콩가루라고 불렀죠. 어릴 때 머리를 하도 많이 맞아서 정신이 한동안 나간 적도 있었어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고 몰매를 맞은 적도 있었어요. 여고 때였어요, 기관에서 운영하는 고아 아이들이 있었는데 선생님들한테 유난히 매를 많이 맞았어요. 보호자가 없으니까 마음 놓고 때리는 거죠. 선생님들은 입만 열면 사랑타령을 외워댔지만 그걸 믿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어요, 대학 때 몇 번인가 죽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어요, 엄마의 기도로 살아나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또 시도했었어요, 한동안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어요, 성당과 절에도 쫒아가 보았고, 암튼 세상풍파 많이 겪고 나니까 상담하는데 도움은 되더라고요. 제가 지금 선생님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죄송해요.”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보였다. 순간 마음이 짠했다.

“제 부모님은 지금 미국에 계세요, 아버지는 중독치료 중인데 거의 완치단계에 있대요, 엄마는 식당 레스토랑과 세탁소에서 일하고 계세요. 제가 상담사로 일하는 걸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몰라요. 사실 저 그동안 미국에 있다 왔어요, 죄송해요 속여서.”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왜 내게 하는 거죠?”

“사실 다른 분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요, 제 뒤에서 험담하는 거 다 알아요. 하지만 선생님은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어요.”

“핸드폰은 왜 두고 나간 건가요?.”

“급히 나오느라 그만, 출국 직전에야 알았어요, 이륙 직전이라 되돌아 올 수 없었어요.”

“그럼 언제 온다고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그게 사실은, 그냥 미국에서 눌러 살까 생각도 했었고 엄마랑 있다 보니까 너무 좋아서날짜를 기약할 수 없었어요.”

“그래 돌아오니까 어때요?”

“꼭 짤린 줄 알았는데, 설마 제자리가 그대로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요, 아무튼 너무 감사하단 생각뿐예요, 그리고 미국에서 부모님 만나고 오니까 마음이……… 지난 세월에 대한 원한이 다 씻겨진 것 같아요. 아빠가 많이 달라졌어요, 전혀 딴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전 이번에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전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걸, 그리고 인생의 참된 만족과 기쁨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실을. 이젠 사람들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그렇게 목숨 걸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진짜 만족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요.”

 

그녀는 눈물을 머금으며 또 말했다.

“전에는 용서가 쉽지 않았는데 이젠 잘 돼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커피잔을 들어 마지막 한모금을 마시는데 옆자리에 중년남녀가 와 앉았다. 체격이 거구인 중년여자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어머 선생님 상담사 선생님을 여기서 뵙네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아!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저 여자를 여기서 만나다니. 그러고 보니까 조금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 교회 쪽으로 들어가던…… 상담할 때마다 애를 먹여 다시는 보기를 원치 않았던 바로 그녀였다. 남편에게 맞고 살다가 다단계에서 애인을 만났다는.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이지러진 모양이다. 그녀가 나와 K를 번갈아 보더니 표정을 고쳤다.

 

“어머! 여보 인사드리세요, 제가 지난번에 말씀 드렸던 상담사 선생님이세요, 제가 무진장 속을 많이 섞이던.”

자세히 보니 남자의 외모는 출중한 편이었다. 중후한 중년으로 품위도 있어 보였다. 인상으로 보아 남의 여자나 후리고 다닐 것 같지 않았다. 하긴 인상을 어떻게 믿으랴만. 전혀 여자와 안 어울리는 언밸런스였다. 그렇다면 저 남자는 애인? 다단계에서 만났다는, 아님?

 

K가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선생님 내담자인가봐요.”

나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남자 모르게 내게 자꾸 눈짓을 했다. 빨리 일어나 나가라는 표시였다. 정말 기분 나쁜 여자다. 상담할 때도 그렇게 애를 먹이더니.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양복 차림의 신사가 그들 중년남녀 앞에 와 앉았다. 언뜻 보아 성직자 같은 인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저희가 따로 뵙고 말씀 드릴게 있어서요, 우선 차부터 시키시죠.”

목사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시츄에이션인가. 불륜남녀를 두고 목사가 왜? 나는 K의 팔목을 붙잡고 빠르게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상황을 눈치 챘는지 K는 멋쩍은 표정이었다.

 

“이야기는 다음에 만나 또 듣기로 하죠. 오늘은 내가 상담자이고 선생님이 내담자가 된 것 같네요.”

“그러게요, 선생님 오늘 고마웠습니다.”

 

K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는 마주 오는 택시를 향해 달려갔다.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왔다. 미진한 느낌이 자꾸 마음에 달라붙었다. 그러다 마음속에 울림이 있었다. 아! 조금 전의 그 중년 남녀들. 어쩌면 진짜 부부인지 모른다. 이혼했다가 재결합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이건 소설 치고는 좀 도가 지나친 건지도 모른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차도는 수많은 차량들로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거리는 미세먼지가 희뿌옇게 상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보도블록을 지나 차도를 건넜고 지하도와 인도를 지나갔다.

 

그중 몇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너 주차장이 보이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미세먼지는 내일 오후쯤이면 물러갈 거라 했다. 당분간은 마스크를 써야 할 모양이다. 고개를 숙이는데 재채기가 나왔다. 전철 역사를 향해 걷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지인(知人)이 울먹이며 말하는데 직직거리는 잡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냥 끊으려고 하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 아빠가 중독치료 프로그램을 받고 나더니 많이 달라졌어, 그렇게 사납던 인간이 이젠욕도 안 하고 말썽도 안 부리고 직장에도 잘 나가, 자기도 정신 차린 모양이야, 하긴 어쩌겠어 처자식 있는데 저도 살아야지. 요즘은 마누라한테도 아주 잘해요, 고마워 그동안 도와줘서.”

“내가 뭘 도와줬다고 참고 견딘 보람이 있는 거지.”

 

전화를 끊는데 마음속에 있던 돌무더기가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사람은 악하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사랑이라는 노력과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한때 사이코 패스 영화가 유행하던 적이 있었다. 인격을 상실한 인간 악마의 잔인함이 영상을 휘몰아칠 때면 관객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디 영화뿐이랴. 사이코 패스는 삶의 전선 어느 곳에나 숨어 있어서 순식간에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이중구조 아니 삼중 다중 구조를 가지고 있어 진실을 찾기가 어렵다. 어떨 땐 거짓을 놓고 해매다 진실을 발견하는 때도 많다. 그러나 이젠 그런 것조차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병든 심령일수록 사랑은 더 주효하게 작용할 테니까. 전동차에 발걸음을 드미는 순간 긍정적인 환상이 내 마음에 휘몰아쳤다.

 

전동차가 굉음을 일으키며 달리기 시작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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