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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나라 8탄. 너구리 주제에 명퇴라니
2013-12-21 13:31:25
reverend1

△목사(신학 및 문학석사)
△한국기독교목회자협회 대표. 초산발효과학기술개발원 원장.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자
△중편소설 『동이』
△저서 『인터넷시대의 영성과 레마선교회 비판』『청와대에도 별이 뜨는가』 『식초의 지존 금초』
조회:525
추천:78

8탄. 너구리 주제에 명퇴라니

 

남편 안경 씨의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현관문을 들어섰다. 벌써 안색이 반쯤은 썩어 있는 것이 산송장 행색이다. 얼굴에 어혈이 뭉쳐 있다가 부패하기 시작했는지 파랗게 질려 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싶어 아내 호수 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보, 안색이 안 좋구려. 회사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수?”

 

“아니, 별 일 없었소. 그저 좀 피곤해서 그러오.”

 

“그러면 따끈한 물에 목욕이라도 하시우. 저녁은 조금 이따가 해요.”

 

“그러리다.”

 

호수 씨가 재빨리 욕실에 들어가서 욕조에 급탕물을 받기 시작했다. 남편의 표정이 너무 어둡다. 회사 일을 집에까지 가지고 들어와서 식구들을 볶아 먹는 스타일이 아닌 남편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일이 생겼다는 것인데 과연 그 일이 무엇일까? 물의 온도를 맞추어 급탕 밸브를 고정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머리는 세계를 일주하며 남편이 왜 저리 되었을까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세계를 한 바퀴 돌고 일본 쯤 가서 있을 때에 급탕밸브를 고정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도통 이유를 찾아 낼 수가 없다. 하여 호수 씨는 남편의 기분을 봐서 물어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안경 씨의 얼굴을 다시 보는 순간 호기심은 주체할 수 없는 수준으로 호수 씨의 촉수는 안경 씨의 뇌수까지 침범해 들어가고 있다. 이 속에 대체 뭐시가 들어 있나 궁금해서이다.

 

“여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요. 궁금해서 못 견디겠어요.”

 

“.....”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되었는지 도무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쉴 때마다 구린 냄새가 확확 끼쳐 오는데 오장이 뒤집힐만한 수준이다. 숨을 멈추고 눈치 못 채게 고개를 슬며시 옆으로 꼬는 등으로 수단을 펴가며 간신히 참아낸다. 남편은 한숨을 땅이 꺼져라 하고는 몇 번인지의 푸악질을 해댄 끝에 겨우 입을 떼었다. 그 동안 호수 씨는 남편의 입을 바라보다가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명퇴자 명단을 제출하라는데 이번에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어머, 어머 너구리 주제에 무슨 명퇴람.”

 

“그러게 말이오. 아무래도 너구리 왕이 사람이 둔갑한 너구리 같단 말이오. 하는 짓 마다 인간 같은 짓을 골라서 하고 있으니 사람이 너구리로 둔갑해서 왕이 되었나 보오.”

 

안경 씨는 깊은 고민 끝에 진지하게 말했으나 이를 듣는 호수 씨는 틀림없이 웃어야 할 내용인데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어서 꽤나 힘이 들었다. 안경 씨가 아내를 힘끔 곁눈질로 보니 아내는 입을 쫑긋하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는 눈치가 역력하다. 아무래도 여자는 예감이라는 게 예사롭지 않아서 박수무당인 김 봉사 보다 더 잘 맞추곤 했다. 안경 씨는 자신도 모르게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웠다. 혹시나 악귀가 아내의 입을 오염시킬까 두려워서 내린 처방이었다.

 

“여보, 내일은 일단 출근을 하지 말아 봐요.”

 

“아니 이노무 너구리가 미쳤나. 그랬다가는 간당간당한 목이 당장에 짤리지. 허허 참. 아예 죽으려고 용을 쓰는구나, 용을 써”

 

안경 씨의 말에 부인의 꿋꿋한 얼굴이 잠시 샐쭉해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까지에는 딱 3초가 걸렸다. 1초는 샐쭉, 2초는 표독, 3초는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는 급방긋으로 돌아온 시각이다. 아내는 뽀얗게 웃으면서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노는 것도 좋은 일이에요.”

 

“그걸 누가 모르나. 놀고먹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지. 하긴 놀고먹기도 어지간히 힘든 일이라고 합디다. 놀고먹으려면 벌어 놓은 것이 있어야지. 쥐뿔도 없으면서 뭘로 놀고먹나. 이 마누라야”

 

“여보, 놀고먹는데 무슨 걱정이래요. 걱정하지 말고 그냥 놀고 싶은 만큼 놀아보세요. 다 수가 있어요.”

 

드디어 그 분이 임하셨나 보다. 안경 씨는 잠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주기도문을 외웠다. 아무래도 강한 주문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그 수가 대체 뭐요?”

 

슬며시 구미가 당긴다. 놀고먹으라니 이 보다 더 좋은 말은 세상천지에 따로 없는 말이다. 띵가띵가 하면서 놀고먹는 것 보다 더 냠냠한 게 어디에 있나.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잘 놀고먹다가 이 세상 이별하기 전 부울노초 먹는 것’

 

“내일 이침에 이야기 해 드릴테니 오늘은 푸욱 쉬세요. 여보 고생했어요.”

 

그녀는 짧은 혀로 거침없이 말했다. 그 밤은 달디 달았다. 호수 씨가 노라줘 라는 말을 안 했어도 원하는 것을 얻었다. 이윽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은근히 뒤가 켕기는 안경 씨가 호수 씨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어 본다.

 

“여보, 오늘 아침에 말해 준다며, 무슨 어마어마한 비결인지 말 해봐요.”

 

“당신도 참 비결은 무슨 비결이에요. 피곤하니 푸욱 쉬라고 한 말이에요. 별 뜻 없어요.”

 

“뭐야? 이런 닝기미”

 

안경 씨는 벌떡 일어나 후다닥 세수를 하고는 서류 가방을 옆구리에 착소리가 나게 붙이고는 냅다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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