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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시선이 닿는 곳에 2부
2008-08-04 11:50:40
sionsira

조회:1886
추천:127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대의 문턱 넘기를 실패한 딸이 공무원이 되겠노라 학원을 다닌답시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었으니, 어쩌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다 큰 계집애가 어딜 쏘다니다 이제야 기 들어왔냐고, 야단이라도 칠라치면 그럴 틈도 주지 않고 울상을 짓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밥도 안 먹고 종일 울기만 했으니 부모 속인들 편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아버지는 쪽마루에 앉아 담배연기를 뿜어대면서 한숨소리를 높이곤 했었다. 엄마는 모든 것이 당신의 탓인 냥, 당신이 딸자식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것인 냥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 그렇게 나의 이십대 초반은 어두운 그늘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토록 꿈꾸던 미대에 떨어지고 나자 모든 걸 상실한 사람처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뚜렷한 계획도 없이 사풍스럽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시기에 항상 나의 시선을 끄는 한 청년이 있었다.

학원을 마치고 나면 나는 민박집 딸로서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와야만 했다. 그 무렵 일행도 없이 홀로 여행을 온 청년이 있었는데 유난히 깊은 눈매가 내 시선을 자꾸만 잡아끌곤 했었다. 보면 볼수록 옴팍한 눈에선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연과 끌림이 느껴졌었다. 그러한 느낌들 때문이었는지 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긴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고, 청년과는 아침, 저녁 밥상을 날라다 주면서 ‘안녕하세요? 식사하세요.’ 라는 겉치레 인사만 고작 나눌 뿐이었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던 날 밤 배낭하나 달랑 매고 민박집을 찾았을 때는 하룻밤 정도 머물다 갈 손님인 줄 알았는데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도 떠날 생각을 좀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청년이 민박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여고동창생을 만나 거나하게 술에 취한 나는 아버지께 혼날까봐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솔밭을 거닐며 옷에 배어 있는 문뱃내와 술 냄새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다 쪽을 향해 서 있는 청년의 등을 보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에 다부진 어깨와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바닷바람이 좀 짭짜름하죠?”

“……….”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땀으로 젖은 남자의 가슴께가 벌렁거렸다. 그는 나를 보자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대꾸가 없는 그의 깊은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머뭇머뭇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변화의 잔물결이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빠른 속도로 요동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애써 냉정을 찾고 말문을 열었다.

 

“저기, 아저씨. 끄윽!”

“……….”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눈과 눈이 마주치자 마치 나쁜 짓하다 들킨 사람처럼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또 다시 얼굴이 후끈거렸다. 밤공기에 술이 깨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취해가는 기분이었다.

 

“아저씨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에요. ……, 딸꾹! 딸꾹!”

 

말을 해야 하는데 말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딸꾹질이 터져 나오자 그가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면서 킥킥킥 웃었다.

 

“혹시 묻고 싶은 게 이런 거 아니에요?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외진 데까지 왔느냐, 혹시 누군가에게 쫓기는 신세냐, 뭐 기타 등등 ………. 이런 거요.”

“저 그게 ……. 딸꾹!”

“지혜 씨 참 재밌는 사람 같아요.”

“왜 웃어요? 난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딸꾹. 왜요? 내 말이 웃겨요? 딸꾹! 아니면, 참!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아요?”

“알죠. 왜 모르겠어요. 아침마다 아주머니가 부르잖아요. 지혜야, 일어나. 세수해라. 밥 먹어라. 학원 늦겠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불러대는 이름이 지혜잖아요.”

“아하. 그렇지. 참.”

“지혜 씨, 잠깐 같이 걸을래요?”

“좋아요. 딸꾹! 나도 이대로 들어가면 아버지한테 혼나거든요.”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점퍼를 내 어깨에 덧씌워주었다. 바닷바람에 뜨겁게 달아오르던 열기가 식으며 한기가 나려던 참이었다. 몸이 온기를 되찾자 딸꾹질이 멈추는 듯했다.

 

“고마워요.”

나는 그날 밤 청년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백사장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서울.”

“뭐하는 사람이에요? 아저씨는?”

“그냥 백수예요. 놀고먹는 백수.”

“나랑 똑 같네. 나도 그런데. 휴! 난 요즘 힘들어 죽겠어요. 친구들은 다들 희망하는 대학에도 붙고 룰루랄라 신바람 나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 모양인지 ……. 속상해 죽겠어요. 엄마한테도 미안하구 …. 아빠한테도 미안하구 ….”

“지혜 씨는 무척 씩씩하고 건강해보여요.”

“제가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눈동자가 밤이슬에 젖은 풀잎처럼 촉촉하게 달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순간,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나의 궁금함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모래사장에 앉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몇 달 전에 전 형의 뼛가루를 바다에 뿌렸어요. 형은 제게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어요.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형이 저를 키우면서 아빠노릇까지 했으니까요. 형은 무척 똑똑하고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

 

그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달빛에 반사되어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 속에선 철썩거리며 부서지는 파도에 의해 멍든 것처럼 푸르스름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멍 하나 씩은 다 안고 산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는 그의 형이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던 모습을 잊지 못해 선바람쐬러 동해바다까지 왔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손잡고 형과 함께 이곳 모래사장에서 뛰어놀았다고, 그의 형이 곧잘 조개를 잡아주곤 했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무척 고통스럽다는 듯 잠시 동안 일그러졌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전 형 몫까지 살아야 해요. 그런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머리도 식힐 겸 이곳까지 온 거예요. 조카 둘을 남겨놓고 형수가 외국으로 떠났거든요. 형을 만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대학 선배와 함께 ……. 형이 내게 아빠노릇 했듯이 전 조카들의 아빠가 되어야만 해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3년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이런 제 사정을 알고 며칠 전 이별의 문자만 남겨놓고 말없이 떠났어요. ……. 이래저래 머릿속이 폭발할 것만 같네요.”

“여자 친구 정말 나빠요. 무책임해요. 한 남자를 사랑했으면 그 남자의 피치 못할 사정도 다 이해하고 받아들여야죠. 어휴! 진짜 내가 다 열을 받네. 그런 여자는 깡그리 잊어버려요. 새로운 사람 안 나타나겠어요? 짚신도 다 짝이 있다는데 …….”

나는 흥분해서 침을 튀겨가며 큰소리로 말하다 그의 시선이 내 눈동자에 꽂혔다는 사실을 안후에야 흥분을 가라앉혔다.

나는 손바닥부채질을 하면서 시선을 허공으로 옮겨갔다. 괜히 열을 올렸더니 얼굴만 더 화끈거렸다.

 

“지혜 씨 같으면 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하고 결혼할 수 있겠어요?”

“저야 뭐. 정말 사랑한다면 할 수도 있죠. 사랑하는데 ……, 사랑하면 못할 게 없잖아요. 사랑이란 그런 거 아닌가요? 모든 걸 함께 하는 거, 뭐 그런 거 …….”

 

내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그가 진지한 눈빛을 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피해 옷에 묻은 모래를 탈탈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들어갈까요?”

“아, 예. 그래요.”

“술이 다 달아난 것 같아요, 휴! …….”

 

그날 밤바다를 바라보며 나누었던 그와의 대화가 소리굽쇠의 파장처럼 내 가슴을 뒤흔들어놓았다. 그리고 그 파장은 날이 새도록 가슴에 여운으로 남아 쉽사리 사라지지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나는 여느 때와는 달리 일찍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선 이유 없이 마당을 서성거렸다. 그가 묵고 있는 방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

그때마다 그는 방문을 열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땀에 흠뻑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나는 엉거주춤 서 있는 것이 쑥스러워 황급히 내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열린 문틈으로 씻고 있는 그의 등을 훔쳐보곤 했었다. 그는 땀으로 흠뻑 젖은 운동복 상의를 벗어 마루에 던져두고 수도꼭지를 틀고 머리를 감았다. 짧은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맺힌 물방울들이 아침햇살에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사랑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싹이 트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며칠 후 가슴앓이 하던 내 마음을 외면한 채 바람같이 그는 떠나버렸다.

 

그가 떠난 후론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들이 내 머릿살을 어지럽혔다. 조카들과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밥은 잘 챙겨먹는지도 궁금했다. 학원에 있어도 생각나고,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어도 가슴 한 쪽이 먹먹해지고 아파왔다. 그런 마음이 서로 통했는지 그가 떠난 후 일주일 후 쯤 소식이 왔다. 그리고 1년여 동안 서신으로 주고받던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한 후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혼 후 우리는 조카들의 보호자가 되어 친 자식 이상으로 정성을 쏟으며 키웠다. 특히 내겐 더욱 각별했다. 그와 결혼 후 자궁 외 임신을 하는 바람에 내 몸은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는 고장 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충격이 감당이 안 돼 앓아눕기까지 했으나 그것도 다 팔자소관이거니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자 조카들이 내 살 같고, 내 피 같이 소중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벌써 이십 여 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그 동안 그는 형이 운영하던 건축내장재 판매업을 이어받아 알뜰살뜰 키워나갔다.

해마다 건축자재박람회를 통해 친환경소재를 선보였고 그때마다 좋은 호응을 얻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파키스탄에서 직수입한 황토대리석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새집중후군으로 인해 두통과 신체이상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그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집을 짓더라도 흙과 사람을 떨어뜨려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고층빌딩일 수록 바닥재만큼은 황토로 마감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가 선보인 제품이 바로 천연황토대리석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황토를 압착해서 만든 제품이 아닌 수 억 년 동안 황토가 쌓이고 쌓여 퇴적된 암석을 캐내어 물갈기로 광택을 낸 황토엑기스나 다름없는 제품이었다. 각종 언론에서는 건축내장마감재로서 최고라는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원적외선 방출량이나 강도, 보온 면에서도 탁월한 자재임을 증명하는 여러 가지 시험성적서도 지면에 실어 신뢰도를 높여갔었다.

그의 사업은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주문이 들어오는 양에 비해 LC를 제대로 열지 못해 제 날짜에 공급을 못하는 어려움도 있었고, 그로 인해 거래처가 등을 돌린 적도 있었다. 또한 타일을 붙이는 업자들이 보수를 더 받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바람에 고객의 원성을 산적도 있었다. 잘 되는 사업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온갖 사기꾼들이 달라붙어 유혹의 손짓을 해 오기도 했었고, 그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한 난관을 하나하나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가정사에는 무신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업이 발전하면 할수록 부부사이의 대화는 줄어들었고, 공백으로 인한 갈등은 깊어만 갔던 것이다.

 

나는 그로 인해 소원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가 운영하는 화랑에 나가 일을 도와도 보았고, 골프모임에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으로도 허전함을 채워주지는 못했었다. 풍족한 생활과는 대조적으로 내 몸은 점점 쇠락해지고 있었다. 밤마다 자주 불안함을 느끼게 되었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거나 얼굴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끝내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멋스럽게 변해가는 그에 비해 내 모습은 초라해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조금만 피곤한 기색을 보여도 ‘내 자신이 여자로서 매력이 떨어져서 저러는 거야,’ 라고 데억지게 반응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서글퍼하곤 했었다.

 

그러던 중 이상한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된 거였다.

단 한 번도 내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이나 자존심을 건드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던 남편이었기에 사는 내내 나는 조심스러웠었다. 그 또한 사내가 아니던가, ‘젊고 싱싱한 여자가 유혹해 오면 당연히 넘어가지 않겠어?’ 라는 잡생각이 머릿속에 스며들자 거미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에 오장육부가 다 뒤틀릴 지경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전신거울 앞에 장승처럼 섰다. 까칠한 피부와 탄력을 잃은 가슴, 늘어진 뱃살. 거울 속의 여인은 내 모습이 낯설다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내 몸을 쏘아보고 있었다. 갑자기 보기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몸을 돌려 옷장 속에서 나이트가운을 꺼내어 걸치고 거실로 나왔다.

낮 동안 터지기 직전의 고무풍선 같이 위태롭던 날씨가 기어코 강풍을 동반한 폭우를 내리쏟기 시작했다. 창 너머로 보이는 가로수들이 비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든 취객처럼 휘청거렸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었다. 강렬한 빗소리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내 귓전을 파고들었다.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 동안 서서 빗줄기에 휘청거리는 가로수들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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